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했더니 촉수괴물-31화 (31/74)

〈 31화 〉 7. 공포란, 무지(無?)로부터 온다. (2)

* * *

30.

책을 모두읽고 나서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식물에 관한 내용이아닌,데일에게들었던 기운의 통제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바라보거나 듣기만 해도 미쳐버리는 현상이 발생한다. 솔직히시설 놈들이야당해도 싸는데 이 효과가 나에게도적용 된다는것이 문제다.

물론 평범한 인간의 시야를 포기하면 되긴 하지만, 초월적인 시야는 영 익숙하지가 않다.

레이나의말로는 시설에서는 `인식필터`라는것을 쓴다고 하는데, 내가 스스로 사용하는 것도 그녀가 설명해준 필터와 비슷한 기능을 한다.

인식하는 것조차 힘든 것을 인간의 인지력 내로 끌어들인다고해야 되나.

어둠 속에서 적외선 카메라로 시야를 본다거나, 귀로 들을 수 없는 초음파를측정한다든가.

이 개념을확장해서보기만 해도미쳐버리는나 같은존재를 인식 범위로 끌어내린다는 것이다.

가장 비슷한 비유는, 그래모에화겠지. 그 어떠한 생물, 물건, 사람도 전부 미소녀로 바꾸어 인식하려는 방법.

인식 필터가 그 정도로 귀여운 효과를 발휘하지는 않지만,그런데도효과적인 것은 분명하다.

레이나는현재 내 사도로서 받은신성력과스스로의경지, 시설의 필터까지 걸치면서 아주 평범하게 나와 마주할 수 있다.

그런데도단한 개의요소라도 없더라면 분명 큰 영향을 받을 터. 어쩌면 저번에릴리와대화를 나누려했을때처럼 정신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 수다쟁이 검에 대해서도 궁금한 점이 생겼지만, 아무래도 그것은레이나와접촉을 해야 알 수 있겠지. 이 정도로오랫동안못온 것을보면 그녀에게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신성력의연결이 끊기거나 그녀에게서 위험하다는 감정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혹여라도 그녀를 다치게 했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시설을이차원에서지워버리고 말 것이다.

상념이 길어졌지만, 결과적으로 기운의 통제는 일부의 성공을 거두었다.

내 마음대로 기운을 옮기거나 집중시키고 분산시킬 수있지만, 아예없애거나 숨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완벽하게 통제한 줄 알고 필터를 끄고촉수를 보았다가 정신을놓을 뻔했다.

역시나 광기에 대한 내성이 생기고 있는 것 같다. 기억을 살리는 연습이 효과가 보여서 나름 뿌듯했다. 언젠가는, 이 초월적인 육체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되겠지.

지금도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이 정도까지적응한 자신에게 나름의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천천히, 꾸준하게 강해지자.

기운의 통제를 일부 성공한 뒤에는, 역시데일이집필한 책 내의 식물들로 관심을 돌렸다.

차원을 돌아다녔다는 말만큼 정말 가지각색의 식물이 있었고, 특이한 환경에서 자라는식물들에 관한 이야기를재밌게 풀어놓아서 술술 읽혔다.

특히, 우주에서 자라며 소행성들을 집어삼키며 자라는 거대한식물군에 관한 내용이가장 인상 깊었다.

그 식물 때문에외우주로진출하지 못하는 종족을 돕는 의뢰를 하면서 채집했다고 했지.

데일의파란만장한 모험기를 소설로 판다면 분명 밀리언셀러가 될 것이 분명하다.

하여튼,식물 중에서양분만 공급한다면 허공에서도 자랄 수 있는 종류의 식물이 한 개 있었고, 나는 당연히 점액이라는 완벽한 공급처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바로 착수하였다.

시설에서 내 촉수 내부까지 투과하는 시야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레이나와의대화를 통해 확인했다.화신체와전투를벌일 때도체감했고.

이미 정확한 위치를 알았다면 텔레포트로 구출해냈겠지. 즉, 촉수 내부는 금고 역할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촉수로 일종의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내부에서 키운다면 시설에서 전혀 감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촉수를평평하게 하여씨앗을 심고 점액으로 양분을 공급한다.

