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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14화 (14/287)

〈 14화 〉 3. 이세계에서 신뢰를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3)

* * *

놈이 보인다.

한 치 앞도 알아볼 수 없는 연기 속에서도 나쟈의 모습은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쭉 당긴 입꼬리 끝에서 다 삼키지 못한 욕망과 식욕이 흘러내린다.

모든 조건은 이 순간 만족되었다.

바람이 분다.

이제까지 불었던 그 어떤 바람보다 빠르고 날카로운 질풍이다. 나의 검에 이끌려, 칼끝에 걸린 마력에 이끌려, 질풍은 지금 이곳에 있었다.

질풍이 나의 등을 밀었다. 그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다. 바람을 타고, 질풍에 몸을 실어 앞으로 날았다.

『훌륭해요. 이로써 검주는 출발점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검술에는 명확한 초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력의 흐름을 조작한 끝에 나타나는 형태를 이르는 명칭은 몇 가지가 존재하는데, 내가 이 싸움 끝에 도달하게 된 일격에도 역시 이름이 존재했다.

매섭게 휘몰아치는 마력의 기류를 한 방향으로 집중해서 속도를 얻고, 동시에 육체를 감싸고 있는 대기를 밀어내서 공기의 저항을 제거한다.

『이런 식으로 한점에 집중된 마력의 결속은 사용자의 몸을 새로운 속도의 지평으로 밀어 올립니다.』

전신은 발광했다.

몸이 탄환처럼 쏘아졌다.

실제로는,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잔뜩 뭉친 대량의 마력이 햇빛에 반사되면서 특이한 색채로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이 지경에 이르면 상대의 강도나 크기 따위는 의미가 없다.

베어내지 못할 것이 없었다.

『육체는 질풍으로 변하고, 희푸르게 빛나는 육체는 지나온 자리에 하얀 잔상을 남기죠.』

노리는 건 하나. 지금까지 수도 없이 칼자국을 새겼던 뱀의 머리.

나는 오직 내가 조금 전까지 새겨두었던 흔적을 눈으로 좇았다. 빠르게 지나쳐가는 풍경 속에서, 목표 이외의 다른 것을 돌아볼 여유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너무나도 빠르게 나아간 탓이었을까. 나는 뱀의 머리를 통째로 절단하고 지나가면서도 아무런 감촉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나쟈의 머리를 지나쳐, 그 반대편에서 신발 밑창을 마찰시키면서 정지해 있었고.

조금 늦게 뱀의 머리가 비스듬히 미끄러졌다.

『그 형태를 두고 이르기를 유성?.』

검왕비전?王??

천변무궁류?????

제일검?一?

『하얀 유성白 · ?』

* * *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앞으로 쓰러진다. 나는 바닥에 짜브라진 벌레 같았다. 바닥에 쓰러진 채 꼼지락대면서 조끼로 손을 뻗는다.

환약으로 된 진통제를 입에 물고 일어선다. 고개를 들고 으적으적 씹어서 넘긴다.

머리를 잃은 나쟈의 몸뚱이가 옆으로 기울어지더니, 그대로 쓰러진다. 그뿐인 현상에도 이 일대의 대지가 또다시 한 번 뒤집어진다.

진짜 어마어마한 무게였다.

하지만 그것을 느긋하게 관찰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나쟈의 핵을 끄집어낼 때까지 나의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나쟈를 유인하기 위해서 지면에 꽂아두었던 검을 뽑아낸 후, 다시 앞으로.

핵이 있는 위치는 이미 알고 있다. 내가 잘라낸 머리. 그 이마 부분에서 심장처럼 고동치는 핵의 모습을 발견했다.

거대한 뱀은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한 채 숨이 끊어져 있었다. 뜨여있는 금안이 있을 수 없는 일을 목격한 것처럼 수축해있다.

놈은 마지막까지 자신이 패배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죽었다.

무심코 발이 꼬였다. 나쟈의 머리 위에 철퍽 쓰러진다. 이미 숨이 끊어진 뱀의 머리 안에서 거칠게 뛰는 마력의 고동을 느낀다.

이제 곧 이것은 나의 것이 된다.

하지만 그 전에.

『……검주.』

"그래, 나도 느꼈어."

해결해야 하는 일이 아직 남아있다.

검이 느낀 것을 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느끼고 있었다. 나쟈가 쓰러진 그 순간부터 속속들이 모이기 시작한 수많은 기척. 기척, 기척, 기척.

