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6. 진료기록 위의 신창?? (2)
* * *
"가주님."
"듣고 있네."
란즈 가주는 의자에 앉아서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었다.
그는 최근 들어 이런 자세로 생각에 잠기는 경우가 많이 늘었다. 그리고 그는 그 상태에서 때때로, 여러 사람들의 이름을 반복해서 내뱉곤 한다.
'템페스타 드 스페트로', '보이드', '루이즈 파르네제', '백신현'.
현재, 란즈 가주를의 머릿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다.
란즈 가주는 "후우"하고 지친 얼굴을 맨손으로 쓸어내린 뒤, 다시 한 번 올리비아에게 보고를 요구했다.
이 일주일은 올리비아에게도 상당히 바쁜 일주일이었다. 그의 주된 호위 대상이었던 샤를로트 영애를 백신현에게 떠넘긴 후, 그는 이 도시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정보 상인들을 찾아다니면서 수많은 정보를 찾아냈다.
"가주님께서 예상하신 게 맞았습니다. 루이스 파르네제가 한달 전, 근처에 있는 기브리 지방에서 오래된 검을 발굴했다는 기록이 모험가 길드에 남아 있었습니다."
"기브리 지방이라……, 보이드가 자주 말하던 '검왕검'이 실종된 위치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군."
"당시 상황을 기록한 문서에 의하면 거의 특급에 준하는 몬스터를 토벌하던 도중, 그녀의 검이 대지에 꽂히면서 일대의 지반 수십 미터가 무너……, 무너졌던 것 같습니다."
모험가 길드에 남아 있던 기록을 올리비아는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전달했다.
하지만 수기로 작성된 기록지에는 1급 모험가인 그도 자신의 눈을 의심할 만큼 말도 안 되는 문장이 잔뜩 쓰여 있었다.
이것이 1급과 특급의 차이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가 1급이라면, 특급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조차 뛰어 넘어서, 그 저편의 영역으로 나아간 존재이다.
그도 일반인 기준에서는 아득히 먼 수준의 괴물이지만, 1급 모험가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특급이다.
올리비아는 이리저리 흔들리던 목소리를 갈무리한 후, 다시 한 번 막힘 없이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 과정에서 지반 속에 갇혀 있던 검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고, 그대로 주워서 회수했다고 합니다. 모험가 길드의 기록에는 그냥 '검'이라고 표기 되어 있었습니다."
"그거군. 그게 바로 보이드가 말하던 '검왕검'이란 물건일거야."
란즈 가주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이드는 현재의 특급 모험가를 기준으로 했을 때 5위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루이스 파르네제에게 패배하고 체포된 것도, 아마 그녀가 '검왕검'에 숨겨져 있는 깨달음을 획득했기 때문이겠지."
보이드에게 자세하게 이야기를 들은 것은 아니지만, 검왕검은 스스로 주인을 선택한다고 했다. 그리고 란즈 가주가 생각했을 때, 루이스는 '선택' 받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재능을 가진 소녀였다.
무수히 많은 천재와 고수들을 보아온 란즈 가주조차 경외심을 느끼게 될 정도로 압도적인 재능.
오히려 그 소녀가 선택 받지 못했다면 그게 더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어렵군……."
란즈 가주는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
루이스 파르네제가 그 검왕검을 손에 넣었고, 그 기연에 힘 입어 검왕검을 손에 넣기 위해서 습격했던 보이드까지 역으로 쓰러트려버렸다는 사실까지는 파악이 끝났다.
그러고 나서 란즈 가주가 내린 결론은 '검왕검을 빼앗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었다.
처음에는 루이스 파르네제의 유일한 약점인 백신현을 이 판으로 끌어들여서 구속한 뒤, 검왕검을 빼앗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백신현의 실력을 보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소년이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서 실시한 모의전에서 올리비아를 이기기 전까지만 해도.
모험가 길드에 등록된 등급은 고작해야 4급이었지만, 그는 모험가 자격증에 표시되어 있는 것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1급 중에서도 격이 다른 실력자로 취급되는 올리비아가 패배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물론 모의전이었던 만큼 올리비아도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준비된 기술을 쓰지 않고 싸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아마 백신현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올리비아 자신의 입으로 했던 말이다. 그는 특별한 초식이나 파괴력 강한 기술을 하나도 쓰지 않고, 오직 기교만으로 자신을 몰아붙였다고.
