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5. 신과의 조우 (7)
* * *
23.
정신을 놓은 사이에 여신을 기절할 정도로 범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고의로 폭주하였음에도 제압당할 정도로 강력한 존재가 위아래로 액체를 줄줄 흘려대며 쓰러져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조각난 기억 사이에서 희미하게문 같은것을 보았다는 것과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었던 기억은 있지만, 그녀를 제압하고 이런 꼴로 만든 기억은 전혀 없다.
음.
뭐,좋은 게좋은 거지.
이번에 겪은 일은해이해지던정신에 경각심을 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두 번의 싸움에 걸쳐서 자만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쉴 틈 없이 짧은기간 동안농밀한 경험을 하게 되었지만, 아직 이곳에서깨어난 지 일주일도 되지않았다.
모르는 것도 많고, 나를 적대하는 존재가 많다는 것도 깨달았다. 힘과 지식이 모두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내가 전생하면서 품었던 다짐. 이타적으로 살아보자.
사람이 습관과 가치관을 바꾼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지만, 꾸준히 미래를 믿고 노력한다면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사람이 아니니까 더 쉽겠지. 실없는 농담에 피식 웃는다.
밀폐된 공간은 후끈 달아오른 상태로 바닥은 질척거리고 공기가 불쾌하였다. 비록 적이어도,버려두기보다는뒤처리는해야겠지.
깨어나면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될 데로대라지.어차피아까 죽을 각오를 하고 덤볐고 그거도 안 통하는 걸 봤으니 무엇을 하더라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무력감에 젖어있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것부터차근차근하다 보면방도가 생기겠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단레이나는조심스럽게 품으로 끌어온다. 공중에서 자는 것 보다는 푹신한 장소에서 더 편하겠지.
난장판을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그녀와 나에게서 흘러나온 액체는 웅덩이를 이루며 바닥에 고여있었다. 물장구치며 놀 수 있을 정도의 깊이다.
도대체 얼마나 싸질러댔는지, 새삼 바뀐몸에 경악한다.탈인간의능력을 기억하며 청소를 시작한다.
촉수로 바닥의 수분을 흡수한다.
그걸 왜 먹느냐 경악할 수도 있겠지만, 감각에 의한 차이다. 내 의지에 따라서 변하는 촉수와 감각인 만큼, 먹는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저 흡수할 뿐이다.
촉수에 미세한 구멍을 만들어 액체와 불순물을 걸러낸다. 내 몸에 있던 점액은 손쉽게 흡수하고, 나머지는 걸러내어 수분만 흡수한다.
필터에 걸린 불순물을 살펴보며 놀란다. 당연하게도 몸으로 흡수할 수 없는 그것들은 바로 그녀의신성력이었다.
신성력을흘리다니, 역시 여신은 여신인가.
데자뷰를느끼며 그녀를 씻어낸다. 찢어진 옷을 보고 바느질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지만, 이내 생각을 버렸다. 경험이 없는 것을 해내는 능력은 없다. 내 능력은 내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경험해본 적이있어야 재현할 수 있다.
레이나 때와똑같이 처리하고, 구석에 놔둔다. 일부로 불편하게 놔둘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배려해줄 필요성은 못 느낀다. 레이나를 이용해서협박하려던것이 결정타다.
뒷정리하며분리해둔신성력은따로 뭉쳐두어 핵으로 끌어들인다. 다시 봉인되었지만, 각성한 경험이남아있는지 핵에대한 이해력이 늘었다.
핵 내부와 외부는 완전히 단절된 차원이다. 그 경계선을 따라서 시간과 공간마저 분리된다. 그녀의신성력을놔두면 두고두고 연구가가능할것이다.
이해력 말고도 변화한 점이 있다. 핵이 발광하기 시작한 것이다. 황금색과 푸른색으로 은은한 빛을 뿌리는 것이 네온사인이 생각난다.
정리를 끝내고 조용히 쓰러진 여신을 바라보던 도중, 변화가 생긴다.빛가루가온몸에서흘러나오며 허공으로 사라진다. 어디서 본 광경인데.화신체가증발할 때와 같다.
그녀의 모습이 조금씩 변해간다. 허리까지 치렁치렁하던 자색 머리카락이어깨너머로짧아지고, 몸의 굴곡이라던가 얼굴의 형태가 약간씩 변한다.
조금 더 다부진 생김새라고해야 할까. 물론, 가장 큰 차이점은 그녀의미드가작아졌다는 것이다.
몸의 변형이 끝나자 흰색 로브가 나타나며 그녀의 몸에 절로 입혀진다. 무슨마법 소녀보는 기분이네.
