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4. 시원찮은 그를 위한 육성방법 (6)
* * *
'조금, 알 것 같아.'
검이 부딪칠 때마다 오른쪽의 반신이 저릿저릿 떨렸다. 다섯 손가락, 팔꿈치와 어깨의 관절, 그리고 힘을 버티는 등뼈까지 뜯겨나가는 기분이다.
이미 현재의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 상태였다. 마력을 통한 신체 강화 마법은 지금도 최고 출력을 유지하고 있고, 적의 흐름을 예측하고 한 발 빠르게 대응하는 예측 능력 역시 최대한 쓰고 있다.
'어째서 천변무궁류가 봉쇄되었는지.'
『검주……?』
미처 흘려보내지 못한 충격이 내 몸을 그 위치에서 뒤로 쭉 밀었다. 나의 두 발은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은 채, 타일 위에 시꺼먼 쓸린 자국을 남겼다.
보이드는, 내가 밀려나간 위치에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 위치에서 다시 한 번 검을 휘두른다. 검을 세워서 받아낸다. 버틴다. 하지만 또 다시 밀려나간다.
그리고 보이드는 내가 밀려나간 위치에 또 다시 먼저 도착해 있다. 또 다시 후려친다. 검을 세운다. 버틴다.
당구공처럼 쉴 세 없이 부딪치고 움직인다. 눈앞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에 머리가 어지럽다.
'일반적인 상태와 비교해서 대기 중 마력의 농도가 상당히 높아. 그리고 짙어. 그래서 검술을 통해 마력을 유도하려고 해도 그게 잘 안 되는 거야. 마력의 흐름에 영향력을 끼치기에는 내 검에 담겨 있는 힘이 너무 적은 거지.'
대기 중의 마력을 물이라고 비유하면, 지금의 상태는 흡사 늪과 비슷하다.
점성이 높아서 검을 휘둘러도 마력이 끌려오는 느낌이 강하지 않다.
이 상태의 마력을 유도해서, 내가 원하는 흐름으로 끌어오기 위해서는 더 강한 힘을 써서 끌어당기거나 부족한 힘을 보충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테크닉이 필요한데,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내겐 둘 중 어느 쪽도 해당 사항이 없다.
하지만, 검이 내 몸을 쓴다면 할 수도 있겠지.
지금 이 자리에서 봉인된 건, 천변무궁류가 아니라 '백신현이 쓰는 천변무궁류'이니까.
'더더욱 저 방울을 파괴해야 하는 이유가 늘어났군.'
『어, 잠깐만요. 검주. 저, 지금 솔직히 이해가 안 되는 게 하나 있는데요.』
'뭔데……?
현재의 나는 그렇게 여유로운 상태가 아니다. 모든 정신을 집중해서 공격을 받아쳐도 모자랄 판에, 이 녀석과 대화를 나누는 행위에 어느 정도 두뇌의 지분을 활용하고 있단 말이다.
조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음 속으로 대화하고 있는 것 뿐인데 그것을 목소리라고 표현하는 건 조금 이상하지만, 그런 느낌의 소리가 나왔다.
『……그럼 저는 어째서 그걸 느끼지 못한 거죠? 제 감각은 검주 이상이에요. 그런데 검주가 감지하신 걸, 제가 감지하지 못할 리가……』
'그거야, 간단한 이치지.'
『네?』
목소리에 불만이 가득한 걸 보면 조금 전부터 그게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이 녀석은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대기 중의 마력을 느끼는 감각이 발달한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공간에 이런 술수가 펼쳐지고 있는 동안 전혀 눈치채지도 못한 건 틀림없이 이상한 일이다.
'넌 눈이나 피부로 대기의 흐름을 보는 게 아니잖아.'
『으……?』
아직 배움도 부족하고, 경험도 많지 않다보니 이런 쪽으로는 이해력이 조금 느린 거 같다. 나는 보이드가 펼친 초고속의 12연격을 하나 하나 필사적으로 피해나가면서 대답했다.
'네겐 시각이나 촉각으로 사물을 판별할 수 있는 수단이 갖춰져 있지 않아. 네가 다른 사물을 파악하고,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초음파를 반사시켜서 사물을 판별하는 박쥐처럼 마력을 지속적으로 방출해서 시각과 촉각 등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지.'
