〈 40화 〉 6. 진료기록 위의 신창?? (5)
* * *
캐리어를 양손으로 안고 언덕을 마구 달려서 내려간다. 붉은 노을이 비스듬히 나를 비추고 있었다. 검은 그림자가 길게 쭉 늘어진다.
일단 자취방에 먼저 들려서 캐리어를 아무렇게나 내던진 뒤, 급료 봉투만 챙겨서 다시 바깥으로 나온다.
그 다음에는 루이스가 있을 법한 곳을 하나씩 뒤져가면서 그 녀석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루이스도 이 도시에서 보낸 세월은 10년이 넘어간다. 생활 반경이 그다지 넓지 않기 때문에, 작정하고 찾으면 금방 찾아낼 수 있다.
녀석의 자취방, 모험가 길드, 식당 순으로 훑어 나갔다.
그리고 나는 도시 중앙부의 전망대에서 루이스를 발견했다.
"루이스."
"……백신현? 일은 어쩌고, 왜 이런 곳에 있어?"
위의 자취방, 모험가 길드, 식당 같은 장소를 루이스가 필요에 의해서 드나드는 곳이라고 분류한다면, 이곳은 루이스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어하는 공간이었다.
도시 구석에 세워진, 바위를 깎아서 쌓아 올린 전망대였다. 난간에 몸을 기대고 고개를 쭉 뻗으면 제피로스의 전경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노을을 등지며 나를 돌아보는 루이스의 모습은 마치 붉게 타오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보이지 않게 호흡을 가다듬은 뒤, 루이스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네게 상담하고 싶은 게 있어."
* * *
이곳의 전망대는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유명한 모양이다.
지금까지 애인 같은 건 사귀어 본 적도 없는 놈이라 그런 것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전망대에서 영업하고 있는 노점에서 음료수를 두 개 사서 루이스가 앉은 테이블에 가져갔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상당히 묘한 그림이겠지만 나는 물론이고 루이스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얼굴이다.
보통 남녀 사이에는 우정이 성립될 수 없다고 하던데, 꼭 그런 것도 아닌 거 같다.
루이스가 테이블 쪽으로 몸을 바짝 붙이면서 호기심을 보였다.
"얼른 이야기 좀 해 봐. 도대체 어떻게 된 건데?"
"그러니까……"
나는 내가 조금 전에 경험한 일을 최대한 간추려서 전달했다.
갑자기 올리비아가 나타나서 나를 해고했는데, 그 행동에 뭔가 수상한 내막이 느껴진다는 것. '금제'가 걸려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올리비아와 샤를로트.
그리고 백신아가 거의 발광을 하다시피 격하게 반응했던 정체불명의 투기까지도.
"……보이드보다 최소한 두 배는 강한 투기라, 그게 사실이야?"
「사실이에요, 루이스 아씨.」
전망대 주변에는 사람이 없었다. 노점도 저기 먼 곳에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백신아도 큰 걱정 없이 소리를 냈다.
「스페트로 가문의 별장에서 어마어마한 크기의 투기가 느껴졌어요. 아주 강렬하고, 사악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루이스가 눈을 가늘이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보이드의 실력을 얼추 5, 6위권의 특급 모험가 정도라고 보고 있어. 그런데 그런 보이드보다 두 배 이상의 투기를 가지고 있다고……?"
"내가 보기에 그 정도 수준이면 현 1위나 2위에 버금가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는데. 네 생각은 어때? 특급 모험가의 의견을 듣고 싶어."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내 보기에도 충분히 그 정도는 될 거 같아.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현 1위와 2위는 지금 이 도시에 없잖아."
그건 나도 알고 있다.
모든 특급 모험가 중에서 정점을 차지하고 있는 그 두 사람은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공략'에 온 정신을 쏟고 있을 것이다.
특급 모험가만이 설 수 있는 전장에서, 특급 모험가의 힘을 휘두르며.
