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10. 드림 랜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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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방의 중심에 있던 4명의 사람과 이형의 존재들이 워낙 이목을 끌어서 모르고 있었는데, 내부에는 다른 생명체들도 많았다. 그것도 눈길을 끌 수밖에 없는 특징을 지닌 것들이.
거대한 거미와 비견될 정도는 아니지만, 분명 정상적인 크기가 아닌 거미들이 통로 구석구석에 존재했다.
가장 작은 거미가 말과 비슷한 크기였고, 심지어 큰 거미들은 코끼리도 압도할 정도로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기묘한 보라색의 녀석들은 거미줄을 손보고 있었다.
물론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거미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크기가 하찮아 보였지만 그들 중 일부가 요원과 에이본 근처를 지나치자 얼마나 큰지 체감할 수 있었다.
특이하게도 거미 다리의 수가 8개가 아닌 것들도 많았다. 곤충처럼 6개의 다리에 7번째 다리가 등에달려있는녀석도 있었고, 10개, 12개 등 분명히 수족이 더달려있는녀석들도 있었다.
분명 저 거대한 거미를 섬기는 하수인들이겠지. 논리적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생김새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 검은 슬라임들이 저 거대한 두꺼비를 섬기는 것과 같이 주인을 위하여 일하는것일 테다.
어쩌면 직접 놓은 자식들일 수도 있겠지. 크기를 보면 충분히 세울만한 가설이다.
거대한 두꺼비,차토구아는딱히 권속들을 데리고 오지 않은 것 같았다. 상대의 본거지에서 당하지 않을 자신감일까, 아니면 에이본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일까.
물론 두 괴수가 싸울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꽤 친근한 분위기를 보인다고 해야 하나.
미소를 지으며 무언가를 즐겁게 얘기하고 있는차토구아의말에 집중하였다.
"... 그래서이계의차원에서 구한 것이지! 대단하지 않나!"
"네가 귀찮음과 잠을 뒤로 하고 나에게 직접 찾아올 정도인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한 일이로구나. 하지만 이전과 같이 선물은 마음만 받도록 하지. 아니면 내 자식들에게 먹여도 되는가?"
"선물로 가져온 것인데 당연하지. 에이본, 건네주도록 하게."
"예."
에이본이 손짓하자 허공에붉은빛을 띠는차원문이열리며 무언가 바닥에 쏟아지기 시작한다.
투두둑거리며 땅에 떨어진 것들을 자세히 보니 사람의 사체였다. 검은색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슬라임들이 삼킨 요원들의 시체임이 분명했다.
인신 공양을 좋아한다더니 선물까지 사람으로 하는 건가.
거대한 거미가 손짓하자 바닥에 떨어진 사체들에 거미들이우루루모여들더니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징그럽고 끔찍한 광경임에도 불구하고 에이본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태도였고, 마법사 요원 역시 표정의 변화가 보이지는 않았다.
뭐, 자기를 죽이려고 한 놈들의 말로이니 그럴 만도 하겠지만, 저런 최후를 맞이하는 것은 아무리 그래도 심하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차토구아는즐겁다는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정작 `선물`을 받은 거대한 거미는 딱히 반기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냥 주니까받는다 정도의느낌이랄까.
하긴 거미 괴물에 이형의 신이라고 하더라도 다 인신 공양을 반기는 것은 아닐 수도 있으니.
거미들이 몰려든 지 얼마나 되었을까, 다시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한 거미들의 모습에 사체들이 떨어진 장소를 보자 뼈 한 조각, 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모든 흔적이 깨끗하게 사라진 광경이 보였다.
모두 거미들의 배 속으로 사라진 것이겠지.
잠깐동안벌어진 끔찍한 식사가 끝나자차토구아가다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잘들 먹은 것 같으니 기분이 좋군. 너도 자식들과 먹어도 되었을 텐데.이계의인간은 확실히 다른 맛이 난다고? 감칠맛이 아주 인상적이야. 게다가 내가 기억하기로는 너도 인간을 먹지 않았나?"
"거미줄을 짜고 있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귀찮아서 처리한 것일 뿐, 너와같이 따로 찾아서 먹을 정도로 좋아하지는 않지. 자식들이야 인간형의 생물체라면 증오를 하니 저토록 달려드는 것이고."
