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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했더니 촉수괴물-18화 (18/74)

〈 18화 〉 5. 신과의 조우

* * *

17.

마침내 엘프가 일어났다. 아까는 몰랐는데, 볼에 희미한 자국이 남아있다. 설마,운 건가? 눈으로부터 타고 내려가는 자국을 보아하니 예상이 맞는 것 같다.

죄책감에 허둥지둥 촉수를 움직인다. 어쩌지? 어떻게해야 할까?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처럼 만들어 둔 촉수에걸터앉는엘프.불편할까 봐조심스럽게 촉수를 등에 받쳐준다. 분노하거나 경멸하는 것은 아니겠지.

촉수 의자를발견하자환한 미소를 짓는다.

세상이 밝아진다.

아, 이 얼마나 밝고 희망찬이세계인가? 저 미소를 본 순간 전생의 죽음은 가치 있는 것으로 변하였다. 미녀의 웃음은 다친 마음을 치유해주는 능력까지 있단 말인가!

저 웃음이멈추면 안 된다. 어떻게해야 될까? 포로. 기상. 울었음. 웃음. 편안. 편안?

검을 되돌려준다면 역시 좋아하겠지? 지금 표정을 보아서는 갑자기 날뛰며 날 베려고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명예를 지킨다며 자살할 것 같지도 않고.

조심스레넓은 촉수를 그녀의 앞으로 움직인다.

그녀의 검을 세세하게 묘사하여 그려놓은 그림이 담겨있는 촉수.

그림을 보여주고, 레이나를 촉수로가리킨다.

돌려주겠다는 의미로 이해했으려나? 언어가 통하지않는다는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인간의 몸뚱이가 없는 것 또한 아쉬워진다. 차라리 인간이었으면 말은 통하지 않더라도 표정이나 행동이라도 취할 수 있었을 텐데.

꿈틀꿈틀.

휘감아 둔 검을 옮긴다.

[으앙,잡아먹지 마요!]

희미하게 울리는 목소리는 무시한다.니 주인한테돌려주겠다는 데 뭐.

바닥에서 검이 솟구치자 눈이 동그래진다. 놀란 표정은 언제나 봐도 귀여워.마음속사진기로 찰칵찰칵 사진을 담아 기억의 갤러리로 옮긴다.

촉수를 거두자 조심스럽게 검을 집는다. 수다스러운 검이라면 대화를 잘 나누겠지. 아,그러고 보니검에게대화를 전달해달라고 하면되겠구나!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던 순간.

[주인님이 마나가 없어서 링크가복구가 안 돼요... 흑흑]

아.

그러고 보니마나를 전부 빼앗아버렸지.

링크가 끊긴 것은 아무래도 마나가 없어서 자연스럽게끊겼나 보다. 지금의 호의적인 감정으로는 조금, 많이, 아쉽더라도 내 마나를 건네줄 용의가 있다.

마나에 이상스런 집착이 생긴 것 같다. 남의 것을 빼앗고도 이토록 돌려주기 싫은 점을 보면 이상하다.

그런데 어떻게 돌려주지.

`어이, 어떻게 하면 마나를 줄 수 있을까?`

[그냥공기 중에뿌리기만 해도 엘프는 마나를 흡수할 수 있어요. 아까 저 감싼 덩어리처럼 뭉쳐서 뿌려도 되고, 옅은 안개처럼뿌려도 돼요. 더 좋은 방법이 있긴하... 아니에요!]

역시 엘프는 사기 종족이구나 싶다. 피부로 마나를 호흡하다니,촉수 괴물이랑동급의 능력이다! 그런데 더 좋은 방법이 있다고?

`더 좋은 방법이 뭐지? 또 숨길 생각 마라`

[아...음...그...몸 내부에 흐르는 점액...거기서 가장 진한 마나가 느껴지거든요? 아니, 진한 정도가 아니라영맥마냥흐르는 것이 아마 섭취...한다면 영약처럼 마나를흡수할수있을 거예요.]

