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1. 마검님이 보고 계셔 (2)
* * *
맞은편에 앉은 연금술사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신현아. 검왕전?王?하고 마의전서???書를."
"알았어요."
작업 중이던 물건을 내버려 두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연금술사가 지정한 책을 하나씩 뽑아낸다.
"검왕전은 227페이지. 마의전서는 51페이지."
지정한 페이지를 펼쳐서 옆에 놓아준 뒤, 비어 있던 찻잔에 다시 한 번 커피를 따르고 나서 내 자리로 돌아간다.
이게 바로 내 일이었다.
연금술사는 이 도시에서 제일 가는 실력을 가진 감정사였다.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나는 아무래도 그녀의 수준에 따라가는 게 어렵다.
손재주는 있는 편이지만, 감정을 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마력이 요구되는 부분이 있는데 나는 그쪽 방면에서 장님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그런 나를 조수로 두고, 최대한 유용하게 써먹기 위해서 떠넘길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내게 떠넘기고 있었다.
재료 채집부터 안마까지, 내가 소화하지 못하는 잡일은 없다.
연금술사의 조수로 일해온 세월은 거의 10년에 달한다. 이젠 호흡도 척척이다.
"서랍에서 7번 핀 바이스."
"네."
좁고 낡은 공방. 꿉꿉한 지하에서 나와 연금술사는 작업대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루이스는 없다. 나하고 다르게 루이스는 내일도 아침 일찍 모험가 길드에 나가야 해서 먼저 집으로 돌려보냈다.
어차피 크게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그 녀석이 싸움은 진짜 잘 하지만, 이쪽에는 영 소질이 없으니까.
둘이서 검을 만지기 시작하고 벌써 여섯 시간이 지났다.
연금술사는 검과 검집에 마법을 쏘아 보내면서 강도를 시험하거나, 잉크를 묻혀서 종이에 본을 뜨는 등의 실험을 진행했다.
그녀가 각종 서적을 살펴보면서 검집을 감정하는 동안, 나는 그 맞은편에서 검을 지켜보고 있었다.
검집에서 뽑아낸 검에 온갖 전극을 연결시키고 마력을 공급하고 있다.
5분에 한 번씩 검의 상태를 체크한 뒤, 마력의 파장을 변동시켜서 다시 5분을 기다리며 경과를 지켜보는 식의 실험이다.
그러면서 연금술사의 온갖 지시에 응하고, 비어있는 찻잔에 다시 커피를 따라주는 것이 내 일이다.
꽤 지치는 일이지만 지금까지 연금술사를 도우면서 배운 것도 많다. 멀리 있는 산까지 재료 채집을 다니다보니 주변 지형에도 빠삭해졌고.
"선생님. 마력 자극 실험 100회 모두 끝냈습니다."
"기록표."
"여기 있어요."
서로 다른 성질의, 그리고 다른 파형의 마력으로 검을 자극한 실험 결과이다. 쥐면 부서질 것처럼 가느다란 손가락이 종이를 한 웅큼 쥐고 가져갔다.
"……."
눈동자를 빠르게 움직이며 숨도 쉬지 않고 기록표를 읽어내려간다.
거의 30초 가까이 눈도 한 번 깜박이지 않고 기록표를 속독한 연금술사는 고개를 잠시 갸웃한 뒤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작업대를 사이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손은 내게 도달하지 못했다.
"신현아. 머리를 이쪽으로."
"네. ……네?"
반사적으로 대답하고, 머리를 가져가려다가 뒤늦게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내가 미처 움직이기도 전에 연금술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 머리카락을 잡고, 몇 가닥을 뽑아냈다.
많이 뽑아낸 건 아니고 머리를 빗다 보면 빗에 걸려서 뽑혀 나오는 정도의 개수. 그래도 따끔하기는 따끔했다.
"갑자기 뭐예요?"
"신현이 네 마력을 한 번 살펴보고 싶어서."
연금술사는 얄미울 정도로 담담한 목소리였다.
잠깐만.
근데 지금 마력이라고 한 거 같은데?
나는 의아한 얼굴로 반문했다.
"마력이라뇨? 전 마력이 없는 체질이잖아요."
"아, 그건."
연금술사가 고개를 들었다.
오랜만에 그녀의 얼굴을 정면에서 보게 된 듯한 기분이 든다. 큼지막한 초록색 눈동자가 나와 시선을 마주치고 있다.
머리가 나쁜 학생에게 하나씩 설명을 주입하듯, 연금술사가 검지를 세우고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의 네 몸은 마력을 쌓아두는 코어가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어. 하지만 사람의 몸은 원래 마력이 통하는 물질이지."
연금술사는 거리낌도 없이 나와 손을 마주잡은 뒤 살짝 힘을 주었다.
