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 15. 미남은 덮밥을 좋아해(9)
* * *
한바탕 거사를 치른 뒤, 재빠르게 텐트를 정리한 우리는 푹 젖은 몸으로 숙소로 이동했다.
찰박찰박.
노을이 지면서 거리가 주홍빛으로 물들어가는 거리 속, 푹 젖은 슬리퍼가 바닥과 마찰하며 철벅거리는 소리를 냈다.
“흐으으.”
그리고 그 옆에는 티셔츠와 핫팬츠를 입은 채 몸을 떨고 있는 쌔끈한 몸매의 미녀.
점차 어슴푸레해 지는 숙소 건물을 향하며 나는 슬쩍 곁을 바라보았다,
“조금만 참아.”
덜덜 몸을 덜덜 떠는 화연에게 말하지만 정작 그리 말하는 나도 손발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한바탕 정사를 즐기고 식은 몸이 된 상태로 계곡물에 몸을 푹 담가 버렸으니까.
아무리 여름이라도 해가 지니까 쌀쌀하네.
“으, 너무 춥다.”
살살 몸을 떨면서 내게 슬쩍 슬쩍 몸을 갖다 대는 화연.
한 손에 텐트를 비롯한 짐을 들고 있음에도, 화연은 어떻게든 나를 안고자 억지로 내 허리에 손을 두르고 있었다.
내 가슴 한 쪽에 착 달라붙는 화연의 풍만한 가슴이 내 정신을 한층 어지럽혔다.
거 참, 남사스럽게.
“야, 야.”
나도 맘 같아서는 이대로 가고 싶긴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
휙 몸을 돌려 붙어있는 화연의 몸을 가볍게 떼어냈다.
내게서 떨어진 화연이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아, 왜애?”
“길거리에서는 자제하자 좀. 그리고 화린이 보면 어쩌려고 그래.”
“아무도 없는데 뭐 어때. 숙소도 아직 멀고. 걔가 어떻게 보겠어.”
“아니, 야…….”
“추운데 숙소까지만 이렇게 가자.”
완곡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다시 내 허리에 손을 두르는 화연.
“참…….”
“안 돼?”
시선이 마주치자 화연이 애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러고 있으니까 쓰다듬어주길 바라는 강아지 같네.
에휴, 어쩔 수 없지.
“네 맘대로 해라.”
“헤헤.”
내 대답에 허리에 감은 그녀의 손길이 한층 강해졌다.
아오씨, 누군 꼴리는 거 참고 있느라 죽겠는데.
하긴 얘 음란도를 생각하면 얘도 나름 자제하고 있는 걸지도.
허나 그렇다고 이대로 맘 놓고 있다 또 덮쳐지면 나도 곤란하니까.
“야, 너.”
내가 짤막하게 주의라도 줄 심산으로 입을 열었다.
“방금은 진짜 심했던 거 알지?”
“뭐가?”
“시치미 떼지 마. 왜 여기까지 와서 그러냐고. 둘이서 놀러온 것도 아닌데. 화린이 보기 안 미안해?”
“쳇.”
내 말에 화연의 입술이 쭉 튀어나왔다.
“그러는 현수 너도 즐겼으면서.”
음, 그건…….
사실이라 할 말이 없네.
얌전해진 내 모습에 기고만장해진 화연이 재잘거렸다.
“너야말로 평소보다 더 흥분했던 거 아냐? 심지어 아예 몸까지 꽉 짓누르고 말이지. 정신없이 허리 흔들었던 게 누구더라.”
“아니, 너는 밖인데 말을 좀…….”
“아무튼 현수 네가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거칠게 해댔으면서?”
“…….”
이게 자꾸 팩트로 후드려 패네.
“히힛.”
곤란해 하는 내 모습이 웃겼는지 장난스럽게 웃는 화연.
왠지 열 받네.
심술이 난 나는 화연의 옆구리를 검지로 푹 찔렀다.
“꺅.”
“웃지 마 이 년아. 정들어.”
“후후. 정이 든 게 아니라……, 정액이 꽉 들었지.”
“……이게 미쳤나.”
섹드립 치는 거 보니 아주 여유 만만이네.
이거 진짜 괜찮으려나 몰라.
“히힛.”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나를 보는 화연의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다.
