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했더니 촉수괴물-56화 (56/74)

〈 56화 〉 9. 쌍둥이와 곰인형 (14)

* * *

55.

경악.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듯 슬라임을 통해 요원들을 관찰하고 있던 도중, 마법사와 연결된슬라임에게느낄 수밖에 없는감정이었다.

자율적인 판단을 맡기기는 했지만, 이런 결과를이끌어낼줄은 몰랐다.

변형 능력으로 인간을 완벽하게의태할수 있을 줄도 몰랐고.

전사에 붙여놓은 슬라임은 그저 외부 공격을 막아내는 정도에 그쳤는데, 마법사에 붙여놓은 슬라임은 혼자서 상황을 반전시켰다.

무력으로도, 지력으로도 압도적인 능력을 보여준 녀석.

머무르고 있는 인간을 닮아가는 걸까? 하지만그동안지켜본 마법사의 행동을보았을 때그가 슬라임이이끌어낸상황을 똑같이 이루어낼 수 있을 정도로 지능적인 인물로 보이지는 않았다.

엄청난 광신도라는 것만을 깨달을 수 있었지. 그 광신이 나를 향하고 있는 것이 문제지만.

아니, 어쩌면 그 광신으로 인하여 슬라임에 영향을 미친 것일 수도 있다. 미약하다만신성력으로연결되어 있기는 하니 슬라임 역시 그에 영향을 받았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면까망이는그보다도 더 뛰어난능력을 가져야한다는것인데….

방의 구석으로 시선을 돌리자 슬라임들을우루루이끌며 즐겁게 돌아다니는까망이의모습이 보였다.

공 모양으로 몸을 말아 빛을 내며 통통튀어다니고있는까망이의뒤를 검은색 파도가질척이며따라간다.

노래방 미러볼이냐.

저런 천진난만한 모습을하고있는까망이가더 큰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믿고 싶지가 않다.

그래, 마법사에 넣어둔 슬라임이 특별한 녀석일 수도 있다. 어쩌면 본인을 소환한 장본인이라 특이한 연결 같은 것이 생겼을 수도 있지.

처음 빛의 공격을 막을때까지만해도 그러려니 했더니, 슬라임들을 이끌고 인간들을 추적할 때에는 판단을 의심했다.

숙주를 버려두고 뭘 하나 싶었더니 빠르게 이동하여 도주하던 인간을앞지르고의태 능력으로 숨더니, 이내 순식간에 파고드는 모습에는 감탄, 또 감탄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몸에 상처를 내고비집어 들어가혈관을 타고 순식간에 뇌까지 도달한 슬라임은 서서히 뇌를 먹어가며 정신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행동은 나에게 역시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슬라임이 인식하고 분석하기 시작한 정보는 동화되어 있는 나에게도 고스란히전달되어 왔고, 알파­3이라고 불리던 요원이 겪은 모든 경험과 지식은 나의 것이 되었다.

드디어 얻은 양질의 정보.

시설 내부의 비밀요원 같은직위에 있던 알파­3은 어떻게 보면 시설버전의`뒷세계` 요원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통칭 윗분들, 높은 자리를 꿰차고 있는 자들이 내리는 더러운 임무들을 해결하는 것이 주된 역할.

평범한 요원들처럼 관리 개체의 관리나 진압하는 일도 하지만 요원의 암살이나 세뇌, 정보 조작 및 삭제, 외부 조직에 대한대응 등일반적인 요원들이 다루지 않는 것들까지 처리하기에 아주 유용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당연히 시설에서는 이들에게도 기억 조작 및 세뇌작업을 시행했지만, 뇌를 통째로 먹어치우고 그대로 복제하는 슬라임 앞에서는 크게 의미가 없었다.

뛰어난 공로를 세운 이 슬라임의 멋진빌드업을다시 떠올려보자.

깔끔한 방법으로 인간들 사이에녹아들어 간슬라임은 처음에는 의심을 사지 않게 알파­3의 의식에 반쯤 동화하여 활동하였다.

첫 위기는 다른 슬라임이공격받았을때. 그 슬라임 역시 벽으로의태 하는기지를 발휘했지만, 당장 요원들을 먹어치우기에는 너무 이른 타이밍이었는지 알파­3에자리를 잡은슬라임은오히려 무시하고지나려 했다.

그렇게 의식을 잠시 빼앗아 다른 곳으로 유도하려는 순간,뜬금없이한 요원이 공격을시도했다.

다행히도 벽 슬라임이 임기응변을 발휘하여 잔해로 부서진 듯이 연기했기 마련이지, 계획이 꼬일 뻔한 순간.

