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했더니 촉수괴물-60화 (60/74)

〈 60화 〉 10. 드림 랜드 (3)

* * *

59.

온 사방이 흰색으로 가득한 고원. 햇빛이 반사되어 눈부신 그 장소에서 두 명의 인간이 걷고 있었다.

새까만 옷을 입어 흰 배경에서 도드라지게 눈에 띄는 남자. 가슴에 달린 훈장과뱃지가금빛으로 반짝이며 시선을 끈다.

다른 한 인물은 정반대로 밝은 흰색 로브를온몸에칭칭 두르고 있었다. 배경과 어우러지는 보호색으로 정확한 모습을 파악할 수 없는 인물.

키와 골격으로 남성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주변을 둘러보며 푹푹 빠지는 발을 한 걸음씩 옮겼다.

사박거리며 눈을 밟고 지나가는 두 사람이었지만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발자국이 남지 않는 것.

발걸음을내딛을때마다 푹신한 눈 사이로 신발이 빠짐에도 불구하고 다시 다리를들어 올리자밟혔던 눈이 다시 차오르며 발자국을 지웠다.

눈밭에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이동하는 두 인영.

검은 옷을 입고 있는 남자만 아니라면 멀리서는 있는 줄도 모를 정도로 은밀한 이동이겠지만 검은 옷이 대지와 배경에 비교해서는 너무나도 눈에 띄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발견되기 위한 듯한 모습.

그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은 체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고,흰옷을입은 인영 역시 그의 뒤를 따라 조용히 움직였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까,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먼저 침묵을 깼다.

"그래서 저희가 걸어가고 있는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텔레포트 하거나날아서 가도 흔적은 남지않을 텐데요."

현재 상황에 불만을 표하는 그에게 다른 인물이 대답하였다.

"다른 차원의 마법은어떨지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마법을 쓴다면 이곳의 거주민들에게 바로 걸릴 겁니다. 그것이 사람이든 거미든. 그리고둘 다반기지는 않겠지요."

"거미라면 아까 만났던 그거미…. 신분께서 도움을 주신다고 하지 않았나요?"

"물론 그렇긴 하지만 굳이 나서서 거미들을 화나게 할 필요는 없죠. 거미들은 마법을 혐오하니."

"그런 것치고는 흔적을 지우기 위해 계속 마법을 사용하고 있지 않나요."

"이 정도로 약한 마법은 괜찮습니다. 날아다니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기겠지만.렝고원 대부분은렝인들이 지배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거미들의 눈 밖에 있는 것은 아니죠. 오히려 땅을 되찾기 위해 이를 갈고 있으니 더욱 촘촘한 감시망이펼쳐져 있습니다."

천천히 걸어가며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땅이 얼어붙는 추위 속에서 걸어가는 그들은 알지 못하는 세 번째의 동행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들의 뒤쪽 공중에서 따라가고 있는 투명한 존재.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정보를 탐색하고 기억에 담아두며 나는 그들을 계속하여 따라갔다.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을 통해 내가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정보를 최우선으로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리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정신체상태인 것과더불어 무언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하여정신체조차 인식이 되지 않는 상태였기에 아무런 방해 없이 정보를 얻기 최적화되어 있었다.

더군다나육체에있었을 때와동일한수준의 감각까지 지녔으니 진행은 일사천리.

감각을 확장하여 고원을 감싸듯이 반구 형태로 서서히 표면을 훑은 결과많은 사실들을깨달을 수 있었다.

드림랜드.

처음에 보았던 몽환적인 풍경과 꿈의 땅으로 직역되는 이름이 주는 뉘앙스와는 달리이곳은현실과다름없는장소였다.

식물도, 동물도 살아가는또 다른세계. 흰 눈으로 가득한 고원이었지만 지구의북반부와같이 눈 밑에 파묻혀 있는각양각색의식물과 그 사이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동물들이 존재했다.

물론 지금 말한 것은 지구에서도 살아갈 만한 평범한 동물과 식물들. 생김새라던가 느낌이 조금 다르기는했지만, 일반적으로사람이봤을 때거부감을 느낄만한 특징은 없는 생물들이었다.

그런 생물들만 살았다면 참 좋았겠지. 아쉽게도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원에서 가장 많이 탐지되는 생물은인간... 같은생물이었다.몇 가지특이한 특징들 때문에 인간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일단 가장 다른 점은 역시 뿔이랑 꼬리가 달려있다는 점과 발이 말처럼 발굽으로 되어있다는 점.

어릴 적읽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나왔던 사티로스라는신화 속종족과 닮은 모습. 물론 그 만화처럼 아름답고 잘생겼다면좋았겠지만, 이들에게기괴한 특징 하나가 인상을 혐오스럽게 바꾸어 버렸다.

바로 길게 찢어진 입. 영화 조커에서 나온분장처럼입이 귀까지 쭉 찢어진 형태는 공포 영화에서나 나올 듯한비주얼을자랑했다.그뿐만 아니라찢어진 입 사이로 보이는 날카로운 이빨들이 더더욱 그 인상을 강력하게뒷받침해주었으니.

