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15.5. 좋아하지만 할 수 있다고는 안 했다(6)
* * *
한 번 성에 눈을 뜬 여고생이란 얼마나 무서운가.
하물며 성 관념이 역전된 세계라면 더더욱.
“하앗, 오빠앗…….”
성에 무지했던 여자가 몇 번 살을 맞대는 것만으로 색에 취해 빠져드는 과정은, 몇 번을 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흐응!”
내 것을 삽인한 채 몇 번째인지 모를 절정을 맞이하는 화린.
내 위에 자연스럽게 올라탄 채 몸을 부르르 떠는 게, 방금 전까지 성에 무지했던 여자애가 맞나 싶을 정도다.
“화린아? 조금 쉬다 하면 안 될까?”
“후앗, 조금만 더어…….”
거친 숨결을 내뱉으며 화린이 내 가슴팍에 달라붙었다.
벌써 열 번도 더 넘게 가버린 주제에 아직도 만족하지 못하고 내게 달라붙는 모습은, 퍽 사랑스러우면서도 조금은 곤란한 기분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첫날밤에 이 정도로 왕성한 성욕이라니.
‘누가 그 화연이 동생 아니랄까봐.’
야설 속 여주인공의 동생이라면 역시 닮는다 이건가?
그래도 기왕이면 그거 하나만큼은 닮지 않았으면 했는데.
“흐읏, 그럼 조금만 더…….”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다시금 허리를 들썩이는 화린.
이성과 별개로 내 아랫도리도 본능을 참지 못하고 불끈거리고 있는 느낌을 받으며, 나는 화린 몰래 작게 쓴웃음을 지었다.
보아하니 오늘 밤은 꽤 길어질 거 같네.
“하아앙!”
야릇한 신음을 내지르는 목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이 다시금 요염하게 나를 감싸 안았다.
***
마침내 모든 정사가 끝나고 난 뒤.
“후우.”
침대에 누워 한숨을 내뱉고 있자니 몰캉거리는 감촉이 등 뒤를 살살 간지럽혔다.
나를 끌어안은 채 목덜미에 얼굴을 박은 화린이 숨을 깊게 들이쉬는 게 느껴졌다.
“스으읍……. 하아아.”
“징그러워 임마.”
“아 왜요.”
손을 휘둘러 한 번 내쳐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금 내 몸에 더욱 밀착해 오는 화린.
슬쩍 돌아보니 뭐가 그리 좋은지 실실 웃고 있었다.
“히히.”
“그렇게 좋냐?”
“네. 흐힛.”
“에휴, 뭐 됐다. 좋으면 됐지.”
“……아, 왜요. 너무 달라붙어서 그래요?”
한숨을 쉬는 내 모습에 불안해진 걸까, 화린의 말투가 한층 조심스러워졌다.
그런 것 치고는 여전히 내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지만.
“치. 싫으면 싫다고 하던가. 나도 막 싫다는 거 밀어붙이긴 싫거든요.”
“딱히 싫은 건 아닌데.”
“그런데 왜 그렇게 틱틱거려요?”
“너 몸 좀 섞었다고 기고만장해진 게 왠지 꼴 보기 싫어서 그런다.”
“헐……. 심술 쩌네.”
“그보다 아까는 잘만 즐기더니 갑자기 내 눈치는 왜 보냐.”
“그게 지나고 보니까 너무 나 혼자만 즐긴 거 같기도 하고……. 그, 그리고!”
다시금 슬쩍 내 눈치를 살피던 화린이 소리를 빽 질렀다.
이게 방구 낀 놈이 성낸다는 건가.
“오빠가 자꾸 빼니까 그러잖아요! 침대도 좁은데 왜 자꾸 구석진 곳으로 들어가요?”
“아니, 음…….”
그야 또 하자고 할까봐 그러지.
솔직히 여기서 더 하면 고추 썩을 거 같다고.
“더 안 잡아먹을 테니까 이리로 와요.”
이걸 믿어도 되나?
“에휴. 알았다.”
짧은 고민을 마친 나는 얌전히 몸을 돌려 화린에 품에 들어갔다.