"아직도 못 돌아갔나?"
"렝인들에게여전히 못 당해내는 것 같더구나. 문 비스트 들이 다스리고 있는 만큼 쉽게 건드리지도 못하는 것 같고."
"기어오는혼돈 아래에 있는 놈들이라면그럴 만하지. 네가 직접 도와주기도 곤란하겠는데?"
"도와줄 생각은 딱히 없지만,기어오는혼돈이랑은 별로 접하고 싶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지. 최근 들어서 무언가를 찾고 있다고 들었는데."
두 존재의 대화에서 다양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문맥이나 배경을 알지 못하는 데다가 고유 명사는 당연히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지금 듣는 내용들을 나중에 마도서에서 찾아본다면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이 둘의 대화는 점차 흥미로운 방향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것 때문에 내가 오게 된 거야. 맛있는음식도 한몫했지만겨우 그 정도로 잠과 귀찮음을 무릅쓰고 찾아올 정도는 아니니. 무려 그 기어오르는 혼돈이 관심을 가지는 것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차토구아가새로이 꺼낸 주제는 거미 또한 관심을 가졌는지 거미줄을 짜내던 행위를 멈추더니차토구아를쳐다보며 물어보았다.
"네가 알고 있다고?"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여기 있는 인간이 알고 있는 거지만."
번들거리는 여덟 개의 눈이 처음으로 요원을 향하였다. 거대한 몸의 크기에 따라 눈알 역시 거대하였다. 요원의 몸보다도 거대한 눈들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의외로 담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담이 큰 것일까 겪었던 일이 그의 정신을 굳건하게 담금질해준 것일까, 그는 오히려 고개를 숙이며 인사까지 하는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자 거미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말했다.
"내 시선을 마주하고도 저런 태도라니 흥미로운 인간이로구나. 동족들이 눈앞에서 잡아먹히는 광경을 보고도 꿈쩍도 하지 않고. 너의 권속인가?"
"놀랍게도 나는 물론 어떤 존재의 권속도 아니다. 아까 말했던 다른 세계의 인간이지. 하지만 바로 여기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지."
음? 신성력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내 권속이 아닌가? 아니면 차원이 달라서 인식이 조금 다른 건가?
머리에 떠오른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생각하는 와중 나처럼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는 거미를 향하여 설명을 시작한 것은차토구아가아니라 에이본이었다.
"거미의 신이시여, 그는 권속이 아니지만, 권속인 존재입니다."
도대체 무슨 말이야. 있었는데,없었습니다 같은논리냐?
"그는차토구아님께분명히 제물을 바치고 힘을 빌렸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분명하게 접점이 없는 타 차원의 존재인 것이 확실하지만 이쪽 차원과 연결을 이룬데다가 소통까지 성공했습니다."
확실히 그들의입장에서 보면존재하는 것조차 몰랐던 장소로부터 계약 요청이 날아온 셈이니 당황스러울 수도 있었겠다. 게다가 생각해보니 저기 있는차토구아에게있어서 슬라임들은 자신을 섬기는 신도들일 텐데 내가 납치에 세뇌까지 한 것이 아닌가.
내가 슬라임에 대해 생각함과 동시에 그에 관한 내용이 대화에 올랐다.
"심지어 내 권속을 데리고 있었다. 나에게 권속을 내려달라고 하기도 전에."
"뭐?"
"오랜만에 받는 새로운 존재로부터의 인신 공양인데다 양도 꽤 되길래 형태 없는 자손을 풀어주었더니 순식간에 통솔하더군. 이상해서 살펴보니 내 명령이 아니라 다른 존재의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것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차토구아의설명을 들은 거미 괴물이 처음으로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는 모습이 보였다.
"권속들이 네 명령을 거부한 것이더냐?"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그래, 통솔하는 개체가 따로 있었지. 너의 거미들은 더 상위 종족인 녀석들이 아랫것들을 이끌지 않나? 딱 그런 식이었어. 내 명령을 최우선으로 여기지만, 그개체에게받는 명령이 내가 내린 명령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따르는 것이지. 그리고 그 개체, 내 지배를 벗어난 개체를 데리고 있던 것은 이 인간이고."
