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했더니 촉수괴물-53화 (53/74)

〈 53화 〉 9. 쌍둥이와 곰인형 (11)

* * *

52.

우두둑.

마지막 상대의 목을 꺾은라일은거친 숨을 내쉬며 바닥에 드러누워 쉬었다.

질척거리는 감촉과 비릿한 냄새가 올라옴에도 불구하고 지친 육신을 쉬어주게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얼마나 오랜시간 동안전투를 벌인 걸까.

사방에 붉은 피가 땅을 적시고 있었고,그중에서는라일의것도 분명하게 존재하였다. 무기 하나 없이열 명의요원을 상대로분투해야 했던그.

만약 슬라임이 아니었다면 몇 번이고 죽었을 것이다.

참상 사이로 꿈틀거리며기어 다니는검은 슬라임의 모습을 지켜본다. 마법부터 검까지, 온갖 종류의 공격을 막아내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이리저리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모습은 그저 평범하게만 보였다.

슬라임에 수비를 완전히 맡기고 공격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 그가 지금 살아숨 쉴수 있는 이유.

그리고 열 명이라는 인원이 오히려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진압팀이 호흡을 맞추어 상대해온 것은 No.245­C. 거대한형상을 가진괴물을 상대로 합격을 유지해왔다. 인간을 상대로한 것이아니라는 것.

열 명이나 되는 많은 인원의 움직임은 서로서로 걸리적거리게 만들기에 차고 넘치는 숫자였다.

크기가 큰 괴물은 그만큼 표면적도 넓어 근거리 공격을 하는 요원들끼리 교대해가며 상대하고, 동시에 원거리 공격을 하는 요원들은 넓은 몸을 표적으로 삼을 수 있으니 편했겠지.

하지만 인간을 상대할 때는 전혀 다르다.

같은 몸집에 빠르게 움직일 수도 있고, 무엇보다 서로뒤섞였을 때동료를 공격하게될까 봐망설임이 일어나기에 상황을 더욱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결국, 한명, 한 명 죽여나가며 인원을 줄이고 동시에 죽인 상대로부터 무기를 빼앗아 사용할 수 있었으니맨손이라는단점 또한 무마되었다.

그렇다고 해서라일이멀쩡한 것만도 아니었지만.

슬라임이 모든 공격을 막아주지는 못하였고, 흘리거나마나로막지 못한 공격들은 그의 몸에 상처를남길 수밖에 없었다.

하나둘씩쌓여가는 상처와 오랜 연전으로 쌓이는 피로로 인하여 전투가지속될수록 지쳐갔다.

아마 상대가차륜전으로상대했다면 대지에 누운 것은라일이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역시 관리 개체를 상대하던 습관으로 발생한 전략적인판단 미스.

언제나 속전속결로 끝내야 했던 만큼 이번 전투 역시 똑같이 행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10:1이라는 수적 우위를 믿었을 것이고.

지금이라도 뻗어버리고 싶지만키라누새끼에게 자랑할만한건덕지가생겼다는 것을 의지로 삼아 몸을 일으킨다.

회복 속도가 확연하게 빨라진 만큼, 감시실로 가다 보면 잃은 체력이 돌아오겠지.

마나는여전히 차고 넘쳐났기에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이거 진짜 돌아가면 마법이라도배워야 되나? 아니, 마법까지 배워버리면키라누가설 자리가 없어질 텐데 말이야.

그 새끼도 잘 버티고 있으려나.

아홉 구의 시체를 뒤로 한 체라일은노획한 검 한 자루를 들고 다시금 길을 출발하였다.

무언가 불만스럽다는 듯이 꿈틀거리는 슬라임이 그의 뒤를 황급히 쫓았다.

***

분명히 지도가 옳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델타 팀의 인원에게 죽어도 인정하고 싶지는않았지만, 그들이말한 대로 지도는 언제나 확실한 길을 표시해 주었다.

문제는 그 길을 따라걸어갈수가 없다는 것.

지친 몸을 이끌고 간신히 휴식할만한 장소를 찾은 알파­3은 반쯤 부러진 창을 내려두고 주변의 요원들을 쳐다보았다.

패잔병 같은 모습.

좌반신의 보호복이 붉게 물들고 팔을 잃은 델타­1.

절뚝거리며 다리를 절고 있는 델타­5.

드디어회복되어홀로 다닐 수 있게되었지만, 여전히정신 상태가 좋지 않은 알파­1.

