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2. 어떤 청년의 계획목록 (3)
* * *
"일어날 수 있어?"
"이 정도는 뭐."
루이스가 내게 뻗은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아직도 팔다리가 조금 저릿저릿 울린다. 하지만 생각보다 크게 아픈 부위는 없다. 루이스도 입으로는 전력을 다했다지만 절묘하게 힘조절을 해준 데다가, 그 공격을 받아낸 검의 솜씨도 탁월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크게 문제가 발생한 부위가 있는지 온몸을 움직이며 한 번씩 체크한 후 나는 가볍게 목을 까딱했다.
루이스는 영 미심쩍은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도저히 못 믿겠는데. 겨우 이 정도로 나쟈를 쓰러트리겠다니."
"당연히 네가 알고 있는 나쟈라면 불가능 하겠지. 그 전투에 직접 참가한 건 아니지만, 나도 나쟈에 대해서는 알 만큼 알고 있어. 최소치로 잡아도 특급 모험가 수준의 실력자가 둘은 필요할 테니까."
"……그 말이 맞아. 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설령 네가 나쟈와 전투를 벌인다고 해도 나와 연금술사 선생님은 도와줄 수 없어. '나쟈'의 특성은 너도 알잖아."
"알지. 한 번이라도 나쟈와 싸운 인간은 두 번 다시 나쟈의 앞에 설 수 없다…… 나도 알고 있어."
내가 대답을 술술 해내자 루이스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걸 알면서도 나쟈와 싸우겠다고?"
"당연하지. ……내가 싸우려는 건 네가 말하는 최고 상태의 나쟈가 아니니까."
"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네가 말하는 최고 컨디션의 나쟈가 상대라면 당연히 내 실력으로 승부가 안 되는 게 맞아. 하지만 내가 도전할 나쟈는 내 실력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상태일 거야."
나도 내 주제는 알고 있다.
마력을 쓰지 못하는 나는 이 세계에서 약자의 위치에 서 있는 존재다. 그런 내게 있어 적과 나의 실력 차이를 가늠하는 능력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도전하지도 않았다.
"네가 쓰러트린 나쟈가 성체成?라면, 내가 노리고 있는 건 나쟈의 유생체???, 아직 어린 나쟈이니까."
* * *
나쟈.
매우 드문 빈도로 발생하는 사왕종?王?의 특급 몬스터로, 이 부근에서 출현하는 몬스터 중에서 제일 급이 높은 놈이다.
바로 2년 전에 이 도시 근처의 숲에서 모습을 드러냈었는데, 그때 모험가 길드는 루이스와 연금술사를 비롯한 실력 있는 모험가들을 왕창 긁어모아서 간신히 나쟈를 퇴치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 그 싸움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그 토벌에 참가했던 모험가의 반수가 죽어나갈 정도로 상당히 흉험한 싸움이었다는 건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당시 1급 모험가였던 루이스가 특급 모험가 자격을 획득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 전투였다.
루이스는 지금도 술에 취하면 그때의 전투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이었는지를 내게 떠들어대곤 했다.
"나쟈의 발생 원인은 아직도 불명이라고 알려져 있지. 10년에 한 번, 대륙의 몇몇 지방에서 간헐적으로 출현하는 몬스터라는 건 다들 알지만, 녀석의 그 거대한 몸뚱이가 어디에서 나타났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어."
"명색이 특급 재해라고 국비 지원으로 연구팀이 꾸려진 적도 두세 번 있었지만, 대부분 연구팀이 연구비를 횡령하다가 팀이 해체되고 끝났으니까……"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른 듯, 루이스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다양한 특급 재해 중에서도 유독 밝혀진 것이 없는 데다가 그 몸을 구성하는 '핵'의 높은 가치 탓에 개인적으로 사비를 들여서 연구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상당히 마이너한 연구 과제로 꼽힌다.
핵에 대한 수요는 높지만 인공적으로 양산할 수 있는 소재가 아니다보니 공급량이 딱 정해져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많은 돈을 투자해서 연구할만한 과제는 아니다.
애초에 이 도시 자체가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구석이기도 한데다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라면 나쟈보다 더 쉽게 연구할 수 있고, 더 높은 가치의 전리품을 토해내는 몬스터들도 있으니까.
