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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9화 〉 14. 미필적 고의(5) (119/152)

〈 119화 〉 14. 미필적 고의(5)

* * *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태초의 모습으로 내 옷자락을 잡는 수민.

양팔을 벌린 채로 나는 천천히 그녀가 벗겨주는 것을 즐기기로 했다.

그 무뚝뚝했던 사람이 이제는 내 옷을 벗기는 데 이렇게 열중이라니.

“큭큭.”

낑낑거리며 벨트를 푸는 수민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

그런 내 반응을 본 수민이 불만스러운지 입술을 삐죽였다.

허나 그녀의 불만이 말로 튀어나오는 일은 없었다.

아마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줄 생각인 것이리라.

스르륵.

차례차례로 상의와 하의를 벗기면서 땅으로 떨어지는 내 옷 소리.

마치 그것이 신호인 것 마냥 수민이 나를 부드럽게 밀쳐냈다.

털썩.

뒷걸음질 치던 나는 속옷만 입은 채 그대로 침대에 벌렁 드러누운 자세가 되었다.

그에 맞춰 수민의 탐스러운 육체가 나를 깔아뭉갰다.

그녀의 풍만하고 부드러운 가슴과 내 가슴이 맞닿은 순간, 내 아랫도리는 이 이상 없을 만큼 팽창하고 있었다.

“후후.”

자신의 허벅지에 비벼지는 감각을 느꼈는지, 수민이 날 보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마치 자신이 주도권을 되찾았다는 듯이.

보통 이런 경우에는 남자가 부끄러워하는 게 일반적일 테니 웃은 것일 테지.

뭐, 평소 같으면 여기서 농담이나 하면서 놀렸을 테지만…….

머릿속이 복잡하다보니 그럴 여유가 없다.

……정말 이대로도 괜찮은 걸까?

다른 섹파들과는 다르게 수민은 현재 내 여성 편력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마 내 수많은 여자관계를 폭로하게 된다면, 지금 눈앞에서 나를 유혹하는 수민이라 할지라도 충격을 받을 것이다.

어쩌면 그대로 떠나갈지도 모르고.

물론 여기까지 온 이상 피할 생각은 없다.

차려놓은 밥상, 아니 아예 떠먹여주는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물러나는 건 불가능했다.

오늘 나는 대표, 아니 최수민을 안는다.

그건 기정사실이다.

다만 이 이후의 일은 좀 걱정이 됐다.

적어도 그녀와의 관계가 오늘 하룻밤만으로 끝나길 바라는 건 아니었으니까.

허나 내가 그렇게 내심 속만 썩히는 사이에도 일은 척척 진행되고 있었다.

“현수 씨.”

내 몸을 덮은 채 있던 수민이 문득 입을 열었다.

“그게……. 여기까지 와서 말하는 것도 좀 웃긴 얘긴데.”

방금 전까지의 자신만만했던 기색은 어디로 간 걸까.

갑자기 첫날밤을 겪게 될 소녀 마냥, 그녀의 목소리는 살짝 불안한 기색이었다.

“그, 저는 제대로 제 기분을 표현했지 않습니까.”

“네?”

“그러니까……. 좋아한다고.”

“아.”

“말했다시피 저는 남자 경험이 없습니다…….”

고개를 든 채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수민.

내가 말없이 빤히 바라보자 그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게 보였다.

“그, 그러니……. 제대로 말씀해주시지 않으면 모릅니다.”

……와.

이건 진짜 감탄사가 나오네.

설마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소녀 같은 소리를 할 줄이야.

나름 사회생활 했다는 사람이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순수한 걸까?

그것도 성적 어필이 일상적일 터인 연예계 쪽에서 일하는 사람이?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대표님 나이가 스물 여덟이랬나요?”

“네? 갑자기 그건 왜…….”

“확실히 남자 한 번 못 사귀었단 게 거짓말은 아니었나 보네요.”

“…….”

그제야 내 말 뜻을 파악한 수민이 얼굴을 더욱 붉혔다.

그런 수민을 보며 나는 익살맞게 웃었다.

“뭐, 저는 그런 순수한 면도 싫어하진 않습니다만.”

“취미가 나쁘시군요.”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내 뻔뻔한 대답에 결국 수민도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 정말……. 현수 씨가 이런 사람일 줄은 몰랐습니다.”

“실망하셨나요?”

“그럴 리가요. 그것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분하긴 하지만.”

이 사람 어쩐지 아까부터 엄청 솔직해진 거 같은데.

대놓고 나에 대한 기분을 표현한 뒤로는 줄곧 이런 느낌이다.