내 몸을 모판으로 삼는 행위가 조금은꺼림칙했지만, 레이나를 생각하며 꾹 참고진행했다. 아, 레이나보고 싶다.

점액에 담긴마나와신성력때문일까,몇 시간 만에순식간에 자란 식물은 촉수를 휘감은 긴 덩굴줄기에 넓은 잎이 파릇파릇하게펼쳐져 있었다.

촉수를촉수 같은줄기가 휘감으니 기분이 묘했다. 촉수에 당하는 것은 이런기분이려나.

서적 내부의 그림과 내 몸을 양분으로 자란 식물을 비교한다. 크기가 더 크고, 색깔이 더 윤택하다고해야 하나, 반짝인다고해야 하나.

작물을 키우는 게임이었다면 대성공 메시지가 나올 듯한 생동감을 지니고 있었다.

양분에 따라성장 속도가다르다고는 하지만, 과하게 빠르게 자란 감이 있어서 조금은 불안했다. 안전한 식물이아니므로더욱.

케오라고불리는 이 식물이 가진 효과는 다름 아닌 환각작용.

흔히들 `마약`으로 불리는 종류의 식물이다. 일반적인 마약보다 몇 배나 무서운 식물이지만.

일반적으로 마약은 어떤 방식을 써서라도 몸에직접적으로투여하거나 흡입을 하여 그 효과를 누린다.

식물을 정제해서 효과를 증폭시킨 가루를 코로 흡입하는 방식이 대중매체에 널리알려졌었지.

케오라는식물은그와 달리평범하게 호흡작용을 하며 내뱉는 노폐물이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성분을 지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크기의 입자로 뱉어내기에 얼핏보았을 때는그저 평범한 덩굴식물로 보인다.

하지만 군생지에 접근하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진다.

생물이접근하여 호흡하며성분을 들이마시면,빠른 시간내로 마약 투여와 비슷한 효과가 나타난다.

행복감과고양감에취해 더욱 갈구하게되고, 이내 환각작용이 극대화되며 환상, 환청, 심지어환통까지느끼게 된다.

결국, 끊임없이 군락 사이로 걸으며 자신의 상상력으로 이루어진 환상에 갇혀서헤매다죽는 것이다.

양분의 종류는 딱히 가리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식물들 사이에 쓰러져서 죽으면 일용할 양식이 되는 것이다.

숨을 참더라도 기관지나 피부를 통해 흡수될 수있으므로접근하지 않는 것이최선의 방법.

이 생물이 살던 세계는케오로인한 피해 및 범죄로 결국 그 세계만의 마약과의 전쟁을 통해 모두 불태워버렸다고 한다.

물론, 일부 연구소와 높으신 분들이 독점하고 있었지만.

데일은그저 떳떳하게 밝힐 수 없는 이 식물을 슬쩍해갔을 뿐이라고 적어놓았다.도둑질당하여도당당하게추적도 못 하고동동거리는 그들에게서 유유히 다음 의뢰를 챙기러 갔다고 했지.

참 대단한 친구다.

마약적인작용뿐만 아니라, 보안시설 침입 방지용으로 사용하기 좋은 이 식물에도 단점이 있었다.

전신 방호복을 입어서 외부 접촉을 차단한다면 완전히무효할 수있으므로이 식물의 작용방식에 대한 정보가 알려진다면 그 유용성이급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주는 정신적인 작용과 합쳐진다면 다르겠지.

광기에 빠진 인간이 가장 자주 보이는 것은내재하여있는폭력성의 발산.

그것이 주변사물일 수도, 사람일수도 있고, 심지어자기 자신에게도작용한다.

광기로 느껴지는 환각과 화학적인 작용으로 일어나는 환각이 합쳐진다면 어떨까.

실험을 통해서개량하다 보면, 의도적인 광기와 환상을 통해서 사람을세뇌시킬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곧, 시설을 상대로 쓸 수 있는 좋은 무기가 될 것이고.

