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했더니 촉수괴물-71화 (71/74)

〈 71화 〉 11. 내부자들...?

* * *

70.

드림 랜드로부터 귀환한 지 약 일주일. 돌아오자마자레이나와만나며 정신적인 피로를 치유하는 시간을가졌지만, 그후로부터는 잠깐 행복했었던 그 순간을그리워할 수밖에 없을정도로 바쁜 시간을보내야만 했다.

기나긴 방랑을 마치고 육체로 돌아온정신체. 나라는 존재가 온전해지자마자 확인했던 것은 새로 생겼던 혹,세 번째핵이었다. 핵이생기고 나서능력을 자각했던 것만큼 핵 자체에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있을까 살펴보았지만 한참을 뜯어보아도 결국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전의 핵들처럼 내 몸의 중심을 잡아주고 어마어마한 힘을 내포하고 있으며 꼼짝도안 하며빛난다는 특성. 그래도 크기가 2.2디스코볼에서2.7디스코볼로늘어난 것을 보아 머지않아 완전한 핵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내용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산수만 할 줄 알아도 알만한 내용이지만.

물론 아무런 변화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핵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지니고 있는힘이 늘어났다는 것이고이세카이에서힘은 언제나 옳은 방향의 성장을 의미하였다. 무협지의마교처럼강자존을부르짖지는 않지만, 힘이 있는 자가 더 많은 것을 쥘 수 있는 세계이니.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현대에서 돈이 지닌 가치와동일하다고볼 수 있는 것이다. 많을수록 좋다.

육체 점검만으로 끝났으면좋았을 텐데, 격리실로돌아오고 나서발견한 것은 난장판이 되어버린 광경이었다. 육체를 떠났어도 시설의 시야를교란시키고있던 마법이 유지되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난리가났을 거다.

우리 귀여운까망이 녀석역시레이나처럼내 신성력을 품고 있었고, 그 양 또한무시하지 못할정도다.

무슨 말이냐고?

레이나가 내가정신체로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한 것처럼 이 천방지축 슬라임 역시 내 정신이 온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정신체가떠난 육체는 마치 오토파일럿 기능을 켜둔 기체와도 같은 상태. 귀청이 터질듯한 음악을 틀어놓고 운동을 하면 육체의 고통이 멀리 느껴지는 것처럼 내 육체에 대한 지배 자체가 풀리는데 요놈은 그걸 파악한 것이다.

덕분에 시설 내부를 마음껏 돌아다니며 사방에 점액질을 덕지덕지 발라놓았다. 다른 슬라임들이야 여전히 공포에 벌벌 떨면서 접근도 하지 않는 내 육체가 활동하는 장소를 제안방처럼들락날락하면서헤집어 놓은 것이다.

그뿐이랴? 내 몸까지놀이기구마냥사용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촉수가 아주 그냥끈적하더만. 아 물론 슬라임이 촉수를 건드리는 것이 별수있냐고 누군가는묻겠지. 비록 끈적한 감각은 불쾌했지만 당연하게도 내 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몸 내부에 갖추어둔 환경이 망가진 것이 문제였다. 그것도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되어버렸다.

이전에데일이줬던식물도감을통해서 흙 없이 기르던 작물들이 모조리 사라졌다. 그것으로 끝나면좋을 텐데보관하고 있던 도감과아티팩트들까지사라져 버린 것이다. 처음 발견하고 얼마나 놀랐던지. 당연히과거시로범인을 색출하였고, 미끄럼틀 타듯이 신나게 촉수를 타고 놀면서 그 모든 것들을 맛있게 퍼먹은 우리까모군(0세)이라는범인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불행 중다행은 에이본의 서는 먹지 않았다는 것일까. 안먹은 건지못먹은 건지는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혼란과 분노를 느꼈지만 이내 감정을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슬쩍 시선을 돌리자 옹기종기 모여있는 슬라임들 가운데 빛나는 가루를 흩뿌리며 날아다니다가 움찔 멈추더니 눈치를 보는까망이의모습이 보인다.태어난 지1년도 안 된 녀석. 그런 녀석에게 어떻게 화를 낼 수 있을까. 부주의한 내 잘못이라고밖에 할 수 없지.

그나마 먹은 식물들의 능력을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녀석이 성장했다는 뿌듯함을 느끼는 정도랄까. 부모의 마음으로생각하는 거다. 어린애가 부모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사고를 치면어쩌겠어,수습할 수밖에.