2격, 3격, 4격. 뭐야, 이 기술…… 공격이 이어질 때마다 검이 분열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는 건가? 빠른 속도에 의한 분신? 그게 아니면, 마력을 통한 일시적인 마력검의 실체화인가?
7격째, 나는 몸을 뒤로 던지고 바닥을 뒹굴면서 그 공격을 피해냈다. 8격은 체조선수처럼 관성을 이용한 덤블링으로 흘려보낸다.
바득, 하고 이를 갈면서 나는 마음 속으로 소리쳤다.
'그런 원리라면 이 공간에 존재하는 마력의 대역??을 조절해서 네가 감지할 수 없는 마력의 흐름을 만드는 것도 가능해. 개피리라고 알지? 인간의 가청역에서 벗어난 소리를 내서 개만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내는 물건도 있어. 그것과 비슷하게, 마력의 파장을 조정해서 네가 위화감을 느낄 수 없는 흐름을 만들어낸 거지.'
『……그런, 말도 안 되는……』
'하지만 아직 준비 시간이 부족했는지, 네가 감지할 수 없는 마력의 대역을 준비한 게 전부인 거 같군. 여전히 소리는 잘 들리고, 내 얼굴도 잘 보이잖아. 그렇지?'
준비를 끝마치기 전에 치는 게 정답이었다.
여기에서 더 시간을 끌었다면 도대체 어떤 수단으로 우리를 습격했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는 어쩌면, 나보다도 검을 잘 알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다르다.
보이드가 검을 수치와 데이터로 알고 있다면, 나는 검이 가지고 있는 실력을 믿고 있다.
마지막 12격. 나는 검을 휘둘러서 튕겨냈다. 불꽃이 사방으로 튀고, 나의 몸이 그 자리에서 팽이처럼 회전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네게 과제를 하나 줄게.'
『과제…… 요?』
충격이 컸는지, 조금 움츠러든 기색의 검이 조용히 질문했다.
'지금부터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마력 방출계 기술을 반복해서 사용할 거야.'
『그건, 무슨……』
'아무리 마력의 농도가 높고, 파장이 일정한 대역을 유지하도록 준비되어 있다고 해도, 내가 온힘을 다해서 마력을 방출하면 한 순간 그 견고하기 그지없는 구조가 흔들릴거야. 그럼 너도 아주 잠깐은 마력의 흐름을 느낄 수 있겠지.'
인간의 청각으로는 개피리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하지만 그 때 발생하는 초음파에 순간적으로 다른 파장을 부딪치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마력의 농도가 상당히 높은 상태라 검을 통해서 대역을 흐트러트리는 건 어려울지 모르지만.
온힘을 다해서 마력을 방출한다면 결과는 또 모른다.
아, 그래서 보이드도 마력 방출계 기술은 거의 쓰지 않고 순수 체술로만 나를 공격하고 있는 건가.
단순히 나를 괴롭히면서 죽이려는 목적이 아니라, 현재 이 공간의 성질을 알고 있기 때문에 대역을 흐트릴 가능성이 있는 마력 방출계는 자제하고, 순수 체술로만 나를 상대했다.
'너는 내가 마력을 방출할 때마다 흔들리는 마력의 흐름 속에서, 이 공간을 '이렇게 만든' 술식의 핵을 찾아줘. 이 공간은 일반적으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공간이야. 당연히, 현재의 상태를 고정하기 위해서 여기저기에 술식을 장치해뒀겠지.'
그 술식만 파괴하면 천변무궁류는 돌아온다.
당연히 쉽지는 않은 일이겠지만 검이라면 할 수 있다.
나는 아직 녀석의 정체도, 그 진짜 이름조차 모르는 상황이지만, 녀석의 실력은 잘 알고 있다.
사실 대기 중에 흐르는 마력의 흐름을 예측해서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행위에 비하면 그 정도 일은 어려운 것도 아니다.
'네가 그 위치를 가르쳐주면, 그 다음부터는 내가 한다. 하나라도 술식을 파괴하면 그 순간 천변무궁류의 봉인이 풀리겠지. 그럼 나도 쓸 수 있는 수단이 많이 늘어날 거야.'
세상에 절대적인 힘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어떤 술식, 그 어떤 마법에도 강한 점과 약한 점이 분명히 존재하고, 아주 미세하지만 파고들 수 있는 틈도 있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일은 그 아주 미세한 빈틈을 찾아내서, 파고드는 것이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저 허리춤의 방울도 파괴해주겠어. 내가 그렇게 판을 깔아준 다음에는……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하면 된다.'
