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했더니 촉수괴물-67화 (67/74)

〈 67화 〉 10. 드림 랜드 (10)

* * *

66.

문 너머에서 나를 반기는 광경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제단 위에 놓여 있는 요원과 음침한 로브를 두르고 음산한 주문을 외우고 있는 이단자들과 그들을 지켜보는 노란 녀석.

섬김을 받는 장본인, 기어오는 혼돈이 강림하여 그 광경을 보고 정신줄을 놓아버린 요원의 모습.

뭐 대충 이런 풍경들을 상상헀지만 지금 보이는 광경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방 내부의 일부는 정말 상상하던 그대로였다. 황금빛의 옥좌에 앉아 있는 노란 비단에 칭칭 감긴 놈. 기어오는 혼돈의 화신체라고 강력하게 의심이 되는 존재가 당연하다는 듯이 옥좌에 고고하게 앉아 있었다. 입이 있을 곳으로부터 들리는 끓어오르는 듯한 숨소리와 그로 인하여 얼굴을 가린 노란 비단이 나풀거린다.

노란 옷감 밑으로 보일락말락하는 얼굴의 하관은 분명 인간의 것을 닮았지만 절대로 같은 종족은 아닐 것이다.

후루룩.

그리고 그의 앞, 태연하게 잔을 기울이고 있는 검은 옷의 존재는 당연히 마법사 요원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순간적으로 멍해진 정신을 추스리고 다시 방을 살펴본다. 그래도 어느정도 순화되고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게 장식한 위쪽과는 달리 이곳의 벽면에는 노골적인 벽화와 글자가 방 전체를 수놓고 있었다.

피와 내장을 줄줄 흘리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인간들과 괴물들의 모습.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활홀경을 맞이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광신도들. 그러한 인신공양을 무덤덤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거대한 파라오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 천장.

벽에 새겨진 글 역시 기어오는 혼돈을 찬양하는 글귀로 가득하였다. 그의 화신체로 보이는 '검은 파라오' 역시 같은 수준의 찬사를 받고 있었고. 그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들 역시 섬기고 있는 것 처럼 보였는데 모든 글을 해석할 수는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해석이 불가능 하였다.

역시나 작용하고 있는 검열의 힘은 문장의 주어를 인식으로부터 교묘하게 가리고 있었다. 융통성도 없는지 대상을 조금이라도 표현하려는 수식어 같은 것들 역시 인식으로부터 완전히 제외하였다. 다른 글귀로부터 분명히 '누군가'를 섬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 '누군가'를 모르니 답답해 죽을 지경.

이럴 거면 차라리 다 가리던가. 심지어 정보의 검열에 대한 방식 역시 차등이 있어 섬김을 받고 있는 대상이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까지 알 수 있었으니. ■■■, □□□ 이런 느낌이랄까. 인식은 차단되어 있지만 분명하게 차이점을 느낄 수 있게 해두었다.

도대체 검열을 통해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 장소에 대한 정보 하나는 알 수 있었다.

기어오는 혼돈뿐만 아니라 내 동족들을 섬기고 있는 수도원이라는 사실. 다만 차토구아의 이름이 없는 것을 보아하니 모든 동족들을 섬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정보가 없으니 그 기준을 알 수가 없었다.

혹시 모르지, 저기 내 이름이 적혀 있을 수도. 다만 마도서에서 글자 수를 유출했었던 경우와는 달리 이번에는 글자 수고 나발이고 어떤 힌트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빡빡하게 검열이 되어 있었으니 단서조차 없었다.

그 유명한 셜록 홈즈조차 사소한 단서를 통해 전체적인 그림을 알아내는 것인데 기초적인 단서까지 없으면 추리가 가능할 리가 없지.

에휴.

뭐 언제부터 나를 둘러싼 미스터리가 쉽게 풀렸다고. 일단 그건 넘기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 어이 없는 광경에 집중해야지.

천장과 벽면처럼 끔찍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바닥에 태연하게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요원의 모습에는 어떤 사람이라도 어이를 상실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저런 행동을 하는 건지.