그나마 멀쩡한 모습을하고 있는것은 알파­3뿐이었지만 그 역시오랜 기간동안알파­1을 업고 다녀야 했기에 체력적으로 한계가 온 상황이었다.

휴식할 때마다비아냥거리던델타­1의 입은 굳게닫혀있었다. 아니, 그를 포함하여 네 명의 인원 모두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체력적으로도 마력적으로도 한계까지 몰린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몸을 웅크리며 남은 것들을 보존하는방법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그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정신적인 문제.

어디서도 안심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지금도 자리에 앉아 휴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천장과 벽, 그리고 바닥을 편집증 환자처럼샅샅이훑어보고 있는 모습들.

델타­2가 산채로 잡아먹힌 이후에지옥 같은경험이 시작되었다.

지도를 따라 도망을 가던 그들을 마주한 것은 역시나 막혀버린 길. 이전처럼 폭발로 길을 뚫으려고한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벽이 꿈틀거리며 슬라임으로 변하는 기괴한 모습. 옅은 회백색의 단단한 벽이 질척거리며 바닥에 뚝뚝 물을 흘리고 검게 물들어가는 광경은 기괴하며공포스러운것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도주하며 최초로 표시된 길로부터이탈할 수밖에 없었다.

갈림길이 아니었다면앞뒤로포위되어 델타­2와 같은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그때부터절망이 시작되었다.

막힌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지도를 보며 전속력으로 도주해야 하였고, 동시에 온갖 것들로부터 튀어나오는 슬라임들을 피해야만 하였다.

통로의 벽은 기본이었고, 천장이 통째로 무너지거나 바닥이 가라앉는 등 때마침 알파­1이 정신을 차려 플라이 마법을 걸어주지 않았다면 모두 그 자리에서 전멸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가장 악랄한 것은 물건으로의태한놈들.

겨우겨우 시야 밖까지 슬라임들을 따돌리고 안심하며 휴식을 취하던 때.

통로에 놓여 있는 비품 상자에 델타­1이 팔을 기대며쉬려 한순간 상자가 그대로 슬라임으로 변하며 그의 팔을물어뜯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참상에 반응도 할 수 없었고, 결국 먹힌 팔을 뒤로한 체 다시금 도주하는방법밖에 없었다.

잠깐이라도 쉴 시간이 있었더라면 보호복을 사용하여 팔을 완전히재생시켰겠지만, 그들은끊임없는습격에 시달리며 단 한숨도 쉴 수가 없었다.

평범한 통로인 줄 알았더니 바닥의 돌과 자갈이부풀어 오르며변하고.

가장 위험했던 순간은 통로 전체가 슬라임으로 이루어져 있었던 때.

앞뒤로 포위된 절체절명의 순간, 알파­1과 함께 간신히 슬라임을 쳐내는 동안 델타 팀이 통로의 벽을 부수고 새로운 길을 뚫고 도망가는 방식으로 겨우 도주에 성공하였다.

그렇게 도주에 도주를 거듭하며 마력을 대부분 탕진한 순간, 추격이 멈추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안심을 할 수 없었던 그들을 지칠때까지도망을 쳤고, 마침내 지금 있는 방에 돌입했다.

지도에도 정상적으로 표시되는 길이며 어떤 이물질 없이 깨끗한 복도.

간신히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지만, 그들을 감싸고 있는 절망적인 분위기는 여전하였다.

추격이 언제 다시시작될지도 모르고, 상대하는 방법조차 없는 것이 더욱 치명적이었다.

알파­1이 회복된 이후로 약점을 찾기 위해 도망을 치며 온갖 속성의 마법을 써보았다.

화염, 물, 얼음, 산,번개….

하지만 어떤 마법을 맞더라도 검은 괴물은 끄떡없이 전진을 거듭하였다. 어떻게 된 내구성인지 그가 마나를 일으켜 전력으로 창을내질렀을 때역으로 창이 부러지는 참사까지 벌어질 정도로.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분명 여태 수행한것 중에서는어려운 임무들 또한존재했지만, 이번 경우 같은 상황을 겪은 적은단 한 번도없었다.

요원이 아닌, 관리 개체를 상대하는 듯한 느낌. 아니, 사실상 관리 개체를 상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목표는 어떤 연유인지는 알 수없지만, 여전히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하니.

역시 이 정도 수준의소환수들을다룬다면 무언가 제약이나 대가가 있는 것이 분명하겠지.

