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 5. 개와 왕자
* * *
"후."
검은 런닝에 헐렁한 청바지 차림의 나는 땀에 흠뻑 젖은 얼굴로 스패너를 손에 쥐고 있었다.
현재, 나는 연금술사의 공방 바로 옆에 있는 그녀의 개인 창고에 있다.
내가 지금까지 하고 있던 작업은 어느 정도 공간이 확보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멀리 가기도 좀 그렇고, 3일째 컨디션이 안 좋은 연금술사를 가까이에서 케어하기 위해서 이 위치를 선택했다.
나는 지금 창고의 바닥에 커다란 천을 펼쳐서 그 위에 각종 공구를 늘어놓은 상태였다.
공구나 부품을 쉽게 구분할 수 있는 새하얀 천 위에 한 자루의 검이 놓여있고, 나는 그 주변에 마력석을 통한 소형 에너지 발생장치나 전극 따위를 배치한 상태였다.
바로 옆에는 산더미 같은 서류가 쌓여있다. 예전에 연금술사가 내 체액 속에 남아있을 마검의 마력을 조사하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이건 그때 만들어두었던 마력의 파형을 기록한 것이다.
마력의 파형은 타인에게 읽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무수히 많은 고유의 마력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여기에 있는 서류는 연금술사가 그 파형을 분석하고, 분석하고, 또 분석하는 과정에서 나온 기록지들이다.
얼마 전에, 연금술사가 말했었다.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작업을 캔슬하고 이 검의 조사에 온힘을 다 쏟는다고 해도 제대로 구조를 해석해낼 자신이 없다고.
그 정도로 내부 구조가 복잡한 물건이라는 뜻이다. 사실, 이렇게 파형을 기록한 기록지가 있어도 검의 구조를 뜯어보기는 어렵다. 연금술사는 물론이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때, 나는 이미 한 번 검의 파형을 분석하고 그 기능 중 일부를 혼란시켰던 어느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보이드. 그와의 싸움은 내게 있어 이제까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하고, 괴로운 것이었다.
솔직히 그때의 싸움을 떠올리기만 해도 아릿한 환통이 올라올 지경이다. 최근 며칠 동안에는 그와 싸우는 꿈만 꿨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남자는 지하의 공간에서 의도적으로 검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공간을 세팅하고, 그것도 모자라 특수한 방울까지 준비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그 방울은 으깨져서 이미 없지만, 그가 지하 공간에 새긴 술식은 아직 흔적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뒤, 곧바로 그 지하 공간으로 돌아가서 벽째로 뜯어온 것이 바로 이 돌조각이다.
손바닥 만한 크기의 돌조각 표면에는 그가 남긴 술식이 칼으로 새겨져 있다.
연금술사가 남긴 기록지를 통해서 패러미터를 확인하고, 보이드가 남긴 술식을 분석해서 구성 요소를 추출했다.
그리고 지금은 온갖 방식으로 긁어모은 모든 수단과 정보를 동원해서 검에 전극을 연결시킨 채 소형 에너지 발생장치를 스패너로 끼익 끼익 돌리고 있었다.
마력석에 반응하는 특수한 재질의 두꺼운 나사를 자리에 박고, 그것을 스패너로 조금씩 돌려가면서 출력을 조절한다.
눈으로 보고, 촉감으로 느끼면서 제육감을 통해 마력석과 검이 자연스럽게 방출하는 마력을 동조시켜나갔다. 그러던 중, 여기다 싶은 감각이 느껴졌을 때 스패너에서 손을 떼고, 마력석에 연결한 스위치를 눌렀다.
펑──!!!!
"우왁?!"
나는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으면서도 소리를 지르면서 얼굴을 가렸다.
마력석이 폭발하면서 발생한 검은 연기가 좁은 창고 안을 가득 물들였다. ……이것만 보면 영화 속의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으레 그러하듯 멋드러지게 실험에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다르다. 이런 현상이 발생해야 오히려 정상이라고 볼 수 있다.
검이 지속적으로 발산하는 마력과 마력석이 발산하는 마력이 일시적으로 동일한 수치로 동조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 결과물이다.
무리한 피드백의 결과, 비싸게 얹어주고 구한 마력석은 파괴되었지만 처음부터 파괴될 걸 전제로 사온 물건이라 정신적 충격은 심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살짝 속이 쓰리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것도 참고 넘겨야 진짜 모험가인 거다.
