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8. 시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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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문이 열리면 푸른 머리를 가진 엘프가 들어온다.
시설의 제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은 그녀. EX등급 요원, 레이나.
레이나는신님의 방을 떠나면서 제복으로 갈아입고 가겠다고 전했지만,타가할린은조금이라도 더 빨리 그녀를 만나고 싶었기에 거절하였다.
방으로 걸어들어온 엘프는 당당한 모습으로 그녀의 앞에서 경례의 자세를 취했다.
"EX등급 요원 레이나가 최고 관리자를 뵙습니다."
"반갑네. 여러 섹터를 관리하는 최고 관리자타가할린이라고하네.마탑에서는외부 고문을 맡고 있지."
그녀의 인사를 대충 받아주고 자리에 앉으라 손짓한다. 격식을 차리는 것을신경을 쓰지않는 그녀로서는 예법은 그저 귀찮고 시간만 먹는 행동일 뿐이었다.
자리에 앉은 푸른 머리의 엘프를 바라본다. 숲의 종족아니랄까 봐그녀는 정말 아름다웠다.
그녀보다도 나이가 더많을 텐데어떻게 저런 피부를 가지고 있을까.잡티 하나없는 새하얀 피부를 보며 부러움을 느낀다.
`아니, 이게 아니지.`
잡념을 지우고 본론을 꺼낸다.
"그대가 No.166과 이성적인 대화를 나누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네, 맞습니다. 이성을 가지고 있으며 인류에게 호의를 가진 존재였습니다."
레이나의설명을 듣자 경계심이 더욱 높아진다.
`그 괴물이 인류에 호의를 가진다고? 레이나 요원에게 그런 식으로 정보를 전달한 이유가 무엇이지?`
타가할린이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해보지만, 역시나 166은 너무나도 비정상적인 존재라는 결론밖에 내릴 수 없었다.
긍정하자니 이해를 할 수가 없고, 부정하자니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이 주장을뒷받침해준다.
모두를 기만하는 연기를하는가정 또한 떠오르지만 무시한다.
초월적인 존재가 굳이 인간을 속여가며 얻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 그녀가 166이었다면 오히려 인간을 지배하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호의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일에는 최초가 있지만, 그 최초의 일을 겪고 판단해야 하는 역할을 그녀가 맡았기에 더욱골치가 아픈일이다.
인간은 논리적이면서 비논리적인 생물이다.
실패만 하던 사람이 한 번 성공하면 대단한 일을 했다는 듯이 치켜세우지만, 반대로성공 가도를 달리다단 한 번의실패를 겪는다면 무자비하게 깎아내린다.
타가할린은완벽한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보았을 때는단 한 번의실패도 하지 않고 맡은 일을 모두성공한영웅같은존재로 보인다.
그녀의 처세술과 연기력.본신이지닌 강력한 힘과 지식. 모든 것들이 조합되어 사람들이 열광하는 존재로자신을 스스로포장하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가 쌓아올린 역사가 도로 그녀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수백 년의인생 중가장 중요한 순간.
그녀가 직접 만난 모든존재 중에가장 강력하면서도 기괴한 대상의 행동을 예측하며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나가야 하는 상황.
`차라리 악마 대공을 대하던 때가 나았어. 최소한 그에 대해서는 조사라도 할 수 있었지.`
결국, 돌고돌아서 정보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정보가 있어야지만 상대를 파악할 수 있다. 상대를 파악한다면 의도를 예측할 수 있고, 나아가 행동을 분석하며 미래를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는 정보가 없는 상태로 만나게 되면 매우 위험한 존재. 목숨보다 더한 것도 잃을 수 있는 상대이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
위험도를 낮추기 위해 정보가 필요하지만, 그 정보를 얻으려면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
그런 면에서레이나는한 줄기의 희망이되는,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완벽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위험은 그녀가 대신 상대하고, 양질의 정보를 가져다줄 수 있는 존재.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유일한 존재로서 그녀가 지닌 가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겠지.
괜히데우스가은폐하려고 하던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격을 낮추는 행동까지 하며 시설을 관리하는 이단아. 얼마나 오랫동안 시설에 있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관리자.
