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했더니 촉수괴물-70화 (70/74)

〈 70화 〉 10. 드림 랜드 (13)

* * *

69.

컹컹.크르르!월월!

입으로부터 푸른색의 침을 질질 흘리는 개들을 바라보며키라누는한숨을쉴 수밖에 없었다.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겠다더니.

그나마 이제 겉모습이 개처럼 보인다는사실에 위로받아야겠지. 이전의 형상 그대로 시설로 돌아갔다면 그대로 격리조치당했을것이 분명했다. 시공간을 자기들 마음대로찢고 다니는놈들 상대로가능할지가의문이었지만. 확실한 것은 관리 개체를 데려온 그를 시설이 가만히 둘 리가 없다는 것.

돌아가면마탑에다연락을 취해야 하나. 대충 실험 부작용으로 침이 파란색으로 변했다고 보고를 올리면 되겠지. 실험 재료로 달라고 하면 골치 아파지겠지만. 실체는 개가 아니라정체 모를괴물이다 보니분비물 역시 특수한 효과를 지니고 있을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마법사들은 이 새로운 재료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겠지.

헥헥.

두 뒷발로 일어선다면키라누보다도클것 같은4마리의 개들과 달리 아주 자그마한 녀석.이계의신이 형태를 바꾸어주기 전부터 작았던 녀석은 인간의 시점에서 자연스럽게 보이게 바뀐 결과 강아지의형태를 띠고있었다.키라누의발밑에서 빙글빙글 돌아다니며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녀석은 인정하기 싫지만 귀여웠다.

아마 꼬맹이들이라면 강아지를귀여워해 주겠지. 양쪽 다 진짜 사람과 강아지가 아니지만.

꼬맹이들을 떠올리자 그들과 함께 있던 그녀가 떠오른다. 상냥하게 아이들을 돌봐주던 그녀. 아이들과 놀아주며 배시시 웃던 그녀. 아이들이 잠드는 것을 보다 고개를 돌려그를 바라….

쓸데없는상념이 길어졌다고 애써 생각의 방향을 돌린키라누는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분명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마음에 가슴이 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다른 이유 때문은아닐 거다.

"그럼 슬슬돌아가 보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요원복바지를 툭툭 터는키라누.요원복에는기본적으로클린마법이 내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기분적인 부분이랄까. 옷단이 흔들리며 내부에 머금고 있던 먼지를 자욱하게 뿜어낸다.

"나중에 연락하도록 하지. 자네가 지나왔던 통로를 알려주었으니이 녀석들이인도하는 길로 따라가면 될 거다."

"신께서는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자네 덕분에 해결된 의문점들이 많아. 하지만 새로 얻은 의문들 역시 존재하지. 그것들을 해결하러 돌아다니겠지. 이번 일의 뒤처리도해야 할거고. 이대로 놔둔다면차토구아가날뛸 테고, 자네 차원 역시 무사하지못할 테니."

꼬리를 살랑거리는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요원에게 말을 건네던 노란 로브의 화신은 다시금 옥좌 위로뚜벅뚜벅걸어 올라갔다. 마침내 황금색의 찬란한옥좌 위에걸터앉자고개를 푹 숙이는 모습과 함께 공간을 지배하고 있던 압도적인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인가.키라누는처참한 모습의 방을 돌아보며 잠시 과거를 떠올렸다.몇 달전까지만 해도 분명 평범한요원이었을텐데, 어느 순간 말려들게 된 어마어마한 모험극. 다른 요원들에게 말해주더라도 미친놈 취급을 받겠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그는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걸었다.

"집으로데려가 주렴."

근데 얘네가 말을 알아듣던가?

잠시 들었던 걱정과는 달리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던 강아지가 컹컹 울부짖자 다시 공간이 뒤틀리는 느낌이 들더니 바닥에 일렁거리는 포탈이 열리는 모습이 보였다. 부서진 잔해의 각진 곳에 출현한 통로.

