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015. 파티 –맹호.
* * *
전생으로 시작하는 드림 가든
015. 파티 .
“맹호” 파티는 이미 야영 준비가 끝나고 식사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나는 그 파티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야영 준비를 시작했다.
“서준씨도 아직 식사 전이라면 우리와 함께 식사하실래요?”
“그래요. 같이 하죠.”
혼자 야영 준비 중인 나에게 최다현과 이주원이 다가와 식사를 권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마음만 받을게요.”
“네…. 알겠어요.”
친절한 그들을 보며 함께 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는 않았지만, 다시 김신일을 만날 생각을 하니 바로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1인용 텐트를 치고 침낭까지 꺼내 설치한 후 말린 고기와 식수로 간단하게 한 끼 식사를 때웠다.
그리고 자기 전 텐트 주변으로 넓게 경계 아이템을 설치했다. 이곳은 비교적 안전지대이긴 했지만,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경계를 하는 것은 딱히 마물만이 아니었다. 같은 파티의 동료에게도 뒤통수를 맞은 적이 있는 내가 초면인 저 파티를 신용할 리는 없었다.
그런데도 굳이 야영지를 옮기지 않은 이유는 저 파티가 나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닌척하면서도 “맹호” 파티의 파티원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파티 내의 구조를 파악했다.
높은 감각 스탯과 라는 최고의 감정 스킬까지 보유한 내가 저런 다소 수준이 떨어지는 파티를 확인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파티 전체의 분위기와 식사 중 오가는 대화를 통해 파티원들 사이의 관계라든지 상하 구조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김신일이 파티의 리더이자 파티장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6명의 파티원들은 남녀의 수가 딱 3:3이다 보니 한 커플씩 핑크빛 기류가 느껴지기도 했다.
다만 온전히 사귀는 것은 아니고 썸의 단계 정도? 그리고 김신일은 그런 세 커플 속으로 녹아들지 못하고 혼자 붕 떠 있었다.
“맹호” 파티의 식사 시간이 끝났다. 솥과 그릇 등 식사에 쓰였던 물건들을 정리하고 이제 잠자리로 들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다만 텐트의 배치가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2인용 텐트 하나와 일반 파티가 주로 쓰는 6인용 텐트 하나가 처져 있었다.
7인이면 파티치고는 조금 수가 많은 편이긴 하지만, 한 텐트에서 다 같이 자지 못할 것도 없었다. 아니면 파티장인 김신일만 따로 잔다고 해도 2인용 텐트가 필요할 이유가 없었다.
“다현이는 내 텐트로 오고, 나머진 저쪽 텐트로 가서 자.”
그리고 김신일의 말을 엿들으며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최다현은 이주원과 핑크빛 기류가 느껴졌었는데?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내 생각 속에서 등장했던 이주원이 김신일에게 주춤거리며 다가서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신일 형님.”
“뭐야? 또 왜?”
“이제 이런 건 그만하면 안 될까요?”
“뭐? 내가 하는 거에 불만이라도 있어?”
“그러니까….”
“에효~ 주원아. 내가 몇 번을 말하니? 이건 다 너희들을 위해서라고…. 파티 내에서 한 커플씩 만들어지고 니꺼 내꺼 이러다 보면 파티가 오래 가지 못해. 그리고 위기 상황이 오면 자기 여자 챙기느라 바빠서 파티가 더 위험에 빠지는 거야.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네 그렇긴 한데….”
“주원아!!”
“네. 신일 형님.”
“너희들 아무것도 모르고 배를 골고 있을 때 거둬주고 아이템까지 챙겨준 사람이 누군지 벌써 잊은 거야?”
“아닙니다. 신일 형님.”
“그럼 왜 또 그러는 건데? 지금까지 한 달 이상 잘 해왔잖아? 아니면 파티 내에 분란이라도 일으키려는 거야?”
“아닙니다. 제가 그럴 리가요….”
옆에서 보다 못한 최다현이 이주원의 손을 살짝 잡아끌며 이주원을 향해 입을 열었다.
“됐어. 주원아…. 난…. 괜찮아.”
“다현아….”
“이주원.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 하고 어서 가서 시은이나 현아 상대나 제대로 해줘…. 야! 희성, 창식. 너희들도 괜히 커플 만든다고 자기 짝이랑만 하는 헛짓거리 그만 두고 제대로 5명이 돌아가면서 다 해.”
“…네. 신일 형님.”
“……네.”
