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9. 쌍둥이와 곰인형 (8)
* * *
49.
검은 안개는 빛과 닿자마자 사방으로 흩어졌고, 빛의 기둥은 어떤 저항도 없이 그대로 목표에 명중하였다.
그 밝은 빛에 광장이 휩싸여아무것도제대로 보이지 않는 순간,알파 팀은움직였다.
목표의 뒤를 쫓던 알파1의 중력 마법 및 좌표 교란 마법으로 대상을 고정.
광장 내부에서 기다리던 알파3이 창을 던지고.
동시에 알파2가 시위를 놓으며저격을 실시.
수백 번이나호흡을 맞춘알파팀의연계.아티팩트를사용하여 미리 공간이동을 봉쇄한 뒤, 마법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봉인, 그 이후 물리적인 공격과 마법적인 공격을 병행하여 상대가 어떤 대응 수단을쓰더라도 공격할 수 있도록하는 전략.
그들의 암살 대상의 대다수는 이 첫 공격만으로 이승을 하직하였다.
지금은델타팀의지원 폭격도 있었으니 상대가 버텼을 리가 없다. 오히려 첫 폭격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을 가능성이 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사살 격으로공격을 더 했을뿐.
빛이걷힐 때쯤폭격의 자리에서 먼지와 잔해가 섞인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시야를 가렸다.
아무래도 밖에서 건물과 인조 지층까지 모두 일직선으로 관통하며 쏜 폭격인 만큼 후폭풍이 심한 것이겠지.
헬멧에 달린 센서를 통해 감지를 시도해보지만, 어떤 신호도 전달되지 않는다.
생명도, 마나도, 움직임도감지되지않는 공허.
폭격이 남긴 뜨거운 공기만이 열 센서에 붉게 감지되어 존재감을 알리고 있었다.
"여기는 알파2, 사슴 사살확인…?!"
휘오오!
보고를 마치려던 순간, 먼지와 연기를 휘감은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산들바람처럼 살랑살랑 부는 바람은 순식간에 거친 폭풍이 되어 잔해들을 휩쓸고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지하에 이런 거센 바람이 불고 있을 리가 없으니, 역시 목표가 마법으로 인위적으로 일으킨 것이 분명하다.
이상한 마법을 사용하더니, 폭격마저 버틴 것인가.
델타4의 지원 사격은 분명알파 팀이넘볼 수 없는 수준의 화력을자랑함에도 불구하고대상의 방어를 뚫지 못하였다.
아무래도 임무가 힘들어질 것같다는 생각을 하며 알파2는 다음 명령을 내렸다.
"사슴 생존 확인. 알파1, 알파3은 자리 이탈 이후재배치·델타4는 다음 폭격 준비. 대상의 위험도준 S급으로판단된다. 따라서델타 팀전 인원 투입 준비 및 추가 지원 요청."
"확인."
"이동 중."
"델타 팀전달 완료. 목표 지점에서 합류하겠음."
알파2 역시 빠르게 이동하였다. 한 번 저격을 시도한 만큼, 이미 위치가 노출되었을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다른 저격 포인트를 향하여 몸을 옮겼다.
넓은 광장에 건물이여러 개들어서 있는 만큼, 몸을 숨길 자리는 충분하였다.와이어를사출하여 다른 건물의 옥상으로 이동하고 이내 내부로 들어간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자 빈 술병이 굴러다니는 방이 보인다.창밖으로먼지 폭풍이 보이니 창문틀에 기대어 자리를 잡기 충분해 보인다.
"알파1, 시야를 위해서 바람 제거가 필요하다. 델타4, 지원은 얼마나 걸리나?"
"텔레포트 방지아티팩트를잠시 해제해준다면 바로돌입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약 10분 정도 걸릴 것 같다."
10분.
세 명이서10분을 버틸 수 있을까? 미지의 적, 그것도 대마법사급으로 추정되는 상대에게. 알파2는 잠시 변수를 계산해보았다.
잠시 텔레포트 봉인을 푼 동안 상대가 도주할 확률. 상대가 역으로 간섭하여 좌표를 교란할 확률. 미지의 마법에 대한 파훼법.
여러 가능성을 띄우며 마침내 결론을 내린다.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라면 충분히 버틸 수 있다. 정 힘들면 도주를 해도되는 것이니.
