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이자는 검성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8화 (8/287)

〈 8화 〉 1.5. 마검님이 보고 있어 (2)

* * *

"으음."

연금술사는 턱에 손을 가져간 채, 바지의 안쪽에서 툭 튀어나온 내 음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거, 커지게는 할 수 없어?"

"보통은 못하죠. 이런 분위기에서는."

흥분은 커녕 수치심때문에 얼굴이 벌개질 지경이다. 이게 꼭 필요한 행위라는 건 알겠지만, 아는 사람 앞에서도 개의치 않고 세울 수 있을 정도로 뻔뻔한 성격은 못 됐다.

"별 수 없네" 하고 중얼거리던 연금술사는 손을 뻗어서 갑자기 내 음경을 감싸쥐었다.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연금술사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으음, 한 손으로는 감싸 쥘 수 없는 굵기인가……. 내 팔뚝보다는 확실히 굵은 거 같고, 길이는 내 하박보다 긴 정도……"

듣기만 해도 수치심으로 몸부림치고 싶어지는 목소리로 연금술사는 한참 동안 품평을 하더니, 이렇게 질문했다.

"내가 남자의 음경을 실제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서 잘 모르는데…… 이게 평범한 크기는 아니지……? 이 정도로 굵으면 여자의 몸에 들어가지 않을 거 같은데."

몰라요, 그딴 거.

그보다 다른 사람의 사이즈 같은 건 알고 싶지도 않아.

"근데 왜 그렇게 담담한 목소리예요? 처음 본다면서요. 꺅 소리 정도는 나올 줄 알았는데."

"내 나이가 몇인데, 겨우 이런 거 가지고."

연금술사는 내 것을 자극시키려는 듯 양손으로 내 것을 감싸쥔 상태로 한참 동안 주물거리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꽤 서툰 움직임이라 그다지 자극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애초에 지금의 심리 상태로 세우는 게 가능할지도 의문이고.

"너는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나이를 먹고 나면 꽤 뻔뻔해지거든. 그래서 속으로는 꽤 놀랐더라도 아무렇지도 않게 내면을 숨기고 담담한 척 연기를 할 수도 있는 거야."

……그러니까 놀라기는 놀랐는데, 그걸 티를 안 내고 있다는 소린가.

워낙 담담한 목소리인데다가 얼굴 표정 변화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게 사실인지도 잘 모르겠다.

연금술사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태도를 보여준 덕일까. 조금씩 수치심이 옅어지고 나도 천천히 평소의 페이스를 찾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거 참, 생각보다 너무 반응이 없는 걸. 일단 커지기는 해야 뭘 채취하더라도 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그건 그거고, 연금술사 상대로 흥분하면서 음경을 세우는 건 상당히 어려운 과제로 느껴졌다.

물론 연금술사는 붉은 머리카락에 초록색 눈동자의 미인이고, 골반이 발달한 상당히 매력 넘치는 몸을 가지고 있지만…… 역시 남녀의 관계를 초월한 사이로 너무 오래 알고 지내온 탓이 크다.

둘이서 밤새 연구하다가 같은 방에서 잠든 적도 부지기수지만 그런 감정을 품은 기억은 단 한 번도 없다.

내 물건이 이 정도로 묵묵부답일 거라곤 연금술사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지, 답답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귓바퀴 뒤로 슥 밀어넘겼다.

그리고 그때, 우연히 내 눈에 들어온 그녀의 새하얀 겨드랑이가……

"차라리 흥분제라도 주사해서…… 응?"

"……."

물론 겨드랑이 한 번 살짝 봤다고 바로 커질 정도로 내 음경이 한심한 물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 순간, 아주 조금이긴 하지만 음경에서 반응이 느껴졌다.

연금술사도 그것을 느꼈는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내 얼굴과 음경을 번갈아서 쳐다보고 있었다.

다행히 내가 그녀의 어디에 반응했는지는 아직 들키지 않은 것 같다.

"……남자가 이렇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너도 생각보다 음흉하구나?"

아니네, 들켰네.

연금술사는 어울리지 않는 교활한 미소를 지으면서 오른팔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당연하지만 그 위치가 자주 노출되는 부위는 아니었다. 주황색 캐미솔과 군청색 원피스는 그녀가 사시사철 걸치고 다니는 기본 복장이었지만, 평소에는 그 위에 항상 새하얀 가운을 걸치고 다녔으니까.