결국, 최다현은 김신일과 함께 2인용 텐트로 들어섰고 나머지 5명은 큰 텐트 쪽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큰 텐트 쪽에서 여러 목소리의 나지막한 신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2인용 텐트에서는 그저 살과 살이 맞부딪히는 격한 마찰음만이 들릴 뿐 끝까지 신음은 들리지 않았다.
텐트로 시야가 막혀 있긴 했지만, 나의 높은 감각 스탯에는 모든 상황이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은밀하게 모습을 숨기고 다가서는 몬스터나 도적 클래스의 모험가도 잡아내는 내 감각이 격한 섹스로 긴장이 풀려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저들을 잡아내지 못할 리는 없었다.
일단 큰 텐트 쪽은 김신일은 그렇게 말을 했지만, 정작 섹스를 하는 남녀는 식사 때 보았던 대로 핑크빛 기류가 느껴지는 커플들끼리였다.
이주원은 그들에 합류하지 않고 침낭에 들어가 억지로 잠을 청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2인용 텐트에서는 최다현의 다리 사이에서 김신일이 열심히 허리를 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최다현은 억지로 참아 내며 결코 신음을 내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김신일은 사정감이 느껴지는지 최다현의 몸에서 떨어지더니 최다현의 얼굴 쪽으로 급히 다가갔다.
“우웁….”
“이런…. 아직도 못 마시는 거야? 내가 입에 싸면 다 마시라고 몇 번을 말해?”
“죄송해요…. 신일 오빠.”
“이거 침낭이 다 젖었잖아….”
“죄송해요….”
“한 번 더 쌀 테니 이번에는 제대로 마셔. 다현아. 알았어?”
“네. 신일 오빠. 이번에는 꼭 마실게요.”
“맹호” 파티의 모든 인원이 잠이 든 것은 그 이후 1시간가량이 더 지나서였다. 마지막에 가서야 겨우 잠이 든 것은 이주원이었다.
나머지는 다 격한 섹스로 피로해졌으니 빨리 잠이 든 것도 있겠지만, 이주원은 편하게 잠을 청할 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맹호” 파티의 실상을 알게 된 나는 그저 마음이 씁쓸하긴 했지만, 딱히 그들을 위해서 해줄 것은 없었다.
사실 김신일의 말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파티원 사이에서 커플이 생기는 파티는 오래 유지되기가 어려웠다. 그것은 그 커플이 잘 되든 잘되지 않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선 파티라는 것은 서로 믿고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 목숨을 잃을지 알 수 없다.
여기는 지구처럼 무른 세계가 아니다. 항상 목숨이 오가는 몬스터와의 실전 속에서 살아가는 위험한 세계이다.
가령 파티 내의 탱과 어태커가 연인 사이라고 가정해보자.
파티가 위기에 빠지며 파티 내의 힐러와 어태커가 동시에 위험에 처했을 경우, 탱커는 아무리 어태커가 연인일지라도 우선은 힐러부터 보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힐러가 무너지면서 연쇄적으로 파티원 전체가 위험에 처하게 된다.
모험가의 상식으로는 당연한 일이지만, 과연 그게 말처럼 쉽게 될까? 탱커는 정말 자신의 연인을 희생시키면서 파티의 힐러를 구할 수 있을까?
반대로 파티 내에서 연인이었던 두 명의 남녀가 뭔가 잘되지 않아서 헤어졌을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건 딱히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김신일의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지만, 문제는 그것을 억지스러운 강요로 강제적으로 이루려고 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김신일이 이루려고 하는 방향도 잘 못 되었다. 파티 내에서 커플이 생기면 안 되니 난교를 하자니…. 그런 미친 발상이 어디 있겠는가?
더군다나 그 와중에 김신일은 스스로 욕망을 채우려고 했다.
“맹호” 파티 내 3명의 여성 중 최다현이 제일 예쁜 것을 보면 김신일은 분명 최다현을 가장 많이 자신의 텐트로 불렀을 것이다.
물론, 현재 나의 실력이라면 “맹호” 파티 7명을 모두 상대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김신일 한 명이 상대라면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것이 나머지 6명을 위하는 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들은 김신일의 강요에 하기 싫은 행위를 억지로 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김신일을 떠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정말 떠날 생각이 있었다면, 혹은 정말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면 그것을 실행에 옮길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지금만 해도 김신일은 최다현과의 섹스로 완전히 곯아떨어져 코까지 골면서 잠이 든 상태였다.
