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13화 (13/287)

〈 13화 〉 3. 이세계에서 신뢰를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2)

* * *

하숙집을 뒤로 하고 도시 바깥으로 나온다. 해가 가장 강하게 내려쬐는 시간대라 그런지 상당히 푹푹 찌는 날씨였다.

아트룸 교수는 먼저 현장에 나와서 텐트를 치고 실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무가 울창한 숲에서는 보기 드문 공터형 지형이었는데, 처음부터 있었던 장소는 아니고 내가 나무를 벌채하고 바닥을 깎아내서 만든 실험장이다.

이 근처에서 나쟈가 동면 중이라는 아트룸 교수의 말을 들은 후 바로 행동에 나서서 다듬은 장소다. 혹시 모를 몬스터의 습격에 대비해서 각 귀퉁이에 마법석도 배치해둔 상태였다. 이렇게만 해 둬도 낮은 등급의 몬스터는 접근할 수 없다.

"신현 씨, 일단 여기에 나쟈가 아직 남아 있는지 한 번 더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알았어요."

아트룸 교수는 자동차 배터리만한 사이즈의 큼지막한 마법석을 캐리어 가방에서 꺼냈다. 정확히 말하면 울퉁불퉁한 형태의 원석을 다듬고 깎아낸 후, 용도에 맞게 특화시킨 정사각형의 흑요석 같은 물질이다.

시중에서는 구입할 수 없는 높은 순도와 어마어마한 출력을 가진 특수한 마법석으로, 잘못 손을 대면 사용자는 물론이고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일반인이 구입해서는 안 되는 불법 마법 용품으로 지정되어 있다.

아트룸 교수가 교수 자리를 잃고 불명예 퇴직하게 된 원인도 이 물건에 있다.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나쟈를 불러들이기 위한 실험을 준비 중이었는데, 마력석의 출력을 제대로 조종하지 못한 탓에 중간부터 술식이 폭주했고, 그 결과 현장에 동석해 있던 대학원생 두 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아트룸 교수는 불법으로 지정되어 있는 마법 도구를 사용한 혐의와 제자들의 죽음을 방조한 혐의로 불명예 퇴직과 더불어 유족들에게 어마어마한 양의 위자료를 지불할 것을 명 받았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뒤, 거지꼴로 목숨을 끊으려던 것을 내가 구해내서 협력 관계를 맺게 된 것이 바로 1년 전의 일이다.

그 이후로는 뭐, 아파트 방세를 내주거나 나의 모험가 등급을 높여서 일반인의 수준에서는 구입할 수 없는 실험 재료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꾸준히 투자해왔다.

그 정도로 그의 이론에서 높은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과연 내 투자는 제대로 된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거대한 마력석을 앞에 두고, 아트룸 교수는 바로 그 옆에 이젤과 캔버스를 세웠다. 그리고 여기저기에 다양한 색깔의 메모지를 부착하고 마법적인 의미를 품은 단어 몇 개를 적은 순간, 스크린에 비친 영상처럼 새하얀 종이 위에 기하학적인 문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캔버스와 대형 마력석을 연결해서 동기화를 시작한다.

"신현 씨."

"알았습니다."

아트룸 교수가 건네준 내 팔뚝 정도쯤 되는 크기의 쇳덩어리를 지면에 꽂아넣는다. 한 번 비를 맞은 후 다시 마른 지면은 상당히 단단했다. 소매를 팔뚝까지 걷어올린 후, 힘을 주어 끝까지 밀어넣는다.

바로 그 순간 캔버스에 비치던 풍경이 달라졌다. 지금은 캔버스의 어느 한 점이 붉은 색으로 발광하고 있다.

아트룸 교수가 조용히 말했다.

"두 달 전에 발견했던 위치에서 여전히 성장 중인 것으로 보이는군요. 이전에 발견했을 때와 비교해서 5미터 정도 말단 부분이 커져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내가 지면에 꽂아 놓은 쇳덩이는 오직 나쟈의 마력만을 탐색해서 위치를 추적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아트룸 교수가 대학에 재직하던 시절에 가지고 있던 나쟈의 패러미터를 바탕으로, 바로 얼마 전에 완성시킨 물건이다. 듣기로는 이 도시에서의 생활이 그에게 새로운 영감을 준 것이라던데, 자세한 원리는 내 수준에서도 어려워서 잘은 모른다.

