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10. 드림 랜드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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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더 올릴 내용이 있으신가요?"
"아무래도 위쪽에서는 불안감을 가지고 계신 것 같긴 하지만 다른 방책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재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여인은눈앞에 보고를올리고 있는 요원을 보았다.
모자 사이로 흘러내리는 청색의 머릿결. 시리도록 푸른 눈동자와 표정. 뾰족하고 길쭉한 귀. 그녀의 직급과 헌신을 증명하는, 제복 위에 달린 훈장들.
엘프라는 종족이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것일까, 그녀가 특출난 외모를 지닌 것일까.
항상 보고받을때면 질투심이들 수밖에 없는외모를 자랑하는EX 등급요원,레이나의미모는 최근 들어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었다.
현재 시설에서 가장뜨거운이슈이자 골칫거리로 부상한 관리 대상,No. 166.
그 기괴한 검은 촉수덩어리에게투입되었던 이후로부터레이나는확실하게변했다.
언제나 수동적으로, 목적 없이 표류하는 배처럼 떠돌아다니는 느낌이 들었던 그녀는 어느새 확연한의지를 갖추고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정상적인 인물이 거의 없는EX 등급요원들이기는 하지만그중에서도감정이 없는, 마치 인공생명체와도 같은 인상을 주었던 그녀는최근 들어서자신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아주 가끔, 감정을 드러낼 때가 있었다.
그때살며시 짓는 미소란.
동성임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아찔한 미소를 짓는데 남성 요원들은 어떻겠는가.
어떻게든레이나와연줄을 맺어 보기 위해서 안달이 난 요원들은 온갖 방책을 마련하였다. 물론EX 등급이라는압도적인 실력과 평소의 냉담한태도 때문에감히 그녀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거는 시도를 하는 요원은 없었지만.
책상 위에 쌓인 서류의 산을 쳐다보며 작게 한숨을 쉰다. 그렇다고 자신에게 편지를 건네면 어쩌자는 건지. 안 그래도 처리할 일이 산더미라 골치 아파 죽겠는데 남의 연애사까지 신경 써줄 시간은 없었다. 그것도 일방적이고 성사될 확률조차 없는.
같은 여인으로서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저레이나라는요원은 분명히 사랑에 빠진 것이라고.마음속에담은 정인이 존재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구애를 받아들이겠는가. 오히려 불쾌한 감정에슥삭해버릴 수도있겠지.EX 등급요원은 즉결 처분 권한도 있으니까. 그리고 아까도 떠올렸지만,EX 등급요원은 정상적인 인물이 드물었으니 레이나 역시 충분한 가능성이 있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데 하물며 그보다 강렬한 감정인 사랑을 품으면 어떠할까.
도대체 어떤 행운아가 그녀의 마음을훔쳤는지 상상도가지 않는다. 저 얼어붙은 듯한 표정을 녹인 남자가 누구일까. 아니, 혹시 모른다. 그녀는 오랜 세월을 지나마침내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달았을 수도. 남자가 아닌,여자….
절레절레.
요즘 너무 일에 치였더니망상 벽이다시 차오르고 있었다. 언제나준비되어 있는시설의 음료,몬스트로를한 잔 마시자 조금은 정신이 또렷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런 상상을 하는 것을 그녀가 깨달으면 어떻게 될까. 허리춤에 걸린 검, 이름이릴리라고했던가, 그것이뽑혀 나가며사무직에 불과한 자신은그대로….
그녀의 허리춤을 바라보자 언제나 걸려있던 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시선을눈치챈것일까,레이나의냉담한 목소리를 듣자 여인이 움찔하는 모습을 보인다.
"검을 찾으시는 것이라면 현재 시설에서조사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No. 166에오염되었다고 판단되었으니까요. 저는 문제 없이 다룰 수 있다고 하였지만 믿는 분위기가 아니더군요. 이번 요청을 처리하시는 김에 검의 회수 요청 역시 같이 부탁드리겠습니다. 더 이상의 용건은 없습니다."