옷을 입음과 함께 정신을 차렸는지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제 대화를 해볼까.
"일단은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네요."
"무엇을?"
"어머니가 그렇게 막대하셨는데도 기절한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씻어주셨지 않습니까."
그저 양심과 도덕성의 문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이 무언가를했지만, 그것을책임지기는 해야겠지. 무엇보다도 그 공간에서 마지막에 나를 구원하였던 기운이 그녀의 것이었다는 사실이 제일 크지만.
"별로 칭찬을 듣고 싶은 심정은 아니니 본론으로 가도록 하지. 이제 어떻게 할 건가. 레이나에 대한 것,나에 대한 것등등 이런 부분들."
"후우, 미움받아버린 것 같네요. 일단본론부터말씀드리자면 레이나 요원은 회수해가겠지만, 아까 협박한 것처럼 하지는않을 거랍니다. 저희 교단의 보호 아래에 둘 거에요."
"아까의 태도나 행동을 보면 그 말에 딱히 믿음은 가지 않는데."
힘만 있다면 억지로 굴복시키고 보냈을 것이다. 아까와 같은 분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호의적인 감정이 들지는 않는다.
"하아….어머니 때문에딸이 참 힘들답니다. 변명으로 들리시겠지만, 조금 길더라도 일단 설명을 조금 들어주세요.어머니는…. 시험하신겁니다."
시험?
"저는 색욕의 여신리리스와몬스터의신 바로크 사이에서 난 신입니다. 비록바로크님께서인간 여자의 모습을 취하셔서 완전한 신이 아닌,데미갓이긴하지만 저는 인간이 아니죠."
리리스도여자인데 왜 여자가 두 명이지?
"양모모님께물려받은 특성상 본능과 성욕이강한 데다가인간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힘과 욕망을제어해야 했어요. 그래서 건실한 신도가 되었고, 이후 타고난신성력으로성녀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죠."
"색욕의 신도인데 건실하다고?"
"저희 교단이라고 해서 문란하고 방탕한 생활을 장려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그저 사랑에 대해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다른 이들에게피해를 끼치지않는 이상 배척받는 형태의 사랑일지라도, 응원을 해주는 것입니다."
취향은 존중해준다 이런 느낌인가. 주변인들이 보기에 불쾌한 사랑의 형태도있을 텐데.
"주변 사람들이 그 사랑을 보고 혐오스럽다고 하면 폐를 끼치는 것 아닌가?"
"거기서 어머니와 저, 그리고 교단 내의 의견이 갈립니다. 어머니는 인간을 어여뻐하시지만, 인간이아니시므로어떤 사랑이라도 응원하십니다. 인륜에 벗어나더라도요."
"그건잘못된것 같은데."
"신을 인간의 기준으로판단하면 안 됩니다. 인간의 모습을 취하고, 인간을도와주시지만, 그것은그들만의 판단으로 이루어지는 것. 초월적인 존재들에게 있어서 `인간의도덕성`이라는것은 하찮은 가치일 뿐이죠."
재미있는 의견이네. 초월적인 능력보다도 정신의 차이인가. 나는 초월적인 힘이 있어도 도덕성과 윤리를 버릴 생각은 없으니.
"설명이길군. 그래서 결론이 뭔가?"
"몇 번들으셨겠지만, 저는 반려자를 구하고 있고 그 대상으로 당신을 골랐습니다.제격이나본능에 육체적으로 맞는 상대는 당신이 처음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신이 포기하지 않은 인간적인 면모를 보고는더욱더확신하였죠."
"하, 결국은 몸이 먼저인가. 어머니와 다를 게 없군."
"저는 성녀입니다. 반려자의 정신적인 면이야 제가 노력하면서 헌신적으로 교정해나가면 되는 법. 성녀는 교단에서 계도와 처벌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거든요."
계도를 말하면서 날카로워지는 눈빛에 순간적으로 오한이 들었다. 역시순해 보이는인상이 다가 아니었군.
눈에 힘을 주던 그녀가 다시 한숨을 쉬며 우울하게 말한다.
"정신적인 면이나 의사소통 같은 면을 더 알아보기 위해 어머니께 부탁해서 온것인데…. 어머니가참지 못하시고 덮치신 겁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대충 정리하면 처음으로 반려자가 될 만한 존재를 찾았고, 소개팅을 부탁해서 주선했더니 중간에서 낚아챈 것인가.
그녀가 한 말을 믿을 수만 있다면야 그녀의 잘못은 없지만, 아무래도 당한 것이있다 보니쉽게 신뢰가 가지는 않는다.