오늘처럼 연금술사가 부상이라도 당하지 않는 이상에는 볼 수 없는 부위였다.

그래서일까.

땀으로 젖은 그녀의 새하얀 겨드랑이를 볼 때마다 어째 묘한 느낌이……

"그럼 이쪽은 어때. 내 예상이 맞다면, 이것도 아마 효과적일 거 같은데."

그리고 연금술사는 내게서 몸을 돌려 등을 보이는, 조금 기묘한 행동을 취했다.

도대체 뭐야? 그렇게 생각하고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까 이것도 실수였다.

연금술사는 주황색 캐미솔 위에 군청색 원피스를 덧대서 입은 옷차림을 하고 있는데, 양쪽 모두 등이 살벌하게 패여 있는 형태였다.

그건 알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그걸 진지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적은 없었다. 연금술사는 언제나 저 위에 하얀 가운을 덧대서 입고 있었으니까.

"……."

내게 등을 보인 상태로 연금술사는 허리까지 내려오던 붉은 머리카락을 슬쩍 옆으로 치웠다.

겨드랑이도 그렇지만, 그녀의 피부는 상당히 하얀 편이었다. 땀이 반사되는 등골과 견갑골이 눈부실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아, 커졌다."

연금술사가 내 음경에 검지를 가져간 채 쭈욱 미끄러트리며 말했다.

이거 살짝 자괴감이 드는데…….

도대체 저게 뭐라고 난 발정난 개처럼 반응하고 있는 거지.

"그래도 내 몸에 반응은 해줘서 다행이네. 이렇게까지 해도 반응이 없었으면 흥분제라도 써볼 생각이었는데."

"……무서운 소리 하지 마요."

"농담이야. 안 그래도 체액 사이에 숨은 마력을 검출해내기가 어려울 지경인데, 거기에 추가로 이물질을 하나 더 섞어버리면 더 어려워지는 걸."

그거 더럽게 현실적인 이유로군.

나는 씁쓸한 시선으로 어느 세 꼿꼿하게 일어서 있는 음경을 바라봤다. 이런 식으로 커질 줄은 정말로 몰랐는데, 어찌됐든 커지기는 커졌다.

"……그 사이즈에서, 이 정도까지 커질 수 있구나. 이거 참 흥미로운 샘플인걸."

연금술사는 조금 감탄한 시선으로 고개를 턱을 쓰다듬고 있었다.

이미 한 번 커져버린 상태이기 때문일까, 그녀의 시선이 한 번 음경에 꽂힐 때마다 묘하게 등허리가 움찔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한테는 그런 취향이 없는 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취향이 하나 눈을 뜨게 될 것 같은 상황이다.

"봐, 여기에 있으면 음경에 가려서 얼굴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야. 남자의 음경은 다 이런 건가……?"

연금술사는 흥미로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후, 한손은커녕 양손으로도 쥘 수 없는 굵기의 음경을 양손으로 보드랍게 감싸 쥐었다.

"정말이지, 이런 걸 달고 있으면서도 한 번도 쓰지 않다니. 아까운 줄을 모르는 것 같아."

"잠."

"버둥거리지 마. 네가 반항하기 시작하면 나도 잡고 있기 어려우니까."

말릴 틈이 없었다.

수술용 장갑을 낀 다섯 손가락은 상당히 특이한 감촉이었다. 하얗고, 가느다랗고, 그리고 미끈미끈하다.

마치 미꾸라지가 내 것 위를 기어 다니는 듯한 감각. 하지만 그 이상으로 교묘하고 요사스런 움직임이다.

"그만……"

"안 돼. 너는 내가 하지 말라고 했을 때, 한 번이라도 멈춰준 적이 없었잖아."

나는 그 와중에도 반박할 수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내 음경의 크기에 비해서 상당히 조그만 크기인 연금술사의 두 손은 위 아래로 움직여가면서 음경을 자극하고 있었다.

한참 아래로 내려가서 뿌리까지 접한 것이, 다시 느릿하게 올라온다. 본직이 본직인 탓일까, 연금술사의 손가락은 섬세했다. 무수히 많은 약재를 단 하나의 오차도 없이 제조하던 그 솜씨가 그대로 살아 있었다.

