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7. 공포란, 무지(無?)로부터 온다. (5)
* * *
33.
바닥으로 촉수를 내려놓자, 조심스럽게 이동하는 슬라임을레이나의시선이 쫓는다.
꾸물꾸물. 슬쩍. 꿈틀꿈틀. 슬쩍.
귀여운 슬라임과 귀여운레이나의표정을 보고 있으니 나의 마음이 덩달아 따뜻해진다.
"참으로 귀여운 미물이 아닌가?"
이유는 모르겠지만사념파는언제나 제멋대로의 말투로 바뀌어서 나온다. 이런 고풍스럽다고 할까 오글거리는 말투는 쓰고 싶지 않은데.
뭐, 나름 지금의 내 존재와 어울리는 감도 없지 않아 있다.어린아이의상상에서나 나올 것 같은 괴물이니.
툭.
바닥을기어 다니던슬라임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요원의 신발과 부딪힌다. 꿈틀거리며 관찰한다.
우둑. 우두둑.
매끈하게광이 나는군화는 피와 살점으로 더럽혀 있었지. 마치 지금과같이…?
날카로운 이빨이 자란 슬라임이 으적으적군화 채로발을 씹어 먹는 광경에 멈칫한다.
레이나 역시 경악한 시선으로 슬라임을 바라보더니 나를 노려보기 시작한다.
"네. 정말. 귀엽네요. 신님."
...검은 피로 적힌 마도서에서 나온 것이 정상이라고 판단한 5분 전의 나 자신을 때리고 싶다.
흘러나오는 피까지 깔끔하게 처리한 슬라임은 다시 바닥을뽈뽈기어 다니고있었지만,더 이상귀여워 보이지만은 않았다.
일단 다른 놈에게도 피해가갈까 봐촉수로 집어서 다른 촉수 위에 올려두었다. 그래도 내 몸은 안 먹네.
한숨을 쉬며 사라진 발목에 점액을 뿌리자 붉은 단면이 부글거리며 재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이런 슬라임이 흔한 것은 아니지?"
"이빨이 생기고 사람을물어 뜯어먹는슬라임에 대해서는 시설에서도 본 적이 없네요.축하드려요. No.1661, 새로운 관리체가 생기셨네요."
윽. 역시나 평범한 슬라임이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혹시나는역시나였다.
아니, 저 요원이흑마법사 같은것일 수도 있잖아!흑마법은피랑 살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당연한 거고!
들리지 않는 변명을 하며 촉수로 대검과 마도서를 내려둔다.뾰로통한표정을 짓던 레이나가 대검을 보며 눈빛을 반짝이더니 마도서를 보자 얼굴을 찡그린다.
역시. 저게 문제가맞나 보네.
"이 마도서는꺼림칙한기운이 느껴지네요. 주인님과 비슷하지만, 다른 느낌."
조심스럽게 마도서를 집은 그녀가 표지를 살핀 뒤에 펼쳐서 읽기 시작한다. 어, 잠깐만! 읽으면안 되지!
놀라서 책을 그녀의 손으로부터 강탈해갔다. 순간적으로 벌어진상황을이해하지 못했는지 그녀의 표정에 의문만이 가득했다.
"...이 책은 위험할 수도 있다. 아까 저 쓰러져있는 요원이 미쳐 날뛸 때 자신의 피로 글을 적었었지."
구체적인 내용은 잔인하니 생략해준다. 이 얼마나 배려심 넘치는 신인가. 비록 그녀가 나이가몇십 배나더 많고, 더 심한 광경을 보았을 수도 있지만.
"제목이4서클입문 마도서인데요?"
"음?"
촉수로 가린 뒤에 책을 펼치며 페이지를 넘긴다.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적힌 글이 쭉 나열된다. 평범한 글자.
사라락.사락.
더 빠르게 페이지를 넘긴다. 뭐야, 생각보다평범한….
흠칫.
촉수가 멈추었다. 글자를 읽는다.
[... 이렇게3서클을떠나,4서클에입문한 독자를 환영한다. 뼈대를 갖추었으니 살점이 필요한 법. 필자가 집필한 다음 서적,4서클심화 마도서를 추천한다. 레이젤]
아주 평범한 마무리. 그러나 다음 페이지로 넘기면, 돌이킬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아니 느낄 수 있었다.
촉수로 가렸음에도 불구하고레이나도어느새 표정을 굳힌 상태였다. 역시, 그녀도 느끼고 있겠지.