"그녀를 멈추지 못한 이유가 뭐지? 너의 의지와 반한다면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제가 어머니의 피를 진하게 이은것과더불어 재능도 뛰어나대신격임에도불구하고 어머니께서 온전하게 강림하실 수 있으십니다. 천상에 있는 그녀의본신이저의 존재를 덮어씌우고 강림하는 것이죠."
그래서 끈이 안 보인 것인가. 분명화신체에는본신과연결해주는 고리가 존재했는데, 그녀에겐 보이지 않아 여신이 성녀 역할마저 연기하고 있는 줄만 알았다.
"신체가 강림하면, 제 육신의 정보가 완전히덮어씌워 져저는 의식의 저편에서 잠들어있게 된답니다. 육신도, 정신도 없어지는 거죠. 저는 어머니를믿었지만…. 성욕을참으실 수 없으셨나 봅니다. 당신의 육체는 매력적이거든요."
으으음. 저 모든 말의 그녀가 지어낸 것이라면경악스러울정도의연기력이지만…. 믿을수 있을 것 같다. 내 `감`이 진실이라고 전해주고, 설령 거짓이더라도 이성적으로도믿고 싶다.
선한 인간도 존재한다는 것을 믿고 싶거든. 검은 차원에서 떠돌며 신과나누었던대화를 떠올리며 생각한다.
"시험하려던 것은 역시 인성 부분이에요.레이나 씨를끝까지지키려 하셨으니넘치도록 따스하신 분이라는 것은 알 수있었죠…. 의미가없어졌지만. 이게 전부랍니다.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게 되어 죄송해요. 후."
"아니, 괜찮다.네가말한 대로라면 너의 잘못은 없지. 오히려 너도 믿음을 배신당한 것이니. 이제 어떻게 할 건가?"
"레이나 요원님은 저희 교단의 비호를 받을 것입니다. 어머니께 무조건! 하시게 부탁, 아니 만들겠습니다."
이글거리는 눈으로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변태여신은 한동안미움받겠네. 쌤통이다.
"비호는 받지만, 여전히시설에서 일하실겁니다. 그녀는 당신의 신도이기도 하고, 시설에서도 그녀는 당신과 접촉할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니까요."
그건 괜찮네. 신의 사도 역할, 혹은 시설과 나 사이의 외교관 역할을 하는 건가. 나랑 교단의 보호 아래에 있으면 함부로 건드릴 수도 없겠지.
나도 정보를 구해야 하고, 그쪽에서도 나에 대해궁금할 테니그녀는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긴장감이 드디어 풀린다. 정말 정신적으로 지치는 하루였다. 조금은, 지친 것 같다.
말을 끝낸 그녀의 모습이작아 보였다. 어깨를 축내리고 땅을쳐다보는 그녀의 표정은 우울했다. 하긴, 그녀도 피해자이긴 하지.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할 건가?"
"관리자분과얘기도 하고, 어머니께도말씀드려야죠. 아직도 기절하고 계시네요. 얼마나하신 것인지….후…."
"너는 어머니가 밉지는 않은가?"
"저는 어머니의 딸이지만, 인간의 손에서 길러진 인간이며 그녀를 섬기는 신도이기도 해요. 다른 신도들에 비해 신과 훨씬 가까운 관계이면서 동시에 인간의부모와 자식 간의관계와고도멀죠. 그리고 저는 그녀를 섬기는 신도로서 그녀의 선택과 행복을 존중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정말 이상하지만, 일평생을 신학을 공부하며 신앙을 쌓은 전문가와 토론을하고 싶지는않다. 그저 불쌍하게 생각할 뿐.
위로의 차원으로 말을 건네본다.
"나중에 또 얘기를 나누어보자고. 너도 궁금한 것이 많을 거고, 나도 궁금한 점이 많거든. 가령 왜리리스의기운을 감지할수 없었는지라던가. 질문을 서로교환하다 보면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내 말을 듣자 환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역시, 미녀는웃는 게어울린다.
"어머니는 차원을 보호하는 3분의대신격중 한 분이십니다. 그녀의신성력과격은 저희가 존재하는 차원 전체를 감쌀 정도로 거대하니 당신의 격으로도 이 격리된 공간에서 볼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에 경악을 한다.그때역으로 탐지했었던 신은 그녀에 비하면 먼지 같은 수준이구먼.
문득 의문이 든다. 그런데 내 몸은 도대체 그녀를 어떻게범한 거지? 설마, 그런취향인 건가?