이제 내 피는 마나포션인가보다. 색깔도 파랗게 바꾸고 플라스크에 담아서 팔면 완벽하다. 심지어포션의클리셰, 맛대가리 없다는 단점 또한 없다. 내 점액은달달하니까.

그런데 검이 왜거부하는지 알겠다. 갑작스레 촉수를 들이대고 점액을 마시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그 촉수와 점액으로 그녀를 범한 입장에서는 더욱이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일이 될 것이다.

어쩌지.

일단은, 마나를 흩뿌려본다.

촉수를조심스레그녀의 근처까지 이동시키고 분무기처럼 마나를 뿌린다. 고운마나의입자가 구름처럼 퍼져나간다.

촉수를 바라보던 그녀의 표정이다시 한 번귀여워진다. 헤헤. 귀엽다. 이내 뿌려진 마나가 그녀에게 흡수되기 시작하는 것을 바라본다.

아무래도 내 촉수만큼의 효율은 나오지 않는 것 같다. 흡수된마나의양을 보아하니 약70% 정도만흡수된 것 같다. 고운 입자 형태라 흡수 효율도높을 텐데,그럼에도30%는 사라졌다.

크흑. 내 아까운 마나.

이번에는 마나를 똘똘 뭉쳐서 건넨다. 마나를 흘려내고, 공 모양으로 뭉친다. 압축하고, 또 압축한다. 공기가 조금씩 흔들리며 왜곡되기 시작한다.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형태까지 뭉쳐낸다.

허공에 푸른색 공이떠 있다. 표면에 구름처럼 마나가 흐르고, 내부로 사라진다. 어린시절 가지고놀던구슬 같다.

이번에도 역시토끼눈을하고 있다. 그래, 내가꽤놀라운 생물이지. 얼어붙은 듯 굳어있는그녀를 촉수로툭툭 건드리고,조심스레구슬을 다른 촉수로 그녀에게 밀어낸다.

해치지 않아요. 빨리 먹어.

마나 구슬이 다가오자 미약한 거부감을 보이며 고개를 뒤로 젖히는 그녀에게 구슬을 촉수 위로 옮겨서 그녀의 손바닥 위로 건네준다.

역시 그녀의 손은 부드럽구나. 더욱만지작거리고싶지만, 경계심을 높이고 싶지는 않아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체 조용히 뺀다.

마나의구슬과 내 촉수를 번갈아 가면서 보던 그녀는 이내 환하게 미소를 짓고 말한다.

"────."

이해할 수는 없지만, 분명 고맙다고 얘기한것이겠지. 뿌듯함과 죄책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내가 뺏어간마나인데...

이내 죄책감이 다른 감정을 모두 누르고커져간다. 마음이 불편하다.

어떻게해야 할까. 사실, 방법은 하나다. 그녀에게 가져간 마나를 모두 되돌려 주는 것. 아니, 죄책감을 묻기 위해서는 더 많은 마나를돌려주어야겠지.

아깝지만, 그녀와의 친밀도도 조금이라도 더 쌓고, 또한 이 `시설`에있어서도 해로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전달하려면 역시 좋은 인상을보여야겠지. 양심도 찔리고.

눈을 감고 명상하며마나의구슬을 흡수하는 그녀의 모습을 본다. 역시,효율이 높지않다. 검이말한 대로최고 효율로 마나를 전달하려면 내 점액을먹어야겠지...

음. 일단 부딪혀는 봐야지. 지금까지 보인 호의적인 모습이라면, 거부하지 않을 수도 있다.

눈을 감고 있는 그녀의 어깨를 툭툭 살포시 건드린다. 그녀가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본다.

그런데 점액을 어떻게 전달하지. 갑작스레 의문이 든다.

촉수에서빨아먹... 기각. 촉수에서 그녀의 입으로방울방울... 기각.

촉수 위로 고이게 해서후루룩... 기각.

아니, 촉수랑 액체랑 관련되니 전부 야하다! 이런 망할! 전부 흑심이 담긴것처럼보인다!

곰곰이고민하고 있는데 그녀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더니 내 촉수를 찌른다.

