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10. 드림 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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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넓고 고요한 우주를 바라보고 있자니 감성이 충만해지는 느낌이다.
인간의 시야로는 칠흑같이 어두울 줄 알았더니 한적한 시골에서 별을 관찰하는 듯한 아름다운 광경이 보였다.
360도 회전을 하며 온 사방을 둘러봐도 별, 별, 그리고 별들이 찬란하게 빛을 뿌리고 있었다.
지구에서 볼 때처럼 반짝거리지는않지만 보석처럼검은 배경에 촘촘히 박혀있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게 느껴졌다.
물론, 가장 강렬하게 시야에 각인되고 있는 것들은 따로 있었지만.
토성.
거대한 행성이 저 멀리 고리를 두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탐사선이라면 몇 주일, 몇 달이나 걸쳐서가야 할거리.
시도는 해보지 않았지만,정신체상태로는 금방 다가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 마침 생각이 들었으니 도전해보자.
어차피황금빛신성력의길은 토성으로 이어져 있기도했으니게임 튜토리얼의 안내를 따르는 것처럼 길의 인도에 따라 토성을 향해 나아갔다.
순식간에 변하기 시작하는 시야. 주위의 별빛이 마치 별똥별처럼 길게 늘어지게 보인다. 도대체 얼마나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거지?
조금 더 속력을내볼까라고생각한 순간,더욱더빠른속도로 가속하는것이 느껴진다. 음속은 넘은 지오래겠지. 인류가 개발한 어떤 이동 수단보다도 빠르게 이동하고 있음을 확신하였다.
물론, 우주 속에서 유영하는 여유를 만끽하고싶기 때문에다시 이동을 멈추었다. 이전보다 몇 배나 커진 토성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행성 표면을 회오리치고 있는 소용돌이 문양들이 빛을 받아 아름답게 보인다.
그래, 빛을 받아서.
이 머나먼 거리에서도 태양은 아주 눈부시게 밝았다. 인간의 시야로 본다면장님이되어버릴 정도로 강렬한 빛이 저 멀리 동그란 구체로부터 쏟아진다.
토성 역시 그 빛을 받아 반사하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특히 태양 빛을 받아 보석처럼 고리가 반짝거리고 있는 광경이 참 환상적이다.
토성을 장식하고 있는악세서리느낌이랄까. 이 행성을 조형한 신이 있다면 분명 예술적인 혼을 불태우며 만들었겠지.
가까이 가서 본다면 얼음과돌 쪼가리들이겠지만. 살아있는생명체도아니고, 최소한 멀리서 볼 때는 아름답게 보이니 됐다.
인간의 시야로 바라본 광경이 이 정도로 아름다웠다면, 초월적인 시야라면 어떨까.
천천히 인간 수준으로 유지하던 감각을 끌어올리기 시작하자 점차 시야가 왜곡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비틀려 버린다.
몇십만 광년이나 떨어진 곳으로부터 반짝이고 있는 별들의 빛이 바로코앞에있는것처럼시야에 담긴다.
우주가 어둡다는 말이 무색하듯, 온 사방에서부터 빛들이 쏟아지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밝게 시야를 메운다.
어디그뿐일까.
분명 우주에서는 대기가 없어서 소리를 들을 수 없다고 하지만, `진동`을 소리로 인식한 순간 시야를 메운 것과동일하게온 사방에서 별들의 소리가 끊임없이울려 퍼진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소리. 회전하는 소리. 폭발하는 소리. 심지어 실시간으로 충돌하고 있는 듯 날카로운비명성이들려오는 방향이 있어서 시야를 옮겨보니 아니나 다를까 별두 개가충돌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는 모습이 보였다.
초신성폭발이라고 불리는 현상.
시공간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거대한 충격파가 온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장엄한 자연의 현상이 분명할 것인데, 나에게 있어서는 집 근처의 공사현장 같은느낌이었다.
어마어마한 소음공해와눈뽕을견디지 못하고 황급하게 정상적인 시야로 되돌렸다.
감각이 둔해지며 서서히 토성의 모습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였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그곳을향해 날아갔다.
조금씩 익숙해지고는 있지만, 초월적인 감각의 한계가 얼마나넓은지 제대로 파악할수 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볼 수 있었다.
여태껏 갇혀 있는 차원 내부에서만 확인할 수 있었던 감각.
화신체를죽일 때 연결점을 타고 올라가며 본체를 확인할 수 있었을 때가 그나마 감각을 가장확장했을때였는데, 물리적인 공간이아니다 보니딱히 체감되지는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시도해본 결과 인식 범위가 우주 단위로 놀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금벙찔수밖에 없었다.
폭발은 도대체몇 광년이나떨어진 장소에서 일어난 것일까. 다른 은하에서 일어난 것이 분명했을 것을 아주 쉽게 탐지하였고, 심지어 감각이 확장할 수 있는한계 같은것을 느끼지도 못했다.
어쩌면, 우주 끝까지 모두 인식 범위 내부에 넣어둘 수도 있을 수도.
