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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21화 (21/287)

〈 21화 〉 4. 시원찮은 그를 위한 육성방법 (4)

* * *

6일째 아침이 밝았어도, 출전하기 전까지 내가 해야 하는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새벽 공기를 마시면서 가볍게 스트레칭도 하고, 아침 식사도 준비하면서 평소의 루틴을 하나씩 처리해나간다.

조금씩 운동도 하고, 소화도 시키면서 전투를 준비한다.

루이스는 평소하고 크게 차이가 없다. 늘 입고 다니는 탱크톱 위에 얇은 경갑 차림이 전부.

하지만 연금술사는 오랜만에 전투용 복장으로 갈아입고 있기 때문인지, 방 안에 틀어박혀서 나올 줄을 모르고 있었다. 결국 답답함을 참다 못한 루이스가 방으로 쳐들어가서 그녀의 준비를 도와줬을 정도다.

준비를 끝마치고 나온 연금술사는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척 봐도 평소에 편한 옷만 골라서 입고 다니던 연금술사에게는 많이 걸리적거릴 것 같은 디자인이다.

평소의 연금술사가 떠오른다. 주홍색 캐미솔 위에 새까만 드레스 한 벌만 걸치고, 한 번 삘이 꽂히면 씻지도 않고 며칠씩 넘기던 모습이.

지금은 갈색을 기조로 한 프릴이 달린 수수한 드레스에 붉은색 체크무늬 케이프를 두르고, 머리에는 흰색 베레모를 쓰고 있다.

얼굴이 워낙 고급져서 저렇게 입어도 어울리기는 하지만, 이 사람의 평소 모습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 내가 보기에도 영 어색하게 느껴진다.

연금술사는 허리 부분이 펄럭이지 않게 고정하는 벨트 부분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면서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배 부분이 답답한데. 살이 쪘나. 그게 아니면 아직 안에 내용물이 들어 있어서 그런가."

잘은 모르겠지만, 배 부분이 조금 끼는 모양. 자세히 보니까 저 드레스도 상당히 오랜 세월 방치되어 있었는지 여기저기의 색채가 흐릿하게 보인다. 하긴, 내가 저걸 연금술사의 공방에서 가져왔을 때도 반쯤 짐 사이에 처박혀 있었지.

아무리 봐도 전투에 쓸 만한 옷은 아니었지만, 이 세계에서 좀 비싸다 싶은 옷은 모두 저런 식이다.

마력의 전도율을 높이는 고급 옷감을 사용해서, 마력으로 무늬를 새긴다.

저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프릴 장식 하나 하나의 디자인과 배치가 연금술사의 마법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전투용 병장으로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는 서로가 서로의 복장을 확인하면서 제대로 맞물리지 않은 곳이 있는지, 마법적으로 비효율적인 구조로 되어있는 곳은 없는지 체크한다.

세 사람 모두 문제 없음.

이제, 움직여도 될 거 같다.

나는 고개를 움직여, 보이드가 있는 방향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럼, 출발해볼까."

* * *

현재, 탐색 술식에 잡힌 보이드의 마력은 도시 바깥에 있는 숲에서 감지되고 있다. 얼마 전에 있었던 루이스와 보이드의 전투로 무너진 성벽 앞에서 공무원들이 파수를 서고 있는 게 보인다.

모험가 자격증을 신분증 대신 제시하고 통과한다.

통과하는데는 그다지 문제가 없었지만, 특급 모험가인 루이스의 얼굴을 알고 있는 공무원들은 준비를 단단히 마치고 입구를 통과하는 우리들을 바라보며 "무슨 전쟁이라도 하러 가는 건가" 하고 중얼거리고 있다.

검문을 문제 없이 통과한 뒤, 탐색 술식을 쓰는 연금술사를 따라서 걸어간다.

평소에는 기웃거리지도 않을 만큼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연금술사의 발걸음이 멈춘다.

연금술사는 두께만 해도 몇 미터는 족히 될 것 같은 아름드리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야."

"아, 저도 뭔가 좀 느껴지는 거 같은데요. 은신 술식인가? 묘한 패턴의 마력이 감지되는데."

그 말을 듣고 나도 고개를 들어서 가볍게 집중을 해본다. 정말이다. 일반적인 마력의 흐름과는 다른, 묘하게 껄끄러운 기척이 감지된다.