"맞아. 그래서 나는 제피로스 정신 병원에 수감되어 있는 '전 1위의 특급 모험가'가 좀 의심스러워."
물론 근거는 없다.
조금 전, 올리비아 앞에서 늘어놓았던 말도 추측에 추측을 기반으로 쌓아 올린 소설 같은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현재 이 도시에서 보이드보다 확실하게 강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존재도 변변히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물론이고 루이스 역시 최고 컨디션의 보이드와 비교하면 부족한 부분이 있다.
애초에 백신아를 제외하면 보이드보다 강한 사람도 없는 것이 현재 이 도시의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것이 바로 그 전 1위의 특급 모험가라는 인간이다.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보이드보다 더 강한 투기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이외에는 달리 떠오르는 이름이 없었다.
내 의견을 들은 후, 루이스는 맨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내가 말야. 주기적으로 제피로스 정신 병원을 체크하고 있거든."
"음, 그런데?"
"뭐, 코어는 신아가 확실히 파괴했지만, 그래도 좀 불안하잖아."
루이스의 시선이 아주 잠시 내 허리춤에 매달린 검을 향해 움직였다가 올라온다.
"그래서 며칠에 한 번씩, 제피로스 정신 병원에서 무슨 일이 있지는 않았는지 보고를 받고 있는데. 오늘 내가 정보를 받을 때까지도 그다지 특별한 일은 벌어지지 않은 거 같아. 누가 탈옥하고, 나가고, 그런 말은 하나도 못 들었어."
목이 타는지 루이스는 컵을 향해 손을 뻗어서 빨대로 음료를 쭉 빨아들였다.
푸하, 하고 가볍게 숨을 토해낸 뒤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덧붙인다.
"그 전 1위의 특급 모험가가 아니라 전혀 다른 곳에서 찾아온 제 3의 세력일 가능성도 있어."
"그럴 수도 있겠지."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었다.
세상은 넓다. 언제, 어디에서 조용히 숨어 있던 은거 고수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게 이 바닥의 현실이다.
내 예측이 모두 빗나갔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잖아.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볼 거야. 그리고 지금, 내가 비벼볼 수 있는 구석은 제피로스 정신 병원에 수감되어 있는 스페트로 가문의 전대 가주 뿐이니까."
내 예측이 옳았는지, 그게 아니면 빗나갔는지.
그건 지금부터 내가 제피로스 정신 병원에 찾아가서 스페트로 가문의 전대 가주에 대해서 조사해보면 알게 될 일이다.
내 예측이 옳았다는 게 증명된다면 그걸 바탕으로 앞으로의 플랜을 만들어나가면 된다. 빗나가도 상관 없다. 이 도시에 내가 모르는 존재가 암약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한 발짝 나아간 셈이니까.
"알았어. 그럼 나도 손 닿는 범위 내에서는 도와줄게. 의례적으로 회동 일주일 전후로는 특급 모험가는 일을 맡지 않고 실력과 자세를 가다듬게 되어 있기 때문에, 살짝 시간이 날 거 같거든."
"네가 도와주면 나도 좋지. 너무 눈에 띄는 게 문제지만."
"아, 확실히. 내가 너무 예쁘니까."
루이스는 크게 놀라지도 않고 자기 얼굴에 금칠을 했다.
요 녀석의 말을 그대로 긍정해주는 건 참으로 두드러기가 날 것 같은 일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최연소 특급 모험가로서 루이스의 인지도를 제외하더라도, 루이스는 참 사람들의 눈에 띄는 존재다. 길을 걷고 있으면 열 명 중 열한 명이 돌아볼 것 같은 외모라고 해야 하나.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사람 중에서 연금술사와 함께 외모 투탑을 달리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이를 먹으면서 예전에 비해 야성미가 더해지고 태도가 조금 거칠어진 느낌은 있지만, 그게 또 양갓집 규수로 곱게 자라던 시절의 분위기랑 적당히 믹스되서 상당히 특이한 느낌을 풍기고 있다.