스윽스윽 소리가 들렸다. 음경의 껍질이 벗겨지고, 다시 씌워지는 소리. 마치 약재가 갈리는 소리 같았다. 손으로 방망이를 역수로 쥐고, 섬세하게 연마해나간다.

"조금 더 흥분도를 높여볼까."

문득 연금술사의 손이 멈추더니, 그녀의 자세가 변했다. 그녀는 한손을 내 음경 위에 올려둔 채 내 옆에 있는 좁은 공간에 비스듬히 누웠다.

지금 내가 누워있는 침대 자체가 그렇게 넓은 편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의 몸은 거의 내게 밀착하는 형태로 찰싹 달라붙은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는 당연히 평소에는 느낄 수 없는 많은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정말로 많은 것이 닿고 있었다.

루이스에 비하면 체구가 작고, 상당히 소녀에 가까운 인상이라 나도 잠시 잊고 있었지만, 연금술사도 어른이었다.

크지는 않지만 부드럽고 단단한 가슴이 내 몸에 착 달라붙어 있는 게 느껴진다.

"오늘은 고생 많았어."

훅 불어온 뜨거운 숨결이 내 귓가에 닿았다.

연금술사와 나의 키 차이는 꽤 심하다. 연금술사는 평균보다 조금 작은 체구고, 나는 평균보다 훨씬 큰 체구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오히려 연금술사가 연하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다.

"그때, 사실 네게는 또 하나의 길이 남아 있었어. 그건 나와 검을 내팽겨치고 혼자서 도망치는 길이었지."

그녀의 손이 조금씩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자신이 떠올릴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해서 나를 흥분시키려고 했다.

손을 쓰고 입을 쓰고, 때로는 채취나 감촉 따위의 수단도 아끼지 않고 사용했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혀 세우지 못하고 낑낑거리던 순간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내 음경은 팽팽하게 부풀어오른 상태였다.

"하지만 너는 그러지 않았어. 네 실력을 생각하면 무모한 일이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네 덕에 살았어. 고마워."

여러 번 올라오다 멈추었던 것이 마침내 한계에 달했다. 고환이 쭉 당겨지는 느낌과 함께 정액이 어마어마한 기세로 터져 나왔다. 음경을 쥐고 있던 손이 새하얀 정액으로 엉망이 되어간다.

연금술사는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듯이 조금 기가 죽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나치게 많은 양에 그녀는 정액을 주워 담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움츠러든 상태였다.

정액은 한 번 터져 나온 뒤 멈춘 게 아니라 긴 시간에 걸쳐 쉴 세 없이 울컥거리며 연금술사를 깜짝 놀라게 했다. 물론 그때까지도 연금술사는 그것을 담아둘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실수했네."

연금술사는 잠시 동안 그것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서둘러 티슈를 뽑아서 여기저기로 튀어나간 정액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모두 닦아서 치울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그것을 정리하는 데만 한참 시간이 걸려 버렸다.

쓰레기통을 가득 채운 티슈를 보며 연금술사는 낮게 신음했다. 아무리 그래도 저기에 담긴 걸 쓰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는가보다.

연금술사는 정액을 꼼꼼하게 닦아낸 손으로 다시 한 번 내 음경에 손을 가져갔다.

"보통 남자는 한 번 쏟아내면 시든다던데, 왜 네 건 아직도 멀쩡할까."

"몰라요. 그래서, 이제 어쩌실 건데요. 또, 하실 겁니까?"

"해야지. 네가 아직 딱딱하게 버텨주고 있으니까."

이번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연금술사는 아예 마력을 통한 염동력으로 유리병을 내 음경 근처에 둥실둥실 떠다니게 설정했다.

질척,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한 번 연금술사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병이 더 없네, 이 정도까지만 하고 끝낼까."

"그러시죠."

연금술사는 어마어마한 기세로 뿜어져 나오는 정액을 유리병으로 받아냈다. 낙농업자가 암소의 젖을 잡고 쭉쭉 잡아당기는 걸 내 음경으로 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처음에는 조금 버벅거리던 그녀도 열 번이 넘어가니까 어느 정도 감을 잡은 모양이다. 정액의 양에도 놀라지 않고 손을 반복해서 움직여가며 꼼꼼하게, 마지막 한 방울까지 뽑아낸다.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그녀의 손에서 숙련자의 손길이 느껴진다. 학습하는 속도가 무시무시하다.