"델타4, 최대한 빠르게 오도록.10분 정도버티겠다. 혹여라도 도주하게 된다면 표시된 방향으로 가겠다. 지도에 표시해두었다."
"확인. 조심하도록. 상대는 폭격에 전혀피해를 입지않았다."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거나 부담은 갔을 줄 알았는데, 전혀피해를 입지않았다니.
시위를 당기고창밖을보자 어느새 폭풍이 걷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알파1이 마법으로 제거했겠지.
태풍의 핵, 온갖 잔해가 널브러져 있는 광장의 바닥에 유일하게 깨끗한 곳. 그 자리에 목표가 서 있었다.
괴상한 검은 안개를 두르고 있던 전의 모습과는 달리 평범한 C급 요원의 모습을하고 있는남자.
흰자 없이 완전히 검게 물들어버린 눈과 그곳으로부터 검은 피를 줄줄 흘리는 것만 아니라면.
온몸에기이한 문자들이기어 다니며휘감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분명 보고서에는 인간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인간이라는 종족에 무언가 기괴한 것들을 더한 것만 같은 외형.
그리고 그로부터 느껴지는 기운은 전혀 정상적이지 않았다.
흑마법사라도 이런 괴이한 기운을 흘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건마치…. 관리개체들로부터 느낄 수 있는 불길함.
바닥에 검은 피가 흥건하게 고여 흐르기 시작한다. 아니, 저것은 피가 맞기는 한 걸까. 중력에 따라 흐르는 것이 아닌,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잔해들 위로 기어오르고, 뒤덮고 삼키며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불길함을 느낀다.
혈마법인가, 이 역시 미지의 마법인가. 검은색만 보아도긴장해야 하는지금 상황이 불편하다. 이래서 대마법사들을 상대하는 것이 까다롭다.
미리 정보를 알고 있다면 마법을 파훼하며 쉽게 죽일 수 있지만, 정보가 없을 때의 그들은 그 어떤 자들보다도 무서운 상대가 된다.
점차 검게 물들어가는 바닥. 목표는 움직일 생각이 없는 것인지 제자리를 지키며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캐스팅조차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바닥을 지켜 보고 있다.
일단, 바닥에 퍼지는 저것부터 어떻게 처리해야겠지. 영역 개념의 마법인 것 같은데,퍼져나갈수록덮어야 할 공간이 커지기에 느려져야할 텐데, 오히려 점점 빨라지고 있다.
"알파1, 바닥에 퍼져나가는 검은 피부터 해결해야겠다. 마력 화살로는대응이 불가능하다. 태우거나 대지를 뒤집어서 처리해야 할 것 같다. 알파3은 엄호해주도록."
화르륵!
검은 피가 퍼져나가던 도중 불꽃의 벽에 가로막힌다. 원형의 형태로 높이 솟아오른 불의 장벽은 제 몸에 닿는 피를 태우기 시작한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자 거대한 불꽃의 고리가 검은 원의 가장자리를 완벽하게 에워싼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거대한마법진마냥서서히 문양을 그리며 타오르는것이…. 마법진?!
"알파2, 무언가 잘못됐다!마법이 통제가 되지않는다! 마법을 끊으려고 해도 끊기지 않는다! 마력이 계속빼앗기…. 크아아악!"
"알파1?괜찮…. 알파3! 무슨 일이 일어났나!"
"마력 역류 현상이 일어났다! 아무래도 마법의 제어를 빼앗긴 것 같다. 일단 알파1을 데리고 조금 더 안쪽으로 후퇴하겠다."
순식간에 벌어진 참사에 말을 잇지 못한다. 마법의 제어를 완전히 빼앗는다고? 압도적으로 경지가 차이가 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일 텐데, 상대가 그 정도로 뛰어난 실력이라고?
계속창밖을쳐다보자 불꽃이 서서히 문양을 그리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검은 도화지에 그려지는 붉고 노란 도형.
점차 완성되기 시작하는 거대한마법진을보며 알파2는 마력 화살을 날렸다. 마법에 집중하고 있다면 반응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시위를 놓는 순간, 그는 고개를 들고 정확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목표의 눈을 볼 수 있었다.
검고, 검은 눈. 마치 우주의 심연이 담겨있는 듯한 눈은 그 내용물을 질질 흘리며 기이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입가로 흘러내리고 있다.