척 보기에는 예쁘지만, 잘못 건드리면 그대로 잡아 먹힐 것 같은 위험한 분위기…… 라고 표현하면 알아들을 수 있을까.
아무튼 특급 모험가가 되지 않았더라도 얼굴만 가지고 밥 벌어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은 여자라고 보면 된다. 당연히 은밀한 작업에는 안 맞다. 사소한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니까.
"그럼 나는 특급 모험가의 지위를 써서 최대한 외부쪽 정보를 쑤시고 들어가 볼게. 신현이 너는 내가 주목을 모으는 동안 하고 싶은 거 하고 다니면 되겠다."
"그렇게 할까."
해가 저물어서 날이 깜깜해 질 때까지 이런저런 플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눈 뒤 헤어졌다.
그 다음에는, 연금술사를 찾아가서 같은 내용으로 상담했다.
"연금술사 선생님, 상담할 게 하나 있는데요."
"……뭐야, 신현이 너, 오늘 일하는 날인데 왜 여기에 있지?"
그녀는 보이드 사태가 끝난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아서 이 도시에 괴상한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표정을 구겼지만, 우리가 미리 준비를 해둘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에는 공감했다.
나는 그녀에게 그녀의 솜씨로 제작할 수 있는 몇 가지 도구와 술식의 작성을 부탁한 뒤, 재료 수급을 명목으로 다음날 아침까지 빨아먹혔다.
* * *
그리고 다음 날.
나는 보이드의 면회를 명목으로 다시금 제피로스 정신 병원을 찾았다.
템페스트의 면회가 아니라, 보이드의 면회다.
템페스트 드 스페트로는 이쪽 바닥에서는 상당히 이름값이 있는 인물이다.
그가 막 구속되었을 당시에는 그의 전투 기술을 노리고 바깥에서 탈옥시키려고 용을 쓰는 사람들도 꽤 있었던 모양이라, 그가 구속되어 있는 독방은 깊은 지하에서 엄중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면회도 수사 관계자나 직계 혈족이 아니면 아예 허가 자체가 안 난다.
이건 특급 모험가 자격이 있는 루이스도 마찬가지.
그래서 우리는 정공법이 아니라 샛길로 그를 찾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쉽게 말해서 보안을 뚫고 침입하겠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 전에 제피로스 정신 병원의 보안 상태나 구조를 또 다시 체크해볼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에, 나는 보이드를 핑계거리로 삼아 이곳을 찾아왔다.
"……."
그런데, 뭔가가 좀 이상하다.
언뜻 보았을 때 보이드는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비교해서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흐릿한 동공에서는 이성을 찾을 수 없었고, 멍하니 벌린 입은 백치처럼 "아, 아." 소리만 내고 있다.
우리가 보이드에게 걸어 두었던 심령 제압술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니다.
뭔가가 다르다.
초일류의 특급 모험가조차 알아채기 어려울 만큼 미세한 차이였지만 천변무궁류의 검사는 그들보다도 훨씬 많은 것을, 훨씬 깊게 살펴볼 수 있다.
천변무궁류를 습득한 우리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 있다.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후,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뭐야, 어째서 보이드에게 걸어뒀던 심령 제압이 풀려 있는 거지?"
"역시 눈치챘나."
마치 마술을 부린 것처럼 보이드의 표정이 변화했다. 눈에는 또렷한 이성이 가득했고, 행동거지에선 지성이 느껴진다.
심령을 제압 당한 상태였던 보이드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스스로 해제한 건가?
아냐, 내가 보기에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혼자서 해제했을 리는 없고, 도대체 누구의 손을 빌린 거지?"
"내가 스스로 풀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나?"
"어, 까놓고 말해서 무리라고 본다."
현재 보이드의 코어는 파괴되어 있는 상태다. 마력을 축적하고, 총괄해서 제어하는 기관이 아예 망가진 상태란 말이다.
