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했더니 촉수괴물-9화 (9/74)

〈 9화 〉 3. 레이나

* * *

8.

세계수위그드라실 (Yggdrasil).

엘프 종족의 수호나무이자 신.

수만 년, 어쩌면수십만 년동안엘프들을지켜온 거대한 나무는 그들에게 있어서 삶의 의미이자 희망이며 살아갈 터전이고 따뜻한 품을 가진 어머니였다.

어머니 나무.

그녀는 그들을감싸 안으며지켜주었고,엘프들또한 그녀를 위해 매년 춤추고 노래하며 보살펴 주었다.

신과피조물 간의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따뜻한 감정을 나누는 가족.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 관계는 아무런 예고 없이깨어져 버렸다.

외신의 침략.

하늘이 찢어지고 어둠에 물들며 형언하기 힘든 사악한 괴물들이 쏟아져나왔다. 대지는썩어 생명을 잉태할 수 없어지고, 나무는 오염되어 흐느적거렸다.

생명을 거부하는 땅.

공존이란 존재할 수 없는 오로지 파멸을몰고 오는침략자.

엘프들은어떻게든 저항하여 보았지만 긴 생명을 전투가 아닌 문화를꽃피우는 데 바친그들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전선은 밀리고 숲은 썩어들어가며엘프들의피와 눈물이 오염된 땅에 흩뿌려졌다.

세계수또한 외신의 힘에 오염되지 않게 저항하는 것만으로 벅찬 상황.

멸망만을 앞둔 상황. 절망에 빠진 자녀들을 보며 그녀는 결단하였다.

죽음을 무릅쓰더라도 그들을 구하리라.

희박할지라도 생존의 가능성을 발견한 그녀는 오염에 저항하던 힘을 거두고 응축하였다.

순식간에 오염되는그녀의 잎과가지 뿌리들을 보며엘프들은절망하였다.

드디어 끝인가.

`아이들아. 내가 없더라도 너희는 살아가거라. 자연을 가꾸는 정원사들이되거라.`

외신이 넘어온 차원의 틈.

세계수본연의 힘만으로는부족하겠지만, 이미찢겨진차원의 틈은 분명 다른 차원에서부터 넘어온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약해진 차원의방벽을그녀 또한 뚫을 수 있을 터.

온 힘을 다하여 차원의 틈을 찢고, 이 세계에서 최대한 멀리. 자연의 기운이 가득하며 자녀들을 위협할 적이 적은 곳으로.

차원의 통로를 뚫은 그녀는 사라지는 자손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내 마지막 잎사귀까지 물들며 정신을 잃는다.

***

차원이 찢기고 파멸이 찾아온 날.

그녀는 힘없는 어린 엘프였다.

생육의 본능이 낮은엘프들의특성상새로 태어나는 엘프는 매우 적었다.

귀하디귀한어린 엘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그녀는 모두의축복 아래에서행복하게 자랐다.

그 날이 오지 않았다면.

어머니의 희생.

낯선 차원에 떨어진엘프들은목놓아 울었다.

슬픔과 비탄에 빠진 종족의 메아리는 숲을 울리고 대지의 위로를 받았다.

그녀는 울지 않았다.

어머니가 희생한 것은 그들이 약해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엘프들이더 강했더라면, 그들은 지켜낼 수 있었을 것이다.

오랜 평화에 찌들고 긴 수명에 기댄 나태한 삶을 살아간 그들.

같은 종족이지만 미웠다. 한심했다.

내가 어른이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수천 년을살아왔으면서 고작마물들뿐인데 막아내지 못하는 나약한 어른들.

시간이 흐르며엘프들은다시금 터전을 복구하고, 문명을 꽃피웠다.

새로운 차원은 비록 세계수의 비호가 없더라도 새로운 친구들의 도움을 구할 수 있었다.

정령.

자연을 수호하는엘프들과자연의 화신인 정령들의 공생은 이전 못지않은 찬란한 시절을 누릴 수 있게 해주었다.

정령들과 힘을 합쳐 숲을 가꾸어 나가고 생명을 꽃피우는 삶.

그녀는 그것이 너무도 싫었다.

과거를되풀이할것인가? 침략자들이 또 온다면 무너질벼랑 끝의평화.