이야기를 멈추고 잠깐 뜸을 들인차토구아는여태까지 짓고 있었던 미소를 지우고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요원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즐거운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뱉던 모습, 무슨 동네 아저씨 같은 털털한 인상이 사라지자 어느새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끔찍한 괴물만이 자리에 남아있었다. 끈적한 액체를 온몸에서 줄줄 흘리는 거대한 식인 두꺼비.
이곳에 오고 나서차토구아가계속 보여주었던 모습으로 인해 마음한편으로분명 방심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보고 나서야다시금차토구아가어떤 존재인지 체감할 수 있었다.
어느새 살기가 번뜩이는 눈을 하며 음산한 기운을 퍼뜨리기 시작한 그의 모습은 서서히 기괴하게 비틀려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필터를 지우고 내 모습을 바라보았을 때와동일한분위기를 풍기는차토구아.
분명, 그는 `동족`임이 분명했다. 저 거대한 거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고.
그가 뿜어내는 압도적인 기운에 주변 거미들이 다리를 빠르게 놀리며 거미줄 구석구석으로 대피하는 모습이 보였다. 거대한 거미 역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인상을 찌푸렸지만 달리 제재를 가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권속들에 대한 애정이 별로 없는 것인가? 혹은 자식들을 강하게 키우는 것일 수도. 확실한 것은 거대한 거미는 기운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에이본 역시차토구아의곁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기는 했으나 멀쩡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차토구아를섬기는 사도이기에 그의 분노에도 익숙한 것일 수도.
그렇게 뿜어지는 기운에 거미들이 어디론가 모조리 흩어져 보이지 않게 될 때쯤이 돼서야차토구아는힘의 방출을 멈추었다.
정적만이 흐르고 있는 공간, 그 가운데에서차토구아가내뿜은 분노의 파동을 정면으로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마법사 요원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의 시선을 마주 보고 있었다.
그렇게 끔찍한 존재와 평범한 인간이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 있던 도중, 다시금 너털웃음이 공간을 울리기 시작했다.
"핫핫핫핫핫, 정말 신기하지 않나? 겨우 인간 따위가 내 기운을 받아칠 수 있다는 것을?"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에이본의 어깨를 두드리는차토구아. 저놈 어깨 참 좋아하네. 진짜 아저씨냐?
에이본 역시 희미한 미소를 띠며 거대한 팔에 휘둘려 휘청거리고 흔들리는 몸을 바로잡았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 것일까 요원 역시 굳어 있는 몸을 풀어주며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 아무리 간이 크더라도 방금은 심장이 철렁하긴 했겠지.
하지만 거대한 거미는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요원을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군. 다른 종족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라고?이디안(Yithian)이정신을 지배한 것이 아니라?"
"아무리 위대한 종족이라고 자칭 타칭 불리는 놈들이어도 우리조차 모르게 정신을 지배할 정도는 아니잖나. 정말 평범한 타 차원의 인간일세. 물론 타 차원의 인간이 다 저놈 같다고 할 수도 없겠지만. 그런 의미에서는 특별하게 볼 수도 있겠지."
"그래서 이 인간이기어오는혼돈이 찾고 있다는 무언가인가?"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듯, 거대한 다리로 바닥을 톡톡 두드리며 말하는 거미. 가볍게 두드리고 있는 모습이지만 현실이었다면 땅이 흔들리고 갈라질 충격을 주기에 충분한 힘을 담고 있었다. 바닥을 이루고 있는 거미줄은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찾는 것과 분명하게 관련은 있다고 볼 수 있지. 아까도 말했듯이 이 인간이 가지고 있던 형태 없는 자손은 내 지배를 벗어난 상태였다. 정확하게는 다른 존재를 섬기고 있기에 나의간섭으로부터 벗어났다고해야 하나."
"이 인간도 그 존재의 권속인 건가?"
"아니…. 아까도말했듯이그것도 아니야. 여기서부터가 나도 에이본도 전혀 알지 못하는 부분이고, 이상한 점이지."
말을 하며 인상을 찌푸리는차토구아. 그 모습을 힐끗 바라본 에이본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수백 년간 마법을 연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현상은 실마리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차토구아님을특정한 마법을 펼친 것이 분명하지만 그 지식의 출처가 불분명합니다. 게다가차토구아님의권속이 새로이 섬기고 있는 존재와 관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력이 감지되지 않습니다."