캔버스에 표시된 정보에 의하면 지금은 1km 정도 아래에 있는 지하에서 동면 중인 모양.

내가 알고 있던대로, 완전히 성장한 상태가 아니라 아직도 열심히 성장 중인 유생체에 불과했다.

이쪽으로 끌고 올라와서 전투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붙어볼 수 있는 수준.

바로 옆에서 캔버스로 상황을 살피고 있던 아트룸 교수가 나를 돌아보며 질문했다.

"이 단계까지는 지난 번에도 가능했었죠…….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 다음부터입니다. 알고 계시겠죠……?"

"알고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뒤, 나는 이젤과 연결되어 있는 마력석의 측면으로 돌아가서 그 자리에 뚫려 있는 손가락 마디만한 크기의 구멍에 또 다른 선을 연결했다.

삼발이에 중화 냄비가 얹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도구는 지면 속에 잠들어 있는 나쟈를 지상으로 유도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물건이다.

땅을 삽으로 파서 가로 세로 1M의 구멍을 뚫은 뒤, 그 자리에 중화냄비 부분을 거꾸로 밀착하게 해서 작동시킨다.

두 달 전, 처음으로 나쟈의 위치를 파악했을 때 나는 이 장치를 사용해서 지하에 있는 나쟈를 이 자리로 불러들이려고 했었다. 아직 유생체인 나쟈라면 나의 전투 능력을 고려해보았을 때 충분히 쓰러트릴 수 있는 상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삽을 푸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트룸 교수가 대학에 재직 중이던 시절과 마찬가지로, 이 장치의 출력 조절이 상당히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출력이 너무 약하면 나쟈에게 닿지 않는다.

너무 강해도 나쟈에게 파장이 도달하기 전에 장치가 망가져버린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트룸 교수가 경험했던 것처럼 아예 폭발할 수도 있고.

마력석 자체를 연결해서 쓰는 방식이라 나처럼 마력이 없는 사람이라도 무리 없이 사용할 수는 있지만, 마력석과 장치 사이의 출력 조절이 대단히 어려워서 두 달 전에도 폭발 직전까지 갔었다.

마력의 출력이 지나치게 높아져서 꼼짝 없이 아트룸 교수의 트라우마가 다시 한 번 반복될 뻔 했었는데, 그때는 내가 아슬아슬하게 마력을 조작해서 최대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수습을 했었다.

그리고 현재 단계의 실력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지금까지 미뤄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최소 5년은 기간을 잡고 수련을 해야 출력을 제대로 조종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해볼 만 하다.

나는 마음 속으로 조용히, 지금까지 우리를 살펴보고 있던 검을 향해 말을 걸었다.

'네 실력이면 할 수 있겠지, 안 그래?'

『물론입니다.』

검은 힘 있는 목소리로 단언했다.

『그럼 지금 바로 제게 몸을 넘기실 건가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직접적으로 출력을 조작하는 건 내가 할 거야. 너는 주변의 마력의 흐름을 살펴보면서 내가 잘못된 조작을 하는 순간 그것을 지적해주었으면 해.'

『……알겠습니다. 그럼, 어디 한 번 해볼까요.』

나쟈를 유도하는 장치를 작동시킨 뒤, 단말기와 마력석에 하나씩 손을 얹고 조작을 시작한다. 확실히 검의 기량은 대단했다.

예전에는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두운 길을 홀로 걷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빛이 드는 환한 대로를 걷는 기분이다.

『하지만 검주의 솜씨도 대단하세요. 올바른 방법을 제시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실수 없이 올바른 방법을 실행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아무리 올바른 방법이라도 그걸 쓰는 사람의 실력이 부족해서 올바른 방법을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의미가 없죠.』

이 녀석은 지금 나를 도와주려는 걸까, 아니면 괴롭히려는 걸까.

잘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쓸데없는 말을 시작하니까 나도 조금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실수하면 안 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제대로 집중. 마력이 폭주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천천히 파장을 나쟈를 향해 밀어보낸다.

1km는 상당히 먼 거리이다. 그 정도의 거리를 한 번도 실수하지 않고 나아가서, 나쟈에게 도달해야 한다.

……잡았다. 마력의 파장이 나쟈의 몸에 접한 바로 그 순간 나는 목이 타는 듯한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것이 나쟈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능력.

