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 10. 드림 랜드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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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인간이 압도적인 마법을 사용해서 당황했던 것일까, 말을 하던렝인이아무 반항도 하지 못한 체 무력하게 끌려가는 광경에 놀라서인가.
순간적으로 멍하게 비상식적인 광경을 보고 있던렝인들은이내 분노를 표출하며 다시금 온갖 마법을 요원에게 쏘아대기 시작하였다.
아니, 저거 공중에 잡혀 있는 놈은신경을 쓰지도않는 건가?
아니나 다를까렝인들의반항을 본 요원은 채찍을 더욱 강력하게 옥죄었고,렝인을휘감고 있던 채찍이 이내 더욱 깊숙하게살갗과가죽을 태우며 몸 내부로 파고들었다. 붙잡힌 놈의 처절한 비명이 더욱 커진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당연하게도렝인들이분노를 한들 이전과 상황이 달라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마법들은 모두 보호막에 막힌 채 환상의 불꽃 쇼만 남길 뿐이었다.
어느덧 번개의 채찍은살갗을파고드는 것을 모자라 붙잡은양팔을반쯤 절단하는 수준까지 도달하였고, 분노와 고통으로 가득하던렝인의눈에는 어느새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다시금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러게 왜깝죽거려. 마법이 안 통하는 모습을 봤으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사렸어야지 쯧쯧.
물론 모든잡몹이그리 신중하게 행동했다면 세상은 이미몇 번이고마왕에게멸망당했겠지. 용사가 첫번째마을조차 벗어나지못했을테니 말이다.
괴물들에게 당하더니 이번엔이세계의인간에게까지 당하는렝인에게안타까운 감정이 들었다. 그런데 뭐, 어쩌겠나. 자업자득이지.
마법이 통하지 않는 것을 깨닫자렝인들의발악은 멈추었고, 폭격이 멈추어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요원은 다시금 물었다.
"달라스린으로가는 길을 말해라."
아무래도 일단은 기존의계획대로 진행하려고하는 것같은데…. 기어 오는혼돈이라는 존재가 달을 파쇄해버린 나와 요원이 서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에 대한 여부가중요한 포인트가되겠지.
그런데 안내자도 없는데기어 오는혼돈을 어떻게 만나려고 하는지가 의문이기는 하다.
문 비스트와 접촉해서 만나려는 것이 기존의 계획이었는데, 문비스트 들이과연 노예의 노예에 불과한 인간과 소통하려고 할까부터가 의문이고, 무엇보다 저놈은 문 비스트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있을 테니까.
상념에 빠져있던 와중, 공중에 붙잡힌렝인의반항이 점점 약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긴,저 정도로상처를 입었는데 아무리 괴물이어도 생명력이 남아날 리가 없지. 점차약해져 가는몸짓과 느리게 박동하는 심장을 보아하니얼마 안 가서죽을 것 같았다.
이쯤 되면그냥 대답해줘도 될 텐데 말이지. 무슨 똥고집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이 목전에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렝인은여전히 입을 열지 않고 있었고, 요원의 무표정에서는 서서히 짜증이라는 감정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하긴, 슬라임으로살펴볼 때부터느꼈듯이 저 요원의 성격이 원래부터지랄맞아보였는데 지금까지 조용히지내온것이 기적이었지.
감당하지 못할이계의신이라던가 마법사로서 대선배라던가 등등을 만나니 나름 성격을 죽인 상태로 있던것일 텐데, 저 멍청한렝인들이불에다 장작을 던져넣었다.
원래 만만한 놈이 주제를 모르고깝칠때가 제일짜증이 나지. 0/5/0 하는주제에 입이나털고 앉아있으면 뚝배기가 마려운 것은 당연한 이치다.
밑에서 묶여있는렝인을지켜보는 동족들은 여전히 분노라는 감정만이 가득한 상태로 요원을 노려보고 있었다. 인간을 잡아먹는 종족인 것은 알겠는데 그 인간한테 당한다는 것이 그리도 자존심이 상하는 걸까?
솔직히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했다면나름 공포라는 감정을느껴야 될 텐데, 어쩌면 당사자가 아니라서 저렇게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다. 원래 매도 꼭 맞아야지정신을 차리는놈들이 있으니까.
점점 부들대는 힘이 약해지던렝인의몸은 마침내 축 늘어졌고, 요원은 혀를 차며 채찍을 휘둘러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시체를 옆으로 집어 던졌다.