나는 하늘이 뒤집어지는 한이 있어도 나쟈를 연구하고 싶다, 그런 사람이 아니면 쉽게 도전하지 않는 연구 과제다.
"뭐, 그래, 네가 끝까지 자란 나쟈가 아니라 아직 성장이 덜 끝난, 약한 상태의 나쟈를 노리고 있다는 건 잘 알겠어. 그런데 그런 나쟈를 어떻게 찾아내겠다는 거야? 지금까지 그 누구도 나쟈의 유생체 같은 건 발견하지 못했는데……"
내 이야기가 그럴 듯하다고는 생각했는지 나를 바라보는 루이스의 표정도 조금 달라졌다. 하지만 시선에 뿌리 깊이 자리잡은 불신은 여전하다.
"그건 네가 비전문가이기 때문이야."
"비전문가라고? 내가?"
"나쟈에 대해서는 말이지. 물론 너도 상식 수준에서는 나쟈를 알고 있지만, 그걸 몇 년 동안 전문적으로 연구한 사람에 비하면 좀 부족할 거 아냐?"
"……그럼 우리가 지금 만나러 가는 사람이 바로 그 '전문가'라는 소리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모든 성능 테스트를 끝마친 후, 나와 루이스는 다시 도시 중앙부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 도시의 그 누구보다도 나쟈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인물을 찾아가는 중이다.
"맞아."
"그런 전문가가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이 도시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2년 전에 자문을 요청했을 거라고."
그때, 그 싸움의 중심에 서 있었던 루이스는 당시의 상황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철저하게 실력을 통해서 추려낸 50명의 토벌대. 그리고 그 안에 내가 말하는 '전문가'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루이스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 사람은 그때 당시 이 도시에 없던 사람이었으니까.
"네 말이 맞아. 그 사람은 내가 데려온 사람이니까."
"뭐?"
"1년 전에, 내가 직접 스카웃해왔지."
"……."
자, 도착했다.
나는 집세가 그럭저럭 평균 수준인, 조금 낡은 아파트 앞에서 멈춰섰다. 열쇠를 돌려서 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면서 루이스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나는 훨씬 옛날부터 나의 체질이 내 발목을 붙잡을 거라는 사실을 예상하고 있었어. 그리고 내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서 이것저것 다양한 방법을 시험해보고 있었지."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나오는 결론은 둘 중 하나였다.
소림사의 대환단을 손에 넣거나, 아니면 나쟈의 핵을 획득하거나.
그리고 나는 그 중 후자…… 나쟈의 핵을 손에 넣기 위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많은 일에 도전해왔다.
이 사람을 스카웃해온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삐걱삐걱, 한 걸음 올라갈 때마다 계단이 듣기 싫은 소리를 낸다.
"국내외의 나쟈 관련 논문을 찾아보거나, 유망한 연구자가 학회에 이름을 올릴 때마다 체크하기도 했지."
천하의 루이스도 그 정도로 지독하게 찾아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루이스가 가지고 있는 정보라고는 상식 선에서 나올 수 있는 몇 가지 정보와 실전에서 획득한 게 전부일 테니까.
"……그러다가 정말로 괜찮은 사람을 찾아냈어. 술도 같이 마시고, 그 사람이 개인적으로 안고 있던 금전 문제 같은 것도 해결해주면서 간신히 여기로 데려왔지. 아, 참고로 이 아파트 방세도 내가 내주고 있어."
연구비도 내가 대 줬다.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루이스도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네가 버는 거에 비해서 너무 돈 없다, 돈 없다, 하는 거 같기는 했어. 여기에 돈을 대주고 있었구나?"
"일종의 투자야. 그리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잘 하면 이번에 결실을 맺을 수도 있을 것 같아."
701호라고 쓰여 있는 문에 열쇠를 꽂는다.
문을 연 순간, 안쪽에서 두꺼운 안경을 쓴 초로의 남성이 나를 돌아봤다. 늦은 밤이었지만 아직 잠들 때가 멀었다는 듯 상당히 정기로 가득한 눈빛이다.
"소개할게. 아우라 대학에서 몬스터 생태학 교수로 일하시다가 퇴직하신, 아트룸 교수님이야."
"특급 모험가, 루이스 선생님이시죠? 신현 씨에게 이야기는 자주 들었어요."