“현수 씨. 그, 그래서 대답은…….”

그런 주제에 또 결정적인 데에서는 이렇게 부끄러움도 타고 말이지.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꺅!”

설마 내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설 줄은 몰랐던 걸까.

꽤나 놀란 표정을 지은 수민의 반응을 즐기며 나는 손을 분주히 움직였다.

“하읏!”

오른손으로는 잘록하고 슬림한, 그러나 운동을 꾸준히 한 것이 느껴지는 탄실한 느낌의 허리를, 왼손으로는 탱글거리는 그녀의 오른쪽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그야말로 폭력에 가까울 정도로 탐스러운 육체.

그것을 나는 말없이 음미했다.

“흣, 혀, 현수 씨……!”

예고 없이 시작한 애무에 살짝 달뜬 듯하면서도, 당혹이 섞인 수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까지 와서도 아직 포기를 못 한 건가.

“핫, 자, 잠깐……!”

“대표님 뜻은 알겠는데, 여기서 제가 굳이 말로 할 필요가 있을까요?”

“혀, 현수 씨도 절 원한다는 건, 핫, 알겠어요……. 응, 그치만, 이런 건 말로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꼭 계집……. 아니, 남자애처럼 말하시네요.”

“그, 그런 건……! 읍!”

시끄러운 입을 강제로 틀어막는다.

부드러운 입술이 닿는 것과 동시에 나는 그녀의 입 안을 유린했다.

“으읍! 으으응!”

처음에는 내가 당했지만 이번에는 그 반대.

산뜻한 박하향과 함께 부드러운 그녀의 혀.

내 혀와 수민의 혀가 입 안에서 뱀처럼 서로를 꼬았다가 떨어졌다를 수십 번씩 반복했다.

거칠게 능욕하는 내 혀놀림에 나와 그녀의 타액이 섞인 침 한 방울이 내 가슴팍으로 뚝 떨어졌다.

“으응……!”

기분 좋은 감각 속에서 나와 눈을 맞춘 수민의 눈빛이 살짝 풀렸다.

휘젓고 다니는 내 혀에 맞추듯, 그녀의 혀도 어느새 한층 관능적으로 변해 있었다.

허나 그런 본능과는 별개로, 눈빛에는 아직도 약간의 반항기가 느껴진다.

역시 말로 설명해야 납득해주는 건가.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나는 잡고 있던 그녀의 허리에 힘을 살짝 풀었다.

내가 힘을 풀었음에도 한동안 내 품에 빠진 채, 그녀는 계속해서 내 혀를 음미했다.

“푸핫!”

그렇게 한참 뒤에야 천천히 내게서 떨어지는 그녀.

“하아, 하아…….”

참았던 숨을 내쉬며 수민이 자신의 입술을 손끝으로 살짝 닦았다.

타액으로 얼룩진 자신의 입술을 훑는 모습이 참으로 요염하기 그지없었다.

“대표님.”

내 부름에 멍한 눈빛으로 있던 수민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하으, 네?”

”자꾸 그렇게 안 해본 티내실 겁니까?“

”어……. 그게 무슨.“

”이 정도면 굳이 말로 안 해도 되는 거 아닙니까.“

이해가 안 가는 듯 멍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것도 잠시.

”아!“

점차 제정신으로 돌아온 수민이 눈을 크게 뜨고 상반신을 벌떡 일으켰다.

”하지만!“

“굳이 말로 표현하면 촌스러운 것도 있는 법이라고요.”

“그, 그래도 저는 말로 다 했는데.”

“그건 수민 씨가 귀여우니 괜찮……. 아니, 실수. 대표님이…….”

“……수민 씨?”

찰나의 실수.

허나 그 실수 한 번으로 쾌락에 빠질 듯 말 듯 하던 수민의 표정은 예의 이지적이고 쿨한 미녀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으음, 좀 더 놀리고 싶었는데.

“다시 한 번 말해 주시죠.”

“뭘요?”

“시치미 떼셔도 소용없습니다.”

내 되도 않는 모르쇠에 수민이 피식 웃었다.

“좋군요. 앞으로도 그렇게 이름으로 불러주셨으면 합니다.”

“뭐, 전 별로 상관없긴 한데……. 밖에서 부르긴 좀 그렇지 않을까요?”

“오늘 밤만이라도 좋습니다. 최소한 제대로 할 거면 이름이라도 제대로 불러 주시죠. 그러면 저도 양보하겠습니다.”

“뭘 양보한다는 건가요?”