반쯤 잘린 팔과 소매가 덜렁거리더니 이내 떨어지던 도중 분리되었고, 건물의 지붕에 부딪히더니 주르륵미끄러져바닥에 떨어져 내용물을 쏟아냈다.
분명 마법으로 받아낼수 있었을 텐데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뭐 일족의 수치, 그런 느낌으로반응하는 건가? 역시 괴물이아닐까 봐, 저들이 인간과는 다른 사고체계를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잠시 떨어진 시체에 눈길을 주던렝인 중하나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네놈도그 놈들과 한패인가?"
"뭐라고지껄이는지 모르겠는데, 나는달라스린을향한 방향만 알아내면 된다."
"인간 주제에 그런 힘을 가지고있다니….선택했어야됐었나."
평행선으로 달리는 대화를 듣고 있자니 어이가 없었다. 서로 자기 할 말만 하고 있으니까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아니,렝인한 명을 저렇게 죽여놓고제대로 된방향을 들으려는 요원도 병신이고, 뭔가 의미심장한 듯한 이야기를하고 있는저렝인도병신같았다.
하긴, 사람이 5명이 모이면 쓰레기가 한 명은 나온다는 명언이 있었는데, 지금 보이는 집단은수십 명은됐으니병신이한둘이아니겠지.
약육강식이 전부인 괴물들의 세계에서 도태되어야 했을 놈들이어째서살아 있는지가 의문이다.
"아무래도 말로 해서는 안되겠군. 아까처럼 한 명씩죽어 나가야정신을 차리…."
말을 하다가 말고 요원은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낀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전히 그를 노려보고 있는렝인들과을씨년스러운마을의 모습을 제외하면 어떤 변화도없었지만, 여전히주위를 노려보며 둘러보고 있는 모습에 나 역시 주위를 탐색해보았다.
딱히 어떤 변화도없…. 아니, 있구나.
마을 경계로부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그놈의기운이 내감각을 차단하고 있었고, 마을 경계에는 무언가가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는 익숙한 광경. 마을 경계로부터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괴물 중렝인이마법을 공중을 향해, 마을 주민들을 향해 쏘아대기 시작하였다.
요원이 어떻게 내가 포착하기도 전에 알았나 싶었더니 마력의유동을 감지했나 보다.
태연하게 마법을 막아내는 요원의 모습이었지만, 마을의렝인들은요원을 상대할 때와는 달리 안색이 창백해진 상태로 겁에 질려 있었다.
저 괴물의 무리에멸망당할뻔했으니그럴 만도하지.
렝인의마법 폭격으로 시작해서 다시금 수많은 괴물의무리들이줄줄이 나타나며 마을을 향하여 돌진하기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마을뿐만 아니라 요원 역시 목표물로 정해진 듯, 일부는 요원을 향해 나아갔다. 아니,날아갔다고표현해야겠지.
거대한 새들이 요원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전에 보았던 괴물 새들은 내 생각보다 훨씬 컸다. 이쪽 세계는 전부 거대한 것을 기본기로 깔고들어가는 건가?코끼리만 한거미뿐만 아니라 지금 보이는 새들의 일부 역시 비슷한 수준의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소설로읽을 때는인간의몇십 배,몇백 배의크기를 자랑하는 거대한 괴물들에 대한 묘사가 나올 때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그냥 압도적인 크기를자랑한다는 생각만할 뿐.
게임으로 거대 보스를 레이드할 때에는,어느 정도체감이 된다. 개미가 자갈을 물고 사람을 때리는 기분이랄까. 중세 시대 배경의 멋들어진 갑옷을 입고 검을 휘두르는 기사도드래곤앞에서는 그저 이쑤시개로 찌르는 듯한 풍경이었으니.
그리고 지금, 직접 현실로보고 있자니정말 장관이었다.
인상을 찌푸린 상태로 공중에 떠 있는 요원을 향하여 날아가는 거대한 새한 마리. 그 뒤로 다른 새들이 쫓아가고 있지만, 무리의 리더인지 가장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그 괴물 새의 모습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양쪽 날개를 펼치자 그야말로 하늘을 가려버릴 정도의 크기였고, 지상은 그 그림자로 인하여 순간적으로 어두워질 정도였으니.