그 상태에서, 보이드가 가지고 있는 기량만으로 해제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기술이 아니다.
『저도 동감이에요. 보이드 따위의 기량으로 해제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닙니다. 틀림없이, 외부에서 누군가가 기술의 존재를 눈치채고 해제한 거에요.』
현 시점에서 그 누구보다도 천변무궁류에 정통한 권위자조차 이상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 경우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한다.
특급 모험가조차 존재를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교묘하게 설정된 기술을 도대체 어디에 사는 누가 간파하고, 해제시켰는가.
최소한 루이스는 백신아에게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 보이드에게 처치된 기술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 정도로 교묘하게 발휘되는 기술이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나타난 제삼자의 솜씨일까. 그게 아니면……
"도대체 누구지? 도대체 누가, 당신의 이성을 되돌려준 거냐고."
"말해줄 거 같나?"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나는 크게 당황하지 않고, 검을 뽑기 위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보이드를 마지막으로 본 뒤 벌써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나도 그 동안 보이드의 입을 열게 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강구해온 상황이다.
제피로스 정신 병원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모든 날붙이류에 붕대를 칭칭 감아서 봉인하는 절차가 필요하지만, 겨우 그 정도 기술로 봉인할 수 있는 검이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가볍게 움켜쥐고 뽑아낼 수 있다.
바로 그때 보이드가 황급히 다음 말을 토해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심정은 굴뚝 같지만, 사실 나도 그대에게 용건이 있었다."
"뭐라고?"
"그대에게 부탁을…… 아니, 거래를 제안하고 싶은 게 있거든."
부탁, 거래.
어느 쪽이든 곱게 넘겨들을 수 없는 단어들이다.
이 남자가 이렇게 나올 줄은 나도 몰랐기 때문에 조금 당황스럽다.
물론, 그걸 표정으로 드러낼 생각은 없지만.
"본격적으로 용건을 말하기 전에 내게 걸려 있던 제압을 풀어준 사람에 대해서 일단 말을 해줘야겠지."
보이드는 내 표정을 보고 대화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는지 선선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템페스트 드 스페트로라고 알고 있나?"
……!!
"알고 있어. 전 최강의 특급 모험가잖아."
내가 생각하기에도 지금의 목소리는 정말로 담담하고, 자연스러운 목소리였다고 생각했다.
심장은 이미 터질 듯이 쿵쾅거리고 있는데도.
"그렇다면 설명하기가 쉽겠군. 그대도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정신 병원의 지하에는 템페스트가 20년간 수감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와 그는 과거에 서로 알고 지내던 지인이었지. 그가 나의 존재를 눈치채고, 심령이 제압되어있던 걸 풀어줬다."
"정신 병원의 지하에 구속복을 입고 갇혀 있던 사람이, 당신의 존재를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지? 말이 안 되는데."
내 대답에 그는 오히려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살짝 웃고 있었다.
"우스운 질문이로군. 그에게 이 정도의 보안은 효과가 없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나갈 수 있었지. 그의 코어가 어느 정도 재생된 5년 전부터, 이곳은 템페스트의 놀이터에 불과했다."
코어의 재생…….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코어도 따지고 보면 인체의 일부. 파괴되더라도 다시 수복할 방법이 없지는 않다. 과거에도 몇 건의 코어 재생 사례가 발표된 적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성공 사례는 논문에 실릴 정도로 매우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어마어마한 돈과 기술이 잔뜩 투입된 끝에 성공한 사례고.
그런 걸 혼자만의 힘으로 수복한 케이스는…… 내가 알기로는 없다.
그 정도로 템페스트의 기량이 어마어마한 수준이라는 소리인가.
기적에 가까운 일을 성공시킬 수 있을 정도로.
"뭐야, 용건은 아직 말도 안 꺼냈는데 벌써 겁에 질린 거냐?"
"그럴 리가."
"하긴 그렇겠지. 네놈은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도 내게 덤벼들던 미친 놈이었으니까."
