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했더니 촉수괴물-54화 (54/74)

〈 54화 〉 9. 쌍둥이와 곰인형 (12)

* * *

53.

희망찬 발걸음으로 길을 나선 네 명의 요원은 다행히도 슬라임들과 마주치지 않고 무사히 목적지 근방까지 도달하였다.

마지막으로 진압팀의 신호가 잡힌 곳은 통로가 아니었다.

이전의 광장처럼 커다란 것은 아니었지만, 다수의 인원이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장소.

텅 비어있고 먼지마저 쌓여 있던 광장과는 달리 확실하게 진압팀이 거점으로 사용하고 있는지 그곳으로 다가갈수록 여러 무기나 보급품이 담겨 있는 상자들이 간혹쌓여 있는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슬라임이의태 했을까싶어 아주 조심스럽게 지나갔지만, 이번에는 진짜 물건들이었기에한숨을돌릴 수 있었다.

드디어 탈출할 수 있는 실마리가보여서였을까, 일행의 표정은 더할 것 없이 밝은 상태였다.

특히나 델타­1은 동료들을 만날 수 있어서인지 이제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여유를 가지고 있을 정도.

저 멀리에 지겹도록 보이던 뻥 뚫린 통로가 아닌, 굳게 닫혀있는 문이 시야 끝자락에 잡히자 일행은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이 그들을 외면했을까. 그렇게 길을 걸어가던 도중 전방으로부터 비릿한 냄새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모두발걸음을멈출 수밖에 없었다.

녹슨 철 같은 냄새와 무언가 썩은 듯한 악취가 섞여서 구토감을 자극한다.

매캐한 냄새마저 섞인 것을 보면 무언가를 불태운 것이확실하였다.

설마,슬라임에게습격당했나.

통로의 끝, 굳게닫혀있는 문은 너무나 멀고도 어두워 보였다.

인원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었고, 다시금 불안과 절망이 마음을 가득히 채우기 시작하였다.

겨우겨우 절벽을 올랐더니 꼭대기에서 누군가가 발로 걷어찬 듯한 기분.

심연의 바닥까지 추락하는 마음에서는 희망의 불꽃이 서서히 사그라든다.

그렇게 다들 분위기가 가라앉던 도중, 델타­1이 이글거리는 눈빛을 하더니 분노에 찬 외침을 내뱉기 시작하였다.

뿌드득.

"그 개고생을 하고 이딴 식이라고? 절대인정 못 해!인정 못 한다고! 어떤 신인지 몰라도 작작엿 먹이시지? 사람 가지고 작작 놀란 말이야!"

이를 갈며 이성을 잃은 듯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모습에모두당황하였지만, 이해하지못 하는 행동은아니었다.

운명의 여신이 있다면 분명 낚시의 대가일 것이다.

희망이라는 미끼를 던지고 그것을 밀고 당기는 솜씨가 장인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들 하지.

그 비극의당사자로서는분통 터지는 일이지만. 안 그래도 성질도 더럽고 인내심도 짧아 보이는 델타­1이 참지 못할 만하다.

그렇다고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알파­1은돌발 행동을 보고 황급히 방음 마법을 사용하였다. 문 너머에 슬라임이 있다면 이미 늦었을가능성이 크지만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둘러쌌다.

마나의유동을 감지했는지 델타­1은 고개를 돌리더니 역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씨발슬라임 새끼들보고 들을 테면 들으라고 하지!좆 같은 새끼들이사람을 가지고 놀고 있어!"

방음벽을 찢으려는 듯이 팔을 휘두르던 그는 인상을 찌푸리고 이내 빠른 걸음으로 문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하였다.

"무슨 짓이냐."

알파­3은 델타­1을 노려보며 얘기하였지만, 이미 눈이 돌아갔는지 델타­1은 대꾸도 하지 않은 체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을 지나치고 홀로 다가서는 그의 어깨를 급하게 잡자그제야고개를 돌리며 쏘아붙였다.

"뭘 하기는 저 빌어먹을 문을 부수러 가는 거지.어차피되돌아가더라도 슬라임이 있을 텐데 아직 확인하지 않은 쪽으로 가는 것이 낫지. 지도를 보았을 때도 출구도 많고 방도 넓으니 수틀리면 비행으로 도주할 수도 있고."

생각보다 논리정연한 대답이 돌아와 알파­3은 당황하였다. 분노에 머리가 돌아버린 줄 알았더니만, 오히려 180도 돌아서 이성을 되찾은 것이 아닐까.

할 말을끝냈는지 델타­1은 망설임 없이 뒤돌아 문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였고, 나머지 일행은 황급히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도달한 문.