신성력이감지가 불가능한건가? 하긴, 지구에서는 신을 섬긴다고 무언가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거나 하지는 않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평소 행실이나 말하는 걸로 종교를믿는지 여부를가리니까.
이 존재들을 섬기는 놈들이 지구에서의 종교인이랑같은가 생각해보면의문이 들 뿐이지만.
그런데 마도서에 검열되었던 내용을 본다면 에이본이 분명 내 존재를 알고 있을 텐데 어떻게 된 일일까. 에이본이 안다면 분명차토구아역시 알 것이고. 근데 못 알아본다고?
무엇보다 이상한 부분도 있었다. 요원은 분명 나와 관련돼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 얘기를 했을 텐데 어째서 나에 대한 언급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 것일까.
설마 아무 말을 하지 않은 건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직접 말하지 않았다면 강제로라도 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아니나 다를까 거미가 방금 내가 생각한 내용을 그대로 말하였다.
"방금 말한 것들은 본인에게 물어보면 되는 것 아닌가."
당연한 부분을 짚어가는 거미. 하지만 그것에 돌아오는 대답은 당연하지 않았다.
"당연히 물어봤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분명 저희에게 답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보의 전달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마치…. 누군가 정보를 중간에 차단한 것처럼 말이죠."
내가 봤던 것처럼 실시간으로 검열되던 마도서랑 같은 일이 벌어진 건가. 다른 차원까지 마수를 뻗을 수 있을 정도면 정말 강력한 존재임이 분명한가 보다.
대화는 어떤 식으로검열된 걸까. 말은 하는데 들리지 않는 건가? 아니면 말조차검열되어서아예못하는 걸까.
"차단한 것뿐이라면 뇌를 헤집어보면 되는 것 아닌가."
"아니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정보가 아예 인식되지를 않습니다. 전달하는 방법 자체가 막혔다고 할 수 있겠죠. 드림랜드와 현실 사이의 통로가 일반 인간들은 접할 수조차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너뿐만 아니라차토구아도인식하지 못한다고?"
"그렇다. 권속이 지배를 벗어났으니 당연히 바로 알아보았지. 하지만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었어. 내 권속을 지배하는 새로운 존재에 대한 흔적만 발견했을 뿐."
돌아가는 상황을 듣자 하니 확실히 나랑 같은 일이 발생한 것처럼 보였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나는 실시간으로 검열되는 모습을 포착했는데 이들은 애초에 원천적으로 차단되어있는 듯 보였다. 다른 차원의 존재라서 정보를 전달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스스럼없이 뇌를 뜯어보는얘기를 한다니역시나 이들에게 인권이라는 것은 생각할가치조차 없나 보다. 인간처럼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분명하게 이들이 가진 가치관은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렇게 대화는 이어졌고, 그곳에서 나오는 상황에 대한 추측이나 가설들은 흥미롭기는 했지만 크게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허탈한 심정이 정신을 가득 채웠기에.
세웠던 계획이 시작부터 무너져버렸다.
마도서에 나왔던 나에 관한 내용을에이본에게물어보려고 했는데 이들 역시 나와 같은 처지를 겪고 있었으니.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겨우 인간에 불과한 에이본과 달리 초월적인 존재인 두 괴물 역시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도대체 정보를 차단한 존재가 누구일까.
차원을 넘어서까지 영향력이 닿고, 심지어 분명하게 이쪽 차원에서 신적인 존재일 것이 분명한 두 개체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정보를 검열한다고?
무슨절대 신이라도되는 건가?
리리스년같은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힘을 가진 존재.데일이`상위 차원`이라고 말하던 곳의 신일까. 그럼 지구는 하위 차원인 건가?
아니면 뭐 중력이나전자기력 같은우주의 법칙이라도 되나? 내 존재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게 하는 것이?
문제의 답안을 들었더니 새로운 질문만이 가득 생겨버린 셈이 되었다.
그나마 내게 검열을 가한 존재가 다른 차원까지 그 마수를 뻗었다는 사실 하나를 건졌지만, 당연히 이 정도로는 전혀 만족할 수는 없다.
흠….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두 존재에게 접촉을 시도해볼까 생각이 들었지만 검열한 무언가가 그런 것조차 막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정신파를쏘아보냈지만, 아니나다를까 어떤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한 명의 인간만이 반응했다.