뭐, 들어갔다기보다는 내 덩치를 화린이 필사적으로 안는 느낌에 가까웠지만.
“흐힛.”
나와 얼굴이 마주치자 헤벨레 미소를 짓는 화린.
자그마한 소녀가 성인 남성의 몸을 취하는 듯한 우스꽝스러운 광경에 절로 입가에 쓴웃음이 그려졌다.
애한테 안겨서 이게 뭐하는 짓인지 원.
‘뭐, 이게 보통이겠지.’
그리 생각하다가도 이 세상이 돌아가는 상황을 떠올리면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다 싶었다.
여긴 기본적으로 여자가 정복욕을 가지니까.
이 세계에서 적지 않은 여자들을 안으며 대부분 내가 주도권을 가져오는 상황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다들 처음에는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알아서 스스로 성욕을 채우곤 했다.
미망인, 변호사 누나, 클럽 죽순이, 찐따 대학생 등 처음에는 날 눕히려고 그리 안달을 내지 않았던가.
“그래서 어땠어?”
잡념을 마친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의 화린을 바라보았다.
“이제 좀 만족했어?”
사실 나로서는 화린이 오늘 하룻밤을 나와의 불장난 정도로 여겼으면 했다.
앞으로는 지금껏 몸을 섞은 여자들과 나름대로 진지한 관계를 구축할 예정이었으니까.
‘그럴 거면 아예 냉정하게 끊는 게 맞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변명거리는 있었다.
왜, 원래 세상에서도 한 번 안은 여자는 관심이 덜해지는 남자들이 있지 않은가?
그건 이 세상의 여자도 마찬가지일 터.
그러니 오늘 하루 마음껏 뒹굴게 된다면, 아마 화린도 나에 대한 마음이 조금은 식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지금까지 몸 막 굴리며 지냈는데 마지막 한 번 정도야 어떠냐 하는 마음도 있었고.
음…….
이렇게 보니까 나 진짜 개 쓰레기네.
“…….”
허나 그런 내 기대와는 달리 실실 웃고 있던 화린의 입꼬리가 조금씩 내려가는 게 보였다.
보아하니 이거 오늘 하루만으로 만족 못 하겠다는 느낌인데.
차라리 몇 번 더 대주면 질렸다고 떠나가려나?
그렇게 내가 속으로 계속 쓰레기 같은 생각을 이어가는 사이.
“그럼 제가 역으로 물어볼게요. 오빠는 절 어떻게 보는데요?”
“어?”
생각지도 못한 역공에 도리어 내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엥? 나?”
“네. 저랑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건…….”
“저 이 정도면 꽤 괜찮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리 말하며 자신의 허벅지를 손으로 훑어 내려가는 화린.
내 시선도 자연스레 그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크흠.”
더 하고 싶다는 건……. 확실히 부정 못 하겠네.
소설 속 여주인공의 여동생답게, 화린의 얼굴이나 몸매는 말할 것도 없이 발군이었다.
하물며 최근 운동을 했다는 말마따나 쌔끈한 하반신에 희미하게 복근까지 있는, 그야말로 훌륭하기 그지없는 몸매가 아닌가.
내가 원래 세상의 성욕을 가진 남자인 이상 이 부분에서 불끈거리지 않을 순 없는 노릇이지.
“힛.”
그런 내 욕망을 빠르게 읽은 것일까.
어느덧 시선이 마주친 화린이 자신감 가득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역시 더 하고 싶은 거네요.”
“아니……. 그야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지. 그래도 이런 관계로 계속 지내는 건 아니지 않나 해서.”
“왜요? 저희 언니 때문에요?”
엥?
여기서 화연이 얘기가 왜 나와?
의아해하는 사이 어느덧 화린이 내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오빠……. 저 정말 열심히 했어요.”
“어?”
“오빠가 돌아볼 수 있게 몸도 열심히 가꾸고, 관심 없던 화장품도 고르고, 오빠랑 결혼하면 제가 먹고 살릴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도 해서 나름 괜찮은 대학도 합격했다고요!”
“결혼?!”