하지만 저런 요원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노란 비단의 존재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니 수도원 지하에서는 후루룩거리며 차를 마시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저 새끼가 또라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아니, 다시 생각해보자. 아무리 기어오는 혼돈이 저 요원에 관심을 둬도 인간이 저렇게 건방진 태도를 취하게 놔둘까?

나였으면 저딴 식으로 행동하는 순간 그대로 뇌를 헤집어서 원하는 정보만 빼갔을 것 같은데. 격이 낮은 신도 아니고 고위급 존재로 추정되는 놈이 저걸 놔둔다고?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니 분명 다른 일이 있었을 것이다. 머리 쓰기는 귀찮으니 능력을 사용해야지. 이제는 익숙해진 감각을 활성화 해서 과거를 쳐다보려고 한 바로 그 순간.

스윽.

요원을 바라보고 있던 고개를 들어 내가 있는 장소를 바라보는 옥좌 위의 존재. 여전히 노란 비단이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놈의 시선은 분명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감지된 것인가? 내부에 영향을 끼칠까봐 바깥에 놔둔 신성력의 창이 향하는 방향을 꺾어 놈을 겨눈다. 수상한 짓을 하거나 나를 노린다면 즉시 꽂히도록. 지하 깊숙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백열로 타오르는 창은 모든 것을 꿰뚫어 버릴테니.

달을 부술 정도의 위력까지는 아니겠지만 인간도 벙커버스터를 개발헀는데 신이 못할까. 오히려 순수한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는 만큼 더욱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겠지.

그렇게 놈을 노려보고 있던 도중, 노란 비단 밑에 존재하는 입이 움직이며 쇠가 긁히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확실히 네 말대로구나. 재밌구나, 재밌어."

확실하게 기쁨이라는 감정이 느껴지는 목소리는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괴악하고 끔찍한 음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요원 역시 그 목소리가 불쾌한 듯 인상을 찌푸리긴 했지만 이내 노란 존재에게 대답하였다.

"당신...께서도 인지가 되지 않으시는 겁니까?"

"그래.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느껴지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는 노란 놈의 목소리에는 점차 환희가 차오르더니 이내 광기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드디어 찾았구나, 찾았어! 볼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지만! 세계가 움직인 것을 확인했다! 멈춰 있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헤아릴 수도 없는 오랜 세월동안 닫혀 있던 문이 마침내 열렸을 때에도 혹시나 했었는데!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점차 커지는 목소리에 흥분이 담기기 시작하자 놈이 흩뿌리고 있는 기운 역시 그에 화답하듯 더욱 진해지며 요동치기 시작하였다. 지하 공동이 흔들리기 시작할 정도로 막대한 기운이 움직이자 요원이 서둘러 보호막을 두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투두둑, 투둑.

천장에 금이 가며 먼지와 함께 돌조각들이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요원이 드디어 평정심이 깨지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기 시작했지만, 노란 놈은 주변 모든 상황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스스로의 감정을 기운을 통제하지 못하고 광기로 가득찬 웃음을 내뱉고 있었다. 아니,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하고 있는 것이겠지.

노란 놈은 미지의 존재와 전투할 당시와 거의 비슷할 정도의 강력한 기운을 뿌리기 시작하였고, 요원이 안간힘을 쓰며 사방에서 그를 짓누르고 있는 기운을 어떻게든 버텨내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역부족인지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 보호막.

아무래도 노랭이는 정신 차릴 생각을 못하고 있으니 내가 도와주어야겠네. 짜부라져 죽어도 별 상관은 없지만 일단은 살려두어야 저놈한테서 정보를 더 뽑아내니까.

정신체와 본체의 감각을 일체화시키고 신성력을 끌어올린다. 여태까지 나를 인도해왔던 황금색의 빛이 찬란하게 빛나며 내 정신체를 휘감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힘을 그대로 무너져가는 보호막에 더한다.