그녀가 전대의 관리자에게 직위를물려받을 때도, 전대의 관리자가 사망한전전 대의관리자에게 물려받았을때에도데우스는시설의 최고 관리자 중 한 명이었다.
자신의 격을 버려가기까지 하며 이루려고 한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166을 중심으로 일어난 정보전을 통해 그가 이 촉수 괴물을 아주중요시하고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과거, 많은 자원을 소모하고 인력을 갈아 넣어서 얻은 정보가 고작레이나라는요원과 친분을 꽤오래전 부터쌓아왔다는 것이었을 때에는 얼마나 허탈했는지.
마석으로성을 쌓을 수 있을 정도의 재물이갈려 나갔는데도저한 줄의정보만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지금 와서생각하면 그가 그 시절부터 착실히 계획을 쌓아 왔다는 점에 오히려 소름이 돋는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166의 최초 소환 의식에도 관련이 있는 걸까.
레이나라는존재는 어떤 존재인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레이나의소속이겠지.
데우스의휘하에 있다면 협상은마탑을기준으로 대등한 관계에서 진행될 것이다. 오히려 유리한 입지를 차지할 수도 있다. 마법사 인력은 언제, 어디서나 부족하니까.
하지만 그녀가 No.166의 `대리인` 신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모든 것을 166을 기준으로 삼아 협상을 해야할 테니.
마나라도읽을 수 있으면 감정이나 생각도어느 정도읽어내어 손쉽게 이끌어나갈 텐데.
타가할린은레이나를 휘감고 있는 알 수 없는 무언가로부터 꺼림칙함을 느꼈다.
완전히 차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로 애매하게 흘리고 있는 형질이 괴상하다.
마법을 이용하는 것도, 마나를 운용하는 것도 아닌 말 그대로 알 수 없는 다른 무언가를 통해서 이루고 있으니 답답한 마음이들 수밖에 없는것이다.
역시 그녀는 166 아래에 있는 것인가.
데우스가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라면신성력과어떻게든 관련이 있는 기운을 사용했겠지.
지금 느껴지는 기운은단 한 번도겪지 못한성질을 띠고있다.
정신 보호막을 실시간으로 갉아먹고 있는 공격적인 기운.
낮은 수준의 마법사였다면레이나라는존재를 본 것만으로도 미쳐서 죽었을 것이다.
고민하며 조심스럽게 말을꺼내 든다.
"자네가 No.166과 대화를 나눈 것은 사실이겠지? 설마 모종의 방법으로 세뇌되거나협박받아서말하는 것은 아니고?"
일그러지는 그녀의 표정과 공기를 떨리게 하는 감정을 통해서 거의확신을 가질수 있었다.
인간은거짓말을 할수 있지만,마나는거짓을 발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기의 마나가 떨릴 정도로 강렬한 감정의 파동. 166이 무엇을 했길래 그녀가 이런 감정을느끼는지 궁금해진다.
`설마 금단의 사랑 이런 것은 아니겠지?`
문득 떠오른 망상을 지워버린다. 저런 괴물과 사랑이라니, 도색 서적을 최근에 너무 많이 읽었다.
그렇다면 역시, 무언가 은혜를 입었겠지. 엘프라는 종족은 은혜를 배로 갚는 성질이 있으니.
보통은 원한을 배로갚을 텐데, 평화로운엘프들은원한은 잊으려 노력하고 은혜를 받으면 배로 갚는다.
멋모르는 어린 엘프는 사기꾼이 가장 선호하는 먹잇감이라고 할 정도로 순진하다.
`그녀 역시 무언가 큰 은혜를 받았을 것이 분명하고, 자신의 은인을 흉보았으니 나의 직위조차 무시하고 불쾌감을 표출하는 것이겠지.`
"음, 미안하네. 관리자라는 직위는 정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기에. 하지만 질문은 배려심이 없었다고 생각이 드는군. 다시 한 번 사과하도록 하지."
잘못을저질렀을 때는최대한 빠르게 사과하는 것이 좋다. 진심이 담겨야 하겠지만, 진심이 담기지 않더라도 일단 사과는 박고 보아야 한다.