하나둘씩포탈의 건너편으로 사라지는 개들의 모습을 잠깐 지켜본키라누는마지막으로 넘어간 강아지를 따라 포탈을 지나갔다.키라누의몸이 포탈 내부로 완전히 들어간 순간 일렁거리며 공간을 비틀던 포탈 역시 사라졌다.

***

No. 245의격리실. 아니, 격리실로 불렸던 곳에서는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무너진 저택. 곳곳에 마법이 터진 흔적이 남아있는 정원. 사방에 널려 있는 시체. 지상의 흔적만으로도 시설에서기함할 텐데지하는 더욱 심각한 상태였다.

스멀스멀.

마력 패스가 끊겨 깜빡거리는 불빛 아래 그림자 사이로 지나다니는 검은 형체. 통로 사이로 메아리치는 누군가의 처절한 단말마.우드득거리며무언가 분쇄되는 끔찍한 소리.

온 사방으로부터 맡아지는 피와 죽음의 냄새는 단련된 요원이어도 으슬으슬한 느낌을받을 수밖에 없을것이다.

새하얗던 통로는 정체 모를 것에 잠식되어 끈적끈적한 점액질이 뒤덮고 있었다. 끔찍한 사실은 점액질이 마치 살아있다는 듯이 서서히 퍼져나가고 있다는 사실.

빛을 갈구하는 망자처럼 서서히 뻗어나가며 제 앞의 모든 것을 잠식하는 끈적한 액체는 느리지만 완벽하게 복도를 뒤덮고 있었다.

어떤 장애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글부글 끓으며 끈적한 점액을 방울방울 터뜨리며 나아가던 점액질. 그 막힘 없는 전진에는 갑작스러운 제동이걸릴 수밖에 없었다.

츠스스스.

어디선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복도의 공기를 무겁게 짓누르더니 이내 강렬한 섬광과 동시에 사라진다. 순간적으로 강렬한 존재감이 느껴지던 찰나, 자욱한 연기가 걷힌 자리에는 바닥을데구르르구르는 자그마한 돌멩이 하나만이남아있었다.

갑작스럽게 생긴 이변에 진행을 멈추었던 점액질이었지만 그 이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다시금 끈적거리는 몸을 뻗어나가기 시작하였다. 섬광과 함께 나타난 돌멩이 앞에서는 움찔 멈춘 점액이었으나 이내 돌멩이마저 검은색으로 뒤덮여 사라졌다.

`돌아왔군.`

바닥을 타고 흐르는 슬라임을 향해 의식을 뻗자 반갑다는 기분을 가득 담은 뭉글뭉글한 의식이 느껴졌다. 익숙한 슬라임의정신세계를만끽하자 새삼 돌아왔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

차원 이동이라는 어마어마한 사건은 누군가에게 설명해주더라도 쉬이 믿지 않을 만한 업적.레이나에게말해준다면 믿겠지만 지구에 살던 가족에게 설명해준다면 단한 명도믿지 않겠지.

가족이라.

지구에서스물하고도몇 년살았던 것과 달리이곳에서는몇 달도지나지않았을 텐데, 벌써 지구의 삶은 추억 속의 과거가 되어버렸다. 삶의 밀도가 달라서일까, 지구에서는 구축하지 못했던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어서일까.

방금도 가족보다도 레이나가 먼저 떠올랐다는 사실에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레이나 정도의 미녀와 특별한 관계가 되었다는 사실을 부모님이 알게 되시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다른 모든 것을 제치고 사람과 건전하고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었다는 사실 자체에놀라실 테지. 만난 계기는 건전과 정상과는 정반대였지만.

상념을 제쳐두고 어둑어둑한 통로를 따라 이동한다. 밝은마력 광을흩뿌리던 이전의 광경과는 달리 질척한 슬라임이 모조리 잡아먹고 비틀어버린 복도는 음울하면서도 익숙한 마력을 뿜어대고 있었다.차토구아가과연 에이본을 구했을까, 노란 놈은뭐할까다른 차원의 일들을 생각하며 지나간다.