"일단 상부로 보고는 올리도록 할게요. 다만 언제나 그래왔듯이 허가가 내려올 것이라는 확답은 못 드립니다."
"아닙니다.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아…. 이제서류를 다시처리…. 언제이걸다…. 아, 퇴근하고싶다…."
용건을 마치고 돌아가는레이나의뒤로부터 서류의 산을 앞둔 여인의 절망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다시금 그녀를 바라보는 레이나.
물론, 전혀 생각하지도 않은 상황이기에 당황하고 있는 상대였지만레이나는무덤덤하게 제할 말을할 뿐이었다.
"혹시 피곤하시다면 영양제라도 하나 드릴까요?"
"읏, 앗, 예? 혼잣말이 다들…. 어떨... 아니, 괜찮습니다. 그래도 호의에감사드려요."
"마탑에서최근에 개발한포션입니다. 선물로 받긴 하였는데 아무래도 제 등급이등급이다 보니효과를 기대할 수 없어서 사용처도 없던 것이라.부담을 느끼지않으셔도 됩니다."
레이나의손으로부터 책상 위로 옮겨진 찰랑거리는포션. 검은색으로꾸덕꾸덕한것이 동방에서 약재들을 달여 만든 한약이라는포션의종류와비슷해 보였다.
마탑에서선물로 줄 정도면 자신의 직급에서는 구경하기도 힘든 것이겠지.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던 여인이었지만레이나는용건을 다한 듯,포션을책상 위에 두고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빠르게 문을 지나 사라졌다.
포션을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는 여인.
EX 등급요원인 레이나가그녀 같은낮은 직급의 사무직 요원을 독살할 리도없을 테니 마셔도 되겠지. 검이 없더라도 전투 능력이 거의 없는 그녀 정도는맨손으로도신의 품으로 보낼수 있을 테니.
투명한 유리병의 뚜껑을 열자 색깔로부터는 전혀 연상할 수 없는 달콤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마실 때마다건강이 나빠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몬스트로와는다른 매혹적인 냄새.
그녀는 무언가에홀린 듯이정체를 모를검은 액체를 마셨다.
꿀처럼 달콤하면서도 찐득한포션이넘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입안에서 젤리처럼 씹히는 듯한 감촉이 느껴지기도 하더니 마침내 병의 바닥이 눈에 보이자 아쉬운 감정만이 남을 뿐이었다.
몇 방울 남아 있다면핥아먹고싶을 정도의 맛이었는데 놀랍게도 빈 병은 액체가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듯이깨끗한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와, 이거맛있는…. 어?"`
갑작스럽게 정신이 또렷해지더니 피곤이 말끔히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서류를 내려다보며뻐근했던목과 어깨, 자리에 몇 시간이고 앉아 있어 우두둑거리던 허리, 그 모든 부위로부터 통증 역시 없어진다.
오랜만에몸속을휘몰아치는 활력이라는 기분 좋은 느낌에 그녀는 서류의 산을 하나씩 정복하기 시작한다.
레이나가 사랑에 빠지더니 확실히 바뀌었다고.
바뀐 사실이 좋게 작용할지 나쁘게작용할지는그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겠지만.
그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서류를 처리할 뿐이었다.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퍼져나간 검은 슬라임의 도움을 받으며.
***
"강아지라는 말이 제가 생각하는 개의 어린 시절을 나타내는 단어가 맞습니까?"
"그래. 인간에게 가장 충성심이 깊은 동물인데도 불구하고 어느 언어권이든 욕설에 들어가는 그 비운의 동물이 맞지."
"예, 좋아하기는 합니다만 사실 동물 자체를 가리지 않는 편입니다."
"품종도 가리지 않고? 뭐 털이없다든지, 이빨이날카롭다든지."
"딱히 신경은안 씁니다. 설령 사납다고 하더라도 마법으로 적당히 다루면 되니까요."