갑작스레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지자 화들짝 놀라서 촉수를 뺀다.

그녀 또한 놀란 듯이 쳐다본다.

아, 너무 갑작스러웠나. 촉수를 다시 조심스럽게 그녀의 곁으로 가져다 댄다.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촉수를꾹꾹 눌러댄다. 말캉말캉한 촉수는 손가락의 모양에 따라눌려진다.

촉감에는 자신 있지 후후. 그녀도 촉감이만족스러운지꾸준히 눌러댄다. 그러다 갑작스레 얼굴을 붉힌다. 부끄러워하는_모습.jpg 저장 완료.

부끄러운 나머지 손을 거둬가는 것이 아쉽다. 살랑살랑, 촉수를 흔들어 본다. 표현할 수 있는 동작이 많지 않지만, 최대한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그런데 촉수가 귀여울 수 있나?

그녀의 손이 다시조심스레다가오고, 이번에는 손가락이 아닌 손이 통째로 촉수를 잡는다.

부드럽다.

두 세계를 거치면서 이렇게 여자와 손을 잡는 것은 처음이다. 어머니 제외하고. 아,어머니...

내가 왜 그랬을까 자괴감이 든다. 돌아가면 정말 진심을 담아 무릎을 꿇고 사과해야지. 돌아갈 수 있는 점도 의문이고, 이 몸을 어떻게해야 할지도 의문이지만. 판타지클리셰인폴리모프마법이나 괴물의 인간 형태, 인간폼이런 변형 모습이 존재하겠지.

몸에서 촉수가 들끓는촉수 남자를상상하자 오한이 들어 부르르 떤다.

떠는 몸을 느꼈는지 어느새 촉수를쓰다듬고 있던 그녀의 손이 멈칫한다.아... 아쉬운감정이 든다. 포근한 느낌이 들었는데 말이지. 어머니 생각이 난이유 중 하나가쓰다듬당해서 일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어머니께 머리를쓰다듬어지는 것을 좋아했었으니.

그녀의 손을 쳐다보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조금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라면 의도를 이해해줄 것이라 믿는다.

촉수의 끝에서 조심스럽게 점액을 배출한다. 딱 촉수의 첨단에만 맺힐 수 있도록.

그리고 그 한 방울의 점액을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가락 끝으로 옮긴다.

지이잉.

뚫어질 듯 나를 쳐다보는 그녀의 시선이 느껴진다. 왠지 모르게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다. 나는 착한 촉수에요. 나쁜 마음 없어요.츄라이 츄라이.

조심스럽게 촉수로 그녀의 손을 받쳐서 밀어본다. 이 정도면 의도를 이해했겠지.

[이 변태 촉수!베어버릴 거야!꺄아아악주인님 그거 먹지 마요!]

뭔가 찡찡대는 것 같지만, 무시한다. 내가 얼마나 신사다운데. 그리고니가알려준 거잖아.

오묘한 표정으로 방울을 쳐다보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간다.

핥짝.

핑크색말랑한 혀가 붉은 입술 사이로 재빠르게 튀어나와 점액을 휘감고 쏙 들어간다. 이내화악얼굴을 붉힌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제발 이상한 생각이 들거나 트라우마를 자극하지는 않았기를 빈다.

손가락에 묻을 수 있도록 점성은 높였지만,그때랑은달리꽤묽혔기에 먹기 편할것으로 생각한다.

음?

그녀가 촉수를 쳐다본다. 손가락이꼼지락거린다. 무언가안절부절못하는모습.그때일이 생각난 것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촉수를 톡 톡 건드린다.

톡 톡.

나도 그녀의 손을 건드린다. 언어가 없어도 소통할 수 있구나!

뾰로통한표정을 지으며 그녀가 다시 내 촉수를 건드린다. 이번엔 정확하게 첨단의 끝을 찌른다.

음? 아. 점액 더 달라는 거였구나?

후후. 내 점액은 최상급 디저트지!먹고 싶은만큼 먹도록!

