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18화 (18/287)

〈 18화 〉 4. 시원찮은 그를 위한 육성방법

* * *

"하아아아아아아아아!!!!"

이 가상 공간에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인식이 곧 물리적인 힘이 되어 펼쳐진다.

현재, 나는 현실 세계의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신체 능력을 100% 완벽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비현실적으로 넓고, 비현실적으로 새하얀 이 공간의 특이성이 아니었다면 나도 이곳을 환상 속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진한 현실감이 검을 쥔 손 끝에서, 대지를 딛은 발끝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본래 가지고 있는 힘에 또 하나의 힘을 새롭게 추가한다.

오른쪽 가슴의 안쪽에서 마력으로 이루어진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불에 달구어진 것처럼 뜨거워진 코어는 내연기관처럼 쿵쾅쿵쾅 펌프질을 하면서 전신에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에너지를 전달한다.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근육에 비정상적인 수준의 힘이 깃들었다.

천둥번개처럼 꽂힌 횡 베기가 보이드의 몸을 반으로 찢는다.

"……후우."

반으로 절단된 보이드의 상반신이 바닥에 떨어진 직후, 나는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며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바닥에 떨어졌던 보이드의 몸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조금 전과 같은 형체가 불분명한 실루엣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오, 생각보다 쉽게 쓰러트리셨네요. 이거, 훈련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네."

"……한 번 붙어본 상대니까. 당연히 쉽지. 애초에 기술적인 수준으로는 처음 붙었을 때부터 내가 앞서고 있었다고."

그때, 그 남자의 분신을 쓰러트리지 못했던 건 나의 검으로 그의 몸에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방법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피부의 강도로만 따지면 얼마 전에 붙었던 불완전한 상태의 나쟈보다도 단단했다.

나쟈 같은 경우도 쉴 세 없이 후려치다 보면 데미지는 들어가는데, 그 남자의 경우에는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다. 통증은 느꼈던 모양이지만.

하지만 지금은 그 분신의 전투 기술을 모두 숙지하고 있는 데다가, 나쟈의 핵을 통해 마력까지 확보한 상태다.

이 정도로 판이 깔려 있는데, 못 이기면 그게 이상한 거지.

나는 피로 젖은 검을 옆으로 흩뿌리면서 한 번 털어낸 뒤, 비스듬하게 어깨 위로 기대면서 질문했다.

"그런데 너의 그 능력은 네가 눈으로 직접 본 사람만 흉내 낼 수 있는 건가?"

"네. 일단 구체화만 성공하면 그 안에서 어느 정도 능력치를 조절하는 건 가능하지만요."

"그럼 나중에 루이스와 선생님에게 부탁해서 그들이 붙은 '분신'의 능력치를 입력할 수 있다면, 조금 전의 훈련용 더미를 강화시키는 것도 가능하겠지?"

"조금 까다롭기는 하겠지만, 할 수는 있을 거 같아요."

"알았어. 나중에 한 번 물어보자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뒤 그 자리에 서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직은 요결이 몸에 제대로 붙지 않았기 때문에 집중해서 쓰지 않으면 천변무궁류를 제대로 쓸 수 없다.

조금 전에도 원래는 불완전한 상태의 나쟈를 절단했던 그 기술을 쓰려고 했었는데, 타이밍을 잘못 잡아서 평범한 횡 베기가 나온 것이었다.

천변무궁류?????

제일검?一?

하얀 유성白?

한 방향에 집중된 마력의 기류가 나의 팔과 다리를 휘어 감고 앞으로 밀어 보낸다. 그 순간 나의 몸은 질풍이 되어, 끝이 보이지 않는 하얀 공간을 눈 깜짝 할 사이에 주파했다.

"으음, 역시 검주. 배우는 속도가 매우 빠른 걸요. 가르치는 족족 귀신 같이 알아 들으시니까, 저도 가르치는 보람이 있어요."

검이 오른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새하얀 손길이 그 자신의 얼굴을 훑고 지나간 순간, 녀석은 또 다시 나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럼 다음 단계로 가볼까요? 검주의 몸으로 보여드리는 게 이해하기 쉽겠죠?"

거울처럼 마주 보고 선 녀석의 오른팔이 움직인 순간 그 손끝에 장검이 나타난다. 그것을 강하게 움켜쥔 채 특이한 기수식을 잡는다.

왼손은 다섯 손가락을 펼친 채 정면을 향하고, 검을 쥔 오른손은 끝을 내게 겨눈 상태에서 뒤로 당긴 자세.