녀석의머리를 촉수로쓰다듬자 언제 기가죽었냐는 듯다시 무리를 데리고 신나게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무슨 원리로 날아다니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내가 못 키웠던종자 중하나를 사용하는 것 같다. 내용을 떠올리자면 떠올릴 수는 있겠지만 귀찮으니 넘어간다. 귀여우면 됐지 뭐.

비극적인 도감의 최후와는 달리까망이의마수를 벗어난 에이본의 서는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였다. 드림 랜드에서 겪었던수많은 일과새로운 생물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볼 수 있었으니. 가장 먼저거미 괴물의이름이아틀락나챠라는것을 확인했지. 내 이름을모르다 보니남의 이름이 자연스럽게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그 외에도수많은 대명사와고유 명사들을외웠다. 문 비스트,나이트건트,샨타크…. 온갖괴물들과 신들의 하수인들의 명칭들을 외워두었다. 시체로 만들어낸크리스마스트리에명복을 빌어준다는 마음가짐을 먹자 쉽게 외워졌다. 얘는 나무 꼭대기에 참수되어 장식되었고, 얘는 몸이 반쯤 터져서 내장이흘러나왔고…. 이처럼정말 기억하기 쉬운 특징들이니까.

그리고 대망의 두 놈.노랭이와정체 모를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았지만역시나였으니. 일단노랭이놈의이름은 알 수 있었다.

[형언할 수 없는 대제사장]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불쾌한 놈이긴 했지. 다만 놈이 어떤 녀석의화신체인지는검열되어서 볼 수 없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처음 보는 검열 방식이었으니.

[□□□]

[■■■■■]

무려글자 수가번갈아 가면서달라지는 방식으로 검열된 것이다. 이름이 두 개라는 걸까,화신체의본명과 신으로서의 이름을 나타내는 것일까, 혹은두 가지신의화신체라는뜻일까.

고민이 많아지는 항목이었지만 결국 탐구를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단서가 없었으니까. 그나마 건진 것이 있다면 저 검열된다섯 글자는문 비스트의 항목과샨타크의항목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 즉,기어 오는혼돈이라는 존재의 본명이 다섯 글자라는 사실 하나는 건져내었다.

검열맨이융통성을발휘한 걸까, 내가 검열을피해 간것일까. 게다가 놈은검열맨의정체에 대해서어느 정도파악하고 있었으니 더욱 심하게 검열될 줄 알았는데.

뭐, 반대쪽 항목은 검열되었으니 역시 그쪽이 진짜 문제가 되는 부분이었겠지.

나를 습격했던 놈에 대해서 찾자아니나 다를까나에 대해서 찾을 때처럼 글자들이 떠오르다 순식간에 검열되어서 사라졌다. 초월적인 감각으로도 감지할 수 없을 정도의 찰나에 사라진 정보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과거시라는어마어마한 능력을 각성했기에 이전처럼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처음으로검열빔을상대로 자그마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덴■]

놀랍게도 검열은 과거로 시점을 돌려 바라봤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이 적용되었다. 상대 역시 시공간에 간섭이 가능한 존재라는 정보를 얻은 것이다. 이후 글자들은 빠르게 없어졌지만, 중요한 것은 이름에서 한 글자를 발견한 것이 아니다.

[엘더갓의 수장.아우터 갓들을봉인한 존재.나이트건트들이섬기는 존재. ■■■■■의 권속을 사냥하는 것을 취미로 삼는다.그레이트올드원 및아우터 갓들을멸절시키는 것이 목표. ■덴■는….]

이름에 힘이 담겨있는 만큼 대명사에 신경을 써서일까, 내용을 제대로 검열하지 못한 것이다. 이 내용 역시 황급하게 지워졌지만 이미 기억에저장된 만큼언제든지 꺼내어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을 보아하니기어 오는혼돈이라는 놈이 이놈을 지독하게싫어할 만한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신을 섬기는 신도를 사냥하는걸취미로 삼는다른 신이니죽일 듯굴겠지. 더 중요한 것은 봉인에 대한 말이었지만.

나는 분명히기어 오는혼돈이 마법사 요원과 함께봉인에 관한 얘기를나누는 것을 들었다. 그 내용이 나를 암시하고 있다는 사실도. 즉 이놈이 나를 봉인한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건데, 여기서많은 의문점이등장한다.