심연의 저편, 무언가가 있다.옴짝달싹하지 못한 체 알파2는 서서히 잊었던 감정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분명 훈련과 마법,약물 등의방법을 통해서 단련했음에도 불구하고, 저 눈을 바라보자 그간의 노력과시간들이모조리 부정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눈 너머로 미지의 존재가 그를 바라보고 있다. 무언가를 원하고 있다. 저 검고 검은 우물을 통로로 삼아 그를 똑똑히 바라보고 있다.
나태함과 권태감이 전해진다.세상만사에관심이 없는 듯한 감정이 전해지지만, 동시에 역설적으로 강렬한 욕망 또한 느껴진다.
식욕.
그를 갈망하고 있다.
싱싱한 육체의 피와 살점을 원하고 있다.
고기를 베어 물었을 때의 야들야들한 감촉, 입을 가득 채우는 풍부한 피와 육즙.
뼈를 쪼개어 골수를 빨아내고, 이어 잘근잘근 씹어서 가루로 만들어 버린다.
손가락 마디마디를 뽑아서 삼킬 때의 환희.
아니야, 아니야!
두근거리는 심장이 마지막으로 박동하며 생명력을 잃어가는 느낌을 기억하는가!
길디긴대장을 천천히 음미하다 마지막 끝자락까지 삼켰을 때의 아쉬움은 안타까움을 낳지.
하지만 역시별미 중의별미는바로….
[정신 오염을 확인, 진정제를 투입합니다.]
알파2는감정 없는여성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피부를꿰뚫고 들어간 차가운 바늘의 감촉과 혈관에 흐르기 시작한 약물의 효과가 발동하자 서서히 가라앉는 광기를 느끼며 상태를 점검하였다.
언제 벗었을까, 어느새 열려 있는 헬멧으로 탁한 공기가 코와 입을 통해 순환하고 있었다.
동시에 비릿한혈향이느껴져 시선을 내리자 반쯤 물어뜯겨 떨어진 손가락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제야통증이 느껴지고 참상을 멍하니 보던 그는황급히 지혈하였다.
언제나 시위를 당기고 놓던 손가락은 먼지투성이의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그 범인은 자신의 이빨이었다.
재생포션을사용하자 간질거리는 감각과 함께 절단된 단면으로부터 새 살이 돋아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손가락. 섬세한 조작을 가능하게 하던 그 손가락은 새로 돋은 것에 비하면 분명 짧았다.
그렇다면, 잃어버린 마디는 어디로 갔는가.
우욱.우웨에엑.
순간적으로 차오르는 구토감을 참을 수 없었던 그는 속을게워낼 수밖에 없었다. 헬멧을 벗었다는 사실이 이토록 감사해질 줄은 몰랐는데.
분명 치명적인 위협이 근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육체와 정신이 동시에 일으키는 요구를 참을 수가 없었다.
인간이라면 분명 버틸 수가 없을 것이다. 그토록 훈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역겨움은 거부할 수 없는 수준의 것이었다.
겨우겨우 멈추고창밖을쳐다보자 여전히 그를 쳐다보고 있는 시선을 볼 수 있었다.
분명하게 느껴지는 존재감이 목표와 겹쳐 기괴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그리고 목표는 그를 바라보며 분명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주 환하고 밝은 미소를.
"제물을바치는 입장에서제물이 된 기분은 어떤가?"
그를 조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임무는 이미 실패했다. 정보의 부족, 방심, 잘못된 판단. 이유는 다양하게 뽑을 수 있었지만, 좌절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지금 얻은 새로운 정보의 가치.
보호복에내장된장비들과 마법으로 목표에 대한 정보를 저장하고 전달하였고, 이는 실시간으로 분석되어 대응 방법이 연구될 것이다.
어쩌면당장의임무에 지원이 더 투입될 수도 있고.
그것은알파 팀에게달려있겠지. 지금 당장 목표가 겪은 것들만으로는 그들의 정체를 특정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이곳에서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는반란자들의 일부로만인식하겠지. 의심은 할 수 있더라도 확증은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생포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대마법사 수준의 마법은 아무리 훈련되어 있더라고 하더라도 그들의정신 방호를뚫고 정보를 얻어낼 능력이 충분하다.
임무를 위해 자결할 것인가, 아니면 도주를 선택할 것인가.
알파1과 3은 이미델타 팀과합류를 하기 위해 떠났지만, 그의 경우는 애매했다. 이미 상대의 공격에 정신이 침식된 이상 마법에 당했다고 볼 수도 있으니.
