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10. 드림 랜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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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정신체임에도불구하고 느껴지는 압박감.
온 감각이 무거워지는 듯한 느낌에 이를 악물고 저항한다.리리스년이후로 처음으로 겪는 어마어마한 기운이었지만 저항하자고 마음을 먹자 어느 정도 견딜만한 수준으로 격감시킬 수 있었다.
육체가 없지만 이런 압박을 준다는 것은 정신적인 공격을가하고 있는것일까? 육체가 있었다면 무언가 반격을 시도하겠지만정신체상태로서는 역공을 가할 수단이 없다.
그나마 활용할 수 있는 것이라면신성력인데….신성력을따로 운용해본 적이 거의없다 보니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무엇보다 항상 육체적인 면에서 연습했었지, 정신적인 것은 시도해본 적이 없었다.
육체 자체가 정신적인 공격에 거의면역인 데다반대로 존재 자체만으로도 광역으로 정신적인디버프를패시브로 뿌리고있다 보니당연하게우선순위에서밀려날 수밖에.
그래도신성력이라는기운 자체를 다뤄본 경험이 있으니 그것을 살려서 활용해보자.
신성력은육체로부터 나오는 힘이 아니다. 신을 믿는 신도들의 신앙심을 기반으로 하여 신과 신도 사이에서주고받게되는, 정신적인 연결이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정신체상태여도 육체에 잠들어 있는신성력을모두 끌어올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조금 힘든 환경이지만, 정신을 집중한다. 차원을 넘어서 꿈틀거리고 있는 내 몸의 감각이 느껴진다. 제어되지 않은 상태로 꿈틀거리는 검은 촉수들. 땅에 뚝뚝 떨어지며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는 점액.
밝게 발광하며 오색찬란한 빛을 뿌리고 있는두 개의핵. 그리고두 번째핵에 새롭게 생긴 자그마한 구체.
다른 차원에정신체상태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래 육체를 관조한다. 육신과 정신이 분리되어 있어서일까,스스로의모습을제삼자의시선으로 보는 것은 묘한 느낌을 주었다.
감상을 뒤로하고 육체에 담겨 있는 힘을 끌어낸다. 몸 내부와 외부에 흐르는 막대한신성력, 핵으로부터 근원을 느끼며 끌어당긴다.
황금색 기운이 촉수를 휘감으며 흐르는 모습이 보인다. 공간을뛰어넘어신성력을다룰 수 있다는 사실은 확인되었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육체가 아닌, 정신에신성력이깃들게해야 한다.
... 그런데 여기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마법은레이나에게얘기를 들은 적도 있고, 마도서를 보며 스스로 연구한 적도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것은 물론아티팩트 같은물건으로 발동되는 모습까지 본 적이 있으니 다루는 방법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신성력은기껏해야 나를 습격했던화신체로부터느꼈던 것이나 빌어먹을리리스년이나를압박할 때기운으로 짓눌렀던 경험뿐이다 보니방법이 아리송했다.
육체적인 활용법이 아닌, 정신적인 활용을 하려면 어떻게해야 할까.
그렇게 고민하던 도중,정신체쪽의 상황이 변했다.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서일까, 내 정신을 압박하는 기운이 더욱 거칠게 변하는 것이 느껴진다.
나를 노리는정체를 모를놈이 단단히 마음을 먹었는지 파악할 수 없는 기운이 마치쥐어 터뜨리려는듯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지만아직까지는괜찮다. 원래부터 정신적인 내성은 충분했을뿐더러 웃긴 이야기지만스스로의모습을 필터 없이 관조하면서 단련한 것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광기에 대한 내성만 키우려고했던것이 정신적으로 단단하게무장할 수 있는 기회를마련해준 것이다.
그나저나 도대체 무슨 이유로 나를 공격하는 걸까.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분명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였지?드림랜드의신이라도되는 건가?
한마디를 던진 이후 어떤 말도 없이 압박만 가하는 것을 보아하니 여유가 없는 것일까, 말할 가치도 없다는 것일까.
