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10화 (10/287)

〈 10화 〉 2. 어떤 청년의 계획목록 (2)

* * *

냉수를 두손으로 감싸쥔 루이스를 앞에 앉혀두고 지금까지 나와 연금술사에게 벌어졌던 일을 설명했다.

연금술사가 먼저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하고 내가 부족한 내용을 보충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루이스는 완전히 이야기에 집중했는지 모처럼 가져온 냉수도 마시지 않고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새까만 정장을 입은 남자가 이 검을 노리고 습격해왔다는 사실을 들은 직후, 루이스의 표정이 팍 구겨졌다.

"……뭐야, 그렇게 말하니까 괜히 꼭 나 때문에 연금술사 선생님하고 네가 다친 거 같아서 마음이 좀 불편한데."

"그렇게까진 안 말했어. 네가 알고 그런 것도 아니고."

온갖 수상한 함정으로 바글바글한 이 세계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은 처분하는 게 원칙이다. 호기심과 미지의 힘에 마음이 이끌려서 원칙을 져버린 건 나도 마찬가지다.

『잠깐만요. 검주, 검주.』

"왜 그래?"

지금까지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검이 허리춤에서 몸을 진동시키며 나를 불렀다. 나는 칼자루의 측면을 손바닥으로 어루만지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검의 목소리는 나를 제외한 이 자리의 그 누구도 들을 수 없다. 이미 사정을 알고 있는 연금술사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루이스는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깜박였다.

"뭐야, 내가 뭐라고 했어?"

"아니, 너한테 한 소리 아냐."

"……?"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루이스에게 나는 허리춤의 검을 손바닥으로 탁탁 소리가 나게 두드렸다.

"이쪽 보고 한 소리야.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이 검에는 내부의 기능을 총괄하는 가상 인격이 들어 있거든.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모양이지만."

"어, 진짜로?"

"진짜야."

"쬐끄만 검에 별 희한한 기능은 다 들어있네. ……이걸 노리겠다고 습격해오는 놈이 있는 것도 이해는 가는걸."

그건 그렇지.

사용자의 몸을 지배해서 대신 움직이는 기능에 자기 수복 기능, 거기다가 거의 사람과 동등한 수준의 사고 능력을 가진 가상 인격.

현재까지 파악된 것만 해도 도대체 뭘 어떤 식으로 구겨 넣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을 만큼 신기한 기능 뿐이다.

이렇게 보면 루이스가 정말로 귀한 물건을 가져온 건 사실이었다.

거기에 예상치도 못한 벌레가 쪼르르 날아와서 달라붙은 게 문제지.

『있잖아요, 검주. 루이스 아씨한테 전해주셨으면 하는 말이 있는데요.』

"루이스한테?"

『네네. 지금까지 이백 년 넘게 지층에 갇혀 있던 저를 구해주신 분이기도 하고요.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나 할까요.』

안될 건 없지.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난데없이 자기 이름이 나온 탓에 조금 경계하는 눈빛을 취한 루이스를 돌아본다.

"뭐야, 그 검이 날 가지고 뭐라고 말했길래 네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온 거야?"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고맙다고 좀 전해달라는데. 네가 발굴해주지 않으면 자기는 계속 지층 아래에 묻혀 있었을 거라고."

"……아, 진짜? 예의가 꽤 바른 검이네."

루이스가 무릎을 굽히고 쪼그려서 앉은 뒤, 손바닥으로 검의 자루 부분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바로 그 순간 검이 말 잘 듣는 애완동물처럼 푸르르 소리를 낸 것 같았다.

쪼그려 앉은 자세 그대로, 루이스는 나를 올려보며 질문했다.

"그래서 계획은 있어? 언제 적이 나타나서 습격해올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며."

"일단 오늘 안에 이 검에 대해서 최대한 조사하고…… 그 다음에는 이 체질을 개선시킬 생각이야."

솔직히 말해서 다른 건 모두 부차적인 문제라고 본다.

실제로 경험해본 건 오늘 있었던 그 짧은 전투 뿐이었지만, 검이 내 몸을 지배했을 때 드러낸 실력은 지금의 나는 물론이고, 어쩌면 루이스조차 능가할 만큼 어마어마한 영역에 이르러 있었다.

지켜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눈이 호강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압도적인 검술.

하지만 이 검은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검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금의 우리가 가진 힘으로는 나를 찾아올 습격자를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내 체질이 문제라는 소리인데…… 이건 솔직히 빠져나갈 샛길이 없다.

부족한 마력을 보충하기 위해서 육체를 단련하고 검술을 수행해온 건데, 마력 없이 육체만 단련해서 얻을 수 있는 힘은 이미 한계에 도달한 상태고 검술 역시 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술이 정점에 달해 있는 상태라 수행해도 의미가 없다.

오직 나 자신의 마력을 늘리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내 특기인 꼼수와 잔머리가 전혀 통하지 않는 영역.