거대한 검은색의 문은 표면에 푸른 광택이 흐르는 것을 보아 마법으로 보강한 것이 분명했다. 단단한 금속으로 이루어진 문은 손잡이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사람을 자동으로 인식해서 열리는 종류의 것이겠지.

마력을 차단하는 기능 또한있는지 안을탐색해보려 하여도 문에 가로막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문을 어떻게 열어야 할까. 일단가볍게….

우우웅.

압도적인 양의 마나가 모이며 공명음이 일어나는 현상이 일어나자 알파­3은 당황하여 옆을 쳐다보았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콰──앙!

거대한 폭음이 일어나며 검은 문으로부터 매캐한 연기가 흘러나왔다.

"아니, 이게무슨…."

다시 한번일으킨 이상행동에 따지려는 순간, 일그러지고 반쯤 부서진 문 내부로부터 마나 반응이 느껴져 긴장한 상태로 문을 쳐다보았다.

슬라임으로부터 마나 반응을 느낀 적은 없으니 진압팀일까?

반가운 마음에 무의식적으로 다가가다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의 입장이라면 어떨까.

방 내부에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공격하여 문을 부수어버린 상대로 어떤 생각을 가질지는 뻔한 질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연기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자 흉흉한 눈빛으로 그들을 노려보고 있는 요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그들의 상태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 피가 묻은요원복.핼쑥한안색과 불안하게떨리는 마나. 그들의 뒤편으로 방의 풍경 또한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 역시 엉망진창이었다.

무언가 폭발한 듯한 검게 탄 흔적들부터 시작해서 여기저기 널려 있는 전투의 잔해들.

반쯤 무너진 건물들부터 시작해서 검게변색된피웅덩이들또한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상한 점은 바로 뼈.

뼈, 뼈, 그리고 뼈.

인간부터 짐승까지 온갖 뼈의 잔해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흰색의백골부터 마치 독기가 스며든 것처럼 탁한색을 띠는것까지.

사방에널려 있는뼛조각들은 멀쩡한 것부터산산조각이 난것들까지바닥뿐만아니라 건물이나 벽에도, 심지어 천장에도 몇몇 조각이 박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기를 움켜쥔 요원들이 그들을 노려보자 델타­1 역시 사나운 눈빛을 돌려주었다.

연락에 따른다면 저들 사이에델타팀이보여야 할 텐데. 그리고 그들이 있다면 분명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라고전달했을것이 분명한데도 상대는 경계심을 낮추지 않았다.

하긴, 시작부터 폭발로 문을 날려버리고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상대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일 리가 없지만.

알파­3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공간에서 먼저 나서서 대화의 물꼬를 열었다.

"문을 파괴한 것은 죄송합니다.저희 쪽요원이 조금 다혈질적인성격이라…. 방금까지정체 모를 괴물에 쫓기다가 겨우도착하다 보니빠르게 들어가려고 거친 행동을 한 것 같습니다.다시 한번죄송합니다."

허리를 숙이며 사과를 하자 상대로부터 느껴지는 분위기가 조금은 느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적개심이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지만.

특히 델타­1은 이제 그를 노려보기 시작하고 있었다.

뭐, 어쩌라고.사고를 친주제에 뭐가 그리 당당한지 그의 말을 들은 뒤 똥 씹은 표정을 하고있었지만, 알파­3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무시했다.

조금은 호의적인 반응을끌어냈기에알파­3은 이야기를 끌고 나갈 수 있었다.

"저희는 시설에서No. 245의진압팀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한 인원입니다. 인원 중 한 명은 이미 일면식이 있던 요원도 있었는데, 아까 말한 괴물에그만…."

알파­2가 먼저 잠입해서 정보를 알아내고 있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은신을 해제하고 얼굴을 드러내지는 않았겠지만.

"아마 저희의 동료들이 먼저 도착했을 것으로사료됩니다만혹시4명의 요원을보신 적 없습니까? 키가 크고 붉은 머리를 한 여자 요원이 섞였기에 눈에 띄었을 텐데요."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델타­4의 튀는 외형이라면 분명 눈에 띄었을 것이다. 인간을 상대로 헬멧을 벗지 않았을 것도 아니고.

아,그러고 보니그들 역시 헬멧을착용 중이었다. 어디서 슬라임이습격해올지 모르는만큼 인체에서 가장 주요한 부위를 보호해주는방어구를벗을 수는 없었으니. 지금은 괜찮겠다 싶은 알파­3은 헬멧을 벗었다.