"……아, 안녕하세요."
루이스는 조금 어색한 태도로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 옆에 앉아서 내 돈으로 산 소파의 감촉을 오랜만에 만끽하고 있었다.
"그런데 신현 씨는 여기에 어쩐 일이신가요? 연락 없이 이렇게 불쑥 찾아오는 건 거의 처음 있는 일인 거 같은데."
"이제 슬슬 시작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서요."
"……."
그 한 마디에 아트룸 교수의 표정이 변했다. 이것은 나와 이 노인만이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이다.
대학에 불명예 퇴직을 당한 전직 교수와 체질을 문제 삼아 상급 모험가 검정 시험에 떨어진 모험가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나쟈의 탐색에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필사적이었다는 사실이다.
늙은 교수는 불명예 퇴직을 당한 후에도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서 필사적이었고,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쟈를 찾아내서 체질을 바꾸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런 공통점을 무기로 삼아, 나는 대학에서 불명예 퇴직을 당한 후 술로 세월을 지세고 있던 그에게 접근했고…… 다양한 지원을 조건으로 그와 협력 관계를 맺게 되었다.
루이스가 내 쪽으로 살짝 다가와서 귓속말로 속삭였다.
"(……수완도 좋으셔. 언제 이런 걸 다 준비해놨대?)"
"(연금술사 선생님한테도 내가 먼저 접근해서 안면을 튼 거였잖아. 기회는 기다린다고 오는 게 아냐, 내가 알아서 찾아가야 하는 거지.)"
내겐 물리적인 힘이 없었지만, 인간의 힘은 그것만이 아니다.
인맥 역시 하나의 힘이 될 수 있다.
루이스는 내가 이 세상에 떨어진 직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지만, 연금술사는 조금 다르다.
아주 오래 전에, 내가 먼저 타산적인 속셈으로 접근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녀의 실력과 두뇌는 내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내가 처음에 그런 속셈을 품고 접근했다는 사실을 깜빡하게 될 정도로 친한 사이가 되었지만.
"……시작은 언제라도 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신현 씨가 이 늙은이한테 제시한 조건이 그것이었죠. 언제라도 바로 작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해두라고."
"네, 그랬었죠."
"하지만, 준비를 오래 전에 끝마쳤음에도 곧바로 내 '이론'을 증명하려 하지 않고 기다린 이유는 지금의 신현 씨에게 제 이론을 증명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정확히는…… 그 이론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을 제 능력으로 진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실험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트룸 교수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은, 마력의 양은 둘째치더라도 그것을 조작하는 난이도가 어마어마하게 높았기 때문에 지금의 내 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보류해둔 상태였다.
또한, 나쟈와 전투한 사람은 참가해서는 안 되는 조건이 붙어 있었기 때문에 연금술사와 루이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그러한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잠시 묻어 두었던 것이 두 달 전의 일이다.
그리고 그 두 달 동안 아트룸 교수는 조금이라도 실험의 난이도를 낮추기 위해서 새로운 연구에 도전하고 있었고, 나는 실험에 도전할 수 있도록 개인의 기량 향상에 집중했다.
"하지만 이젠 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 2년은 기간을 잡고 진행하려던 플랜이었지만, 지금 당장 나쟈의 핵이 가지고 있는 힘이 필요해진데다가…… 실험을 성공시킬 수 있는 능력도 준비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이 허리춤의 검이 가지고 있다.
"저와 교수님의 오랜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 드디어 찾아온 겁니다."
* * *
아트룸 교수가 코를 타고 미끄러지던 안경을 다시 제자리에 원위치시켰다.
"……그런데 혹시 신현 씨. 지금 바로 일을 진행할 생각인가요?"
"네, 문제라도 있나요?"
그리고 아트룸 교수는 명백히 변명거리를 찾는 듯한 태도로 조용하게 말했다.
"신현 씨만 괜찮다면 내일 밤까지만 기다려 주지 않겠습니까?"
"내일 밤이요? 할 수 있다면 최대한 빠르게 하고 싶은데…… 무슨 문제라도?"
"오, 별 건 아니고."
초로의 노인이 사람 좋은 미소로 웃고 있었다.
"준비해야 할 일이 몇 가지 있어서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