지금 느끼는 압박은리리스년에게겪은 것과 맞먹거나 그 이상이라고 판단되니 분명 신적인 존재인 것이 분명했다. 다만 동족의 기운도,신성력이나마나도 아니라는 점에서 정확한 정체를 판단할 수가 없었지만.
정신을 옥죄이는 기운에 잠시정신체쪽으로시야를 돌리자 여전히 걸어가고 있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보인다. 아주 느릿느릿하게 이동하고 있는 모습.
마치 영상의 배속을 낮춘 것처럼슬로우 모션으로이동하는 광경을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지만, 상념에빠져있을 때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감각을느꼈던 것이현실에서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있던 거였어.
이 사실을 깨닫자 무언가 막혀 있던 부분이 뚫린 듯, 깨달음이 찾아왔다.
내가가진 능력은시간과도 관련되어 있구나.
내 본래 정체에 대한 정보를뜬금없이얻게되었지만, 그사실에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기운이약해지기는커녕점점 강해지고 있기에 대항할 방법을 마련해야 했다.
정신체상태를 해제하고 원래 차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한다면 만사형통이지만, 그럴 수는 없지. 나를 건드린 놈에게 승리했다는 감정을 느끼게 할 수는 없다.
나를 공격한 이상,대가를 치르게해주어야지.리리스년에게겪은 이후로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것은 절대 사양이다.
다시금 정신을 집중해서 육체의신성력을관조한다.
어떻게 하면 저 기운을정신체로옮길 수 있을까. 아니, 옮긴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류인가?
정신체와육체.둘 모두`나`이지만 왜 차이가 나는 것일까.
서로 현재 존재하고 있는 장소가 다르다는 것. 차원의 벽을 넘었기에 거의 단절된 것이나다름없는상태. 의식을 자유롭게 옮기고 있지만.
그런데 의식은 어떻게 옮겼지? 지금 보면 거의 즉각적으로 의식을 육체와정신체사이에서왔다 갔다하고 있는데.
세 번째핵. 분명,세 번째생기기 시작한 핵을 인식하면서 가능해졌지. 저번에 각성할 때에도 핵이 새로 생겼었는데, 이번 역시 각성하게 된 것일까.
시간.
기존부터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각성하면서 확실하게 다룰 수 있는 것은 분명 시간이라는 개념이 포함되어있는 능력이었다.
아니, 과연그것뿐일까? 차원을 넘고도 활동하는 것은 시간뿐만 아니라 공간이라는 개념 또한 포함되어있는 것이 아닐까?
시간과 공간을 합쳐서 시공간이라는 개념으로 놓고 보는 경우가 대다수고.
그렇다면 이 능력을 어떻게 활용할까.
개념을 완벽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아닐 거다. 만약 그게 가능할 정도면밸런스붕괴지.
일단 확인한 것은 미래나 과거에 대한 시야를 가지는 것과 집중할 때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듯이 체감되는 것. 공간적인 것은 아직 파악하지못했지만, 거리의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릴리트에게건네주었던촉수 가닥. 차원 밖에 격리되어있는 본체로부터 머나먼곳에 있었음에도불구하고 내가 그것을 내 몸처럼 인식하는 것은 물론 감각을 조금씩 느낄 수 있었던 것 역시 공간과 관련된 능력의 연장선이 아니었을까.
재생되는 촉수 육체라는 몸의 특성이 아닌,지니고 있는고유 능력의 특성. 그렇다면 육체가 아닌정신체역시동일하게적용할 수 있겠지.
선입견을 내려놓자 생각의 지평선이 넓어진 느낌이 들었다. 당연하게 여겼던 인식을 바꾸는 행동은 막상 하고 나서는별것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시작하는 것이정말 힘들다.
하지만 이미 인식을 바꾼 이상신성력을활용하는 것은 간단했다.
정신체와육체에는 차이가없다는인식. 육체로부터 정신을분리시켰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분리된 정신으로 육체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
아직 육체 전체를 공간을 넘어 이동시키는 방법은 감이 잡히지 않지만,정신체와육체를 하나로 인식을 하는 것은 가능했다. 그리고 몸으로부터 기운을 끌어올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지.