물론 신적인 존재라는 것이 당연히 하나의 세계나 차원을 다루고 있다고는하지만….
머리로만 아는 것과 실제로 겪어본 경험은 차원이 다른 결과를 내놓았다고 표현해야 할까.
완전군장으로 40km 행군한다 했을 때 더럽게힘들겠네라고말하는 것과 실제 행군에서 속으로 쌍욕을 삼키며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만을 반복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니.
앞사람의 뒤통수가 부모님의 원수처럼 보이게 되는 기이한 현상을 겪을 수 있다.
그때비교하면 지금은 참 편하네.
어두운우주 속을유영하며 토성을 향하여 유체 상태로 날아가고 있으니많은 생각이난다.몇억km나떨어져 있지만, 분명 저 머나먼 곳에는 지구가 있겠지.
감각을 활성화한다면 지구를 살펴볼 수있을 테지만,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지금 들어서 과거에 대해 회상해보면 얼마나 쓰레기처럼 살아왔었는지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었기에 반응을 보는것조차두려웠다.
내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죽음을 잊고 살아가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겠지만, 마음한구석이송곳에 쿡쿡 찔리는 듯한 아릿한 감각 또한 들었다.
잘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살았는지죽었는지 관심조차가지지 않을 수도 있겠지.
부정적인 생각을 지우기 위해 정신을 다시 토성으로 되돌린다. 이전보다 훨씬 가까워진 행성이 점점 크기가 커지며 다가온다.
예쁘게만 보이던 고리는 서서히 얼음과 돌 조각으로 이루어진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하였고, 행성 표면에서소용돌이치고있는 다양한 가스의 움직임이 잡힌다.
사이크라노쉬.
드디어 정체를 알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자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는 것을느낄 수 있었다.
미스터리 퍼즐을 마침내 풀어낼 때의 감각. 온갖 고민과 탐색을 하며 마침내 정답을 추리해내는 과정, 그 과정의 끝이 보이는 기분이다.
황금빛의 길을 따라 고리를 지나 마침내 행성 자체에 다가가기 시작하였다. 아마 육체가 있었다면 중력에 영향받아 서서히 끌려갔겠지.
물론, 지금 내 몸은 유체 상태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었다. 단지 마음이 급해짐에 따라 속도를 스스로 올릴 뿐.
대기권이 가까워지더니 마침내 우주에서 나아가는 것이 아닌, 행성의 표면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소용돌이치는가스와 바람, 날아다니는 온갖 먼지와 얼음, 돌 조각들. 그렇게 대기권을 돌파하는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차원을 넘어갈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 느껴지며 무언가를 통과하는 듯한 감각을 감지한다. 그와 동시에 보이는 시야가 완전히 달라진다.
토성의 대기권이보여야 할것이 분명한장소일 텐데기이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표현하자면마치…. 현실의경계선이 붕괴한 듯한 느낌. 공간이 조각조각 부서진 거울 파편처럼 쪼개어져 있었고, 그 깨진 조각을 자세히 보면 휘몰아치는 토성의 대기권이 보였다.
하지만 조각난 현실 이외에는 분명 존재하면 안 될 것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거미줄.
끊임없이이어지는 거미줄의 향연이 온 사방을 뒤덮고 있었다.
일반적인 선이 아닌, 분명하게 거미줄로 보이는 것들이 조각난 공간과 현실을 붙들며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일부는 번들거리고 있는 것이 분명 닿으면 끈적하게 달라붙는 성질을 가졌을 것처럼 보인다.
사방을 수놓은 거미줄들은 하나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거대한 원통형의 통로. 마치 조금 전에 넘어왔던 시설의 지하 통로처럼, 분명하게 거대한 통로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게다가 토성을 향해 떨어지던 몸은 어느 순간 통로 내부에 자연스럽게 서 있는 상태로 변하였다.
뒤를 돌아보자보여야 할우주의 광경이 보이지 않고, 역시나 거미줄로 이루어진 통로와 조각난 현실의 파편들이 보인다.
도대체어디에서오고, 어디로 이어진 통로일까.
차원을 넘은 것이 분명하지만, 감각이 애매한 것이 완전하게 넘은 것 같은 느낌도 아니다.반쯤넘어온 느낌이랄까.
그래, 마치 잠에서 깨어서비몽사몽 할때처럼. 현실과 꿈 사이의 경계선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의 감각과 가장 비슷하다.
토성으로 들어가려했더니그런 감각을 느끼게 되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심지어 육체가 아니라 정신만 홀랑 넘어왔는데도 불구하고.
하지만 황금빛의안내선은분명히 거미줄로 이루어진 통로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곧 마법사 요원이 살아있는 상태로 통로를 따라가면 도달할 장소에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도대체 어떤 연유로 시설의 지하에서 이 이상한 장소까지 도달하게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통로를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차원도 넘고 우주도 주파했는데, 거미줄로 이루어진통로쯤이야. 거미줄이 있는 만큼 그것을 엮어낸 주인이 있겠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전혀 무섭지 않다.
바글바글 있다면 징그럽겠지만, 그게 다다. 설령집채만 한괴물 거미더라도 나에게 위협을 줄 순 없을 것이 뻔하니.