“그러니까 언니보다 훨씬 더 좋은 직장도 구할 수 있을 거예요!”
“아, 아니. 잠깐.”
“봐요!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신부감이라고요! 설마 오빠는 이 정도로도 부족해요?”
“어, 음…….”
아니, 잠깐만.
이야기가 너무 빨라서 머리가 안 돌아가.
그래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화린이 이렇게까지 막무가내로 나가는 것도 전혀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이제 막 성인 딱지 단 애라 이런가……. 머릿속이 완전 꽃밭이네.’
예전에 호기심으로 같은 나이대의 남자랑 사귀었다 금방 헤어졌다고 한 화린이다.
이 세계 남자들 특유의 얄팍한 행동으로 금방 지루해져 남자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고도 했고.
그런 상황에서 이 세계 여자들과의 개념과 비슷한 내가 딱 등장하니, 어쩌면 화린의 입장에서는 내가 꽤나 특별하게 보였을지 모르겠다.
하물며 자기 언니한테 은근히 열등감을 느끼는 부분도 날 놓치기 싫은 데에 한 몫 했을 테고.
어떻게든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이 크다 보니 아무렇게나 말을 하고 있을 심산이 컸다.
‘어째 내 스스로 이렇게 평가하자니 엄청 낯부끄럽네…….’
아무튼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화린아, 잠깐만.”
나는 폭주하려는 화린의 말을 끊으며 곧바로 반박했다.
“너는 내가 다른 여자들 만나고 다니는 거 알잖아. 그런데도 결혼하잔 말이 나와?”
“다른 여자들은 아예 눈길도 안 돌아가게 만들면 되죠!”
“……자신감이 있는 건 좋은데 말이야. 그, 다른 건 둘째 치고 만약에 네 말대로 결혼한다고 치면? 그럼 화연이 얼굴은 어떻게 보려고?”
“그건……. 나중에 따로 설득하면 되는 거고요.”
“너 솔직히 별 생각 안 했지.”
“윽! 아, 아니거든요…….”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 화린을 보며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역시 이럴 줄 알았다니까.
여유가 생긴 내가 한층 느긋해진 어조로 물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설마 화연이랑 헤어지라고?”
“누, 누가 그렇게 말했나……. 뭐, 그래도 오빠가 좋으면 대신에 나 선택할 수도 있는 거고…….”
“글쎄다. 애초에 나는 한 명 딱 선택하고 싶은 게 아니라서.”
“으으으……. 그렇다 해도! 꼭 사귄다고 나랑 만나지 말라는 보장 있어요? 그, 모, 몰래 만날 수도 있고!”
“……진심이야?”
“왜요! 어차피 오빠도 다른 여자들 막 만난다면서!”
“그야 그렇게 말은 했다만.”
“그, 그러면 나 한 명 정도 더 느는 정도야…….”
……얘는 자기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지 알고는 있는 건가.
아까는 결혼이니 뭐니 하던 주제에.
“걔들이랑은 상황이 다르지.”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내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다른 여자들은 화연이랑 아무 관계도 없으니까 가능한 거고.”
“저는 동생이라 안 된다 이거에요? 그럼 오늘 밤은 왜 잔 건데요?!”
“네가 꼬셨잖아.”
“윽! 그, 그치만 오빠도 좋다고 생각해서 따라온 거잖아요!”
“음…….”
이거 말하다 보니 나도 말리는 기분이네.
그야 솔직히 기분 좋았고, 또 하고 싶긴 하지만…….
그래도 화린이 얘랑은 하룻밤의 불장난으로 끝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화린아. 조금 진지한 이야기인데 들어볼래?”
거 참, 쪽팔려서 이런 얘기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여기서는 솔직하게 내 생각을 말해야겠네.
갑자기 진지한 얼굴을 한 내 모습에 화린이 불안한지 몸을 움찔 떨었다.
“뭐, 뭐예요. 갑자기 무게를 다 잡고.”
“일단 한 번 들어봐.”
“뭔데요…….”
“화린이 너는 남녀 사이에 친구가 있다고 생각해?”
“그, 글쎄요.”