『검주…… 아, 알았어요. 저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지만, 한 번 해볼게요. 아니, 해보겠습니다!』
'좋아.'
나는 검을 단단하게 감아쥐며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시작하자, 파트너."
* * *
그는 지금까지 도대체 몇 번이나 바닥을 굴렀을까. 보이드는 눈을 가늘인 채 백신현의 현재 상태를 가늠해보려다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포기했다.
이미 백신현의 육체는 인간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 꼴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검붉은 피주머니에 가까웠다. 머리에서, 팔에서, 몸에서, 다리에서 무수히 발생한 상처에 의해서 혈액이 피부 바깥으로 노출되었고, 안쪽에서 젖어든 혈액에 의해 옷과 피부의 경계도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팔'은 갈기갈기 찢어진 근섬유와 혈관, 그리고 조각조각 부서진 뼈를 한 데 모은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다리'는 닳아 없어지기 직전인 관절과 끊어진 힘줄, 너덜너덜해진 인대가 엉망진창으로 뭉친 핏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시체처럼 그 자리에 서 있다. 하지만 피로 절은 얼굴 속에서도 새하얀 흰자와 검은 동공이 보인다. 팔과 다리의 말단 부분이 흠칫 흠칫 진동하면서 희미한 생명력을 드러내고 있다.
"……지독한 놈. 소리 한 번 지르지 않다니."
보이드는 정장 허벅지에 감겨 있는 가죽 벨트에서 단검을 뽑아서 투척했다. 그것을 백신현은 마치 고목처럼 몸을 흔들면서 종이 한 장 간격으로 피해버린다.
우연은 아니었다. 이미 '저 상태'로 전락한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까지 백신현은 단 일격의 정타도 허용하지 않았으니까.
괴물 같은 놈, 하고 보이드는 고개를 가볍게 젓는다.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한 번 확인해볼까. 이젠 보이드도 앞으로 얼마나 더 후려쳐야 백신현을 쓰러트릴 수 있을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저 계속 후려치다보면 언젠가는 끝이 나겠지, 그런 막연한 생각으로 다음 기술에 들어갈 뿐.
장검을 두손으로 고쳐 쥔 보이드가 참격의 자세를 잡는다. 자세에 다음 행동이 그대로 드러나는, 돌격검의 자세다.
그 상태에서 강화 마법의 출력을 다리에 집중. 과하게 부풀어 오른 근육에 의해서 정장의 다리 부분이 찢어질 때까지 힘을 모은다.
'저 상태'에 돌입한 후, 백신현은 단 한 번도 먼저 공격하지 못했다. 그럴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고 표현해야 올바르다.
아마 백신현이 스스로의 다리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열 걸음도 채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 것이다.
짜고 남은 찌꺼기 같은 체력을 쪼개고, 또 다시 쪼개면서 보이드의 공격을 피하고, 흘리고, 역이용해서 버티고 있다.
이미 시체나 다름 없다.
그런데 어째서.
도대체 무엇이 지금의 그를 두 다리로 서 있게 만드는 건가.
그 이유를 보이드는 알 수 없었다.
"이제 슬슬 쓰러져라……!!"
한계 이상으로 부풀어 오른 보이드의 오른쪽 다리에서 굉음이 작렬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딛고 있던 타일이 산산조각으로 깨져서 날아가고, 그의 몸이 마치 포탄처럼 쏘아진다.
천변무궁류의 유성?에 비하면, 비교하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느려터진 속도였다. 하지만 지금의 백신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빠르고 무거운 공격이 될 것이다.
보이드는 이미 시체처럼 서 있는 백신현의 앞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때쯤 되어 백신현의 대응이 시작됐다.
고개를 든다.
아직도 죽지 않은 두 눈동자가 보이드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검으로 후려칠 생각인가. 보이드는 부드럽게 호를 그리는 검의 궤적에 신경을 집중했지만, 백신현의 노림수는 다른 쪽에 있었다.
갑자기 검을 쥐지 않은 손이 위에서 아래로 후려치는 동작을 취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저 허공만이 있을 뿐인데…….
그리고 그런 보이드의 판단은 잘못됐다.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다고 판단한 건 '그것'을 무기로 판단하지 않은 그의 자의적인 해석일 뿐. 그 자리에는 백신현의 허리춤에 매달린 검집이 걸려 있었다.