신성력을끌어올린다는 생각을 하자 황금빛 기운이 넘실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촉수에신성력을입혔던 것처럼정신체에방벽을둘러 갑옷을 입힌다. 느껴지던 압박감이 순식간에사그라지는것이 느껴진다.
갑옷을 두드리며 여전히 옥죄이고 있기는 하지만 몸을 쥐어짜는 듯한 압박은더는느껴지지 않았다. 이 정도 감각이면 오히려 안마받는 느낌이랄까. 시원하구먼.
조금은 여유가 생기니 이번에는미래시로보았던 광경을 떠올린다.
분명 바닥으로부터 거대한지렁이 같은 게올라와서 두 사람을 삼켰었지. 그 지렁이 역시 이상한 기운으로 휘감겨 있던 것을 생각해보면 날 습격한 놈이 저 둘까지 공격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압도적인 크기와 모습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모른 체순식간에당한 것을보니 분명 이상한 기운이 흔적을 감춘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할까나.
딱히 저 두 명이 괴물에 잡아먹히는 것이야 상관은없지만, 저들이만나려는 존재는 꼭 보고 싶었으니 살려는놓아야겠지.
무엇보다 나를 습격한 놈을엿 먹이는일이니 살려야 하는 이유가 또 있었다.
수비용으로 돌려놓은신성력을제외하고 나머지를 모으기 시작한다. 이상한 기운의 성질을 모으니 일단압축할 만큼기를 모은 뒤에 쏘아내어 단번에 꿰뚫을 생각으로 공격의 방향성을 정했다.
놈의 위치만 안다면 그쪽으로 공격을 날리겠지만 아쉽게도 위치를 특정할 수가 없었다. 지하나 공중에서도, 온 360도에서둘러싸여기운이 느껴지고 있었기에 아무리 감각의 지평을 넓혀보아도 이질적인 존재가 잡히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저지렁이쯤이면충분히 보인다.
저 지하 깊숙한 곳으로부터 꿈틀거리면서 땅을 파헤치고 올라오는 모습이 관측된다. 놈을 찾기 위해 지하까지 훑은 것인데 놀랍게도 지하에도 다양한 생물들과 문명이자리 잡고있었다.
물론 저지렁이 급의괴물은 보이지 않았지만.
여전히 느리게 지나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압축시킨신성력을날카롭게 가다듬는다. 황금빛으로 이글거리기 시작한 기운의 형체를 마치 창처럼 가다듬는다.
지구에서도 `신의 창`이라는 무기를 연구했었다지?궤도 상에서텅스텐 기둥을 떨구는 무시무시한 무기였지만 지금 내가 쏘아내려고 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어느새 형체가 완전히 갖추어져 강렬한 빛을 발하고 있는, 진짜 `신의 창`. 내가 본래 지닌 음산하고 불길한 기운과는 전혀 다른성질을 띠고있는 창을 목표를 향해 조준한다.
서서히 시간의 흐름이 돌아오며 점점 가속하기 시작하는 거대한 지렁이. 지각을 두부 뚫듯이 쉽게바스러뜨리며올라오는 파괴력을 지녔지만, 지금 내가 보기에는 그저 벌레 새끼일 뿐이었다.
무언가를 망가뜨린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그것이 누군가의 계획이든 사람을 한입에 집어삼키는 거대한 괴물이든. 괜히 한국인들에게 멀티플레이어 게임이 유행하는 것이 아니겠지.
억눌려 있는 파괴적인 본성을 끌어낼 수 있는 최적화되어 있는 환경.이세계로넘어오고 언제나 자제를 해와야 했기에 이번에 시도하는 공격은 더욱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이미 모습도 완성되어있고 기운도 충분히 담겨있지만, 더욱더신성력을응축시킨다. 목표는 지렁이를 통째로 소멸시키는 것. 1KM가 넘는 거대한 괴물을원샷원킬로보낸다면 얼마나 짜릿할까.
이 정도 파괴력과 기운이라면 분명 요원이 눈치를채겠지만아무렴 어때. 이제그런 건내알 바가아니다.