그 정도 실력이면 란즈 가주도 쉽게 제압하긴 어렵다. 백신현의 마력은 단련하지 않은 일반인보다 조금 나은 수준에 불과했는데, 그 정도의 마력으로 올리비아를 눌렀다는 건 그 정도로 뛰어난 기교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낮게 잡아도 특급에 버금가는 수준의.
작년에 있었던 '회동' 이후, 1년 만에 다시 본 백신현은 이미 '루이스의 약점'으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
올리비아는 고민에 빠진 란즈 가주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차라리 그 두 사람을 저희 편으로 끌어들여서 힘을 합치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 둘의 힘을 빼앗는 게 아니라, 같은 편에 서서 가주님의 목적을 이루는 방법도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수렁으로 끌어들이고 싶지 않다'. 그런 사심이 섞여 있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사적인 감정을 제외하더라도 그가 생각하기에는 이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무조건 다른 사람과 부딪쳐야만 하는 건 아니다.
그 소년소녀들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모험가. 사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그 난이도에 합당한 보수를 지급할 수만 있다면 그들은 기꺼이 란즈 가주의 곁에서 힘을 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설령 루이스에게서 검왕검을 빼앗는다 하더라도 그 힘을 바로 란즈 가주가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검은 스스로 주인을 선택한다고 하지 않았나.
란즈 가주가 자격이 되지 못할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했다.
이 경우, 란즈 가주는 확실히 끝장이다.
올리비아가 보기에, 현재의 루이스 파르네제의 검은 란즈 가주를 이미 훨씬 뛰어넘은 경지에 도달한 것 같았다.
그것이 검왕검에 숨겨져 있던 깨달음의 힘인지, 아니면 그녀의 순수한 실력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이 공연히 루이스에게 원한을 사게 되면 란즈 가주는 틀림없이 살해당하게 될 것이다.
"그 방법 이외에는 달리 길이 없겠군……."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루이스 파르네제와 백신현은 충분히 이야기가 통하는 상대입니다. 돈을 가지고 고용하면 틀림없이 우리와 함께 싸워줄 것입니다."
다시 하는 얘기지만, 사심이 섞여 있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다. 무고한 사람들과 함부로 싸우고 싶지 않다. 이건 그의 솔직한 진심이다.
하지만 사심을 제외하더라도 그가 보기에는 이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확실하게 성과를 얻을 거라는 보장도 없이 루이스 파르네제 정도쯤 되는 모험가와 척을 지는 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다행히 란즈 가주가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기만 한 탓에, 백신현은 아직 구체적인 피해는 하나도 입지 않은 상태다.
지금의 그에게 올리비아는 '솜씨가 좋은 두 살 연상의 실력자' 정도로 여겨지고 있을 것이고, 란즈 가주 역시 '씀씀이가 끝내주는 괜찮은 고용주'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좋지 못한 계략을 속으로 궁리하긴 했지만 구체적인 계획도, 구체적인 피해도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지금이라면 아직 원만하게 일을 풀어나갈 기회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가주님도. 차라리 그런 식으로 템페스트와 맞서 싸워……"
말하던 도중, 갑자기 올리비아가 입술을 다물었다. 그 자신의 의지는 아니었다. 난데없이 읍, 읍, 하면서 목이 마비된 것처럼 소리가 끊어졌다.
"……."
그건 스페트로 가주도 다르지 않았다. 갑자기 말이 끊어진 올리비아를 바라보며 무어라 대답하려던 그도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두 명이 침묵함에 따라 그의 서재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울리지 않게 되었다. 어색한 정적이 서재에 퍼진다.
바로 그 때였다.
"……재미있는 이야기로군. 검왕검이 세상에 나타났다고……?"
물기가 쫙 빠져서 말라버린 나뭇잎이 부서지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흘러나온 입은 그 목소리보다도 훨씬 더 말라 비틀어지고, 쩍쩍 갈라진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
표현하자면 그것은 붕대를 감지 않은 미라 같은 것이었다.