그녀의 딸에게 묻기에는 무척이나 부적절한 질문이지만,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다. 지식에 대한 욕망이 나를 지배한다.
"그런 강력한 존재가왜….크흠흠. 미안합니다. 너무궁금해서말이에요."
차마직접말은 못하겠고, 존댓말이 저절로 나온다. 괜히 물어봤나 때늦은 후회가 몰려온다.
한데그녀의 반응이 색다르다. 얼굴은 빨갛게 물들었지만, 담겨있는 표정은,뭐라 할까, 뿌듯함? 응?
"아까 제가 말한 것 중에 조금 틀린 부분이 있었어요. 제가 의식을 완전히잃지만…. 연습을통해서 조금씩 깨어있을 수 있게 되었거든요. 어머니가 뭐하시는지 엿보려고연습했는데…."
"아까의 행위는 존중은 하지만, 그렇다고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괘씸하죠. 제 반려자를 역으로노리다니…."
번뜩이는 눈동자가 분노와 희열감에 찬다. 입술 끝자락을 올리며 웃는 그녀의 모습에는 야차가 비추어졌다.
"그래서 처음으로 반항을 시도하고, 성공했답니다! 어머니께서 다른 차원으로 떠난 당신의 정신을 찾으러 간 도중에 조심스럽게 의식을 회복했습니다. 이후 남아있는 당신의 몸에발정 마법을걸고, 촉수를 못 움직이게 막아뒀죠."
서,설마….
"움직이지는 못하고, 욕구는쌓여만 가고. 바로 앞에 있는 먹잇감을 두고 의도적으로 흥분을 쌓아놓은 다음! 아무것도 모르는 어머니가 육체로 돌아온 순간 제약을 풀었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부에서신성력을못 움직이게 막았답니다. 어머니가 저 정도로 무너져가는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어쩜 그토록격렬한…."
볼을 붙잡고 부끄러운 듯 고개를 좌우로 돌리는 그녀의 모습은 귀여운 것이 아니라, 무섭게 보였다. 심지어 계속 엿보고 있었다고.
"...아까는 신과 신도라면서 설교하지 않았나?"
"그건 그것, 이건 이것이죠. 어머니도 결국엔 굴복하시고 즐기셨으니 모두가 이긴 전투였어요. 저는 복수를, 어머니는 쾌락을, 당신은 어머니를 굴복시켰으니까요."
들어만 보면 청산유수인데, 정작 과정이 음습한 것을 보아하니 그녀의 성정이 조금씩 파악된다. 역시, 착한 사람이 화가났을 때제일 무서운 법이지.
키득키득 거리며웃는 그녀의 모습은 성스러운 성녀가 아닌,악동 끼가넘치는소악마같았다.
꼬리까지 달려있으면 금상첨화일 텐데.
"당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즐겁지만, 이제 슬슬돌아가 봐야할 것 같아요.이곳을향한 시선은 모두 차단해두었지만, 어머니가 남겨두신 힘이 거의 다소모되었습니다. 아직 기절하고 계셔서 더 끌어오기도 힘들고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집중하자신성력이그녀에게 모이는 것이 느껴지지만, 역시온몸을짓눌러버리는 압력을 가하던리리스에비하면 너무나도작다.
아. 물어볼 질문이 정말 많았는데 아쉽다. 어느새 그녀와 헤어지는 것이 아쉽게느껴지는 건가. 역시, 나는 미녀에 약한 건가. 아니,리리스년을생각하면 그렇지만도 않지.릴리트가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던, 나는 오늘의 굴욕이나 그녀의 태도를 잊지 않는다.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고 하는데,백 년을기다리며 힘을 길러서라도 복수할 것이다.
"그렇군. 물어볼 질문들이 많았는데 아쉽네. 이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것도 많고, 시설도 궁금하고,릴리트에대해서도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많으니."
리리스년에대해서도 궁금하지만, 역시릴리트에대한 것이 더 궁금하다. 아까 문득 나왔던 다른 어머니에 대한 말.
신중에 하렘을 차린 사람이라도있는 건가? 인간의 손에 길러졌다고 했는데 그런 것이 아니면 어머니가 더 있는 것이 이상하다.
육체랑 정신이 덮이는 과정도 궁금하고. 지금 내가 정신만 덮어쓴 상황이 아닌가!
내 말을 들은 뒤 급하게 후드를 쓰는 그녀의 모습에 잠시 의아하지만, 이내 이별의 시간이 다가온 것을 체감한다. 후드를 꼭 부여잡은 그녀의 손이 참 앙증맞다.
"... 멀리서도 대화할 바, 방법이 있어요."
