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10. 드림 랜드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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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뭐?
노란 놈의 흉측한 입에서 튀어나온 단어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단어였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시스템.
컴퓨터 시스템으로부터, 더 깊이 들어가면 라틴어systēma로부터유래된 단어.
아마화신체가말한 의미는 방금 들었던 예시들과 가까운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창작 매체에서변질된의미로써 쓰이는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지.
흔히들회빙환으로알려진 소설의삼대장요소에 약방의 감초처럼 더해지는 또 다른 특성.
상태창.
그리고 그상태창을관장하는 존재, 혹은 법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시스템이다.작품에 따라살아있는 생물로도, 감정이 없는기계 같은존재로도 다양한 방식으로 설정되어 나타나는 만큼 정확하게 콕 집어서 말할 수는없지만, 초월적인능력을 갖춘것은 확실하다.
아군으로도 최종 보스로도 등장할 수 있는 그것은 지금 들려오는 얘기만으로 봐서는 적대적인 위치에 있는 것 같다.
"인간이란 생물은 참 흥미로워. 범접할 수 없는 존재들을 상대로도 당당하게 자신들의 입맛과 기준대로 판단을 내리니. 심지어 그런 상대에게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는 한이 있어도 대항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자신의 목숨 하나를 건지기 위해서 수십만의 희생조차 낼 수 있는겁쟁이이기도 하니.그런데도꾸준히 진화하고 발전하지."
뜬금없이인간 찬가를 시작한 노란 녀석. 괴물의 몸에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신이 깃들어 있는 놈이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어불성설 아니냐.
"전쟁! 아 그 감미로운 세상이여! 인간이라는 생물은 서로의 것을 탐하고 지배하려고 할 때 가장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지. 있는 지혜 없는 지혜를 다 짜내어 어떻게든 상대를 몰락시키려고 하는 그 욕망! 심지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더라도, 감당할 수 없는 존재에게서 힘을 빌릴지언정 결코 상대에게서물러설 수없는 그 의지!"
미친놈. 황금의 옥좌 위에서 오만하게 앉아있던 녀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연극배우가된 듯과장스러운몸짓으로 팔을 벌리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움직임 하나하나마다 그의 몸에 걸쳐진 노란 비단이 펄럭이며 바닥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자네의 세계 역시 전쟁이 벌어진 적 있겠지."
갑작스럽게 움직임을 멈추며 요원을 쳐다보는 노란 녀석.그러고 보니저놈의 이름은 모르고 있네.기어 오는혼돈은 저화신체의본신이고,화신체자체에도 이름이있을 텐데말이지.
요원은 놈의 시선을 받자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천년 제국이 세워진 역사에는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수의 전쟁이 있었지요."
"천년 제국이라. 인간에게 있어서 천년이라는 시간은 억겁과도 같은세월일 텐데잘도 유지하고 있구나! 분명히 반항하는 놈들이있었을 텐데?"
"예.크고 작은반란은 언제나 일어났었습니다. 그저 굶주림을 참지 못한 백성들이 일으킨 민란부터 제국 전체를겁화로뒤덮었던옛왕국의 후예가 일으킨 반란까지."
영원이란 없는 법. 아니, 정확하게는 인간에게 있어서영원히 없는것이겠지. 온갖 인간군상들이 가진 제각각의 의지와 욕망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사회는 결코 하나의 방향성만을 가질 수는 없으니.
길지 않은 수명을 가진생물인 만큼대부분의 인간은자신의 삶을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간다. 어떤 가치관을 추구하느냐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대다수 사람들은자신의 욕망을 이루며 살아간다. 사랑, 명예, 권력, 지식, 발전,평화…. 심지어단 하나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바뀌기도 하고 동시에여러 가치를추구하기도 하고 심지어 서로 정반대인 것들을 추구하는 모순적인 행동도 하는 것이 인간.
당연하게도 그러한 인간들이 이룬 거대한 사회, 국가 역시 마찬가지. 그런 의미에서 천년이라는 긴세월 동안하나의 제국을 유지했다는이세계의인류는 대단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지구에서천 년 동안이나유지된 나라가 있긴 한가? 이집트나한국 같은나라들이몇천 년이나되는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고는 하지만 그 기간 내내 똑같은 나라였던 것은 아니니까. 민족만 같은 가운데 다양한 나라들이 세워지고 멸망했으니까.
헌데노란 놈의 초점은그게 아니었나 보다.