신경을 건드리는 저릿저릿한 느낌. 내가 흘리는 기운과 비슷하지만, 또 다른 느낌이다. 촉수 위에서 조용히 몸을 떠는슬라임뿐만아니라 분명 내 몸의 기원을알 수 있는 기회다.
레이나를 바라본다. 그녀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을까.마나와신성력을끌어올리며 대비하는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괜찮겠나?"
"네. 신님의신성력이저를 보호해줄 겁니다. 아무래도 정신적인 공격을 가하는 마도서(Grimoire) 종류겠군요. 일반적으로 마도서라 불리는 마도서적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마도서(??書)와마도서(Grimoire).
그녀로부터 전해진 단어는 같지만, 지식의 창고로부터 두 단어가 다른 것을 의미한다는 정보를 전한다.
일반적인 마법을 탐구하는 서적. 그리고흑마술적인내용을 탐구하는 서적.
느껴지는 기운으로 봐서는 그런 흑마술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두근대는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기자 끔찍한 기운이새어 나온다. 기억 속의 그 공간. 필터 없이 바라본 나의 몸. 내가 읊던 언어.
붉고 검은 피로 적혀 꿈틀거리며 기괴하게 움직이고 있는 글씨는그전페이지와 같이 알아볼 수 없었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잠깐, 아까?
전 페이지의 마지막 글자를 읽는다.레이젤. 더 전으로 가서 읽는다.
[...그리하여마나의흐름은….]
촤라락.촤라라락.
[...3서클에관한견해로는….]
[...다루드학파에따르면….]
[...참으로 대단한 견해가아닌가!...]
탁.
[4서클입문 마도서]
[저자 :대마도사레이첼/ 번역 :델릭]
읽지 못하던 언어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페이지를 넘겨 불길한 글자들을 다시 읽는다. 전의 페이지와 다른 붉고 검은 끔찍한 글자.
읽는 것이 아닌, 뇌리로 이해한다.
[에이본의 서]
에이본? 이 마법사의 이름이 에이본인가? 생각하던 도중 글자가 저절로 움직이며 바뀐다.
[의사본을 크노소스 언어로 번역한 미완성 사본,주석은 없으니참고 바람.]
...
느껴지던 불안감은 사라지고어이없는마음으로 책을 쳐다본다. 책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저절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간다.
[위대한 존재를 위하여 찬사를 올리며.]
찢어버릴까. 왠지 모르게 책이 내 사고를 읽는 듯한 마음이 든다. 실험해볼까? 검은 슬라임에 대한 정보.
휘리릭!
수십 페이지가 순식간에 넘어가고, 멈춘다. 펼쳐진 페이지의 내용을 읽어나간다.
[검은 슬라임. 형태가 없는 자손(Formless Spawn)]
[■■■■섬기는 권속. 검은 점액으로 이루어진 형태 없는 존재. 유연하고 저항력이 높으며 죽이기 어렵다. 인간의 육신을 녹일 정도의 강한 산성을 띈다. 주인의 명령을수행하는 데 필요한형상으로 모양을 바꿀 수 있다.]
레이나가 만지지 않게 해서 정말 다행이다. 내 육신은 멀쩡해서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이 책도 녹지 않았다.
책을 노려보고 있자 글씨가 바뀌며 내용을 더하였다.
[주인이 지정한 대상을 짓밟고, 물어뜯고, 품으로 우그러뜨리는 방식으로 공격한다.]
아니. 내용을 더 보여달라고 한 것은 아닌데. 마도서를 닫자괴랄한비명이 들린다. 닥쳐. 레이나가힘들어하잖아.
레이나는의외로멀쩡한 상태로 내 촉수를 쳐다보고 있다.크흠.
"아무래도 이 마도서는 위험한 물건이 맞는 것 같다. 혹시 에이본이라는 마법사에 대하여 들어본 적이 있나?"
"에이본…. 들어본적 없는 것 같네요. 저도 마법을 다루지만, 전문적인마도사에비하면 지식이 짧아서 모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역시 육체파. 하긴, 나도레이피어를그렇게 잘 다루면 굳이 마법을 파고들지는 않을 것 같다.
"괜찮다. 그렇다면레이젤이라는이름을 아는가?"
레이젤. 레이나. 가명이라던가 친지라던가그런 건가?
"레이젤은저희 세계에 가장 잘 알려지신 대마법사시죠. 마법을 처음으로 체계화시키고 정리시킨 분입니다.수백 년전에 적으신 마법학개론은 시설에서도 필독서로 권장하는 책이죠."