요원이 고개를 돌려 내 쪽을 향하여 바라보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모습을 발견하지는 못한 것인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다시 거대한 두 존재의 토론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저걸 보면 분명 요원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말이야.
결국 이번에도 수확은 없네. 뭐, 마도서로살펴볼 만한정보들을 건졌으니 돌아갈까?차원문이존재하는 이상이곳으로언제든 돌아올 수도 있을 거고.
그렇게 돌아갈까 생각하고 있던 그 순간, 괴물들의 대화에서 새로운 실마리가 생겼다.
"...그러니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너를 찾아온 주된 목적이기도 하고."
"뭐라고 말할지 예상이 가는구나."
"드림랜드를 향한 길을 열어주게. 아무래도 이 인간을 직접기어오는혼돈에게데리고 가야겠어. 나 역시 접촉하는 것은 꺼려지지만 그라면 분명 무언가를 알아낼 수 있겠지. 그가 그토록 찾고 있던 무언가와 관련도있을 테니접하는 것 또한 문제없을 것이고."
그들의 대화에서 자주 언급되던 `기어오는혼돈`. 모 판타지 소설에서 나오는 이름을 언급하면 안 되는 마법사도 아니고, 왜 다들 이명 같은 것을 쓰는지 원. 돌아가면 마도서로 이름을 알 수 있겠지. 아직 거미 괴물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다.
또 실시간으로 검열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이지만.검열빔의조건을 모르니 확신할 수는 없다.
"길이야 열어주겠지만 드림랜드에 도착한 이후에는 그쪽에서 내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이상 간섭은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나 역시 드림랜드에 직접 넘어갈 생각은 없다."
차토구아의시큰둥한 대답에 거미는 요원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괜찮겠나? 이 인간이 특별하다고는 하지만 드림랜드에서 살아남지는 못할 것 같은데."
그 말을 듣자 요원이 잠깐 발끈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다른 세 존재는 마치 당연한 내용이라는 듯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에이본을 호위로 붙여줄 것이다. 거주하고 있는 생명체들 정도는 쉽게 제압하겠지.엘더갓이 개입하지 않는 이상문제없을거다."
"렝고원에서달라스린(DylathLeen) 항구를 향해 갈 생각입니다. 북쪽에서 서쪽으로 나아가는 것이니 남쪽에 주로 거주하는사역마들과접할 일은 없겠죠. 혹여나샨타크와접촉한다면 바로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으니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물론 북쪽에도나이트건트들이살기는하는데…. 직접적인개입은 하지 않겠지요."
"굳이달라스린까지가는 이유가 있나?"
"내가 부탁했지. 드림랜드에 오랜만에 가는 김에 먹이도 좀 살 생각이다. 뼈가 오도독 씹히는 것이 참 별미지."
"... 취향은 존중해주마. 그렇게 좋아한다면 꾸준히 사면 되지 않는가."
입맛을 다시는차토구아의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거미는 이내 거대한 다리를 이용하여 실타래를 풀어 헤치며 무언가 작업하기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차토구아는입을 쩍 벌리더니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두꺼비의 입에 상어처럼 날카로운 이빨이 줄줄이 늘어선 것이인상 깊다.
"하아아암. 귀찮아."
"권속들을 시키면 되는 것 아닌가."
"그거도 귀찮아. 무엇보다 내 권속들은 모습을 숨기기가 어렵다고.쇼거스들처럼완벽하게 인간으로 의태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만. 그러고 보니 내 지배를 벗어난 권속은 인간으로 의태 했던데 정보를 알 수가 없으니 원."
오리지널은인간으로는 변신하지 못하는 건가? 하긴, 내 밑에 있는 슬라임 중에서도 그 녀석을 빼면 인간으로의태한모습은 본 적이 없다.까망이는시키면 변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탱탱볼처럼튀어다니는모습을 떠올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에휴.
"연구해볼까요?"
"마음대로 해라.하아암. 슬슬 졸리는군. 그럼 난 이만 자러 가겠네. 둘을 잘 부탁하도록 하지."
에이본의 대답에 다시금 입을 열며 하품을 내뱉은차토구아는이내 검은색 포탈을 열더니 사라졌다. 뜬금없이 순식간에 퇴장한 그 모습에 어이가 없었지만, 에이본과 거미는 익숙하다는 태도로 하던 작업을 마저 이어나갔다.
