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30화 (30/287)

〈 30화 〉 5. 개와 왕자 (3)

* * *

"도대체 누가 그래요? 금시초문인데."

"그러십니까?"

내가 모르는 곳에서 그런 소문이 퍼지고 있었던 건가. 짜증이 나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다.

물론 내가 루이스보다 약한 건 사실인데 그건 루이스가 너무 강해서 그런 거고, 발목을 붙잡을 정도로 덜 떨어진 건 아니라고.

지금 내가 있는 4급 모험가도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오를 수 없는 자리다. 자격증을 제시하면 감탄사를 들을 수 있는 등급이라 이거다.

비록 면접에서 어이없이 떨어지긴 했지만 상급 모험가 검정 시험에 있던 위험한 관문도 죄다 뚫고 올라갔었고.

역시 마력이 없는 체질이라서 얕보이는 건가? 그것도 이제 다 옛말이지만 어디에서 그 사실을 떠들고 다니지는 않았으니까.

나는 칫, 하고 혀를 차면서 살짝 시선을 흘겼다.

도대체 어떤 개새…… 아니, 이상한 놈이 그런 헛소문을 퍼트리고 다니는 거야?

"헛소문이에요, 헛소문. 그쪽도 아셨으면, 다른 사람들한테 그렇게 좀 가르쳐줘요. 제가 루이스의 약점이니 어쩌니 하는 건 완전 개소리라고."

"……그러십니까?"

청발의 남자는 고개는 끄덕였지만, 어째 좀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대답하는 목소리에 영혼이 없다.

도대체 얼마나 소문이 퍼져 있는 거지.

이거 빨리 상급 모험가 자격 검정을 따든가 해서 이 소문을 좀 잠재우는 편이 좋을 거 같다.

아니, 애초에 4급 모험가도 약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모자란 등급이 아니라고.

에라이, 진짜.

"……뭐, 이 이야기는 이쯤 하고. 그쪽은 왜 이런 험악한 곳에 오신 겁니까? 아는 사람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네. 자세한 건 말씀 드리기 좀 어렵지만, 그렇습니다."

나는 그 대답을 듣고 눈을 가늘였다.

면회실로 가기 전에 지나친 카운터에서, 슬쩍 훔쳐본 환자 명부의 이름이 하나씩 떠오른다. 보고 싶어서 본 건 아니고, 활자가 눈가에 잡히니까 살펴보지 않고선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좀 호기심이 강한 성격이라서.

스쳐 지나간 기억을 조금씩 되짚어 나가던 도중, 나는 문득 들어오기 전에 써야 하는 명부의 이름 속에서 '스페트로'라고 쓰여 있던 부분을 떠올렸다.

제피로스 정신 병원에 면회를 오기 위해서는 날짜와 시간, 방문자 이름과 방문 대상 이름을 써야 하는데, 방문 대상의 이름이 쓰여 있는 곳에서 그들과 같은 성 '스페트로'가 쓰여 있었던 것 같은……

제 12위의 특급 모험가, 란즈 드 스페트로와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이 이 정신 병원에 수감되어 있는 건가……?

"상대방 측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가씨, 이쪽으로."

"……."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모시는 이 '아가씨'라는 소녀는 내 앞에서 상당히 겁을 집어먹은 기색이었다. 청발의 팔소매를 꽉 틀어쥔 채 찰싹 붙어있다.

그런데 왜 이런 기분 나쁜 장소에 저런 어린애를 데려온 거지? 척 봐도 10대 중반 남짓 되어보이는, 아직 새파란 어린애 같은데.

아니 참,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지.

"혹시 제가 루이스의 약점이니 어쩌니 하는 헛소문을 퍼트리는 놈이 있다면 저한테 말하세요. 제가 잘 이야기해서, 오해를 풀어볼 테니까."

"……저희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청발의 남성은 구체적은 대답은 피하면서 몸을 돌렸다.

나는 면회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바지 주머니에 살짝 손을 집어넣었다.

『검주, 검주, 묻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요.』

'어, 왜?'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녀석이 갑자기 말을 걸었다. 머릿속에 들려온 백신아의 목소리에 조용히 대꾸하면서 나는 다음 말을 기다린다.