슬라임의 의식으로 훑어낸 지도를 통해 마법사 요원과 내가 직접 심어두었던 슬라임이 있던 곳으로 이동한다.틴달로스의개인가 하는 녀석들이 사용했던 방법을따라 했었는데약간 오차가 있었는지 같은 위치에 도달하지 못하고 복도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사원 내부에서 사라졌던 그들을 보고 얼마나벙쪘었는지.

노란 놈이 사원으로 그들을 부를 때 한 번, 요원을 데리고 사라질 때 한 번, 딱두 번밖에 보지못했던 방법이지만 공간 지배가 권능이아니랄까봐 걱정과는달리 꽤 쉽게따라 할수 있었다. 게다가 방금 슬라임과 접촉해보니시간 축역시 비틀리지는 않은 모양이고. 공간적인 좌표만 조금 어긋났는데, 처음 도약을 사용한 것 치고는 나름 괜찮은 성과라고 여겨진다.

다만 다시 도약을 시도하기에는 무언가 거슬리는 감각이 느껴져서 이렇게 직접 몸을 옮기고 있지만. 인간이걸어 다니는것과 같이 시공간 도약이라는 행위는 사냥개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나로서는 힘을 사용하는 일이라 이런 감각이 느껴지는것으로 생각한다. 언젠가는 나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겠지. 지금은 굳이혹시라는리스크를진 상태로 재도약을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아무리정신체라고해도 시공간이라는 개념과 관련되어있으면 자연스럽게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으니.

잠깐.정신체?

복도를 따라 이동하다 멈추고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연결되어있는 신성력을 따라정신체로차원을 넘어갔는데, 원래 차원으로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정신체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저쪽과는 다르게 맥동하는 촉수들이 강렬하게 느껴지고 있지만, 분명하게 정신과는분리되어 있는육체로서의 감각이다.

이 사실을 자각하자 기쁨의 탄성을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꼼짝없이 감옥에 갇혀있어야 하는 나날은 끝이라는 소리니. 비록 육신은 갇히더라도 의식을 분리해서 돌아다닐 수 있으면 감옥이라는 사실은 무의미해졌다는 소리니까.

무엇보다도…. 정신 체로서활동하기 위한 방법의조건은 신성력. 그리고 나의 신성력을 가장 많이 품고 있는 존재는 유일한 사도,레이나다.

이계의슬라임에 지배당하기 시작한 시설로부터 눈을 돌리고레이나를향해 정신을 뻗는다. 마법사도 돌아왔고 직접 관리했던 슬라임이 지금쯤이면 육체를 완전히복구했을 테니이곳에서의일은 알아서 마무리하겠지. 지금은 그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얼마 떨어져 있지도 않았지만벌써부터보고 싶은그녀가 더 소중하니.

내 육신을 기준으로 온 사방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신성력의 길을 감지하고 느낀다.격리된차원 너머 펼쳐진 무수한 실타래로 이루어진 거미줄,그중에서도가장 강력한 파동을 내뿜고 있는 곳을 향하여 의식을 날린다. 따뜻하면서도 포근한 감정이 느껴지는 의식. 이전이었다면 의식과 접촉한 상태에서 대화만 나누었겠지만, 새로 자각한 능력을 바탕으로 변화를 꾀한다.

신성력의 빛줄기를 따라 정신을 옮기고실체화한다. 비록 다른 신들처럼화신체로서의육신을 만들지못하지만, 나의온전한 정신과 의식은 지금 이 자리에 강림한다. 자연스럽게 주변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전에 억류되어있던 방과는 다른 장소. 깔끔하게 정돈되어있는 침구와 방을 밝게 비추는마력등. 한쪽 벽면에는 커다란 책장에 온갖 서적들이 꽂혀있고, 그 옆에는 기다란 책상과 쌓여있는 서류 더미들이 보인다. 벽에 걸려있는 고풍스러운 느낌의 시계가 똑딱거리는 소리가 차분한 배경음으로 연주되고 있는 방. 선율에 맞춰사각사각거리는필기 소리가 어우러진다.