정액이 보관된 열 개의 병을 연금술사는 나온 순서대로 정리한 뒤, 티슈를 뽑아서 내 음경에 가져갔다.

"가만히 있어, 닦아줄게."

"아, 잠시만요. 민감한 상태라서, 그렇게 하면 또 나올 거 같은데."

티슈의 까끌까끌한 부분 때문일까 그게 아니면 연달아 사정한 탓에 감도가 높아진 탓일까. 한 번 티슈가 스칠 때마다 나도 모르게 허리가 들썩거렸다. 모두 닦아내기도 전에 다시 한 번 쏟아내면서 온통 더럽혀질 판이다.

나는 감도가 높아진 음경으로 전해지는 감각에 움찔거리면서도 연금술사에게 말했다.

"조금 찝찝하기는 하지만 차라리 잠시 쉬었다가 좀 가라앉으면 그때 하는 편이 어떨까요?"

"언제 가라앉을지도 모르는걸.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아. 네 붕대도 정액 때문에 엉망이니까 다 갈아줘야 하고. 더 이상 기다리는 건 시간 낭비야."

그리고 연금술사는 조심스럽게 침대 위에서 일어나, 내 몸을 밟지 않게 주의하면서 위치를 옮겼다. 양옆으로 넓게 벌어진 내 다리 사이에 고양이처럼 네 다리로 자리를 잡고, 자세를 낮춰서 내 음경에 입술을 가져간다.

쮸읍, 하고 색소가 옅은 입술이 벗겨진 귀두에 접착됐다.

"잠……!?"

더 안쪽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연금술사의 입에 비해서 음경의 두께가 너무 굵다. 연금술사는 귀두도 제대로 삼키지 못하고 괴로운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결국 깊이 들어가는 걸 포기했는지 그 상태에서 손을 움직여가며 구석구석, 꼼꼼하게 음경을 닦아낸다. 검은 털로 무성한 뿌리 부분이나 주름진 고환까지도 잊지 않고 섬세하게 정리해나간다.

하지만 그런 만큼 그 움직임은 상당히 빠르고, 또 어찌 보면 거칠기까지 했다. 이미 민감해질대로 민감해져있던 내 음경에겐 충분하고도 남을 자극이었다. 장딴지의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요도를 타고 정액이 강하게 올라온다.

"───!?"

연금술사도 입술을 타고 전해지는 느낌으로 미리 알고 있었을 테지만,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어도 함부로 받아낼 수 없을 만큼 양이 많았다.

컥, 컥하고 접착된 연금술사의 목구멍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목구멍은 매우 바쁘게 움직이며 정액을 삼키고 있었지만, 그렇게 해도 모두 삼킬 수 없을 만큼 양이 많다.

연금술사의 뺨이 햄스터라도 된 것처럼 볼록 부풀어오르고 미처 삼키지 못한 정액이 코를 타고 바깥으로 나왔다. 입술 사이에서도 울컥울컥 흘러넘친다.

이 시점에서 이미 연금술사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두 팔을 앞으로 뻗어서 내 엉덩이에 단단하게 감고 사정이 끝날 때까지 계속 버티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사정은 한 번으로 끊어지지 않았다. 잠시간의 텀을 두면서 여러 번에 걸쳐 사정을 끝내간다. 그때마다 연금술사는 질식하는 사람처럼 컥컥 소리를 내고 있었다.

"쿠──…… 하으."

연금술사는 상당히 긴 시간을 거친 끝에 모든 정액을 삼키고 입술을 떼어냈다. 호흡이 잠시 끊어졌던 탓인지 눈빛이 조금 몽롱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하던 일은 그만두지 않았다. 혀를 기둥에 대고 움직이면서 방울방울 흘러넘친 정액을 수습하고, 청소가 끝난 후에는 티슈로 닦아내서 제대로 마무리를 했다.

아직 죽지 않고 서 있는 음경을 보며 연금술사는 질린 표정을 지었지만, 시간을 두면 알아서 가라 앉겠거니 하고 자리에서 물러선다.