'독'이다.

하지만 아직은 해독제를 복용할 때가 아니다. 증세가 그렇게 심하지도 않다. 해독제는 나쟈가 본격적으로 지상에 올라온 그때부터 복용해야 한다.

그리고 그때는 아마 지금으로부터 48시간 이후가 될 것이다.

겨우 이 정도의 마력으로 나쟈의 감각을 깨우기는 어렵다. 최소 48시간에 걸쳐 연속해서 자극할 필요가 있다. 그 정도는 해야 나쟈의 감각을 자극해서 눈을 뜨게 만들 수 있다.

본격적인 전투는 그때부터가 되겠지.

지금은 이를 악문 채 '그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옆에서 아트룸 교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아직도 캔버스를 보고 있었다.

"……올라 오고 있어요."

"지금 뭐라고 하셨죠?"

"지하에서, 나쟈가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지상으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벌써 반응이 올 리가 없는데……!!"

"……!! 교수님은 일단 피하세요!"

그 소리를 들은 순간, 나는 이유도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소리치고 있었다. 그의 말처럼 나쟈가 마력의 유도에 따라 이쪽으로 올라오고 있다면 전투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 아트룸 교수부터 이 자리에서 치워야 한다.

싸우는 건 나와, 이 검 뿐이니까.

"빨리! 그런 물건은 나중에 와서 회수하고!"

그가 이젤과 캔버스를 자리에서 옮기져라 넘어지는 꼴을 보며 외친다. 쿠궁, 쿠궁, 하고 발 밑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도대체 어째서지? 이렇게 빠르게 반응이 올 리가 없는데…….

"……너, 혹시?"

『에헷.』

문득 생각이 나서 검을 돌아보는데, 내 예상이 맞았다.

나는 검의 지시를 받아서 마력석의 출력을 조종했다. 그리고 나는 그 지시가 마력석의 출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효과만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검은 마력석의 출력을 안정적으로 지배하는 것과 동시에, 나쟈에게 도달한 파장이 최대한 강렬하게 전해질 수 있는 지시를 선택해서 내게 전달한 것이다.

그 결과 나쟈는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르게 내가 발산한 마력의 파장에 반응했고, 지금은 그 원인을 쫓아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진동으로 캔버스가 넘어진다. 그것보다 빠르게 지면에 균열이 내달린다.

"온다……."

마치 대지가 찢어지는 것 같았다.

바닥을 뚫고 나온 머리의 폭만 해도 나의 신장과 비슷한 수준. 하지만 몸통의 길이는 그 이상이다. 이미 수십 미터 이상 뿜어져 나왔음에도 끝을 모르고 지면에서 쭉쭉 튀어나온다.

전체적인 길이는 처음부터 짐작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면 또 느낌이 다르다.

『어……』

검은 이럴 줄은 미처 몰랐다는 듯, 조금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하늘이…… 안 보이네요……』

정오의 태양을 등지고 선 그 모습은 나로 하여금 신에 맞서는 대적자를 떠오르게 하였다.

아직 육체가 미처 완성되지 않은 탓에 가죽은 아주 얇았다. 얄팍한 가죽의 안쪽에서 칠흑의 마력이 넘실거린다.

뱀의 머리 부분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는 금안?.

환한 대낮임에도 빛 속에서 더욱 밝게 번쩍이는 안광이 느릿하게 좌우로 움직이더니, 이내 중심을 향해 고정되었다.

그 끝에 있는 건 오직 하나.

나 이외의 무엇이 있을까.

『크르르르……』

나쟈.

한때 쓰러졌던 숲의 주인이, 이 자리에서 다시금 태양을 등지고 울부짖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 *

"……."

기억의 파편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몇 년 만일까.

나쟈의 포효를 다시 들어보는 건.

흐릿했던 기억이 명확한 형태로 살아나기 시작했다.

몇 년 전, 그 무더운 여름날.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던 그 거대한 뱀의 모습이 눈앞의 괴물과 겹쳐진다.

그날의 나는 안전한 방공호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예전에 비하면 좀 작구나."

『네?』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도시의 성벽 위에서 바라본 나쟈는 몸의 길이만 해도 수백 미터에 달하던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지면에 배를 바짝 붙이고 쭉 나아가기만 했을 뿐인데 숲의 절반이 통째로 지워지던 광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 도시에 남아있던 거의 모든 상급 모험가가 그 싸움에 참가했었다. 물론 루이스와 연금술사도.

