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3. 레이나 (4)
* * *
11.
이성을 잃고 얼마나 그녀를 범했는지 모르겠다.
지금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니 죄책감과 죄악감이 심장을 움켜쥔다.
정신을 완전히 잃고 기절한 그녀의온몸에는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흥분한 채 촉수로 어루만지고 조이고 비비고 온갖추행은 다 했으니, 그 자국이 남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끈적끈적한 점액이온몸을뒤덮고 있다.갑옷 사이로삐져나온 옷자락은 축축하게 젖어 점액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다.
머리카락은 마치샤워 후의머리카락처럼 눅눅하게 젖어있었고, 뾰족한 귀는 더욱 집중하여 괴롭혀서 그런지 내부로부터 점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설마 고막까지 건드린 건 아니겠지. 아까 분명 자제하려고 했는데.
점액을 얼마나 많이 분비했으면 바닥에 고일 정도일까. 반쯤 누워있는 그녀의 발목까지 고여 찰랑거리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녀의 몸에 아무 이상 없이 새근새근 자고 있다는 것이다.기절한 게자는 거지뭐.
피부가 붉어진 것은 눌린자국 때문에그런 것이니나을 것이고, 전투로 인하여 생긴 생채기들은 모두 치유할 수 있었다.
점액에도 치유 성분이 있는 것 같다. 심지어 그녀의 팔에 있던검상으로보이는 흉터마저 지웠으니이 정도면보답이겠지?
뿐만 아니라그녀의 피부가 더욱 깨끗해지고뽀송해지는효과도 있었다. 엘프라 그런지 각질이나피부 트러블등이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마땀 등으로배출된 노폐물이 쓸려나가서 그렇겠지.
촉수로 내가먹은 건아닐 거다. 점액으로 닦아낸 것이다.
그녀의 몸 내부에는더는마나가 느껴지지 않는다.입을 뻔하며내부 점막으로부터, 그리고 그녀가 기절한 사이 목구멍까지파고든촉수로 모조리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성을 잃었어도 정신이깨어있는 동안목을 범하지는 않았다. 초면인데 시작부터 그런 하드 플레이는 좀.
지금 상황도 보자마자 희롱하며입을 범하고온몸에뿌려댄 상황이지만.
...
다른 생각으로 돌리려 하지만, 결국 죄악감만 느껴진다.
물론! 그녀가 먼저 공격한 것이 분명하다. 내가대응할 힘을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면 촉수는모조리베이고, 결국 근원마저 부서져서 죽고 말았겠지.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대응은 비정상적이다. 아직 머리에 박힌 유교사상이 이 장면을 거부하고 있다.
이세계용사들이 호구처럼 군다고 욕을했는데,남 말 할처지가 아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대상에게 현대의 도덕성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말이 안 되지만, 습관이라는 것은 쉽게 고쳐지지는 않는 것 같다.
지금 상황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지만. 적당히 중간에서 타협한듯하다.
이세계용사가 아니라 무협지를 참고해야겠다.
본좌에게도전해오다니 터무니없다.하나자비를 허락하노라. 죽여달라고? 죽이고 살림은 오로지본좌만이판단한다. 자비란 힘을 가진 자만이보일 수 있다. 자비를 받기 싫다면 더욱 강해져서본좌를무너뜨리거라!크하하하하하! ??
역시천마님. 한국을 지배하시는 그분.
나 또한 강력한 힘을 가진 자로서 자비를 보여준 것이다.이계의감성과 현대의 감성이 뒤섞인 처벌.
현대를 기준으로는 과하지만,이계를기준으로는약하디약한처벌이다.
정신적으로 위로하니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 일단 그녀가깰 때까지소통은 불가능하니 흡수한마나랑내 능력에 대해서고찰해보아야겠다.
애초에 여기온 지시간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괴랄한하얀방에서시간의 흐름을모르…. 74시간지났군. 뭐야 내장시계도 있었어?
따지고 보니그녀가 갓난아이를공격한 거나마찬가지다!
응애! 나애기촉수!엘프눈나나빠!
우욱. 다시 고찰로돌아가야겠다.
먼저 몸에 대해서생각해봐야겠다. 일단 아까부터 몸의 촉수들에 대한 통제권이 더욱 강해졌다. 팔다리를 조종한다는 느낌을 벗어나서 촉수 자체를 다루는 느낌이다.
그 감각을표현하자면….
꾸물꿈틀…. 스르륵꾸물?
뭐라고한 거지.하여튼팔다리가수십 개가생긴 느낌이다. 이것을 다루는 것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역시 마나다.
마나를 흡수하면서 마나를 다루는 감각은 오감과 다른 새로운 감각이다. 한 차원 더 열린듯한 감각이랄까. 오감이 모조리 뒤섞인 괴상한 감각을 지닐 때와 같은 느낌인데,그때는흐릿한 데 마나에 집중하면 그 흐릿한 것이 뚜렷하게 변하는 느낌이다.