그것을 마치 동양 권법의 장법??처럼 후려쳐서 허리춤에서 쑥 빠지게 만들었다. 마력을 더한 근력으로 내려친 검집은 보이드의 일격에도 뒤지지 않는 속도로 지면의 타일에 꽂혔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아예 타일을 부수고도 모자라서 총알처럼 쑥 들어간다. 꽂힌다. 대략 1미터. 재미없을 정도로 깊이 꽂힌다.
"아……"
보이드는 경악한 얼굴로 표정을 비틀었다. 안 된다. 저 위치, 저 각도, 설마 백신현은 이미 그 자리에 존재하는 술식의 존재를……!!
소리 없는 아우성이 들려왔다.
마치 폭풍의 외침처럼 터져 나온 그것은 잘못된 방식으로 일그러지고 왜곡된 마력의 흐름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폭풍 속에서 백신현은 이미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다는 듯, 조용히 다리를 움직이고 검의 위치를 조정했다.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만 하면 이 다음부터는 마력의 흐름이 알아서 한다.
백신현의 몸이 붉게 발광했다.
그 현상의 실체는 외부에서 그의 몸을 휘어감은 마력이 고밀도로 뭉치면서 마력의 색채가 변질된 것에 가까웠다.
천변무궁류?????
제이검?二?
적赤
혜성?
제일검, 유성에 비교하면 조금 느리지만 대신 이 공격은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이것은 몸 바깥의 마력을 고밀도로 몸에 접착시켜, 갑옷처럼 두르는 기술이다. 통상의 강화 마법이 체내의 마력을 사용해서 신체 능력을 증폭한다면, 이쪽은 외부의 마력을 써서 신체 능력을 증폭한다.
당연히 인간의 마력이 아니라, 천지자연의 무궁한 마력을 끌어들여서 몸에 두르는 형태이기 때문에 그를 통한 신체 강화의 상승폭은 일반적인 강화 마법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쿵!!
이 전투 중 처음으로 백신현의 검에 보이드와 동등한 수준의 묵직함이 깃들었다. 힘을 주는 순간 전신의 근육에서 피가 새어나왔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의 정신은 현재, 환희에 가득 차 있다.
나쟈의 핵을 획득함으로서 해금된 두 번째 오의가 그의 전신에 힘을 공급한다.
카가가가가가가각!! 직각으로 세운 검이 보이드의 검을 미끄러트렸다.
"……큭!!"
하지만 통상의 강화 마법에 비해 폭발적인 상승폭을 가지고 있는 이 오의는, 그 지속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다. 최고조의 컨디션을 기준으로 잡아도 30초가 한계고. 온갖 데미지가 축적된 지금은 3초도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 전에 저 방울을 파괴해야 한다.
검을 퉁겨서 보이드의 자세를 무너트린 직후, 그는 오직 앞으로 팔을 뻗었다. 목표는 보이드의 허리춤에 걸려 있는 작은 방울.
당연히 보이드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의 검이 급격하게 방향을 틀어서, 백신현의 팔을 자르기 위해서 휘둘러졌다.
퍼걱 하는 소리와 함께 보이드의 검이 백신현의 왼팔을 찢고 나아가 뼈까지 파고든다.
하지만 보이드의 검은 백신현의 팔을 자르지 못하고 어중간한 지점에서 엉거주춤하게 멈춰 있었다.
그 찰나의 순간, 백신현은 천변무궁류의 제이검을 응용해서 모든 마력의 흐름을 왼팔에 집중시킨 것이다.
천변무궁류?????
제이검?二?
적赤
혜성?
파생식???
백
"아……"
평범한 수단이 아니다.
아니,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런 수단도 있을 수 있겠지만 보이드에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법이었다.
현대 전술의 세계에서, 완전히 새로운 전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선인들의 무수한 삽질을 통해 쌓아올린 전술과 전략은 이미 인류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영역에 도달했다.
요즘은 물을 구할 수 없는 지역에서 산에 진을 치는 행위가 미친 짓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고, 진지를 길게 지으면 화공에 쉽게 당할 수 있다는 건 상식으로 취급된다.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기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경우, 쓸 수 있는 수단은 두 가지다.
다양한 수단을 쉴 세 없이 몰아쳐서 진짜 의도를 숨기는 것과, 그리고.
상상은 하더라도, 감히 행동에는 옮길 수 없는 광기??의 영역에 몸을 맡기거나.