여전히 자리를 지키며 미소를 짓고 있는 목표물의 모습이 보인다.
불꽃과 어둠으로 이루어진 거대한마법진은마침내 광장 전체를 잠식하고 있었고, 서서히 마력이 줄기줄기뻗어 나가며공간을 침식하기 시작한 것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마법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발동하기전에 선택해야겠지.
임무 도중에 죽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그 순간이 닥치니 망설임이 일어나는 것에 조금은 놀랐다.
감정을 모두 억제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이 또한 상대의 마법이 영향을 준 것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조금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마지막은 인간답게 죽을 수있지 않은가.
"여기는 알파2, 임무는 실패했다.CODE1에따라 명령권은 델타1에양도한다.알파 팀은이후델타 팀에합류하도록. 정보는 전달했으니 상부의 지시를 기다리도록."
마지막 말을 전하고, 통신을 차단한다. 이미 감청되었을 수도 있지만, 이제부터는 추적할 수 없겠지.
마지막 미련과 망설임을 버리고 보호복에 내장되어있는 자폭 장치를 가동한다. 발동하면 보호복과 함께 그가 존재했다는 흔적조차 사라지겠지.
알파1, 알파3. 뒤를 부탁한다.
꾸욱.
[자폭절차가동.]
알파2는 강렬한 불꽃이 그의 몸을 휩싸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고 정신을 놓았다.
***
...
...?
여기는 어디지?
분명, 자폭 장치를 가동하고 죽었을 텐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둠 속에 있었다.
설마목표에생포 당했나.
몸을 움직여 보려 하지만 어떤 감각도 느낄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알파 팀은? 임무는? 설마 회수팀이 도착해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할수 있다는 것만으로도실낱같은희망을 품게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하일은 쓴웃음을 지었다.
흠칫.
미하일? 나는 분명 알파2….
"정신을 차렸나?"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울려 퍼지자혼란은 사라지고 순식간에 경계심이 차올랐다. 죽기 직전 들었던 목소리. 희열과 광기가 가득한 목소리는 현재 정반대로 차분하고 잔잔하게 그의 귓가에 울리고 있다.
"무슨 짓을한 거지?"
미하일은, 아니, 알파2는, 아니.
뒤죽박죽 섞인 기억에 머리를 붙잡고 싶었던 미하일2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신체와 현재 상태에 의문과 미지의 감정을 느끼며 질문하였다.
"제물을 바쳤지. 너는 영광스러운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고."
서서히 울리는 목소리와 퍼져나가는 불안감. 미지의 감정은 더욱 그의 정신을 흔들기 시작하였다.
"아아, 위대하신 존재여. 이 미천한 존재의 제물을 받지 않으시더라도 의지만은 받아주셨도다! 내 공로가 헛되어지지 않도록 새로운 존재에게 제물을 대신 바치도록 하시다니, 얼마나 자비롭고 자애로우신 분인가! 찬양하고, 찬미하라!"
분명한 광기가 느껴지는 어조로부터 미지의 감정이 무엇인지를 서서히 떠올리기 시작하였다.
공포.
이름을 잊고, 감정을 잊고, 과거까지 잊으며 임무에 투입되었던 미하일은 가장 되찾고 싶지 않았던 것을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육신을 탐하고 정당한 대가를 내려주시니! 수면에서 깨어나 신도에게 지식을 선사해주시는 분이여! 위대하신 존재께서 당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을 허가해주셨습니다! 첫 번째 제물을 바치며 간청하옵니다! 포식하시기에 합당한 제물들이 제 발로 걸어들어오니, 부디 나약한 신도에게 힘을 베푸소서!"
"너는 미쳤군. 흑마법사였나? 아니, 분명그때보았던 것은 다른 차원의 존재였어. 요원과 시설의 목표마저도 잊은 것인가?"
미하일은 차오르는 공포심을 억누르고자 말을 걸어 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의 종류였다.
"아아, 나는 문을 통해 진리를 엿보았고 그것은 오로지 자비심으로 이루어진. 나는 그 날 죽었고, 다시 태어났으며 삶의 목표를 찾아내었다. 위대하신 분이 바라시는 것을 이루겠다. 찬양하고, 경배하라!그분께서나를 지켜보신다! 나를 보았다!흡족해하셨다! 나는, 이루어졌다!"
