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11. 내부자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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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인간의 몸에 들어간 슬라임. 자유로운 형태 변환을 통해서 인간의 육체에 동화를 한 녀석들은 당연하게도 자신이 공생하는 인간에게 영향을받을 수밖에 없다. 뇌를 파먹고 정신을 완전히 대체했다면 더욱 강력하게 영향을 받겠지.
다양한 경우들을 보았다. 공통적으로는 인간의 의식을 빼앗은 것이지만, 그 이후가 천차만별이었다. 인간의 육체를통제하지만, 그지능까지 빼앗지는 못한 것일까, 성대도 입도 움직이지만 정작 인간의 언어가 나오지 않는 놈들이 대다수.
그나마 내가포션으로위장시켰던 녀석들은 더듬더듬 단어라도 내뱉을 수 있었다면 야생의 놈들은 가관이었다. 인간이 연체동물처럼 흐물거리는 광경은 참으로 끔찍한 것이다. 뼈와 근육의 형태가 무너지고 반쯤 녹아내린 듯한 기괴한 꼴로 어떻게든 소리를 내기 위해꺼억대는꼴은 악몽에서 나 나올만한 것이었으니. 내가 잠이 필요 없어서 다행이지.
제대로 의식조차 뺏지 못해서 기억 소거(물리)를 한 뒤에 작업해야 한 녀석도 있었고.잠수맨과커플이 조원인 조별과제를 하는기분을 느끼며 그들에게일일이신성력을 주입하고교육을 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겸사겸사 격도 높아지고.형태 없는자손의 상위 개체면형태 있는자손인가. 하하하. 아이고 부장님 재밌습니다. 근데 부장이 나구나. 시발.
힘과 지식을 베풀어주는, 그야말로 신이 할만한 일을 하고 다닌 것이다. 직접 발품을 팔아뛰어야 한다는것이폼이 나지않지만, 어쩔 수 없지. 비록 레이나가 내 사도라고는 하지만 나처럼 자연스럽게 신성력을 다룰 수 있지 않으니. 평생을 검과 마법,정령과 함께하였는데갑작스럽게 신성력을 다루라고 하는 것은 문학도보고 우주의 물리법칙을 수식으로 나타내라는 꼴.
수천 년이라는어마어마한 세월을 투자한 만큼 이전의 힘들을 다루는 방식이 몸에베여 있을수밖에 없는 것이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또 다른장벽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배울 의지가 있고 노력을 하는 성격이니 천만다행. 만약 그녀가수천 년의세월을 앞세운꼰대였다면….
으으,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리고 그런 존재들이 그녀를 내쫓은 엘프들이라고 하니. 시설과리리스년말고 그놈들도촉수 노트에적어 두었다.
상념이 길어졌지만 역시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기에 현재 상황은 슬라임 녀석이 질문을 던진 직후. 일단 녀석을알아봐야겠다. 아무래도 겪은 적 없는이레귤러인것 같으니까.
[내가 누군지 아나?]
"예. 창조주로부터 저희를 앗아갔지만 형언할 수 없는 방법을 통해 새로운 존재로탈바꿈시켜주신분입니다."
뭘 그리 어렵게 말하나,NTR 했다는걸고급스럽게표현하네.
차토구아에게는유감이겠지만네 녀석을섬기는 슬라임들은 내가 유용하게사용하겠다고 www우효~.
상대가 이상하니 나도 이상해지네. 아무래도 이 슬라임은 확실하게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나는 분명히 녀석에게 추가적인 신성력을 주입하지않았을 텐데?
돌연변이라면 돌연변이라고 할 수 있겠지. 사무직에 달라붙은 것이 저런 유창한 언어를 내뱉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그야 슬라임들이 달라붙은 인간에는 마법사라는 족속들도 있었고, 그놈들은 마법에 미친너드들이니까. 가진지식량이어마어마하다는 거지. 하지만 몸의 주인이 지닌 지능과 슬라임의 지능이 비례하지는 않더라.
[그래. 너희를 불쌍히 여겨 거두었다. 가진 바 능력은뛰어나지만, 세상을알지 못하고 바닥을기어 다니는것을 긍휼히 여겨 힘을 주었지.]
적당히 내뱉은 말이 저절로 종교 서적에 나올법한 말투로 바뀐다. 말투 교정 패시브는 정말 옳은 것이야.