그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자 마치 태풍이 불어온 것처럼 바람이 휘몰아쳤고, 도로 위에 있는 잔가지나 자갈과 돌, 나뭇잎들이용권풍처럼회오리치며 공중으로 빨려들었다 다시 사방으로 흩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세계에서드래곤을본다면 이런 느낌일까.
정말로드래곤처럼깃털이 아닌 비늘로 몸이 뒤덮여 있는 거대한 새. 다만 머리가 파충류의 것도, 조류의 것도 아닌 말의 것과 닮은 부분이 신기하였지만, 빛을 난반사시키는 비늘로 뒤덮여 있는 목과 바람에 흩날리는 갈기는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지상에서 쏜살같이 날아오른 새는 요원보다도 더 높은 창공을 향하여 날아오르더니 이내 찢어지는 듯한비명성과함께 요원을 향하여 그 거대한 몸을 내려찍기 시작하였다.
부리 사이로 문득 보이는기다란혓바닥과 날카로운 이빨, 독수리처럼 날카로운 발톱, 새보다는 박쥐에 가까운 피막이 보이는 날개.
물론 그 모든 것은요원의 입장에서는그저 다가오는재앙의 일부일뿐이겠지만. 거대한 몸과 거기에 더해진 빠른 속도 그 자체가 이미 치명적인 무기니까.
당연하게도 요원은 가만히 서서 교통사고를 당해줄 생각이 없었고, 그는 빠르게 수인을 맺으며 주문을 외우더니 순식간에 괴물 새의 뒤편에 나타났다.
공간이동 계열 마법인가. 게임이라면 점멸, 혹은블링크라고표현할만한 마법.
순간적으로 시야에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것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내 인식 속에서는 마법의 발동 과정이 모두 보였다.
마력을 통해 순간적으로 공간을 왜곡시켜 점과 점을 선으로 이은 뒤에 그 선을 따라 몸을 이동시키는 마법. 공간이굴절되어기존 위치와 이동할 위치가 연결된 상태였기에 약간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몇m나 떨어진 장소로 이동할 수 있는 구조였다.
이것 역시쓸만하겠는데. 어쩌면 내 핵을 이동시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은 능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식물도 아니고언제까지 한자리에붙박이처럼 붙어 있어야되는 걸까.
다만, 촉수를 공간이동 시키는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 단거리 이동이기는 하지만, 공간을 갈라서 튀어나오는 촉수는 충분히 위협적이겠지.
무엇보다 공간 역시 내가 지닌 능력인지 권능인지 모를 힘에 포함되어있으니 더욱 쉽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사냥을 개시한 독수리처럼 지상을 향해 꽂히던 괴물 새는 먹잇감이 눈앞에서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당황하지 않고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다시금 공중으로 방향을 선회하였다.
그리고 그약간의몸짓으로 괴물새가 비행하던경로 바로 밑의 집한 채가완전히 무너졌지만. 저번에는 흔적을 지우는것뿐만아니라 알 수 없는 기운이 건물 역시보호했기에흔적이 남지 않았는데 말이지.
이번 습격은 지도상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겠다는 느낌으로 온 것인지 기운이 활동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미 자리를 잡았다고해야 하나.
내 감각이 구체 형태로 뻗어나가고 있는 도중, 잠깐 공백기를 거치고 다시금 발동하는 것을보았을 때지금 이 마을을 중심으로 거대한 구체 형태로 기운이 둘러싸고 있다고 볼 수 있겠지.
마치 공간을 격리한 것처럼지상뿐만아니라 공중과 지하까지 모두 포함한정체 모를기운의 거대한 구체.
그래, 마치 내 본래 육체를격리시켜놓은시설 놈들처럼 이놈 역시렝인들과요원을 가둬놓은 상태로 괴물을 투입하여 제 흔적을 완전히 없애려고 하는 것이다.
이건 좀 열받는데.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는 것 같지만, 내가 갇혀 있다는 사실을 오랜만에 자각하게 해주어서 기분이 은근히 더럽다. 만약 그걸 노리고 한 것이라면박수를 쳐주고싶지만.
아직은 내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은 상황을 관조하기로결정했다. 솔직히 바닥의렝인들은알 바 아니었고, 요원 역시 목표를 위해서 필요할가능성이 큰것이었지 딱히 의무감 같은 것은 안 들었으니까.
무엇보다도 요원이 지금 상황을헤쳐 나가기위해 어떤 결정을할지가흥미로울뿐더러사용하는 마법을 하나씩 분석해서 정보를 얻을 수 있기에 어떤 방식으로도 이득이었다.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즐거움이니.