남은 길은 정면돌파 뿐.

"……체질을 개선하겠다고? 어떻게?"

당연히 루이스도 상당히 당황한 얼굴이었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네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지간한 물건 가지고는 꿈도 못 꿔. 저기 멀리 있는 소림사의 대환단大??이나 아니면 나쟈의 핵 정도는 먹어야 겨우 보통 사람 체질이 될까 말깐데."

"그렇지."

"……나도 그런 건 못 구해. 내가 지금까지 벌어들인 돈을 싹 긁어 모아도 살까말까인 데다가 그마저도 수요가 너무 높아서 경매장에 떴다 하면 순식간에 빠진다고."

"그렇겠지. 나도 다 아는데 굳이 설명해줄 필요 없어."

물론 루이스도 알고 있는 게 많겠지만, 나 역시 내게 주어진 이 체질을 원망하면서 필사적으로 이것을 교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왔었다.

이 방면만큼은 루이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다.

루이스가 말한 것처럼, 나의 체질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어지간한 영약으로는 효과가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내 몸에 마력을 저장할 수 있는 코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니까.

소림사의 대환단이나 나쟈의 핵 같은 게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이유는 그 물건의 내부에 깃든 어마어마한 마력을 통해 인공적인 방식으로 코어를 생성하기 때문이다.

그 이외의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빠르면 사흘. 길어도 일주일 안에…… 나쟈의 핵을 얻어낼 생각이야."

지금의 나는 느긋하게 계획을 세우고 행동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

조금 이르다는 건 알고 있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나쟈의 핵을 손에 넣을 필요가 있다.

* * *

하지만 그 전에, 우선 나는 지금의 내게 주어진 무기를 하나씩 점검해볼 생각이었다.

난 이 검에 부여되어 있는 다양한 기능에 대해서는 얼추 파악하고 있었지만, 그 정확한 효과 범위까지는 아직 모르는 상황이다. 이 검이 가지고 있는 스펙을 정확히 파악한 이후 나는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설 것이다.

검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좁아터진 원룸보다는 넓은 공간에서 시험하는 편이 좋을 거라는 판단 하에 나는 루이스와 함께 바깥에 나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연금술사의 공방이 있는 도시 외곽의 빈집촌이다. 공간이 넓으면서도 따로 훔쳐볼 사람이 없는 이곳의 환경은 실험에는 상당히 이상적인 장소였다.

나는 온통 회색 벽으로 뒤덮인 골목길에서 눈을 감은 채, 검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들리냐?'

『네네, 들려요.』

조금 전에 이것저것 시험해보면서 알게 된 건데, 굳이 소리를 내서 말을 걸지 않아도 검은 내 의지를 알아듣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 같다.

내게 마력이 없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것도 검에게 부여된 기능일까.

검은 이미 내가 눈으로 볼 수 없는 멀리 떨어진 위치에 옮겨진 상태였다. 하지만 여전히 대화는 통한다. 내 목소리가 녀석에게 닿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내 목소리 들려?'

『…….』

하지만 역시 한계는 있다. 나는 내가 지금 서 있는 위치에 분필로 X자 표시를 한 뒤, 줄자를 자리에 꽂고 쭉 달려나갔다.

검은 현재 루이스의 손에 들려 있었다. 나는 내가 조금 전까지 서 있던 위치와 검 사이의 거리를 측정한다.

"대화가 통하는 한계 거리는 200미터. 그 사이에 장애물이 있고 없고는 상관 없음."

청각에 말을 거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력의 선으로 연결한 상태로 마음 속에 직접 말을 전달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내 귀가 들리지 않는 상태라도 대화할 수는 있다.

하지만 명확한 의지를 담아서 전하지 않으면 범위 안에 있어도 목소리는 전달되지 않는다.

나는 몇 가지 특이 사항과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메모지에 기입한 후 페이지를 닫았다.

그 다음은 전투 능력을 시험할 차례다.

루이스가 나의 공격을 연신 받아내면서 소리쳤다.

"공격이 저번보다 묘하게 무거운데? 검에 마력을 공급해서 날카로움을 높인 거야?"

"내 마력은 아니야. 검이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마력을 그대로 쓰고 있는 거지."

그마저도 검이 가지고 있는 마력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라서 검술의 날카로움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 처음부터 나의 검술은 보잘 것 없는 공격력을 보완하기 위해서 속도와 원심력으로 최대한 위력을 늘리는 방향으로 특화되어 있으니까.

검의 날카로움이 아주 조금 높아졌을 뿐인데도 나의 검에는 얼마 전과 전혀 다른 무게감이 감돌고 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지면에 꽂힌 검이 바닥을 부수고 돌조각을 흩뿌린다.

루이스가 조금 놀란 듯 감탄사를 흘렸다.

"예전의 세 배는 되겠는데? 원래부터 부족한 위력을 온갖 꼼수를 동원해서 높이는 방식의 검술이라 더 효과가 커 보이는 건가?"