하지만슬라임들에게있는 동포 의식은 그 녀석이 계산하지 못한 변수였다.

아무래도 내 밑에 종속된 만큼, 군체 의식이 상당이 옅어진 듯했으니. 정신세계를 공유하는능력은 여전히 갖추고있었지만, 분명하게 자아가 생긴 녀석들은스스로를다른 슬라임들과 철저히 구분하고 있었다.

까망이에게동화를 시도해보았을 때가장 잘 느낄 수 있던 부분.

수백 마리의슬라임들의 정신이 하나로 융합된 세계 내에서 홀로 고고하게 존재하고 있던까망이.

무언가 존재 자체가 진화한 듯, 왕처럼 군림하고 있었다.

그 인식의 차이 때문일까, 슬라임들이 하나로 뭉쳐 그들을 쫓기 시작했을 때에는 꽤 당혹스러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쫓는슬라임으로부터 도주하며서서히 정신을 잠식하기 시작한 슬라임.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인간이 죽어야만 했고, 알파­3의 기억을 분석하며 서서히 윤곽이 잡히기 시작한 계획에 맞추어 행동을 개시하였다.

첫 번째 행동은폭격당했을 때슬라임을 멈춘 것.

형태 없는 자손이 겨우 폭발만으로 돌무더기에 파묻힐 리가 없었지만, 그 녀석은 계획을 위해서 동족인슬라임들마저이용하였다.

잠시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인간 하나를 제물로 던져두고, 그들을 설득하여 다른 인간들을 살아있는 상태로몰아넣는것.

알파­3이 상부로부터 전달받은 정보와 슬라임들이 전달해주는 정보를 취합하여 지하 통로 내부에 존재하는 인간들의 위치를 확인한 녀석은 반대쪽델타 팀과소수의 인원으로 다니고 있는진압팀 일부를모조리 처리하였다.

그리고 슬라임을 그들로의태시킨뒤에 연락하는 상황을 유도하였다. 슬라임들이 자유롭게 대화까지 가능한 녀석과는 달리 간신히 외형만 복제하는 수준이었기에온몸을가리고 있는델타 팀만남겨두었지만.

그렇게 적절한 상황을 유도하기 위해끊임없이슬라임들이 쫓도록 한 녀석은 두 번째 위기를 맞이하였다.

알파­1이 도중에 그의 정체를 알아차리게 된 것.

마법사의 직감이었을까, 혹은 정신적인 문제가 생긴 것이 이성을 잃고 광기를 쫓게 하는 슬라임 특유의 기운과 맞물려 감각을 예민하게 해준 것일까.

이유가 어떻든, 정체를 들켰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이기심을 사용하여 아주 깔끔하게 처리하였다.

생명을보전해줄 테니자신을 따르라는 것.

물론 말만으로 믿을 리가없을 테니신체 일부를 분열해 알파­1의 내부에 잠복시켰다.

동시에 두 명을 조종하는 것은 불가능한지 뇌를 차지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의사를 전달하는 것과 심장을 압박하며 협박을 하는 용도로는 충분했다.

외부적인상황뿐만아니라 내부적인 상황도 통제가 가능하게 된 이후델타 팀이진압 팀에 접촉하자마자상황에 개입했다.

불완전한 의태를 들키지 않게 돕고, 나머지 인원이 향한 위치를 확인하며델타 팀으로위장한 슬라임들을 그쪽으로 보내어 정체가 들키는 것은 물론 후환까지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동시에 지금 섞여 있는 인원에 연락을하게 하여의도한 방향대로 움직이도록 유도하였고.

그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델타 팀은그대로 떠나고,좋아 보이는인상을 통해 모두를 속인 그는 이내 의태를 풀며 공포에 떠는 알파­1의눈앞에서진압팀을 모조리 포식하였다.

인간을 포식하는 감각은 분명 정신적으로 불쾌하기는 했지만, 동시에 생각보다 역하게 느껴지지만도 않았다.

신체에 정신이 따라가고 있는 것일까. 인간이었다면 분명몇 날며칠이고구역질하며 악몽을 꾸었을 듯한 감각이었을 것이 불쾌함이라는 단어로퉁칠수 있을 정도였으니.

조금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지만어린아이들을괴롭히는 쓰레기들이니 당해도 싸다고 나름의 변명을 두었다.

같은 갇힌 신세여서일까, 형태만 인간일 뿐 관리 개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쌍둥이들에게는 큰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설령 인간이 아니더라고 해도 슬라임을 통해 본 그들의 모습은 정말 천진난만한 소년과 소녀의 것이었기에 더욱.