찌릿, 하는 느낌과 함께 접촉한 손바닥에 살짝 따끔한 느낌이 들었다.
전기가 통한 것처럼 피부가 저리다. 그리고 손바닥을 통해서 내 몸으로 흘러 들어온 정체를 알 수 없는 에너지는 전신을 한 바퀴 순환한 후 전신의 모공으로 다시 빠져나갔다.
"이런 식으로, 내가 마력 공급을 끊으면 바로 휘발되어서 없어지기는 하지만, 마력이 통하기는 통하는 거야."
"음, 그래서요?"
"일단 눈을 감고, 그 상태에서 천천히 심호흡을 하면서 집중을 해 봐. 아직 찌릿찌릿한 느낌이 남아있을 거야."
현재 나의 몸 상태를 정확히 파악한 연금술사는 전극이 꽂혀 있던 검을 마력으로 가져오면서 말했다.
"조금 전에 너희가 말했지. 마치 검이 스스로 검집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보였다고."
"네."
"어쩌면 너희가 했던 말이 맞을 지도 몰라. 자세한 건 나도 조금 더 감정을 해봐야 알 수 있겠지만, 지금 이 검은 매우 특수한 파장을 발산하고 있어."
"파장이라고요?"
"응. 인간의 감각으로는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매우 희미한 파장이긴 하지만."
연금술사가 두툼한 서류 뭉치를 이쪽으로 내밀었다.
제일 첫 번째 장에는 '마력에 의한 인체 조작에 대한 연구'라고 쓰여있다.
"……."
복잡한 용어로 이루어진 개요를 읽어내린 후, 그 뒤로 쭉 이어진 연구 결과를 훑어나간다.
종이를 한 장씩 넘긴 내가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했을 때 연금술사가 서류에 그려진 그래프를 가리키며 말했다.
"거의 유사한 파형이야. 그렇지?"
참고하라는 듯, 조금 전에 내가 측정했던 기록표가 서류의 그래프 옆에 나란히 놓여진다.
연금술사의 말처럼 두 개의 그래프는 80% 이상의 유사성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검이 발산하는 마력이 사람을 조작하는 파형을 띄고 있다는 뜻인가요?"
"응. 네가 본 게 잘못 본 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뜻이지."
손을 뻗은 연금술사가 검지로 내 팔뚝을 가볍게 찔렀다.
"그래서 네 머리카락과 피를 좀 뽑을 생각이야. 그 다음에는 이 검이 발산하는 파형과 맞춰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체크하는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알아들었어요.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어째…… 들으면 들을수록 무슨 마검 같은 느낌이네요."
일반적인 검사는 자신의 코어에 저장되어 있는 마력을 검에 공급해서 날카로움과 단단함을 증폭시킨다.
하지만 이 물건은 정반대.
검이 스스로 응축하고 있던 마력을 검사에게 공급함으로써 그 몸뚱이를 강제로 조작하는 방식.
도구로서의 본질을 초월해서 제 주인을 역으로 틀어쥐고 휘두르려고 드는 사악하디 사악한 검.
사람들은 그것을 마검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 검이 오직 내게만 반응한 이유는 도대체 뭘까.
루이스 앞에서도 잠잠했던 물건인데.
나는 잠시 동안 생각하다가, 농담처럼 툭 내뱉었다.
"……내가 만만해서 그런가?"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좀 더 까다롭고, 엄격한 조건이 있을 거 같아."
연금술사는 내 재미 없는 농담을 일축한 뒤, 나를 시켜서 주사기와 시험관을 가져오게 했다.
끈으로 팔뚝을 콱 틀어묶은 다음 주사기로 피를 뽑는다.
붉은 혈액이 주사기 쪽으로 쭈욱 올라온다.
"피는 이 정도면 있으면 충분하려나. 만약 이걸로 반응이 안 온다면 그때는 다른 걸 뽑아내서 분석할 수밖에 없겠지만."
"다른 거요?"
"응. 피와 머리카락이 대중적인 소재이긴 하지만, 인간의 구성 요소 중에서 가장 마력에 민감하고 반응하는 건 정액이니까."
"……."
그녀는 말문이 막힌 나를 보며 여상스런 얼굴로 말했다.
"뭘 그런 표정이야. 너도 연금술사의 조수라면 정액이 마법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소재인지 알고 있을 텐데."
"그건 아는데요. 음, 뭐, 함부로 입에 담을 만한 건 아니잖아요. 부끄럽지도 않아요?"
"내 나이가 몇인데. 서른도 되지 않은 애송이 앞에서 부끄러워할 이유가?"
모쪼록 내 정액까지 뽑혀서 검사 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짜로, 제발.