시설이 만만한 곳은 아니겠지만, 내가 물리적으로 상대하는 것은 예상하더라도, 내부로부터 갉아먹는 것은 예상하지 못할 것이다.

리리스년과정보를 나누었다면 내가전투 시에갖춘 능력에대한 정보가 흘러나가 대응책을 준비했겠지.

이것은 시설을엿먹이기에좋은변수 중하나가 될 것이다.

식물이 내뿜는입자를 촉수로흡수하여 점액에 공급한다. 일부 촉수에만 순환시킨다. 마약의 완성이다.

이 촉수로 뿌리는 점액이나 촉수와 접촉만 하더라도 심각한 환각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역시 더욱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내었다.

촉수로리리스년이뿜어낸 분비물을 처리하면서 응용 방법을 생각해냈다.

미세한 구멍으로 점액을 투과시켜 뿜어낸다.입자화된점액은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다. 그러나 그내부에 들어있는마나와신성력은여전하다.

이 점액으로 차원의 벽을 덮어버린다. 내가단절돼있을뿐만 아니라, 그들 또한단절돼있다.

분명 모종의 수단으로 차원의 벽을 넘어서 나를 관찰하고 있는 것이지.

그렇다면, 차원의 벽을 막아버리면 그만이다.

물론, 갑작스럽게 관측을 할 수 없다면 분명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러니마나와신성력을담은 이 알갱이들을 통해 상을 왜곡시킨다.

초월적인 시야를 통해 나를 관측하는 시선을 역으로 관측한다. 다만, 상대에게 들키지 않도록 천천히.

화신체를상대하며 차원을 거슬러 올라가며 보았던 광경이 있었기 때문에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입자를이용하여 그 시야를 왜곡시킨다.마나와신성력을통해 내 기운을흉내 내고, 입자를 통해 비추어지는 내 상을 왜곡시킨다.

나를 관측하는 시야가내가 아닌, 입자 덩어리로 향했음을 확인하며 미소 짓는다. 언제 들킬지모르겠지만,당장의잡기술은성공했다.

이 `안개`는 내가언제든 통제할 수 있고, 몸으로부터도 뿌릴 수 있다.

안갯속의미지는 언제나 공포를 가져온다. 시야가 가려지고, 공기가 무거워지며 눅눅한 분위기에서 오는 불쾌감은 사람의 정신을 마모시킨다.

자.

이제는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입을 벌리고, 먹잇감이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

...

...

아주 탐스러운 먹잇감이 들어왔다. 부드럽고 아름다우며 날카로움을 숨기고 있는.

반갑게 맞이해주자.

촉수를 뻗어 상대의 허리를 휘감고 끌어온다. 촉수 다발로 이루어진 공간의 입을 열고, 상대를 먹는다.

조심스럽게 촉수를 펼쳐서 공간 내부에 풀어둔다.

"레이나!"

"저도 반가워요, 나의 신님."

푸른 머리를 찰랑거리며 넘긴 그녀는 오랜만의 재회에 밝게 웃으며 대답하였다.

***

레이나가 올 줄은 몰랐기때문에 준비할수가 없었다.

식물도감에 분명 달콤한 먹을 것들도 있었는데, 전투적인 능력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식용 종류부터볼걸. 안타까운 마음이 솟구친다.

그래도 시설의 눈을 가리는 것에 성공했으니,레이나와꽁냥댈수 있겠지?

반짝반짝.

없는 심장을 대신하여 핵이 반짝거리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표현한다. 완전하게 자란 두 구체가 기울어진8 모양을그리며 휘황찬란한 색을 자랑한다.

푹신한 촉수로 그녀가 앉을 공간을 마련해준다.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끝을 촉수로 잡고 이끌어간다. 분명, 더 심한 짓도했는데지금은 왜 이렇게 어색한지 모르겠다.

넓게 펼쳐진 촉수를 그녀가 꾹꾹 눌러본다. 소파를 떠올리며 푹신하게 해두었지. 탄력도 있어서 최고급 감촉을 자랑할 것이다. 그녀도 분명좋아하겠지.좋아하려나?