그들은 그녀였다.

어린 엘프.

모두의 수호를 받으며 안전하게 살아가지만, 정작 아무것도 모르고 지내는 나약한 존재.

동족들에게 항의하고성토해보았지만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직 어려서 판단을잘 못 하는거야.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은 충격이 크구나.어린아이가이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해, 많이 힘들었지.

그저 어리다고무시당하는의견. 어른들은 그들이 가꾸던 나무와도 같았다.

오랜 세월 살아가며 변화하지 않는, 그저 제자리만을 지키는 존재.

그녀는 나무가 아닌, 동물이 되었다.

토끼, 다람쥐, 여우, 늑대, 곰.

강해지고, 강해진다.

오랜 세월이 지나며 기록으로만 남은 마법을 익히고, 정령들과 교감하였다.

엘프들이가장기피하던불의 정령은 그녀에게 있어서 최고의 동반자였다.

내재하여있는폭력성과 파괴적인 힘.

하루하루 수련해가며 그녀는 강해졌다. 나약한 동족들을 뛰어넘는다. 언젠가 다가올 위협에 마주쳤을 때 굴복하지 않고대응할 수 있는 힘을.

엘프들은실전된 마법을 복구하고 더욱 강력한상위 정령들을다루는 그녀를 보며 기뻐하였다.

천재.세계수께서재능을 내려주신 마지막 아이.

그녀는 더욱 분노하고 경멸하였다.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물을 그저 세계수의 축복, 재능으로 판단하는 시선. 겨우수십 년밖에걸리지 않은 노력을수천 년을살면서도 하지 못한꽉 막힌족속들.

시간은 흐르고,더 이상그녀보다 강한 엘프는 존재하지 않았다.

최고 장로들보다뛰어난마법 실력을지니며정령왕과교감을 나누는 그녀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엘프 전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단이 되었다.

다른엘프들은그녀를기피하기시작하였다. 이질적인 존재. 힘을 추구하는 이상한 엘프. 자연을 가꾸는 것이 아닌, 자연을 파괴하는 힘을 다루는 이단아.

강해져야 한다는 그녀의 설득은 이상한 엘프의 헛소리로 치부되었고, 분노한 그녀의 목소리는 인정이 아닌 두려움만을끌어냈다.

그녀는 깨달았다. 그들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파멸이 닥쳐온다면 그저 제자리에서 누군가 도와달라며 기도하며 행운을 빌 것이다.

그래서 떠났다.

숲을 떠나고 나니 마음한구석이허전해졌지만, 이내 두근거리는 심장을 발견하고 놀랐다.

기대감이라는 것을 가지고,희망을 품었다. 새로운 삶에 대한 열망.

세상을 떠돌며 새로운 경험을 겪었다.

욕심 많고 믿을 수 없지만, 언제나 발전을 기도하는 인간.

오로지 강력한 힘을 숭상하는 오크.

작품에 목숨을 바치는 드워프.

타고난 강함으로 자유로운 생활을 영유하는드래곤.

수백 년,수천 년을드넓은 세상에서 살아가며 문명의 발전과 멸망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발견하였다.

차원의 틈.

고향을 멸망시킨 괴물들의 통로.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잊히지않은, 아니 잊을 수 없는 깊은 분노가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피어올랐다.

차원의 틈을 넘어서 모조리 파멸시키리라. 고향을 짓밟은대가를 치르게해줄 것이다.

허나그때의문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시설에서 왔다는 요원들. 그들은 차원의 틈을 감시하고, 대응하는 비밀 조직이라고 소개하였다.

관찰하고, 관리하고, 이내 지배한다.

그들의 이상에 감화되었고, 그녀는 조직에 들어갔다.

새로운 지식, 새로운 만남.

세상으로부터 숨어간 그들은 세상보다 더욱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신뢰를 쌓고, 실적을 쌓아가며 더욱 많은 비밀을 알아갔다.

수천 년을살아간 그녀의 강함과 경험은시설에게있어서도 귀중하고 소중한 일이었다.

마침내 최고 등급의 요원이 된 그녀는 어느 날 연락을 받는다.

차원의 틈을 뚫고 새로 나타난 존재. 그 존재의 강함이 비정상적이니 도움이 필요하다. 부탁한다.