마나와 마법으로 이루어진 보호막. 몇 번이나 보았던 요원의 보호막인만큼 이미 초월적인 시야를 통해 마법의 발동 방식과 회로를 모조리 외워둔 만큼 간섭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마나로 이루어진 회로에 신성력이라는 또 다른 힘을 공급한다. 푸른 마나에 황금색 신성력이 섞이며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눈이 휘둥그렇게 떠지는 요원의 얼굴이 보인다. 그러더니 어느새 베일이 벗겨진 노랭이와 비슷한 표정을 보이기 시작한다. 끔찍하게 뒤틀어지고 갈라진 괴물과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니.

"저를 보호하러 와주셨군요 나의 신이시여! 항상 저를 지켜보고 계셨군요!"

응, 아니야. 아니, 여기로 오고 나서부터는 맞나?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지. 네놈이 생각하는 의도랑은 전혀 다르단 말이지.

물론 내 마음을 알 리가 없는 광신도 요원새끼도 노랭이와 동참해서 웃기 시작했고, 흔들리며 무너지고 있는 지하 공동실에는 미친놈 두명의 웃음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런 시발.

지구에 있을 때부터 광신하는 사이비 새끼들은 싫었는데 나를 믿고 있는 놈이 그 장본인이라니. 절로 한숨이 나는 상황이다.

가면을 벗고 정체를 드러낸 노랭이를 쳐다본다. 미친듯이 웃고 있는 놈의 얼굴은 끔찍하게 일그러져 있는 괴물의 것이었다. 은회색을 띄고 쩍쩍 갈라진 피부가 인간의 것일 리가.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생각해보니 문 비스트들의 것과 비슷해 보였다. 다만 그들과는 달리 얼굴에 흉측한 촉수들이 없었지만.

하지만 다른 흉측한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눈. 흰자가 없이 오로지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는 눈은 얼굴의 생김새와 합쳐져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었다. 게다가 끈적한 검은 타르같은 액체가 줄줄 흘러내리는 모습은 마무리 양념까지 더해주고 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

는 개뿔. 사진 찍어서 올리면 그대로 혐짤 태그가 박힐만한 모습에는 구역질이 치밀어오른다. 베일을 덮고 있을 때가 훨씬 나았다.

얼마나 웃어댔을까,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하는 기운과 기분.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 검은 파라오의 몸은 천장에 생긴 금으로 인해 반으로 갈라져 있었고, 벽에 걸려 있던 등잔의 일부가 떨여저 흘러내린 기름을 따라 불꽃이 장식하고 있는 방.

지하실 내부가 엉망진창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란 놈은 미소를 지으며 황금빛 옥좌에 앉아 있었다.

"자네 생각을 못했군. 사과하도록 하지. 기쁜 소식에 감정을 통제할 수가 없었으니 내 불찰이야."

"괜찮습니다. 덕분에 그 분이 저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니까요."

희번득한 광기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인간과 괴물의 눈이 마주치며 담화를 나눈다.

"역시 이 장소에 있는 건가."

"저도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 분의 기운이 방금 전에 저를 보호해준 것은 느낄 수 있었죠."

"나 역시 시간선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했으니. 문이 열리고 멈춰 있던 흐름이 재개된 것으로 보아 확실하게 깨어난 것 같은데... 하지만 문제가 생긴 것 같군."

"문제...?"

"다른 단서들도 많지만, 역시 자네를 보고 확신할 수 있지. 아무래도 완전하게 깨어나지 못하신 것 같군. 역시 그 놈의 수작인가..."

"신께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놀라는 요원의 모습. 다른 존재가 얘기했다면 불경죄로 씹어먹으려고 헀을 놈일텐데 상대가 상대다보니 저런 반응으로 끝나는 거곘지. 한결 같이 미친 놈인줄 알았더니 항상 보면 주제 파악은 철저하게 하고 있다. 계산된 광기라는 건가?

"문제라... 애초에 노덴스 놈에게 봉인 당하신 것부터가 문제지.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졌으니."