피부는 검게 착색되고, 눈은 안으로 움푹 들어가서 고목에 뚫린 구멍 같았다. 거죽은 뼈에 찰싹 달라 붙어서 생명력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걸어다니는 시체 같은 존재는 서재의 소파에 거만하게 앉아 있었다. 어깨에는 가느다란 창을 비스듬히 기대놓은 상태다.
그 존재는 어딘가의 정신 병동 같은 곳에라도 수감 되어 있었던 것인지, 새하얀 구속복 같은 걸 입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 옷에게 구속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이미 여기 저기가 잔뜩 뜯어져서 원형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그것이 다시 손을 움직여서 올리비아를 가르킨 순간, 난데없이 그의 성대가 원래 기능을 되찾았다.
그의 얼굴은 이미 자신의 파란색 머리카락보다도 더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 존재의 이름을 올리비아는 이미 알고 있다.
"템페스트……, 전대 가주 어르신……."
정확하게 말해서, 이 존재의 이름은 템페스트 드 스페트로.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피로스 정신 병원에 수감되어 있던 죄수 중 하나이자,
한때 특급 모험가의 정점에 있던 존재였다.
* * *
제피로스.
내가 10여년 전부터 정착해서 살고 있는 이 도시의 이름이다.
외지 사람들은 이 주변 일대를 두고 '제피로스 지방'이라고 부르는데, 이건 이 지방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위치로 따지면 대륙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이지만, 근래에 특급 모험가를 둘이나 배출하면서 인지도가 크게 높아졌고, 지금은 풍부한 자연 환경을 바탕으로 삼아 관광업으로 먹고 사는 동네가 되었다.
그때 재개발이 되면서 도시가 크게 확장이 되었었는데, 그때의 흔적이 바로 연금술사가 거주하는 외곽 지역이다.
샤를로트는 치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위에는 검은색 긴팔 티, 아래에는 색이 짙은 청바지.
고급스런 가문의 영애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수한 복장이었지만, 샤를로트는 늘 입고 다니는 비싼 드레스보다 이쪽이 더 마음에 든 것 같았다.
반짝 반짝 빛나는 눈으로 거리를 돌아볼 때마다 양갈래로 묶은 라임색 머리카락이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린다.
"……."
보면 볼수록 내가 아는 누구의 어렸을 적이 떠오르는 뒷모습이다. 성격은 완전 정반대지만 은근히 비슷한 점이 많다. 부잣집의 영애였다는 점, 머리를 양갈래로 묶었다는 점.
그리고 무?에 대한 압도적인 재능까지.
"일단 돌아보기 전에 식사부터 하자. 벌써 점심이잖아."
"……아, 응."
저택에서 아침은 먹었지만, 나오기 전까지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니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별장에서 막 나왔을 즈음에는 벌써 점심 때가 되어 있었다.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연료부터 보충하고 시작하는 게 좋을 거 같다.
샤를로트에게 이 동네의 음식을 소개하기 위해서 나는 내가 아는 최고의 맛집으로 발길을 움직였다.
나뿐만이 아니라 이 근방에서 사는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맛집이기 때문일까. 점심 시간이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그래도 타이밍이 잘 맞았는지 마침 빈 자리가 딱 하나 남아 있었다. 새로 고용된 건지, 처음 보는 종업원이 인원수를 확인하고 우리를 테이블로 안내했다.
"사람 많다……. 여기가, 맛있는 가게야?"
"내가 알고 있는 가게 중에서는 최고야. 이 도시의 특급 모험가들도 걸핏하면 먹으러 올 정도로 주방장 실력이 좋거든."
"진짜……?"
"진짜야."
루이스는 당연히 단골이고, 현 특급 모험가 중 2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수염쟁이 아저씨도 원정을 끝마치면 무조건 이 가게에서 뒤풀이를 한다.
테이블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입구에서 기다리는 종업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찾아와서 주문을 받았다.
그러다가 내 얼굴을 보고 "어?" 소리를 냈다.
"뭐야, 신현이 너. 네가 여기 어쩐 일이냐?"
"밥 먹으러 왔어요. 여기 맛있잖아요."
"……보통 일하다가 짤린 사람이 이런 식으로 뻔뻔하게 찾아오나?"
