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31화 (31/287)

〈 31화 〉 5. 개와 왕자 (4)

* * *

프렌체스코 가, 221번지.

그곳은 완만한 언덕을 통째로 깎아서 쌓아올린 저택이었다. 지금부터 평생 돈을 모은다고 해도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높고, 넓다.

저택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일대가 모두 스페트로 가문의 소유였다. 하지만 여기도 본가가 아니라 별장에 불과한 수준이라던데, 그럼 도대체 본가는 얼마나 사이즈가 큰 거야. 무슨 성이라도 되는 건가.

꽃 하나만 잘못 꺾어도 수백 만 골드를 배상해야 할 것 같은 꽃밭을 지나서 새하얀 철로 만든 정문에 도착했다.

문은 안쪽에서 열려 있었다. 캉, 캉, 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모험가의 귀에 가장 익숙한 소리, 쇠와 쇠가 부딪치면서 나는 굉음이다.

도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내가 호기심을 품고 정문 안으로 들어섰을 때, 마침 덩치 큰 남자가 창대에 얻어맞고 바닥을 구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에서 본 얼굴 같아서 살짝 살펴보니까, 모험가 길드를 오고 가면서 한 번씩 봤던 얼굴 같다. 의뢰를 받기 위해서 면접을 보러 온 걸까.

4급 이상만 참가할 자격을 얻을 수 있는 의뢰인 만큼 나와 같은 급이거나 그 이상의 등급인 모험가인 건 틀림없다.

근데 왜, 이 사람이 창대에 얻어맞아서 바닥에 쓰러져 있는 거지?

거기다가 쓰러져 있는 건 이 남자 한 사람만이 아니다. 공터처럼 넓은 마당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있다. 다들 한 번씩 본 적이 있는 얼굴. 모험가 길드에서 활동하는 다른 모험가들이다.

쓰러져 있는 사람들의 숫자만 해도 대략 여섯.

죄다 한 대씩 얻어맞은 것처럼 흔적이 남아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심하게 다친 것 같은 사람은 없다.

"……도착하셨습니까."

앞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흙먼지가 걷히고, 그 자리에서 바로 어제 만났던 청발의 남자가 나타났다.

언뜻 보면 여자로 착각할 것 같은 선이 가는 얼굴.

그는 어제 봤던 옷차림 그대로, 손에는 한 자루 창을 쥐고 있었다.

스페트로 가문은 창술의 명가로 이름이 높다. 그 아래에서 일하는 저 남자 또한 창술을 주무기로 써도 이상하지 않다.

"모험가 길드에 올라온 공고 보고 찾아왔는데, 여기 쓰러진 사람들은 뭡니까?"

나는 바로 앞에 쓰러져서 거치적거리는 남자를 옆으로 질질 끌어다 옮기면서 질문했다.

이건 도대체 무슨 그림이야?

"시험입니다."

청발의 남자는 담백하게 대답했다.

"시험이라, 무슨 뜻이죠?"

"공고에도 쓰여 있었지만, 저희는 이 지역의 검술을 아가씨에게 가볍게 지도해줄 수 있는 분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 중요한 사람을 아무나 고용해서 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아가씨를 가르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분을 거르고 있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실력 테스트라는 건가.

여기저기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은 그걸 통과하지 못하고 얻어터진 거고.

나는 그의 창끝에서 장중하게 흐르는 마력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보기와는 다르게 상당히 강한 사람이다.

느껴지는 마력의 크기도 상당한 수준이지만, 창을 쥐고 있는 손놀림이나 호흡법의 수준도 보통이 아니다. 얼추 수준을 가늠해봐도 최소 2급 이상의 실력자 같다.

일단 연금술사보다는 확실하게 강하다. 뭐, 그 사람의 진가는 전투 능력이 아니지만.

"저를 이기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를 상대로 한 대라도 맞추지 않는다면 통과시킬 수 없습니다."

"한 대, 라."