화살을 발사하기 직전의 활시위처럼 금방이라도 앞으로 짓쳐 나올 것 같은 모습이다.

내가 알고 있는 자세 중에서 비슷한 걸 꼽으라면 검술 중에서는 없고, 오히려 당구의 큐대를 잡는 방식과 비슷하다.

"처음 보는 자세인데? 지금까지는 그런 자세 안 잡았었잖아."

"그야 지금까지는 마력이 없었으니까요. 오직 검술 하나만 가지고 대기 중의 마력을 자극해야 했으니까, 거기에 특화된 자세를 잡을 수밖에 없었던 거에요."

검의 대답을 듣고 나도 자세를 잡는다. 하지만 검의 자세를 흉내 낼 생각은 없다. 기본에 충실한 중단세. 이걸로 간다.

"형식은 지도대련이지만, 이 가상 공간에서는 아무리 다쳐도 회복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저도 최대한 가감 없이, 온 힘을 다해서 검주를 상대할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이 녀석과 직접 검을 부딪친 적은 없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가까운 장소에서 검의 실력을 관찰해왔다.

그 실력은 잘 알고 있다.

녀석은 내가 목표로 하는 검술의 극한에 다다른 존재.

지금의 나보다 최소 세 수는 위에 있다.

영광인 걸. 그런 상대가 나를 얕보지 않고 온 힘을 다해서 상대해주겠다니.

"검주는 강해요."

파앙!! 녀석의 등에서 초록색 마력이 입자가 되어 분사되었다.

"단순히 신체 능력이 우수하고, 검술의 수준이 높은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도 단 하나 뿐인 활로를 찾아내서 망설임 없이 뛰어드는 결단력.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사지가 갈기갈기 찢겨나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정확하게 파고드는 섬세함. ……그런 총합적인 '실력' 자체가 높은 겁니다."

그것은 넓은 범위로 퍼져나갔지만, 사실 물리적인 영향력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마력의 강도는 밀도에 비례하는 법.

입자의 크기로 잘게 쪼개진 마력은 산들바람 정도의 물리력을 행사하는 게 고작이다.

하지만 천변무궁류의 요결을 익힌 내게는 조금 다른 것이 보인다.

'그렇게 커다란 영향력은 아니야. 하지만 아주 조금씩, 마력의 흐름이 변하고 있다. ……검술 뿐만 아니라, 마력을 통해서 이중으로 마력을 자극하고 있는 거야.'

마력으로 환경을 세팅하고, 검술로 결과물을 펼친다. 그로써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유연한 방식으로 다양한 기술을 발생시킨다.

그리고 저 기수식은 '그러한 방식'에 특화된 자세인 거겠지.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흉내 낼 수 없는 재주다. 검술 하나에 집중해서 몰두해도 기술을 하나 성공할까 말까인 상황에서 마력까지 함께 다루면서 기술을 펼치라니, 지금의 내 수준으로는 어렵다.

마력과 검술, 어느 쪽을 소홀히 하더라도 마력의 흐름은 무너지고 기술은 펼쳐지지 않는다.

양쪽 모두를 마스터하면 기술에 들어가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비약적으로 단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갑자기 발생할 수 있는 돌발 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겠지만…….

최소 몇 년은 기간을 잡고 수행을 해야 그러한 경지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내겐 상당히 멀리 있는 과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얌전히 죽으라는 법은 없지. 없으면 없는 대로, 있는 걸 최대한 끼워 맞춰서 맞서 싸워 나갈 뿐.

"지도대련이고, 다쳐도 회복되는 가상 공간이지만 통증은 거의 비슷하게 느껴질 거에요. 위험하다 싶으면 굳이 얻어맞으려고 하지 말고, 피하세요!"

소리치면서, 달려든다.

녀석의 속도는 마력을 통한 신체 능력 증강에 의한 것이라곤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빨랐다.

본격적으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내가 나쟈와의 전투에서 마력의 흐름을 쿠션으로 삼았던 것처럼, 녀석은 그 흐름을 속도에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큰 차이는 아니었지만 대수롭게 넘겨서는 안 된다.

사소한 차이 하나 하나가 모여, 생존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가 되니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검과 검이 부딪치고 무형의 충격파가 원형으로 퍼지면서 전신을 때린다. 마력의 흐름을 장악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을 텐데도 군더더기가 거의 보이지 않는, 기술 그 자체로도 일류의 경지에 도달한 찌르기였다.

"큭!"