붙어있는 자세를 이용해 자신의 엉덩이를 씰룩 흔드는 화연.
마치 내 정액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는 거 같았다.
푹 젖은 반바지 안으로 내 정액이 들어찬 상상을 하는 순간…….
하, 시발.
진짜 미치겠네.
“흐힛, 또 커졌네.”
“……그만 놀려라.”
“왜, 부끄러워?”
“제발 좀…….”
“할 거 다 했으면서 새슴스레 부끄러워 하긴. 이럴 때 보면 너도 남자는 남자네?”
부채질하듯 몸을 비벼대는 화연.
나는 그런 화연의 장난에 주먹을 꽉 쥐었다.
안 그러면 진짜 이 자리에서 그대로 덮쳐버릴 거 같았으니까.
“흐, 좋으면서 앙탈은.”
“아오! 그만 좀 비벼라!”
“싫은데? 계속 할 건데?”
“하아아아…….”
처음에는 그렇게 소심하던 애가 도대체 언제 이렇게 야해진 거냐고…….
이것도 다 내 업보인가?
그렇게 숙소로 돌아가기까지 나는 화연의 육탄공세를 꾹 참아내야 했다.
***
숙소로 돌아온 나와 화연을 맞이한 것은 잔뜩 뿔이 난 화린과 손수 세팅을 마치고 고기를 구워주고 계신 숙소 주인이었다.
“뭐 한다고 이렇게 늦어!”
“허허.”
넉살 좋게 웃던 화연의 삼촌이 고기를 굽던 집게를 든 채 말했다.
“빨리 옷 갈아입고 고기 구운 거 좀 먹거라.”
“죄송합니다. 이렇게까지 해주실 줄은…….”
“으으, 죄송해요 삼촌.”
“괜찮아, 괜찮아. 일단 배고플 텐데 빨리 앉거라. 거기 잘생긴 청년도.”
어차피 나도 좀 거들 생각이었으니까, 하고 넉살 좋게 말하는 주인장.
고마운 한편으로 개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내 옆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화연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치이익
숙소 앞마당에 세팅된 그릴 위로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삼겹살이 자태를 뽐내는 게 보였다.
크, 냄새 뒤지네.
성욕도 채웠으니 이젠 식욕을 채울 차례다 이건가.
“그럼 염치불구하고…….”
“나, 나도.”
고기 굽는 냄새에 나는 물론이고 화연도 금세 부끄러움을 잊고 홀린 듯 자리로 다가갔다.
삼겹살을 우물거리며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화린의 시선이 좀 따갑긴 하지만…….
일단 나도 먹고 봐야지.
“으음, 맛있당.”
그 와중에 분위기를 읽지 못한 화연만이 좋다고 고기를 흡입하고 있다.
나는 좀 적당히 눈치 보면서 먹자.
“한 잔 하시겠는가?”
고기를 먹는 내게로 주인장이 소주를 들었다.
“아, 예. 그럼 조금만.”
“좋구만. 나도 한 잔 따라주게.”
꼴꼴꼴.
소주잔 위로 주인장이 건네준 술이 따라진다.
고기 한 점을 삼킨 뒤 곧바로 소주 한 잔을 훅 넘겼다.
크, 쓰다.
쓴데 어째선지 맛있어.
“나도 한 잔 주게.”
“아, 예.”
곧이어 나도 숙소 주인에게 한 잔.
“크으.”
한 잔 호쾌하게 술을 털어넣은 주인이 곧이어 고기를 한 점 집어먹는 게 보였다.
뭐랄까, 이 사람은 세계 남자 같은 느낌이 안 드네.
오늘 처음 봤는데도 시원시원한 느낌이 넘친다.
술을 한 잔 털어넣은 주인이 날 보며 물었다.
“이름이 현수라고 했지.”
“예.”
“말 편하게 해도 되겠나?”
“예. 괜찮습니다.”
“화연이랑은 이건가?”
그렇게 말하며 슬쩍 내게만 보이게 새끼손가락을 흔드는 화연의 삼촌.
표정에는 기대된다는 듯한 미소가 띄워져 있었다.
“아, 아뇨.”
당혹한 심정을 미처 숨기지도 못한 내가 서둘러 대답했다.
소설 속 히로인의 가족도 뭔가 남다른 건가?
