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했더니 촉수괴물-33화 (33/74)

〈 33화 〉 7. 공포란, 무지(無?)로부터 온다. (4)

* * *

32.

기절한 체 바닥에널브러져 있는두 요원의 발목을 휘감아 질질 끌어온다.

시설의 하수인인 이상 목숨을 붙여주는 자비 외로는 배려해줄 필요는 없다.

촉수의 벽이 열리며 두 인간을끌고 오자행복하게뒹굴거리던레이나의표정이 날카로워진다.

달래주느라고생했는데…. 시설에대한 원망이 솟아난다.

"시설의 요원이 맞네요. 제복에 새겨진 마나 반응을 보아하니 D급 요원. 이런 하위 요원을 밀어넣은 걸 보니그냥 죽으라고 넣은 거네요."

시체처럼 누워있는 두 요원을 꼼꼼하게 살펴보는레이나의모습에 조금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

"굳이 그렇게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나?어차피하찮은 인간일 뿐인데."

"흐으음?"

말꼬리를 늘리며 미묘한웃음을 띤그녀의 모습에 촉수로 머리를 콩 하고 쥐어박는다. 어딜 신을놀려대고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녀는 더욱 큰미소를 띠며말하였다.

"20점. 이유는아실 거예요. 그리고 살펴본 이유는 비정상적으로아티팩트가많이달려서예요. 이런 하급 요원들 따위에게 달아줄 이유가 없는."

아티팩트.

마법을 담은 도구로서 일회용부터 영구적인 것들까지 존재한다. 당연히 후자가 더욱 가치가 있는 법.

지구인으로서 창작물에서나 보던 개념이었지만,아티팩트를보고 마나를 느끼고레이나에게언급을 듣자 그 지식이머릿속에서이미 알고있었던 것처럼떠올랐다.

마나와신성력을얻을 때는정체 모를감으로 느낀 것이, 각성을 겪은 이후로부터 단편적인 지식이기억에서 떠오른다.

나도 모르는 기억의 창고, 아니 지식의 창고라고도 할 수 있겠지.머릿속어딘가에 존재하지만 발견할 수가 없다. 문이 더 열린다면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문에 대한 정보는 떠오르지않는 게문제지만.

문을 열어야 문에 대해 알 수 있는데, 문에 대해 알지 못하면 문을 열 수 없다.

닭과 알의 문제. 머리와 꼬리. 우로보로스.

쓸데없는 생각을 미루며 의식을 집중하자 어느새 허공에 다양한아티팩트들을둥둥 띄워놓은레이나의마법을 볼 수 있었다.

오. 저 마법은 배우고 싶은데. 염력으로 물건을 띄우는 상상은 모든 중2가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공부하다정신을 집중하면 필기구가 뜬다는 망상.그날 밤 이불을차게 되는추억으로 남겠지만.

"정신 방어, 육체 강화, 마나 감도증가, 이것도 정신 방어, 정신방어….대체로정신을 보호하는 효과가 대부분이네요. 죽으라고 보냈지만, 미쳐서 죽는 것은방지한 다라.데우스의진정한 의도가뭘까…."

곰곰이 생각에 잠긴 그녀가 집중하는 사이 허공에떠 있는아티팩트중하나를 촉수로어루만져본다. 얘 능력이 육체 강화라고 했던가?

줄이 빠진 자그마한 펜던트처럼 생긴아티팩트에는미세한 실선들이그려져 있었다. 선을 따라 마나가 흐르며 일정한 문양을 꾸준히그려대고 있다.

마법의 사용이나 효과를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자세하게 관찰한 것은 처음이다.새겨져 있는회로를 따라 마나가 흐르는 모습을 분석하고 기억한다.

여기서 이렇게연결하게 하고, 집중시켜이곳으로뚫고 지나가면.

지잉.

촉수의 가장자리를 따라 맺히는 푸른 빛 기운을 살펴본다. 인간의 시야라면 아무것도 보이지않을 테지만, 마나가 보이는 나로서는 그 흐름을 바라보며 실망한다.

마나를 다루게되고 나서 항상 사용하던 방식. 평범하게 촉수에 마나를 입히던 것과 차이가 없다. 아니,열화판이라고해야 할까.

나는 마나를 더 집중시키고 비틀고 꼬아서 압축하여 강도를 높여서 두르는데, 이 마법은 그저 평범하게 마나를 옷처럼 입힐 뿐이다.