검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거의 없었다. 찌르기, 올려베기, 대각베기의 연계가 실로 꿴 구슬처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그 공격에 맞서기 위해서는 나도 망설임 없이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신체 능력은 동급. 내가 녀석의 공격에 대항하는 검식을 제때 끌어낼 수 있다면 아무리 복잡한 연계라도 반드시 걷어낼 수 있다.

캉! 캉! 캉! 캉!

마치 서로가 이미 합을 정해두고 부딪치는 것 같다. 서로의 검이 망설임 없이 정확한 궤적에 정확하게 파고들어, 서로를 때린다.

봐주고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서로가 미리 짜맞춘 것처럼 공격이 부딪친다는 건 상대방의 다음 수를 읽는 서로의 능력의 거의 호각이라는 뜻이다.

서로 동등한 영역에서 상대방의 다음 수를 읽고 그것에 가장 적합한 수를 뽑아낸다.

그렇기 때문에 충돌한다.

동등한 영역에서 읽어내지 못했다면 이미 둘 중 하나는 쓰러지고도 남았을 공방이었다.

"음, 역시 검주에게 제 밑천을 보여준 게 너무 컸나요? 이런 식으로 다 막힐 줄은 몰랐는데."

"……."

그렇다. 내가 녀석과 대등한 영역에서 합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 내가 녀석의 검술을 누구보다도 가까운 위치에서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수한 경지는 녀석이 훨씬 높을지도 모르지만 다음 순서로 날아올 공격을 미리 알 수만 있다면 대응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다.

마력의 흐름이 느껴진다. 마력과 검술을 통해 사람의 의지로 제어된 천지자연의 마력이 녀석을 중심으로 불고 있다.

"흥이 나는데요. 이런 식으로 바로 기술을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질풍이 일었다. 녀석의 두 다리는 더 이상 지면에 붙어있지 않았다. 등 뒤에서 불어온 질풍이 소용돌이치며 녀석의 몸을 앞으로 밀었다.

온다. 잔상조차 남지 않을 만큼 재빠른, 초고속의 일참一?.

천변무궁류?????

제일검?一?

하얀 유성白?

"───!!"

피할 수 없다. 물론 막아내는 것도 불가능. 검을 들어서 막으려고 해도 함께 절단될 게 뻔하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천변무궁류의 제일검을 받아낼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뿐.

그러니까 지금부터, 현재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식?을 적용한다.

마력이 흐름이 불었다. 초록색 입자가 흩어지면서 소용돌이치는 마력에 호응하듯 맹렬하게 회전한다.

질풍이 나의 등을 밀었다.

천변무궁류?????

제일검?一?

하얀 유성白?

쾅!!

불꽃이 튀고, 질풍과 질풍이 서로 부딪치면서 사방팔방으로 초록색 입자가 흩어진다.

그리고 그 충격의 중심에서.

"……호오?"

우리는 서로의 검을 마주댄 채, 그 자리에서 힘을 겨루고 있었다.

입이 멋대로 움직인다.

"솔직히 말해서, 너의 그 멀티태스킹 능력은 지금의 내겐 머나먼 경지야. 마력하고 검술을 동시에 다루기 위해서는 아주 오랜 시간의 수련이 필요하겠지."

마치 트릭을 밝히는 마술사처럼.

"하지만 그렇다고 나의 마력으로 대기 중의 마력의 흐름을 건드리지 말라는 법은 없어."

"아하,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검이 입맛을 다시는 짐승처럼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멀티태스킹이 안 된다면, 싱글태스킹을 번갈아가면서 하면 된다. 그렇지?"

혹은, 자신이 발견해낸 풀이 방법을 자랑스럽게 늘어놓는 어린 제자처럼.

"마력과 검술을 '같이 써서' 대기 중의 마력에 간섭하는 게 아니라…… '마력으로 자극하는 게 유리한 국면'에서는 마력으로 대기의 흐름에 간섭하고, '검으로 자극하는 게 유리한 국면'에서는 검으로 대기의 흐름에 간섭하는 거지."

지금의 내가 할 수 없는 건 어디까지나 마력과 검술을 동시에 써서 마력의 흐름을 장악하는 것 뿐이다.

검술이나 마력, 둘 중 하나에 완전히 집중하면 마력의 흐름에 간섭할 수는 있다.

그러니까 아예 생각을 바꿨다.

대기 중에 떠도는 마력의 흐름은 지극히 예민하고 복잡하여, 때때로 '검술로 자극하는 게 유리한 부분'이 있고, '마력으로 자극하는 게 유리한 부분'이 있다.

머릿속에 스위치를 하나 두고, 마력의 흐름의 상태에 따라 검술과 마력 중 좀 더 효과적인 기술을 그때마다 취사 선택해서 자극한다.