그런데 내 대답을 들은 슬라임의 표정이 찌푸려지며 부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초조하게 손에 쥔 펜을 딸깍거리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이건 예상 밖의 반응인데? 지금까지모든 슬라임은내가 찾아가면 하나 같이 위대한 분을모시겠습니다 하며넙죽엎드렸으니까. 그것이 경외와 공포로 기인한 것이든 환희와찬양심으로부터이루어진 것이든.
눈이 칠흑으로 물든 것만 제외한다면 정말인간 같은표정을 짓고 있는 슬라임의 모습이 보인다. 입술을 깨물고 불안하다는 듯 손에 쥔 펜을 만지작거리는 녀석. 진짜 신성력 주입안 한녀석 맞나 싶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의태다.
"저에게 어떤 것을 바라시는 겁니까."
마침내 질문을 던지는 녀석. 무슨 생각을 했길래 저런 비장한 표정을짓는지는 모르겠지만, 호기심을 채운다고 체통을 지키지 않을 수는 없다.
[힘을 받아들이고 지식을 연마하거라. 어린 양을 호시탐탐 노리는 늑대가 울타리 너머에 존재하니 마땅히 그에 대적할만한 그릇을 키워야 할 것이다.]
그냥 신성력 받아들여서 불시검문스무스하게넘겨.
"어떤 늑대가 노리는 것입니까.마도를단련한 자들입니까, 육신을 단련한 자들입니까."
[늑대들을오롯이통솔하는 우두머리가 탐욕을 부리지. 제 발톱이 가장 날카로운 줄만 아는 미련한 것이.]
선문답 같은대답을 들었어도 완전히 이해한 것인지 굳은 표정으로 고민하는 슬라임의 모습이 인상 깊다.반대 입장이었으면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고했을텐데 말이야. 두루뭉술한 신탁을 받고 해석하는 예언자들이대단한 거다. 신들은 쉬운 말도 의미심장하게 뒤틀어 말할 정도로베베꼬였으니까. 근데 그게 바로 나다2 스택.
"... 받아들이겠습니다. 잠깐이나마 신의 뜻에 의문을 가진 저를 용서하십시오."
[괜찮다.]
너의 죄를 사하느니라. 역시단답형으로대답하면 자동 번역기도일을 못 하는군.
사무직 요원의 몸을 차지한 슬라임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바닥에 무릎을 꿇는 자세를 취한다. 아니, 이런 예의안 차려도되는데 말이야.거 우리교단은허례허식 같은 거안 차립니다? 하지만 일어나라고 하기에는 자세부터 표정까지 너무 경건하기에 태클을 걸 수가 없다.
왠지 모르게 이 녀석을 상대로는 말투도 평소보다 더 고풍스럽게 바뀌더니만, 지금 취한 행동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상대의 의식에 맞추어서 적용된 것 같다. 번역기 만세.
눈을 감고 기도하는 자세를 취한 녀석의 머리에 실체는없지만, 손을올린다. 옛날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종교의식을떠올리며 신성력을 주입한다. 이런 신실함을 보이는데 나도 보답을 해야지. 분위기에 맞추어 엄숙하게 선언한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지.]
"저에게 이름은 없습니다. 저와 더불어 살아가는 그녀의 이름은 카산드라드뷔르. 그녀에게 축복을 내려주십시오."
카산드라라. 우연의 일치일까, 뜻깊은 이름이 들려왔다. 어느 세계관에서 불쌍한 최후를 맞이한 비운의 예언가. 그녀를 믿어줄단 한 사람만있었다면 운명이 바뀌었겠지. 21세기의 카산드라라면 분명금태양주인공의히로인컬렉션에 당당하게 입성했을 것이다.
스스로 자아를 각성한 슬라임.이제서야방어적인태도를 취한행동이 이해가 갔다. 마법사에게 달라붙었던 슬라임처럼이 녀석역시 자신이 기생하고 있는 주인에게애착 감을가진 것이다. 만약 내가 그녀를 해코지하려했다면목숨을 바쳐서라도 막으려 들었겠지.
꿈틀거리는 신성력을 끌어올린다. 형언할 수 없는 깊은 근원으로부터 오는 막대한 힘. 황금빛 광휘가 찬란하게 빛나며 방을 눈부시게 물들인다. 이전에슬라임들에게주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힘. 구석에서 조용히 과정을 지켜보던레이나 마저놀랄 정도로 끌어모은 힘을 담아 공생체가 된 요원의머리 위의손으로, 몸 내부로 흘려보낸다.