천천히 거미줄의 통로를 따라 유영하며 날아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거미줄 위로 걷는 것이 아닌, 유유히 비행하며 날아갔다.
실체가 없다고 하여도마법 같은것이 걸려있을 수도 있으니까. 에이본이라는 사람이 무려 `대마법사`라고 하니 이번 기회에 가능하면 마법도 좀 배우고 싶다. 뭐, 정 안되면레이나한테배우면 되겠지만.
비행하며 날아가면서 가끔처져 있는미세한 실타래들을 피해 날아간다. 역시 거미줄로 이루어진 통로여서일까, 가느다란실가닥들이통로를 이루고 있는것뿐만아니라 치렁치렁 천장으로부터 흘러내리고 있는 곳들도 많았다.
어떤 것들은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투명하게 보일 정도로 미세한 실선들도 있었다. 분명 침입자를 감지하는 용도겠지. 저 실선이 끊기는 순간, 그 진동이 거미줄을 따라 주인에게 전해질 것이다.
어차피실체가 없어서 끊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그럼에도조심하며 나아간다.
산산조각이 난상태로 거미줄에 붙잡혀 반짝거리는 현실의 조각들. 무언가 꿈과 현실 사이에 있는 듯한 감각. 기하학적인 무늬를 이루고 있는 거미줄의 통로.
이 모든 광경이 합쳐지며 몽환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방구석에 맺혀있는거미줄 같은것을 본다면 더럽다고 느껴지거나 징그럽게느껴질 텐데, 지금 보이는 광경은 그런 감정이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분명 현실의 조각들을 붙잡고 있는 거미줄들은 분명하게 의도를 가지고엮어내어진것이 확실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아라크네가그렇게 예술적인 재능이 넘쳐났다고 하는데, 이 통로를 만들어낸 누군가 역시 그러한 재능을 타고 난 것이 분명하다.
도대체 통로 끝에 뭐가 있을까. 점점 더 자라나는 호기심에 더욱 몸을 가속하여 날린다.
얼마나 갔을까, 드디어 목적지에 도달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굵어지기 시작한신성력의줄기. 더욱 복잡하게얽히고설킨거미줄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음산하고 끔찍한 기운.슬라임에게서도, 마도서에서도 느꼈던 것.
무엇보다도 친숙하게 느껴지는 그것이 통로 앞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더욱 짙어지는 기운을 향하여 나아갔고, 마침내 통로의 끝에 도달했을 때에 시야에 들어온 광경에는놀랄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거미.
거미줄이처져 있으니분명 거미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다. 장소가장소인 만큼일반적인 거미가 아닌, 괴수 형태일 것이라고 생각은했다. 하지만 저 정도로 크기가 거대할 줄은 몰랐다.
아파트 5층 높이는 될 것 같은 거대한 형상. 바닥에 드리운 그림자만으로 주변을 어둡게물들이고 있을정도로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거미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거미의 얼굴에해당하는부분에 인간의 얼굴이 있는 것.
흔히들 무협지에서인면지주라고부르는 괴물이 하는 형태를 하고 있었다.몬무스물에나오는아라크네와는달리 `가능`이라던가 예쁘다거나 그런 감상이 들 여지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인간의 얼굴과 이어진 거미의 머리가 정확하게 불쾌한 골짜기를 이루며 끔찍하게 보였으면 보였지.
크기 때문에 시선을끌었지만, 공간에는거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거미만큼은 아니지만, 거대한 두꺼비같이 생긴 괴물 또한 있었다. 마도서에서 묘사한 대로 생긴 또 다른 괴물.
차토구아라는존재겠지.
생각해보니 마도서를 가지고 올 수 있었다면 거미괴물에 관한 내용도들어있을 것 같은데,정신체상태라서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렇다고 마도서를 확인하러 돌아가자니이곳에남겨진 매체가 없다.
돌아간다면 똑같은 방식으로 다시 차원을 넘고이곳까지도달해야 하기에 그 선택지는 봉인된 셈.
일단, 부딪혀 본다면 알겠지.
불길한 파장을 내뿜는 두 거대한 존재들.누가 봐도끔찍하게 생긴 괴물들의 표정은의외로정상적이었다.
인간의 얼굴을 가진 거미는 별다른 표정 없이 있었지만,차토구아는큰 웃음을 지으며 웃고 있었다.
웃고 있는 것은차토구아뿐만이 아니었다.
이 공간에는 놀랍게도 인간이 두 명이나 있었다. 한 명은 분명 내가 추적해온 요원. 저번에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올 때와 같은 검은 제복을 입고 있는 그는차토구아의바로 옆에 있는 다른 인간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치렁치렁한 로브를 입고 있는 인간. 나이는 30대 초중반쯤으로 보이지만 외견이 다가 아닐 것이 분명했다.차토구아의끈적한 팔이 사내의 어깨를 칭찬하듯 두드리고 있는 광경이 보인다.
대마법사 에이본.
차원문을열고, 마도서를 만난 자를 드디어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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