차분하게 서류를 읽고 서명하는 푸른 머리의 엘프. 얼어붙은 듯한 냉담한 표정을 짓고있지만, 그누구보다도 사랑스러운 표정을 지을 줄 아는 따뜻한 그녀. 저번에보고 나서부터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지만 정말 오랜만이라고 느껴지는 나의 사도, 레이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집중력을 쏟아부으며산더미 같은서류를 처리하던 도중 무언가를 느낀 것일까, 사각거리던 만년필의 움직임이 멈추고 그녀의 시선 역시 서류로부터 허공으로 이동한다.

"...신님?"

역시 레이나아니랄까 봐그놈팽이와는달리 바로 나의 존재를 감지한다.

[오랜만이로구나 레이나.]

말을 걸자마자 푸른 머리카락 사이로 귀가 쫑긋거리며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연결되어있는 신성력으로부터 기쁨이라는 감정이 쏟아지듯 흘러들어온다. 이미 시야에 들어오고 있는 그녀의 표정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역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감정의 교류라는 것은 체감상 다르니까. 게임에서 괜히 외계 종족이광신도마냥칼라를부르짖는 게아니다.

"역시 신님도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계셨군요. 언제나 품고 있는 신님의 힘 덕분에 위로는 되지만 역시나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는 덜하지요.정신뿐만아니라 육체적으로 만나면 더욱좋겠지만…."

말하다 말고귀를 빨갛게 물들이는레이나의모습에 힘들었던 여정의 피로가 절로 치유되는 느낌이다. 방금까지 정신적인 교류, 플라토닉 러브로 만족하고 있던 나의 감상을 돌려줘 이 음란한에로프! 물론 그녀의 접근은 언제나 대환영이다.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레이나라는존재자체에사랑스럽다는 삼정을 느끼는 것이니.

잠시 그녀에게 감정을 가다듬을 시간을 준다. 붉어진 얼굴을 들지 못하고 귀를파닥파닥거리는모습. 시설에서는 얼음 여왕이니 감정이 없다니 온갖 소문이 돈다던데. 과연 이런 모습을 본다면 뭐라고 할까.

물론 절대로 보여주지않을 거다. 나만 봐야지. 육체와 정신이 인간을 초월했더라도 독점욕은 존재한다. 아니, 오히려 더 강렬해졌다고도 볼 수 있다.신화 속의신들이 괜히 영웅에집착하는 게아니지.

기다란 귀로 부채질을 해서일까, 조금은 열기가 가신 표정으로 다시 허공을 쳐다보는레이나를지긋이 쳐다본다. 눈에 보이는 육신은 없지만정신체로서는이 공간에강림한 만큼이전에 대화를 나누던 때와는 달리 그녀가 시선을 느낄 수도 있으니.

아니나 다를까무언가이상하다는 듯고개를갸우뚱거리는레이나의모습이 보인다. 귀여워. 시계의 진자처럼 좌우로 왕복한 머리를 따라 긴 머리카락이 스르륵 흐른다. 머리카락 사이로 잠시 드러나는 하얀 목덜미에 시선을 뺏기던 찰나.

"느껴집니다. 신님이 마치 제 옆에 나란히 계시는 듯한 감각이. 이성은 이상하다고 판단을 내리고있지만, 감각은포근한 손길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무언가하신 건가요?"

그녀의 의문에 이미 입꼬리를 올리고 있던 나의 의식이 더욱 커다란 미소를 짓는다. 얼굴도 표정도 지을 수 없는 나지만, 인간 시절이었다면 분명 조커도 이길 수 없을 정도의함박웃음을짓고 있을 거다.