“그, 그러니까……. 굳이 고백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계속 먼저 고백 타령하는 사람이 말할 때마다 부끄러워하는 건 도대체 뭔데.

뭐, 이것도 나름 괜찮긴 하지만.

“알겠습니다, 수민 씨.”

“씨도 빼고요.”

“그럼 이름만 부르라고요? 존댓말도 없이요?”

“상관없습니다.”

“음……. 아무리 그래도 나이가 있는데 그건 좀.”

“그렇게 말하면 제가 나이가 든 인상이지 않습니까.”

“아니, 뭐. 수민 씨가 저보다 많이 먹은 건 사실이잖아요.”

“씨.”

“네?”

“빼 주세요.”

아.

난 또 갑자기 욕 하는 줄.

순간 당황한 내심을 빠르게 수습하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너무 막 부르면 좀 그렇잖아요. 그냥 수민 씨로 하겠습니다.”

“…….”

“대신 수민 씨는 편하게 현수라고 불러도 돼요.”

불만스럽게 날 내려다보던 수민이 콧김을 흥 내뿜었다.

“칫.”

작게 혀를 차며 내 품에 들어오는 수민.

그러면서도 양 팔로는 내 등을 꽉 끌어안고 있는 게, 말과 행동이 정 반대다.

그런데 자꾸 이런 걸로 말하니까 무슨 컨셉플 하기 전에 서로 컨셉 정하는 거 같네.

나는 컨셉이 아니라 실제 편한 호칭으로 부르자는 것뿐인데.

“그, 아니면 뭐, 다른 호칭도 있는데…….”

얼굴을 마주치지 않은 채 날 안고 있던 수민이 중얼거렸다.

“예, 예를 들면, 누나라던가…….”

“누나요?”

“아, 안 될까……. 요?”

아니, 이 사람은 자기가 반말하자면서 왜 존댓말이야.

행동은 대범하면서 말투는 자꾸 오락가락 하고 있고,

“큭큭…….”

계속 이러는 꼴을 보고 있자니 안 웃을래야 안 웃을 수가 없다.

터지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은 내가 장난스레 대꾸했다.

“알겠습니다. 분부대로 합죠, 누님.”

“누, 누님이 아니라.”

“알았어요, 누나. 이러면 됐죠?”

“……아, 응.”

‘누나’라는 반응에 순간적으로 입꼬리가 씰룩 올라가는 수민.

이전의 쿨하고 이지적인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수민의 표정은 달라져 있었다.

이 사람, 진짜 남자한테는 완전 무방비한 사람이었구나.

나이 먹고 맛 들리는 게 무섭다더니 그건 이 세계도 마찬가지인가.

“그보다 누나.”

“어……?”

“아까 나 후회하게 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거 언제 보여주려고?”

누나라는 말에 정신을 못 차리는 틈을 타 다시 한 번 장난스럽게 말했다.

얄밉게 미소 짓는 날 가만히 보던 수민이 다시 상반신을 쭉 일으켰다.

“……지금.”

“어?”

내가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갑자기 자세를 잡는 수민.

침대에 걸터앉은 내게 살짝 떨어진 수민이 허리를 들었다.

주르륵.

가감 없이 드러난 비부 아래로 투명한 애액이 떨어졌다.

“보여줄게.”

멍하니 있는 나를 향해 수민이 씩 웃었다.

우람한 내 육봉이 톡 튀어나오는 것과 동시에, 그녀가 잘록한 허리를 들었다.

한 손으로 침대에 몸을 지탱한 수민이 남은 한 손으로 내 자지를 꽉 붙잡았다.

아니, 너무 쌔게 잡았는데?!

“잠, 그렇게 꽉 잡으면……!”

“후우…….”

허나 갑자기 집중하기 시작한 수민에게는 이미 내 말이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느새 기승위 직전의 자세를 잡은 채 날 내려다보는 수민.

나는 그런 수민을 불안한 표정으로 올려다볼 따름이었다.

“누, 누나……?”

“각오해.”

날 내려다보며 작게 미소를 짓는 그녀의 미소는 요염하면서도……. 불안했다.

이건 말려야 돼!

“그, 그마……!”

그러나 그런 내 외침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흣!”

내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주저앉는 수민.

곧이어 안쪽으로 육봉이 찔리면서 무언가가 훅 뚫려나갔다.

곧이어 맞닿은 서로의 성기에서 약간의 핏물이 흘러나왔다.

아니, 이 누나 설마 처녀였어?!

“흐아앙!”

통쾌하달지 섬짓하달지 모를 그 감각 속에서, 수민이 고통 섞인 소리를 내질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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