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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화 〉 13. 남자가 인방을 잘함(5) (112/152)

〈 112화 〉 13. 남자가 인방을 잘함(5)

* * *

“자, 복분자 왔고요!”

복분자 병을 든 채 카메라 앞으로 흔드는 지민.

그 요망한 모습에 채팅창이 빠르게 요동쳤다.

­지민이 화끈하네;;

­이게 한지민이지ㅋㅋㅋㅋ

­시청자가 원하는 걸 바로 알아채는 그 녀석……. 그저 갓지민

­이번만큼은 갓지민 ㅇㅈ한다

­그냥 술도 아니고 복분자ㅋㅋㅋㅋㅋ

­빨리 술먹방 가즈아!!!

­울옵빠 취한 모습 보고싶다 이거야ㅋㅋ

­오늘 지민이 맘에 드네ㅋㅋㅋㅋㅋ

­행동력 굳

­한지민 능글거리면서 저 분이랑 노는 거 벌써부터 기대됨ㅋㅋㅋ

“허 참.”

흥분의 도가니가 된 채팅창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 사람들은 그렇게 내가 술 마시는 게 보고 싶은가.

“현수 씨.”

채팅창을 응시하던 지민이 날 보고는 씩 웃었다.

“술은 잘 드세요?”

“어……. 그냥저냥?”

“오올~.”

아슬아슬하게 쥔 병을 흔들며 지민이 능글맞게 말했다.

“보통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잘 마시던데에?”

“진짜 딱 평균만 마십니다. 그보다 갑자기 웬 복분자에요?”

“그냥 맥주나 소주 같은 거 마실 거면 재미없잖아요.”

그런가?

난 잘 모르겠네.

뭐, 방송에 앞서 들은 설명도 있고, 애초에 이런 방송이라는 것도 나오기 전에 짤막하게 봐서 대충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평범하게 맥주 정도만 먹일 줄 알았지.

복분자면 도수도 그리 약하지 않을 텐데.

대표랑 약속 괜찮으려나……?

“오늘은 빠르게 갈게요.”

내심 걱정하는 사이 이미 지민은 완전히 방송 모드로 들어가 있었다.

속사포로 말을 쏟아내면서도 채팅창을 보며 지민이 마우스를 바쁘게 움직였다.

“사실 이건 원래 해 좀 지면 마시려고 준비한 건데, 게스트가 시간이 없다고 하니까요. 오늘은 빠르게 술 먹방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괜찮죠?”

­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

­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

­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

­빨리ㄱㄱ

­우리 지민이 하고싶은 거 다 해

­아니 저기요;; 저 미성년잔데;;

“아, 미성년자 분들은 미안합니다. 나중에 편집해서 따로 올라갈 테니까 그거 보면서 위안 삼아요. 그럼 성인 태그 답니다?”

­에반데;;;

­성인태그 달지 마요 제발

­하 내가 도네를 얼마나 했는데…….

­언니 솔직히 우리 사이에 이러는 건 아니지

­미성년자 무시하네ㅡㅡ

­급식들 다급해지는거 보소ㅋㅋㅋ 개웃기네

­네다급

­ㅋㅋㅋㅋㅋㅋㅋㅋ

­안돼!!

­응 너희만 안 돼~

­나만 아니면 돼~ 꼬우면 나이 더 먹던가~

­급식들 마지막 단말마에 기분이 좋아지네요

­고얀 것들,,,,,,어른들 자리에 어딜 감히,,,,,,낄끼빠빠 모르냐 이놈들아~~!!!!

‘이것도너프해보시지’님이 천 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응 난 엄마 주민번호임 수고]

“쓰읍. 지금 부모님 번호 쓴다는 넌 차단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의구현ㅋㅋㅋㅋㅋㅋㅋ

­그냥 조용히 있으면 넘어갈 걸 도네로 어그로 끌어버리기ㅋㅋㅋㅋㅋ

­엌ㅋㅋ개꿀ㅋㅋㅋ

­번호 도용하는 급식쉑 컷!!!

꾸준히 채팅창을 보며 소통을 하는 와중에도 그녀는 능숙하게 컴퓨터를 조작했다.

그 와중에도 혀는 꾸준히 잘도 굴리면서.

“오케이. 성인방송 달았습니다.”

­급식들 눈물의 바짓가랑이 실패ㅋㅋㅋ

­가차없누ㅋㅋㅋㅋㅋㅋㅋ

­뭐가 이렇게 급한데ㅋㅋㅋ

­근데 빠지긴 많이 빠졌나보네

­ㄹㅇ 이 정도면 옵빠도 내 채팅 읽을 수 있을 듯

그 말에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봐도 채팅창 속도가 확연하게 줄어든 게 보일 정도였으니까.

아쉽다는 듯 입맛을 쩝 다신 지민이 말을 이었다.