물론 복잡하게 흔들리는 마력의 흐름은 그때그때 최선의 자극을 주는 방식이 달라진다. 당연히 스위치를 교체하는 속도도 그에 맞춰 어마어마하게 빨라야 한다.

그렇게 따라잡았다.

조금 늦었지만, 아슬아슬하게.

캉!!

나와 녀석이 서로 반발하는 자석처럼 멀어진다. 검과 검의 충돌 사이에서 불꽃이 튀었다.

스위치를 바꾼다.

검술이 유리한 국면.

나는 검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도 검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대기 중의 마력의 흐름을 자극했다. 동시에 비어 있는 다른 손으로는 불꽃을 네다섯 개 만들어서 투척한다.

이 과정에서 마력의 흐름이 또 다시 변동한다. 마력이 유리한 국면이다. 스위치를 전환. 검술을 중단하고 마력으로 자극한다.

천변무궁류가 어려운 이유는 복잡다양한 전투 속에서도 마력의 흐름을 일일이 계산하면서 공방을 나눠야 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런 작업을 검과 마력을 동시에 써서 하라고? 지금 내 실력으로도 그건 못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얌전히 안 된다고 받아들이는 건 내 취향에 맞지 않다.

그러니까 떠올렸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내게 특화된 전술을.

"안 되겠어요. 조금 이르지만, 검주가 다음에 배워야 하는 기술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바로 그때 녀석은 몸을 뒤로 물리면서 검을 역수로 고쳐 쥐었다. 분위기가 변했다. 뭐지? 지금까지의 흐름과는 전혀 다른 흐름이 느껴진다.

'하얀 유성의 느낌이 아니야.'

그것과는 다른 새로운 기술이 온다.

그때, 녀석의 등 뒤에서 분사하던 마력의 색이 변했다.

초록색에서 붉은색.

……마력의 색채는 그 사람의 성별이나 체질, 인종, 혈액형 등 다양한 요소가 겹쳐진 끝에 발현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 번 결정된 마력의 색채가 달라지는 일은 거의 없다.

갑작스럽게 체질이 달라지거나, 마력의 색채가 달라질 만큼 어마어마한 자극이 주어지지 않고서는.

천변무궁류?????

제이검?二?

적赤

혜성?

빠르기 자체는 유성과 비교했을 때, 그보다 조금 느린 정도였다.

하지만 일격에 그치는 유성과는 다르게 이 공격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쉴 세 없이 몰아치는 기술이다.

처음 공격은 피했지만 끊어지지 않는다. 녀석의 몸뚱이 자체가 질풍이 된 것처럼 속도를 거의 잃지 않고 방향을 바꾸어, 또 다시 품 안에 파고든다.

녀석이 지나간 자리에 오렌지색 꼬리가 길게 이어졌다.

마치 붉게 빛나는 혜성처럼.

"……!!"

붉은 궤적에 한 순간 시선을 빼앗긴 게 치명적이었다.

대응이……, 늦었다.

* * *

"……야, 그건 반칙 아니냐? 지도대련이라며. 지도대련에서 머리에 피가 좀 올랐다고 사람 팔을 뎅겅 날려버리는 놈이 어디 있냐."

나는 바닥에 대자로 쓰러져 있었다. 정신적인 피로도 크고, 한 번 잘려나갔다가 다시 붙은 팔에서 올라오는 환통 때문에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덧붙여, 왼팔 하나로 끝났던 것도 내가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대응을 성공했기 때문이다. 진짜 꼼짝도 못하고 그 자리에 있었다면 팔이 아니라 내 상반신과 하반신이 이별했겠지.

다시 붙긴 했겠지만.

"힘조절에 실패했어요……. 면목없슴당."

내 거죽을 뒤집어 쓰고 있던 걸 그만두고 제일 처음의 인간형 실루엣으로 돌아온 녀석은 무릎을 꿇은 채 벽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거 보통 사고 친 강아지들이 하는 거 아닌가.

나는 그 뒷모습을 잠시 흘긴 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이 뻗어있는 하얀 세상의 천장을 노려봤다.

"근데 야,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네, 네! 뭐든 말하세요!"

녀석도 자기 잘못을 알기는 아는 모양인지 목소리가 제법 절박하다. 이거 조금만 더 살살 달래면 보증도 서줄 것 같은 느낌이다.

"갑자기 생각난 건데, 검왕에 대해서 평가하는 학파 중에는 검왕을 오히려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거, 알고 있어?"

"어, 그게 무슨 뜻이에요?"