더욱 밝게 타오르기 시작하는 황금빛의 창. 아니, 금빛은 어느새 희미해지고 거의 백색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기운이 얼마나 압축된 것인지 창 주변의 공간이 왜곡되어 보이기 시작할 정도로.
더 모으자면 모을 수 있겠지만, 계산상으로는 지금 모은 정도면 충분했다. 모든 힘을 다 끌어 올린다면 지렁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렁이가 파헤치며 올라오는 암반은 물론 지상과 인간들까지 모두 태워버릴 테니까.
지금 모은 것만으로도 분명 지하 수십km까지 불태워버릴 것은 분명했다. 지하에 건설된 문명 역시 파괴 범위에 포함되어있지만 별로 신경은안 썼다. 인간의 것이 아니라 괴물들이 만들어낸 것이었으니.
무엇보다 그들 역시 이상한 기운으로 휘감겨 있는 것을 보아 분명 놈과관련된것이었다.
나를 공격했으니 대가를치루어야겠지? 누군지는 몰라도 자신을 섬기는괴물뿐만아니라 도시까지 모두 날려버리면 꽤 배가아플 테지.
공간을 비틀며 이글거리고 있는신성력의창.
지렁이 괴물을 날리자고 생각하자 백열의 창이 내 의지를 받들어 공간을 가르고 지하를 향해 쏘아져 나아가던 도중 나를 여전히 압박하고 있는정체를 모를기운과 맞부딪힌다.
그리고 거대한 폭음과 함께 강렬한 빛이터져 나온다.
지상에 태양이 떠오른 것처럼 강렬한 빛을 발하고 있는 구체가 설원 한가운데에서눈 부신 빛을발한다. 하지만 바깥에서는 볼 수 없겠지.
실상은 나를 감싸고 있는 놈의 기운과 내가 만들어낸 창이 서로 부딪히며 일어난 현상이니까. 놈의 기운에 휘감겨 있어 관측되지 않은 채 창과 방패는 서로 굉음을 내며 부딪히며 강렬한 빛과 에너지를 뿜어낸다.
신성력의파편이 접점으로부터 이글거리며 튀어나오려고 하지만 이내 나를 감싸고 있는 기운과 부딪히며 구체 형태의 감옥에서 탈출하지 못한다.
그런데도창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마치 제자리에고정된듯한 모습이지만 접점에서 일어나는 힘의 흐름은 분명하게 방향성을 가지고있었다.
두 가지의 상반된 힘이 부딪히며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는 대결의 잔해. 바깥으로 나가려는 힘이 방향성을 잃으면 창의 형태에서 벗어난 파편이 되어 다른 방향으로 튄다.
하지만 완전히사그라지는일은 없다. 오히려 나를 감싸고 있는신성력과맞닿으며 새로이 힘을 얻고 쏘아져 나아가 다른 방향에서 부딪힌다. 새로이 부딪힌 부분에서 역시 작은 폭발이 일어나며 파편이 다시금 생긴다.
끊임없이 늘어나는신성력의파편. 이제는 백색의창뿐만아니라 수백,수천 개의파편들이 제각각 나를 감싸고 있는 기운의 감옥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파편들 역시 강렬한 힘을 지닌 채 부딪히고 폭발한다. 그리고 새로운 파편들이 폭발로부터 태어나 다시 힘을 공급받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점차정신체주위의 공간을 메워가기 시작하는신성력. 내가신성력을끊임없이공급하고 있기에 분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강렬한 힘을 내포한 상태로 폭발하듯이 나아간다.
어느새 나를 가둔정체를 모를감옥 내부는 창뿐만 아니라 감옥을 빠져나오려는수십만 개의신성력파편들이 폭발하고 분열하고 있었다. 나는 분명 지렁이랑 겸사겸사 도시만부수려고했는데, 이제는 모인 기운이터져 나온다면고원의 반절은박살이 날것이 분명했다.