놈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정신체상태라서 그랬을까. 그렇다고 하기엔 나라는 존재가 지녔던 강함이 설명되지 않는다. 핵 2개반도 안 되는상태에서 놈의 힘을 이겨낼 정도였는데, 이마저도 봉인된 상태라면 기존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는 거니까. 그런 놈을 상대로 못 알아본다고?빈 라덴이부시를못 알아본다는소리나 마찬가지지.

뿐만 아니라나를 봉인했다는 것 자체가 의문이다. 지금도 통제하지 못하는데 격이 온전한 시절의 나를 봉인한다고?말도 안 되는소리. 크나큰 모순이 생기는 일이지만 에이본의 서에는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있었다. 시공간까지 왜곡해서 사실을 감추려고 든 것을 보아 정말로 중요한 내용이라는 것을 반증해주고 있고.

기어 오는혼돈이말한 대로정말 시스템이라는 흑막이 있는 것일까. 문제는 그 말도 이상하게 여겨진다. 이쪽 세계관은 시스템이나상태창이존재하지 않으니까.거지 같기는해도 시설은 나름 세계의 중축이 되는 장소인데상태창을사용하는 요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차원을 지배하는 것은웬수같은리리스년과2명의 신. 어디에도 시스템이 낄건덕지가없는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듯, 의문을 해결하면또 다른의문이 생기는 상황에 답답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 감정 역시 바쁜 현실에 치여잊을 수밖에없었으니….

"이쪽입니다."

레이나의안내를 따라 순백의 통로를 지나간다. 언제나 봐도 병적일 정도로 새하얀 복도는 분명 요원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졌겠지. 그래도 아무 의미 없이 참호를 파고 다시 메우는 과정보다는나으려나. 청소라는 행위는 마무리지었을 때그나마 보람은 느낄수 있을 테니까.

검은 모자와 제복 사이로 찰랑거리는 푸른 머릿결이 눈에 들어온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닌지 통로를 지나며레이나를향해 흘끗흘끗 시선을 던지는 요원들의 모습들이 보인다.남녀를 안 가리는마성의 레이나. 하여튼예쁜 건알아가지고.

이런 여인이 영혼의 동반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나만 보고 싶다는 음습한 독점욕이 동시에 일어난다.레이나의직위가직위다 보니어느 정도두려움을 느껴서 다행이지 조금이라도 더러운 시선을 던진 놈이 있었다면 그대로 뇌를 파먹고 눈알을 뽑아버리도록 슬라임을투입했을 것이다.

그래, 슬라임.

내가 갑작스럽게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슬라임들 때문이었다.

드림 랜드에서꽤시간을보냈었지만, 이쪽에서는단 1초도 흐르지 않은 상태.레이나에게들러 이런저런 회포를풀고 나서나는 육체로 돌아가서 휴식을취했지만, 같이이동했던쩌리 녀석은아니었다.

사이크라노쉬와연결된 통로는 여전히 열려있었고 그곳을 통해 슬라임들이끊임없이쏟아져나온 것이다. 범인은 현장에 돌아왔지만, 수습할 생각이 전혀 없던 것이다. 게다가차토구아는모종의 이유로 부재중, 분명 적당히 요원을 도와주고 멈춰야 할 녀석들에게 제동을 걸 브레이크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내가떠날 때만해도 복도를 뒤덮기 시작했던 슬라임들인데, 나중에 들어보니 그쪽 시설은 완전히 슬라임에 잠식되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지금도 나를골치 아프게하는 문제가 터진 것이다.

차원을 넘어가기 전에 일어났던 반란 덕분에 그쪽 격리실은 시설의윗대가리들에게찍혀 있는 상태였는데 사건이 해결되기도 전에 새로운 관리 개체가우르르쏟아져 나왔으니.

부랴부랴 인원을 투입했지만 급파된저랭크요원들은 당연히슬라임들에게역부족. 결국레이나와동일한EX 등급의요원까지투입되어서겨우 격리 절차를 마무리 지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문제는 요원의 몸을 빌려 탈출한 놈들이있다는 것. 자아를 얻고 상위 개체의 모습을 보였던슬라임에게영향을 받은 것인지 작전에 투입되었던 요원들 일부의 몸에 몰래기어들어 간놈부터 완벽한 의태를 성공한 놈까지.

나도 다시 마법사 요원과 결합한 슬라임이 알려주지 않았다면 모를 정도로 깔끔하고 신속한 의태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설에서는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지만, 밝혀지는것은 시간문제겠지. 지능과 학습 능력이 있으니 시간이 지난다면 완벽한 모습을 보이겠지만, 당장 차원을 넘어온 지일주일도 안 된 놈들이 해낼수 있을 리가.