내 말에 화린이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애초에 이성 친구도 별로 없고.”
“좋아. 그럼 섹파는?”
“네?”
“서로 몸 섞으면서 지내지만 연인 관계는 아닐 경우 말이야.”
“어, 그건…….”
“성적인 관계로 몸을 뒹굴면서 지내는 것, 이걸 친구라고 할 수 있으려나?”
“…….”
“나는 지금 너랑 내 관계가 딱 그 정도라고 봐.”
친구 이상, 연인 미만.
이것이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내가 취해온 스탠스다.
이제는 조금 달라졌지만기본적인 건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어안이 벙벙한 화린을 보며 나는 마저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결혼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결혼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랑 해야 된다고 생각해.”
“…….”
“왜 그런 표정인데.”
“그야 그 헤픈 사람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까…….”
“아무튼 들어봐.”
어째 표정이 영 심상치가 않네.
그렇더라도 하려던 말은 마저 해야겠지.
나는 약간 질린 표정의 화린을 보며 할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나는 결혼이란 건 쉽사리 꺼낼 만한 얘기는 아니라고 보거든? 결혼이란 게 일종의 사회적인 계약이기도 하지만, 그런 계약을 위해서는 서로 믿음이 있어야 되잖아? 단순히 친구 사이의 우정이나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 동하는 순간의 욕정, 뭐 그런 걸 넘어서서 말이야. 그게 사랑이라는 거지.”
“……아, 예.”
“뭐,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이기는 한데…….”
“틀딱 같은 소리 그만하고요.”
트, 틀딱이라니…….
나 아직 20대인데…….
“그래서 결론이 뭔데요?”
“그러니까 나한테 결혼은 이르다 이거지. 내 최소한의 양심이라는 느낌?”
“전혀 이해가 안 가거든요……. 그래서 저랑은 결혼 못 하겠다 이거?”
“애초에 다른 애들이랑도 거기까진 생각 안 해 봤어.”
“흥.”
내 말에 납득이 안 가는지 짜증스레 콧방귀를 끼는 화린.
그러면서도 오히려 날 끌어안은 손길은 여전했다.
“좋아요. 그래도 그 정도면 공평하네요.”
“뭐가 공평하다는 건데…….”
“다른 여자들이랑 마찬가지로 저한테도 기회가 있다는 거 말이에요.”
보아하니 이거 오늘 하루론 절대 안 끝날 모양이네.
답답해진 내가 도리어 되물었다.
“도대체 왜 나한테 그렇게 집착하는 건데? 솔직히 너 정도면 좋다고 할 남자애들 꽤 있지 않아?”
“흐음, 의외로 저 평가가 높았나 보네요.”
“안 그러면 오늘 같이 자지도 않았겠지……. 아무튼, 왜 굳이 나를 그렇게 고집하는 건데? 하물며 헤프게 몸도 굴리는 남자를?”
“딱히 고집부리는 게 아니에요. 좋아했던 게 오빠일 뿐이지.”
“그러니까 왜 나냐고?!”
“꼭 나쁜 이유가 있다고 싫어해야 돼요?”
“엥? 아니, 그렇긴 한데……. 그, 그래도 이유가 있을 거 아냐?”
“드라마틱한 이유가 있어야 돼요? 그냥 좋아하게 됐는걸.”
어…….
그냥 할 말이 없어지는 답변이네.
“아, 정말!”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있는 날 보며 화린이 갑자기 몸을 착 돌렸다.
“됐고! 얘기는 이걸로 끝!”
“어, 잠깐, 아직 얘기 안 끝났……. 야, 야!”
어느덧 아랫도리에 닿은 그녀의 손길.
다급하게 외치는 내 모습에도 화린은 물러설 기색이 없어 보였다.
“이렇게 된 이상 오늘 하루는 오빠가 저한테 푹 빠지게 만들 거예요.”
“……슬슬 동 트는데.”
“뭔 상관이에요.”
“후우…….”
다시금 야릇하게 변해가는 화린의 얼굴을 보며 나는 결국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잘하면 오늘 진짜 고추 썩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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