투구에 짓눌린 검은 머리가 흘러나오며 눈썹을 뒤덮었다.꽤긴 머리를 가진 그로서는 헬멧을벗었을 때는머리가 시야를 일부 가리기까지 할 정도였지만 멋을 위하여 길렀다. 24시간 근무하는 요원이라도 나름 외모는 챙기고 싶었으니.

그가 얼굴을 드러내자 상대의 반응이 조금은 더 호의적으로 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델타 팀 역시 꽤 놀란 듯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고. 인간이라는 생물은 외모에 따라 감정이 영향받는 특성이 있으니.

알파­1 역시 놀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동성애적인 취향은 없으니 계속 주목받고 싶지는 않았지만.

"음…. 확실히네 명의 요원이찾아왔었지요. 다만 그들의 말로는 금발이라고 하셨던 것같은데…."

상대 쪽으로부터나름 리더의 역할을맡고 있는지 조금더 화려한 제복을 입고 있는 요원이 나와 첫 마디를 꺼내었다.

그 역시 상태가 정상은 아닌 듯 다리를 절뚝거리며 다가왔고, 제복 역시 여기저기 찢어진 자국과 핏자국들이 곳곳에 보였다.

"금발이었습니다. 염색했죠. 요즘 대세는 검은색이 아니겠습니까? 아직 앞날이 창창한데 유행에뒤처질수는 없죠."

물론, 상대가 믿지 않을 수도 있으니 알파­3은 살짝 정신을 집중하며 머리카락을 뽑았다.

그의 손에 얇은 머리카락 한 가닥이 잡혔고, 검은색의 머리카락은 뿌리가 금색으로 물들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만나게 된 것이유감이지만…. 어쨌든환영합니다.No. 245진압팀을 이끄는가이락이라고합니다."

"제이크라고 합니다. 다시 한번 저희 요원의 철부지 없는 행동에사과하겠습니다."

두 요원이 서로 손을 내밀고 악수를 하자 분위기가 풀리며 미약한 미소를 짓는 요원까지 나타났다.

델타­1만이 여전히 화가 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동안당해왔던 것을 돌려주고 있으니 조금은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손을마주 잡은가이락은움찔거리더니 이내 악수를 풀고 얘기하였다.

"힘이…. 꽤강하시군요. 하하, 이거 참 부끄럽습니다."

"제가 창을 사용하기에 단련을 좀 하였죠.그쪽역시 악력이 만만하지는 않던데요."

반으로 부러진 창을 보여주며 말하자 상대의 표정이 조금은 가라앉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긴, 거친 전투를 치른 것 같았는데 지원으로 온자들마저무언가에 당했다면 확실히 불안하기는 하겠지.

그들을 따라 방 내부로 들어가자 더욱 심각한 참상을 볼 수 있었다.

요원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지만, 수많은 인간의 시체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해골과 시체가 섞이고 썩은 살점의 냄새와 비릿한혈향이섞여 구역질이 나는 광경.모두인상을 찌푸리고있었지만, 알파­3만이 멀쩡한 모습으로 걸어갔다.

"비위가 좋으신가 보군요."

"근거리 전투원으로 활동하다 보니 꽤 끔찍한 광경을 자주 보았죠. 사지가 뒤틀리고 씹어 먹힌 광경에 비하면 이 정도는별것아닙니다만…. 도대체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전투의 흔적을 본다면 245와 부딪힌 것은아닐 텐데요.오히려…."

시체와 뼛조각. 부패한 살점과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어둠 속성의 마력은 상대의 정체를 아주 손쉽게 까발리고 있었다.

네크로맨서.

사령술사라고도불리는 그들은 살아있는 생명이 아닌,죽은 시체와영혼을 부리는 소환 계통의 마법사이다.

물론 다양한 생물을 섞은 키메라라던가 살아 있는 육체에 영혼을 넣은리빙데드등생명을 다루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핵심 전력은언데드임이분명했다.

그리고 지금 보이는 광경 역시언데드가죽어서 남긴 흔적들로 보이고.

사람이 죽는다고 뼈만 남을 리가 없었으니. 땅에 묻히고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부패하고 썩은 살점들마저 흙으로 돌아가는 데 전투를 치른 지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백골만 덩그러니 남을 수는 없었다.

문제는 이곳에 왜네크로맨서가있고 그와 전투를벌였는지 이유를 알수가 없다는 것이었지만.

시설 소속의네크로맨서들또한 분명 존재했다. 비록 암흑속성의 마나를다루며 음침하고 괴팍하다는 선입견이 있기는 했지만, 분명 그 능력은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체와 영혼이야 언제나넘쳐나는시설의 입장으로서는그것들을재활용할수 있다면 기꺼이 제공해줄 수 있었고, 마나가 떨어지거나 시체가 완전히 파손되어 사용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지 않는 이상끊임없이부활하는군대는 관리개체를 상대로 압도적인 효율을 자랑하였다.