이윽고 그들은 여기에 도달했다.

몸을 돌린다. 나는 이미 포위된 상황이었다. 스무 명 남짓 되는 모험가들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그중 하나는 내가 알고 있는 남자다.

1년 전, 내가 먼저 다가가서 협력을 요청하고, 오늘 이 순간까지 같은 목표를 위해서 함께 나아갔던 남자.

아트룸 교수.

"……정말로 나쟈를 쓰러트릴 줄이야. 신현 씨의 솜씨에는 놀라기만 합니다. 마력을 쓰지 못하는 몸으로 이 정도까지……"

"음, 뭐, 여러 가지 멋진 만남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뒤에 계신 친구분들은 누구시죠? 절 돕기 위해서 교수님께서 데려오신 겁니까?"

"……."

아트룸 교수는 침묵한 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그가 충분히 생각을 하고 대답할 수 있도록 함부로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신현 씨."

노인은 근심 깊은 표정으로 나를 타이르듯 말을 걸었다.

"지금이라도 나쟈의 핵을 경매에 내서, 그걸로 돈을 벌 생각은 없으신가요?"

"……."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내 대답은 전해졌을 것이다. 노인의 미간에 새겨진 주름이 더욱 깊어진다.

"솔직히 전 신현 씨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신현 씨가 나쟈의 핵을 섭취하고 체질을 교정한다고 해도, 겨우 보통 사람 정도의 마력을 얻는 정도에서 그치게 될 것입니다."

"……."

"그런 게 의미가 있습니까? 차라리 나쟈의 핵을 팔아서 그걸로 돈을 버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일그러진 그의 눈동자 속에서 조용히 타오르는 욕망의 불꽃이 비친다.

나를 배신한 이유는 그게 전부인가.

"나쟈의 핵을 경매에 내놓기만 해도 저와 신현 씨가 평생 써도 부족할 만큼 많은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거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무도 응원해주지 않는 전사의 길을 걸어야 하는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이유라면 있어요."

아트룸 교수의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노려보면서 대답했다.

"믿고 있던 사람한테도 이렇게 배신 당하는 세상인데,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연히 힘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

반사적인 행동이었을까, 아트룸 교수가 내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피할 수도 있었지만, 솔직히 맞아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아서 한 번 맞아줬다. 음, 모기가 내려앉은 거 같다.

"오히려 전 궁금하네요. 여기에서 저를 죽이고 나쟈의 핵을 가져간다고 해도…… 여기에서 무사히 빠져나갈 자신이 있으십니까?"

"뭐라고……?"

"교수님이 저를 죽이기 위해서 데려온 모험가들이, 뒤통수를 치지 않을 거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냐고요. 그걸 묻고 있는 겁니다, 지금."

그 말에 퍼뜩 정신이 들었는지, 아트룸 교수는 주변에 서 있던 스무 명 남짓의 모험가들의 면면을 한 번씩 둘러보았다.

"교수님은 나쟈의 핵을 경매에서 팔아치우고 그 돈의 일부를 떼어주겠다는 식으로 계약을 하셨겠지만…… 사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거든요. 여기에서 교수님을 죽이고 나쟈의 핵을 가져가면 고스란히 그 돈을 꿀꺽 삼킬 수 있으니까."

"……."

"솔직히 말해서 좀 실망이에요. 물론 나쟈의 핵을 팔아치워서 돈을 버는 것도 좋겠지만…… 마력을 쓰지도 못하는 상태에서도 저런 괴물을 쓰러트릴 수 있는 모험가를 지인으로 두는 메리트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조금 전에 쓰러진 나쟈는, 물론 완전히 성장한 나쟈에 비하면 조금 부족할 수는 있지만, 일반적인 모험가 수준으로 쓰러트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마력의 코어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도 이 정도의 전과를 올릴 수 있는 인간과 지인이라는 것만으로도 아트룸 교수는 장기적으로 수많은 이득을 벌어들일 수 있었을 텐데.

이건 아트룸 교수 자신의 인격이 선량하다, 나쁘다는 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냥 이건, 멍청한 짓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을까. 눈앞에서 막대한 돈이 굴러들어올 것 같으니까 판단력이 흐려졌나?

"이, 이 자식……!"