"마법이라…. 뭐자네 정도 수준이면 얼추 관리할 수 있겠지. 그나저나 이제 슬슬 돌아갈 때가 되지 않았나?"
여태껏 태연하게 대화를 나누었던 것과는 달리 무언가 성급하다는 듯 말을 돌리는 상대를 보고 불안해진키라누.
말에 담긴 날카로운 뼈가 느껴진 것일까,키라누는불안한 마음에 다시 질문을 던졌다.
"헌데갑자기개에 관한 얘기는왜꺼내신 겁니까?원하시던내용에대해서는…."
"아, 그건걱정 말게나. 조금 전에 자네를 훑으면서 상황은 대강 파악하였고."
[이처럼 자네의 정신에 직접적으로 말을 걸 수도 있으니.]
육성을 멈추자마자머릿속에서울리는 목소리.웅웅거리며울려 퍼지는느낌에 약간 어질어질한 느낌이었지만키라누는불쾌감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끓는 듯한 목소리의 육성과는 달리 깔끔하게울려 퍼지는목소리이기에 거북함이 덜 느껴져야 한다고해야 할까.
그래, 마치 인간의 목소리와도 같은 소리. 신기한 점은 심상에 목소리의 정체를 떠올리려 하면 온갖 군상이 다 떠오른다는 점일까. 어떻게 들으면 노인의 연륜이 가득한 목소리. 어떨 때는 천진난만한 아이의 목소리. 굵은 남성의 목소리. 가녀린 여인의 목소리.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상대의 정체에 대해서 생각해본다면 당연한이치라고 판단을내린키라누는자라나는 탐구심을 멈추었다.
마법사에게 있어 호기심이란 필수적이지만, 그와 동시에 사인No·1을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항목이기도 하니.
호기심이 마법사를 죽인다는 속담은 완전한 육체파근육 돼지들조차숙지하고 있는 내용이니.
그러고 보니라일은잘하고있으려나.
마법의 '마' 자조차모르는 뇌까지 근육으로 가득한 친구이지만 그는 분명히키라누의좁은 인맥 가운데 가장 친한 존재임이 분명했다.
흔히들 절친이라고도 부르는 사이. 본인들은 절대입 밖으로내뱉지 않겠지만.
임무 도중에 난장판이 펼쳐지고, 신과 연관된 분들을 영접하고. 심지어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모험을 떠나게 될 줄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몇 개월전의 자신에게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설명해준다면 바로 정신병동으로 보내려 하겠지.
에이본에게들었던 경고를 기억하고 있었다.
`뚫었던 통로를 그대로 돌아간다면 오차가 없을 것이라고 계산은하였지만…. 차원의벽이라는 것은 겨우 공식과 지식만으로 잣대를 정할 수 없다네. 최악의 경우수천 년,수만 년의오차가 벌어질 수도 있다네. 공간적인 오차도 마찬가지. 암반 내부에 박히게 된다면 영 좋지 않은 기분이 들걸세.`
물론 그런 경고에도 불구하고키라누는스스로의의지로 여행에 동참하였다. 아무리 모든 인간관계와의 단절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는 하지만, 무려자신의 신을위한 일이 아닌가. 신앙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버릴 각오는 이미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른 것들이 소중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기에키라누는친우에 대한 걱정이들었던 것이다.
그를 습격해온 놈들처럼 라일 역시 습격을당했을터.이계의존재들을 소환한다는 반칙적인 마법을 통해 쉽게 휩쓸었지만, 순수한 마법만으로는 불리한 대결이었겠지.
라일의수준에서 그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아,그러고 보니그 슬라임. 그분께서 붙여준 슬라임이라일에게도붙어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무런 걱정이 없다. 슬라임들은 시설에서조차 함부로 상대할 수 없는 수준의 능력을 지니고 있으니까. 본격적으로 관리 개체로 지정하여 격리 시도를 하는 것이 아닌 이상.
그리고 생각나는 그녀.