두근거리는 마음을 누르고 조심스럽게 그녀의 감정을 살펴보려다 그만둔다. 사생활을 침해하는 듯한 느낌이라 감정을 살피는 것은될 수 있으면자제하고 있다.

남이 함부로 읽는다면 분명 불쾌하겠지.

촉수의 감촉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가 몸을 던져 촉수 위로 쓰러진다. 촉수로부터 말랑말랑한 그녀의 감촉이 느껴진다. 아, 소파가 내 몸으로 이루어져 있었지.

까먹고 있었던 사실과 느껴지는 그녀의 몸에 부끄러운 감정이 솟아난다. 여자의 피부는 어떻게 이토록 부드러울 수 있을까.

잠시 감촉을 만끽하다가 뚫어지는 시선을 느끼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쳐다보자 나를흘겨보고 있는눈빛이 보인다.

"신님의 감정, 다 느껴지고 있답니다? 못 본 사이에 꽤 음흉해지셨군요?"

짓궂은미소를 지으며 나를 힐난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반가움이 녹아있었다. 아, 목소리마저천사 같다.

"그,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 그저 빠르게 쉬게 해주고싶어서…."

"그렇게 안도하며 쉬고 있는 제 몸을 만끽하려고 하신 거죠? 갑옷을 입고 올 걸 그랬어요."

그러고 보니그녀의 몸을감싸고있던 단단한 껍질이 존재하지 않았다.

흰색의오프숄더와파란 바지를 입고 있는 그녀는패션모델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타이트한바지로드러나는엉덩이선. 잘록한 허리. 드러난 맨 어깨와쇄골라인을따라가며 힐끔 보이는 봉긋한윗가슴.

순간적으로 넋을 잃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예쁘게 차려입고 왔는데칭찬 한마디없으시네요. 서운해요."

전혀 서운해 보이지 않는 표정으로 촉수 위에서뒹굴 거리는모습이었지만, 그 모습마저 아름다운 예술 작품일 뿐이었다.

"나의 사도가너무 아름다워서말을 잃은것뿐이다."

당당하게사념파로본심을 전한다. 이럴때는목소리가 없음에 안도감을 느낀다. 인간이었다면 분명 덜덜 떨면서 얘기했겠지.

"진부한칭찬이로군요. 5점 드리겠습니다, 신님."

얼굴을 붉히며 그런 말을 해도 전혀 설득력이 없는데.

"5점은 뭐지?"

"100점을 채운다면 좋은 일이있을 거예요신님. 기대하셔도 좋아요?"

잔망스러운 표정으로 눈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모습에 다시 한 번 핵이 빛을 발한다. 그녀에게 안 보여서천만다행이다. 이거 어떻게 못 없애나?

푹신한 촉수 위에서뒹굴거리던그녀는 이내 자리를 잡고 앉는다. 집에놀러 온거나 마찬가지인데, 정의 한국인으로서 무언가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달콤한 점액이라면 음료수를 대체할 수 있겠지. 그런데 어떻게건네주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촉수로 이루어진 공간 내부에 다과를 위한 식기가 있을 리가 없다.데일과의다음거래 때에는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생활용품도 주문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고민한다.

으음…. 일단물어보고 정하자.

"무언가를 대접해주고 싶은데, 너도 알다시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촉수와 점액뿐이다. 달콤한 음료수라도 먹겠는가?"

이게아닌데…. 말이이상하게 헛나왔다.으으….

"변태."

두 글자에 마음이 침몰한다. 내가 한말은 아저씨가사탕 줄 테니따라올래라는말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자괴감에 머리를 부여잡고 쓰러지고 싶다.

"그래도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느껴졌으니 좋아요. 10점."

이로써15점. 점수를 생각보다 훨씬 후하게 주는구나 생각을 하고 있던 도중에 그녀가 얼굴을 붉힌다. 뭐지?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물론이지. 내 사도가 원하는 어떤 것이라도 이루어 주겠다."

"...그럼,저번처럼촉수를 물게 해주세요."

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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