다시 저 높은 하늘을 향해 몸을 띄운 거대한 새와 달리 이번에는 그 새를 따라 날아오르던 다른 새들 역시 요원을 향해 몸을 쏘아대고 있었다. 지상에서 발포된 로켓처럼 요원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오른 새들이었지만, 요원은 연속적인블링크마법을 통해 모든 공격을 회피하였고, 마침내 공중에는열댓 마리의새들과 요원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코끼리보다도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던 처음의 놈과는 달리 다른 새들은 크기가 말이나 소정도 크기일 뿐이었다. 생긴 것이 비슷한 것을 보아 동족인 것이 분명했지만,여리여리해 보이는비늘이나 잔 상처가 없는 몸을 보아서는 어린 개체들로 보였다.
아마 나를 습격한 놈이 어디 둥지 하나를 통째로 세뇌한것이겠지. 괴물 새의 짝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 그 당시에 죽었거나했을테고. 요원에게는 다행이겠지만. 저런 거대한 놈이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나 있으면 훨씬 까다롭겠지.
날개를 펄럭이고 있는 새들과 그로 인해 불고 있는 바람으로 로브가 펄럭이는 마법사 요원.
다시금 펼쳐진 미묘한 신경전의 대치가 벌어지는 공중과는 달리 지상에는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과거와는 달리 이번에는 통제가 완전히 풀려서일까, 파도처럼 쏟아지는 괴물들은 광분한 상태로렝인들을습격하고 있었고, 무너지는 마을처럼 그들의 대열 역시 순식간에 무너지고 있었다.
이전처럼지붕 위에자리를 잡는 것이 아니라 8개의 다리를 놀리며 돌격하는 거미들은 어떤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고 있든 그대로 돌파하며렝인들을향해 나아갔다. 다른 괴물들보다도 더욱 분노한 것처럼 보이는 그들은 무너지는 집들의 파편 사이에서 튀어나와 거대한 앞발로렝인을찍어눌러 죽이고, 대검보다도 거대한 독니로렝인을반토막 내며전진하였다.
그러고 보니거미들 역시 전보다 더 거대한 놈들이 온 것을 보아 성체들 위주로 습격한 듯 보였다. 입에서 토해내는 거미줄의 양 역시 훨씬 압도적이었으니까.렝인들이화염 마법으로 어떻게든태우려 들어도거미줄의 양에 밀려 역으로 진화되는 모습은 끔찍하고 징그러웠으니.
거미들만 있으면 모를까, 동족인렝인들역시 온갖 마법을 펼치며 자신들과 똑같이 생긴 이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요원에게 막히던 나약한 마법들과 달리 습격한렝인들이펼치는 마법은 이들이 왜 고원의 지배자인지를 똑똑하게 알 수 있는 수준의 것들이었다.
집채만 한얼음덩이가 공중에서 맺혀 떨어지지를 않나, 폭탄이 터진 듯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지를 않나. 규모로도 위력으로도천지 차이인마법이 쏟아지자 마을의렝인들의보호막은 유리처럼산산조각이 났고, 이어서 닥치는 마법에 보호막과 같은 꼴이 났다.
순식간에 쓰러지는 마을 소속의렝인들. 수십의 숫자는 순식간에 줄어들고, 습격해오던 괴물들의 마지막 개체들이도착할 때쯤에는황폐하게 무너진 마을의 잔해와 처참하게찢겨진시체와 바닥을 적시는핏물뿐이었다.
남아있는 생존자는 단 하나. 공중에서 여전히 회피기동을 반복하며 괴물 새들의 공격을 피하고 있는 요원만이 홀로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의외로 새들을상대로그는 잘 버티고 있었는데, 그이유 중 하나가아이러니하게도 몸의 크기였다.
가장 작은 개체도 작은 말 수준인 새들과는 달리 평범한 인간의 크기인 요원이었기에 오히려 그들의 공격을 쉽게피해 나갈수 있었던 것.
모게임마냥새들이 깃털을 날리거나 날개로 바람을 일으켜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육탄공격만 가할 뿐이었기에 작은 몸에블링크마법까지 더해지니 공격을 맞으려고 해도 맞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새들의 거대한 크기와는 달리 연계 수준은 상당하여서 서로가 돌진하는 동안 부딪히거나 경로가 방해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작은 체구의 요원을 노리지는 못했다.