오만해보이는 태도지만 1급 모험가가 가진 위상을 생각하면 저런 태도도 이해는 간다. 특급을 규격외라고 치면 1급은 일반적인 모험가들이 도달할 수 있는 최후의 상한선이다.

저번에 '아가씨'인가 뭔가 하는 사람 옆에 붙어서 돌아다니는 것도 그렇고, 이런 곳에서 자리를 잡고 창을 휘두르는 걸 보면 아마 란즈 드 스페트로의 심복 같은 사람이 아닐까.

1급 모험가 쯤 되는 인재가 드문 것도 아니고.

"도전하시겠습니까?"

"당연히 도전해야죠."

나는 어깨에 비스듬히 매고 있던 가죽 가방을 벗어서 옆으로 치운 뒤, 허리춤에서 검을 천천히 뽑아냈다.

청발의 남성은 창을 고쳐쥐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날카롭게 날을 벼린 창날 끝에서 청광光이 번쩍이며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

창이라. 흔히 만병지왕?兵之王이라고 불리는 냉병기 최강의 무기다.

제대로 배우기는 어렵지만, 제대로 된 스승 밑에서 수련을 쌓은 창수는 상당히 귀찮다.

검보다 공격 범위가 길기 때문에 평소에 비해서 어느 정도 거리 감각을 조정해둘 필요가 있을 거 같다.

스으, 하,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고, 다시 토해낸 후.

"갑니다."

조용히 선언했다.

* * *

온힘을 다해서 싸워줄 생각은 없었다.

아니, 그 이전에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그의 전력을 끌어내지 못했다. 1급 모험가의 힘과 속도를 한계까지 떨어트린 상태였음에도 제대로 된 일격 한 번 성공하지 못하고 하나둘씩 꼬꾸라졌다.

현재 땅바닥에 쓰러진 모험가 중 넷은 4급이고, 나머지 둘은 3급이었지만 1급 중에서도 최상위권의 강자라고 평가 받는 그의 입장에서 보면 큰 차이는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 쪽도 간단했으니까.

그리고 그건 아마 백신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보법도 안정적이고 호흡도 좋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기운은 전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대단해도 4급. 대단치 않은 상대다.

순식간에 제압해서 바닥에 쓰러트리는 것도 어렵지 않겠지만, 지금의 그는 어느 개인적인 사정에 의해 백신현을 이 시험에서 합격 시켜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어느 정도 힘을 가감한 상태에서 추가로 힘을 더 뺀다.

이 정도 수준으로 적당히 놀아주다가 우연을 가장해서 한 대 얻어맞아주면 되겠지, 그는 가벼운 심정으로 창을 앞으로 내질렀고.

바로 다음 순간, 자신의 목에 칼이 겨누어져 있는 상황을 목격했다.

"……, 윽?!"

그는 조금 늦게 목덜미에 드리워진 서늘한 감각을 느끼고 어깨를 움찔 떨었다.

단순히 백신현이 불가해??한 움직임으로 창을 쳐낸 뒤, 그가 눈치채지도 못한 틈에 칼을 겨누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신이 딴 데 가 계신 거 같은데, 너무 방심하신 거 아닙니까?"

전신의 힘과 속도는 상당히 빼 둔 상태였지만, 동체 시력은 평소와 크게 차이가 없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모험가들을 제압하면서도 상처를 입히지 않기 위해서는 상당히 정교한 솜씨가 필요한데, 뛰어난 동체 시력은 그 솜씨의 바탕이 되는 기본 조건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동체 시력으로도 한 순간 백신현의 움직임을 놓쳤다. 그와 비교하면 그다지 빠른 움직임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되었다.

1급 모험가의 감각조차 무시하고 급소에 칼을 겨누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절 상당히 얕보고 있는 거 같네요."

잠시 동안 서 있던 백신현은 낮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검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혹시 내가 루이스의 약점이라는 헛소문의 출처도 이쪽은 아니겠지?" 어제 들었던 그 말이 여전히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씁쓸한 얼굴로 입맛을 다시며 백신현이 다시 기수식을 잡았다.