수백 년전의대마법사라…. 역시앞의 내용과 뒤의 내용은 전혀 다른 책인가. 하지만 읽을 수 없었던 언어가 책을 보자마자 읽을 수 있게 된 사실이 마음에 걸린다.
내 능력인지, 이 책의 능력인지. 더 자세한 것은 책을 탐구하면 알 수 있겠지.
마도서를 조심스럽게레이나의손에 쥐여준다. 그녀에게 해를 끼치면 찢어버리고 그 잔해까지 잿더미로 만들어주마.
왠지 모르게 떨고 있는 책을 그녀가 펼쳐본다. 촉수로 책의 옆구리를 찔러 특정 구간에 넣는다.
"한 번볼 텐가?"
"네."
에이본의서의 사본의 사본이시작되는 부분을 펼친다. 흘러나오는 기운에 흠칫, 움직이는 글씨에 흠칫.
움찔거리는 그녀의 모습을 즐기는 마음과 걱정하는 마음이 공존한다.
다행히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아무래도 내 사도라 그런지 이 기운에 대해 저항력이 있는 것 같다.
조심스레마도서를 읽는 그녀를 살피며 슬라임을 쓰다듬는다. 아니, 형태가 없는 자손이라고 했나.
이름이 너무한데. 무언가 이름을붙여주어야겠다. 검은색. 슬라임. 형태가 없음.
흑무.
"넌 앞으로흑무다."
부들거리며 움직이는 슬라임은왠지 모르게불만을 품은것 같았다. 왜. 뭐. 작명에 재능 없어.
"까망이할래,블랙할래, 없는 놈 할래?"
멈칫.
움직임을 멈춘 슬라임을 다시 쓰다듬는다. 그래그래. 다 이상한 이름 짓기 전에 조용히 있자.
책을 읽는 미녀 엘프, 부들거리는 괴물 슬라임, 쓰러져있는 인간 두 명, 그리고 거대한 촉수라는 기묘한 조합은 조용히 시간을 보낸다.
***
고통.
목과 어깨, 허리에서 쑤시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정신이 깨어난다.
아무래도 이상한 자세로 잠을 잔 것 같다. 윗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피자온몸이삐거덕거리며우두둑거리는소리가 난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몸을 일으키자 흰색의 천장이 보인다. 뭐지? 내 방 천장은 이렇게 새하얗지 않은데.
이 빌어먹을 시설은 온 사방을 죄다 허옇게 칠해놓아서 방에서마저 그 꼴을 볼 수는 없었기에 날을 잡고 온통새까맣게페인트칠을 했다.
룸메이트들이 욕하는 바람에 들켜서벌점 먹었지만. 검은색이 어때서? 거페인트칠하다 보면침대보나 옷에 묻을 수도 있지.까탈스럽기는.
다시 새하얗게탈색됐음에도불구하고, 천장의 불빛에 미묘하게 가린 곳에는 분명 얼룩이 남아있었다.
시설에 대한 내 반항을 의미하는 얼룩을 보며 하루를 힘차게 시작할 수 있었는데.
없다.
이건 들켰거나 내가 이상한 곳에 있다는 것이다.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펴보자 온통 새하얀 벽면들이 보인다. 의료 기구들도 보이고. 의료 기구?
몸을 내려다보니 하얀 패치와 그로부터 이어진 새하얀 선 같은 것들이 줄줄이 이어져 하얀 의료 기구와 연결되어있다.
이 씹것들은 이런 것들도 다 하얗게 칠하네. 그래도 내 갈라진 복근마저 하얗게 물들이지는 않았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얀 내복과 속옷을 들추고 가랑이 사이를 쳐다본다.
고요하게 잠들어있지만, 묵직하게 느껴지는 두 개의 감촉에 만족감을 느낀다. 음. 아무 문제 없구먼.
그런데 왜 내가 병실에 있을까. 끙끙대며 떠올리려 하지만,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분명 입이 싼법사 놈 때문에상관 놈한테벌 받던 것까지는 생각이나는데….
서서히 기억이 떠오른다.
상관과 함께 어떤 방으로 들어가고. 정신을 잃고. 일어나니 몸에 온갖 약물을 투여받는 모습.
나이들어 보이는남자와 젊은 여성 연구원이 이상한 기계에구속되어있는나를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이번 약품 부작용은 어떻지?"
"그,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나?"