그리고 들었다.

그녀의 고향을 멸망시킨 그들과 같은 차원에서 온 존재.

원수.

복수심에 불타오른 그녀는 시설의 인도에 따라 대상을 제압하였다. 부족했다. 그녀가 가진 복수의 불꽃을 꺼뜨리기엔 너무도 모자랐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이러한 대상을 다루는 것에 전문인 시설에 맡기는 것이 옳다고. 그들의 능력이라면 분명 저 존재를 분석하고 해체하여 굴복시킬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분노의 불꽃은 걷잡을 수 없었다. 타오르는 불씨는수천 년의세월 동안연료를 공급받아왔고, 필요한 순간을 위해 억눌리며 다스려졌다. 억눌려있지만, 꺼지지는 않았다.

억압한 대상이 관리 대상으로 승격되고,활성화된순간,더는용납할 수 없었다.

첫 실험으로 접촉하였다.

불쾌했다. 경멸했다. 증오했다.

나약한 동족은 겨우 저런마물 앞에서무너졌다. 아무런 능력도 없고, 그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나약한 존재.

접촉하였을 때 느껴진 끈적한 점액질과 매끈하고 부드러운 감촉.

고작슬라임 같은강도와 지능을 가진 쓰레기.

정신 오염 능력은 대단하지만, 그것이 전부. 세계수의 비호를 받으며 오염에 영향받지 않았을 동족들이 더욱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들로 느껴졌다.

두 번째실험 예정이 잡혔다.

인명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휴머노이드골렘을투입한다고 한다.

안 된다. 그녀가투입되어야한다. 촉수를 가닥가닥 찢어내고 근원을 뜯어내어 지옥의 불길 속에서 영원히타오르게 하여야한다.

촉수를하나하나뽑아내며 고통의비명소리를들어야 한다.

매일 매시간 매분 매초. 끊임없이 고문하며 그것이 자비를빌 때까지짓밟아야 한다.

그러려면 실험이 실패해야 한다.

그녀라면 가능하다.

개입한다.

시스템을 비튼다.

인식을 비틀고 관리자를 소환한다.

그녀를 부르기 위해.

온갖 정신저항 버프를 받는다.필요 없는데. 타오르는 증오만이 정신을 잠식한다. 겨우 오염에 당할 정도로 정신이 무르지는 않다.

마침내마주 선다.

드디어.

저 증오스러운 존재를.

그리고….

어떻게됐지?

감각이 서서히 돌아온다.

스르륵.

피부를 훑는 감촉. 매끈매끈하면서도 끈적한 느낌에 불쾌감을 느낀다.정신이서서히 각성한다.

어둡고, 어둡다. 빛 한줄기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이지만, 엘프의 눈은 어둠조차 장악한다.

구토감이 밀려온다.

끊임없이 몸부림치는 촉수의 다발들. 굵기와 길이도 제각각인 것들이 서로 얽히고 얽혀 기괴한육벽을이룬다.

끈적한 점액한 방울이이마에 떨어지고 이내 흘러내린다. 고개를 틀어 위를 쳐다보자 역시나 촉수의 벽이 흐르고 있는 천장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스르르륵.

서늘한 촉수의 감촉이 다시 피부로 느껴진다. 천장과 벽이 촉수로 이루어졌다면, 지금 육신은 어디에 위치하는가.

살며시 몸을 내려다보고 끔찍한 광경에 경악한다.

촉수가 가닥가닥 몸을 휘감고 있다.

발목을 감싸고 다리를 지나 허리와 배를 휘감고 올라오는 촉수들.양팔은어느새 촉수에 구속되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고, 손가락 마디마디 사이로 작고 가느다란 촉수들이 먹이를 탐하듯 누빈다.

몸이나다리 등은갑옷과 옷으로 무장하여 촉수들을 방어해내고있지만, 외부로노출되어있는 부위에서는 촉수들이 뱀처럼 기어오르는 감촉이 느껴진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감각.

빛이 들지 않아 시각이 대부분 가려져서 그런것일까 촉수의감촉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진다. 팔에 오돌토돌 소름이 올라오나 그 소름마저 촉수가 탐한다.

온몸에벌레가기어 다니는듯한 느낌과 끈적한 점액에 목욕하는 느낌.