"콜록, 콜록. 후우……"
창문을 비롯해서 반지하에 있는 문이란 문은 죄다 열어젓힌 상태에서 환기를 시작했다. 팔과 다리, 얼굴 등에 검댕이 잔뜩 묻어서 상당히 웃긴 꼴이 되어있다.
당연히 바닥에 깔아 놓았던 천도 어디로 날아가버렸고, 세트로 있던 공구나 부품들도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다. 이거, 도대체 어느 세월에 다 치우냐.
그냥 바깥에서 할걸.
바깥에서 하면 그건 그것대로 좀 찝찝한 느낌이 들 것 같아서 여기에서 강행한 건데, 살짝 후회가 느껴진다.
모든 부품과 공구가 날아간 와중에 오직 검 한 자루만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손으로 들어올리며 가볍게 질문했다.
"기분은 어때? 백신아."
그리고 그때, 나의 검─── 백신아白??가 낮게 진동하며 대답했다.
「꽤 기분이 좋은데요. 온몸을 마사지 받은 느낌이라서 왠지 좀 시원하기도 하고요.」
지금까지처럼 내 머릿속에서만 울리는 목소리가 아닌, 진짜 현실의 목소리로.
* * *
엉망이 된 지하창고를 정리하고 나서, 한 시간 뒤.
나는 연금술사의 공방에서 루이스와 백신아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루이스는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며 검지 손가락 끝으로 검신을 쿡쿡 찔러댄다.
"……진짜네. 얘, 진짜 말할 줄 아는 애였구나."
이야기는 내게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루이스가 실제로 검의 목소리를 듣고,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현실의 공기를 진동시키면서 그것을 명확한 소리로 전달하는 검신을 바라보며 루이스는 상당히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 상태에서도 이전처럼 검주와 머릿속으로 대화하는 건 여전히 가능해요. 기능을 바꾼 게 아니라, 새로운 기능을 하나 개방했다고나 할까요.」
테이블 위에 놓인 검이 그 자리에서 몸을 앞뒤로 까딱까딱 움직이고 있었다.
이번 작업은 백신아가 내게 한 제안으로부터 시작됐다.
보이드와의 전투에서 녀석은 또 다시 뭔가를 잡아냈는지, '이렇게 하면 새로운 기능이 열릴 것 같다'라며 나를 살살 꼬셔댄 것이다.
무척이나 쓸데 없어 보이는 일이었지만, 나는 호기심이 상당히 강한 성격이라서 일단 재미있어 보이는 일이 앞에 있으면 정신을 제대로 못 차린다.
홀라당 넘어가버린 나는 연금술사와 보이드가 남긴 자료와 마력석, 그리고 나 자신의 감각을 써서 그 새로운 기능을 해금하는데 성공했다.
이건 무슨 마트료시카도 아니고, 어디에서 자꾸 숨겨진 기능이 줄줄이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심지어 그 중 대부분이 실제 전투에서는 그다지 쓸모 없는 기능이다. 도대체 검왕은 왜 이런 기능을 설계에 구겨넣은 걸까. 장잉정신이라는 게 이런 건가.
이 녀석이 '싸우기 위한 검'이 아니라 '육성하기 위한 검'이라는 걸 이런 점에서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건 그렇다 쳐도, 사람이 많은 곳에서 함부로 대화를 나누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공간도 꽤 넓은 연금술사의 공방에서 이러고 있다.
루이스는 이곳의 쌀쌀한 공기가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지만, 나는 꽤 좋아하는 편이다.
"근데 얘, 은근히 목소리 좋다."
「히히히.」
백신아가 개구지게 웃었다.
루이스는 그 웃음 소리가 마음에 들었다는 듯, 검지 손가락으로 검신을 문지르면서 살짝 미소 지었다. 그리고 몸을 옆으로 틀어서, 아직도 개인실의 침대 위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연금술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도 그만 주무시고 일어나서 한 번 보세요. 얘 진짜 신기해요."
"……으."
안색이 새파란 상태로 침대 위에서 끙끙거리는 연금술사를 보면서 루이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도대체 왜 저러시지? 어디 아프셔? 어제랑 그저께도 그랬던 것 같은데."