그런 끔찍한 모습을하고 있는이 인간형의 생물체들. 아마 에이본의 말에 따르면 이들이 `렝인`이라는종족이겠지. 이들에게는 생김새만으로모자란또 다른 혐오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넓은 감각으로 탐지하여 발견한 이들의 도시. 눈으로 덮인 듯 보이는 도시는 꽤 찬란한 문명을 꽃피우고있는 듯보였다. 마법으로 밝혀져 있는 집들과 잘 닦인 도로는 마치 근대 문명을 방불케 했으니.

거기서 보았던 광경만 아니었다면 인간과는 다른지성체가만들어낸 문명에 감탄하고 있었겠지.

검은 재질로 이루어진 건물과 대비되는 흰 눈으로 덮인 아름다운 도시에는 또 다른 색깔이 만연했다.

탁한 붉은 색.

붉은 피가 도시 곳곳에서 보였고, 그 출처는 다름 아닌 평범한 인간들이었다.드림랜드라고칭해지는 장소인 만큼 내가 아는 순수한 인간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일단 감각에 잡히는 특징들은 분명히 인간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인간들의 처지는 절망적인 것이었다.

아무래도 이렝인이라고불리는 종족은 `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어도 인간과 관련이 전혀 없는 종족임이 분명했다. 인간이라면 같은 인간을 포식하지는 않을 테니.

아무래도 그들은 식인을당연시하는괴물들인 것이 분명했다. 도시 곳곳에 보이는인간의…. 딱히기억하고 싶은 광경은 아니다.

그런 광경을 보며 문득 들었던 생각.

과연이곳이정말 내가 살았던 지구가 있는 차원이 맞을까.

인간을 포식하는 괴물들이 살아가고 마법이 당연하게 존재하는 세계라고? 게다가 이들의 생태를 보아하니 인간을 무슨 밥이나빵 먹듯이주식으로 삼은 것처럼 보였는데 인간이 그 정도로 사냥을 쉽게 당할까?

뭐음모론 중에지구 공동설 같은것들도 존재했으니 사실 그런 음모론이 사실이었다는 경우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미 다른차원에 관한 내용을알게 된 것은 물론 직접 이동까지했으니오히려 부정적인 방향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저 지구와 닮은 차원이 아닐까? 흔히들 창작 매체에서 지구­2, 지구­3 등으로 불리는.

소설 같은데나오는헌터라던가마나가 존재하는 지구라던가. 마법 소녀가 괴물과 싸우는 지구라던가.

이곳 역시 온갖 괴물과 이형의 신이 살아가는 세계일 수도 있겠지.

정확한 진실이야 나중에 지구로 직접 가보면 알 수 있으니 가설은 보류해두었다. 당장에 얻어야 할 정보가 훨씬 많고 중요하니까.

다시렝인들에대한 내용으로 돌아가자면 분명 이들은 인간의 기준에서는 충분히 괴물이었지만, 이들 역시 멀쩡한 상태로 지내는 것은 아니었다.

괴물의 적은 또 다른 괴물. 이들 역시 괴물들에게 당하고 살고 있었는데, 내부의 괴물과 외부의 괴물이 있었다.

그중에서외부의 괴물은 나에게도 익숙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설명해서 뭣하랴, 다름 아닌 거미들이었다.

통로 내부에서 봤던 것과 비슷하게 생긴 거미들 역시 고원 곳곳에서 둥지를 틀고 살아가고 있었다.수백 마리의거미들이 동거하며 만들어낸 거대한 거미줄로 이루어진 네트워크.

수십km나 펼쳐져 있는 거미줄의 향연은 징그러우면서 동시에 미학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 거미들은렝인들을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여기는 것이 분명했다.

그들과 접하는 순간 분명히 미쳐 날뛴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하나같이 분노에 휩싸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

거미들의 마수에 걸린렝인들은모조리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물론 그들 역시 당하고만 있지는 않고 다양한 마법을 활용하여 반격을 개시하였고, 고원 곳곳에서 이들의 교전이 끊임없이 관측되었다.

수가 너무 많아서일까 도시를 습격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외딴곳에세워진 마을이 거미의 파도에 휩쓸려 몰살당하는 광경을 보아하니 적은 숫자로 이루어진 커뮤니티는 만만하게 여기는 것이 분명했다.

반대로렝인들역시 거미들의 둥지에 군대를 보내어 잿더미로 만들어버리는 등 사실상전쟁 중이라고봐도 무방한 상태였다.

그러고 보니그 통로에서 고원을 되찾지못했다고했지. 아무래도 거미들은 잃어버린 땅을 되찾고 있는신세였나 보다. 그 기억을 떠올리자 거미들의 행동도, 에이본이 요원에게 경고해준 것도 이해가 갔다.

불구대천의 원수가 주력으로 삼는 것이 마법인데 당연히 그에 대해 민감하겠지.

뭐, 괴물들 간의다툼이다 보니어느 한쪽에정이 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무엇보다 거미들 역시렝인이데리고 있는 인간을 잡아먹는 것을 보아 그들 역시인간 친화적인종족으로는 안 보였으니.