“아, 조금 미안한데 어쩔 수가 없는 게 현수 씨가 약속이 있다고 하니까. 원래 잡담도 좀 하다가 술 마시고 그러는데, 뭐 술 마시면서 잡담해도 되잖아요? 원래 술 마시면서 얘기해야 더 진중한 얘기 하고 그러니까.”

‘한지민의일곱번째겨드랑이털’님이 만 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지민님 지민님 이번엔 미션 같은 거 없나요]

“아이고, 만 원 감사합니다! 아, 게스트 미션? 뭐, 나야 좋긴 한데. 그래도 현수 씨도 약속이 있다고 하니까 곤란하거나 너무 올라오면 내가 대신 마시는 걸로 하자고요. 흑장미처럼.”

“아니, 저기.”

“자, 그럼 일단 안주도 있어야겠죠? 안주도 몇 개 시킵시다. 오기 전까지는 대충 과자로 때우고. 괜찮죠?”

“…….”

이 인간 아예 말할 틈도 안 주네.

어이가 없어 멍하니 바라보자 그녀가 잔망스럽게 고개를 기울였다.

“응? 왜 그렇게 보세요? 아, 혹시 먹고 싶은 거 따로 있어요? 에이, 그런 거면 망설이지 말고 딱 말해요. 이 언니 돈 많아.”

“언니 같은 소리 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분 이미 포기한 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울옵빠 경멸하는 표정도 섹시하네……. 하아…….

­내 내면의 마조 본능이 눈을 뜨는 느낌이다

­그와중에 한지민 혼자 눈치 못 채고 나불대는 거 보소ㅋㅋㅋㅋㅋ

­이미 한잔 한거 아니냐ㅋㅋㅋㅋ벌써 텐션 왤캐 높은데ㅋㅋㅋㅋ

‘오늘부터한지민버리고오빠팬’님이 만 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오빠 아까 그 표정 그대로 카메라 좀 봐주세요]

“…….”

“아이고, 또 만 원 후원을!”

시청자나 방장이나 정상이 아니네.

“하아……. 저는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아무거나! 이야, 참 어려운 걸 주문하시네. 하지만 이게 또 남자랑 술 마실 때 묘미거든. 좋아요. 그럼 제 센스를 믿고 따라간다 이거죠? 오케이, 그럼 저는 찜닭으로 가겠습니다. 찜닭 괜찮죠?”

“그러세요…….”

“넵, 그럼 배달시킬게요. 역시 먹을 게 있어야 술을 마시지. 아무리 그래도 남자 분한테 생으로 술 마시게 하는 건 좀 그렇죠? 지금 주문해도 오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겠네. 그러니까 전 잠깐 안주거리 좀 챙겨올게요.”

“……예?”

“대충 얘기 좀 하고 있어요.”

“아니, 뭔 얘길 하라고…….”

“빨리 올게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지민이 뒤도 보지 않고 방을 나섰다.

말은 물론이고 행동마저도 너무 빠른지라 태클을 걸 틈도 없었다.

아니, 나 혼자 뭘 어쩌라고?

홀로 남은 나는 멍하니 채팅창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 여러분. 저 사람 원래 저래요?”

­ㅇㅇ

­우리 지민이가 좀 막무가내 기질이 있음

­재수도 좀 없고

­싸가지가 없긴 하지ㅋㅋ

­가끔 돈지랄도 함ㅋㅋㅋ

­좋은 게 없네ㅋㅋㅋ

­ㅋㅋㅋㅋㅋㅋ

­울옵빠 채팅만 보고 한지민 개 쓰레기로 알겠누ㅋㅋㅋㅋ

번쩍 번쩍 올라오는 채팅창을 보면서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아, 몰라.

인방이라 함은 일단 소통이지.

뭐라도 좋으니까 일단 입이라도 열자.

“그런데 우리 뭔 얘길 하죠?”

­얘기는 무슨 얘기ㅋㅋㅋ

­님은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됨

­레알루다가

­걍 바라만 봐도 좋음ㅋㅋㅋ

­ㄹㅇㅋㅋㅋ 님 진짜 왤캐 잘생김?

­혹시 성형함?

“가, 감사합니다. 성형은 안 했어요.”

­ㅋㅋㅋㅋㅋ쑥쓰러워 하는거 귀여워

­엄마미소 지어지네ㅋㅋㅋㅋㅋㅋ

­미치겠다 진짜ㅋㅋㅋㅋ

­방금 성형 어쩌고 한 놈 쳐내!

­저 미모가 자연미남 ㄷㄷㄷ

­처녀인생 24년……. 처음으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뭔 로맨스 영화 소개 문구임?

­일단 로맨스 영화에 나오는 남자 배우들보다 잘생긴 건 맞는 듯

­ㅇㅈ

­ㅇㅈ

나름대로 나도 얼굴 좀 두꺼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로 띄워주니 아무리 나라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 사람들 진짜 너무 띄워주네.