아이들을 돌보며 기뻐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르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하였다. 분명히 제물로 바쳤었던 심장인데, 언제 재생되었는지는 몰라도 두근거리며 가슴을 울리고 있는 신체 장기.
게다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몰라도 이전보다 훨씬 마력을 다루는 것이 수월해졌다. 아무리 차원을 넘었다고 하더라도정신체는자신의 육체를기반으로 형태를 이루는 것이 기본. 게다가키라누의경우에는 마법을 활용하기 편리하도록 육체의 모습을 그대로 복사해오는 방식으로 마법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몸이 이상했다.키라누는그의 몸이 지닌 능력과 한계점을 얼추 파악하고 있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치제 몸처럼자연스럽게 느껴지고사용되는 마나를겪기 전까지. 분명,자기 몸에무슨 조치가 취해졌음이 분명했다.
친구,여…. 그녀,자신의 신체에생긴 변화.
돌아간다는 내용을 듣자 확실히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이세계에서펼쳐진 모험은 새롭고 흥미진진하였지만 동시에 심적으로는 꽤 지치는 과정이기도 했기에.
인도자는웬괴물에 먹히지를 않나, 달이 부서지며 종말이 도래한 듯한 풍경이 펼쳐지지를 않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이계의신과 평범하다는 듯 대화를 나누게 되지를 않나. 그가 호의적이어서 다행이지 만약 적이었다면 어떤 꼴을 겪게되었을지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무리키라누가철옹성 같은정신력을 지니고 있다고 할지언정지칠 수밖에 없는여정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대화가 마무리되어가는 과정에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기쁨을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치명적인 방심을 불러왔다.
"그렇다면 자네도 동의한 것으로알겠네. 오래 기다렸겠지. 자, 나오거라 귀여운 강아지들아. 이 인간을 고향으로돌려보내 주렴."
노란 베일에 감추어진 입으로부터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변화가 일어났다.
낮은 클래스에도 불구하고키라누는공간 이동이라는 고위 마법을 다양한 방식으로 체험한 경험이 있었다. 시설에서 이동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 격리된 차원이라는 시설 내부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공간을 향해 보내진 경험.
그뿐일까, 비록정신뿐일지라도차원의 벽을 넘은 데다가 넘은 장소로부터 드림 랜드로 이동한 경험. 인지하고 있지는않지만, 의식을잃었을 때기어오는혼돈의화신체에게납치(?)를 당한 경험. 그리고 양쪽 모두 인지하고 있지 않지만, 공간을 지배하는 권능을 가진 신을 섬기는 사도로서.
그는 공간이라는 개념과 그와 관련된 힘에민감할 수밖에 없는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감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금이 간천장이 장식하고 있는 방. 벽에 걸린 횃불과 바닥에 쏟아져 타오르고 있는 불길이 비추고 있는 방은 분명 각진 부분들이 존재하였다.
편집증이 있는 것이 아니고서야 방 내부의 모든 사물을 둥글게 깎을 사람은 없을 테니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신의 분노로 흔들리고 부서졌다면 그것은 분명하게 존재할 것이다.
모서리.
방의 구석으로부터, 타오르는 횃불이 담긴 횃대로부터, 심지어 바닥에 떨어진 천장의 잔해로부터. 공간이 꿈틀거리고 흔들리며 부서지기 시작한다. 그의 격이 조금만 더 높았더라면공간뿐만아니라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있었겠지만, 불행일까다행일까키라누에게그 정도의 능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온몸으로 느껴지는 압박감과 불길함은 본능적으로 무언가 어긋났다고, 잘못되었다고 어서 이 공간을 빠져나가 도망치라고끊임없이소리쳤다.
물론 거미줄에 잡힌 먹잇감처럼옴짝달싹도할 수 없었지만.