『저 사람, 남자 맞죠?』

'남자 맞을 거 같은데. 뭐 이상한 점이라도 있어?'

『그런 건 아닌데요…….』

본인도 아직 제대로 확신히 서지 않았는지, 살짝 말꼬리를 흐리면서 대답했다.

『검주도 아시겠지만, 마력이라는 게 원래 성별에 따라서도 파장이 달라질 수 있잖아요. 그걸 눈으로 알 수 있게 표현한 것이 마력의 색채라는 것이고.』

'그렇지.'

그 외에도 기분 상태나 컨디션, 여자의 경우 생리 주기 등에 따라서 사소한 변화는 있을 수 있지만, 베이스가 되는 색채나 파장 자체는 크게 변동하지 않는다.

내가 이쪽에 특별히 밝은 게 아니라, 이건 그냥 상식 선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저 사람 마력이 어째…… 좀 이상한 것 같은……?』

* * *

연금술사의 공방에 돌아가기 전에, 모험가 길드에 잠시 들려서 루이스를 찾아갔다.

"'템페스타 드 스페트로'라는 이름, 혹시 들어본 적 있어?"

"템페스타? 그 사람은 갑자기 왜?"

"조금 전에 제피로스 정신 병원에 다녀왔었는데, 그런 이름이 보이더라고. 스페트로는 알겠는데, 그 앞의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 거 같아서."

연금술사도 있는데 굳이 루이스를 찾아간 이유는, 특급 모험가라는 특성상 나 같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고급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금술사가 제대로 대답을 해줄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한 상태가 아니라는 점도 한몫했고.

그래서 마침 연금술사의 공방으로 가는 길에 모험가 길드가 보이기도 해서, 한 번 물어나 볼까 하는 심정으로 루이스를 찾아와봤는데……, 반응을 보면 내 느낌이 정답이었나보다.

템페스타 드 스페트로라는 이름을 들은 순간 루이스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뭐야, 아는 이름이야?"

"음, 뭐, 특급 모험가 자격을 얻고 교육을 받을 때 들은 이름이라서."

"특급 모험가와 관련이 있는 사람인가? 그런 것치고는 영 이름이 낯선데."

특급은 이 나라에서 열세 명밖에 되지 않는 최고 중의 최고들이다. 그리고 거기에 소속된 한 사람, 한 사람이 어지간한 연예인 뺨치는 인지도를 자랑한다.

내가 알기로 특급 모험가의 자리에 오른 사람은 누구 하나 예외랄 것 없이 역사책에 이름이 기록될 텐데, 나는 지금까지 읽어온 그 어떤 역사책에서도 '템페스타 드 스페르토'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다.

"그건 나라에서 작정하고 기록을 말살시켜서 그래. 특급 모험가들도 함부로 누설하면 안 되는 기밀 취급이거든."

"기밀이라."

나는 눈을 한 번 깜박인 뒤 새삼 주변을 둘러보았다.

알고 한 일은 아니지만, 나와 루이스는 모험가 길드의 옥상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곳이 비밀스런 이야기를 하기에 딱 적합한 곳인데, 내가 위치를 잘 잡은 것 같다.

"계속 이야기 해 줘. 그 사람이 도대체 무슨 인간이길래 특급 모험가들도 함부로 발설할 수 없는 건지."

"음, 일단 첫 번째 이유는 그 사람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격을 박탈 당한 유일한 특급 모험가이기 때문이야."

루이스는 살짝 몸을 틀어서 난간에 등을 기댔다.

"세 명의 특급 모험가를 죽인 살인죄로 특급 모험가 자격을 박탈당하고, 수배자 신세가 되었거든."

"세 명, 세 명이나 되는 특급 모험가를 죽였다고?"

그게 가능하기는 한 일인 건가. 특급 모험가의 강함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 입술을 비틀었다.

"응, 맞아. '템페스타 드 스페르토'는 당시 특급 모험가 중에서 1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사람이었으니까. 너도 알다시피, 같은 특급 모험가라도 상위권과 하위권의 실력 차이는 꽤 큰 편이잖아. 새로 등급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없어서 같은 급으로 묶이고 있는 것뿐."

그건 그렇다.

일단 특급 모험가 자리에 올랐다는 것부터가 일반적인 1급 모험가를 훨씬 뛰어넘은 실력자라는 뜻이니까.