이마에서 흘러내린 점액이 명멸하는 두 눈 사이를 가로지르고 코를 지나 이내 입술을 훔친다.

입을 꾹 닫고 점액이 구강 내부로 침투하는 것을 막는다. 닦아내고 싶어서미치겠지만, 몸이움직이지 않는다. 어쩐 일인지 마력도 일으킬 수 없다.

우욱.

구역질이 나온다. 끼니를 먹고 이 광경을 보았다면 분명 토했을 것이다.허나참는다. 입을 연다면 점액이 들어올 것이고, 점액을 맛본다면 구토감을 참아내는 기분보다 분명 끔찍할 것이다.

허나헛구역질을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몸을 휘감는 촉수가 격렬히 움직인다. 아니, 새로운 촉수 하나가 기어오른다.

순식간에 상반신까지 기어오른 촉수는 다른 촉수들을 비집고 걷어내며 이내 그녀의 시야 앞까지 도달한다.

끈적한 점액질을 뚝뚝 떨어뜨리는 촉수는 그녀를 관찰하듯가만히 멈춰있다가 이내얼굴로 쇄도한다.

예쁘게 앙다문 붉은 입술로 쇄도한 촉수는 거칠게 양 꽃잎을 벌려낸다.

남편을 기다리는 새색시의 얼굴을 꾸미듯 번들거리는 점액이 입술에 발라지며 이후의 즐거움을 위한 준비를 한다.

최대한 닫으려 노력을 하였지만 이내 거스를 수 없는 촉수의 파동은 입술이라는 장벽을 뚫고 입 내부로진입하려 한다.

따뜻한 입속에 들어온 차가운 촉수와 끈적한점액의 감촉.

허나촉수는 새로운관문 앞에서막힌다. 새하얀 이빨의 관문은 감히 더러운 촉수의 침입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아래위로 굳건히 버틴다.

이리 가고저리 가도뚫을 수 없는 하얀 문. 내부로 진입이 막힌 것을 깨닫자 분노한 듯 구강 내부를 탐험한다.

구강 내의 부드러운 점막을 촉수가 탐한다.

부드럽게 어루만지기도 하고 거칠게 쇄도하기도 한다.

촉수가 날뛸수록 끈적한 점액이 사방으로 튀며 내부에 자극을 준다. 촉수가 점액을 휘감으며 이빨을 어루만진다.

칫솔로 양치하듯 점액을 골고루 이빨에 바른다.

그녀는 그 끔찍한 감촉에 몸을 부르르 떤다.

이빨에서부터 입술 뒤까지 끈적한 점액이 차오른다.끊임 없이차오르는 점액은 이내 입술 밖으로까지 새어나간다.

주륵.

입술을 범해진 그녀의 입가에서 한줄기의 액체가 흘러내린다. 그것은 점액일까, 자극당하여 분비한 그녀의 침일까.

모욕과치욕 사이의감각에 얼굴을 붉힌다.허나흘러내리는 액체에 불구하고도 그녀의 모습은 품위를 잃지 않는다.

붉게 물든 얼굴과 입에서 흘러내리는 침처럼 보이는 물줄기. 그러나 눈빛과 표정으로 보이는 싸늘한 분노는 그것이 절대 흥분으로부터 나온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보인다.

거칠게 타오르는 분노보다 억압되어있는 냉정한 분노가 더욱 무서운 법.

육체의 통제권을 되찾기 위해서 다시 한 번 몸부림친다. 팔을 비틀고, 허리를 접고 발로 찬다.

효과가 있는지 속박이 조금 느슨해진다.허나여전히 움직임은 제한된다.

정령을불러보지만, 답신이없다. 이 공간 내에서는 너무나도 힘이 제약되어있다. 언제나 곁을 지켜주던 친구들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나를 다시끌어올려 본다. 감각에 집중한다. 집중력은 금세 풀린다.외면하고 싶어도외면할 수 없는 감각이 입에서 느껴진다.

반응이 없다면 관심을잃을 법한데도불구하고 촉수는 끊임없이 입속을 탐한다. 이빨이 열리는 순간만을 호시탐탐 노린다.

불쾌감.혐오감.토악감.