이단아로 태어났으니 그만한 힘을 지녀야겠지. 미운 오리 새끼가살아남는 데 필요한것은 억압을 이겨낼 힘과 의지다.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믿음을 잃지 않는다면 언젠가 찬란한 백조로 태어나겠지.
[너에게 이름을 하사하노라. 이지스(Aegis).네가지닌 마음이 굳건하다면, 그녀를 지킬 방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세계관에서 이름을 따온다.신화 속최강의무구. 거의 모든 매체에서 최강의 방어 능력을 자랑하는아티팩트로등장하는 이름.
이름에는 힘이 깃들어있다. 그것을 부여한 자가 격이 높은 신이라면 더더욱.
별빛이부서져 내리며그녀의 몸에 깃든다. 하나의 몸을 공유하는 두 영혼 모두에게 깃드는 황금색의 기운. 나라는 존재를 중심으로 한 소우주에서 레이나 다음으로 가장 강력한 빛을 뿜어내는 별이 된 그녀.
충동적인 결정이었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가 신인데 누가 막겠어.
어안이 벙벙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슬라임, 이지스는 마침내 현실을 받아들이고미소를 지으며언약을 맺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녀를 지키겠습니다."
슬라임 기사와 서류의 예언자.듣지도 보지도못한 조합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
"그쪽 팀이라면 조만간No. 111에투입될 겁니다. 환경이환경이다 보니접촉을 시도하시려면 빠르게 찾아가셔야 합니다. 재앙급개체다 보니작업에 투입된 이후 접근이 제한되거든요."
"아, 그 요원은 보고하러 카산드라에게 찾아올 겁니다. 작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는 서류가 올라왔으니 아마 3일 내로 찾아오겠지요."
"서류상으로는 임무 중 사망했다고나오는데…. 빠르게찾으셔야겠군요. 누군가가 따로 찾지 않는 이상 이런 말단의 기록까지 살펴보지는않을 텐데, 이미 데이터베이스에등록되어서 조작할여지가 없습니다. 단체로 당했네요. 아무래도 이들은 따로 신분을조작해야 할것 같습니다."
정체 모를전자기기와 서류가 담긴 폴더들에서 자료를 뽑아내는 이지스의 모습에 혀를 내두른다. 능력 있는 사무직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의 작업 속도에는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본 육신의주인에게 영향을받은 듯, 이지스의 이름을 부여받은 슬라임 역시일 처리속도가 어마어마하였다. 게다가 강력한 축복까지 받아 능력이 증폭되었으니 날개를 달아준 격. 아마 통제권을 돌려주더라도 같은 일이 일어나겠지. 카산드라라는 요원은 피로로기절했다일어났더니 능력을 각성한 셈이 되는 거다.
여태까지 시설 내부에 대한 끈은레이나 뿐이었기에그녀와 단둘이 모든 일을처리해야 했다. 우리 정도의 신분이라면 부하라던가하청업체에맡기고 계획만 세우면 될 직급인데일일이다녀야 했으니 얼마나 귀찮았는지.
게다가레이나는EX 등급 요원. 등급이 높기에 권한은 높지만, 높은등급 때문에역으로 행동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골치 아픈 일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저등급 요원들을 찾아가는 것. 만약 그녀가 찾아간다면 난리가 날 것이 뻔했기에 언제나마탑과약속을 잡으면서 이동 경로를 근방으로 두고 내가 따로움직이는 귀찮은방법을 사용해야했다.
내가 따로 다니기도했지만, 한계가있었다. 시설의 목적 자체가격리다 보니하나의 거대한 `시설`이 아니라 점조직처럼 온 차원에 퍼져 있는 하위 시설들을 공간 이동마법진들로연결해둔 구조이기 때문이었다. 좌표만 알면 공간 도약이라도 시도해보겠지만 아직마법진을보고 도착 좌표를 분석할 정도로 마법 실력이 좋지 않을뿐더러 내가 사용할 줄 아는 방법은틴달로스의방식이기에 마법적인 좌표와는 다른 값을 사용한다.