겨우 열세 명 사이에서 힘의 차이가 좀 갈린다고 새로 등급을 만들기도 뭣하다.

"아무튼, 특급 모험가 세 명을 죽이는 것도 모자라서 추격하는 토벌대를 보내는 족족 역으로 전멸시키고 그러니까 모험가 길드와 정부 쪽에서도 많이 곤란했었나봐. 그래서 당시 특급 모험가를 죄다 투입해서 겨우 체포했다든가."

루이스가 검지를 들고 강조했다.

"왜, '현 1위'나 우리 쪽 '대장'도 젊었을 때 참가했었던 걸로 알고 있어. 거의 20년 전 일이긴 하지만, 그때도 그 사람들은 특급 모험가였으니까."

루이스는 현존하는 최강의 모험가와 루이스 이전의 이 도시 유일한 특급 모험가였던 사람의 이름을 입에 올린 뒤, 고개를 가볍게 내저었다.

나는 의문 섞인 목소리로 반문했다.

"그걸 정부 쪽에서 최대한 사정을 숨긴 거야? 그럼?"

"그렇지. 정부는 물론이고 모험가 길드도 흑역사로 여기고 있어서, 찾아낼 수 있는 거의 모든 자료를 파기한 걸로 알고 있어. 내가 알고 있는 건 특급 모험가 자리에 올라가고, 정부에서 교육 받을 때 배워서 그런 거고."

"그런 걸로 진짜 숨겨지긴 하는 건가……."

"나오는 책 죄다 거둬서 검열하고. 주변의 아는 사람들한테 돈 쥐어줘서 입단속 시키고…… 그렇게 20년이 지났으니까, 충분히 잊혀질 만은 하지. 신현이 너도 책 많이 읽었는데 지금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잖아."

"으음."

이해는 할 수 없지만, 이미 결과가 현실을 알려 주고 있었다.

그 방법이 통했든 통하지 않았든, 나도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게 사실이니까.

"……근데, 감옥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 정신 병원에 수감되어 있는 이유가 뭐지?"

물론 말이 정신 병원이고, 실질적으로는 교도소로 분류되는 곳이지만, 그 정도로 위험한 흉악범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곳이 있을 텐데.

"아, 그건 말야. 그 사람이 특급 모험가를 살해하고 도주하게 된 이유가 광증?? 때문이라서 그래."

"광증?"

"응. 유전병이라든가 그럴 걸. 마지막에 그가 토벌될 수 있었던 이유도, 최후의 순간 그가 맨 정신을 되찾고 스스로 코어의 운용을 중단시켰기 때문이라고 들었고. 당시의 '현 1위'나 우리쪽 '대장'도 템페스타한테는 이기지 못했으니까. 지금은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당대제일의 무적자로 꼽히는 '현 1위'와 내가 알고 있는 '제 2위'의 실력을 머릿속에서 떠올려 본다.

아무리 젊은 시절이라지만 그들보다 강한 인간이 있었다는 게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지금의 루이스조차, 그들과 대등한 영역에 서기 위해서는 최소 10년 이상의 수행이 필요할 것이다.

겨우 그 정도의 세월로 그들과 비등한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추측되는 시점에서 루이스의 재능도 보통은 아니지만.

"내가 알기로 '템페스타 토벌전'에서 코어도 파괴된 상태고, 그래서 정신 병원에 쳐넣은 거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합리적인가.

그리고 루이스는 살짝 고개를 갸웃하면서 중얼거렸다.

"근데 스페트로 쪽 가문들이 아직도 템페스타 드 스페트로하고 교류가 있는 줄은 몰랐네. 나는 당연히 흑역사라고 생각할 줄 알았는데. 아무리 전대 가주라지만."

"뭐, 전대 가주한테 이것저것 조언이라도 받으러 간 거 아니겠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루이스는 미간을 살짝 좁히며 찝찝한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애초에, 그 템페스타 드 스페트로가 광증에 걸린 상태에서 제일 처음으로 죽인 사람이, 바로 현 가주의 부모님이란 말이야."

* * *

본가에 있는 저택에 비하면 상당히 작은 편이지만, 이 정도가 딱 마음에 든다고 그는 생각했다.