확실히 일반적인 이 세계 남자는 아닌 거 같네.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친구 사이입니다.”
“그래? 흠, 난 이 녀석이 이렇게 훤한 청년을 데리고 왔길래 기대했는데.”
“기대요?”
“저 녀석이 조카가 남자 한 번 못 사귄 쑥맥이라서 말이지.”
“켁, 콜록!”
삼촌의 말에 옆에서 고기를 집어먹던 화연이 돌연 컥컥거렸다.
겨우 고기를 삼킨 화연이 당황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삼촌! 그런 얘기는 왜 해요!”
“흥.”
맞은편에서 그런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화린이 작게 콧방귀를 꼈다.
“이 바보 언니한테 오빠가 아깝죠.”
“음?”
그 순간 화린을 바라보는 주인장의 눈가에 이채롭게 빛났다.
“화린이 너 설마?”
“뭐, 뭐요.”
그제서야 자기가 한 말이 무슨 느낌인지 깨달았는지 삼촌의 시선을 피하는 화린.
“으허허허. 재밌구만, 재밌어.”
그런 화린을 보며 주인이 껄껄 웃었다.
이 사람 눈치가 보통이 아닌데……?
괜히 나까지 긴장이 되는 거 같네.
딱히 화린이랑 나쁜 짓 한 것도 아닌데.
그야 뭐, 조금 꺼림칙한 상황이 있긴 했다만…….
‘술이나 더 마시자.’
긴장감에 괜히 소주 한 잔을 다시 들이키는 사이.
“흠, 자네 그러고 보니 얼굴이 낯이 익구만.”
함께 식사를 하던 주인장이 날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었나?”
“아뇨, 그렇지는…….”
“삼촌이 오빠 TV 나온 거 본 거 아냐?”
“응? 그게 무슨 소리냐.”
아, 그거 때문인가.
확실히 내가 나간 예능 프로가 인기가 있긴 한 모양이네.
“실은…….”
의아해하는 그를 보며 나는 출연한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했다.
그제서야 생각났다는 듯 주인장이 손뼉을 짝 쳤다.
“오, 맞아. 어디서 봤나 했더니. 이야, 연예인이셨구만!”
“딱히 연예인이라 할 정돈 아니고…….”
“예능 나왔으면 연예인이지 뭐 다른 게 연예인인가? 심지어 그 유명한 가수 윤화정과 친구라?”
“하하…….”
“이야, 영광도 이런 영광이 없구만 그래. 나중에 입구에 싸인이라도 해 놓고 가 주겠나?”
“진짜 그 정도 아닙니다……. 그냥 우연찮게 한 번 출연했을 뿐이에요.”
“어쩐지 얼굴 볼 때 범상치 않은 외모다 했다만! 이야, 계 탔어!”
……이 사람 되게 사람 말 안 듣는 스타일이네.
이후로도 나는 살짝 취기가 오른 화연의 삼촌과 왁자지껄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화연의 삼촌은 이 세계 남자답지 않게 호탕한 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대화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이곳이 정조가 바뀐 세계라는 위화감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였다.
덕분에 나는 그와는 재밌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럼 재밌게 놀다 가거라.”
적당히 분위기가 올랐을 즈음 주인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치고 빠질 줄도 아는 사람이네.
“난 슬슬 볼일 보러 가마.”
“더 드시지 않고…….”
“맞아요, 삼촌. 먹고 가요.”
“됐다. 너희들이 사온 걸 내가 어떻게 염치없이 주워 먹니. 그럼 재밌게 놀거라. 거기 잘생긴 청년도.”
“아, 네. 정말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삼촌.”
휘휘 손을 젓더니 털털한 발걸음으로 떠나가는 주인장.
떠들썩한 사람이 훅 사라지니 순식간에 앞마당이 조용해졌다.
화연은 말없이 고기를 흡입하고 있고, 화린은 무언가 생각에 빠졌는지 조용한 상태.
들리는 소리라곤 고기 굽는 소리와 주변의 벌레 소리, 그리고 저 멀리 계곡 너머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물소리 뿐…….
그런 두 사람에게 시선을 돌린 채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좋네.’
커다란 달빛과 반짝이는 별빛을 조명 삼아, 나는 먹는 것을 잠시 멈추고 가만히 한밤중의 청취를 즐겼다.