물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점이었기에 나는 더욱더 폭주하는신성력의파편들에 힘을 공급하였다. 적의 땅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설령 패배하더라도 완전한 패배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 결국, 전쟁의여파에 고통받으며 복구에 노력을 기울여야 하게 되니.
그리고 이곳은 분명 나를 노리는 놈의 홈그라운드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모르겠지만,지하뿐만아니라 지상의 종족들 역시 일부에게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으니.렝의거미인가 하는 놈들은 얼마 전에 보았던 거미 괴물의 권속이었을 텐데 어떻게 된 일일까.
배신한 것일까, 세뇌당한 것일까. 뭐, 지금 모인 기운이터져 나온다면어느 괴물을 섬기든남김없이몰살당하겠지. 빠져나오려고 하는 기운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파괴력은 증가할 뿐이다.
지금쯤 놈은 똥줄 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내가 지닌신성력에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며 버티고 있는 것일지도. 물론 나는 철철 흘러넘치는 여유 속에 있었다.
그야 내가 지닌신성력의총량에 한계란 없었으니까.
내 육체에 흐르는신성력은한계가 있을지언정 핵에서 공급되는 힘은무한하였다. 육체에흐르는 총량이 100이라면 그 100을채울 때까지끊임없이 기운을 생산하여 채우는 공장과도 같은 역할. 아니,생산을 하는것인지 무한에 달하는 양이 이미 담겨 있는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핵에 관해서는 내 육체임에도 불구하고 파악하고 있는 것이 많지는 않았으니까. 그래도 내 근원을 이루고 있는 만큼 궤가 다른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각성할 때핵이 늘어나는 것이 그 가설을 뒷받침해주고.
그리고 나는 그 핵이 지닌 잠재력을 활용하고 있었다.
핵으로부터신성력을끌어올리고정신체에공급한다.정신체를육체와동일한선상에 두고 힘을 끌어올리지만 약간 다른 점이 있다. 육체는 분명 촉수의 형태를 하고 있기에 그 형태에나름 제한을 받는다고해야 하나.
인간의 빈약한상상력 때문일까, 역시 분명한 형태가 있기에 그 모습에 맞추어서 기운을 끌어내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지금처럼 한계를 두지 않고 끌어올릴 수도있겠지만, 육체자체가 지닌 위력도 있기에마나라던가신성력에제한을 무의식적으로 두게 된다.
그런데정신체상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게임 화면을 바라보듯 분명 공간에 존재는 하고있지만, 실체는전혀 없는 상태.
그러니 어떤 심리적인 제한 없이 끊임없이 기운을 공급할 수 있었다. 그렇게정신체로옮긴신성력을주변에 뿌리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폭주하는 기운에 녹아들고.
결국, 나를노리는 놈은실패할 수밖에 없는셈. 아니, 피해를최소화하려면지금이라도 기운이 빠져나올 수 있게 압박을 멈춰야겠지. 이대로 시간만 흐른다면야 고원은 물론 세계 전체를 파괴할 수도있을 테니까.
무한이라는 개념은 이론상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적용되기 시작하면 파멸적인 결과를부를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태양처럼 빛나고 있는시한폭탄은강해질 것이고, 나는 여유만만하게 그것이 터질 때 이루어지는 파괴의 현장을 지켜보기만 하면 되었다. 나는 여유롭지만,정체를 모를놈은 압박받고 있는 아까와는정반대의상황.
물론 시간이 흐를수록 지렁이가 점차 지상에 가까워지고 있기는했지만, 설령두 인간이 잡아먹히더라도 나는 귀찮아지는 것이 전부다. 게다가 에이본이 섬기는차토구아가아무리 귀찮더라고 하여도 죽음까지방치하지는않을 테니.않겠지…?
어차피지금 모인 기운의 양을 봐서 인간들을 살릴 방법은 없었다. 그나마 고통 없이 한순간에 인생을 마무리하게 되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될까.
문득 나에게 말을 건 놈이 무슨 생각을 하고있을지가궁금해졌다. 무엇을 노리고 나를 건드렸는지는모르겠지만, 지금쯤은미친놈을 건드렸다는 생각을 하고 있겠지? 도발을 좀 해볼까?