본가는 사실 넓어도 너무 넓다. 처음 저택에 막 들어갔을 무렵에는 길을 제대로 외우지 못해서 헤맨 적도 드물지 않다.

스페트로 가문은 대대로 일류 무인을 배출해낸 뼈대 있는 무가?家 집안이었다.

그 무력을 바탕으로 온갖 '힘이 필요한 사업'에 뛰어들어서 닥치는대로 돈을 벌었고, 지금은 그 일대에서 따라올 자가 없는 부잣집으로 이름이 높다.

이곳은 비교적 스페트로 가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시골이지만, 스페트로 가문이 군림하고 있는 '슈라' 지방을 찾아가면 아주 먼 거리에서도 볼 수 있을 만큼 넓은 저택을 찾을 수 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의 별장도 상당히 아담한 사이즈였다. 하지만 이것도 일반인 기준에서는 평생 구경도 못할 만큼 거대한 저택이다. 언덕 하나를 통째로 깎아내서 그 부지 위에 빽빽하게 세워 올린 저택이니까.

피부를 거의 드러내지 않는 새까만 정장. 목을 살짝 덮는, 단정하게 자른 새파란 머리카락.

그는 바로 오늘, 제피로스 정신 병원에서 백신현과 마주쳤던 남자였다.

지금은 '회동'을 대비해서 이미 이 시골까지 도착해 있던 가주에게 하루의 일과를 보고하기 위해서 그의 서재 문 앞에 서 있다.

"들어오게."

가볍게 인기척을 낸 것만으로도 특급 모험가의 감각은 이미 그의 존재를 눈치챘다.

청발의 남자는 보이지 않게 호흡을 정돈한 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동서고금의 온갖 서책이 빼곡하게 채워진 서재 사이에, 체구가 작은 남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밀랍인형 같은 피부와 잿빛의 머리카락을 가진 그는 사람이 아니라 꼭 감정이 결여된 마네킹처럼 보이는 인상이었다.

도저히 무인으로는 보이지 않는 생김새지만 그 실력은 확실하다. 이 나라에서 열세 명밖에 되지 않는 특급 모험가 중, 12위에 해당하는 남자이니까.

란즈 드 스페트로.

이른바, 마창??이라고 불리는 사내다.

잿빛으로 바랜, 한때는 라임색이었던 머리카락을 등뒤로 묶어서 넘기고 눈에는 안경을 쓰고 있다.

"가주님. 템페스타 어르신을 뵙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수고했네. 어르신께서는 무탈하시던가?"

"네. '코어'의 재생도 순조롭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외출'할 수 있을 것 같으시다고."

"그런가. 어르신이 찾아오시면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군."

란즈 가주는 여전히 책에 시선을 고정한 상태였다. 보면 볼수록 무인보다는 문인에 가까운 인상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어르신께서 가주님께 전하라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음?"

대화를 나누던 도중에도 시선은 책에 고정되어 있던 란즈의 얼굴이 그 말에 움직였다.

"어르신께서 굳이 내게 전할 말이 있으시다니, 별일이군. 한 번 말해보게나."

란즈의 시선이 그를 응시한다. 그는 실수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표현하기 위해서 부단히도 애를 썼다.

"바로 얼마 전, 제피로스 정신 병원에 자신의 친구가 입원한 것 같은데, 사실 확인을 부탁드린다고 말하셨습니다."

"어르신의 친구?"

"네, 일단 제가 정신 병원의 소장에게 부탁해서 확인해본 결과, '최근'에 새로 입원한 환자는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보이드'라는 이름의 노인인데, 혹시 알고 계시는……"

"보이드라고? 그 이름이 틀림없나?"

그 말을 들었을 때, 란즈 가주는 처음으로 책을 손에서 넣고 몸을 돌려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금시초문인 이름이지만, 어쩌면 뭔가 사정이 있는 이름일지도 모른다.

갑작스런 태도 변화에 당황하면서도 그는 최대한 침착하게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본명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를 체포하는데 일조한 특급 모험가, 루이스 파르네제가 그런 이름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지금은 완전히 백치가 된 상태라서 본명을 알아내는 것도 불가능한 상태라고 확인했습니다."

"……보이드가 체포된 것도 모자라, 그를 쓰러트린 것이 그 루이스 파르네제라고? 제 13위, 말석의 특급 모험가가?"