술자를죽이거나마법진을파괴한다면 사라지는 것일까?

상부에서는 분명마법진을분석하고 있다는 내용을 전달했지만, 그 이후로 깜깜무소식이다.

둘로 나뉜 반대쪽 델타 팀 인원들에게 연락을취해보았지만, 그들에게서역시 어떤 답신도 오지 않았다.

알파­3뿐만 아니라 같은 델타 팀이 연락을 시도해도 받지 않는 것을 보니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괴물에게 모두 잡아먹힌 것일까. 네 명의 요원들은 통신 교란이 일어나 연락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들만이수많은 괴물들사이에 외롭게 남겨진 신세라는 사실은 끔찍한 것이었다.

역시, 이대로 가면 결말은 정해져 있겠지. 무언가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알파­3은 있는 힘 없는 힘을 모두 끌어와 대화를 시작하였다. 메마른 목으로부터 갈라진 목소리가 나온다.

"이대로는전멸뿐이다. 방법을 찾아야만 해. 어떤 이유로 추격을멈췄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쫓아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침묵을 깨며 던져지는 묵직한 진실은 누군가에게는 둑을 무너뜨리는 결정타였다.

"그러면 어쩌라는 건데! 뭐 마땅한 방법이라도 있어? 목표는 구경도 하지 못해보고 마법이고 폭발이고 어떤 수단도 통하지 않는 이런 미친 괴물들에게 뭘 하라고?"

분노와 절망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델타­1이 소리를 질렀다.

"니들이진작에 목표를 처리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어! 좆도 없는 것들이 자만해서 상대를 무시하다 이런 꼴이 된 거 아니냐!"

피투성이로 덜렁거리는 소매를 흔들며 괴로움을 토해내는 그의 눈에는 원망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대상은 불합리한 꼴에처하게 만든장본인이 아닌, 주변에 있는 만만한 대상에게 쏟아졌고.

시선을 마주한 알파­1은 그저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숙였다. 다양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효과도 거두지 못하여 자존감은 더욱 떨어진 상태. 한평생 마법에 바쳐온 삶이하루 만에부정되는 꼴을 겪은 그는 지독한 허무함과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괴물들이 소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마법 일부는분명히 그가 사용한 화염 마법으로 이루어졌다. 통제를 완전히 뺏겼기에 그의 마력까지 뽑아가서 만들어진 것. 그로 인하여 알파­2가 죽었다는 사실은 계속 그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말조심하지? 이런 상황에서까지 싸우고 싶나? 외팔이 정도는반 토막 난창으로도 모가지 따고도 남으니 시비는 작작 걸어라."

"지금 뭐라했냐씨발새끼야?"

분위기가 험악해지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로를 노려보기 시작하는 알파­3과 델타­1.

델타­5는 자리에서 조용히 지켜보고있었고, 알파­1은 퀭한 시선을 한 체 알파­3 곁으로 갔다.

일촉즉발의 순간, 결국 먼저 양보한 것은 알파­3이었다.

"후우. 우리끼리 싸워봤자 뭘 이루겠냐. 아까 말했듯이 지금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자. 방법을 물어봤지? 지금 생각나는 것들은 총세 가지다."

감정을 가라앉힌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하자 델타­1 역시 입을 닫고 조용히 경청하였다.

표정은 여전히 벌레씹은듯하였지만.

"첫째로는 천장을 뚫고 지상으로 나가는 것이다. 넓은 평야라면 도망을 가기 쉬울 것이다. 플라이 마법으로 아예 공중에서 내려오지 않는 방법도 있고. 보호복에내장되어 있는비행 기능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주의해야 할 방향이줄어든다는 점이 바람직하지."

통로가 아무리 꽤 넓은 편이라고 한들 자유롭게 움직이기에는 제한이 있었다.비행하기에는천장과 가까워지기에 위험하였고. 천장 또한 언제 슬라임이 의태를 풀며변할지 모르니비행이라는 선택지는없는 것이나다름없었다.

그나마 바닥이 무너지는급박한상황에서나 사용할 수 있었지.

지상으로 나간다면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이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문제는 슬라임이 원거리 공격을 할 수도 있다는 것. 처음겪었을 때분명 무언가가 보호복을 뚫고 공격을했다. 만약 비행하다격추당한다면어떤 꼴이될지는 알겠지?"

바닥에서 몸을 벌리며 떨어지는 먹잇감을 기다리겠지. 그 이후는 끔찍한 경험이 될 것이고.