게임에서도 유리할 때는입을 털다 불리해지면입꾹닫을시전하는사람들이있지 않은가. 그렇게 역전에 성공했을때에도발하면 상대의 정신을 갉아먹기 딱 좋지. 지금 내가 말을 한다면들을지는모르겠지만내가 목소리를 들은 이상 반대 역시가능할 터.
뭐라고 해야 할까.게임이었다면? 하나만치면될 텐데현실에서 하자니 단어 선택이 거슬렸다. 육체라도 있다면 중지를 날렸을 텐데. 아, 차원이 달라서 의미전달이 안 되려나.
그렇게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던 도중 상황에 마침내 변화가 일어났다. 아니, 예정되어 있던 결과라고 할 수 있겠지.
압박하던 기운이더는버틸 수 없는 것인지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한 것이다. 폭주하는신성력이마치의지를 갖춘생물처럼 약해지기 시작한 부분들을 물어뜯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대치가 끝나네. 팝콘이라도 있으면 먹으면서구경할 텐데아쉬울 따름이었다. 과연 고원이 얼마나, 어떻게 파괴될까나.
점점 약해지는 압박감. 한 번 팽팽한 줄다리기에서 밀린 순간 상황은 일방적으로 변하였다. 날뛰는 파편들은 물론이고 처음에 생성했던 창조차 여전히 존재했으니 창의 첨단과 부딪히는 부분은 더더욱 빠르게 약해지고 있었다.
이대로 빠져나간다면 창은 예정대로 지하를초토화시키고파편들은 지상을아작내겠지?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필연적인 결과를 기다리던 도중 마침내 상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전에 담겨있던 감정과는 전혀 다른, 당혹감과 분노가 섞여 있는 목소리였기에 더욱 즐겁게 들을 수 있었다.
"드림랜드를전부 파괴하려고 드는 것인가? 분명 네놈과 동족들을 섬기는 종족들도있을 텐데?"
응, 없어. 내알 바도아니고. 난레이나만있으면 충분하거든?
딱히 대답을 돌려주지 않자 놈이 다시금 말을 거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저 두 인간이 죽어도 괜찮나?기어 다니는벌레 놈과만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워우. 다른 두 괴물은 조심스럽게 부르던 녀석을 함부로 부르고 있네? 역시 나에게 압박을 느끼게 한 만큼 어마어마한 존재이긴하나 보네?
아, 혹시 에이본이 엘더 갓이라고 하던 존재인가?차토구아같은동족들을 적대하고 있는 것 같던데, 그렇다면 지금 행동이 이해가갈 수도.
이해한다고 용납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나저나 지금 말하는 것을 보면 협상을 시도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먼저선빵쳐놓고회유하려는 건 도대체 무슨 심보일까? 나름 내 목적을 알고 그걸 이용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어림도 없지.
이번에도 대답을 들려주지 않는다.어차피유리한 상황에 있는 건 나니까. 협상이란 것은 원래 위치가 중요하지. 그리고 지금은 내가 우위에 있었다. 옥수수를 다이아몬드로 바꾸자는 요구를 해도 될 정도로. 그러니까 알아서 길 때까지 대답을 들려줄 의지는 없었다.
어느새 백열의 창이 나를 감싸고 있는 기운을 조금씩 뚫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끝이 다가오고 있는데, 이렇게 시간을 끌어도 괜찮겠냐?
아니나 다를까 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번에 들려온 대답은 내가 예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었다.
"네놈이 무엇을 노리고있는지는 모르겠지만원하는 것은 이루지 못하게 해주마. 기어오는벌레 놈을만나고싶어 했지? 그래, 그 소원을 이루어주마."
갑자기 급발진하네? 뭐지? 뭘 하려고 하길래 저렇게 당당하게 대답을 하는 것일까 생각하던 도중, 드디어 예정된 파국이 일어났다.
나를 감싸던 기운이더 이상압도적인 양의신성력을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언가이상했다.
모든 방향에서 나를 감싸고 있던 기운은 분명 무너지고 있었지만,신성력에의한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압박을 풀었다고?