수십 명, 어쩌면수백 명의사람을 죽였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관리만 잘 된다면 폭주할 일도 없는 녀석들인데도 불구하고 어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몇 번이고강제로 폭주시켰으니 탓하기도 뭣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분명죽어 나갔고, 진압팀 역시 그에 대한 복수를 원하여 사건을 일으킨 것 또한 사실이었다.

결국, 그들에대해 선하고 악하다, 좋다나쁘다라고이분법적인 판단을 내릴 수는 없지만, 어른의 질척한 악의에 노출된어린아이들이라는사실 하나는 분명했다.

자기들끼리 해결해야 할 것을어린아이를가운데 두고 싸움을 벌이고 있으니 얼마나 추한 짓이냐.

이사벨라인가뭔가 하는이름을 가진 요원 역시 곱게 보이지는 않았다. 아직 그녀에 대한 정보는 진압팀의 입장만 들었으니섣부른판단을 내리면 안 되겠지만, 쌍둥이를 말려들게 한 것은 내 기준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뭐, 결국 내알 바는아니지만.

이번 사건은 나에게 있어서는 그저 슬라임과 동화를 시도하는 실험이었을 뿐이니, 굳이 결과까지 지켜볼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했다.

목적을 달성한 것은 물론, 생각하지도 못한 추가 소득까지 어마어마하게 얻게 되었으니 충분하고도 넘치는 경험이었다.

아니, 춤을출 듯이기쁜 수준이다. 촉수들이 통제를 벗어나미친 듯이휘날리며 구체 역시 미러볼처럼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다.

설마까망이가나를 보고따라 한것은아니겠지.

결과는 나중에 레이나를 통해서 어떻게 되었는지 넌지시 물어보면 되겠지.

지금은 새로 얻은 정보를 활용할 준비를 해야 한다.

마법사 슬라임으로부터 얻을 수 있던 것은 알파­3이 가진정보뿐만이아니었다. 그 정도로 `어마어마하다`라는 수식어를 붙이지는 않겠지.

드디어. 드디어 내 정체에 대한 실마리가 약간 보였다.

마법사가시전한마법진, 그것을 보자마자뇌내지식이 그것의 정체를 알려준 것은 물론 품에 지닌 마도서에서도 새로운 페이지가 열렸다.

[은카이(N`kai)와연결된마법진.]

[은카이의수면자,차토구아(Tsathoggua)가웅크리고 있는 지하 세계와 직접 연결된마법진.인신 공양을통해서 펼칠 수 있다. 그의 권속인 형태 없는 자손(Formless Spawn)들을 소환할 수 있다.]

들어본 적 없는 지명과 이름들이지만 이번에는 검열된 정보가 아니었다는 것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겨우 이 정도의 정보로 미친 듯이 기쁘지는 않았겠지. 이어지는 정보가 바로 나를 미치게 만드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마도사에이본이 여신이호운데(Yhoundeh)의신관이자마도사인모루기(Morghi)에게쫓겼을 때사이크라노쉬/ 토성(Cykranosh/ Saturn)으로 도망가며 열었던이계의문에 사용된술식을변형시켜만들어졌다.]

그래. 당연히 날아가듯 기쁜 마음을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역시 들어본 적 없는 내용이 가득했지만, 딱두 가지. 두 가지의 내용이 눈에 확 들어왔다.

먼저 가장 처음에 나왔던 이름, 마법사 에이본. 분명, 지금 읽고 있는 마도서가 에이본의 서의 사본의 사본뭐시기였지.

그러니까 지금 읽고 있는 마도서를 적은마법사에 관한 내용이담겨 있는 것이다. 검열되었지만, 분명하게 내 이름을 담고 있었던 마도서를 집필한 장본인.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내용.

`사이크라노쉬/ 토성`.

전의 이름은난생처음들어본 괴상한 형태의 이름이었지만, 후자는 친숙함을 넘어 정겨울 정도로 반가운 이름이었다.

토성.

태양계의여섯 번째행성.

아름다운 고리로 유명한 가스 행성.

행성 중에서목성에 이어 두 번째로 거대한 행성.

바다에 떨어뜨리면 둥둥 뜰 정도로 가볍다고도하며 태양계에서 가장 많은 위성을 가지고 있다고도 하는 행성.

머릿속에저장된 한 때 보았던 위키내용들이저절로 술술 흘러나온다. 어릴 적에는 막연하게 고리 때문에 아름답다 해서여자 같다고 느껴져 싫어했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토성 애호가라고 자칭하고싶을 정도로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토성.