"검왕에 의하여 '무공과 마법의 경계가 흐릿해졌다'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거든."

"……아, 그건 그럴 수 있겠네요."

"주류하고는 거리가 먼 마이너한 학파들의 이야기고, 난 무공의 순수성이고 나발이고 신경 안 쓰는 성격이긴 하지만…… 오늘 너하고 싸우면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이거, 진짜 마법하고 비슷하긴 하구나, 하고."

마법의 주문과 수인手?을 검술로 대체한 느낌일까. 물론, 검술이 메인인 만큼 실전성은 압도적으로 높은 편이지만.

"하지만 검왕은 현대 무공의 역사 속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위대한 무인으로 여겨지고 있지. 그래서 갑자기 궁금해진 거야. 고금제일인을 꼽으라고 하면 언제나 첫 손가락에 드는 검왕이, 어째서 무?가 아니라 마법에 좀 더 가까운 형태의 무공을 개발했는지."

물론 이건 내게 있어서는 전혀 쓸데없는 정보이다.

검왕이 무슨 목적으로 이 무공을 개발했고, 그 개발 과정에서 뭘 참고하고 뭘 흉내 냈는지는 알 필요가 없다.

현대의 기준으로도 천변무궁류는 천하무쌍의 일대절학이다. 그거면 내겐 충분하니까.

그러니까 이건 실리 따위의 요소를 모두 무시한, 모험가로서의 순수한 호기심에 가까웠다.

"……어? 잠시만요, 검주."

"뭐야?"

녀석이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새하얀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쥔 채, "어?" "어?" 하고 고개를 흔들어댄다.

"지금, 검주가 하신 말을 어디에서 들어본 거 같아요!"

"어디에서 들어봤다고? 넌 만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지층에 처박혔었다며?"

"그러니까요. 제가 지층의 처박히기 전에 있었던 그 짧은 기간 동안, 비슷한 말을 들어본 거 같은…… 아."

한참 동안 고개를 움직이던 검의 움직임이 갑자기 쩍 굳었다. 뭔가 생각난 건가?

"생각났어요!"

"……그래, 누구한테 들은 말인데?"

어차피 쓸데없는 말이겠지. 이 녀석이 이렇게 호들갑을 떨어 댈 때마다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온 걸 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그 녀석은 속이 시원해진 것 같은 모습으로 날 보고 있었다.

이목구비가 없어서, 표정은 알 수 없지만.

"검왕! 검왕 어르신한테 들었던 말이랑 비슷해요!"

"검왕이라고?"

어차피 이 녀석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인간이 몇 없다는 걸 생각하면, 예상에서 벗어나는 이름은 아니었다.

제작은 명공 루키우스가 맡았을지언정, 이 검의 제작 기획은 모두 검왕의 손에서 나온 것이었으니까.

"네네! 이제 막 태어나서, 인격을 형성 중이던 제게 검왕 어르신이 해주시던 말하고 비슷해요!"

"……하긴, 천변무궁류의 제작자라면 이게 마법하고 별 차이가 없다는 걸 모를 리가 없겠지."

아니, 애초에 그런 걸 노리고 제작한 무공일지도 모른다.

의도적으로 마법과 유사한 형태를 띈 무공으로 제작해서 '뭔가'를 알아보려고 했을 가능성도 낮지 않다.

……근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큼큼…… '그래……. 천변무궁류는 마법과 거의 본질이 다르지 않아. 너를 이 봉인에서 해방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사실을 금세 눈치채겠지.'"

헛기침을 두어번 한 검은 상당히 굵고 늠름한 목소리로 누군가의 말을 흉내내서 말했다.

도대체 누구의 목소리를 흉내 내고 있는 걸까.

"'그럼, 얘야. 네게 한 가지 질문하고 싶은 게 있어'."

그때였다.

파직,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새하얀 실루엣 덩어리였던 녀석의 몸이 명확한 온기를 띄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형태가 불분명하게 뭉그러져 있던 발은 검은 운동화가 되었고, 피부는 조금 상기된 살구색으로 칠해졌다.

복장은 움직이기 편한 청바지에 검은 와이셔츠. 그 위에 코트의 단추를 잠그지 않고 어깨에 걸친, 고급스런 마피아 조직의 보스 같은 옷차림이다.

그리고, 허리까지 나부끼는 은색 머리카락.

녀석은 어느 세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해 있었다.

그 사실을 자각하지도 못했는지, 녀석이 길쭉한 속눈썹이 걸린 파란색 눈동자로 나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무?의 본질은 뭐라고 생각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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