문득 보이드는 젊은 시절의 몸을 모티브로 제작한 분신의 싸움을 뇌리에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도 백신현은 이런 짓을 저질렀던 것 같다.
자기 자신의 몸도 하나의 장기말에 불과하다고 소리치듯이, 쏟아지는 단검 아래로 기꺼이 뛰어들었던 것이다.
백신현에게 자기애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승리를 이 손에 붙잡을 수 있다면 죽음을 제외한 모든 수단을, 자신의 몸이라도 망설이지 않고 내던진다.
상상은 해도 실제로 쓸 수는 없는 행동을 대담하게 실행에 옮긴다.
그게 당연한 것처럼.
"───잡았다."
그의 허리춤에서 흔들리던 방울이 백신현의 다섯 손가락에 붙잡힌다. 안 돼. 보이드는 반쯤 실성한 목소리로 소리치며 그의 배를 걷어찼다. 백신현의 몸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가서 멀리 있는 벽에 처박힌다.
하지만 이미 보이드의 허리에는 방울이 없었다. 피투성이가 된 백신현의 왼팔은 방울을 단단히 움켜쥐고 있었다.
벽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 처박힌 백신현의 몸이 중력에 붙잡혀서 주르륵 미끄러진다.
그의 두 다리가 지면에 닿고, 무릎에서 덜컥 힘이 빠졌다.
초점이 없는 눈동자에 의식은 느껴지지 않았다.
드디어 한계에 달한 것인가.
아니, 한계는 이미 이전에 넘어선 상태였다. 한계를 넘어서고, 또 다시 한계를 넘어서고, 또 다시 한계를 넘고, 넘고, 넘고, 넘어선 끝에, 비로소 도달하게 된 '어느 지점'에서 백신현은 드디어 의식을 잃었다.
두 무릎이 바닥에 떨어진다. 마치 주저 앉은 듯한 자세로 백신현의 고개가 앞으로 푹 숙여졌다.
기회다.
보이드는 초조한 기색으로 날듯이 달렸다. 앞으로 숙여진 백신현의 머리를 향해 검을 떨어트렸다.
"헉……!!"
그리고 다음 순간, 보이드는 보이지 않는 장벽에 부딪쳐서 다시 멀리 튕겨나가고 말았다. 정확히 나아간 거리만큼 튕겨나갔다.
주저 앉은 쓰러진 백신현의 몸을 중심으로, 반투명한 구체 같은 것이 그를 지키고 있었다.
이미 그의 왼손에 잡힌 방울은 으스러져서 원형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바로 이 때, 이 순간.
이 공간에 존재하던 모든 제약이 자취를 감추었다.
벽에 등을 기댄 상태로 주저앉아있던 백신현의 상반신이 왼쪽으로 기울어진다. 하지만 쓰러지던 그의 몸이 문득 어중간한 높이에서 멈춰섰다.
보이드의 눈에는 누군가가 그의 머리와 상반신을 부드럽게 받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고생하셨습니다, 검주.』
바로 그때, 보이드의 눈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풍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완전히 의식을 잃은 백신현의 상반신을 누군가가 조용히 받치고 있었다. 그 존재의 실루엣은 명확하지 않았지만 여기저기에서 보이는 곡선을 보면 여성으로 보인다.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흐릿한 인상의 여인이 그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마치 성자를 지탱하는 성모처럼.
부드럽게.
그것은 환술이었을까, 아니면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된 보이드의 정신이 자아낸 환각이었을까.
다음 순간 그 여인의 모습은 사라져서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대신 옆으로 쓰러져 있던 백신현의 몸이 천천히 일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그것은 이제 더 이상 백신현이 아니다.
흐릿하던 눈동자에 새하얀 빛이 들어선다.
은색의 마력 입자가 나부낀다.
"검을 들어라, 영감."
보이드가 흠칫했다.
그것은 백신현의 성대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였지만, 그의 의지로 나온 말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더 이상 의식을 유지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지금까지는 검의 제어에 들어가지 않았던 영역까지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마치 스위치가 돌아간 것 같다.
육체의 주도권을 넘겨받은 검은 의아해 하면서도 담담한 태도로 그 변화를 받아들였다.
그저 백신현의 입을 써서 하고 싶은 말을 소리 내어 발음했다.
"이 싸움은 나의 주인에게 바치는 싸움이니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