노덴스? 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주목한다. 어디서 검열 빔을 맞을 지 모르는 만큼 특정 대상을 완벽하게 지목하는 '명사'와 관련된 정보는 아주 유익하니까.

"봉인이라는 말씀은..."

"간단하게 비유하도록 하지. 자네는 개미가 인간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뜬금 없이 개미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노란 화신체. 어느새 베일이 다시 얼굴을 덮고 있어 그의 표정을 알 수는 없었지만 들려오는 목소리를 통해 유추해볼 수는 있었다.

의문. 호기심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지만 고위 신격이라는 위치와는 머나먼 단어.

그리고 아주 미약하게, 공기를 따라 진동으로 퍼져나가는 소리로 감지하는 것이 아닌 기운 자체에서 느껴지는 감정.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흔적조차 찾기 힘든 것.

분노.

"불가능한 일이죠. 뭐, 억지로 가능성을 찾자면 사람이 자고 있어서 반응하지 못하는 동안 누군가 수십만 마리의 개미들을 동시에 통제해서 조종한다면 모를까."

"바로 그거야."

"예?"

"제약 조건. 인간이 자고 있다. 개미가 인간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명령을 내리는 별개의 존재가 있다. 그들의 행위를 통제한다. 이런 식으로 제약 조건이 하나 둘씩 추가된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명제가 성립이 될 수 있도록 바뀌는 거지."

"아까의 예시에 조건을 더한다면 어떨까. 그래, 개미들이 문명을 이루었다면. 그들 역시 인간과 같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면. 아니, 오히려 더욱 발달한 장비들을 지니고 있다면 상황은 어떻게 변할까. 어쩌면 인간이 멀쩡하게 돌아다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로잡을 수 있겠지."

과학 문명에 개미라니. 끔찍한 걸? 인간은 지구 전체를 합해서 겨우 수십억에 불과한데 몇천, 몇만배 이상의 개체수를 가진 개미들이 인간보다 뛰어난 무기들을 장착하고 다닌다고 생각해봐라. 어우. 지구 뿐만 아니라 내가 갇혀 있는 시설도 뚫릴 정도겠지.

...설마 다른 차원에 진짜 그런 문명이 있는 건 아니겠지. 말하고 있는 대상이 대상이다보니 헛소리로 치부할 수가 없는 걸.

"자네가 신으로 섬기고 있는 분, ■■ ■■■에 대한 것 역시 같은 이치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불가능이 가능이 되었을 때, 0으로 수렴하는 확률이 어긋났을 때. 그래, 겨우 엘더 갓 수준에 불과한 놈이 우주의 법칙을 아우르는 아우터 갓을 쓰러뜨리고 봉인했을 떄."

마지막 말을 내뱉을 때 쯤에는 확실하게 불쾌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보았을 때 나름 동족에 대한 애착이 있다고 생각해도 될려나?

"분명히 다른 엘더 갓들이나 다름 없는 힘을 지니고 있던 놈이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강력해졌지. 인간이 우리로부터 금단의 지식을 추구하여 주제를 넘는 힘을 갖출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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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엘더 갓... 이라는 분도 이쪽 세계의 신이 아닙니까? 지금 말하시는 것을 들어보면 다른 존재에게서 힘을 받은 것이라고 느껴지는데... 그게 가능한겁니까. 아까의 비유처럼 개미를 통제하는 인간같은 일을, 신을 상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고요?"

당연한 의문을 가진 요원. 그야 인간의 시선으로는 신은 절대적인 존재로서 보일 테니까. 뭐, 맞는 말이기도 하고. '하위 존재'와 비교한다면 '상위 존재'에 포함되는 신은 범접할 수 없는 존재이니까.

하지만 막상 직접 신적인 존재가 된 입장에서는 또 그렇게 인간과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하겠다고 해야할까. 물론 육체적인 능력이나 정신적인 능력이나 기타등등 모든 면에서 인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것은 맞지만,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내가 여전히 인간으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결국엔 조금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간같은 기분이라고 해야하나.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이 중세시대로, 아니 더 나아가서 원시 시대로 넘어간다면 어떨까.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서 생물을 죽일 수 있는 존재는 신으로 여겨지지 않을까?