그리고 뭉클거리는 연기가새어 나오며서서히 등장하는 그것들. 외형을 어떻게묘사해야 할까? 온갖 끔찍한 것을 보았고 미쳐버리고 정신을 되찾은키라누였지만지금 두 눈에 들어오는 광경은그로서도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인간이 지닌 어휘로는 표현할 수 없다고 해야겠지.
하지만 초월적인 존재들과 그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끔찍한 형상들을 보아서일까,키라누는간신히, 아주 간신히 그들의 형체를 인간이 만들어낸 단어로 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제자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억지로끼워 맞춘퍼즐조각 같은느낌으로 간신히 그 단어를 내뱉는다.
개.
토할 것 같은 속을, 미쳐버릴 것 같은 정신의 끈을 간신히 붙잡으며키라누는소리 없는절규를 외쳤다.
`신이시여, 제게 어찌 이런 고난을 선사하시는 겁니까?`
`씨발, 저게개…. 라고?개 미친또라이 같은신…. 아.`
아무리 인간을좋아해 주고그를 닮으려고 해도 신이라는 존재가 인간이 될 수는 없는 법. 본디 인간으로 태어났다거나 특수한 상황이나 입장이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 게다가 근원부터이형적이고끔찍한이계의신이라면 더욱더 인간의 감성을 바라는 것 자체가 실례라는 사실을 깨달은키라누는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런키라누의반응을 즐겁게 지켜보는 이가 있었으니.
꼴 좋네.
언제나 요원이 당하는 것은 볼 때마다 통쾌하다.
그나저나 시공간을 찢고 나온 저 강아지들, 생각보다 지닌 힘이 어마어마했다.차토구아의권속들임과 동시에 내 하수인이 되어버린 슬라임들이나 거미줄의 통로 내부에 있던 고원 위의 거미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격을 가지고 있던 거미들도 한 수 접어줘야 할 정도로.
아,까망이정도면비벼볼 만하려나? 물론 천진난만하게 놀기만 하는까망이가저 사나운 개들을 상대로 이기는 이미지는 머리에 그려지지 않았다.
그나저나 엄청 신기한 녀석들이다. 시공간을 무슨 종이 찢듯이찢은 게저화신체가공간 이동을 했을 때보다도 더 자연스러웠다. 언어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각진 곳으로부터 공간을 찢고 나오며 제 형체를 갖춤과 동시에 자신이 이동한 통로를 닫아버리는 과정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게다가 어찌나 빠른지 통로 내부를 관측하려고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득이 없었다! 무려 초감각을활성화했는데도! 게다가 시간 역시 다뤄서 그런지 몰라도 이들이 튀어나온 순간을 보기 위해과거시를켰음에도 불구하고 현상을 관측하는 것에 실패했다. 뭐라고표현해야 할까, 이들이 튀어나온 순간 그들이 본래부터 이 시간대와 장소에 존재했었던것마냥시간선이수정되었다고 해야 할까.
시간에 관한 내용은깊게 들어갈수록 머리가 아프다. 이런 힘을다루어야 한다는것이 절망스러울 정도로. 결국 언젠가는 공부를해야 한다는말이니까.으으.
오히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어느새 요원의 눈앞에도열한다섯 마리의개, 아니 네 마리의 개와 한 마리의 강아지는 좋은 반면교사가될 수도 있겠다는생각이 들었다. 제약이있어 보이기는하지만, 저렇게 자연스럽게시공간 이동을사용하는 모습은 나 역시 유용하게 사용할수 있을 테니.
그렇게 생각하자 개들이 무척이나 탐스럽게 보였다.다시 보니꽤 귀엽게 생겼기도 하고. 저마법사 놈은못볼 걸 봤다는듯이 최대한 개들과 시선을 안 마주치려고 하고 있지만. 저 귀여운 것들을 저리 싫어하다니 역시 아까의 것들은 다 빈말이었구먼. 푸른 침을 흘리며 꼬리를 살랑거리는 저 강아지의 모습을 안귀여워할수가 없잖아!