"그, 서, 성기가, 더생기는…!"
얼굴을 붉히며 이야기하는 여성 요원. 하, 귀엽네. 그 얼굴로 이딴 짓을하는 것이참짜증이 나지만. 아,미레이보고 싶다.
"이실험체는원래 두 개가 달려있었다네. 자네가 이런 쪽으로 경험이 없는 것은 알지만, 실험에 지장에 가게는 하지 않도록."
"네,넵!"
"정 부끄러우면 기억 소거를 처방받던지, 아니면 색욕의 교단에 가서 도움을 요청하게. 다른 방법도 있지만."
늙은이가 젊은 연구원의 어깨를 툭툭 치며 은근슬쩍 쓰다듬는다.으, 역겨운 새끼. 그나저나 이 기계는 뭐지?
팔에 꽂힌 주사와 부글거리는 용액이 담긴 통이 보인다. 주변을 둘러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기억 속의나는 그저 앞만 쳐다보고있었나 보다.
흘러가는 기억과 지나가는 사람들. 무언가를 투여받고, 기록하고, 내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변함없는일상의 시간이 끊임없이 지나간다. 뭐야, 도대체 얼마나있었던 거지? 그러다어느 날, 변화가 생긴다.
분홍빛 머리카락이 찰랑거린다.미레이.
다급한 표정의 요원 셋과 늙은 연구원의 모습이 다투는모습이보인다.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죠? 교단에 정식으로항의하겠어요!"
"관계자 외출입 금지구역입니다. 아무리 사제님이라고 해도곤란…."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어떻게 제 남자친구를 이렇게, 아니 사람에 대한 실험을! 인체실험이 금지된 지 얼마나 오래됐는데!"
"자, 자 진정하세요. 위험한 일은 없었고, 그도 분명 동의한 내용이었습니다. 일어나면 다 설명해주실 것이니 흥분을 가라앉히고 기다리세요."
"흥,설명이고뭐고 지금 당장 여신님께 기도드려서 교단의 이름으로 정식으로 항의하도록 하겠어요."
말다툼이 이어지던 도중, 눈을 감으며 손을 모으는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던 중, 단말기가 울리자 연락을 받는 요원의 모습. 이내 입꼬리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자 알 수 없는 불안감 차오른다.
눈을 감은 그녀가 당황한 표정으로 눈을 뜬다. 어느새 그녀를 둘러싼 4명의 남자.
`설마….`
"이, 이게무슨…!"
"뭐긴 뭐야, 여신님이 인정하신 정당한 행위라는 거지."
"여신님께서도 이 실험이 옳다고 하셨군요."
"이, 이건 말도 안 돼! 무슨 짓을 한 거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요원들이 그녀를 에워싸고 말한다. 불안한 것인지 조금씩뒷걸음질 치는그녀의 애처로운 모습.
`아니, 아니야.`
"그럼, 이만 나가시죠. 실험에 차질이 생깁니다."
"방해받은 시간만큼, 아무래도 오늘은 조금 더 투여해야겠군. 아, 물론.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만."
허허 웃음을 지으며 위아래로 그녀를 핥듯이 쳐다보는 늙은이를찢어 죽여버리고 싶다.
`왜, 왜 멍하니있는 거야?`
움직이지 않는 몸, 기억에 갇혀서 허망하게 쳐다본다.신성력을일으키며 반항하는 그녀를 요원들이 쉽게 제압하여 기절시킨다.
"하, 색욕의 교단아니랄까 봐더럽게이쁘네."
"진짜 이 년 건드리면 안 되나요?"
"자, 자. 내려온 지시는 기억 삭제라네. 아쉽지만 깔끔하게 약물만 투여하고 보내주어야지. 아무리리리스님이우리 편을 들으셨다고 해도, 그녀를 내친 것은 아닐세."
"그것참아쉽네요."
축 늘어진 그녀를 바라보며 혀를 핥는 요원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마음이 미쳐 날뛴다. 이룰 수 없는 분노가 그들에게, 자신에게 넘쳐 흐르며 쏟아진다.
뿌득.
`저. 새끼들.얼굴. 다. 기억했어.`
"에휴, 그럼기억소거실로빨리 가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녀를 건드리지않는다는것일까. 아니, 못 건드리는 것이지.리리스님은순수한 사랑을비호하시는분이니.
"그런데 이년빨통정말 죽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출렁거리는 것을 달고도 안 무겁나?"
낄낄대며 성희롱을 일삼는 요원들.