"두 번째는목표 및마법진을제거하는 것이다. 이런 압도적인소환수를불러냈다면 분명 무언가제약 같은것이 존재할 것이다.흑마법계열과 비슷한 페널티가 있겠지. 이는아직까지도목표가 움직이지않는다는정보로 추측할 수 있다."

악마를 소환할 때에 제물을 바치거나 그러지못할 경우술자본인의 목숨까지 위험해지는 만큼, 목표 역시 같은 처지에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들을 제물로 지정하였기에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놓쳤을 경우 본인이 대신 대가를치러야하기 때문에.

"이 방법의 문제는 정보가 확실하지 않다는 점이다. 상부에서 분명 분석을 의뢰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마법진에대한 자그마한 정보조차 전달하지 못한 것을 보면 전혀 모르는 체계의 마법일 수도 있다. 관리 개체와 연관되어있을 가능성이 클것으로 생각하면충분히 일리가 있는 가능성이지."

만약 관리 개체와관련되어 있는내용이라면 더욱 희망이 사라진다.

시설은 어떻게 해서도 유용한 정보를 뽑아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고, 그것에는 그들의 목숨마저 포함되어있을 테니.

겨우 요원 몇의 목숨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기꺼이 던지는 곳이니.

"만약 가설이 틀렸을 경우술자와마법진을제거했음에도 불구하고 슬라임들이 남아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좁은 광장에 갇혀서 최후를 맞이하겠지."

목표를 제거하려면 광장으로 돌아가야만 했고, 슬라임들이 처음 나온 곳인 만큼앞뒤로포위되어 도망을칠 수 있는 길이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모 아니면 도의 수단.

"그리고 마지막 방법. 다른 인원들과 합류한다. 나머지 델타팀뿐만아니라 이 통로를 만들어 낸 장본인들을. 진압팀을 발견하여 합류하고 대책을 마련한다. 상부에서 마지막으로 연락을취했을 때그들이 모여 있던 두 장소의 좌표를 보내주었다. 하나는 지상이고, 하나는 지하에 있다. 그리고이곳과그리 멀지 않지."

진압팀과 합류한다면 확실하게 생존 가능성이 늘어날 것이다.

인원이 훨씬 많은 것 또한 도움이 될 것이고 통로를 만들어낸 장본인들로서 무언가 다른수단 같은것이 존재할가능성도 작지않다.

반란을 위해 오랫동안 설계한 통로가 단순히 이동 용도로만 쓰였다고 생각할 수는 없으니.

여차하면슬라임에게미끼로 던지고 도주를할 수도 있는 것이다.

포식을 할때에는움직이지 않는 습성이 있는 듯 보였으니.

다시금 산 채로 잡아먹히는 요원의 모습이 떠오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털어내기 위해 빠르게 말을 이어간다.

"자, 그럼 투표하지. 개인적으로는세 번째방법이 제일 무난하고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첫 번째다.비행 중원거리 공격은 충분히 회피 기동으로 피할 수 있다. 겨우 요격의 위험만으로 비행의 이점을 포기하기는 아깝다."

델타­1은 아니나 다를까 바로 반대 의견을 내세웠다.

다시금 기가 산 표정을 보아하니 비행에 자신감이 있는 듯 보였다.

"... 나 역시첫 번째방법이 좋다고 생각한다."

조용히 있던 델타­5 역시 같은 의견을 내세웠다.

2:1의 상황.

남은 것은 알파­1. 알파­3은 가라앉은 시선으로 알파­1을 쳐다보았다. 그의 선택에 따라 결정되거나 동률을 이루겠지.

알파­1은 불안한 표정으로 기다리는 세 요원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고민을 하며망설이던 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첫…. 아니, 세 번째가 좋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많으면 도움이될 거야. 그래, 그게좋겠어…."

눈이 가라앉으며 중얼거리는 알파­1. 비록 조금은 회복된 것같지만, 여전히정신적으로힘들어하는모습이 눈에띈다.

알파­3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2:2. 누군가는 의견을 바꾸어야 결정이 나는 순간. 한 명이 죽은 뒤 짝수 인원이 되었기에 발생하는 애매한 경우.

"지상으로 나가려면 천장에 구멍을 뚫어 지상까지 연결되는 길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이 쉽게 가능할까? 소리를 듣고 슬라임들이 몰려올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통로가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가능성도 존재하지."

설득을 시도하고.