고개를 꼿꼿히 들고 웃고 있던 내 모습이 그의 신경을 긁었는지, 그는 고목 같은 팔뚝으로 내 멱살을 틀어잡았다.

"뭐, 뭐가 그렇게 자신만만한 거야……! 너, 너는, 너는 여기서 죽어! 너 혼자서 여기 있는 사람 모두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못 이기죠. 혼자서는."

몸 상태가 멀쩡했다면 모를까, 지금 내 몸은 이미 한계에 도달한 상태이니까.

"그, 그럼 어째서……!"

하지만 지금의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는 이제, 아트룸 교수의 말을 더 이상 듣고 있지도 않았다. 듣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더 들을 가치도 없다.

"아, 비키쇼. 교수님. 이 젊은 놈은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니까."

주변에 서 있던 모험가 중 하나가 우악스럽게 아트룸 교수를 뜯어낸 후, 오른손으로 내 멱살을 잡았다.

"말이 왜 그렇게 깁니까? 어서 이 새끼 끝내고 치우자고요."

"어, 어……!"

산적 같은 인상의 모험가였다. 키는 나와 비슷한데, 옆으로 좀 퍼져 있어서 자기관리가 상당히 부실해보인다.

그는 마력으로 강화한 오른팔로 내 목을 틀어쥐고 있었다.

"나는 곱게 자란 교수님하고 달라서, 너 같은 건방진 놈을 다루는 법을 좀 알지. 너 같은 놈들은 한 대 제대로 쳐맞기 전까지는 상황 파악을 못하더라…… 뭐야, 너 지금 웃냐?"

"아."

그 소리를 듣기 전까지 나는 내 입술이 씰룩이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 내가 웃고 있나. 이러면 곤란한데. 물론 웃을 상황이 맞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 웃으면 안 된단 말이야.

하지만 이미 늦었다. 한 번 터지기 시작하니까 끝이 없었다. 입꼬리가 씰룩인다. 나는 멱살을 잡힌 상태에서 그만 한참을 웃고 말았다.

아트룸 교수의 눈빛이 흔들린다.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이다. 그러니까,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얼굴.

놈의 감정은 빠르게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나는 웃음을 뚝 그치고 입술을 이죽거렸다.

"교수님은 실수했어요."

눈앞의 모험가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할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갑작스레 움직인 나의 검이 멱살을 쥐고 있던 팔을 잘라버렸으니까.

"어?"

아트룸 교수의 눈이 뒤룩뒤룩 굴러간다.

아직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얼굴이다.

물론 내 멱살을 잡고 있던 모험가도 마찬가지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고 있는 것처럼, 눈만 크게 뜨고 있었다.

그 정도로 검은 빨랐다.

고통이 조금 늦게 찾아올 정도로.

"으,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모험가가 게거품을 물면 바닥을 뒹굴었다. 하지만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

아트룸 교수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간다.

"뭐야, 이게 무슨……"

"난 정말로, 교수님에게 지금까지의 노력을 보상해줄 생각이었는데."

내 몸의 주도권이 변경되었다. 나 아닌 다른 존재의 힘이 전신으로 빠르게 뻗어 나간다.

"……지금까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는다고 고생했다. 많이 답답했지?"

『괜찮아요. 꽤 볼 만 했었거든요. 검주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공부가 되었어요.』

이 말은 아트룸 교수에게 건네는 말이 아니었다.

나의 파트너를 향한 한 마디다.

내가 나쟈의 싸움에 돌입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 싸움을 지켜보던 녀석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나는 음산하게 질문했다.

"3분 준다. 끝낼 수 있지?"

『3분이요?』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험가는 스무 명 남짓. 나보다 강한 놈은 없었지만 하나 하나의 수준은 꽤 높아 보인다. 죄다 실력 있는 놈들이다.

『아무런 준비도 안 되어있는 상황이었다면 꽤 아슬아슬한 시간이었겠지만……』

검이 진자처럼 흔들린다.

『검주가 저 뱀대가리하고 실컷 싸워주신 덕에 대기 중의 마력이 아직 예민한 상태예요. 즉, 길게 준비할 필요 없이 바로 큰 기술에 들어갈 수 있다는 소리죠.』

그뿐인 행위에 네 명의 모험가가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아트룸 교수는 물론,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할 현상이다.

지금의 내가 닿기에는 너무나도 드높은 영역에 있는 일격이었다.

검이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3초면 충분해요. 이깟 놈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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