그 해, 그 뜨거운 여름.

나는 나와 친밀한 이들이 사지로 달려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젊은 애송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 후로 2년.

나는 그때의 나와 비교해서 조금 더 강해졌고, 그 시절의 내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힘을 손에 쥐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언젠가 나의 친구가, 은사가 서 있던 자리에.

나쟈를 유인하기 위해서 파장을 발생시키던 장치를 마력석에서 떼어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놈은 이미 나를 포착한 상태였다.

금안은 오직 나만을 바라보고 있다.

나 역시 도망칠 생각은 없었다.

오늘로 나는 변한다.

오늘로써, 나는 지금껏 수도 없이 내 발목을 붙잡아왔던 이 체질에…… 작별을 고할 것이다.

* * *

정보는 충분했다. 내겐 나쟈 토벌 당시 최전선에서 맞서 싸웠던 지인이 있었고, 나는 그들로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놈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왔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나의 지인들보다도 나쟈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공부해왔다. 연구해왔다. 언젠가 찾아올, 오직 이 순간을 위해서.

그러니까 나쟈의 몸에서 갑작스레 뿜어진 하얀 연기 앞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나쟈는 본격적이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흐릿한 연기를 어마어마한 속도로 뿜어 대기 시작한다. 물론 해롭다. 이 자체가 사람을 중독시켜서 신체 능력을 마비시키는 극독이다.

급하게 물러났지만 이미 늦었다. 독은 순식간에 수백 미터까지 퍼져나갔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처법은 이미 알려진 상태다. 전술조끼에서 돌돌 말린 풀잎을 꺼내 꿀꺽 삼킨다. 독에 영향을 받기도 전에 호흡기로 들어온 독기가 중화되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제 나도…… 다음번에 나쟈하고 붙는 건 물 건너갔군.'

『네?』

'나쟈의 독이 무서운 건 다른 게 아니야. 물론 독성도 심한 편이지만, 이미 해독하는 방법도 나와 있는 상태라 큰 문제는 아니지.'

연기 속에서도 나쟈의 모습은 또렷하게 보였다. 놈이 하늘을 집어삼킬 것처럼 포효하며 달려든다. 급하게 피한다. 동시에 조끼에서 단검 세 자루를 한 번에 뽑아내서 서로 다른 위치에 투척.

가죽에 꽂혔던 두 자루는 역시나 튕겨 나온다. 놈의 가죽은 내부가 비쳐 보일 만큼 얇았지만, 그래도 내 힘으로 뚫을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나 보다.

투척한 세 자루 중 나머지 하나는 눈에 꽂혔다. 하지만 이건 이것대로 효과가 없다. 그대로 쑥 들어가더니, 놈의 얄팍한 가죽 속에서 둥둥 떠다닌다.

그리고 조금 늦게, 나쟈의 머리가 꽂힌 자리가 쿵 소리와 함께 들어갔다. 충격은 주변까지 전파되었다. 일대의 나무가 우수수 넘어진다.

'하지만 이때, 나쟈의 독을 해독한 뒤 몸에 남는 항체가 문제야. 이 항체가 나쟈의 독과 다시 접촉하면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거든. 발열, 호흡 곤란 등의 증상이 강하게 나타나지.'

『쉽게 말해서, 독에 걸리고 해독된 사람이 또다시 독에 당하면…… 큰일 난다는 소리네요. 』

'맞아.'

말하자면 아나필락시 쇼크를 인위적으로 일으키는 독이라고 할 수 있다.

체질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나쟈의 독은 한 번 치료된 후에 반드시 그 사람의 몸에 특수한 항체를 남기고, 그 항체를 가진 사람이 다시 나쟈의 독을 쬐면 알레르기 반응과 함께 호흡기가 고장난다.

그리고 상당히 빠르게,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다가온다.

나쟈가 사람의 몸에 남긴 항체는 그 사람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즉, 한 번 나쟈 토벌에 참가한 사람은 두 번 다시 나쟈 토벌에 참가할 수 없다.

이 싸움에 내가 신뢰하는 이들을 동원할 수 없는 이유였다.