다만 대다수의 관리 개체들이언데드특유의 생명을 갈취하는 특성을 증오하여 난폭해지기에네크로맨서를함부로 투입할 수는 없지만, 기회가되었을 때는항상 포함할 정도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마법사 군이었다.

그런데 적으로 등장하다니.No. 245가사령을 다룬다는 내용은 없었으니까 시설의 요원이 배신했거나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다는 가정밖에 할 수 없었다.

시설을 적대하며 호시탐탐 무너뜨릴 기회를 노리는 곳들은 많았기에.

시체의 산이 쌓여 있는 광경을 보며 진압팀이 일으켰다는 반란 뒤에는 역시 무언가 다른 이유가존재한다는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들을 이끄는 진압팀을 따라 걸어 들어간 건물. 그나마 멀쩡히 보이는 건물 내부에는 더욱많은 요원이존재했다. 그들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이 문제지만.

사지 중일부를 잃은 사람부터 미친 것처럼 거품을 물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묶여 있는 사람까지.

온갖 종류의 환자들이 여기저기 누워 있는 가운데 소독약과 의약품의 독한 냄새가 가득한 방이었다. 그나마 바깥의 냄새보다는 나았지만, 보이는 광경은 똑같이 처참하였다. 아니, 살아 있는 인간들이 고통을 신음하는 광경이라 어떻게 보면 더욱 심각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그들을 지나치는 진압팀. 환자를 돌보며 지친 표정을하는일부 요원들이 그들을 보며 고개를 숙이고 인사하였다. 말할 기력도 없는 것일까, 조용히 목인사를 마친 그들은 다시금 환자를 향해 신경을 돌렸지만.

그렇게 넓은 방을 지나자 깨끗해 보이는 복도와 문이 보였다.가이락이문을 열자 일부 요원만이 그를 따라 들어가고, 나머지 요원들은 경례를 올리더니 이내 복도를 따라 사라졌다.

알파 팀과 델타 팀은가이락을따라 방에 들어갔다.

자그마한 방은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밖에서 반입해왔는지 파릇파릇한 식물이 담긴 화분부터 벽에 걸려 있는 누군가의 초상화까지.

바닥에 깔린 카펫 역시 고급스러운 재질로 보이기에 더러워진 신발로 밟기가 꺼려졌다. 델타­1은 망설임 없이 걸어가 푹신해 보이는 소파에 그대로 몸을 맡겼지만.

가이락의개인실일까, 그와 여인의 얼굴이 담긴 사진이장식되어 있는액자가 탁자 위에 보였다.가이락역시 액자를 잠시 쳐다보더니 이내 의자에 앉으며 말문을 열었다.

"다들 편히 앉아서 쉬시죠. 얘기가 길어지지는 않을 것 같지만 아무래도 그쪽도 상태가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으니."

헐렁거리는 델타­1의 소매에 힐끗 눈빛을 주며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피로감이 느껴졌다.

그의 말에 따라 푹신한 소파에 앉은 그들은가이락의말에 귀를 기울였다.

"여기를 먼저 찾은 그쪽의 동료들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간단하게 상황부터 얘기해야 할 것 같군요. 그들과도 연관이 되는 내용이니 조급해하지 마시고 잠깐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깊게 숨을들이마시고내뱉은 그는 마침내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먼저,이곳이이루어진 방식부터 간략하게 설명해야겠네요. 아실 수도 있겠지만 이곳에서는 감시팀과 진압팀, 그리고No. 245를전담으로 하는 요원 이렇게 세 부류로 나누어져 작업을 합니다."

245의 일거수일투족을 24시간 내내 지켜보는 감시팀.

폭주하였을 때개체를 제압하고 원래 상태도 되돌리는 역할을 담당하는 진압팀.

그리고 폭주가 애초에 일어나지 않도록 245와 밀착하여 생활하고 관리하는 전담 요원.

세 역할이 톱니바퀴처럼 굴러가게설계되어 있는시설. 물론,진압팁만은전담 요원과 감시팀이 모두실패했을때에 투입되는 역할을 맡고 있었지만, 그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그런데도폭주가 일어난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모든 것은, 몇 년 전에 한 여성 요원이 새로이 전담 요원을맡았을 때시작되었죠. 이사벨라라는 이름을 가진 D급 요원입니다. 전에 245를 맡던 전담 요원이 폭주에 휘말려 사망한 뒤에 배치된 그녀는 빠른 속도로 관리 개체와 친밀감을 쌓았습니다."