란즈 가주에게 있어서도 익숙한 이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이제 갓 특급 모험가 자리에 올라선 풋내기임에도 불과하고 창의 길을 수십 년 이상 걸어온 란즈와 호각 이상으로 맞붙어서, 최종 판정까지 끌고 갔던 소녀.

아슬아슬하게 판정승을 거두기는 했지만, 그 판정이 상당히 석연찮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비무 내용만 따졌을 때, 확실히 몰아치는 것처럼 보였던 건 그 금발의 소녀 쪽이었으니까.

"그렇습니다. 현재 복구 공사가 진행 중인 성벽도 그 보이드라는 노인과 루이스 파르네제의 전투 중에 무너진 것이라고 소장이 보고했습니다."

성문 뿐만 아니라, 도시를 둥글게 빙 둘러싼 성벽의 4면 중 한쪽 면이 통째로 무너졌다고 표현하는 편이 더 어울린다. 지금도 수많은 인부들은 밤낮 없이 그 자리에서 성벽을 다시 쌓아올리는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처음 이 도시에 들어왔을 때부터 신경이 쓰였던 것이 사실이다.

오늘 이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사람을 풀어서 조사를 시키기는 했지만, 그들의 보고가 올라오기 전에 그가 먼저 사실을 알아내서 란즈 가주에게 보고하게 된 것이다.

"자세한 건 알 수 없지만 그 '보이드'라는 존재가 분신을 보내서 먼저 루이스의 지인을 습격했고, 그 과정에서 서로 부딪치게 된 것 같습니다. 1차전은 루이스 파르네제 쪽이 패배했지만, 후일 다시 붙은 2차전에서 그 노인을 쓰러트리고 체포하게 되었다고 진술서에 쓰여 있었습니다."

오늘 하루 동안 알아내게 된 사실을 보고하면서도, 그는 자신이 알아낸 사실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의문 속에 잠겨 있었다.

아무리 특급 모험가가 대단하다고 해도 일개 인간에 불과하다.

그런데 싸우면서 남긴 여파만으로도 성벽의 한 면이 통째로 무너지다니…….

괴물 같은 특급 모험가를 가주로 모시고 있으면서도 그 스케일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의 모험가 등급은 1급.

특급을 제외하면 최고 등급의 모험가임에도.

"……그 소녀 혼자서 쓰러트린 건가?"

"아닙니다. 진술서에 의하면 그 자리에는 '아이샤'라는 연금술사 소녀와, '백신현'이라는 다른 세계 출신 모험가도 함께 끼어 있었다고……."

"그 두 사람의 모험가 등급은?"

"연금술사 소녀는 2급 모험가. 그리고 '백신현'은 4급 모험가입니다."

그 말을 듣고 란즈 가주는 눈을 찌푸렸다.

"그 정도 수준으로는 도움이 안 됐을 거야. 오히려 방해가 안 되었다면 다행인 수준일테니까."

그와는 다르게 란즈 가주는 본인도 특급 모험가인 만큼 그 힘의 규모를 잘 알고 있다.

특급에 맞설 수 있는 건 특급 뿐.

특급 이외의 존재는 전투에서 방해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사실상 그 소녀 혼자서 보이드를 쓰러트렸다고 볼 수 있겠군. ……아무리 천재라지만 그런 일이 가능하기는 한 건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만큼, 그는 그 전투의 결과를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보이드가 운용할 수 있는 분신은 모두 해서 세 개. 그리고 각각의 전투 능력은 1급 최상위, 특급 10위, 그리고 특급 5위에 상당한다……, 그렇다는 건 최소한 그 소녀의 전투 능력이 특급 5위 수준까지 높아졌다는 뜻인데……'

그런 일이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역대 최연소 특급 모험가, 그 소녀의 천재성은 가공할 만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 천재성을 감안하더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고작 1년 동안의 수행으로 그러한 경지에 오른다는 것이 정말로 가능하긴 한 일인지.

그게 아니면 란즈 가주가 모르는 또 하나의 변인??이 있는 것인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문득 어째서 루이스와 보이드가 서로 충돌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이 불명확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루이스와 보이드가 충돌했고, 그 결과 성벽의 한 면이 없어지고 보이드가 백치가 되어서 정신 병원에 수감되었다. 이건 그냥 결과다.