연기가 퍼지는 범위도 넓고, 독이 잔류하는 시간도 상당히 긴 편이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처음부터 나 혼자만의 힘으로 나쟈를 쓰러트릴 생각이었으니까.

나쟈의 머리가 지면에 꽂힌 틈을 타 허리춤에서 마검을 뽑아든다. 캉!! 무거운 소리와 함께 검이 가죽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온다.

그리고 즉시 나쟈의 반격이 시작했다.

그 덩치에 맞게, 두 갈래로 갈라진 나쟈의 혀도 상당히 길게 뻗어나와 있었다. 지면에 꽂힌 나쟈의 머리에서 슬쩍 삐져나온 그것은 나를 붙잡기 위해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혀가 닿지 않을 정도로 먼 거리로 물러서는 것도 회피 방법 중 하나였지만 나는 일부러 그 선택지를 배제했다.

마치 요란한 댄스를 추듯 혀의 공격 범위 안에서 쉴 세 없이 움직이며 공격을 회피했다. 그리고 한 번 공격이 빗나갈 때마다 그 틈을 노려서 검을 때려 박았다.

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력을 통해 소폭 날카로움을 높여두긴 했지만 역시 이 정도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 이미 수십 번 가까이 같은 부위를 내려쳤는데도 가죽에는 긁힌 상처 하나 나타나지 않았다.

나쟈의 머리가 지면에서 뽑혀 나왔다. 돌격이 시작된다.

하지만 복잡하고 까다로운 뒷골목의 움직임에 비하면 몬스터인 나쟈의 사고 능력은 단순했다. 속도는 나보다 빠를지 몰라도 미리 읽고 회피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바쁘게 움직이면서 나쟈의 공격을 회피하고 베고, 또다시 회피하면서 베어내기를 반복한다.

『으음.』

몇 번의 공방 속에서 어느 정도 정보를 수집한 걸까. 검이 낮은 목소리로 내게 첨언했다.

『유생체라는 말이 사실이었군요. 지금은 그저 거대한 마력 덩어리에 거죽을 덮어 놓은 거나 마찬가지예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예정된 순간보다 몇 년은 일찍 눈을 떴기 때문에, 나쟈는 본래 가지고 있는 전투 능력의 1할도 채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알기로는 입에서 광선을 발사하거나 몸을 회전하면서 허리케인을 발생시키는 패턴도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그 중 어떤 기술도 사용하지 못하고 무식하게 몸으로 부딪치고만 있다.

움직임도 느리다. 몸이 움직이면 몸 안의 마력이 함께 움직여야 하는데, 지금은 몸과 마력의 움직임 사이에 희미한 오차를 느낀다.

몸이 먼저 움직이고 나서 마력이 조금 늦게 따라간다.

충분한 시간을 거쳐 완성되지 못한 숲의 지배자는 너무나도 약해져 있었다.

내가 공격을 허용할 정도로.

촤악!!

처음으로 나의 검이 놈의 가죽 사이를 파고들었다. 하지만 천변무궁류의 요결을 써서 이뤄낸 결과물은 아니다.

내 공격이 가죽을 뚫고 들어간 것은 나를 향해 달려드는 나쟈의 속도를 역으로 이용해서 카운터를 먹였기 때문이다.

나의 근력 뿐만 아니라 나쟈의 속도까지 이용해서 위력을 높인다.

마검을 만나기 전까지의 나는 이런 식으로 수많은 싸움을 넘어 왔었다.

『높은 분석력으로 상대의 공격 패턴을 파악한 뒤, 공격하는 순간에 카운터를 먹여서 위력을 높이는 방식이군요. 검주에게 어울리는, 멋진 검술이에요.』

하지만 방심하지 마라. 내 공격은 이제 조금씩 나쟈에게 먹히기 시작할 테지만, 나의 몸은 여전히 나약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몸뚱이에 불과하다.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죽는다.

나쟈가 공격하는 타이밍에 맞춰 발을 앞으로 뻗었다. 나의 검은 내 속도와 더불어 나쟈의 속도를 최대한 사용해서 뱀의 몸에 칼자국을 새긴다.

『캬아─!!』

이때까지, 나의 검은 나쟈의 목 부분에 집중적으로 꽂히고 있었다. 나쟈의 몸은 거대했고, 그렇기 때문에 맷집도 장난이 아니었다.