자존심을 낮추고, 먼저 사과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처세술이다. 자연스럽게 반감을 사지 않으면서 상대를 배려해주고 있다는 뉘앙스까지 풀길 수 있으니.
상대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고, 동작까지 세련되게 취하면 효과는 배가 된다.
사과가 효과가 있었는지 그녀의 감정이 많이 누그러진 것을 느끼며타가할린은다음 말을 조심스럽게 선택하였다.
"혹시 No.166에게무언가 도움을 받았는가? 자네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이 예상외로 강렬하군."
그녀의 말을 들은레이나의얼굴에 순간적으로 당혹감이 스치는 것을확인할수 있었다.
`역시, 중요한 것을 받았음이 분명해."
D급 요원의 경우처럼 그녀 또한 166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성장할 기회를 얻었겠지. 그녀 정도의 강자라면 경지를 넘어서는 벽이 까마득하게높을 테니, 평생을 걸쳐서라도 갚은 은혜일 터.
타가할린은깨어지려는 가면을 간신히 붙잡고 버텼다. 아직은 대외적인 시선을 챙겨야 한다. 아직은.
EX등급의 요원이라면 특기가 강하거나 경지가 매우 높은요원일 텐데, 166은 그런 존재마저강화할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가9서클의벽을 뚫을가능성이 크다는것이고.
마음에 최대한 여유를 가지려 노력하며 진정시키려 하는타가할린. 언제나 차가운 이성의 가면을 쓰고 생활해온 그녀조차무너질 뻔할정도로 유혹은아찔했다.
레이나가 꺼낼 말을 기대하며 그녀를 쳐다본다. 다음 나올 말에 그녀가일희일비하게되겠지.
아까의 당황한 얼굴은 사라지고, 타오르는태양과 같은뜨거운 열정이 느껴지는 표정으로 그녀가 대답했다.
"네, 평생을 걸쳐서 갚아야 할 은혜를 입었죠. 그는 분명, 저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좋았어!`
마음속으로환호성을 지르며타가할린은마법으로 찻주전자와 찻잔을 소환한 뒤에 우아하게 차를 마셨다.
아무래도 지금의 감정은 약물을 통해 진정시키는 것이 아닌 이상 억누르지 못할 것만 같았다.
"자네가 받은 것을 나도 받을 수 있는가?"
흠칫.
순간적으로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다 사라졌다. 그 부정적인 감정의 격류에는 희미하지만 살기마저 감지할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살기는 좀 심하지 않았나.`
아무리 그녀가 격식을신경을 쓰지않는다고 해도, 살기를 표출한 것은 선에 걸쳐져 있는 행동이었다.타가할린이참을 수 있었던 것은 역시나레이나의입장이나 혹시 모를 오해 때문이었다.
살기까지 표출했던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더니 밝은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제가 받은 것을 받을 수 있는 존재는없습니다…. 하지만다른 것은 받을 수 있겠지요."
`강화에는 단계의 차이가 있는 것인가. 혹은 내 경지를 얕보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군.`
같은 방에 있지만, 서로 다른 생각과 다른 목표를 가지고같은존재에 대하여 두 여인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
어우, 깜짝이야.
저 최고 관리자에게 질문을 받자마자 순간적으로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져서 깜짝 놀랐다.
불구대천의원수처럼그녀에게 감정을 표출하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했다. 대체 뭐라고말했길래.
[진정해 레이나. 그녀가 뭐라고 했길래 이토록 강렬한 감정이 느껴지는가.]
[... 신님에게서 제가 받았던 것을 자기도 받을 수 있는지에관해서 물어보았습니다.]
아.
오해가생겼구먼.
지금까지의 얘기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마법적인 지원을 받고 싶어하는 것 같다. 슬라임들 덕분에직접적으로사람들을강화할수 있게 되었으니.
마법에 완전히 문외한인 나에게 다른 것을 바라고 온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잘 찾아왔다. 이루어질 거래는 쌍방으로 큰 이득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레이나는사도의 자리를 노리나 싶어서 공격적인 반응을 보인 것 같다.
다른 것은 모르지만, 내신성력이나신도와사도같은면에서는엄청나게민감하게 반응한다.