“오빠.”
그 순간 선명하게 들려오는 화린의 목소리.
조용히 자연 속의 청취를 즐기던 나는 고개를 돌려 화린을 바라보았다.
“응, 화린아.”
“둘이 뭐 한다고 이렇게 늦었어.”
한층 내려간 화린의 목소리.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제서야 화린이 묘하게 화가 난 상태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고 보니 얘 아까 삼촌 있을 때도 뚱한 상태더니.
설마 이미 그 때부터 의심하고 있었던 건가?
“둘이서 뭐 했는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한적하게 느껴지던 분위기가 확 바뀐다.
눈치가 없던 화연마저도 그것을 느꼈는지 갑자기 화린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아니, 그게 그러니까…….”
“어, 그냥 이것저것 정리 좀 하다 보니까 좀 늦었네.”
“아, 그, 그치. 의외로 정리할 게 많더라고. 아하하…….”
어색하게 웃는 화연을 보면서 나는 직감했다.
‘……망했네.’
설마 텐트에서 한 판 뜬 거 들킨 건가.
아니, 화연의 저 모습을 보면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조차 무언가 있음을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래, 너 연기 더럽게 못했었지…….
“……그래요?”
그런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는지 화린의 눈매가 한층 가늘어졌다.
“옷까지 다 적시면서?”
“그건……. 정리하다 보니 좀 더워져서 몸 좀 담갔지.”
“둘 다 올 때 덜덜 떨면서 오던데.”
“어, 그건 오는 도중에 또 몸이 식어서…….”
“다, 다 먹었다!”
어찌저찌 수습하려는 내 말을 끊으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는 화연.
설마 나 버리고 도망가려는 거 아니지?
“나 먼저 들어가 있을게!”
간절하게 바라보는 내 표정에도 불구하고 못 본 척 쌩하니 사라지는 화연.
나는 그런 화연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와, 이걸 진짜 버리고 가네?!
나한테 짬처리를 다 시키면 어떡하라고!
“그, 그럼 우리도 들어갈…….”
“오빠.”
마찬가지로 도망가려는 내 소매를 홱 붙잡는 화린.
옴짝달싹 못한 상태로 나는 다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누가 나 좀 살려줘…….
“둘이서 뭐 했어요.”
“그러니까 그냥 정리…….”
“솔직히 말해요. 어차피 대충 예상하고 있으니까.”
언니도 없으니 이제는 거리낄 것이 없다는 걸까.
직설적인 어조로 말하는 화린을 보며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여기서 내가 뭐라고 말해야 되지……?
“미안.”
한참을 고민한 내 입에서 나온 건 그 한 마디 뿐.
그런 내 말에 화린이 아랫입술을 꽉 깨무는 게 보였다.
숨 막히는 정적 속.
다시 화린이 나를 보더니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아까 언니랑 사귀는 사이 아니랬죠.”
“어?”
“아까 삼촌한테 그랬잖아요. 그냥 친구 사이라고.”
“……아니, 그건.”
“됐어요. 이제 알 거 같네요.”
도대체 뭘 안다는 건지 무서운데.
이대로 있다가는 진짜 나락 가게 생겼는데……?
분한 표정의 화린을 보며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화린아.”
“네.”
“돌아가면 제대로 얘기해줄게.”
“…….”
“정말로. 궁금한 거 있으면 다 제대로 대답해줄 테니까.”
“정말이죠.”
“그래.”
내 확답에 그제서야 조금이나마 표정이 풀리는 화린.
후, 일단은 대충 넘어간 건가.
그런 화린을 보며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찰나.
“……그래도 저 빼놓고 둘이서만 논 건 용서 못 해요.”
싸늘한 음성으로 말하는 화린을 보며 나는 그대로 굳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언니는 그렇게 순둥이인데…….
어떻게 자매가 이렇게 다른 거지?
“나중에 제대로 설명해야 될 거예요.”
“그, 그래.”
“들어가요. 슬슬 추운데.”
그리 말한 화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볼일은 다 끝났다는 마냥.
“하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으로 향하는 화린을 보며 나는 겨우 참았던 한숨을 내쉬었다.
나 지금 놀러 온 거 맞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