지금의 내가 휘두르는 검으로는 절대 한 번에 쓰러트릴 수 없다.

그러니까 공격을 한 곳에 집중시킨다.

목을 베고, 또다시 베어서 그 거대한 목을 절단하는 것으로 끝장을 낸다.

카득!!

이미 놈의 몸에 새겨진 참격의 횟수는 두 자릿수에 다다랐다. 하지만 아직도 목표까진 멀다.

중세의 사형수는 죄인의 목을 끊어낼 때까지 수십 번 가까이 도끼질을 했다고 하는데, 그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니, 이대로라면 수백 번은 더 휘둘러야 하는 건가.

베고 피하고, 또 다시 베고 피하고.

지독한 끈기의 싸움.

『샤아!!』

이윽고 나쟈는 나의 방식에 어울려주지 않겠다는 듯 용트림을 하면서 머리를 바닥으로 향했다. 무게와 속도, 양쪽 모두를 겸비한 나자는 아래에 뚫린 구멍으로 파고들어서 순식간에 자신의 몸을 지하로 숨기는 데 성공했다.

멈추고 싶었지만 할 수가 없었다. 나의 검술에는 놈을 묶어둘 재간이 없었으니까.

검이 내 몸을 지배한 상태였다면 흐름이 조금 달라졌을까. 사실, 검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내게 몸을 넘겨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나쟈는 지금 지면 아래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그 공격을 대비하기도 바쁘다.

『바로 아래에서 옵니다!!』

검이 소리치기 전부터 나도 움직이고 있었다. 몸을 바로 뒤로 던진 직후, 내가 서 있던 자리에 나쟈가 솟아올랐다.

'꼬리……!'

머리가 아닌, 꼬리가.

그리고 딛고 있던 대지가 통째로 솟아오르면서 나를 하늘로 날려 보냈다. 나쟈가 지면 아래에서 길쭉한 몸을 굽혔다가 쭉 펴면서 반동으로 나를 띄운 것이다.

"……윽!!"

거대한 몸에서 뿜어져 나온 에너지는 과연 대단했다. 나는 단숨에 십수 미터 가까이 떠오르고 말았다.

발 디딜 곳 하나 없는 허공에서 나의 다리가 버둥거린다.

나의 움직임이 공중에 묶여있는 동안 나쟈는 재빨리 행동에 들어갔다. 지면 속에 숨어있던 뱀이 몸을 일으켰다. 대지가 통째로 뒤집어 엎어진다.

나쟈의 시선은 위로, 금안은 내게 고정되어 있다.

놈의 머리가 턱을 벌린 채 나를 향해 날아왔다. 나쟈의 아가리는 나 하나쯤은 꿀꺽 삼키고도 남을 크기였다.

하지만.

'공격의 흐름을 읽어라……'

바로 그 순간 검을 휘두른다. 발 디딜 곳 하나 없는 허공에서 나는 크게 검을 휘두르며 몸의 위치를 아주 살짝 옆으로 비껴놓았다.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금안이 내 옆을 빠르게 스치고 지나간다.

나쟈와 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그리고 곧 어긋났다. 내가 바로 옆에 나타난 나쟈의 눈에 칼을 꽂아버린 탓이다.

『크─』

그러나 이때, 나의 검은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지 못했다. 공중에 뜬 몸뚱이가 뒤늦게 중력에 붙잡혔고, 검은 그 자리에서 고정되지 않고 나쟈의 눈과 얼굴을 쭉 찢으면서 하강하기 시작했다.

나쟈의 눈에 꽂혔던 검은 그대로 얼굴을 찢고, 목과 몸통을 찢으며 쭉 추락하기 시작했다. 나의 몸도 마찬가지다. 빠르게 미끄러진다.

뱀의 몸은 길었다. 어느 정도 내려왔다 싶었음에도 아직 끝이 보이지 않았다.

지면에서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서 속도가 줄어든 나의 검이 예리함을 잃었다. 턱, 하는 소리와 함께 거죽을 베지 못하고 걸렸다.

나쟈는 급하게 몸통을 흔들어서 나를 튕겨냈다. 이 또한 어마어마한 속도여서, 나는 급히 자세를 잡고 낙법을 취했음에도 바닥에 부딪친 후 수십 미터를 쭉 미끄러져야 했다.