애초에 그런 결과가 탄생하게 된 원인이 있을 것이다.

'……우연히 부딪쳤을 리는 없다. 보이드가 먼저 습격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이윽고 그는 보이드가 그런 수단을 불사해서라도 원할 만한 물건을, 루이스가 먼저 습득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란즈 가주도 자세한 부분까지는 모르지만, 보이드에겐 한 가지 숙원이 있다고 들었다.

진짜 주인에게 운송되던 중 사라져서, 지금은 지하 깊은 곳 어딘가에 묻혀 있을 검왕검?王?이라는 물건을 찾아내는 것이 그의 목표라고…….

그는 이 단계에 생각을 멈추고 입을 움직였다.

"루이스 파르네제가 최근에 습득한 물건 중에서, 혹시 '검'으로 보이는 물건이 있는지 확인해라."

"검……, 검을 습득한 기록이 있는지 확인하면 되겠습니까?"

"그래. 의뢰를 받고 움직였을 땐 그 과정에서 습득한 물건들도 다 기록하는 게 원칙이니까. 여러 명이 참가한 집단 의뢰라면 더더욱 기록이 상세하게 남아있을 테고."

란즈 가주는 그리고 몇 가지 사항을 추가로 그에게 지시했다.

보이드가 굳이 나서서 충돌을 일으켰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검왕검이다. 그 안에는 검왕이 생전에 남긴 깨달음의 정수가 담겨 있다고 했다.

그것이, 안 그래도 높은 천재성을 가지고 있던 루이스를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렸을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한다.

'보이드의 말에 의하면 그 검은 스스로 주인을 선택한다고 했다. 그 소녀의 천재성이라면 검에게 인정 받았을 가능성은 충분해.'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오싹하다.

1년 전, '회동' 이후 공개적으로 벌어진 비무에서, 그는 그날 처음으로 '회동'에 참가한 소녀와 검을 겨룬 적이 있었다.

최종적으로 심판의 판정에서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다음 번에는 틀림없이 패배할 거라는 확신을 느꼈다.

공전절후한 무신??의 재?.

그 소녀는 비무 속에서 합을 한 번 겨룰 때마다 새롭게 거듭나는 것 같았다.

한 인간의 그릇으로는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재능을 품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더, 마지막으로 지시할 게 있다."

"말씀하십시오."

"백신현, 그 소년을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고 싶다. 그 소년은 루이스 파르네제의 유일한 약점이야. 이 일에 끌어들여서 아군으로 삼든, 인질로 잡든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겠지."

그 자신은 부정하고 싶을지 모르지만, 란즈 가주가 보기에 루이스와 친밀한 사이이면서도 마력을 쓰지 못하는 체질의 그는 약점이 없을 것 같은 특급 모험가의 유일한 빈틈처럼 보였다.

"그 소년의 몽타주를 줄 테니까, 자네는……"

"아니오. 괜찮습니다. 바로 조금 전에 제피로스 정신 병원에서 그 소년과 마주쳤었습니다."

"재미있는 우연이군. 루이스 파르네제의 부탁으로 보이드의 상태를 확인하러 갔던 건가?"

란즈 가주는 가장 합리적인 방향으로 결론을 도출했다. 실제 등급은 4급. 그리고 마력조차 가지지 못한 소년이 굳이 제피로스 정신 병원을 찾았다면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이게 전부이니까.

"자네가 보기에는 느낌이 어땠지? 그 소년의 인상은."

"키는 큰 편이었고, 몸은 상당한 수준으로 단련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마력의 기척은 희미하게 느껴졌는데, 이게 그 자신의 마력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마력인지는 구분하기 어려웠습니다."

"마력이 기척이 느껴졌다……, 다른 사람의 마력인가? 아니면 마력을 발산하는 장신구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이건 나중에 추가로 확인해봐야 할 부분인 거 같군. 그리고 그 이외의 인상은?"

"그 이외의 특이점은…… 그래, 걸음걸이에서 빈틈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호흡도 상당히 안정적이어서, 높은 수준의 기술을 체득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노란색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최대한 기억나는 점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마력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정도였지만 마력을 제외한 요소로 보면 오히려 그보다도 수준이 높다. 신체의 단련 정도는 물론이고, 걸음걸이나 호흡법 같은 그 외적인 부분까지도.