아무래도 그녀를 구원하게 되면서 이렇게 된 것이겠지.
그녀가 오해한 것을 전달해주자 놀라움과 감사의 마음이 전해진다. 그녀가감성적이기보다는그저 나와 관련되어 있으니 흥분하는 것이다.
남자 앞에서 여자친구를 흉보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예상이 되지 않는가.
지금 상황이 딱그런…. 예시가좀 이상한데. TS를 보는 것은 좋지만, 내가 TS 되는 것은 싫다.촉수 괴물하고말지.
그녀와 소통이 되는 점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느낌과 동시에 약간의 꺼림칙함을 느낀다.
하필이면 이런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능력을 각성한다고? 우연이라 하기에는 나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유리한 상황이라 누군가 안배해둔 것이 아닐까 의심이 된다.
신성력과관련된 것이라면 아무래도리리스겠지.으득.개 같은년.
그년만 아니었어도릴리트에게더 자주 연락을 시도하거나선물을 받은로자리오를더 신중하게 다뤘을 것이다. 하지만리리스가엮여있다 보니꼴도 보기 싫은 아이템이 되어버렸다.
릴리트에게미안해지네. 다음번에 연락할 때에사과해야겠다.
무언가 릴리트와 대화할 내용이 점점 많아지는 기분이다.여전히 연락되지않는 그녀가 무엇을 하고있을지궁금하다.
그러고 보니신성력이강화되었다면, 그녀에게 잘라준 촉수와도 연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신성력을따라 감각의 링크를 시도하지만잘되지 않는다. 내신성력보다도리리스년의신성력이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짜증이 나지만어쩔 수 없지.리리스를섬기는 성녀인데 당연히 그 년의 힘을 사용하겠지.
그래도 미약하지만 약간의 감각을 느낄 수 있어서 활성화 시켜본다. 그녀의 방이 어떻게생겼으려나?
그런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검게 물든시야. 초월적인 시야를 모두 사용할 수 있다면야 문제가 없겠지만,끊길 듯말듯 하는감각으로서는 미약한 인식밖에 할 수 없었다.
다른 감각을 펼쳐보자 역시 애매한 상황이었다.
따뜻하면서 축축하다. 동시에 여자 특유의 밝은 냄새가 난다. 호르몬을 내 몸이 감지한 것이겠지?
처음만났을 때도향수 냄새를 맡은 적이 없으니, 아무래도 그녀의 체취가 묻어있는 곳. 즉, 그녀의 방에놓여있나 보다.
바깥의 날짜라던가 시간을 알 방법이 없으니 확정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로 어둡다면 아무래도 한밤중이거나 어디서랍 같은곳에 넣어놨겠지.
미각이나 청각은 발동조차 하지 않아서 의식을 거둔다. 뭐, 잘 보관은하는것 같다.
신성력을한 바퀴 돌려보자 오히려 약간 성장한 촉수의 모습을 감지할 수 있었다.
상념이 길어졌다. 이거 참 문제야. 하나를 생각하면 다른 것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또 이어지면서 쭉쭉시간 가는줄 모르고생각하게되는 것.
사실상그린 위키를몇 시간씩이나탐구하게되는 현상과 비슷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후.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레이나에게의식을 돌린다. 언젠가는 그녀가 말하고 듣는 것 또한 같이 느낄 수 있겠지.
지금은 그저 그녀에게서 전달받는 감정을 통해서 대화의 흐름을유추하는 수밖에 없다.
말이 길어지고 있는지 그녀가 나에게다시 연락하지않는다. 않는 것일까, 못하는 것일까. 감정을 봐서는 못하는 것이다.
당혹감과 지루함이 느껴진다. 뭐 설교라도 하고 있나.
레이나에게대답이 들려오는 것을 기다린다. 솔직히 그녀의 능력에 신뢰가 가지는 않거든.
육체적인 강함이야 잘 알지만, 조금 이상한멘탈과감성을 지닌 그녀가 과연 정치나 거래를잘할까.
하염없이 그녀의 말을 기다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레이나에게연락이 왔다.
"거래는 잘성공하게 했습니다."
???
무슨 짓을한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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