그래도 표면뿐만 아니라 내부에도 똑같이 작용하는 것은쓸 만한 것 같네. 육체적인 강도가 높아서 강화할 이유가 없긴 하지만, 상대에 따라서쓸 만하겠지.

다른아티팩트들도살펴보며 마법을 익혀간다.이세계물의정석이자 로망이지만, 조금은 허망한 감정이다.

이미 `완성`된 육체를 가지고 있어서 굳이 마법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해야 하나.

100만을 남기는 공격력을가질 때+5라는 수치는 거의 무의미하다. 퍼센트 단위의 증폭이 아닌 이상, 저런 자그마한 고정수치의 변화는 주목할 가치가 없다.

그나마 수많은아티팩트중 단 한 개, 발화 마법을 일으키는 자그마한마도구가도움이 되었다. 아무래도 저게이세계식라이터겠지.

화륵.

자그마한 촛불을 촉수 끝에 피워 이리저리 굴려본다. 역시나 내 육체는 이런불 따위에는전혀 영향받지 않는다.

아쉬운 점은 불의 크기나 강도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일까. 분명마나의흐름이각각 무언가 의미하는 바가있을 텐데, 내가 가진 지식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지식의 창고도 반응하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각 회로에 대한 지식을 따로 알아야 하는 것 같다.

마법을 배울 수 있는 매체라도 있다면 참좋을 텐데.위키피디아 같은것은 없겠지만,데일에게받은책처럼…. 책?

그러고 보니두 인간을 끌어오면서 검이랑 책은 그대로 바닥이 두고 왔다. 촉수를 꾸물거리며 깨끗해진 참상의 장소로뻗어 간다.

바닥에 평범하게널브러져 있는검. 그리고마도서는…. 페이지를펼친 상태로 검은 부정형의 점액을 뿜어대고 있었다. 뭐지?

끈적거리는타르 같은점액은 촉수로 건드리려고 하자 놀랍게도 도망을 갔다. 도망?

어느새 열심히 꾸물거리며 바닥을 기어가는 점액이 저 멀리서 보였다.그래 봤자점액은 점액, 촉수를연장해점액을 부여잡는다.

꿈틀꿈틀!철퍽.

흐물거리며 물처럼 녹아내린 점액은 한 바퀴 둘러싼 촉수의틈으로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진 뒤, 제자리에서 진동하기 시작했다. 아니,떠는 건가?

부정형의 액체. 살아있는 것 같은 반응. 이거, 슬라임인가?

처음 봤을 때는 이상하게 여겨진 것이 슬라임이라고 생각하자 귀엽게 보였다. 제자리에서벌벌 떨고있는 슬라임을 촉수로 조심스럽게 건드려본다.

툭툭. 흠칫. 툭툭. 부들부들.

건드릴 때마다움직임을 멈추는 슬라임은 부들부들 떨며 나의 상냥한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귀여운 녀석이네. 레이나가 보면 좋아할 것 같으니 얘도 데리고 가야겠다.

마법서로시선을 돌리자 또 다른 슬라임이 보였다. 꾸물거리며 책 위에서 놀던 슬라임은 내 촉수 위에 부들거리는 슬라임을 본 것인지갑작스레움직임을 멈춘다.

꾸물꾸물!

이내 허겁지겁 책 페이지 사이로 스며들더니 사라진다. 호오. 슬라임 소환서인가?

대검과 책, 그리고 귀여운펫한 마리를데리고 아늑한 공간으로 촉수를 되돌린다. 마법보다는 이 슬라임이 더 중요하지.

부들거리는 슬라임의 촉감을 만끽하던 도중레이나의말이 들려왔다.

"신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생각을끝낸 것인지찌푸렸던 눈썹은 펴졌지만, 표정이밝아 보이지만은않았다.

"내 사도가 원한다면."

그녀가 원한다면 별도 달도 다 따줄 수 있다. 아직 촉수를 한계까지 펼쳐본 적은 없지만, 물리적으로도 딸 수 있을 느낌이다.

나중에 최후의 수단으로리리스엿먹일때 써야겠다.메테오마법(물리).

"시설로 돌아갔을 때, 조사를 받으며 관리자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죠.그중에서는신께서 이성을 가진, 안전한 존재라고 구속을 풀어야 한다는 말도 있었고. 아무래도데우스는제 말을 역이용해서 사용하려는 것 같습니다."