더는억누를 수 없는 공포심이 정신을 지배한다.
저놈은미쳤어! 인간으로서의 본질조차 잊은 것이 분명해! 나는이러려고요원이 된 것이 아니라고! 이런 놈을 상대해야 할 줄은 몰랐단 말이야!
희번득.
무언가가 그를 직시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찾아오는 압도적인 고통.
으지직.으적.
생살이 뜯겨나가는 감각에 비명을 질렀지만,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고통과 공포. 어둠과 절망.
"새로운 존재께서대답하셨다. 오랜만에 흥미로운 광경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제물까지 바쳤음에 기뻐하셨다고 말씀하셨다. 특별히 너에게도 자비를 베풀어 주신다 하시니, 감사하고 경배하며 지켜보도록."
어둠이 걷혀나간다.
아니, 끈적한검은색을 띤부정형의 무언가가 그의 몸을 으스러뜨리고 있었다. 단지, 시야만이 해방되었을 뿐.
시야가 해방된 것이 맞나. 그의 눈에 들어오는 광경은 눈만으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깊디깊은지하 동굴. 그 광활하고 구부러진 통로들 사이에 괴생명체들이 보인다.
붉은 털이 몸을 덮고 있는 인간처럼 보이는 괴물들이 개들이 짖는 듯한 목소리로 울고 있다.
뱀의 머리를 한 인간형 생명체들이 구불거리며 누군가를 경배한다.
검은색.
끊임없는검은색의 파도가 동굴 내부를 물결치며 이동하고 있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분명하게 살아있는 것들이 기괴하게 움직이며 동굴 내부의 미세한 틈들조차 메워간다.
그리고 눈에들어오는 거대한 건물.
신전.
분명하게 섬기는 대상이 존재하는 신전은 인간의 뼈와 살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니, 살아있는 것일까.
기둥에 박혀있는 눈알이 깜빡거리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시야는 어느새 신전 내부의 광경을 비추어간다.
동굴에 보았던 존재들이 엎드려 경배하고 있는 곳. 반쯤 눈을 감은 무언가가 천천히 거대한 입을 우물거리고 있다.
그 모습은 두꺼비를 닮았나. 입 밖으로 튀어나온 기다란 혀에는 붉은 혈액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흰색의 무언가가 튀어나온 입.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인간의 팔이었다. 그것도, 아주 익숙하게 보이는.
나의, 팔.
거대한 존재의 감긴 눈이 열리며 시선을 마주한다. 나태한 눈초리에는 한 줄기의 흥미가 들어있는 듯이 보인다.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을 느끼자 몸을 쳐다보려 하지만, 그저 검은액체 같은것밖에 보이지 않는다.
"네가 그놈이 바친 녀석이로군. 흥미롭군, 흥미로워. 다른 세계의 인간이라. 내게서 벗어난 권속들이 느껴져 잠에서 깨어났더니 이런 광경을 마주하게 될 줄이야."
나무늘보와 박쥐를 닮은 듯한 모습. 짧은 털이온몸을덮고 있는 그 모습은 너무도 거룩하며 동시에 역겨움을 자아냈다.
저 존재였다.
분명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던외차원의존재.
그의 몸을 탐스럽게 바라보던 시선. 압도적인나태감과식욕이 느껴지던. 그리고 지금그의 육신을 먹어치우고 있는.
으드드득.
다시 한 번온몸이뒤틀리며 고통이 찾아온다. 아래위로 천천히 음미하듯 움직이는턱 안에는분명 그의 몸이 있겠지.
어떠한 연유로 그가 이렇게 바깥에서 그 광경을 바라볼 수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목소리가 말한 것처럼자비심으로부터온 것은 아닐 것이 분명하다.
이딴 것이 자비라는 것은말도 안 된다.
"그리 생각하니 심히 안타깝군. 귀찮음을 무릅쓰고 분리해주었더니.허나오늘은 기분이 좋은 날이니 용서해주도록 하지. 필요 없어졌으니 이제 돌아가라."
압도적인 고통과 함께 시야가 점점 멀어져간다.
구불구불한 동굴의 통로를 따라 움직이는 시야. 그 거대한 동굴의 속에는 이전에 보았던생명체들뿐만아니라 인간들 또한 분명 존재하였다.
모두 사지가 분해된 상태로 뜯어먹히고 있는 신세였지만.