"소개하지.틴달로스의사냥개들이네. 시간의 모서리에 거주하는 귀여운 녀석들이지. 그분이 사라지고 난 뒤에옴짝달싹못하고 갇혀있던 불쌍한 녀석들이기도 하고. 오랜만에나온 만큼더욱 굶주려 있기는할텐데…. 뭐, 자네 정도면 잘 다룰수 있을 거라고믿네."
나와 같은 감각을 가진 것일까,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설명하는화신체. 강아지는 그의 손길을 얌전히받아들이지만, 선풍기가돌아가듯 강하게 흔들리는 꼬리가 들뜬 감정을 나타내주고 있었다.
"이들을 대신 관리하던 입장에서몇 가지알려주자면, 일단 이들은 보았던 것처럼 각진 곳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네. 정확히는 120도 이내의 각에서. 물론 각진 곳의 크기는 상관이 없으니 자네 제복에 달린 훈장이라던가 모자에 새겨진 글자로부터도 나올 수 있지. 정 급하면 자네 신체 내부의 뼈에서도 튀어나올 수는 있다만,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네."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들은 곡면을 추구한다네. 이들에게 있어서 곡면은 아주 매력적이니. 장난감으로 둥근 공 같은 것을 던져주면좋아할 테지."
"아마 자네는 이들의 형체를 제대로 인식하지못할 테야. 격의 수준이 달라서도 그렇고, 애초에 이들이 제대로 된 형체를 지니고 있지 않아서이지. 다만 이름이라는 개념에 힘이 깃들어있는 것처럼 이들 역시 사냥개라는 명칭에 속박받아 개의 형상을 띄고 있지. 음, 자네 차원에서문제가 될수도 있으니 적당히 개처럼 보이게 명령해두겠네."
"아까 이름에 힘이 있다고 하였지? 이들은 사냥개일세. 본능적으로 사냥감을 쫓게되어 있지. 그것이 둥그런 공이든 뱃살이 튀어나온 사람이든. 취급할 때는 주의해주게나. 한 번 정한 사냥감은 다른 시간대로 넘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쫓으니. 특히 시간을 다루는 여행자가 있다면 더욱 본능을 억제하지 못할 테지. 물론 자네 차원과 더불어 시스템이라는 존재가 시간과 공간에 무슨 짓을 해둔 것 같지만 일단 알아는 두게."
"그외로도…."
노란 베일에 덮인 놈의 설명과 관리법이 이어짐과 동시에 요원의 얼굴이 점점 새파래지는 모습은 무척이나 유쾌한 광경이었다. 특히나 사냥감의 신체 내부에 흐르는 액체를 모두 빨아먹고 푸른 점액질을 사냥의 증거로 남기니 뒤처리를 잘하라는 말에 기겁하는 모습은 더욱 즐거웠지.
기나긴 설명도 어느새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고, 놈은 정말로 보내줄 때가 되었다고판단했는지강아지의 머리에서 손을 떼며 마지막 조언을 건네었다.
"일단 이 정도 알면 문제는없으리라 생각하네. 아, 노파심에 추가해야겠군. 이들은 모두 사냥개의 수준에 불과하네.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능력을지닐지언정엄연히 본능을 따르는 생물이라는 것이지. 다만 이들로부터 우리와 같은 격을 이룬 녀석이 하나 존재한다네."
"므히트르하(Mh`ithrha),틴달로스의대군주. 자네가 섬기는 그분과 영원한 투쟁을 벌인다는 전설이 두고두고 전해지던녀석이지만, 그분이 사라짐과 동시에 어디론가로 사라졌지."
"왜 말해주냐고? 그냥 알아두면 좋지 않은가? 언젠간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지식이 될 수도 있다네! 자네가할 수 있는 게뭐가 있냐고? 물론 쓸모가 없지. 팝콘이나 준비해서 구경하게나. 상상을 초월하는 대전을볼 수 있을 테니말이야. 하하하."
인간의 악감정은 언제나 즐거운 혼돈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