촉수로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뒤집는다. 뽀얀 손바닥이 촉수 밑으로 보인다. 바닥을 짚고 있는 다른 손도 촉수로 천천히 붙잡아 데리고 온다.컵 모양으로만든 그녀의 손에 촉수로 점액을 흘려보낸다.

손으로 만든 컵에 고인 맑고 투명한 물.

이번에는 점성과 색을 완전히 제거해서 물을 마시는 느낌이 들도록 한다. 이러면 거부감이 안 들겠지?

슬쩍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자 토마토처럼붉어져 있다. 아니, 왜? 이유는 몰라도, 갤러리는 늘어난다. 나이스.

그녀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입술을 데고 마신다. 다시 한 번 놀라는 모습캡쳐.

마나가 어마어마하게 들어있는 영약을 마신 셈이지.

몸속으로휘몰아치는마나의기운이 보인다. 미안한 마음을 담아서 그녀가 가지고 있던마나의2배가량 농축시켜놨으니 다스리는 것에 집중해야겠지.

양손을차분하게 배에 얹고 가부좌 자세를 취하는 그녀. 역시 한 컷 저장.

[... 무슨 짓을하신 거죠?]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네가배려심을 느끼다니, 역시 진짜 주인은 다르다 이건가?

`미안해서마나좀많이 줬다. 그녀가 가지고 있던 양의두 배정도? 그 정도면만족하지... 않을까?`

[... 도대체 어떻게 마스터의 두 배나 되는마나를... 그것도그냥 마셔서 얻을 수 있다고요?]

`야, 마나가 들어있다고 한 건 너야. 아까도 변태니 뭐니 하는데네가 말해준방법따라 한것뿐이고. 그리고 내가 왜 변태냐?`

[촉수로이렇게 저렇게해서 먹일 줄 알았죠! 아니! 그게 아니라!]

역시나변태검다운 변태적인 상상이군. 난너 같은변태랑 달리 신사적인 방법으로 전달했다고. 자리에 앉아 양손을 모아 촉수에서 나오는 물을받아먹는...

아.

어디선가 본 듯한 자세와 구도를 생각해내고 촉수를 휘저으며 떨쳐낸다. 난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 암. 난 변태가 아니라고.

[주인님이 마나를 회복하셨으니, 링크도 다시 회복할 수있겠네요. 링크가 끊겨도 사념으로 소통하는 방법은 기억나시죠?]

`어. 너랑 언어가 통하니 이제 소통이 되겠지. 잘 전달해주렴. 난 진짜 적대할 의지가 없어. 나도 애초에 왜 이런몸뚱아리를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정말인간 같으시네요. 나중에정체에 관해서 얘기좀 해주세요. 주인님이 링크 걸고 계시니 이제 끊길거에요. ... 이상한경험이었지만 나름 재밌었어요!]

`그래.좀 있다다시 얘기하지.`

어느덧 눈을 뜬 엘프의 눈에는 푸른정광이줄기줄기 뻗어져 나왔다. 그녀의 몸에서 마나가웅웅거리며휘몰아친다. 역시, 액체를 매개체로 전달한 것이 옳은 방법이었는지, 손실이 거의 없는 상태로 온전히 흡수한 것 같다. 나에게 뺏기기 전보다 훨씬 강해진 것 같네.

설마 공격하지는 않겠지?

조심스럽게 몸을 긴장시키며 그녀를 바라본다. 검 손잡이를 쥐고 마나가뻗어 나가는것이 보인다.

검과 링크를성공...

풀썩.

그녀가 바닥에 쓰러진다.

창백한 얼굴. 거칠게 뛰는 심장. 공포에 휩싸인 표정.

무언가 잘못되었다.

왜?

뭐지?

그녀의 상태를 확인해야겠다. 촉수를 뻗는다.

[찾.았.다.]

굵은 목소리가 들리고.

우지지직!

촉수가 풀뿌리 뽑히듯 뜯겨나간다.

잊고 있었던 감각. 고통이.온몸을타고. 퍼져나간다.

`끄아아아아악!`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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