거미가 작업하던 곳, 실타래가 풀린 부분으로부터 서서히 공간이 비틀리더니 마침내 소용돌이치는 보라색 구멍이 보였다. 조각난 현실의 파편들이 반짝이고 있는 가운데에 거미줄로 둘러싸인 타원형의 보라색 구멍.
3이라는 숫자를 모르는 모 게임의 포털처럼 보이는 광경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에이본이 요원을 이끌고 나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언제 돌아왔는지 어느새 주변을 에워싼 수많은 거미가 지켜보는 가운데 거대한 거미가 말하였다.
"차토구아는정말로 방치할 것이 분명하니 내 권속 몇을 붙여주도록 하지.렝의고원에서는 아무 문제 없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거미의신이시여. 그럼저희들은이만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차원문은반대편에서 닫으려무나."
"알겠습니다."
대답과 함께 절도 있는 동작으로 인사를 마친 에이본은 이내 포털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요원 역시 거미를 보며 잠깐 망설이더니 그를 따라 포털 내부로 몸을 옮기더니 사라졌다.
두 인간이 넘어가고도 보라색 소용돌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여전히 일렁거리고 있었다. 몇몇 거미들이 다가와 다리로 툭툭 건드리고 있었지만 이내 흥미를 잃었는지 제각기 거미줄에 자리를 잡으러 흩어졌다.
닫히기 전에 나도 넘어가야겠지. 황금빛 선이 보라색 소용돌이를 향하여 직선을 그리고 있었다. 물론, 저 포털을 타지 않아도 분명 어디론가 인도해주겠지만 쉬운 길이 있는데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하고 싶지는 않았다.
수많은 거미를지나치며 그곳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지만, 나를 인식하고 있는 녀석들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포털을 향해 몸을 날리던 도중 순간적으로 거대한 거미와 눈을 마주쳤다.
현실의 파편들에서 나오는 별빛이 반사되어 번들거리고 있는 8개의 눈은 분명 나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보고 있지 않았다. 갇혀 있는 상태에서 겪었던 것 때문일까, 시선에는 매우 민감해졌기에 나는 저 눈들이 나를 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마치 만화 속에 나오는 투명 인간이 된 기분이다. 그 생각을 떠올리자 문득 장난을 치고 싶어졌기에 포털에 들어가기 직전 거미를 향하여 신성력을 쏘아 보냈다.
어차피인식도 못 할테니 이 정도는 괜찮겠지. 황금빛의 광휘가 거미의 칠흑 같은 눈을 밝게 물들이는 순간, 내 몸은 보라색 소용돌이에 휘감겨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 거미줄로 이루어진 통로로들어올 때와같은 감각이 느껴진다. 차원을 넘는 것이 분명하지만, 조금은 다른 느낌.
그렇게 거대한 거미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며 내 시야는 반전하였다.
무지갯빛 광휘가 휘몰아치는 하늘. 구름처럼 보이는 것들이 온갖 몽환적인 색깔로 빛나며 물 흐르듯 하늘을 지나가고 있는 풍경. 낮임에도 불구하고 저 높이 보이는 거대한 달이 시야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호기심이 들어 시력을 확장해 살펴보자 지구의 달과는 전혀 다른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황량한 회백색의 토양과 수많은 크레이터가 가득한 지구의 달과는 달리 마치 지구처럼 울창한 숲과 무언가 이상한 액체로 이루어진 바다가 보였다.
무언가뽈뽈움직이는 모습이 보여 살펴보자 회백색의 피부를 가진 인간형 괴물이 보였다. 분홍빛 촉수수십 개가얼굴에서뻗어 나오는끔찍한 광경에 빠르게 시야를 돌렸지만.
다시 시야를 지상으로 돌리자 이번에는 뾰족하게 하늘을 찌르는 거대한 산맥과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거대한 고원.
눈과 얼음이 대지를 뒤덮어 새하얗고 아름다운 대자연의 모습은 절로감탄성을자아냈다.
지금껏 여러 끔찍한 존재와 광경들을 보았기에 더욱 감격스러운 풍경. 예상을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난 모습을 바라보며이곳의이름을 떠올렸다.
드림랜드.
이름대로 꿈같은 광경을 보여주는 차원에 나는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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