"일단 정액 보존부터 끝낸 다음에 네 붕대를 풀고…… 땀 때문에 엉망일 테니까 한 번 모두 물로 닦아줘야 할까…… 하는 김에 치료 술식도 싹 새로 해서 회복되는 속도도 좀 높이고……"

이제 충분히 할 만큼 했다 싶었는데, 그녀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잔뜩이다. 이제 와서 상처가 가렵기 시작했는지 검지 손가락을 세워서 거즈를 붙인 왼쪽 어깨를 긁는다.

그 와중에 갑자기 속에서 뭔가가 올라왔는지 끅, 하고 소리를 냈다가 급하게 입을 숨겼다.

아무리 우리 사이라도 트림은 좀 부끄러웠나보다.

"……일단, 잠시 정리 좀 하고 올테니까. 혼자서 기다리고 있어줘. 금방 다녀올게."

"알았어요. 너무 급하게 움직이려고 하지는 마시구요."

연금술사는 대답하지 않고 욕실로 들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다가 침대에 상반신을 기댔다. 크게 지치지는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상당히 피곤한 상태다. 바로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이런 일을 함께 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과, 이런 일을 하게 됐으니까.

꼭 이랬어야만 했을까.

사실은 연금술사도 그냥 이러한 행위에 흥미를 느끼고 멋대로 저지른 일은 아니었을까.

깊은 현자 타임 속에서 나는 무심코 저쪽 벽에 비스듬히 쓰러져 있던 검을 돌아봤다.

─지금, 검에서 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내가 잘못 들은 거였나?

이렇게까지 내 정액을 뽑아낸 것도 결국 저 검에 대해서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내 혈액과 머리카락, 그리고 정액으로부터 검에 의해 내 몸에 한 번 공급되었던 마력의 흔적을 파악하고 추적해서, 해석하는 것.

그것이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최우선 과제였다.

일단 저 검 덕에 목숨을 건지기는 했지만 자세히 알지 않으면 힘을 이용하기는커녕 역으로 휘둘릴 수도 있으니까.

이렇게까지 했는데 뭐라도 단서를 좀 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한동안은 자괴감 때문에 밥도 제대로 안 넘어갈 거 같다고.

『오─ 죽이네요, 검주. 와, 사람 몸에서 저게 저 정도로 나올 수가 있는 거구나. 진짜 보면서도 깜짝 놀랐어요.』

……내가 지금 뭘 잘못 들은 건가?

지금, 검에서 소리가 들려온 것 같은데.

『검주, 검주. 아, 이젠 좀 들리세요? 표정 보니까 들리시는 거 같은데.』

"내가 지금, 뭘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아니죠. 보세요. 제가 지금부터 꿈틀꿈틀 움직여볼 테니까.』

그런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갑자기 비스듬히 쓰러져 있던 검이 혼자 덜컥덜컥 움직여대기 시작했다. 폴터가이스트라고 하던가, 옛날 영화에서 많이 보던 장면이 오버랩된다.

『자, 보셨죠? 보시다시피 지금 검주에게 들리고 있는 이 목소리는 조작도 아니고, 환청도 아닙니다. 제가 지금 검주에게 마력을 통해서 직접 말을 걸고 있는 거에요.』

"환청도…… 그리고 환각도 아닌 거 같군."

『그죠, 제가 지금 말씀드렸잖아요.』

바닥에 쓰러진 검이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회전하더니 갑자기 끝 부분으로 나를 가리켰다.

『반갑습니다 검주. 일단 이렇게 정식으로 인사드리는 건 처음이니까, 자기 소개부터 좀 해도 괜찮을까요?』

"……마음대로."

『고마워요.』

검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닥이 떨어진 검이 혼자서 춤을 추고, 회전하고, 난리굿을 벌여 대는 꼴이, 꼭 귀신 들린 칼 같아서 심히 공포스럽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로 말할 거 같으면 지금으로부터 257년하고도 131일 전에 천하의 명공名? 루키우스의 손에 제작된 후, 바로 얼마 전까지 지층 아래에 갇혀 있다가 가슴이 어마어마하게 큰 금발 아가씨한테 발굴돼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검왕의 무구───』

가슴이 어마어마…… 아, 루이스 얘긴가.

잠시 떠올랐던 요상한 상상을 물리친 후, 나는 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른바, 검왕검?王?이라고 불리는 존재입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