이어지는 말들을 들어보니 시설은거지 같은곳일 뿐만 아니라, 인권도 없는 곳이었다.

세상에, 살아있는 사람을 먹이로 던져주고, 생체 실험을 한다고? 무슨 공포 영화에 나오는빌런들이나할 짓이다. 그런 주제에 세상을 위해 일한다는 명분으로 일한단다.

심지어 내부도 정치 싸움에 적대적인 조직이니배신이니…. 개판인주제에 능력은 뛰어나서 정말 세계를 지킨다고 하네.

O.A.C.

관찰(Observe), 관리(Administrate), 제어(Control).

차원을 넘어온 물건부터 생명체까지. 모두일반인들에게알리지 않고비밀스럽게 저세 가지의단어를 목표로 삼는 조직.

다른 차원의 존재를 비밀로 하는 만큼, 관찰과 관리 및 실험하는 개체를 통해 얻은 정보부터 기술까지 모두 독점하며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흠. 아무리 들어봐도 비밀스러운빌런조직인데.

기술은 공유하는 것이 당연하게 아닌가? 지금 들어본 그들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몰래 기술을퍼다 나를수 있을 것 같은데.

`바깥`의 문명은 흔히 보던 판타지 중세 시대인 반면에, 시설 내부는 지구처럼현대화되어있다고한다. 심지어 시설의 하위 구역마다 제각각의 기술력의 차이가 있다고.

새삼 권력과 힘을 가지면 타락할가능성이 크고, 정치와 종교는가족 간에도원수지게 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그 와중에데우스라는내가 있는 곳을 담당하는 상위 관리자는리리스광신도라고.니미럴.

하여튼레이나는지금 복잡한 정치적 권력적 투쟁으로부터 떠오른태양 같은존재라고 한다.

No.166으로 불리는 나의 존재는 다른 차원까지 알려졌다고 한다. 왠지데일이찾아오더니.

규격 외의강자로서 `신`, `불멸자`, `상위 차원의 존재`등에게도 위협이 되는 뜨거운 감자.

차원 간의교류가 일어나며 시설 내부의대다수 것들은다른 차원으로부터 표류해서 들어왔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기원 되는차원도 알 수 없고, 지닌 격은괴랄 하게높은 주제에이 차원에서소환되었다고 한다.

기원도 모르는 존재를 누가, 어떤 방법으로, 무슨 목적으로소환했는지는그녀의 권한으로는 알 수 없다고 했다.

넌지시 떠본 결과데우스도모르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으니 역시 그썅년이핵심이 되겠지.

후.

"... 그래서 이 두 요원을 희생양 삼아서 제 입지를 낮추려고 하는 게목표일 거예요.데우스를제외하고 딱히 친하게 지내던 존재가 없던 만큼, 자신에게 의지하게 해서 힘을 가진 존재와의 연결 고리를 독점하려는 속셈이죠."

"속이 시꺼먼 놈이네. 그런데 너를 그런 식으로 대우하면 내가 협조적으로 나올것으로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나를 만만하게 보나?"

흑막 같은놈치고는계획이 너무 허술한데. 레이나가 정치적인 암투라던가계획 짜기 등에강해 보이지는않는다.

두뇌파보다는역시 육체파 느낌. 나랑 싸울 때 무턱대고 돌격한 것을보아하니….

찌릿.

무언가 불손한 생각을 감지했는지 나를 노려보는 시선을 담담히 맞이한다. 이번에는 당하지 않는다.

감정의변동 없이무덤덤하게 있자 그녀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며 말을 이어나간다.

"그건 아니에요. 저는 전혀 모르던 내용이었죠. 오히려 제 편인 줄 알았어요. 아마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오늘 여기로 오지도 못했을 거에요."

"일?"

"이곳에서나가고 난 뒤에 저는 제 개인실에 반감금 된 상태였죠.리리스교단에서 갑자기 저를감싸주지않았더라면 아마실험체신세가됐겠죠. 그건데우스가손을 쓴 것 같지만."

데우스가아니라 내가 한 거지만, 무언가 말을 꺼내기가 무섭다.릴리트나리리스에대해서 얘기하면 그녀의 질투심이 폭발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자화자찬 같은느낌이지만, 내 감이 말해주는 이상 믿어야지. 나중에 기회가 될 때 설명해주면 되겠지.