비록 신으로서 인간과는 분명하게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양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결국 감정을 가지고 인격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까. 흔히들 신화속에서 나오는 인간과 교류하는 신들의 모습을 본다면 알 수 있겠지.

만약 전혀 감정도 인격도 없는 신적인 존재가 있다면 모를까 지금까지 내가 만나왔던 신들은 하나같이 '인간'과 비슷한 면모를 조금씩이라도 가지고 있었다. 이세계에서의 신들 뿐만 아니라 내 동족들까지 그런 모습을 취하고 있었으니 신에 대한 나의 인식은 변함이 없겠지. 다만 의문인 것은 동족들이 흩뿌리는 기운에서 느껴지는 것들과 그들의 '성격'이 너무 차이가 나는 것일까.

특히나 레이나에게 들었던 그녀의 고향을 멸망시킨 동족들은 전혀 소통도 안 되고 이해할 수도 없는 놈들이었다고 하니. 데일에게 들었던 그들의 존재 역시 마찬가지였고, 지금도 느껴지는 기운들, 이들과 나의 본질과도 같다고 볼 수 있는 기운에서 느껴지는 부분들 역시 '인간적인' 이들의 현재 모습과 모순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에 의문이 든다.

주절주절 상념이 길어졌지만 결국 지금까지 본 신들은 '인간적인' 모습이 강했고, 그들 역시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고 나는 알고 있다는 말이지. 게다가 '하위 존재'들을 바라보고 있는 입장에서 나나 다른 신들을 똑같이 하위 존재로 여기는 누군가가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노란 놈이 꺼낼 이야기에 기대감을 가졌다. 검열되기는 했지만 역시나 나의 본질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으니까. 더군거나 나에게 검열을 가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놈이 나에게 있어서 '상위 존재'라는 것일테고, 그에 대한 내용 역시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

"있지. 우둔하신 아버지께서 주무시는 동안 세상의 법칙을 뒤틀어버린 존재가. 아버지마저 그에 영향을 받을 정도로 강대한 힘을 발휘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 이 역시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것. 게다가 그로 인하여 수많은 존재들이 새로운 법칙에 사로잡혀 바뀌었지. 나를 포함해서."

"그게 누구죠?"

"나 역시 정확하게 어떤 존재인지는 파악하지는 못했다. 다만 노덴스놈이 힘을 얻고 설치고 다니는 것부터 조금씩 정보를 얻어갔지. 무언가 알 수 없는 규칙에 따라 강해지는 미물들. 인간이 어떤 금기도 범하지 않고 스스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모습. 모든 존재들이 어째서인지 인과율로부터 절대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

"그리고... 자네를 통해서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된 사실. 차원의 벽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에서의 차원이 아닌, 하나의 세계가 전혀 관련이 없는 다른 세계와 섞이게 된다는 역시나 불가능한 일."

인상을 찌푸리며 불쾌하다는 듯이 내뱉는 노란 화신체. 그리고 그의 뒤에, 더 높은 위상에 있을 기어오는 혼돈이라는 존재가 내뱉는 세계의 비밀.

"이 세계는 다른 세계와 통합되었다. 마치 원래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그리고 하나가 된 새로운 세계는 기존의 세계를 뒤틀어버리고 바꾸어버렸지. 허나 우리들은 규칙같은 것에 얽매이지 않는 존재들."

노란 베일 밑으로 희미하게 번뜩이는 눈에는 분명한 광기가 보인다.

"비록 영향을 아예 받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를 구속하는 법칙으로부터 분명하게 저항을 했지. 그리고, 역으로 잠식해가는 것이다. 감히 우리를 억누르려고 하는 놈을. 하나의 세계를."

"세계와 법칙이 하나로 어우러진 존재. 세계 그 자체를 이루는 근간이자 동시에 모든 시공간에서 존재하며 그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 인간들은 그를 간단하게 표현하더군."

"시스템(System)."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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