감싸고 있던기운 일부가무너지자 내부에서 폭주하던신성력이거칠게튀어다니며모조리 무너진 부분을 향하여 나아갔다. 미지의 기운에 구멍이 뚫린 곳과 달리 다른 부분들은 오히려 강화된 듯 날뛰고 있는신성력을굳건하게 버텨내었다.
그랬기에신성력은더더욱 뭉쳐서 구멍을 통해 나아간다. 마치 포신에서 탄환이 쏘아지듯, 구체에 생긴 구멍으로신성력이줄기줄기뻗어 나간다. 그리고 그방향은…. 하늘?
마침내 보이는 광경.
황금빛의신성력파편들이 단 하나의 구멍을 통해 빠져나가자 서로 합쳐지며 하나의 거대한 기둥으로 변하여 하늘을 향해뻗어 나갔다.
천사가 강림한다면 이런 광경일까. 거대한 빛의 기둥이 어둠을 밝히며 구름을 뚫고 쏜살같이 비상하였다. 처음 생성한 창은 여전히 지하를 향해 나아가려고 하고 있었지만 나를 감싸던 기운은 구멍을 열어낸 만큼 오히려 더욱 강화되어 창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로 인하여 생기는 파편들은 다시금 하늘을 향한 기둥에 포함되었고, 내가 처음생성했던창보다도 강력해진신성력의기둥은 거대한레이저처럼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이 도달한 곳을보고 나서야마침내 놈의 의도를 깨달았다.
응축된 황금빛의 레이저, 마치화신체가사용했던드래곤브레스처럼신성력이응축된 파괴의 포는 밤하늘을 가르고뻗어 나가달에 적중하였다.
거대한 달과 레이저가 충돌하자 압도적인 빛과 함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밤하늘이 순식간에 대낮처럼 밝아지며 지상을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넓게 펼쳐놓은 감각으로부터 지상에 있는 온갖 종족이 하늘을 보며 경악을 하는 것을 포착한다.
신성력의색으로물든 하늘과땅. 경탄스러운 광경으로만 보이지만, 그 실체가 서서히 드러난다.
둥근 모습을 하던 만월의달 일부가부서지고, 녹아내린다. 마치전병을물어뜯은 것처럼달 일부가완전히 파괴된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초월적인 감각은 바로그달위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아수라장.
이름 모를 식물들로 이루어진 숲은 마치 사막처럼 먼지로 화하여 스러지고 불탄다. 끈적한 액체가 가득하던 바다는 모조리 증발하여 바닥이 드러나고 있었고, 온갖 괴상한 생물들의 잔해가 흩뿌려져 있다.
달에서 살아가던 회백색의 괴물들 역시미친 듯이아우성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반쯤 녹아내린 몸으로기어 다니는놈들로부터 폭발에 여파에 휩쓸려산산조각이 나버린놈까지.
전쟁의 참사가 이런 광경일까. 문 비스트라는 이름을 가진 끔찍한 괴물들은 제 고향인 달이 파괴된 모습에 마치어린아이처럼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었다. 그들이 섬기는 신을 애타게 불러대며.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달의 약 1/4가 부서졌을까. 그 파편들이 향할 곳은 오로지 한장소뿐이었다.
지상으로 떨어지는수많은 운석, 아니월석들이라고해야 할까. 황금색 빛이 서서히 사그라들며 붉은 톤으로 바뀌고 있는 하늘에수백, 수천 개의파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 파멸적인 광경 가운데 놈의 웃음이 들려왔다.
"그래, 만나게는 해주지. 네놈이 바라는 방식은 아니겠지만. 놈의 분노를 받고도살아남는지지켜보도록 하지."
그리고 마침내 지상에 올라온 지렁이가 에이본만을 삼키더니 순식간에 지하로 파고들며 사라지는 광경과 함께 나를 압박하던 기운은 완전히 사라졌다.
멍하게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요원의 모습. 그리고 갈 곳을 잃은 흰색의 창을 공중에 띄워 놓은 나 역시 그와 같이 하늘을 쳐다만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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