"자세, 다시 잡아요."

"……그건, 무슨?"

"다시 자세 잡으라고요. 나도 상대가 방심한 덕에 운 좋게 통과했다, 그런 소리 듣기 싫으니까."

잠시 멍하니 있던 그는 그 말을 듣고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상당히 가감해두었던 힘을 대부분 해방한다. 온힘을 다한 '최대 출력'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한 없이 실전에 가까운 세팅이다.

백신현을 상대로 굳이 투지를 불태울 필요는 없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통과시키기에는 조금 자존심이 아프다. 일류 모험가로서의 긍지가 운다.

호흡도 제대로 하고 코어의 움직임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전신의 혈액이 빠르게 돈다. 쿵쾅쿵쾅하면서 활력이 피어난다.

그 상태에서 눈앞의 백신현을 시인한 채 한 발 앞으로 짓쳐들었다. 호흡, 보법, 팔의 움직임이 완벽하게 조화된 예술의 경지에 오른 찌르기가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고,

다시 한 번 창두가 가볍게 튕겨 나간 뒤, 그의 목에 칼이 드리워졌다.

백신현이 불쾌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대로 좀 하시라니까."

"……."

"티를 안 내려고 하시는 거 같지만, 잡생각이 좀 많아 보이시는데요.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이해가 안 된다.

백신현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여전히 대단치 않다. '마력을 축적하는 코어가 없다'는 소문하고는 다르게, 지금의 그에게서는 명확한 마력의 맥동이 느껴지고 있었지만, 그 크기는 결코 크지 않았다.

일반인보다 조금 나은 정도, 그게 전부다.

겨우 그 정도의 마력으로 초일류 모험가의 창술이 가로막힌다는 게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한계를 가늠할 수 없는, 끝이 보이지 않는 압도적인 전투 기술.

문득 그의 시선에는 백신현이 아니라 루이스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얼굴도 목소리도, 성격마저도 다른데, 신기하게도 서로 다른 두 사람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스물 셋의 나이로 40대 중반의 특급 모험가를 몰아부치던 그 천재 소녀의 모습이.

'이쪽도 '특급'이다. ……그야말로 '특급'의 영역에 있는 전투 기술.'

믿을 수 없지만, 백신현의 전투 기술은 일류 모험가인 그의 수준을 몇 단계나 뛰어넘은 영역에 서 있었다.

그러니까 압도적인 마력 차이에도 지지 않고 되려 눌러버리는 게 가능했다.

이젠 인정해야 한다.

백신현은 자신이 힘을 조절해가면서 봐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마력이 전부는 아니다.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1급 모험가이면서도, 마력의 크기만으로 상대의 수준을 가늠하는 실수를 했다.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댜.

그는 자신의 얼굴이 붉어짐을 느꼈다. 수치심. 무인으로서 할 짓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가 아주 큰 실수를 저지른 것 같군."

"음?"

"그대에게 사과하고 싶다. 나의 무례를 용서해다오."

갑작스런 그의 태도 변화에 백신현은 따라갈 수 없다는 듯 표정을 구겼다.

"갑자기 존댓말이 아니라 반말을 쓰기 시작하셨는데……, 오히려 그쪽이 절 존중해주는 느낌이네요. 기분탓인가?"

"아니, 그 말이 맞다. 지금까지 백신현이라고 하는 진짜배기 일류 전사를 상대로 힘을 조절하는 아주 큰 실례를 저지르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사과하지."

이 정도 실력을 보여준 시점에서 백신현의 합격은 거의 확정된 거나 마찬가지다. 백신현을 이 판에 끌어들이라는 란즈 가주의 명령과 지금의 이 행동은 충돌하지 않는다.

……정말로 그런가? 그는 잠시 이율배반적인 감정에 휩싸여 있었지만, 당장 일어난 투지에 의해서 그 감정은 숨겨졌다.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백신현의 경지는 그의 호승심을 뜨겁게 타오르게 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영역에 이르러 있었다.