전신이 아프다. 머리도 어질어질하다. 하지만 나쟈는 아직도 무사했다. 꼬리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급하게 몸을 굴려서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다.

몸을 굴리고 그 관성을 그대로 이용해서 튕기듯이 일어선다. 추가타는? 나는 자세를 굳혔지만 오지 않는다. 나쟈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상태에서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반쯤 찢어진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다.

싸움을 포기한 눈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지?

'회전…… 하고 있는 건가?'

『이상해요.』

마치 피리 부는 소리에 춤을 추는 코브라처럼. 나쟈는 꼬리를 대지에 꽂은 상태로 상반신에 해당하는 부분을 느릿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경계심이 다리를 붙잡는다.

출렁…….

소리가 들린다. 놈의 움직임에 맞춰, 몸 안에서 명확한 형태를 가지지 못한 마력이 흔들리는 소리.

나쟈의 몸이 한 바퀴 회전할 때마다 그 속에서 반 박자 늦게 움직이던 마력이 함께 출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

나는 그 순간, 나쟈와 전혀 매치되지 않는 엉뚱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그것은 물이 절반 정도 들어있는 페트병이다.

나는 그것을 손에 쥐고 그 자리에서 둥글게 회전시키고 있다. 페트병이 회전할 때마다 안에 들어있는 물도 함께 돈다.

처음에는 페트병의 움직임에 물이 따라오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처음 뿐이다.

회전이 반복될 때마다 페트병의 속도는 그대로지만, 그 안에서 출렁이는 물은 한 바퀴를 돌 때마다 속도가 붙는다. 빠르게, 빠르게, 더 더 빠르게.

이윽고 그 속도는 정점에 도달했다.

『검주! 긴급회피!!』

그럴 틈도 없었다.

나쟈는 이미 가속된 체내의 마력으로 몸을 휘두른 상태였다.

놈의 상반신이 채찍처럼 움직였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그 궤도 안에 있는 모든 나무와 짐승을 쓸어버리면서 빠르게 다가온다.

피하기는 늦었다.

그렇다면……!

뒤로 달리면서 물러선다. 하지만 아직 나쟈가 빠르다. 개의치 않는다. 피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충격을 줄이는 게 목적이니까.

나쟈는 이미 코앞까지 와 있었다.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은 눈두덩이에 검을 꽂는다. 손목을 비틀어서 대각으로 들어가도록 조정한다.

걸쇠로 문을 잠그듯이, 단단하게, 쉽게 빠지지 않도록.

"쿨럭."

이렇듯 충격을 줄이고 또 줄였음에도 내장이 압박되고 위액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어차피 먹은 것도 없다. 올라오는 위액을 그대로 토해낸다. 시큰한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하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나쟈는 내가 머리에 달라붙은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나를 떼어내기 위해서는 이대로 멈추지 않고 계속 회전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사실도 이해한 듯 싶었다.

나쟈의 몸이 나를 메단 채 몇 번이나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풍앞에 머리가 아프다. 튕겨오르는 돌조각과 나뭇조각이 쉴 새 없이 내 몸을 두들겨 댄다.

아, 지금 맞은 건 조금 충격이 컸다. 머리가 핑 돈다.

이를 악물었다.

"윽, 으오아앗!!"

쉴 세 없이 쏟아지는 파편을 절묘하게 피하고, 빗겨내고, 때로는 조금 덜 아프게 몸으로 받아내면서 나는 나쟈의 머리 위에서 한참을 버텨냈다.

놈도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움직일 수는 없다. 나쟈는 페트병이 아니니까. 쉬지 않고 가속되는 마력의 속도를 끝없이 견뎌낼 수는 없다.

한계는 반드시 오게 되어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이것이 내가 기다리던 바로 그 순간이었을까.

나쟈의 몸뚱이가 갑작스레,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멈춰섰고, 꽂혀 있던 검이 뽑혀 나왔다.

나는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속도로 쏘아졌다. 풍경이 획획 넘어간다. 눈에 비치는 정보량이 폭주하는 바람에 머리가 조금 찌릿하다.

수백 미터를 1초만에 주파한 뒤 내 몸은 바닥에 처박혔고, 그 상태에서 다시 수십 미터를 밀려나갔다.

"……."

피투성이가 된 나는 쓰러진 몸을 일으키며 생각했다.