쉽게 말하면이동을 못 한다는소리. 게다가정신체의한계도 발견했는데 대상의 신성력이조막만 하면곁에서 구현하며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긴, 마법사 요원은 내가 들러리 신세 취급해도광기 어린믿음을 가진 놈이었고,레이나야말할 것도 없는 최고 사도니까 나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주일간 고생고생하며 수습하고 있었는데, 일이 이렇게 쉽게 해결될 줄 알았으면 진작에이 녀석을찾아갈 걸 그랬다. 뭐 나도레이나도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지만. 보라, 구석에서토끼 눈을하고 놀란레이나의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귀여워.
카산드라라는 요원은 등급은낮지만, 사무직으로서는높은 직급에해당하는듯하였다. 하긴, EX 등급 요원이랑 독대할 정도면 권력도 능력도 있는 사람이겠지. 그리고 그 사실은 우리에게 천군만마처럼 든든했다.
내가마탑을통해 뿌린 슬라임들은 신성력을통해 추적할 수 있다.정신체로나타나는 것은 불가능해도 슬라임 네트워크를 통해 기억을 엿볼 수는 있다는 거지. 그리고 그 정보를이지스에게넘기면 즉각적으로 요원에 대한 더욱 구체적인 정보와 접근 방법까지 술술 나오는 것이다.
비교하면 안 되겠지만,레이나와비교할 수밖에 없는상태. 직위가직위일뿐더러전투요원이다 보니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이지스에게이 일을 맡기자 막혀있던 둑이 터지며 술술 해결방안이 쏟아져 나왔다.
공식 보고서와 네트워크에 올라온 정보나커뮤니티 등각종 비공식적인자료 등을통해 행동을 분석하고 계획을 짜내는 이지스.초 패왕항우가 힘만으로 천하를 정복하지 못한 것처럼 같은 길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도 참모 역할을 할 존재의 필요성을 느꼈는데 이렇게구하게 된다니.
여태까지는 사실상 레이나가 시설 내부의 모든 일을담당했지만, 이제는이지스에게그 역할을 넘기면 되겠다.레이나는내가 활동하지 못하는 구역에서 전투력을 담당하면 되고. 제갈공명과오호 대장군처럼. 대장군이 한 명뿐이지만. 슬라임 붙은 두 요원은 취급안 한다.
그런데 레이나가뾰루퉁한표정을 짓고 있다.나름 감정은 숨겼는지불만이 정신을 통해 전달되지는않았지만….
일단 눈꼬리가 1mm 내려갔다. 그리고 분당 심박수가 3 늘어났고. 오른쪽 귀가 약간 쳐졌네. 딱 봐도 무언가불만을 느끼고 있다는점을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잘 풀리고 있는데 무슨 일일까.
[레이나, 무슨 일이 있나.]
[네?]
[불만스러운표정이다만.]
[아…. 그렇게티가 나나요?]
[아니. 다른 자들이라면 눈치채지 못하겠지. 하지만 내가 너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있으리라 생각하나. 나의 사랑은 무겁고 깊은 것이다. 질척질척한 감정이니 언제나 너를 휘감고 있지.]
사랑 고백에 귀를 쫑긋거리며 기쁨을 표한다. 다만 남 앞이라고 혈류까지 통제해서 귀가 붉게 안 물들도록 조정하다니. 부끄럼쟁이구먼.
[주인님, 음습해.]
[너를 위해서라면 그 누구보다도 음습하고 추해질 수 있다. 나는 질투심이 많은 신이다.]
[...♥]
설탕처럼달달한감정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눈다. 잠깐 떨어졌던 것이기폭제가 된것일까, 우리 둘의 감정은 더욱 거칠게 불타오르고 있다.
[그래서 어떤 불만이 있는 것이냐. 불편한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얘기해주거라.]
[이지스...라고불리는 슬라임, 정말 일을 잘하지 않나요.]
응?
[지금 계획 짜는 것을 보면 굳이 제가 없어도 남은 일들을 다 처리 가능할 것같은데….]
말끝을 흐린레이나였지만이미 그녀의 생각이 모두 전해졌다.
나만 질투심이 강한 줄 알았더니. 흐흐.
아무래도 자신이 일하던 것을 뺏겨버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게다가 나와 단둘이서만 일하던 상황마저 바뀌었으니 질투 스택을 추가로 적립한 거고. 진짜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더 사랑스러운 모습이 드러난다.