전담 요원으로서 그녀는 아주 바람직한 모습을 보였다. 폭주가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 개체의 정신을케어해주는것은 물론 오히려 그들과 같이 생활까지 하며 그들의 욕구를 언제나 충족시켜주었다.

"분명 그녀는 자신의 역할을 200% 넘게 이루었기는 했지만, 관리 개체와 지나치게 친밀감을 쌓게 되기 시작한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애착감을가지기 시작한 것이었죠."

당연히시설의 입장에서는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였지만어차피일정 기간마다 바꾸게 되어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크게문제로 삼지는않았다.

"No. 245에는공개되지 않은 정보가 있습니다. 바로곰인형, 245­C와 관련된 정보죠. 본론을 바로말해드리자면…. 거대화하는특성을 이용하면 물질 복제가 가능해집니다. 어떤 대가도 들지 않는 복제. 그저곰인형에 원하는 물질을 삽입하면 됩니다."

목이타는지 물을한 컵 따라 마신 그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다만 복제하기위해서는곰인형이거대화해야 하고그것은 245가폭주해야 된다는것을 의미하죠. 그래서 시설은 물질을 뽑기 위해 기적으로 245를 폭주시켰습니다. 물론 다른 아시다시피 관리개체 중에복제가 가능한 그 녀석이 있으니 능력에어느 정도한계가 있는 245는 한계까지 굴려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투자 대비 생산량이 나쁘지는 않아 시설에서도 꽤 애용했죠. 제압하는 것도 B등급과 C등급 인원으로 충분했으니까요."

어느덧 비어버린 잔을 내려둔가이락의표정이 불길한 내용을 암시하듯 서서히 굳어가기 시작하였다.

방에 같이 들어온 요원들이 그들에게 차를 내주었고, 그들 역시 따뜻한 차를 마시며 이어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당연히 245와 유대감을 쌓기 시작한 이사벨라, 아니그년은진압팀에게 멈춰달라고 호소했지요. 관리 개체를 폭주시킴에 있어서 당연히 행동이거칠어질수 있는 것이지만 그녀가 보기에는 이상행동이었던 거죠.괴물 따위에게감정 이입하기는."

서서히 분노가 느껴지기 시작하는 그의 표정과 거칠어지는 어조에 알파­3은 올 것이 왔구나 직감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졌습니다. 245가 평소보다 훨씬 강력하게 폭주한 것이죠.그년이무언가 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아직도 사건의 면모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만이 기록되었지요. 진압팀이궤멸한것입니다. 단한 명의생존자도 없이."

"이사벨라 역시 폭주에 휘말려서 사망했습니다.그년또한 도망갈 수 없었죠. 하, 그렇게 끝났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년은 죽음을 거부했습니다. D급 요원 주제에 어떻게했는지모르겠지만, 그녀는 리치가 되었습니다."

리치.

언데드마법사 중에서도 가장 고위인 존재.

그 말을 듣자이곳에서일어난 참상의 원인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마법의 대가인 리치라면수많은 요원들을 상대하고도남겠지. 종족부터언데드이기에소환되는언데드들과친화도도 높을 뿐만 아니라 어둠 속성 마력에 대한 친화력 역시 높기에네크로맨서로서의능력도 압도적이다.

네크로맨서들이스스로 생명을 버리고리치화를할 만큼 매력적일 정도.

서서히 드러나는 사건의 윤곽에 알파­3은 그에 따른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리치화하기는 하였지만, 이런 장소에서 한 만큼 무언가 불안정하게 이루어졌음이 분명합니다. 그녀의 존재를 유지해줄 생명력이 부족했기때문이죠. 문제는 시설에 자신을 신고하지 않았기에 생명력을 보충할 수단이 없었다는 것이죠. 감시팀은 어떻게구워 삶았는지 모르겠지만그들 역시 보고하지 않았고요. 그렇게 나날이 죽어가던그년은마침내 방법을찾아냈습니다."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한가이락은이내 책상을 거칠게 내려찍으며 분노에 가득 찬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개 같은년이 찾은 방법이란 진압팀을 희생양 삼는 것이었습니다! 새로 투입되는진압팀 일부를죽이고 생명을 흡수하는 거죠. 그것도 교묘하게 245를 폭주시켜서 자신이 하지 않은척하면서! 하,위선자 년같으니. 뭐가 245를 위해서지? 아무튼 시설에 전해지는 정보까지 조작해가는 그녀에게 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죠. 그렇게 멀쩡한 요원들이끊임없이죽어 나갔습니다."

마침내 드러난 진실의 무게는 그들을 무겁게 짓눌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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