두 글자가 주는 울림이 나의 뇌를 가득 메우며 저 머나먼 우주의 별빛들을 귓가에 속삭여주었다.

이세계로넘어와서 처음으로 발견한 과거의 흔적.

그것은 참 많은내용들을시사하고 있었다.

이세계이지만, 분명히 지구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고 어쩌면 이어져 있을 수도 있다는 것. 아니면데일이하는 것처럼 차원의 통로를 뚫어 넘어갈 수도 있다는 것이지.

내 정체가 지구와 관련된 무언가가 있다는 것.

사이크라노쉬라는다른 이름들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어쩐지 친숙하게 느껴지는 외계어로만 적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토성이라고 언급한 이유가 무엇일까.

에이본이라는 마법사가 마도서를 적어낼 때 그것을 읽을 독자들이 토성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을 상정하여 쓴 것이겠지.

즉, 지구인을 대상으로 적은 마도서라는 것.

물론 반갑기만 한 소식은 아니었다. 일단 이런 괴물들이 득실득실한 세계와 지구가 연결되어있다는 것은 전혀 안심되지 않는 내용이었기에.

지금 형태 그대로 내가 지구에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흔히들 외계인이 침략했을 때에 인류의 수호자로는천조국을꼽지만, 미국이가진 모든 현대무기를 쏟아부어도 나에게 상처 하나 입힐 수는 있을까.

오히려 핵폭탄의 방사능을 흡수하고 방출해서 지옥도가 펼쳐지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것은 실제 지구와 연결되어있을 때의 이야기고, 겨우 토성이 언급된 것으로 확신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니쓸데없는걱정이기도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내가 지구에서 살아갈 때 `마도사`같은 것은소설 속에서나 나오는내용이었다.

그러고 보니마도사에이본, 에이본이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이름이기도 하고. 빠르게 기억을 훑어보지만 찾을 수는 없다.

이것이증명해주는 것은 한가지. 또 검열된 것이 분명했다. 기억을 조작하면서 쏙 빼간 내용 중 하나라는 것이지.

하지만 그 사실은 역으로 에이본이라는 존재가 내 정체에 대한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해주었다.

검열되어 있을 것이 분명하지만, 에이본에 대해 마도서에서 검색한다.

오랜만에 떨리는 마음으로 서서히 적혀가는 금빛의 글자들을 바라본다. 금빛?

반짝거리며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글자들이 마도서의 페이지를 가득 채운다.

이게뭐시여?

설마 자신을 적은 작가라고 특별대우해주는 건가? 무슨 인터넷 게임채팅창처럼특수 효과를 입힌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던 글자들은 이내 내용이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역시, 검열되겠지. 누군지는 몰라도 나를 지금 상황으로 몰아넣은 놈은 내가 정체를 자각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분명했으니.

그런데 글자가사라져 가는속도가 서서히 줄어들더니, 이내 완전히 멈추었다. 황금빛 글자들이 빛바랜 종이 위에서 반짝이며 제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모습. 검열이 멈췄어?

혹여라도사라질까 봐황급히 글을 읽는다.

[대마법사 에이본(Eibon)]

마도사냐마법사냐 하나만 하라고. 시작부터태클 걸게하네.

[`심오한`, `헤아릴 수 없는`(The Unfathomable)등으로 불리는대마도사.하이퍼보리아(Hyperborea)의무우둘란(MhuThulan) 출신의 마법사.차토구아를섬기고 있는 가족에서 태어났다. 하지만이호운데를섬기는 사도에게 가족이 몰살당하고,워록자일락(Zylac)에게거두어졌다.]

수식어가 거창하네. 그리고 불행한 과거는 대마법사종특인가? 그래서 마법사,마도사하나만 하라고. 이번엔워록이냐?

[...스승이 소환 사고로 죽고 성인이 된 이후 세계를 방랑하며 떠돌았다. 시간이 흘러하이퍼보리아의무우둘란에지은 거대한 탑에 정착한 이후차토구아를섬기며많은 사람들의존경을 받았다.]

불행한 과거 2. 아까차토구아인신 공양어쩌구하지 않았나? 그런 놈을 섬기는데 존경받는 거야? 하이퍼보리아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닌가 보네.

그러고 보니까먹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형태 없는 자손, 슬라임이라고맘 편히부르고 있는 녀석들이 섬기는 존재가 분명 ■■■■으로검열되어서 보였는데, 이제차토구아라는이름으로멀쩡하게보이고 있다는것이다.

검열이 서서히 풀리고 있는 것일까? 풀린다면 의도적으로 풀고 있는 걸까 자연스럽게 풀리는 것일까.