여전히 후드에 들어간 상태로 말하는 그녀. 역시미모 때문에바깥에서는 후드를 쓰고 다니는 건가. 그녀의 모습을 나만 보았을 수 있음에 저열한 우월감을 느낀다.
멀리서 대화라. 역시 판타지 하면 수정구인가. 충분히 발달한 기술은 마법과 다름없다는말이 있는데, 역으로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기술도 마법으로는따라 하기쉽다는 말이 된다.
인공위성 같은것을 거치지도 않고 초장거리 통신을 가능하게 해주니 어쩌면 더 우월하다고 할 수도 있고.
수정구나 비슷한 물건을건네줄 줄 알았는데, 그녀의 손에는 하트모양의 자색 보석이박힌로자리오가쥐어져 있었다.
이세계도사랑을 하트 문양으로 표시하는 것이 신기하다. 촉수로 조심스럽게 그녀의손으로부터받아간다.
"이,로,로자리오에신성력을불어넣으시면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실 수있을 거예요."
더듬거리며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조금 불쾌해진다. 인공위성처럼리리스를거치며전달된다니. 저 말을 들으니 조금 꺼려지는데.
로자리오를들고 있는 촉수의 움직임이 멈추자안절부절못하고있던 그녀가 재빠르게 이어갔다.
"아뇨아뇨,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그, 저로자리오는제, 제것이라서…. 사용하시려면어머니께 허락을 받으셔야될 거에요.화내지 마시고, 이, 이해해주세요. 어쨌든! 허락만 받으시면로자리오와연동되는 다른 목걸이로! 얘기를 나눌 수있을 거예요! 신을거치는 거라마력간섭처럼 엿듣는 것도 방지됩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걱정하지 않으셔도돼요! 제가 꼭! 무조건! 절대로! 허락만 하고 말 못하게 할 테니까요! 무조건!"
주먹을 쥐고 흔들며 힘차게 말하는 모습이 그저 귀여울 뿐이다. 표정을 못 본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저 정도로 신신당부까지 했으니 괜찮겠지. 정 안 되면 안 쓰면 그만이다. 언젠간 다시 찾아오겠지.
"알겠어.로자리오는잘 받아두도록 할게. 고마워."
후드가 벗겨지지 않도록 꾹 눌러두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이쯤 되면 의아하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무슨 문제가 있나?"
"아, 아니에요!으음….음…. 그, 부,부탁 하나만 해도될까요?"
"물론.기브 앤 테이크라는말이 있지.주고받는다.염치없이받기만은 하지 않아. 내가 줄 것이없는 게문제지만."
내 소유물은 저 머나먼 어딘가의 자취방에 존재한다. 내가 없어지고 어떻게됐으려나궁금증이 들지만 알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혹시촉수를…. 조금만떼어서 주실 수 있을까요?"
응?
"그, 아, 아프시거나 불편하시면 안그러셔도 돼요. 아,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안ㅈ,주,주셔도돼요."
갑작스레횡설수설하는릴리트.
통각만 차단하면 딱히 아프지는 않지.어차피재생되니까 불편하지도 않고.그러고 보니잘린 촉수에도 내의식이 있는데, 여기서 나가면 어떻게 될지도 궁금하기도하고….
음. 아무리 생각해봐도 딱히문제가 될것은 없을 것 같다.
"괜찮을 것 같은데? 촉수가 베인다고 해서 내 존재에 해가 되지는 않아. 나도 궁금한 점도 있고. 잠시만."
서걱.
촉수로 다른 촉수를 베어 그녀에게 잘린 부분을건네준다.들고 다니기편하게 그녀의 손바닥 정도의 작은 크기로 잘라서 주었다.
무언가 느낌이 이상하긴 하지만,자해한다는마음이 들지는 않는다.뭐라 할까, 집중하지않을 때는어차피통제가 안 될때도 잦고. 머리카락이나 손톱을 자르는 느낌?
"가, 감사합니다.그럼저는이만가보곘습니다오늘즐거웠어요나중에연락해요!"
촉수를 품에 꼭 껴안고 속사포와 같은 말과 빛의 잔해를 남긴 체 그녀가 사라진다. 텔레포트 기술은 나도 배우고 싶은데.
각성을 겪고도 핵은 여전히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도 찬란하게 빛이 나는 것이 검은 구체일때보다는훨씬 낫다.
무언가 미러볼 느낌 나네. 한 4, 5개만 더 있으면 사방으로 빛을 뿌리며 파티투나잇이겠는데.
실없는생각을한순간.
핵이 분열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