곳곳에 그가 대화를 나눈 존재가검은색의형상과 조각상들로 새겨져 있었고, 괴물들이 그것을 섬기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시야는 점점 멀어지고, 이내 동굴을 완전히 벗어났다.
붉은 평야와 폐허들이 보이고, 파괴된 도시와 괴물들의 모습이 보였다.
더욱 멀어지는 시야에는 마침내 거대한 대륙이, 그리고 푸른 별이 검은 우주 속에 박혀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시야는 광활한 우주를 여행하다 마침내 멈추었다.
거대한 행성.
구체를 수많은 고리가 감싸고 회전하고 있는 광경.
행성보다도 거대한 고리가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는 그 광경에서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정신은 순식간에그곳으로빨려 들어간다.
점차 어두워지는 시야는 마침내 완전히 암전하였고, 오로지 고통과으적거리는소리만이 그의 정신을 잠식하던그때,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내 마법을 사용하던이계의마법사가 말한 영혼이군. 아주 흥미로워.그분께서관심을 가지실 만 하군. 이렇게보내야 한다니,아쉽…. 호오, 그런가.그분께서아주흡족해하셨나 보군. 그렇게하겠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 분명, 상대는그놈이겠지. 서서히 흩어지는 정신을 붙잡고 질문을 던진다.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분명, 죽음을 겪은 것이 확실한 미하일은 다시금 찾아오는 그 압도적인 공포를 억누를 수 없었다.
불안감과 걱정이 가득한 채 애원하는 목소리로 질문을 던진 그에게 들려오는 목소리.
"그래,그분 께서도자비를 보여주셨고 나 역시 오랜만에 흥미가 들었으니 나 또한 자비를 베풀어주지. 자, 보아라. 너의 마지막을."
그가 죽었던 광장.
화염과 어둠으로 이루어진마법진은빛나며 발동하고 있었고, 광장의 광경은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래, 그가 보았던 광경. 어두운 동굴과도 비슷한 환경으로변질되어있었고, 그 중심에는 미소를 짓는 로브의 사내가 서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마법진의불빛이 가라앉더니, 어둠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검은색의 액체가 스멀거리며 흘러나온다.
광장의 잔해도,마법진의불꽃도, 모든 것을 먹어치우며 파도처럼 나아간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검은 물결에 압도적인 공포감을 느낀다.
"너와 너의 동료들은 모두그분의제물이 될 것이다. 육신은먹히지만, 영혼만은남겨지겠지.그쪽에서영혼을 다루는 자를찾아야 하니남겨달라고 하더군. 뭐, 쓸모가 다해지면 달라지겠지만."
차분한 어조로 설명하는 내용은 절망스러운 내용이었다.
지금 그가 본 광경을 대적할 수는 있을까? 정보조차 알릴 수 없는 신세지만, 이번만큼은 알리지 못하는 것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알게 된다면, 희망을 잃을 것이 분명하기에.
"저마법진의발동에는 내가 도움을 좀 주었지. `마나`라는 개념이 신기하기도 했고.사이크라노쉬의고리처럼 잡아놓은 형태도 인상깊었지만, 무엇보다도내가 만든 마법을 응용하고 변형하여 더욱 발전한 형태로 만들어낸 실력에 감탄했지.이계의지식은 참으로 아름답고도 달콤한 과실이구나. 한계에 부딪힌 나를 위해서그분께서이런 축복을 베풀어주셨도다.은카이의수면자시여, 영원토록 군림하소서."
중얼거리며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설명하는 목소리에서도 압도적인 광기가 느껴졌. 그를도와주었을지언정호의로부터 나온 도움이 아니었다.
그래,무얼 바랐는가. 칼을 든 자는 칼로 망하고, 수많은 요원의 목숨을 앗은 그 역시 요원에게 죽게 되는 운명이었겠지.
허나괴물의 먹잇감으로, 제물이라는 신세로 뜯어먹히는 결말은 아니었다. 영혼마저 물건처럼 다뤄지는 처지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지만 어떠한 소리도새어 나오지않는다.
오로지 제 육체만이 살아있는 채 먹히는 소리만이 정신을 갉아먹고 있을 뿐.
"이계의영혼이라…. 너는어떤 지식을 보여줄까."
흥미가 가득한 목소리를 들으며 압도적인 공포와 절망감과 함께 알파2는 마침내 정신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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