[그래, 무언가가 있었지.]

"보이지는 않겠지만, 나는 분명 여기에 존재한다."

의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닌, 육성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자 순간적으로 움찔거리며 놀라는 레이나가 보인다. 정확히는 공기를 신성력으로 진동시켜서 만들어낸 소리지만. 의식으로 들리는 목소리와 비슷하게 느껴지도록 파형을 조종해서 만들어내는 소리. 드림 랜드에서 겪고 보았던 다양한 마법을 보면서 이루어낸 성과다.

새로이 일구어낸 성과에 칭찬을 바라는어린아이 같은생각으로 그녀를 쳐다보자 생각보다 충격이 컸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이게 이렇게 놀랄 일인가?

"그곳에서 드디어탈출하신 건가요?"

기대감과 경악을 가득 담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녀의감정이 이해되었다. 아, 그래서 놀랐구나. 뭐, 완전한 탈출이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그쪽 면에서는반쪽짜리성과일 뿐이었다. 육체와 정신이 모두 온전하게 탈출한 것은 아니니까. 다만틴달로스의사냥개들이 사용했던 방법을 완벽하게 터득한다면, 힘으로 깨부수고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은밀하게 빠져나온다는 또 다른 선택지를 얻을 수 있겠지.

물론정신체가아닌 육체로 사용해야 하고, 그 거대한 몸집을 생각한다면 엄청 까다롭겠지. 무슨 짓거리를 해도몇백 년을묵은고목마냥그 공간에 뿌리를 박은 체 요동도 하지 않는 핵도 문제고, 강제로 탈출하던 몰래 빠져나가던 나의 동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이쪽 차원의 최강자,리리스년이여전히 가장 큰 벽으로 존재하니까.

그래도 서서히 그녀의 통제를 벗어날 방법들이 보이기 시작하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다. 차원 이동을 통해 나의 권능도 자각했겠다, 처음 이곳에 왔던 것처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단련만 하면 되니까. 그때도 시간은 나의 편이라고 했었는데, 중의적인 의미가 되어버렸다.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다. 그저 정신만을 옮긴 것이니. 다만 이번 여정에 실마리를 발견했으니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답을 듣자 확연하게 밝아지는 그녀의 표정에짓궂은마음이 든다. 이제정신체로는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데 육체가 탈출할 수 있다는 말에 저리 기뻐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흐음? 그녀를 놀리고 싶은 마음이한가득이었지만욕망을 꾹꾹 눌러놓는다. 어차피 그녀를 놀릴 기회는 차고 넘쳤고, 무엇보다도 여정을 떠나기 전에 그녀가 맺은 약속 또한 남아있으니까.

지금은 갑작스러운 일에 당황스러운지 떠올리지 못하는 것 같지만 분명히 부끄러워하며이불킥하던그녀의 모습이 기억 속에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이번여정이라는 게무슨 뜻이죠?"

기쁨도 잠시, 나의 대답에 또 다른 의문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늘은 질문 대잔치네. 세상모든 것에호기심을 가진 어린아이처럼끊임없이이어지는 질문들은 다른 존재였다면 귀찮을 수도 있겠지만 레이나가 하니 그저 사랑스러울 따름이었다. 이 광경을 매일매일 구경할 수 없다니.

어서 힘을 길러서 탈출하고온종일레이나와꽁냥대고싶지만,촉수 괴물의모험 제1화 `이계 여행 편`은 참을 수 없지.레이나와의시간은미래뿐만아니라 현대 또한 소중하니까.

그렇게 웹소설이라면 약 12편 분량의 이차원 모험극을레이나에게풀어내며 나는 꿈의 세계로부터 현실로 돌아왔다는 것을 완벽하게 자각할 수 있었다. 홈 스위트 홈.나의 집, 마음의 안식처는 그녀의 곁이라는 현실을 만끽하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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