란즈 가주의 결론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의 강함에 자부심을 가질 정도는 되어 보였다.

4급 모험가 백신현.

하지만 사실, 마력 없이 그 정도 수준에 이른 시점에서 그의 전투 기술은 높이 평가 받아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군. 마력은 못 쓰지만, 그 이외의 요소는 모두 단련해두었다는 건가. 루이스 파르네제도 검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마 그 소녀의 기술도 배워두었을 가능성이 높고."

어느 정도 사실을 파악한 란즈 가주는 잠시 손을 쥐었다 펴면서 뚜득 소리를 냈다.

"그럼 이렇게 하지. 모험가 길드에 의뢰 광고를 하나 내주게. '회동'까지 앞으로 2주 동안 이 지역의 검술을 딸아이에게 가르쳐줄 사람을 구하고 있다. 보수는 높게 잡고, 최저 라인은 4급 모험가 이상으로 해서."

그리고 란즈 가주는 범위가 넓은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백신현을 지정하는 듯한 조건을 몇 가지 추가로 제시한 후 이야기를 끝마쳤다.

그는 백신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모험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이 정도 조건과 이 정도 난이도에 이렇게 후한 보상이 걸린 의뢰는 드물다.

높은 확률로 백신현은 이번 의뢰에 걸려들 것이다.

"오늘은 딸아이를 데리고 어르신을 만나러 가느라 고생 많았네. 이제 그만 들어가게나."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가주님."

고개를 숙인 뒤, 방을 나와서 별장의 복도를 걷는다. 그대로 몇 걸음 걸어가다가 문득 멈춰선다.

그는 복도의 벽에 비스듬히 몸을 기댄 채, 낮은 한숨을 토해냈다.

"……지치는군."

억지로 만든 굵은 목소리가 아닌, 자기 자신의 목소리로.

* * *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지금의 나는 백수다.

회동이고 나발이고 어차피 특급 모험가도 아닌 내겐 하나도 관계 없는 이야기고, 지금은 일단 돈 나올 구멍을 찾아내는 게 급선무다. 벌어둔 돈이 없는 건 아닌데, 이대로 까먹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이제야 겨우 통증 없이 걸을 수 있게 된 연금술사를 뒤로 하고, 잠시 모험가 길드를 찾았다. 괜찮은 의뢰 있으면 좀 찾아서 하고 그래야지.

연금술사는 "차라리 정액 한 병당 내가 얼마씩 쳐서 돈을 주는 건 어떨까"라고 말했지만, 그런 걸 돈 받고 거래하기 시작하면 진짜 끝장날 거 같으니까 거절했다.

돈 받고 정액을 내주는 건 뭐야, 무슨 창놈도 아니고.

그런……, 데…….

뭐지? 어째선지 사람이 웅성웅성 거리면서 모여있다.

『뭘까뭘까. 검주, 저희도 한 번 뭔지 보기나 해 보죠.』

"알았어."

지나갑니다, 지나가요. 모여있는 인파 사이를 해치고 앞으로 나아간다. 의뢰서가 걸려있는 게시판 앞에 이렇게까지 사람이 몰려 있는 건 진짜 처음 보는 거 같다.

그리고 게시판 앞에 걸려 있는 의뢰서의 정체를 확인했다.

내용 자체는 평범한 가정 교사 의뢰였다.

조건은 꽤 까다롭지만, 보수가 매우 좋다. 거기다가 조건을 빡세게 걸어 놓은 것치고는 심하게 어려운 의뢰도 아니고.

내일 낮 12시까지 신청을 받고, 시험과 면접을 통과해서 검술을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을 뽑는다.

다른 의뢰처럼 선착순으로 잡고 바로 진행하는 건 아니라서 면접에 떨어질 가능성도 있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후한 보수다.

『괜찮네요. 재미있어 보인다.』

'역시 그렇지?'

나는 의뢰서를 뚫어져라 쳐다본 끝에 아래 쪽에 쓰여 있는 신청 주소를 찾아냈다.

프란체스코 가, 221번지.

스페트로 가문의 별장이 있는 장소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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