어차피내 것이 아닌차토구아의권속들이니 뭔 상관이 있겠냐 할 수 있겠지만, 생각보다 상황이골치 아파졌다.시설로서는이 슬라임이나 저 슬라임이나 거기서 거기. 같은 개체로서 취급할 것이 분명하고, 그 말은 대탈출을 감행한 녀석들이 걸리는 순간 시설 전체에 점검이 들어갈 거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시설을 밑바닥부터 야금야금 갉아 먹기위해서 슬라임을포션으로속이고 퍼뜨려놨었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마탑과레이나가 엮여있고. 당연히발 벗고나설 수밖에 없는것이다.

고의는 아니지만 거하게 트롤링을시전해버린미물들 때문에 촉수 무거운 내가나서야 한다는말이다.

목표는 두 가지.

탈출한 놈들에 신성력을주입시켜강제로 내 권속으로 만드는 것. 내 휘하에 있는 슬라임들은 나름 경력직들도 많고 짬밥도 찬 녀석들이많다 보니소속만 바뀌면 바로 신성력으로 결속된 정신계 네트워크를 통해 교육해줄일타 강사들이넘쳐난다는 것이다. 업계의 선배들에게 지식을 전달받으면 야생의 녀석들도 빠르게 능력을 갖출 수 있겠지.슬라임들에게군체 의식이 존재한다는 점에 압도적 감사.

그렇게 지식을 주입하면 다음 과정은 뭘까, 당연히 그에걸맞은힘을 부여해주는 것이다. 신성력을때려 박아넣으면 된다는 거지. 이 과정은야생 것들뿐만 아니라 내가 퍼뜨려둔슬라임들에도해당하는 사항이다. 전사와 마법사 요원에게 들어간 슬라임들처럼, 충분한 양의 힘을 공급해준다면 설령 검사가 있더라도 기운을 통해 버티거나 회피하는 등 어떻게든 수단을 갈구할 수있는 것이다.

슬라임들에 대한 특성이 밝혀지는것은 시간문제.레이나에게들은바이미 온갖 종류의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니 이번 임무는 타임미션이되어버린 것이다.

"이 문 너머에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약을 나누어준 요원입니다. 그럼, 진입하겠습니다."

숨 막히도록바빴던시간들을회상하던 도중 목적지에 도달했다. 오늘만 해도 벌써 몇 명을들른 걸까. 똑똑, 레이나가 문을 두드리자 내부에서 피로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를 의식하고 고개를 한 번 끄덕거린 레이나가 문을 열고 들어간다.

눈에 들어오는 광경은 서류, 서류, 서류.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 가운데 한 여성 요원이 피곤한 표정으로 작업을하는 모습이눈에 띈다.여태껏찾아다녔던 사람들과 전혀 다른 모습에 놀란다. 전투 요원들에게만보급됐던것으로 기억하는데. 야생 녀석들도토벌하러 온요원들에 붙은 만큼 사무직 요원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보고를 올릴 때 자주 만났던 요원입니다. 융통성도 있고 능력도 좋아서 가능하다면 그녀에게 일을 맡깁니다. 항상 피곤한표정에 과로하는것처럼 보여서 제가 개인적으로포션을제공했습니다.]

내 궁금증을 읽은 것일까, 육성이 아닌 정신으로 설명을 해주자 상황을 바로 이해했다.레이나의재량에 맡긴포션을처음으로 사용한 것처럼 보이는데, 아무래도 저 요원은 그녀의마음에 쏙 든모양이다. 다만 정상적인피로회복제가아니라 괴악한 생명체가몸 한구석을차지했다는사실에 대한 것은 금시초문이겠지.

모로 가나기어가나 서울만 가면 된다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동거인(?)이 늘어난 것만 제외한다면 신체 건강에 큰 도움이 되는 슬라임을 얻었으니 도움은됐을거다. 다만피곤함에절어있는 표정을 보아하니 강화된 신체 능력에도 불구하고 업무량이 비인간적으로 많아서 여전히 고생길이훤해 보였다. 불쌍한화이트칼라노동자 같으니. 아, 여기선블랙칼라인가.

"오늘은 어떤 일로 찾아오셨나요?"

"저번에 부탁드렸던 검의 회수 요청에 대한 답변을 들으러 왔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대화를 거는레이나를놔두고 초감각을 활성화한다. 겉으로 보고 느껴지는 것은 평범한 인간. 하지만 감각을 더욱 세밀하게 조정하자 그녀의 신체 곳곳에서 이변들이 느껴진다. 정상적인 인간의 신체조직보다 월등하게 우월한 것들. 찾았다.

