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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0화 〉 16. 이미 끝난 싸움(2) (140/152)

〈 140화 〉 16. 이미 끝난 싸움(2)

* * *

한 대를 피우고 온다는 소진 누나는 연이어 담배 세 대를 꼬나물었다.

그 와중에도 안쪽에 시선 한 번 안 주는 게 어지간히도 창피했나 보다.

초조하게 담배를 연거푸 물고 한숨을 푹푹 쉬며 결국 카페로 들어오는 소진 누나의 모습을 나는 창 너머로 가만히 지켜볼 따름이었다.

“미안하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누나가 작게 고개를 숙였다.

“정말로 미안.”

가만히 있는 내 반응이 두려운 것일까, 고개를 숙인 채 다시금 사과를 하는 소진 누나.

나야 뭐라 말해야 될지 몰라서 가만히 있는 것 뿐이지만.

“딱히 미안할 건 없는데……. 일단 고개 좀 들어 봐요.”

“어, 응…….”

내 말에 고개는 들지만 그렇다고 얼굴을 마주칠 정도의 용기는 없는 모양이다.

시선조차 마주치지 못한 채 몸서리치는 누나를 보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일단 물어는 볼게요. 도대체 왜 그런 착각을 한 거예요?”

“그건 뭐, 네가 워낙에 털털한 성격이니까……. 고백이니 그런 거 그냥 낯간지러워서 안 하는 줄 알았지. 그리고 나도 나름대로 만날 때는 어필한 거 같은데…….”

“대체 어느 부분이요?”

“말했잖아. 아무한테나 그러는 거 아니라고…….”

“…….”

“…….”

잠시 이어지는 어색한 침묵.

뭐, 부끄러운 건 이해하는데…….

그래도 할 건 해야지.

“크흠.”

나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누나를 보며 목을 가다듬었다.

“일단은 본론부터 얘기하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 그래.”

그렇게 당황하던 모습을 보이던 것도 찰나.

곧이어 차분해진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소진 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지금 상황은…….”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는 진지한 태도로 대화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

앞서 보여준 짤막한 해프닝과는 반대로 누나와의 대화는 한 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주를 이루는 내용은 당연히 ‘피버 에이전트’의 대표, 김옥희에 대한 비리 건과 그에 관한 진행 상황.

하지만 막상 이야기를 들으니 내 예상 이상으로 일이 커져버린 듯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진행된 상황들을 머릿속으로 대충 정리한 내가 말했다.

“이미 다 끝났다 이거네요?”

현재 대표 김옥희에 대한 비리 건수는 모든 증거를 다 잡고 계좌 추적까지 마친 상태.

더불어 거기에는 김옥희의 애인인 비서 이우진까지 얽히면서 금전적으로 꽤나 복잡하게 얽힌 상태라고 한다.

단순히 장부를 추적하는 것 외에도 내가 전에 말했던 내연관계라는 부분이 증거를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나 뭐라나.

물론 이는 변호사인 소진의 관할이 아닌, 다른 선배 검사 분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결과라고 했다.

“그래.”

눈앞에는 앞서 보여준 당황스러운 모습과는 정반대로 한껏 차분해진 눈빛의 소진 누나가 보였다.

“아마 내일이나 모레 즈음에 9시 뉴스에 뜨지 않을까 싶다.”

“뉴스요?”

“그래.”

“잠깐, 아홉시 뉴스에 올라간다고요?”

“이 자식 세상 물정을 이렇게 모르네. 피버 에이전트 정도면 나름 이름 있는 회사야. 그런 회사의 대가리가 날아가는 마당인데 당연한 거 아냐? 이미 기자회견도 준비하는 모양이던데?”

“그래도 이건 너무 갑작스러운데…….”

“너한테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상황이야 진즉에 다 정리된 거나 마찬가지였어. 전에 건네준 장부랑 이런 저런 정보들 덕분에 말이야. 지금까지 얌전히 있던 건 그 심증을 물증으로 찾으려는 것 때문이었고. 괜히 눈치채서 해외로 튀면 골치 아파지니까.”

“…….”

“곧 있으면 연예계가 난리가 나겠지. 아무튼 이걸로 확실히 끝난 거다.”

이어지는 누나의 말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러고 끝이라고……?’

딱히 후련하다기보다는 허무하달까, 당황스럽달까.