어찌 되었든 그마나를 조종하는 느낌은 다른 감각이라 그런지 몰라도 촉수 하나하나에 스며든 마나를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있었고, 그 수많은 마나를 다루면서 자연스럽게 촉수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겸사겸사 지만경축할 일이다.
마나를 다루는 것에 집중하면서 굵기나 길이,속도 등촉수와 관련된 세세한 점까지 전부 집중해서제어할수 있게 되었으니 만세다.
뿐만 아니라몸 내부를 흐르는 점액에도어느 정도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되었다.
인간 시절 피라는 다른 느낌이다. 딱히 흘린다고문제가 되는점은 전혀 없고, 상시분비 중인데분비하는 것을멈출 수도있다.
딱히 멈춰둘 생각은안 든다. 점액이 촉수를 코팅해주는 것이 기분이 좋다. 무더운 여름에 샤워하는 느낌이랄까.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지. 다른 사람들이랑접촉할 때만멈춰두면 될 것 같다.
이 점액의 농도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이왕 바꾸는 것 물처럼 깨끗하게 바꿔서 그녀의떡을 진머리카락부터 시작해서 씻어주었다.
아무래도 끈적한 점액으로 샤워하는 것보단물 같은점액으로 샤워하는 게 그나마 기분이 좋지 않을까?
일단 바닥에 고인 점액을 모두 흡수하고 그녀의 팔다리를 잡아 깨지 않도록들어 올린다.
촉수 하나를 샤워기처럼 일으킨 그녀의 머리 위로 올려 점성이 없는 점액을 뿌린다.
머리카락부터 시작해서 끈적한 점액을 씻어내기 시작한다. 점액으로 인해 달라붙거나 엉켜있는 머리카락은 촉수들로조심스레떼어놓는다.
아름다운 머릿결을 망칠 수는 없지. 머리카락을 모두 씻어낸 후에는 미끈미끈한 점액을 조금 분비해서 다듬는다. 린스의 성분은 모르겠지만, 그 느낌을 살려서 머리카락을 닦는다.
마침내 아름다운청발이윤기 있게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만족한다.좋아 좋아. 그녀의 머리카락은 곱고 예뻤지만, 역시 현대인의 관리받은 머릿결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거기에 현대인한 스푼을조미료처럼 뿌려주니 관리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비단처럼 아름다운 머릿결을 볼 수 있었다.
이거 점액 모아서 미용액으로 팔면 대박이겠는데?
잡생각은 거두고, 청소를마저 한다.
점성이 존재하지 않아 몸에 묻지도않을 테니그녀의 몸에 점액을 뿌려댄다. 끈적한 옷을 바라보고 잠시 찡그리다 적신 옷에 조심스럽게 가느다란 촉수를 침투시켜 점액을 다 빨아들인 뒤물점액을흘려내어 그녀의 몸에 묻었을 끈적한 점액을 씻어내고, 다시 점액을 빨아들여 옷을 뽀송뽀송하게 만들었다.
몸에 묻은 물은 놔둔다.
몸을 직접 건드리기에는 죄책감도 들고 부끄럽기도 하다.
대신 갑옷에 묻은 점액도 닦아낸 뒤에, 이왕 닦아낸 것광이 나도록점액의 성질을 바꿔서 뿌리고 닦아낸다.
점액의 성질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해주는 서비스다.
하의를건드릴 때는조금, 아니 많이 부끄러웠다.
끈적한 것이점액뿐만아니라 땀과 다른 끈적한 액체가 느껴졌다. 아마 기절하기 직전에 뿜어낸 애액이겠지.
크흠.
그녀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시각을 제외하고 나머지 감각을 차단한 뒤에 빨아들였다.크흠흠. 부끄럽다.
어느새 뽀송뽀송 깨끗하게 씻겨준 엘프를 바라보니 보람찬 기분이 든다. 자기만족이지만 그녀 또한 점액을 씻어낸 것에는 만족할 것이다.
촉수를 부드럽게 바꾸어 침대처럼 깔아두고 푹신한 촉수한 가닥을머릿밑으로끼워 넣어베개로 삼을수 있게 한다.
좋은 꿈을 꾸는지 그녀의 표정에 미소가 깃든다. 잠자리라도 편해서 다행이야.
미녀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내가 한 행위가 정당화되지는 않겠지만,이 정도면나름 신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깨어나면 또 한바탕 하겠지만, 자는 동안만큼은 만족할 것이라고 자부하며 마나를 관찰한다.
방 내부에 있던마나는모조리 흡수했다. 마나를 흡수할때의느낌은 정말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쾌락을 안겨주었다.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각의 지평선이 열리는 느낌은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나마 가까운 것이라면몇 년간의연구를 통해 새로운 진리를 발견한 학자라던가 평생의 역작을 만들어낸 예술가가 느끼는 감각이겠지.
분명 그것도 마나를 처음 받아들일때의감각과는 다를 것이다.
지금은 그 순간과는 달리 잔잔히 몸속에서 흐르는 마나를 느끼며 쾌감이 아닌 만족감을 느낀다.