"글쎄다. 감기라도 걸리신 거 아냐?"
루이스가 슥 흘겨보자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시치미를 뗐다. 그래, '그때'는 나도 연금술사도 진짜 제정신이 아니었다. 지금도 살짝 후회중이다.
나는 그래도 아직 젊은 편이고, 체력에는 자신이 있어서 멀쩡한 상태지만 연금술사는 완전히 뻗어서 3일째 침대 위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체의 '강도'는 보통 사람보다 높지만, 체력을 비롯한 신체 능력은 떨어지는 편이라서 그렇다.
내가 말해도 좀 모순이긴 한데, 연금술사의 체질이 실제로 그런 것을 어쩌랴.
그녀를 저런 몸으로 만드는데 일조한 '유사 현자의 돌'은 여러모로 어중간한 물건이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아, 연금술사 선생님이요? 루이스 아씨. 그건 있잖아요……」
"넌 좀 조용히 해."
쓸데없는 소리를 할 것 같아서 내가 먼저 선수를 치고 백신아의 말을 막았다.
백신아는 그때 침실이 아니라 거실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현장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침실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만 들어도 상황 파악은 충분히 되었을 것이다.
"왜 그래?"
루이스는 조금 의문스럽게 생각하면서도 깊이 추궁하진 않았다. 그다지 쓸데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뭐, 연금술사 선생님이야 네가 알아서 간호해드리면 될 테고…… 아, 참, 그러고 보니까 너, 혹시 그 이야기 들었어?'
"그 이야기?"
이번에는 눈을 깜박였다. 정말로 우연히 떠올랐다는 듯한 얼굴로, 루이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번 '회동'은 여기에서 하게 될 예정이라던데."
"'회동'…… 이라면, 1년에 한 번씩 있는 특급 모험가들의 회의를 말하는 거지?"
회동, 보통은 모임을 뜻하는 말이지만 그 단어가 루이스의 입에서 나오면 뜻이 조금 달라진다.
현재 이 나라에 열세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특급 모험가들이 반년에 한 번 꼴로 모여서 각자가 겪었던 모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
그것이 바로 '회동'이다.
이렇게 보여도 국가에서 지원하는 공식적인 행사 중 하나다. 모험가는 전원 모험가 길드에 소속되어 있고, 모험가 길드의 스폰서는 국가.
국가의 명령에 의해서 열세 명의 특급 모험가를 한 자리에 집결시킨 뒤, 그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회의하는 모습을 대중에 공개한다. 그로써 특급 모험가의 존재를 강하게 각인시키고, 모험가들의 의욕을 고취시키는 게 목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회의가 끝난 후에는 특급 모험가들끼리 서로의 실력을 겨루는 비무도 한다.
이 비무의 결과에 따라서 1위부터 13위까지의 서열이 정해지는데, 루이스는 작년의 회동에서 12위에게 패했기 때문에 지금은 말석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음에는 반드시 이겨주겠노라며 이를 바득바득 갈던 당시의 루이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헤, 특급 모험가요? 갑자기 확 궁금해지네요. 최소 루이스 아씨 수준의 사람이 열두 명이나 있다는 거잖아요.」
"……나도 네 한계는 잘 모르지만, 네 실력이면 최소 6위까지는 거뜬할지도. 그 이상은…… 솔직히 잘 모르겠고."
루이스는 현존하는 특급 모험가 중 최연소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열세 명이나 되는 특급 모험가 중에서도 힘의 강약은 꽤나 명확하게 정해져 있는 편이다.
일단 현 1위가 당대제일의 무적자로 명성이 높고, 2위나 3위도 거기에 버금가는 괴물 같은 인간들이다.
대략 5위부터는 지금의 루이스도 비벼볼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영역이라고 보면 된다.
……실제로 제 2위의 실력을 바로 앞에서 본 기억이 있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이다. 한동안 멀리 떠나 있었지만, 본래 제 2위의 특급 모험가는 이 도시 사람이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특급 모험가가 꼭 대륙 최강자라는 뜻은 아니다. 보이드 같은 은거고수도 넘쳐나는 게 바로 이 세상이다.
특급 모험가라는 것은 양지에서 이름이 알려진 최고 수준의 고수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싸워보고 싶다.」
백신아가 황홀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