놈의 눈에는 그런 식으로 보였던 걸까.
그게 내 나름대로 합리적인 생각을 거쳐 나온 결론이라는 건 말해도 믿지 않겠지.
애초에 오해를 수정할 생각도 들지 않는다.
내가 잘 보이고 싶은 건 이 남자가 아니니까.
"템페스트는 현재 내 분신 술식을 이용해서 자신의 자리에 가짜를 놓아둔 후, 바깥으로 탈출한 상태다. 행선지는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그의 출신을 생각하면 스페트로 가문의 별장에 찾아갔을 가능성을 높이 보고 있어."
그 말을 듣고 나는 내심 조소하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을 즐기고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바로 얼마 전까지 피터지게 맞서 싸웠던 숙적의 입에서 템페스트의 이름이 튀어나온 지금의 상황 자체가 내게 있어 너무나도 공교롭게 느껴졌다.
신비한 우연을 느낀다.
나는 조용히 그를 재촉했다.
"그래서 당신의 용건은 뭐지?"
"네가 템페스트를 쓰러트려줬으면 한다."
뭐?
연달아 머릿속으로 떨어진 폭탄에 판단 능력이 살짝 흐릿해졌다. 보이드를 해방시켜준 사람이 템페스트인데, 그 템페스트를 쓰러트려달라고?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표현에 나는 의문을 느꼈다.
"어째서지? 지금까지 들은 말만 따지면 당신이 템페스트를 적대할 이유는 전혀 없는 거 같은데?"
"그렇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유를 들으면 그대도 납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보이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첫 번째, 나의 지인이었던 템페스트는 지금의 그가 아니다. 광증??이 발생하기 전의, 존경 받던 위대한 특급 모험가가 나의 지인이었지."
아, 예전에 루이스에게서 비슷한 말을 들은 것 같다.
최강의 특급 모험가는 스페트로 가문에 유전으로 이어지는 광증으로 미쳐버린 거라고.
"그리고 두 번째, 지금 템페스트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인격은 나로서도 전혀 종 잡을 수 없는 미친 놈이다. 나도 쓰레기지만 그놈은 결이 달라. 우리는 폭력이나 파괴를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쓰지만 그놈은 파괴와 폭력을 일으키는 것 자체가 목적이야."
"쉽게 말해서 언젠가는 너도 그 파괴와 폭력의 흐름에 휘말릴지도 모르니까 그 전에 쓰러트려 달라는 소리군."
"……그렇다."
보이드는 짜증이 치밀어 오른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꼴로 전락했지만 난 아직도 내 목적을 포기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재기에 성공해서, 네놈으로부터 그 검왕검을 빼앗을 생각인데…… 그 전에 내가 군림할 세계 자체가 쓸려나가면 곤란해."
"그 전에 이 자리에서 내게 죽는다면?"
"그럴 수는 없을 거다. 난 아직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 너라면 그 정보를 다 토해내게 하기 전까지는 죽이기 아깝다고 생각하겠지."
그렇기 때문에 굳이 숨길 필요도 없이 재기의 의사를 드러냈다는 소린가.
하지만 그건 어려울 거다.
아직은 미완성이지만, 보이드의 입에서 정보를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나도 강구하고 있으니까.
그러한 속내를 전혀 드러내지 않고 나는 보이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템페스트는 아직 완전히 코어를 회복한 상태가 아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이곳을 탈출한 이유는 내가 여기에 구속 되었다는 걸 템페스트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지? 그건."
"템페스트도 내 실력은 인정하고 있었어. 그런데 그런 내가 패배한 걸 보고 그는 바깥의 상황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예정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이곳을 빠져 나가게 된 거지."
즉, 하고 보이드는 낡아 빠진 네발 의자에 체중을 기대면서 입을 열었다.
"애초에 템페스트는 그대를 만나기 위해서 탈출했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대가 맞서 싸우는 게 옳지 않겠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