"안 그래도 연락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조만간 담당 연구원으로부터 연락이갈 거예요.더는실험 진행이 불가능해서 마지막 실험만 끝마치면 회수 절차가 진행될 거예요."

"마지막이라는말씀은….

내가 그녀를 살펴보는 동안에도 대화는 이어지고 있었고, 서류의 산더미에서 종이한 장을뽑아내더니레이나에게건네는사무 요원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보고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등급요원들뿐만아니라 이번에 S등급 요원 한 명이 자원했었죠. 아무래도레이나님의병기였던 만큼 좋든 나쁘든 이목을 끌게 된것입니다만…. S급의요원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보고서를 슬쩍 훑어보자 한 인간이 어떻게,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과정을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내용으로 정리해둔 글이 읽혔다. 마지막에정신줄을놓은 상태를 보아하니 `이계신` 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쯧쯧, 그러게 왜 되도 안되는 욕심을 부려서.

완전히 미쳐버린 사내의광기가 어린표정이 담긴 사진을 보며 혀를 차던와중, 그의손에 쥐어진 검이 낯에 익은모습을 띠고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의아한 감정으로레이나의허리춤으로 시선을 옮기자 비어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그러고 보니`검` 회수라고 했지. 대화에 집중을안 하고있다 보니무심코 넘어갔는데, 아무래도 그 수다쟁이 검이 잡혀간 모양이다.

"결국 더 높은 등급으로넘어가야 하는데…. 피해자가속출한 만큼당연히 자원자가없다 보니레이나님께요청을 넣으려고 하는 겁니다. 현재 검의 정신 오염 능력이 어마어마한데, 원래 주인이라면 영향이 없지않을까라고가정하고있나 봅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지만 불쾌하다는 감정이 가득 전달된다. 하긴, 보아하니 본인의 동의도 없이 검을 압수했다가 호의를 베푸는것처럼실험쥐로서도와달라고 하는 꼴이니 화가 안날 수가 있나. 진짜시설 놈들은개박살이나야 된다.

"상황은 알겠습니다. 연락을 기다리도록 하죠.감사합니다."

"감사라뇨…. 읽어보니아주개판이던데요, 뭐. 이런 소식을전달해야 해서제가 다 미안해지네요. 그래도 힘내세요!"

주먹을 불끈 쥐는 사무직 요원의 모습에 어느새 미소를 짓고 있는레이나의감정이 느껴졌다. 겉으로는 여전히 얼어붙은 듯한 표정이지만. 왜 별명이 붙었는지알곘네.

그나저나 과로를 달고 사는데도 저런 밝은 성격이라니, 레이나가좋아할 만도하다. 뭐, 그건 됐고 이제 대화도 마무리된 것 같으니 슬슬 시작해야겠지.

자리에서 일어나는레이나에게꾸벅목례를하더니 다시 인상을 찌푸리며 서류로 눈을 돌리는 요원. 그녀의 시선에서 벗어난 레이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신호를 준다.레이나의곁을 떠나 그녀의 머리 위로 자리를 옮긴다. 제목 모자와 긴 머리카락 사이로 종이를 빽빽하게 채운 글자들이 보인다.

천천히 신성력을 끌어올려 그녀의 몸 내부로 흘려보낸다. 가느다란 신성력의 실이 그녀의 신체를 따라 줄기줄기뻗어나가지만, 서류에온 정신을 쏟는 요원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순식간에 그녀의 몸 전체를 훑은 신성력. 키와 몸무게부터 민감한 정보까지 저절로 파악되기를 잠시, 마침내 그녀의 몸 내부에 잠들어있던 나의 신성력이 깨어난다.레이나에게주었던슬라임인 만큼당연히 내 권속이었던 녀석.

자, 이번 슬라임은 어떤 녀석일까. 일주일간 다양한 슬라임들의 패턴을 볼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어떨까. 첫사무직인 만큼어떤 스타일일지 기대가 된다.

서류에 쭉쭉 줄을 긋던 그녀의 손이 움찔하고 멈춘다. 여전히 고개를 숙인 상태로 부들거리기를 잠시, 마침내 몸의 떨림이 멈춘 그녀가 허공에떠 있는신성력을 감지한 것일까, 고개를 들어 나를 직시한다.

흰자위까지 완전히검게 물든눈동자와 시선을 마주하고.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놀랍도록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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