"우리의 화력이라면 충분히 뚫고도 남는다. 혹여 슬라임이 오더라도 너희가 막으면 되지 않는가? 지금까지했던것처럼길을 뚫는 거지. 단지 벽이 아니라 천장이 될 뿐. 그리고 통로가 무너지는 것은알맞은장소를 찾아서 뚫으면 된다."

반박을 듣는다.

의견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공격적인 언행을 하기도 하고 어르고 달래기도 하며 마음을 바꾸려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델타­1은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정말 자신의 의견이바르다고생각하여 그러는 것인지 악감정을 품고 끝까지 반박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러면 곤란한데.

알파­3은 대화 사이에 잠시 생긴 공백기에 숨을 고르며 인상을 찌푸렸다.

델타­5는 토의에 참여하지 않고 조용히 있었고, 마찬가지로 알파­1은 계속 불안한 증세를 보이며 덜덜 떨고 있었다.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한 것을 보아하니 상태가 다시악화되기시작한것처럼보였다.

어떻게해야 할까.

고민을 하던알파­3은 이내 지시를 내렸다.

"일단, 슬슬 자리를 옮기도록 하지. 언제까지이곳에기다리고있을 수만은 없으니. 일단 자리를 옮기면서 결정하자. 결국, 천장에길을 뚫던 진압팀과 합류를 하던 이 자리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니."

지금쉬고 있는장소에서 길을 뚫는다면 그대로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 의견에는 델타­1도 동의했는지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그들이떠나려 하는순간, 이변이 발생했다.

조용하게 있던 알파­3의 단말기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조심스럽게 단말기를꺼내 들어받자 띄엄띄엄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델타….진압팀….도움…."

"델타­4? 거기 델타­4인가? 왜 알파­3의 단말기로연락을…. 아니, 지금 괜찮나? 여보세요?"

황급히 알파­3의 손에서 단말기를 뺏어간 델타­1이 애타게 불러보지만 잠깐 들린 통신 이후로 연락은 다시두절되었다.

"상부든 저쪽이든연락이 안 되는 것은 방해 전파때문이었나…? 살아있다는것은 천만다행이로군. 더 자세하게 대화를 나눴으면좋았을 텐데."

멍하니 단말기를 쥐고 서 있는 델타­1로부터 단말기를 다시 회수해온 알파­3이 말하며 다시금 연락을 시도해보았다.

분명히 연락을 받았다는 신호가 단말기에떠올랐지만, 그로부터는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델타­1 또한 같은 시도를몇 번이나해보았지만, 결과는같았다. 오히려 저쪽으로부터 연락이 걸려올 때도 있었지만 역시나 그대로였다.

"통신에 간섭하는마법인가…. 왜네놈한테 연락을 넣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살아는 있는 것 같군."

델타­1은 툴툴대고있었지만, 입꼬리에는숨길 수 없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알파­3 역시 미소를 지으며 단말기를품속에넣어두었다. 혹여나 마법이 풀린다면 다시 쓸 일이 올 수도 있을 테니.

"들려온 내용만으로는 저쪽은 진압팀을 만나러 간 것같은데…. 뭐아는 내용이라도 있나? 따로 지시를 받았다던가."

"모르는 일이다. 아무래도 가던 길이 겹쳤나 보군. 저쪽 역시 슬라임에 쫓기면서 경로가 뒤틀렸을 테니."

그들 역시 처음 설정한 경로로부터 완전히 이탈하여 이상한 장소에 도착한 만큼, 다른 쪽 또한 같은 일을 겪었을 가능성은 충분하였다.

진압팀을 만난 것을 보아 조금 더 운이 좋은듯하였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그룹이 생존해 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희망을 주기에는 충분한 소식이었다.

다들이전보다 밝아진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파­1만이 여전히 불안한 표정으로 떨고 있을 뿐이었다.

알파­3은 그런 그의 곁으로 가어깨를두드려주며 말하였다.

"일단 저쪽이 진압팀에 합류한 이상 우리도그쪽 방향으로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진압팀이 모여 있던 장소의 좌표 또한 여기서 멀지는 않으니 충분히가볼 만하다."

각 인원의보호복에 좌표를 보내주자 모두의 시야에 화살표가 떠올랐다.

새로운 이정표.

목표를 잃고 방황하던 그들에게 새로운 목적과 희망이 생겼다.

다시금 통로를 향해 나아가는 그들.

알파­3 역시 미소를 지으며 발걸음을내디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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