"안전하게 제 방에 있던 도중, 갑자기 허공에 균열이 생겼어요. 공간이갈라져 있다고표현해야 하나. 그런데그곳을통해서데우스의응접실이 보이더라고요. 그곳은 격리되어있는 곳이라 그의 허락을 받거나 정해진 절차를 받고 텔레포트로 가야 하는 곳이 분명한데."

딱빌런조직의 두목이구먼.너희는내가 누군지 모른다. 접견하는 비밀스러운 방.

"그곳에서왠중절모를 쓴 신사랑 대화를 나누는 것이 보이고, 들리더라고요."

어? 중절모 신사?

"혹시 키는이 정도에얼굴이,뭐라 할까, 엄청나게 `평범하게` 생기지 않았나?"

"평범…. 네, 맞아요. 정말 평범한 얼굴을 가졌죠. 아시는 분인가요?"

아는 분이라. 일단은 친구로 여기고 있지만, 일단한두 시간대화를 나눈 사이일 뿐이다.

"알고 있다고 할 수는 있겠지. 날 찾아왔었다. 차원 용병데일이라고했지."

"음…. 들어본적은 없는 이름이네요."

역시 차원단위로 노는 사람이라 안알려진 건가.

"하여튼그때대화를 엿들어서 아까 말한 것들을 알게됐어요.데우스는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더군요."

이거데일에게빚졌구먼. 분명 나를 의식하고 한 거겠지.다음번에는점액을곱빼기로얹어주어야겠다.

"마지막에는 서로 언성이 높아지다 끝나더군요. 그러더니 그데일이라는사람 몸에서 끔찍하게 생긴 낫이 튀어나왔어요. 신님을 접하지 못했더라면, 그걸 보고 기절했을 거에요."

이건 칭찬인가 욕인가. 뭐, 높은 차원의존재인 만큼본체가꽤끔찍하게 생기긴 하겠지. 나도 그렇고.

제기랄. 그래도데일은인간화할 수 있잖아! 나도 인간의 몸으로 연애하고 싶다고!

"마지막에 낫을 휘두르는데, 제가 보던 틈처럼 제눈앞에공간이 찢어지면서 신님이 보이더라고요. 그데일이라는분도 틈으로 넘어가면서 안부를 전해달라는 말을 했는데, 지금 보니 신님께 한 말이군요."

역시 마음에 드는 친구야. 거래가 아니더라도 그냥 잘 해줘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그나저나 얘기를 들어보면 몸으로 차원을 가르고넘어다니나 본데.레이나는공간을 가른것처럼느끼겠지만, 보아하니 데일은 차원이동을 그렇게 하나보다.

그럼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솔직히 내가 격이 부족하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데.권능 같은거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일단 메모해두자.

"그분이사라지고 나서저도 마법으로 옷 갈아입고 바로 넘어왔죠. 틈을 넘어갈 때가돼서야데우스가절 인식하더군요. 이미 늦었지만."

데우스도리리스급으로개 같은놈팡이네. 설마레이나의방을 염탐하거나 하지는 않았겠지?

"설마 네 방을 몰래바라보거나…."

"그럴 일은 없어요. 저등급이라면 모를까, EX등급 요원의개인 공간에대한 보안은 관리자들도 간섭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하거든요.리리스님만의힘이면 모를까,여러 신격의성물을 통해서 만들어냈으니 아무리데우스여도그걸 뚫고 볼 수 없어요.마도 장비들도마찬가지고요."

그 말을 듣자 그나마 마음이 가라앉는다. 내가 이렇게 질투심이 많을 줄은 몰랐는데.

어느새 싱글거리는 그녀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녀도 눈치를 챈것 같지만내색하지는 않는다.

티를 내면 더놀릴 게 분명하니아까와 같이 담담하게 넘어간다.

그녀의 얘기를듣고 나니두 요원이 조금은 불쌍해진다. 권력다툼의 제물로 버려진신세라니….

그러니 내가 세뇌해서 잘 써먹도록 하자. 정치질이라면 유행하던 모5 vs 5게임으로 충분히 단련되어있다.

내부 공작원으로 사용하면 최고겠지.어떻게 세뇌할까이야기를 나누려한순간, 촉수의 벽이 열리며 아까 내보내었던 촉수가 들어온다.

꾸물꾸물?

귀여운 생물이 움직이자레이나의눈이 반짝인다.

좋아.

역시이세계하면, 슬라임이 빠질 수 없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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