연금술사는 오른손에 탐색 마법을 유지한 채, 반대쪽 손바닥을 서서히 아름드리 나무를 향해 가져갔다. 손바닥이 접촉한 상태에서 마법진이 떠오른다. 나무껍질이 하나둘씩 올라오면서 벗겨지기 시작한다.

아름드리 나무의 안은 완전히 텅 비어있는 구조였다. 연금술사의 술식이 진행될 때마다 표면에 나타난 구멍은 점점 더 넓어졌다.

술식의 전개가 끝났을 때, 아름드리 나무에는 사람이 충분히 지나가고도 남을 정도로 넓은 입구가 생겨 있었다.

"이건……"

아름드리 나무의 내부에는 지하로 이어지는 통로가 아래로 길게 쭉 뻗어 있었다.

기분탓일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꼭 이 입구의 모양새가 위아래로 쩍 벌어진 괴물의 아가리처럼 느껴졌다.

"좋았어. 연금술사 선생님. 탐색 마법의 반응은 어때요?"

투지를 불태우며 주먹을 뿌득거리던 루이스가 연금술사를 슥 돌아보며 질문했다. 연금술사는 시선으로만 대답했다. 저 아래쪽에서 보이드의 기척이 느껴지고 있다고.

"좋았어."

루이스는 바위처럼 오른손을 말아쥐고 반대 손바닥에 팡 소리가 나게 부딪쳤다. 골절에 의한 후유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루이스처럼 대놓고 흥분하지는 않았지만, 손이 근질거리는 건 마찬가지다.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감정을 억제하면서 나는 침착한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상황을 확인했다.

"그럼 예정대로 연금술사 선생님은 여기에서 백업으로 대기. 저하고 루이스가 내부로 돌입해서, 최대한 빠르게 마무리를 짓도록 하겠습니다."

연금술사의 마법 기술은 오히려 루이스보다도 우수한 편이지만, 순수한 전투 능력에 있어서는 루이스는 물론이고 내게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함부로 같이 행동하는 것도 바람직한 사태는 아니다.

어차피 보이드의 전투 능력을 고려하면 나와 루이스만 함께 해도 전력은 차고 넘친다. 오버스펙이라고 해도 부족할 정도다.

그녀는 전투 후, 나와 루이스가 움직이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을 때 그것을 회수해주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포지션에 대해서는 이미 예전에 회의가 끝난 상태였다. 연금술사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긍정한 뒤, 손을 휘둘러서 나의 등허리 부분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 행위를 통해 일시적으로 자신의 손에 있던 탐색 술식을 내게로 이동시킨 것이다. 보통은 불가능하지만, 내 코어에는 연금술사의 마력도 섞여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

"알고 있어. 둘 다 어서 진입해서, 일을 끝마치도록 해. 난 길게 끄는 건 질색이니까."

"알았어요."

웃으면서 등을 돌린다.

돌입한다.

아름드리 나무가 꽤 넓었기 때문인지 둘이서 함께 지하로 내려가고 있는데도 통로가 비좁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짐승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통로 속에서 두 남녀의 발소리만이 들린다.

1분 정도 쉬지 않고 내려갔을까, 갑자기 두 사람의 발소리가 뚝 끊어진다. 나와 루이스는 거의 동시에 눈앞의 갈림길을 발견하고, 잠시 정지한 상태였다.

연금술사에게 계승 받은 탐색 술식은 양쪽 방향 모두를 가리키고 있다.

"어쩔래? 일단 둘이서 한 쪽을 같이 가 볼까. 아니면 하나씩 맡아서 가볼래?"

어차피 대답이 나올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루이스는 구태여 눈앞의 갈림길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다.

차가운 눈으로 흘기듯이 나를 본다.

"따로 갈라져서 가자."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둘이서 찢어졌다가 각개격파 당하기라도 하면 위험하잖아.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같이 가는 편이 좋을 거 같은데."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한쪽 통로로 쏠린 사이에 다른 통로에서 적이 올라와서 연금술사 선생님을 습격하거나, 아니면 우리의 등을 찔러올 수도 있잖아."

현실은 보드 게임이 아니다.