백신현이 두 번째로 겨눈 검을 아래로 내린다. 이것이 실전이었다면 그는 이미 두 번 죽은 셈이다.

"잠시, 옷을 좀 벗어도 되겠나?"

"마음대로."

"배려에 감사한다."

그는 창을 바닥에 꽂고 그 자리에서 두 걸음 정도 물러나더니, 정장의 단추를 모조리 풀고 그대로 벗어버렸다. 정장으로 숨겨진 와이셔츠 위에는 두꺼운 쇳덩이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그것을 하나씩 떼어내서 바닥에 떨어트릴 때마다 무거운 소리가 울려 퍼진다.

저것은 단순히 무거울 뿐만 아니라, 그의 마력을 크게 둔화시키는 효력도 가지고 있다. 그런 마법이 걸려서 넘어온 물건이다.

일부러 코어를 혹독한 상황에 빠트림으로서 그 기능과 지구력을 단련하는 수행의 일환이다. 장거리 경주 선수가 고산 지대에서 심폐 지구력을 높이는 훈련을 하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후우……."

새까만 넥타이를 당겨서 풀어버린다. 그 다음에야 지면에 꽂아 두었던 창을 회수했다.

"제피로스 지방에 인물이 많다던데, 소문대로로군. 두 명의 특급 모험가 뿐만 아니라, 그대 같은 인물이 숨어 있을 줄이야."

"세상이 넓다는 걸 누군들 알겠습니까."

"세간에서 나는 현존하는 1급 모험가들 중에서도 특히 한 수 위의 실력자로 취급 받고 있다. '특급 모험가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은 1급 모험가'를 뽑는 투표에서 3위를 차지한 적도 있어. ……하지만 그 투표에 그대가 참가했었다면, 난 4위를 차지하게 되었을 거야."

창을 뽑아서 머리 위로 들어올린 그는 그 자세 그대로 창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백신현을 응시하고 있었다.

"정식으로 자기 소개를 하지. 난 스페트로식 비전창법????, 흑주영식살법????? 세외 계승자, 올리비아 크리스티느."

불현듯 창이 멈춘다. 회전하는 기세를 살려 앞으로 쭉 뻗어나간 창끝이 백신현을 향해 겨누어진다.

"그대의 검술, 부디 견식하고 싶다."

"……."

백신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검을 조용히 들어올리면서 담담하게 전투 의사를 내비쳤다.

* * *

창과 검이 부딪친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충격파가 평등하게 주위의 모든 것을 때려눕혔다.

* * *

"가주님, 올리비아입니다."

"들어오게."

란즈 가주는 여전히 무심한 표정이었지만, 어제의 모습과 구분되는 사소한 차이가 존재했다.

그는 책을 펼쳐두는 등의 산만한 행동을 하지 않고 올리비아의 모습을 똑바로 직시하고 있었다.

헝클어진 파란색 머리카락, 군데군데 뜯어진 와이셔츠. 뺨과 팔뚝을 비롯한 온갖 부분에 다양하게 발생한 생채기.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지쳐 보이는 게 눈에 보였다.

란즈 가주도 사정은 알고 있다.

그는 조용히 턱을 괴면서 질문했다.

"자네와 그 소년의 싸움은 나도 보고 있었다."

"……보고 계셨습니까."

"정확히 말하면, 보지 않을 수가 없더군. 서로의 투지가 부딪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던데."

물론, 할 일이 있어서 끝까지 보지는 못했지만.

란즈 가주는 그렇게 덧붙인 후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계속 들어놓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도대체 언제, 그 소년이 자신의 체질을 극복하고 그 정도의 힘을 손에 넣었단 말인가."

그것은 올리비아도 전혀 알지 못하는 사실이다.

이것저것 다방면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있기는 하지만, 조사하는 기간 자체도 그리 오래 되지 않은 데다가, 애초에 정보를 수집할 수 있을 만한 실력자 자체가 많지 않다.