"아마 그렇겠지."

"하지만 설마 그 정도로 나쟈를 쓰러트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내가 어쩌다가 특급 모험가 자리에 올랐는지 벌써 잊어버렸어?"

"기억하고 있어. 나는 참가하지 않았지만, 지하의 방공호에서도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싸움이었지."

토벌전에 참가했던 모험가 중 절반 이상이 사망했던 걸로 알고 있다. 루이스 이전에 존재하던 이 도시의 특급 모험가는 물론이고, 당시에도 뛰어난 실력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루이스나 연금술사까지 참가했는데도 그런 결과가 나왔다.

괜히 국가에서 특급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특별하게 관리하는 재해가 아니다.

캉! 캉! 캉! 캉!

루이스의 연속 공격을 나는 강화된 검의 위력과 얼마 전의 전투에서 새롭게 얻은 노하우를 이용해서 튕겨냈다. 물론 이것도 상당히 봐주고 있는 거긴 하지만, 얼마 전의 나였다면 이조차 쉽게 받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방어하기에만 급급해서 공세로는 전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검은 과연 어떤 식으로 맞서 싸울 수 있을까. 나는 그 대답을 알아내기 위해서 표정을 바꾸며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이건 어때."

파직파직파직파직!!

검자루를 틀어쥔 상태에서 강하게 의지를 전달한 순간, 내 팔을 타고 마력이 꿀럭꿀럭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때는 겨를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생각보다 꽤 아프다. 혈관 사이에 커터칼을 박아넣고 마구 비틀어대는 느낌이랄까.

눈 깜짝할 사이에 육체의 주도권이 내게서 검으로 넘어갔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지금 내 몸에서 유일하게 자유롭게 움직이는 건 이 세치 혀 하나 뿐.

그 이외의 모든 부분을 장악한 또 하나의 인격은 순식간에 자세를 바꾸고 루이스를 향해 반격의 검을 휘둘렀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루이스의 뺨에 아주 작은 상처가 났다.

루이스도 상당히 당황한 얼굴이었다.

"잠, 뭐야, 이거?! 갑자기 공격이……!?"

쏟아지는 공격을 모조리 받아내면서도 루이스는 쉽게 반격에 들어가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현재의 나와 루이스의 능력치 차이를 생각하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극한의 검술 능력.

루이스는 울상을 지으면서도 노도처럼 쏟아지는 공격을 받아내고 있었다.

"……음, 그래도 역시 이기지는 못하나."

나는 바닥에 대자로 쓰러져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내가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되어있는 건 검이 내 몸을 대신 조종할 수 있는 시간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검은 한 번에 5분 이상 내 몸을 조종할 수 없고, 한 번 내 몸을 대신 움직인 후에는 반드시 12시간 이상의 긴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녀석의 주장에 의하면 주인을 지배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무기가 아니라, 주인을 검성의 영역으로 이끌기 위해서 만들어진 무기이기 때문에 주어진 제약이라고 하던데.

그 탓에 루이스와 잘 싸우다가 갑자기 지속 시간이 다해서 바닥에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은 전신에서 올라오는 근육통에 꼼짝도 못하고 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있다.

검이 내 신체 능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려서 사용한 데다가, 루이스도 도중부터 온힘을 다해서 맞서기 시작했으니까.

나는 내 머리맡에서 쪼그리고 앉은 루이스를 보며 말했다.

"아마 이 녀석이 이대로는 이길 수 없다는 것도 이 제한 시간 때문일거야. 시간 제한 없는 장기전으로 가면 '흐름'을 장악하는 검술의 특성상 검이 반드시 이길 수 있겠지만…… 너처럼 수준 높은 검사가 상대면 '흐름'을 장악하는데도 시간이 꽤 걸리니까."

루이스 같은 일류 앞에서 5분은 상당히 짧은 시간이다.

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이 체질을 개선하고 마력을 얻어내서, 검이 좀 더 빠르게 마력의 흐름을 장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밖에 없다.

검이 흐름을 장악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에는 내 체질에도 원인이 있으니까.

내게 마력이 있다면 검술 뿐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마력으로도 흐름을 장악하는데 힘을 더할 수가 있다.

아니, 어쩌면 흐름을 장악할 필요까지도 없이 순수한 검술만 가지고 눌러버릴 수도 있겠지.

나쟈의 핵을 획득하고 마력을 얻은 나의 신체 능력은 지금보다 다섯 배는 강해질 테니까.

결국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쟈의 핵을 획득하는 게 필수라는 뜻이다.

"……그건 알겠는데, 나쟈의 핵을 얻을 방법이 있기는 한 거냐고."

"있어. 딱 하나."

나는 누운 상태로 고개만 끄덕였다.

"원래는 내 힘이 부족해서 불가능한 방법이었지만…… 지금의 내겐 이 녀석이 있으니까."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