둘 중 하나는 정답이고, 다른 한쪽은 오답. 그런 식으로 편리하게 짜여 있지는 않단 말이다.

양쪽 모두가 정답일 수도 있고, 양쪽 모두에서 적이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도 틀림없이 존재한다.

"……그것도 일리가 있군. 좋았어, 그럼 네 말을 한 번 믿어볼까."

"이쪽이 먼저 끝나면, 바로 도우러 갈 거야. 너무 무리하진 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루이스는 오른쪽으로 나아가는 길 앞에 서서, 눈을 찌푸리며 나를 돌아봤다.

"특급 모험가에게 그런 쓸데없는 걱정은 필요 없어."

갈림길에서 백신현과 헤어진 뒤, 루이스는 오른쪽의 길을 일직선으로 계속 달려 나갔다.

안쪽으로, 안쪽으로, 안쪽으로.

그러다 문득 새까만 통로 끝에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도착한건가. 루이스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뒤, 전신의 감각을 하나둘씩 날카롭게 다듬기 시작했다.

기나긴 통로의 끝에 루이스가 도착한 장소는 좌우로 넓게 펼쳐진 네모난 연무장이었다. 바닥은 네모난 회색 타일이 길게 깔려 있고, 연무장의 각 귀퉁이 부분에는 시꺼먼 솥 위에서 타오르는 횃불이 보인다.

그 이외에도 여기저기에 어둠 속을 밝히는 장치가 되어 있다. 스스로 빛을 발하는 마법진도 여러 개 눈에 띈다.

"설마 이렇게 빠르게 나를 찾아올 줄이야. 그대들의 솜씨에는 늘 놀라게 되는군."

쭉 뻗은 연무대의 끝에 그 남자가 서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옷으로 통일한 남자, 보이드.

그 얼굴에서, 그 신체에서, 그리고 그의 몸을 중심으로 농밀하게 발생하는 막대한 마력으로부터 루이스는 그가 이전에 자신과 마주쳤던 존재임을 깨달았다.

"뭐야, 이쪽이 정답이었나?"

이미 한 번 자신을 거의 패배 직전까지 몰아붙인 상대였음에도 루이스는 그다지 두려워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아직 소녀 티를 벗지 못한 새하얀 얼굴에 투지가 깃든다.

그 남자는 루이스를 바라보며 대화를 원하고 있었지만, 이쪽은 더 이상 그의 말을 들어주고 싶은 생각이 없다.

어차피 알 만한 건 다 알고 있는 상황이다.

나머지는 때려 눕힌 다음에 천천히 알아가면 된다.

허리춤의 애검??을 뽑는다.

루이스는 당장이라도 보이드를 향해 달려들 것처럼 기수식을 취하다가, 문득 생겨난 의문에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아니, 잠깐만. '보이드'가 이쪽에 있다는 건, 신현이는 지금 누구와 있다는 거야?"

* * *

"이쪽이 정답인가."

깊은 통로를 질주한 끝에 나는 네모난 연무장에 도착했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지하인데도 환히 빛나고 있는 연무장의 저편에는,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

사람이 서 있어야 하는 자리에는 정확히 사람보다 조금 더 커다란 크기의 투명한 캡슐이 놓여 있었다.

캡슐 안은 파란색 수용액으로 가득 차 있고, 그 안에는 산소호흡기를 연결해서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듯한 비쩍 마른 노인의 모습이 보인다.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지만 연금술사의 술식은 여전히 저 노인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와 루이스가 한 번씩 부딪쳤던 그 보이드의 본체는 바로 저 노인이었다고.

"반갑네, 젊은 검사여."

그리고 목소리는 노인의 뒤에서 들려왔다.

투명한 캡슐의 뒤, 수용액으로 일그러져서 잘 보이지 않는 그 저편에서.

"결국, 여기까지 도달하고 말았나."

그 남자, 보이드의 모습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 모습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전히 검은색으로 통일한 그 남자는.

더 이상 청년의 모습이 아니었음으로.

지금도 수용액 속에서 둥둥 떠 있는 노인이 조금 더 체중을 불리고, 머리도 정돈하고, 옷도 제대로 챙겨 입으면 정확히 저런 모습이 될 것 같다.

바로 그때, 허리춤의 검이 낮게 진동하며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 저 사람……』

아는 사람이라도 만난 것처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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