반대로 요원의 공격은 거대한 덩치의 새들을 맞추기 아주 편한 상태. 덩치에 비하면 빠른 속도와 선회능력을 갖춘괴물 새들이었지만, 모든 마법을 회피할 수는 없었고 요원은 그들을 사살하는 것이 아니라 비행 능력을 빼앗는 마법을 중심으로 대응하였다.
번개의 그물망을 통해 감전시켜 일시적으로 근육을 마비시킨다거나 공중에 날카로운 얼음 조각들을 지뢰처럼 흩뿌려서 비행을 방해하는 등 주로 광역 마법과 설치형 마법을 통해 새들을 방해하였고, 아직 경험이 미숙한 몇몇 어린 새들은 마법에 당하여 그대로 지상으로곤두박질치는 모습이 보였다.
일반적이라면 저런 높이에서 떨어지면즉사하겠지만, 지상의 괴물들이 그리내버려 두지않았다는 것이 요원에게 있어서는 불행이랄까.렝의거미들이 순식간에 펼쳐낸 거미줄이 마치 안전띠처럼 새들을붙들어 맸고, 바둥거리며 거미줄에 묶인 새들은 비록 다시 날아오르지는못했으나생명은 건질 수 있었다.
설치된 거미줄들은 놀랍게도아무것도없는 허공에 설치되어있었는데, 자세하게 살펴보니 거미줄의 끝부분들이왜곡되어 있는공간에걸쳐져 있는모습을 볼 수 있었다.
렝인들이마법을 사용한 것인지 거미들의 고유 능력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무너진 마을의 상공은 투명한 거미줄이 넓게 펼쳐져 그들만의 영역을 형성하게 되었고, 거미들은 거미줄을 마치 계단을 타는 듯이 천천히 오르기 시작하였다.
"클라우드오브미스트! 블리자드! 라이트닝스피어!블링크!블링크!블링크!크으윽."
넓은 지역에 안개를 펼쳐내고, 얼음 소용돌이를 통해 안개를 얼려서 공중에 얼음 결정들을 만들어낸 뒤에 전기를유도해광역으로 번개를 흩뿌린 뒤에회피기동.
"루트인탱글!블링크! 성장하고, 피어나라. 생육을 흡수하고 피를 마시며 자라나라!카니보러스그로브!"
땅에서 식물이 올라와 괴물들을 묶기 시작하더니 이내 거대하게 성장하며 휘감은 괴물에게서 양분을 빨아들이며 살아있는 생물처럼 공격한다.
온갖 마법을 통해 발악하는 요원이었지만 괴물들이 가만히 서서 당하고있지만은않았다.
지상의 식물은렝인들의마법에 불타고 거미의 독에 당해 시들어 죽는 모습도 보였다. 심지어 문비스트들의일부는 그저 괴력으로 줄기를 뜯어내는 것은 물론, 땅에 박힌 뿌리까지 모조리 뽑아내어 집어 던지는 모습까지볼 수있었다.
게다가 어느덧 높은 위치까지 거미줄로 구조물을 만들어낸 거미들이 요원을 향하여 도약하여 공격하거나 거미줄을 내뱉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요원이블링크로회피하더라도 뱉어진 거미줄은 땅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 고정된 상태로 펼쳐져 점차 이동할 수 있는 공간 자체를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신기한 점은 거미줄이 거대한 새에게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거대한 몸집으로 거미줄을 끊고 다닌다는 의미가 아니라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새들은 거미줄을 투과해서 지나고 다니고 있었다.
"블링크! 인페르노!블링크!블링크!"
어떻게든 화염 마법을 통해 거미줄을태워 가며이동하는 요원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공격 마법보다는 회피를 위해서 마법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점차 많아지기 시작했다.
공간을 장악하고 천천히 조여오는 괴물들의 모습은 분명하게 전략과 전술이 담겨 있었다. 게다가 각 괴물의 특성을 교묘하게 활용하는 것은 분명하게 내가 과거를보았을 때의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어느덧 하늘임에도 불구하고 투명한 거미줄이 여기저기얽히고설킨상태로 공중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지상에서 바라보고만 있던 괴물들 역시 거미줄을 타고 올라 공중에서 자연스럽게 요원을 노리고 있었다.
요원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다이빙하며온몸으로돌격하는 새.
거미줄에 자리를 잡은 상태로 마법을 쏘아대는렝인들.