그런 불쌍한 처지의 인간들. 사실상 노예라고 봐도다름없는인간들은 고원에서 발견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어디선가 공급받는 것이분명했지만, 딱히관심을가진 것은아니라 그에 대한 탐색은 그만뒀다.

별로 관련도 없는 인간들을 굳이 힘을 써서 구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않았고, 내가상황에 개입할수있는지 여부도모르니.

실험 삼아서 간단한 마법을 발동하거나 물리적인 접촉을 시도해도드림랜드에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아서 사실상 나는유령 같은존재라고 볼 수 있었다.

신성력을사용한다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딱히 신도를 늘리고 싶은 마음은없기 때문에쓸 일이 없었다. 솔직히 지금 찾아온 마법사 요원도 나를 섬기고 있는 사실이 조금은 거슬린다.

나랑레이나만의연결인데.

물론레이나같은깊은 연결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라 설명할 수가 없네. 그냥 마음에 들지 않는다. 흔히들 미운털 박혔다고 할 수 있는 거지.

그렇다고 내가얀데레도아니고 굳이 요원을 죽여없애야겠다는의지는 없었다.레이나는…. 모르겠네. 아마 이 요원에 대해서 알고 있겠지? 광신적인 행동 역시 알고 있겠지만신성력이생긴것까지알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도 겨우 탐지했는데 그 연결을 느꼈을까. 그것보다 만약 모르다가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더 궁금하다.

아, 레이나보고 싶다.

문득 내가 이 먼 곳에서무엇을 하고있나현자타임이찾아왔지만 내 정체를 알아낸다면 분명레이나에게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에 다시 기운을 차리고 두 인간을 스토킹하는 행위를 지속하였다.

굳이 나에 대한 것이 아니더라도차토구아나거대한 거미나둘 다내 동족이라는 확신이 있었으니 분명 도움되는 정보를 찾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아까말했던렝인들의적중에서 내부에 존재하는 괴물이 단서를 쥐고 있었다.

회백색의 피부에 분홍색 촉수가 가득한 얼굴.

분명 달에서 보았던 생물들이 당연하다는 듯이렝인들의도시에서 아주 당당하게 거닐고 있었다. 그것도 경배를 받으면서.

이달 괴물들과렝인들사이의 관계는 분명했다.

주인과 노예.

회백색 괴물들을 보면 바로 머리를 조아리는렝인들. 그 경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괴물들은 재산부터 인력까지 모든 것을바라는 대로다루었다.

그리고 이들 역시 인간을 잡아먹는 모습을 보였다. 도대체 여기 괴물들은 왜 그렇게 식인을 하지 못해서 안달인지 모르겠지만. 하지만렝인들만큼자주 먹지는 않고, 오히려 인간을 살리는 모습이 더 많이 보였다.

물론 그것이 인간을 위한 행동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무언가 목적이 있는 것처럼렝인들에게서강탈한 인간들을 이끌고 서쪽으로 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

그리고 그들이 바로 내가 찾던 단서였다. 아마두 인간역시 이들과 접촉하려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거대한 거미가 언급했었던 문 비스트.

이름으로 보았을 때분명히 이회백색 괴물들을가리키는말이분명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해서차토구아가설명했던점.

`기어오는 혼돈 아래에 있는 놈들,`

요원과 에이본의 목적이며 동시에 지금 내 목적이기도 한 의문의 존재.

기어오는 혼돈.

차토구아나거미나 모두 꺼리는 것을 보아 분명 또 다른 신적인 존재일 것이 분명했고, 내 동족일 확률도 매우 높다.

그리고 나에 대한 정보를 처음으로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존재이기도 했고.

분명 무언가를 절실하게 찾고 있는데, 마법사 요원이 그것을 알고 있다고 한 것을 보면 아무리 봐도 나를 암시하고 있다고할 수밖에 없으니.

물론 검열이 다시 작용할 수도있겠지만, 직감적으로이번에는 무언가다른 일이벌어질 거라고 알 수 있었다.

아니, 그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지금 드는 생각, 기분,감정…. 어떻게표현을 해야 할까.

초월적인 감각으로 순간적으로 느낀 기시감.

그래.

운명의 갈림길이라고 해야 할까?

기어오는 혼돈이라는 존재를 만나게 된다면 분명 무언가 달라질 것이라는 확신.

`감`으로알게 된두루뭉실한내용이지만,그런데도확신할 수 있었다.

마치…. 미래를예지한 것처럼.

과거 여러 시간이 혼동하며 겹쳐져 시야에 보였을 때의 감각과 비슷한 느낌. 시간의 제약에서 벗어난 듯한 바로 그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문득 그것과는 또 다른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정신체가아닌, 본래의 육체에서 찾아온 감각. 분명 정신은 이쪽 차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간을 뛰어넘어 나에게 인식된 변화.

검은 촉수들이 꿈틀거리며 활동하는 곳의 중심.

모든 촉수가 뻗어나오는 핵.

밝게 명멸하는두 개의구체가 있는 곳.

바로 그 구체, 두 번째 구체에 새로운 구체가 맺히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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