나는 흐뭇하다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고 그 내용을 고스란히 읽었는지투닥투닥거리는듯한 감정과 부끄러움이 전해져온다.거 그럴수도 있지 뭘 그리부끄러워하시나. 흐흐흐. 아, 미소가 절로 나온다.
[주인님, 미워.]
[흐흐, 어쩔 수 없는 일이니그 정도미움은 내가 감당하도록 하지. 하지만 신으로서 나의 유일한 사도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알콩달콩 데이트를 원한다면야 얼마든지 시간을 내줄 수 있다. 이지스의 힘만으로 처리하지 못할 문제가 있으니.
[일단 내 휘하의 슬라임들에 대한 계획은 정리해서 나에게 알려주도록. 하지만 아직 큰 문제가 남아 있다.]
"No. 245 에 투입되었던 요원들을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렇지. 아까도 말한 것처럼 죽은 팀이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경우도있다 보니그쪽이 가장 큰 문제다. 무엇보다 내 권속이아니다 보니신성력으로 추적도 불가능하고. 그나마차토구아의기운을 흘리고 다녀서 추적은가능하지만, 나밖에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문제다.]
차토구아를접한 존재가 하나 더 있기는 하지만 굳이 언급하지는 않는다. 왜, 뭐. 데이트 신청을 받았는데 칙칙한 남정네가 끼어들 자리가어딨냐. 놈이 일을처리할 때마다데이트 시간이 줄어드는 거나다름없는데. 절대로 안 부른다.
"그렇다면 투입된 인원 모두가 잠재적인 문제라고 추정하고 시작해야겠네요."
[그렇지. 일부는차투구아 쪽네트워크로알아냈지만, 자유를만끽하려고 하는지 작정하고 숨어든 녀석들이 많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발품을뛰는 수밖에 없다. 일단 나와 레이나가 여태까지 추려낸 녀석들과 발견은했지만아직 접근하지 못한 녀석들 리스트를 보내주지.]
신성력을 통해머릿속에서정리해둔 정보를 넘긴다. 인류에게 인터넷과SNS가있다면 나에겐 신성력과 슬라임들의 정신을 기반으로 한 네트워크가 있다.
"전달받았습니다. 이 목록까지 참고해서 계획표를 짜도록 할게요. 슬슬 카산드라에게 주도권을 돌려줘야 하니 시간은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되도록빨리 처리해주도록. 시설에서 슬라임의 능력을 얼마나 빠르게파악할지 모르니.]
"그것까지참작해서계획을 짜도록 하겠습니다.
[고생이 많다.]
"아닙니다. 나중에 네트워크를 통해연락드리겠습니다."
[오냐.]
꺼내두었던 서류들을 본래 자리에 돌려놓고 단말기를 조정해서 기본 상태로 돌려놓은 이지스. 눈을 물들였던 검은 점액질이 빠져나가면서 눈이 감기기 시작한다. 눈이 완전히 감기고 고개를 푹 떨구더니.
움찔.
"어…. 으에? 뭐, 뭐야.잠든 건가?"
둥지에서 깨어난아기 새처럼두리번거리며 혼잣말을 내뱉던 카산드라는 출입구 근방에 서 있는레이나를보더니, 몸을크게 떨며 깜짝 놀란다.
"아, 아직 안 가셨네요. 으아, 저 얼마나 잤나요."
정신을 차린 지 얼마안되어서일까, 격식 없이 질문을 던지는 모습이 퍽 귀엽게 느껴진다. 그 감정을 숨기지 못한 것일까, 레이나가 질투심을 표하며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5분 정도밖에 안 지났습니다. 나가려던 참에 갑자기 쓰러지셔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자세하게 파고들면 이상하게 느낄 문장이었지만 정신이 없는 것일까, 카산드라는 그저 황송하다는 듯 감사의 인사를 연발하더니 한숨을 푹 쉬고 다시 서류의 산에 얼굴을 파묻었다.
레이나 역시 인사를 한 뒤에 방을 나섰다.
[큭큭큭.]
[웃지 마세요. 바람둥이 주인님. 웃지 마요!]
또다시 바쁜 미래가 찾아오겠지만, 지금으로선 이 순간을 소중하게 즐겨야지.
그렇게레이나를신나게 놀려대며 새하얀 복도를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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