"그래, 당연한수순이지. 그런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서 다양한 무기가 사용되었겠지? 자네가 온 세계 역시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이니 마법이 주가 되었을 것이고."
"예…. 그렇습니다."
여전히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는 요원. 저놈이 저런 반응을 하는 모습은 또 새롭긴 하네. 칙칙한 남정네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취미는 없지만.
"그중에서는분명히 대량 학살용 무기가 있겠지. 인간은 효율을 중시하는 모습도 있으니까. 전쟁 역시 효율적으로 치르려고 할 것이고, 당연히 많은 생명체를 한꺼번에 말소시킬 수 있다면 훨씬 편하게 승리를 거둘수 있을 테니."
"역사적으로 전쟁용대마법진들이존재하기는합니다만…. 마지막으로쓰인 것은 이미수백 년전입니다. 아마 이후에 시설에서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들이 몇십 배는 뛰어난 위력을 발휘할 겁니다. 기록으로만 아는 지식입니다만. 다만 방금말씀하신 대로전쟁에 사용되는 무기는 아닙니다."
바깥의 제국이랑 시설이랑은 역시 다른 건가. 레이나가 설명해주기는 했었는데. 대충MIB영화 같은느낌이랄까.
"시설? 뭐, 그건 일단 넘어가고. 그래, 역사적으로 쓰였던 무기의 파괴력은 어떠하지? 가장 치명적인 녀석은 말이야."
이계의무기 체계가궁금한 건지세세하게 물어보는 놈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호기심이 묻어났다. 게다가 묘한 감정선이 느껴졌는데 정확한 내용은 파악되지 않았다.
"음…. 인간으로한정을 짓자면아마 대륙전쟁 때쓰였던대마법진이가장 위력적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왕국의 수도를 통째로 무너뜨린 마법이었으니까요.수천 명의사상자가 발생했지요. 물론시전하는것 역시 비슷한 수의 희생이 있었지만."
요원의 말이 끝나자화신체로부터느껴지는 묘한 감정이 더욱 강해졌다. 뭐지?
"그래…. 수도의규모가 큰 편은 아니군. 중세 시대 정도로 예상되는구나. 자, 그럼 이쪽의 이야기를 해볼까. 그래, 이곳 또한 그런 무기가 존재하지. 도시 하나를 통째로 불태워버리는 무기. 생존자 하나남김없이모조리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놈으로. 게다가 무기가 사용된 이후에 향후백 년 동안은인간들이 쉽사리접근도 못 하게하는 녀석으로."
설마…. 녀석의설명에 부합하는 무기 하나가, 아니지금은 두 개가뇌리에 떠오른다. 작은 소년(Little Boy)과 뚱뚱한 남자(Fat Man).
스르륵.
얼굴을 가리고 있는 노란 비단이 사라지더니 놈은 편안한 자세로 바닥에 앉아있는 요원의 옆에걸터앉았다.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지만 요원은 흠칫하며 굳었고, 신성력으로 전해지는 그의 감정에서는 어마어마한 긴장감과 초조함, 그리고 미약한 두려움이 흘러들어왔다.
화신체는그런 요원의 반응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었지만.
"인간들의 처절한비명소리! 그들이 찬사를 바치며 제물을 공양하는 것 또한 기쁜 일이지만 최후의 단말마를 내지르며 생명을 잃는 것 역시 아름다운 일이지. 내가 전해준 지식으로 환상적인버섯구름이피어오르고수십만 명의영혼이 동시에 승천하는 광경은참으로…. 찬란한광경이었지."
역시 이놈 역시이계의신아닐까 봐소름끼치는소리를 하고 앉아있다. 그것도 인간 옆에서. 아니나 다를까 요원은 좌불안석인 상태가 되었고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릴 정도로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서라. 니가 뭘 해도 안되니까 그냥 포기해.
"그래…. 내가인류에게 지식을 전해주기는 했지만 정말로 그걸 써먹을 줄이야. 그것도 대단원을 마무리 짓는 방식으로!. 그 완벽한 타이밍에는 감탄을터뜨릴 수밖에 없었지! 게다가 더 놀라운 사실을 알려줄까? 인간은 그 무기로 만족하지 못했어! 그래서 더욱 연구하고 발전시켜나갔지. 항성이 타오르는 힘을본떠서무기를 만들어낼 정도로."