"끝까지 보지는 못했지만, 그 소년의 실력은 1급 모험가 중에서도 최상위권인 자네의 실력과 거의 동수를 이루고 있었다. ……마력의 크기가 그 만큼 차이가 나는데 자네와 호각이라는 건 기술적으로는 거의 압도하고 있었다는 뜻이고."

란즈 가주 또한 특급 모험가, 전투의 향방을 읽는 능력은 당연히 가지고 있다.

"골치아프군. 간단하게 써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앞으로의 방침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백신현은 거의 시험을 통과했다고 봐도 무방하니까, 모험가 길드에 있는 공고는 오늘 바로 내리는 게 좋겠군. 그리고 자네는 백신현을 곁에서 감시하면서 어느 정도 친분을 쌓아두게."

머리가 아픈 건지, 란즈 가주는 집게 손가락으로 미간을 꾹꾹 주무르고 있었다.

"그가 생각보다 강해서 우리 마음대로 조종하기는 좀 어렵겠지만, 자네가 그와 꽤 친해진다면 그를 통해서 루이스 파르네제와 간접적으로 커넥션을 이을 수도 있겠지. 그것만 해도 나중에 큰 재산이 될 수 있을 테니."

"그건…… 네, 알겠습니다."

"자네도 이만 물러나게. ……아니, 잠깐만. 그 전에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말씀하십시오."

몸을 돌리려다 멈춘 엉거주춤한 자세로 올리비아가 시선을 돌린다. 단정하게 자른 청발이 흔들린다.

란즈 가주는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향해 질문했다.

"자네와 백신현 중, 어느 쪽이 이겼나?"

"……."

* * *

"어느 쪽이 이겼어?"

내가 스페트로네 별장에서 2주 동안 일하게 되었다는 게 벌써 소문으로 퍼졌는지, 루이스가 연금술사의 공방에 찾아왔다.

대략적으로 내가 겪었던 상황을 정리해서 설명해주니까, 루이스가 물어보는 질문이 이거다.

'어느 쪽이 이겼어?'

역시 싸움의 승패에 관심이 쏟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사람의 본능인가보다.

난 씩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이겼어."

"소독하고 있는데 자꾸 움직이지 마, 확 머리부터 소독약을 부어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진짜 살짝 움직인 거 뿐인데 옆에 앉아서 알코올 솜으로 소독을 해주던 연금술사 쪽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나는 찔끔했다.

하지만 1급 모험가 중에서도 최상위권으로 꼽히는 사람하고 붙어서 이긴 거잖아. 이건 좀 자랑스러워해도 되는 거 아닌가?

창을 제대로 배운 고수는 진짜로 싸우기 어려운 상대였다. 지금까지 창 쓰는 놈들하고도 몇 번씩 붙어봤지만, 올리비아의 실력은 그 중에서도 특히 대단했다.

몸 여기저기에 생채기를 입기는 했지만 최종적으로 흑주영식살법의 호흡의 틈을 파고들어간 나의 승리로 끝이 났다.

특급 모험가를 배출한 유파인 데다가 역사도 깊어서 그런가, 상당히 깊은 현기??가 느껴지는 멋진 창술이었다.

실전적이면서도 복잡하고, 그러면서도 뜻하는 바가 명확한, 역사가 깊은 유파 특유의 진한 맛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내가 창술에 입문한다 치면 그쪽 문하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금은 검술로 이미 진로를 정했고, 훌륭한 스승도 있으니까 그다지 갈아타고 싶은 마음은 안 들지만.

"……하지만 네가 그 정도로 강해졌다면, 나도 이제 슬슬 정식으로 준비해야 하나."

"준비라고?"

루이스가 중얼거린 말에 무심코 질문했다.

녀석은 자신의 혼잣말이 샜다는 걸 눈치챘는지 별 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그거 있잖아, 그거. '공략'을 위한 준비라는 거야. 나 혼자라면 몰라도 네가 그 상태에서 조금 더 강해지면 나도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할 수 있거든."

루이스가 한쪽 눈을 감으며 말했다.

"특급 모험가 제도가 왜 만들어졌는지는 너도 알고 있잖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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