"네 머리카락하고 혈액은 잠시 뒤에 시험해보기로 하고…… 너도 이제 슬슬 나가봐야 하는 시간인 거 같아. 오늘부터 다시 아르바이트 나가야 하잖아."
"아, 그러네요."
연금술사의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시계를 확인했다.
이젠 정말로 준비하고 나가야 하는 시간이다. 상급 모험가 검정 시점을 치르기 위해서 휴가를 내고 중앙에 올라갔었지만, 내게 떨어진 휴가는 딱 어제까지였으니까.
가끔 연금술사의 일을 도울 때마다 조금씩 돈을 받고 있긴 하지만 일감이 매일 있는 게 아니다보니 이 일하고는 별도로 다니는 직장이 하나 있다.
"신현이 너, 아르바이트는 언제 마치더라."
"점심 좀 지나서 들어올 겁니다. 아, 따로 심부름 시키실 거라도?"
"응. 나중에 돌아올 때 이걸 좀 구해서 가져와줘. 구하기 어려운 물건들은 아닐 거야."
"알았어요."
연금술사가 내민 쪽지를 품속에 집어넣고 일어선다.
밤을 샌 탓에 몰골이 말이 아니지만 보이는 것처럼 심하게 피곤한 상태는 아니다. 나는 근처의 거울에서 대체적인 옷차림만 한 번 정돈한 뒤, 곧바로 연금술사의 공방을 나서려고 했다.
"참, 그 전에.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어."
등 뒤에서 들려온 연금술사의 목소리에 다리가 멈췄다.
연금술사는 작업대 위에 비스듬이 놓여있는 검을 검지 손가락으로 문지르면서 말했다.
"이게 만약, 정말로 사람을 지배해서 조종하는 마검이라면 너는 어쩔 생각이야?"
나는 살짝 고개를 돌리고 대답했다.
"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한 번 써보고 싶어요."
"그래?"
그 말을 듣고 연금술사는 살짝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너 답지 않은걸."
* * *
아직 해가 뜨고 얼마 지나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지만 식당은 벌써 붐비고 있었다.
"신현아! 이거 3번 테이블!"
"갑니다!"
이곳은 내가 2년째 근무하고 있는 식당이다.
이름은 카르트.
밤새 도시 바깥에서 의뢰를 끝마치고 돌아온 모험가를 주 고객층으로 공략해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그럭저럭 잘 나가는 가게다.
한 손에는 맥주잔을 다발로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음식을 담은 쟁반을 받친 상태로 나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 답지 않다'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내 입으로 할 말은 아니지만 나는 꽤 겁이 많은 성격이다.
처음부터 이런 성격이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처음 떨어진 이후 온갖 사건을 헤쳐나오면서 당차던 성격은 꺾이고, 무모한 면모는 조금씩 둥글게 갈려나가면서 지금의 성격이 완성되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변화였다.
마력과 몬스터가 있는 이 세상에서 인간의 목숨은 생각보다 훨씬 가볍다.
온갖 기상천외한 몬스터와 기기묘묘한 마법의 세계에서 마지막까지 내 생명줄을 붙잡고 있기 위해서는 정체모를 존재를 두려워하고, 수상한 방향으로는 시선도 보내지 않는 겁 많은 성격이 필수로 요구되었다.
연금술사는 나를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내가 그 정체불명의 검을 포기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나 답지 않다'라고 말한 이유가 있다.
나 또한 나 답지 않은 행동을 저지르고 있다는 자각은 있다.
연금술사의 공방에 놓아두고 온 검을 조용히 떠올린다.
그것이 수상쩍인 물건이라는 건 안다. 그냥 버리는 편이 안전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루이스는 조금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겠지만 이렇게 수상한 물건을 곁에 둘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설명하면 이해할 것이다.
내가 그것을 마음 속에서 놓아버리지 못하는 건 그 검을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나는 조금 지쳐 있었다.
닮고 싶은─ 동경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을 쫓기 위해서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노력해왔지만 여전히 목표는 멀다.
나의 노력과는 무관한 체질이 끊임없이 내 다리를 잡가 끌고 있었다.
큰 실패를 겪은 직후에 나타났기 때문에 더더욱 그 존재가 절절하게 느껴진 걸지도 모른다.
아무도 뽑아내지 못한 검을 손에 쥔 바로 그 순간, 내게 비로소 기회가 찾아온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아직 그 검이 기회인지 함정인지는 알 수 없어. 아니,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 감정을 시작한 거야.'
그것을 포기하는 건 정말로 그 검이 위험한 물건이라는 것이 판명된 후에 결정해도 되는 일이다.
너무 비루한가? 이것도 다 마력 못 쓴다고 고생한 세월이 길어서 그렇다.
나는 살짝 웃은 후 목덜미를 느릿하게 주물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