인류는 놀라운 방식으로 평화를 이루어냈다. 상호확증파괴라는 아주 기괴한 방법으로. 서로손가락 하나면반대편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으니 오히려 평화로워지는 모순적인 방법.
고대로부터 무기는 언제나 공격과 방어 양면으로 발전해왔다. 주먹질을 막을 간단한가죽옷. 가죽을 꿰뚫을 칼. 칼을 막을 갑옷과 방패. 그러한 보병을 쉽게 무너뜨릴 기병. 기병의 돌격을 막는장창병과다양한 진형. 대군을 막을 성벽. 성벽을 무너뜨릴 투석기와충차.
그러나 한 물질, 아니 혼합물의 발견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으니, 바로 화약의 등장이다.
화약으로 총과 대포가 개발되기시작하고 나서부터방어구는의미가 없어졌다. 아니, 의미가 없을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옛날과같은 실용성을 발휘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기술이 더욱 발전함에 따라 방어적인 부분은 거의 포기하고 오로지 공격, 공격, 공격 일변도로 개발된 무기는 마침내 문명을 지워버릴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핵폭탄.
그런데 그걸이놈이전해줬다고? 핵무기는 아인슈타인이나 오펜하이머 같은 물리학자들이 나치군에게서 미국으로 도망치면서 만들게 되었던 것으로기억하는데….
인과관계가어떻게 되었든 간에핵폭탄 계열의 무기들은 인간이 발명한것들 중가장 끔찍한 위력과 효과를 지닌 것이 분명하다. 그래,이제서야놈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뿌듯함.
수십만 명의사상자를 낸 무기의 근본적인 원인이 자신으로부터 있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미친놈.
"인간이 그런 위력을 낸다는 것이 가능한 겁니까?"
"그래. 다른 어떤 종족도 아니고 특출난 재능 하나 없는 인간이이스녀석들이 기록할만한 파괴력을 지닌 무기를 만든 거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그런데말이야…."
말끝을 흐림과 동시에 다시 한번 기운에 감정이 실리기 시작한다.잘난 척할 때는언제고 어느새 완전히 기분이 가라앉았는지 누런 베일을 다시 뒤집어쓴 놈은 차가운 분노를 담아 단어들을 뱉어냈다.
"시스템이라는 놈이 인간을 건드린 이후로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지. 기술적인 향상심을 볼 수가 없어졌어. 발전이 정체되었단 말이지? 자연에서 최약체의 약자로서의 지혜를 짜내어 최강이 되었던 인간이라는 종족은 시스템이 만들어낸 틀에 갇혀서더는머리를 굴리지 않게 되었지."
"그시스템... 이라는존재가 무슨 일을 벌인 거죠?"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었지."
"그건 좋은 일 아닌가요?
"좋은 일이라. 하. 자네, 자네는 모든 사람이 공평하다고 생각하는가?"
"절대 그런 생각을 한 적 없습니다. 그런 사상은 가지기만 해도황실 모독죄입니다. 백성들을 다스리는 귀족들, 그리고 그 귀족들을 통치하는 황제 폐하께서는 전혀 다른 위치에 계시죠."
시설에서 일해도 여전히 `바깥세상`에물들어있는 건가. 이건 새로운 정보네.레이나는엘프다 보니천년 제국에 소속된 몸이아니라 말을안 해 준걸까?
그러고 보니레이나 나이가 나이인데, 천년 제국보다 나이가많….
음. 여자의 나이를 물어보는 것은 실례겠지.암암. 절대 무서워서 생각을그만둔 게아니야.
"그래,그러고 보니그쪽 차원은 민주주의라는 사상이 없었지. 그럼 더욱 비유하기도쉽겠군. 자, 여기 두 아이가 있다. 한 명은 일반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 그리고 또 하나는 황태자의 신분으로 태어난 아이. 두 아이가 똑같이 성인이되었을 때같은 위치에 도달할 수 있을까?"
딴생각을잠시 하는 도중 이쪽은 어느새 토론회 같은분위기를 띠고있었다. 놈의 기분은 여전히좋아 보이지않았지만. 아니, 오히려 한마디 한마디할 때마다점점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 눈에띌정도로 감정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불가능합니다."
단호하게 대답한 요원. 하지만 놈은 요원의 대답에 만족하지 않았는지 베일 밑에 드러난 입을 찡그리며 말하였다.