"왜요, 손님으로 온 거 뿐인데."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리는 이 사람은 이 가게의 지배인이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내게 월급을 주던 사람이기도 하고.
이 가게의 이름은 에테지아, 내가 얼마 전까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무단결근을 하기 전까지 계속 다니던 식당이었다.
어쩌다보니까 짤리긴 했는데 이 사람들에게 그다지 악감정은 없다.
지배인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투덜거리면서 주문을 받아갔다.
"……여기, 신현 씨가 일하던 가게였어……?"
"뭐 그랬지. 자세히는 말 못하는데, 오래 쉴 만한 일이 있었거든. 그래서 잘린 거야."
내가 고생한 이야기를 해봐야 재미도 없을 거다. 나는 어깨만 살짝 으쓱이면서 흘려넘겼다.
"보통은 자기가 잘린 가게에 밥 먹으러 오면 많이 불편할텐데……, 신현 씨가 그걸 감수하면서 찾아왔다는 건, 그 정도로 맛있는 가게라는 뜻이겠지……? 기대해도 될까?"
"기대해도 될 거야. 아마 저택의 음식보다 훨씬 나을걸."
"와아."
나이가 나이인 만큼 샤를로트는 은근히 먹는 걸 밝히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여기를 온 거다. 맛도 있고, 가격에 비해서 양도 꽤 있는 편이라서.
저택의 음식이 맛 없다는 건 아니고, 그 정도로 이 식당의 음식이 맛있다는 뜻이다. 지금은 운 좋게 기다리지 않고 자리를 얻었지만, 5분만 늦게 찾아왔어도 한참 동안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기대된다……."
내가 단언하는 태도에서 확신을 얻은 듯, 샤를로트가 작게 웃으면서 다리를 흔들었다.
"아, 죄송합니다. 손님. 저희가 지금 만석이라서요. 잠시 기다리시거나, 아니면 합석하셔야 하는데……"
"그래요? 으음, 오늘은 여기서 먹고 싶은 기분이었는데, 별 수 없나."
우리가 자리에 앉은 지 이제 겨우 2분 정도 지났는데, 벌써 가게 입구 앞에도 줄이 가득이다. 진짜로 잘 맞는 타이밍에 들어왔네. 조금만 늦었어도 한참을 기다리고 있어야 했을 거다.
……근데 잠깐만. 지금 목소리, 어디에서 많이 들어본 목소린데?
"어, 뭐야. 백신현. 네가 왜 여기 있어?"
입구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던 건 내가 아주 잘 아는, 친밀한 사이의 동갑내기 여자였다.
오른쪽으로 틀어 묶은 금발은 멀리에서 봐도 눈에 띈다.
"……아, 그래. 그럼 저쪽하고 합석할게요. 그래도 괜찮죠?"
"네, 괜찮아요. 여자 손님 한분, 합석하십니다!"
난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종업원은 자연스럽게 루이스를 우리가 앉아 있던 자리로 안내했다.
물론 거절할 생각은 없지만. 종업원이 저래도 되는 거 맞나.
"후, 아는 얼굴이 있어서 살았다. 안 그랬음 꼼짝 없이 10분은 기다려야 했을 거야. 아, 옆에 앉아도 되지?"
루이스는 내가 말하기도 전에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뒤 그런 말을 했다. 거절할 이유는 없긴 한데, 갑자기 우격다짐식으로 밀고 들어오니까 샤를로트가 확 쫄아버렸다.
"……."
나하고는 말을 좀 트기 시작했지만, 요 녀석은 여전히 낯가림이 심했다. 난생 처음 보는 루이스 앞에서 샤를로트는 불로 구운 오징어마냥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그 꼴이 루이스가 보기에도 영 우습게 보였던 모양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손가락으로 샤를로트를 가리킨다. '누구야?' 소리 없이 입만 움직여서 질문했다.
"내가 스페트로 가문에 잠시 과외 아르바이트 하러 간다고 했었잖아. 그 과외 상대야. 이름은 샤를로트."
"아, 얘가 그 아저씨 딸이야?"
루이스는 샤를로트는 몰라도 스페트로 가주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것치곤…… 별로 안 닮은 거 같은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