수많은 의문이 떠오르지만 일단 글을 마저 읽어간다. 혹시 다 읽는다면 내 정체에 대한 봉인도 풀릴 수 있을 수 있잖아?

[...이 당시 집필한서적 중가장 유명한 것은 `에이본의 서`. 암흑의 신화나 지식은 물론 사악한 주문, 의식, 전례 등의 집대성으로 그 악명높은네크로노미콘(Necronomicon)에서조차누락된금단의지식들을담고 있다.차토구아뿐만 아니라 ■■ ■■■에 대한 내용도 들어있는 것이 눈에 띄는 작품. 이후하이퍼보리아를지배하는이호운데의교단에게이단으로 낙인찍혀차토구아의 도움을 받아사이크라노쉬/ 토성으로 도주한 것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나왔다!

검열된 다섯 글자는 분명 내 이름을 담고 있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 검열되어있지만, 내용이사라지거나 하지는 않았으니 내가 알아도 괜찮은 정보라는 뜻일까?

그나저나 무슨 짓을했는지는 몰라도이호운데라는 신에게 단단히 미운털이 박힌 것같은데…. 하긴,인신 공양하는신을 섬기는데 정상인이라면 거부하고 죽이려고 달려드는 것이 당연하겠지.

내용을 읽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대마법사인지마도사인지어쨌든마법쟁이에이본은 내 정체에 대해 알고 있다. 자신이 섬기는 신과 더불어 내 이름이 같이 등장한 것을 보아서는 나 역시신 같은존재인 것이고.

설마인신 공양받고그러지는 않았겠지? 신이라는 정보에는 놀라지 않는다. 이미 실시간으로 체감하고있다 보니지식으로 확답을 받아도 그러려니 하는 기분이랄까.

고민되는 점이라면 내가 전생을 한 것인지 빙의를 한 것인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전생이나 빙의나따지고 보면비슷한 점이있다 보니생기는 의문이랄까.

이 육체가 본래 주인이 있다면빙의인 것이고, 주인이 없었다면 전생이겠지. 육체 성능이 내정신에 비해너무나도뛰어나다 보니이전에 본래 주인이 있었다고의심할 수밖에 없지.

지금은 서서히 정신도 육체에 맞추어 성장해나가고 있지만, 이 역시또 다른고민을 낳는 것이 문제.

인간성을 실시간으로 잃어가는 기분은 겪어본 사람만 알겠지. 시간이지날 때마다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되고 있는데 그 변화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분명히공포스러운일이다.

그게 지금 내 상태고.

최대한 내 본래 의식을 유지하려고 하지만,유지를 해야하나 의문이 들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더 고등한 존재로 진화하는 것이라고볼 수도 있으니까.

차차 고민하면 되겠지. 다시 본래 내용으로 돌아가서, 에이본이라는 마법사가 내 정체를 아는 만큼 접촉을 시도할 수만 있다면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이 본인에대해 물어보는것이 이상하기는 하겠지만, 뭐 그건 그때 가서 처리하고.

그러고 보니마법진이에이본이 사용한차원문인가뭔가를따라 했다고했지. 그럼 그 마법사 요원이 뭔가를 알고 있지 않을까?

관심을 끄려고 했더니 곧바로 말을 번복해야 하는 것에 머쓱하지만 부끄러운 감정은 구석에처박아두고다시 슬라임과 동화를 시도한다.

몇번 반복해서일까, 이전보다 손쉽게 동화되는 정신세계. 아예 다른 생명체라서 그럴까 특이한정신세계가나를반겨….

응?

무언가 많이 바뀌었다?

정신세계내부를 거닐고 있는 존재들이 보인다. 분명하게 인간의형태를 하고 있는존재들. 뭐지? 이전까지만 해도추상화 같은느낌이었는데?

의문을 가지고슬라임에게질문을 한다.

[어떻게 된 거지?]

전해지는 감정이나 그림들을 번역하기 위해 마음을 대비하던 도중 길을 걷던인영 중하나가 발걸음을 돌리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모습을 취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를 정확하게 쳐다보는 시선. 어떻게?

의문을 가진 순간, 그 형태가 익숙한 것으로 바뀌었다.

알파­3이라고 불리던 요원. 이제는슬라임에게육신마저 완전히 흡수되어버린 불쌍한 녀석. 아니, 하던 짓을 생각하면 불쌍하지는 않나.

하여튼 그 요원이 나를 쳐다보더니 입을 열며 말을 걸었다.

"인간을 흡수하며 그정신세계를본뜬것입니다."

어.

말을 걸었다고?

너네 말도할 수있었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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