"하지만 그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인간이란 생물이다. 이쪽 세계 역시 비슷하지. 신분으로 위아래가 나뉘는 것이 아니라 자본으로 위아래를 나누는 세계이지만. 여전히 차별이 존재하고 넘을 수 없을것 같은차이가 존재하는 세계라는 말이지.그런데도자신의 태생을 벗어나는 인간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재능으로, 실력으로, 인맥으로.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어떻게든 바득바득 위로기어 올라가려고하는 인간군상들이 존재한단 말이다! 남을 짓밟고서라도, 가족과 친지들을 버리고서라도!"
말을 이어가며 점차 흥분한 놈의 기운이 순간적으로 공동을 다시금 뒤흔들었으나 이번에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놈의 목소리 역시 기운처럼 힘이빠져 보였고.
"그러던인간들이…. 변했다. 그래,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졌지. 시스템이 세운 법칙에 인간들은 좋다고 달려들었고, 대부분은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들로 거듭났지. 자신들보다 훨씬 우월한 종족들마저 제치고.하지만…."
"...가능성. 인간이라는 종족이 가지고 있던 가능성이 사라졌지. 완전히 죽어버렸어. 몇백만, 몇천만,몇억 명 중한 명. 수백,수천 년에한 번. 아주 극악한 확률로나타나지만, 마침내그 존재감을 발휘할때에는우리조차 놀라움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던 종족이 변해버렸지. 이제는그때의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야. 참으로안타깝구나,안타까워…. 그미약한 영혼으로도 가장 위대한 존재들과 접하고 소통을 시도하며 소환까지 성공한 것들이 말이야.후…."
깊은 한숨을 쉬는 녀석의 목소리에는 짙은 피로감과 우울감이 느껴졌다. 다른 동족들처럼 인간을 벌레 취급하는 것은 똑같은 것 같은데 기이하게애착감을가진 것처럼 보이는 놈의 모습이 인상 깊긴 하다.
하긴, 생각해보면 아무리벌레 취급을하더라도 인간을 좋아하는 놈이 한 명쯤은 있을 수 있겠지. 생각을 전환해보면 된다.
개미,날파리,모기 같은벌레들이 우리와 접촉을 시도하면 어떨까. 당연히밟아 죽이거나살충제를 뿌리거나 기타 방법으로 죽이겠지.벌레들 입장에서는그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까? 살충제가뭔지도모르겠지. 갑자기 호흡이 고통스러워지더니 서서히 죽어가는 정도로밖에 못 느끼겠지.
그런데 그런벌레들 중에서뜬금없는행동을 보이는 녀석이 있으면 어떨까. 자신의팔다리를뜯어가면서라도 글자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녀석. 아무리 벌레라고 해도 관심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솔직히 지구에서 그런 벌레가 있었다면 바로 영상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겠지.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면? 적은 글씨가 인간의 언어로이루어져 있고, 그림 역시 알아볼 수 있는 것이라면? 게다가 자신을 찬양하는 내용이라면?
솔직히 나라도 그 벌레는 기특하고 신기해서 안 죽이겠다.설탕물 같은거라도 먹으라고 던져주겠지.
물론, 그런 짓을 하더라도 벌레를 혐오하는 사람이라면 죽일 수도 있겠지. 아니면 글씨고 그림이고 제대로 보지도 않고 그냥 살충제를 뿌린다던가. 벌레에게서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상상도 못 하고기대도안 하니.
하지만 별난 사람은 꼭 있기 마련. 그리고 그 별난 `동족`이 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벌레 같은존재로 여기는 인간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동족.기어 오는혼돈. 지금까지 본 동족 중에 가장 강력한 힘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태도를 지녔다는 것은 정말괴짜 중의괴짜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면이 마음에 들었다.
절대 날 습격한 놈을 적대해서라던가 달을 부수었어도 그냥 넘어가서가 아니다. 아무렴. 조금은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니 전부멸종시켜야겠어. 기다린다고하건들미래가 보이지 않거든.그분이사라지고 나서볼 수 없게 되기는 했지만 돌아오시더라도 차이는 없을 것 같으니. 그래. 인간이라는 종족은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발악하며 그 재능을 보이는 경우가 잦으니 모조리 죽이다 보면하나쯤은나오지 않을까?"
취소.
저 새끼도또라이새끼였어.
말을 듣자마자 재빠르게 뒤로 점프하며 마법을 캐스팅하는 요원. 꽤 큼직한 마법을 준비한 것인지 마력이 요동치는 것이 느껴진다.