"허허, 천박한 표현은 그만두게나. 이런 탐스러운 과실을 두고도 그런 어투를 사용하다니."
동조하는 연구원.
그때, 세 명의 음담패설에 참가하지 않고 조용히 있던 요원이 말을 꺼낸다.
"...그런데 진짜리리스님이벌을 주실까요?"
치솟는 불안감.
"음? 아직 그녀에게신성력은떠나지 않았네.큰일이 날소리를. 아무리리리스님께서시설을 봐주신다고할지언정, 그녀의 신도를, 그것도 고위 사제를 건드린 자를 용서하시지는 않을 것이야."
"하지만 지금 저에게 천벌이 떨어지지는 않은 걸요?"
흠칫.
"듣고 보니그러네?"
"그래,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설마 한명 한명의 신도를 전부 돌보겠어?"
"나는 분명 경고했네."
그녀에게 접근하는 요원들. 아, 안돼. 왜 몸이 안움직이냐고, 왜!!
"흐흐흐. 그럼 어디, 색욕의 교단 사제맛 좀볼까?"
안돼!!!!!!
[복수하고 싶나.]
음산한 목소리와 함께 기억이 멈춘다. 뭐야? 누구야!
[저런 놈들을 버젓이 돌아다니게 하는 시설. 지켜만 보고 있는 여신.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가?]
모조리. 사지를 찢고. 내장을 꺼내 먹이고. 성기를 밟아 으깨고. 눈알을 뽑아 터뜨리고. 불태우고. 끓이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최대한 고통스럽게 모조리 죽여버리겠어!!!
[...그래. 네가 원하는 바가 그것인가?]
그렇군. 나는 악마와계약하는 건가?법사 놈에게들었지.악마와 계약은 하는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저런상대라면. 내가 힘이 부족해서 못 막았다면!
기꺼이 계약하도록 하지. 내 영혼을 뺏기더라도. 자, 악마여 바라는 것이 뭐지?
[...나를 섬기도록. 은밀하고, 조용하게. 서서히 힘을 키워라. 깊은 곳으로부터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으며 성장해라. 뿌리가 지하를 뒤덮고, 줄기가 기둥을 휘감는 그 날. 나무가 현현할 것이다.]
너의 이름은 뭐지?
[내이름이라…. 그래. 길을 여는 자라고 할 수 있겠지. 우둔한 너희의 앞길을 밝혀주마.]
***
후,씨발.
오글거려서 촉수가 비틀려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있어 보이게말하려고 노력한 것은 맞지만, 뭐? 길을 여는 자?
어우.
끔찍한 흑역사를만든 것만같아서온몸을뒤틀며정신적인 고통을 표현하였다. 차라리리리스년이랑더 싸우고 말지.
그런데 저 요원의 기억을 보고 있자니 속이 뒤틀린다.씨발년이네진짜. 지 신도를 그냥 버린다고?
내가 세뇌하려고 일부러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게 했지만, 저딴기억을 하고 있을줄이야.
정신을 깨우기 전에 설마 설마 하면서 기억을 읽어갔는데, 다행히그 정도로구제 불가능한폐기물은 아니었다.
그녀를 건드리려한순간세 요원은 어떻게 천장을 뚫고 들어갔는지 모를 검은 빛의 벼락을 맞아 재도남기지 못한 채 바닥의그을음이 되었다.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을 암시하는 듯한어둡고 검은 번개. 묘한 익숙함이 느껴지는 번개는치지직거리는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사라졌다.
"...분명 경고했다네."
늙은 연구원만이 생존하여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그녀를 데리고 통로 너머로 사라졌다.
아마 두 요원이 받았던 조치처럼, 기억을 잃었겠지.
약물투여.
다양한 효과를 실험하는 그의 기억 속약물 중에는분명 기억을 건드리는 종류도 있을 것이다.
배출되지 않고, 끊임없이 몸속을 순환하며 평생을잊게 하는처참한 기억의 독.
그러나 그저 잃어버린신체 부위를재생시키려고 투여한 점액이 그 독을 중화시키며, 그들의 잃은 기억마저 되살렸다.
분명, 이 남자는 나를 다시 찾게 될 것이다.
기억을 잃은 그의 연인을 치유하기 위해.
나는 그 날이올 때까지,리리스에대항할 충분한 힘을 키울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신도를 빼앗아버릴 것이다.
NTR은좆같지만, 내가 하는NTL은옳은 것이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내로남불.
니 신도쩔더라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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