애초에 나야 오늘 하루 보자마자 다 끝이라는 소릴 듣는 입장.

최대한 내색은 안 한다만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지금의 전개는 막상 소설에서 봤을 때는 없던 전개이기도 했고.

애초에 소설에서는 피버 에이전트가 뉴스를 타는 사건 자체가 없었다.

주인공 정기발의 경우에는 김옥희를 성노리개로 삼고, 비서인 이우진을 대신 비서 자리로 들어가 회사의 실세 역할을 했었다.

거기에는 회사 내부의 사정으로 적당히 회사가 굴러가는 방식이었지, 이렇게 회사 자체가 타격을 입는 방식은 절대로 아니었다.

물론 소설 속 내용 그대로 그 할망구를 성노예로 삼는다든가, 그런 걸 원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뉴스 타고 기자회견은 좀…….

너무 스케일이 크지 않나?

‘잠깐만.’

그 순간 떠오르는, 이제는 깊은 관계가 된 여인들 몇 명.

‘설마 회사 쪽에 문제가 생기면 설마 대표님이나 윤화정도 문제 생기는 거 아냐?’

그 생각이 떠오르는 동시에 나는 누나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럼 거기 회사 소속 인원은 어떻게 되는 건데요?”

“그거까진 나도 모르지. 뭐, 이사진 쪽에서 알아서 해결하지 않을까? 대표 해임하고 따로 뽑든가 하겠지. 거기까진 내 알 바 아니지만.”

“회사 이미지는요? 거기 소속으로 일하는 사람들도 한 둘이 아니잖아요.”

“갑자기 왜 이래?”

다급하게 묻는 게 티가 났던 것일까, 나를 보는 소진 누나의 눈매가 좁혀졌다.

“네가 이렇게 하고 싶다고 해서 벌어진 일이잖아. 그런데 반응이 좀 묘하다?”

“막상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거든요. 뉴스니 뭐니 하니까 현실감이……. 좀 없네요.”

“그러면? 나름 이름 있는 연예인도 있는 아이돌 회사에 비리가 터지는데 이 정도도 안 일어날까봐?”

“…….”

“설마 그 정도 각오도 없이 나한테 그런 정보를 까발린 거야? 애초에 이런 짓을 벌여서 네가 원했던 게 뭔데?”

“딱히 뭘 원하고 그랬던 게 아니에요. 잘못된 걸 두고 볼 수 없었을 뿐이죠.”

“정말로?”

마치 내 속을 떠보듯 묻는 누나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소설 속에서 선점한 정보를 미리 이용하고 싶다는 생각이야 뭐, 지금까지 계속 내가 벌인 방식이긴 했다.

그걸 이용해서 여러 여자를 만들고, 지금 눈앞의 나름대로 능력자이자 한 미모 하는 소진과 접점을 만든 것도 그걸 이용한 결과물이지 않은가.

하지만 적어도 나는 소설의 원래 주인공 마냥 음습한 방식으로 이룰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단순히 그 할망구를 성노예로 삼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그것도 크긴 하지만.

“흐음.”

대답이 없는 날 보던 누나의 입꼬리가 흥미롭다는 듯 올라갔다.

이전 장부를 건네줬을 때 보여줬던 그 미소였다.

“여전히 미스테리하네, 현수 너란 녀석은.”

“무슨 말이에요?”

“……아니.”

하지만 그것도 찰나일 뿐.

“이젠 됐다.”

어느덧 나를 바라보는 누나의 표정에는 일말의 미소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금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은 예의 무덤덤한 변호사 박소진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젠 딱히 흥미 가질 이유도 없겠지. 그러니 그냥 서로 윈윈하는 걸로 넘어가자.”

“네?”

“그 출처도 모르는 비리 정보 말이다.”

“그건…….”

“됐어, 말 안 해도 돼. 보아하니 너도 숨기고 싶은 부분인 거 같으니까. 그러니 굳이 안 캐물으련다.”

진짜로 흥미가 없다는 듯 무심한 대답.

그 모습에 내심 안도감이 드는 한편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안 물어본다니까 다행이긴 한데 왜 갑자기 관심이 없어진 거예요?”

내 물음에 누나가 황당하다는 듯 입을 벌렸다.

“……너 진짜 그걸 몰라서 묻냐?”

“네.”

“야이씨, 그럼 앞에서 네가 그렇게 말했는데 뭐하러……!”