"아, 물론 자네 얘기는 아닐세. 이쪽 얘기지, 이쪽. 뭐, 같은 인간이라고 동질감을 느낄 수도 있긴 하겠지만 전혀 다른 종족이라고 보면 된다네. 인간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인류라고 부를 수 있겠지. 오만하게도 그렇게 자신들을 자칭하고 있으니."
물론 그런 모습에도 전혀 위협을 느끼지 못한 것처럼 여전히 바닥에 앉아 태연하게 말을 이어가는 놈. 하늘이뒤집어지더라도발끝 하나 건드리지못할 테니당연한 모습이긴 하다. 요원이 불쌍하게 보여서 그렇지.
그래도 언제나 여유롭거나 건방진 모습을 보이던 마법사 요원이 저리 긴장감을 놓지 못하고 있으니 보기 좋다.
미친놈만 아니어도 참 마음에 드는놈일 텐데말이야.
"푸념이 길어졌군. 나름 영광으로 생각하게나.아우터갓의 푸념을, 그것도 내 푸념을 들은 인간은 자네가처음일 테니말이야. 자네야 내가 어떤 존재인지 모르고 있겠지만 만약 알게 된다면 경악을 하게될 거야."
넌 그냥 수다쟁이 미친놈이야. 저게화신체의몸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본래부터 저런 놈인지 모르겠다. 신이라는 존재는화신체에영향을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나도 돌아가면화신체에대해서 연구해봐야겠다. 혹시 몰라,화신체가시설을 탈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힘으로 탈출하자니 이번에 달을부순 것처럼무슨 여파가 생길지 몰라서라도 보류해야겠다.리리스라는개 같은년이 있기도 하고. 놈이랑리리스랑붙으면어떠려나.
새로 발견한 능력이라고해야 할까권능이라고해야 할까,여튼시공간과 관련된 힘을 제어할 수 있다면야 쉽게 탈출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자유자재로 다루는 경지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으니까.
핵의 개수가 늘어나고 성장하면서 같이 늘어나는 것 같은데 그 조건을 모르니 해볼 수 있는 것은 해봐야지.
"대충 이쪽의 이야기는 끝났으니 본론으로들어가 볼까. 푸념이기는 했지만 나름 알아야 할 중요한 내용들이 들어있기도 했으니. 자네, 분명차토구아를소환했지."
"...예."
"아, 의식할 것 없네. 절대 해치지않을 테니까.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의 이름으로. 그러니 앉아서 편하게 얘기하게나. 자네는 이쪽 세계가 아니라 다른 차원의 인간이지. 그리고 나는 인간을 좋아한다네. 아주. 그러니걱정하지 말게나."
그런 태도를 보여놓고 믿으라고 하니 믿겠나.인간 같은사고방식과 말투를 가지고 있긴 한데 약간 괴리감이 있어 보이긴 한다. 인간에게 있어서는 그 괴리감이 치명적인 문제지만. 불쾌한 골짜기인데 목숨이 걸린버전이라고해야 할까. 수틀리는 순간 인형에게 모가지가따이는거지.
"차토구아가소환된 사실을 알게 되고 얼마나 놀랐는지. 물론 그 이후 그분의 흔적을 발견한 것에 환희하였지만. 그래, 자네에게 정보가 어디까지전달되는지도확인해야겠군. 잠시 몸을 좀 빌리지."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은 요원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머리에 손을 얹은 놈이 자신의 기운을 요원에게 흘려냈다. 요원은 반응조차 하지못 한 체두 눈이 위로 올라가더니 완전히 정신을 잃어버렸다. 아니, 그때 본 광경처럼 검은 액체가 눈물처럼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안 멈추냐고?
딱히 적대적인 감정이 느껴지지도 않고 신성력 역시 보호하기 위해 반응하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뭐후유증같은 것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내알 바는아니고. 놈도 인간을 좋아한다니 적당히하겠지. 뭐.
그렇게 머리 위에 회백색의 손바닥을 올린 채 기운을 뿜어대던 놈이 인상을 찌푸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역시나 제한되어있군. 이것도막아놨나…. 힘을더 주자니 너무나약…. 그래, 그런 방법이 있군."
혼잣말을 하며주억거리더니 이내 손바닥을 떼고 허공을, 아니 다른 공간을 분명하게 바라보던 놈은 이내 요원이 정신을 차리자 바로 말을 걸었다.
"자네…. 혹시강아지 좋아하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