이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싸움에 들어가기 전부터 나쟈의 스펙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계산은 계산이고 현실은 실전이다. 오차는 반드시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걸 그때그때 수정해서 원하는 결과를 끌어내는 게 바로 모험가가 해야 하는 일이고.

처음에는 놈의 목에 쉬지 않고 공격을 꽂아서 통째로 머리를 잘라낼 상긱이었다. 하지만 실전에서 붙어보니까, 이게 아무래도 잘 되지 않았다. 놈의 강도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던 점이 컸다.

그래서 작전을 바꿨다.

새벽 내내 수행한 끝에 조금씩 쓸 수 있게 된 천변무궁류의 요결을 사용해서, 나쟈의 머리를 한 번에 절단할 수 있는 기술에 들어가기로.

내가 놈의 머리통을 붙잡고 버티고 서 있었던 것도 모두 그러한 흐름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그 길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검의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들려왔기 때문에.

몸은 아프고, 머리는 저리다.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충격이었다. 그런 충격을 경험하고도 내가 아직까지 살아있는 건, 충돌하기 직전에 급히 검의 지시에 따라 마력의 흐름을 조작해서 급하게 속도를 줄였기 때문이다.

『…….』

검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지시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내 솜씨에 놀란 것 같았다.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먼지가 자욱해서 주변의 풍경을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나쟈의 모습은 여전히 눈에 띄었다. 더럽게 커다란 덩치 때문이다.

"……."

마력의 흐름을 느낀다. 몸을 굴린 덕에 준비는 거의 끝났지만, 아직 한 가지 문제가 남아있다.

『……나쟈의 위치는 그 자리에 있는 편이 좋고, 검주는 여기에 있어야 해요. 그렇게 해야 검술이 최대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부터 시도하는 공격이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나와 나쟈의 위치가 정해진 순간에 정해진 위치에 있을 필요가 있다.

내 몸을 움직이는 건 일도 아니지만, 나쟈의 몸을 이동시키기는 어렵다. 놈의 몸뚱이는 무거워도 너무 심하게 무겁다. 물리적으로 옮기는 건 불가능하다.

『검주, 할 수 있겠어요?』

나는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다.

"할 수 있어……."

* * *

어디에 있는 거지, 어디에 있는 거냐 인간.

나쟈는 하나뿐인 금안을 번뜩이며 머리를 흔들었다. 혀를 날름거리며 모래 먼지 속에 숨은 호적수의 기척을 추적한다. 하지만 벌레 이하의 미약한 마력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찾을 수 없다.

어디냐, 어디지?

나쟈 또한 아직 깨어날 때가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문율을 무시하고 지상으로 솟아오른 것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강렬한 파장이 그를 유인했기 때문이다.

그 인간이 저지른 일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지금은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녀석은 도망치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느낀다.

『───!』

그때였다.

느껴졌다.

희미한 마력이 모래먼지 저편에서 느껴졌다. 거기냐, 이제 마력을 숨길 여유조차 남지 않은 모양이구나. 기다려라, 지금부터 너를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먹어 치워 주겠다.

머리가 움직인다. 수십 미터에 달하는 길쭉한 몸뚱이가 전신을 꿈틀거리며 마력을 쫓는다.

모래 먼지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

이상하다.

마력은 느껴지는데.

그 희미하디 희미한 마력을 여전히 피부로 느낄 수 있는데.

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거지?

도대체 어디에 숨은 거냐.

바로 그때, 나쟈의 일그러진 왼쪽 시선 끝에 매우 특이한 물건이 걸렸다.

인간은 아니었다.

그것은 검.

한 남자가 망설임 없이 손에서 내려놓은 마검이 지면에 거꾸로 꽂혀 있었다.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백신현에게는 마력이 없다. 나쟈가 지금까지 느끼고 있었던 백신현의 마력은 모두 이 마검에서 발생하던 것이었다.

주인은 검을 포기하고 먼지 속에 기척을 숨기고, 마력의 근원인 마검은 결계 술식을 해제한 상태로 지정한 포인트에 놓아둬서 나쟈의 움직임을 유도한다.

그냥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뱀은 이때까지도 알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생명이 백신현의 손 안에 떨어졌음을.

"……."

모래 먼지 속에서 백신현이 조용히 고개를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허벅지의 가죽 벨트에서 또 하나의 검을─── 특징 없는 단검을 뽑아 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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