순간적으로 성을 내던 것도 잠시, 곧바로 말문을 멈추고 나를 노려보는 누나.

그 격렬한 급발진과 급브레이크에 나는 그저 눈만 끔뻑끔뻑 거릴 뿐이었다.

뭐야, 갑자기 왜 이래?

“후우.”

한동안 나를 노려보던 누나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없이 손을 휙휙 내저었다.

마치 이 얘기는 더 이상 하기 싫다는 것 마냥.

“그 이야기는 됐고, 아무튼 너무 걱정하지 마라. 이미지야 당연히 타격이 가도 회사가 망하거나 하지는 않아.”

“그럴까요?”

“그렇대도. 고작 대표랑 비서 둘 잘렸다고 망할 회사면 진작에 망했어. 너한테 크게 불똥 튈 일은 없을 거다.”

딱히 나한테 불똥 튀는 것 때문에 물어본 건 아니었는데 말이지.

“어차피 이젠 못 돌이켜.”

뭐, 그것도 그렇긴 하지.

이미 소진 누나는 그 선배 검사라는 사람들한테 정보도 다 넘겼고, 사태도 사실상 마무리가 된 상황이라고 했으니까.

이제는 그 마무리를 얼마나 깔끔하게 짓느냐에 달렸을 뿐.

‘그래도 진짜 내일이면 시간이 꽤 빡빡한데.’

그리고 그 마무리라 함은, 당연히 피버 에이전트에 관련된 사람들.

패션몰 대표 최수민, 그리고 에이전트의 간판스타 윤화정.

그 외에도 떠오르는 몇 명의 인물들.

그들을 생각한 나는 곧이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현수야. 그래서 아까 하던 이야기 말인데……. 엥? 너 뭐 해?”

“죄송해요, 누나. 급한 볼일이 있어서.”

“뭐?”

“누나도 이제 급한 일 없죠? 다음에 제가 먼저 연락드릴게요.”

“아니, 그렇긴 한……. 야! 말하다 말고 어디 가?!”

“급한 볼일 끝나면 바로 연락할게요. 그 땐 연락 씹지 말고요.”

“아니, 잠깐, 야, 야!”

“계산은 제가 할게요!”

“지금 그 얘기가 아니잖아! 야! 김현수!”

적어도 이 상황에 얽히게 될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빨리 상황을 알려야 한다.

뉴스니 기자회견이니, 어차피 내일 다 까발려지게 될 거라면 이젠 숨길 필요도 없을 터.

그 에이전트 대표 할망구나 비서한테만 안 들키면 된다.

‘서두르자.’

***

그렇게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그가 계산을 마치고 카페를 나서는 그 사이.

“허.”

그 뒷모습을 멍하니 보던 박소진이 작게 중얼거렸다.

“저 놈 저거, 일부러 정 떼려고 저러나……?”

허무하기 그지없는 그 목소리는, 안타깝게도 현수의 귀에는 들릴 리가 없었다.

“…….”

한동안 멍하니 창문 밖으로 멀어지는 현수를 보던 것도 잠시.

결국 카페에 홀로 남은 소진이 남아 있는 커피를 내려다보았다.

“살면서 남자한테 바람 맞은 적은 없었는데.”

중얼거리는 소진의 머릿속으로 지금까지 남자들과 맺은 관계들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자신이 유혹해서 넘어오지 않은 남자는 없었다.

물론 넘어올 것 같은 남자들 위주로 꼬신 것도 맞다.

나름대로 얼굴에는 자신이 있던 소진이었고, 그렇기에 남자관계에 관해서는 그다지 어렵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자신이 원하면 대부분은 원하는 바에 맞춰 움직여 주었으니까.

잘생긴 남자든 못생긴 남자든 결국 한 번 몸을 섞으면 그 이후는 쉬웠다.

오히려 끝까지 구질구질하게 앵기는 남자들이 귀찮을 지경이었다.

처음 현수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적어도 구질구질하게 굴진 않을 줄 알았으니까.

“반대로 내가 구질구질하게 굴고 있었네.”

미련.

그것은 소진이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쓸쓸하게 웃던 소진이 남은 커피를 쭉 들이켰다.

텁텁하게 남은 커피의 뒷맛이 씁쓸한 기분을 한층 더하는 기분이 들었다.

다 마신 커피를 둔 채로 소진은 한동안 카페를 벗어나지 못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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