다른 괴물들이 활동할 수 있게 거미줄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은 물론 뱉은 거미줄로 요원을 묶는 것을 노리는렝의거미들.
육중한 몸과 괴력을 통해 거미줄에서 거미줄로 도약하고 다니며 얼굴에 달린 촉수를 꿈틀거리며 공격하는 문비스트들.
연계에 연계가 이어지고, 요원의 숨은 점차가쁘게 쉬어지고심장은 터질 것처럼 박동했다.
마법뿐만 아니라 몸을비틀거나머리를 숙이는 등의 육체적인 회피까지 거듭해야 할 정도로 공격들이 근접하기 시작했고, 점차 궁지에 몰리던 요원은 순간적인 문 비스트의 돌격을 피하려고 몸을 움직이다 힘이 빠진 듯 비틀거렸고, 가까스로 공격은피했지만이어서 날아온 거미줄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맞아버렸다.
다른 괴물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니거나 그대로 뚫고 지나다니던 것과는 달리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거미줄의 특성처럼온몸에끈적거리게 달라붙은 거미줄.
요원은 황급하게 마법을 통해 몸을 묶은 거미줄을태워 갔지만이미 흐름은 끊기고 주도권은넘어가 버린상태였다.
거미줄은 태웠지만 날아온렝인의얼음 마법이어깨를스쳤고, 피가 튀는 상처도 지혈하지 못한 채 괴물 새의 돌진을 피해야만 했다.
그렇게 상처가하나둘씩쌓여가기 시작하고,온몸에잔잔한 상처로부터 피를 잃기 시작한 그는 점점 힘이 빠지기 시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나는 지켜만 보고 있었다.
궁지에몰렸을 때언제나 광인처럼 행동하며 마법을 펼쳐냈기에. 그리고그럴 때나와 연결된 미약한 신성력이 자극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때문에.
온몸에새겨진 문신들로부터 문자가 떠오르며 각성하는 광경을 기대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일까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마침내 마력이 완전히 떨어진 것인지 공중에서 그대로 떨어지는 모습을볼 수있었다.
그리고 떨어지는 그를 기대하며 괴성을 지르고 있는수많은 괴물의모습을 보며 고민하였다.
이제 구해주어야 하나.
어느덧 정신을 잃은 듯 요원의 눈은 완전히감겨있었고, 떨어지는 몸은 통제되지 않은 상태로 빙글빙글 회전하며 핏방울을 튀기고 있었다.
그렇게 그가 떨어지던 도중, 이변이 일어났다.
공간이 강력하게 왜곡되는 현상이 일어나더니 공중에서 떨어지던 요원이 마치 멈춘 듯한 모습으로 둥둥떠 있는모습이 보였다. 그 직후 어마어마한 에너지의 유동이 일어나더니 무언가가 이쪽으로 건너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공간을 넘어 나타난 존재는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노랗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노란색 비단으로 이루어진 로브로 몸을 칭칭 감은 상태로 얼굴에도 역시 노란 비단으로 만들어진 가면을 쓴 존재.
형체 자체는 인간처럼 보였지만 그로부터 풍기는 기운은 절대로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인간이라면 저런 끔찍하고 위험한 분위기를 풍길 수 없었을 테니.
동족의 기운을 가득 품고 나타난 그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내 기괴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아니. 내가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언어로 신의화신체를 녹여버린것처럼, 의미와 힘을 담은 음절을 통하여 현상을 일으키는 것. 세계에 내리는 명령.
"깨어나라."
두근.
괴물들의 몸으로부터 감지되지 않던 부분들, 이상한 기운이 장악한 곳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온전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직후 괴물들은 트랜스 상태에서 깨어나듯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이내 괴성을 지르며 서로를 죽이고 죽이는 광란에 빠졌다.
음성에 담긴 힘은 그대로 대기를 타고 퍼져나가더니 마침내 이 공간을 가두고 있던 기운을 마주치더니 과자를부스듯손쉽게박살을 내버렸다.
이 모든 광경을 한 마디로 이루어낸 노란 가면의 존재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내가 떠 있는 공간을 주시하였다.
두근.
그가 꺼낸 음절은 나에게도 영향을 미쳤는지 머나먼 차원 너머 내 본체의 핵이 두근거리며 맥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렇게 손쉽게 기운을파훼하다니, 정체가 뭘까 고민하던 순간 노란 로브의 존재는 공간을 닫고 사라져버렸다.
요원을 데리고.
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