주변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 몸을 파는 여성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물며 그게 돈이 아닌 목숨이 된다면 어떨까?
김신일을 제외한 나머지 6명은 모두 초보 수준을 갓 벗어난 스스로 살아가기 힘든 모험가들이었다. 저들에게는 아마 김신일이 생명줄일 것이다.
나는 동료의 배신도 배신이지만 이런 꼴 저런 꼴 안 보려고 파티에서 나왔다. 지금도 솔로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남들의 몇 배, 혹은 몇십 배의 고생을 했다.
저들에게 그런 각오가 있다면 아마 스스로 할 것이다. 내가 나설 문제가 아니었다.
따라서 나는 씁쓸하긴 하지만 저들을 위해서 해줄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해가 뜨기 전에 먼저 야영 장비들을 회수한 후 야영지를 떠났다. 내가 떠날 때까지 “맹호” 파티의 그 누구도 눈을 뜨지 않았다.
나는 일찍부터 고블린을 사냥하며 관목 숲 사이라든지 풀이 유난히 우거진 곳들을 위주로 샅샅이 살펴보며 이동을 계속했다.
해가 서서히 기울어가며 긴 수풀이 펄처진 저 멀리 지평선에서부터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어제 야영을 했던 장소로 다시 돌아가기는 싫었던 나는 다른 야영 장소로 향하다가 하나의 빛이 반짝이는 모습을 목격했다.
분명히 인공적인 빛이었다. 어차피 다음 야영 장소에서 가깝기도 하고 호기심도 생겨 빛이 반짝인 방향으로 빠른 발걸음을 옮겼다.
빛이 반짝인 장소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장소였다. 그저 주변으로 길게 자린 풀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바닥을 꼼꼼히 살피며 이동을 하다 보니 아래로 움푹 꺼진 공간이 드러났다.
나는 장검을 휘둘러 주변의 풀들을 모두 쳐냈다. 그러자 아래로 길게 이어진 땅굴이 보였다.
분명히 천연으로 생긴 땅굴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주변의 무른 땅에 비해서 확실히 단단하게 다져진 높은 경도와 다소 다른 색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오랜 “청소업자”로서의 경력과 모험가로서의 감이 이곳이 절대 평범한 장소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나는 먼저 투척용 경계 장치와 마법등 같은 아이템들을 땅굴로 던져 넣어 안전을 확인했다. 그리고 천천히 땅굴 속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성인 한 명이 겨우 통과할 정도로 좁았던 땅굴이 점점 넓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래로 뻗어있던 땅굴의 기울기가 서서히 완만해지더니 완전히 평지로 바뀌었다.
나는 최대한 조심해서 발걸음을 옮기며 안쪽으로 조금씩 이동했다. 그리고 곧 “청소업자”로 한창 활동할 때 자주 보았던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한쪽 면을 모두 막고 있는 넓은 석벽과 그 석벽의 중앙에 있는 석문 하나. 바로 고대 유니크 신전의 입구였다.
하지만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신전의 입구 앞의 바닥에는 6구의 시체가 흩어져 있었다.
제대로 확인도 해보지 않고 어떻게 저들이 죽은 것을 알았는가? 바로 상체와 하체, 또는 좌우로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어서 도저히 살아 있기 힘든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 6구의 시체와 시체 옆에서 기절해 있는 한 명의 여성은 모두 나의 눈에 익은 사람들이었다. 바로 어제 함께 야영했던 “맹호” 파티였다.
나는 기절해 있던 여성, 최다현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펴보았다. 뒤통수에 큰 충격을 받은 것 같긴 했지만, 큰 부상은 없었다.
나는 회복 포션을 하나 꺼내 최다현의 입술에 대고 천천히 흘러 넣었다. 그러자 최다현이 서서히 눈을 떴다.
“으…. 음….”
“정신이 드나요?”
“다…. 당신은?”
최다현은 눈을 깜빡깜빡하더니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에 조금씩 빛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네. 어제 옆에서 야영했던 사람이에요.”
“네…. 아니…. 그보다…. 우리는? 주원아?”
최다현은 이제 서서히 정신이 드는지 기절하기 전의 광경이 떠오른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 먼저 이주원을 찾았다.
하지만 이주원은 이미 상 하체가 분리되어 죽은 후였다. 나는 이것을 숨겨야 하나 망설이지만, 숨길 방법도 없을뿐더러 최다현에게는 사실을 알려줄 필요도 있었다.
물론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최다현은 이주원의 상체를 껴안고 서럽게 울음을 터트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