뭐랄까, 배가 든든한 느낌? 촉수 피부는 물론이고, 내부를 흐르는 점액한 방울한 방울에도 마나가 깃들어있다.
그리고 핵.
내 몸의 모든 촉수가뿌리 삼는핵은 어떻게 표현하기가 힘들다. 아직까진 이해가잘되지 않는부분이랄까?
딱히 통제되는것도 아니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은 느껴진다.
눈을 깜빡이고, 침을 삼키고, 숨을 쉬는 행위처럼 자연스럽게 `그냥` 본능적으로 되는.
인간이라면 방금 문장을 읽고 괴로워하겠지.큭큭큭.
하여튼그런 핵에서 또한 마나가 느껴지는데, 느껴지는 감각이 조금 다르다. 무언가 멀리 있는 느낌이랄까. 촉수에서 느껴지는 감각이랑은 또 다르다. 저 멀리서 조종하는 느낌.
이마나로뭘 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녀가 보여준 번개로 바꾸는 모습을 보았으니 그걸따라 할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연구가 좀 필요하겠지만.
그러고 보니학습능력? 적응 능력이라고 할까. 그것 또한 뛰어난 것 같다.
검도 막아내고,번개 지짐도몇 번당해보니 괜찮고. 기타 겪었던여러 상황을보면 한번 겪은 일에 대해서는 내가 자각만 한다면 훨씬 좋은 상황으로 이끌어간다.
아니. 생각해보면 거의생각한 대로되었다.
점액을 바꾼 것도 그렇고, 촉수의강도 같은것도 그렇고.
시야나 감각 차단도 전부 그렇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눈앞에 소고기 스테이크를 대령해서먹겠다고생각한다고 스테이크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 되었던내 생각을 통해서 몸을조절하는 것이인간 같아서기분이 좋다. 난 인간이다. 괴물이 아니다.
스테이크 얘기를 하니 밥이 먹고 싶어졌다. 아까 강렬하게 성욕을 느꼈던 순간을 뺀다면 딱히 수면이나 식욕, 성욕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마나가 달콤했던 점이나 그녀의 입 내부에서느껴졌….생각하지 말자.
하여튼 미각이 있는 것을 보면 음식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피부로 흡수하던, 몸을 변경해 촉수를 입처럼 써서 무언가를 먹던.
먹을 게 없다. 아니, 맛을 볼만한 것은 있긴 하다.
음.
그래, 사람도 자기 피부를 물어보거나 핥아서맛본 적이있을 텐데나도 못할 일은 없지.그러고 보면촉수는 언제나 서로 스치면서지나가는 데 미각을 느낀적이 없다. 이것도 본능적인거겠지.
핥짝.
마른 촉수를 핥아보고, 점액을 찍어 맛본다.
촉수는아무 맛도나지 않았다. 그냥곤약젤리같은 느낌? 맛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점액은 다르다. 달콤하다. 이 달콤한 것이 두 층으로이루어져 있다. 점액 자체가 설탕이나 꿀처럼 달콤하게 느껴지고, 담겨있는마나에서다시 한 번달콤함이 느껴진다.
고급초콜릿중에 내부에 과즙을 담아둔것 같은느낌이다.
혹시나 성분을 바꿔서 맛을 다르게 할 수 있나 실험해보았는데,결과는 모호했다.
뭐라 할까…. 짠맛, 단맛, 쓴맛 등등의 맛을 낼 수 있는데 김치맛이라던가민트초코 맛이라던가이런 것은 불가능했다.
아쉽네.이세계민트초코 혁명을통해서 인류를 분열시킬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있으면 먹고 없으면 말고 주의다. 딱히 음식을 가려본 적은 없다.
굳이 찾아서 먹지는 않지만, 주면 거부하지 않고 먹는 느낌.어차피양치하다 치약도 먹는데민트초코를못 먹을이유는 없지. 치약도 먹어보면 은근 맛나다고.
음식 얘기를 하니 음식이 먹고 싶어져서 고민하다가 촉수를 통해서 다른 촉수에 점액으로음식 모양을그려본다.
방금 말한민트초코…. 는못 그리겠고. 사과나포도 등과일 같은것도 그려보고, 피자나만화 고기처럼그리기 쉬운 다른 음식도 그려본다.
예술에 재능은 없지만, 삐뚤빼뚤하더라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지구의 음식들을그리다 보니새삼 즐거워져서 다른 것들도 그려본다.
졸라맨, 한국, 구름, 토성,동양용,별….
의식의 흐름대로 그림을 그리는 것에맛들려서칠판처럼 넓게 촉수를 편 뒤에 촉수수십 개로빼곡히 그림을 그려나갔다.
이 몸으로 다시 태어나고 느끼는 최초의 즐거움.
흥겹게 콧노래를 부르며, 아니 부르려고 하지만 촉수를 진동시켜서 괴상한 소리를 내던 도중에 깨달았다.
그녀가 눈을 떠서 날 쳐다보고 있었다.
흥얼거리며 행복하게 이모티콘을 그리다가 마주친 시선을 보고온몸이굳었다.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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