올라오는 부정적인 감정들과 감각이 참을 수 없는 포화 상태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순간적으로 헛구역질을한 번 더하였다.

우욱.

그 잠깐의 찰나에 벌어진이빨 사이의틈.

아차한 순간 촉수는기회를 잡고 마침내 성문을 돌파한다. 이빨 사이의 미약한틈으로촉수의 끝자락을끼워 넣고, 이내 제 몸을 뒤틀며 틈을 벌려낸다.

마침내 도달한 입내부를 촉수가즐거운 듯 탐방하려 하는 그때.

콰득.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촉수를 내리 깨문다.검격을막아내던 강도를 지닌 것을기억함에도 불구하고, 이빨이 깨지더라도 절대 순순히 내버려둘 수 없었다.

감촉이 이상하다. 분명 유리가 깨지듯 이빨이 깨져나가야했을 텐데, 딱딱한 껍질은이빨 앞에서무너지고 이내 그 속살까지 내준다.

촉수를베어 물은그녀에게 처음 든 생각은 쫀득하다는 느낌이었다.

200년 전쯤공국의다과회에 초대되었을 때 공녀가 내었던 이국의 음식, 떡.

그 과자는 바삭하거나 부드러운 것이 아닌, 새로운 식감이 신기하면서도 너무나도 그녀의 입맛에 잘 맞아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물컹한 감촉의 젤리보다는 단단하면서도 비스킷보다는 부드러운 감촉.

끈적하지만 불쾌하지 않을 정도의 점성을 지닌 그 음식은 처음 베어 물었을때에도, 그것을씹을 때도, 마침내 목으로 넘길때에도그녀에게 큰

머나먼 동방의 특산품이라 구하기 매우 힘든 다과임을 알게 되고 포기하였지만.

그 운명의 순간 이후로도 아주 가끔 맛볼 수 있었던 그 감촉이 느껴진다.

속살까지 파고들어서일까, 점액이 내부로부터 분출한다.

바깥을 휘감던 점액보다 훨씬찐득하고점도 높은 액체. 분수처럼솟아 나온액체를 피하려 했으나 입속은 너무나도 좁았고입안으로튄 점액은 마침내 그녀의 혓바닥에 닿는다.

달콤하면서도 끈적한 맛.

꿀을 농축한 듯한 맛에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순간적으로 일족의 원수인 자의 혐오스러운 외형과 자신이처한상황마저 잊을 만큼.

당혹스럽다. 혼란이 찾아온다.

그리운 고향의 언덕. 그곳을 수놓은 수많은 꽃의 정원. 정령들이 즐겁게 춤추고 노래하며 놀던 아름다운 세계.

친구들과 함께 언덕을거닐다 보면장난기 많은 정령이 가끔 꽃에서 꿀을 따다가 조금이라도 입이 벌어지면 쏜살같이 날아와 먹인 뒤 도망갈때가있었다.

그립고 행복하던 시절.

촉수가 내뱉은 점액은 그 시절의 향수를 일으키는 듯한 달콤하고도 짜릿한 맛이었다.

당혹. 경악.볼쾌. 호기심. 두려움. 의문.

그리고 희미한, 아주 희미한 감정.

만족감.

분명 그녀의 착각일 것이다. 일족의 원수에게 제압되어서 치욕을 겪는 꼴에서 만족을 느낀다니.

그녀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겨우 이런 짓으로 자신을방심시킬요량이라면 착각이다. 상대는 원수. 그것도 정말뼈저릴 절도로강력한 존재.

그런존재가 겨우 촉수를씹었다고 상처를 입고 피를 뿜는 나약함을 가질 리가 없다.

분명히 이점액에는 자신을 파멸시킬 계략이 숨어있을 것이다.

미약. 마약. 독약.

절대 방심하지 않겠다. 삼키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깨물게 유도한 함정이었을 수도 있다. 패착이다.피부 점막만으로흡수되는 성질일 수도 있지만, 그런 성질이라면 이미 늦었다. 그러니 최악을 방지한다.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않고, 정신을 붙잡는다. 자신을 굴복시키려는 의지에 반항한다. 버틴다.

...

...

...

핥짝.

그래도 이미 흘러나온 것들 정도는 맛볼 수 있지 않을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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