‘크크루삥뽕’님이 만 원을 후원하였습니다.

[님 님 지민이 오기 전에 몰카 한 번 하는 거 어떠신지]

“몰카? 무슨 몰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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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시고 취한 척하면서 계속 스킨쉽 좀 하는 거임ㅋㅋㅋ 한지민 저거 겉만 번지르르하고 입만 잘 털지 은근히 남자한테 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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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불편하면 안해도 되고용]

“남자한테 약하다고요?”

그건 좀 의외네.

남자 게스트 불러서 방송 종종 하고 그런다기에 남자한테 익숙한 줄 같았는데.

그러니까 미인계, 아니 여기서는 미남계구나.

미남계로 은근히 꼬셔보자 이건가?

흠…….

재밌겠는데?

“알겠어요. 저도 재밌을 거 같고. 술 마시고 좀 올라오는 척 하면서 해 볼게요.”

­크ㅋㅋㅋㅋㅋ상남자ㅋㅋㅋㅋㅋ

­성격 시원시원하네;;

­ㄹㅇ 울옵빠 완전 맨크러쉬 그 자체

­옵빠 사랑해요~

“아니, 그런데 님들아. 자꾸 옵빠 옵빠 그러는 거 너무 부끄러운데. 그냥 이름으로 불러주시면 안 될까요? 제 이름 알잖아요.”

­안됨ㅋㅋ

­절대 안되죠ㅋㅋㅋ

­님 부끄러워 하는거 보는 맛으로 하는건데ㅋㅋㅋㅋ

­울옵빠가 울옵빠지 뭐임ㅋㅋㅋㅋㅋㅋ

­아ㅋㅋㅋㅋㅋㅋ

­인방하면 닉네임은 울옵빠TV로 결정됐네ㅇㅇ

­진짜 인방 해도 될 거 같은데. 예능 보니까 은근히 말도 잘하시는 거 같고

­거기다 말을 잘 안 해서 그렇지 분위기 보면 기도 좀 센 듯

­ㄹㅇ……. 보통 날고 기는 남캠도 한지민 앞에선 힘을 못 쓰던데

­인방하면 바로 구독 할테니까 해주셈ㅜㅜ

­일단 구독자 5만 정도는 금방 넘길 듯ㅇㅇ 그러니까 제발 인방 좀

“그건 생각 좀 해 보고요.”

인방이라.

사실 생각한다고 말은 했다만 아직까지는 굳이 할 마음은 없다.

가뜩이나 문란하게 사는 몸이 아닌가.

여기서 굳이 이목 끄는 일을 주업으로 삼는 건 지양하고 싶다.

괜히 더 피곤해질 수도 있는 여지를 늘리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렇게 한동안 시청자들과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나님, 등장.”

마침내 벌컥 문이 열리며 지민이 요란스럽게 등장했다.

“무슨 얘기 했어요?”

“뭐 한다고 이렇게 늦…….”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나는 하던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브라도 걸치지 않은 듯 돌기가 드러나는 얇은 하얀색 티셔츠 차림.

탐스러운 허벅지가 그대로 노출된, 소위 말하는 돌핀 팬츠.

“…….”

차라리 다 벗은 게 나을 지경인데 이건.

너무 자극적이잖아.

“왜요?”

왜는 뭐가 왜야, 이 년아.

황당해서 말도 잘 안 나올 지경이다.

아무리 역전세계라곤 하지만 이건 너무 나갔잖아.

“거실에서 갈아입으셨어요?”

“네. 그런데요?”

“아니……. 아닙니다. 그런데 옷이 너무 짧은 거 아닌가요.”

“아, 좀 그런가요? 집이라 나도 모르게 그만.”

별 거 아니라는 듯 말하며 자리에 앉는 지민.

가슴골이 그대로 드러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설마 이거 일부러 이러는 건 아니겠지?

­우욱

­우욱씹

­ㅅㅂ 진짜

­돌핀팬츠 뭔데 미친년아

­진짜 존나 더럽누

­아 씹;;;

나와는 다르게 시청자들은 다른 의미로 흥분한 듯했다.

“아 뭐 다 벗은 것도 아니고 왜?”

잔뜩 뿔이 난 채팅을 확인한 지민이 뭐 어떠냐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진짜 어이없네? 님들 진짜 억까 좀 하지 마요. 에바야 진짜.”

­억까 같은 소리 하네ㅋㅋㅋ 뒤질라고ㅋㅋㅋ

­그냥 벗은 게 차라리 나을듯ㅋㅋ

­지랄하지 마셈ㅋㅋㅋ 그렇게 말하면 진짜 벗을지도 모름

­아;;;;; 진짜 생각만 해도 역하누

­쟤 일부러 저러는 거 아님?

­ㄹㅇ 우리 역겹게 하려고 빌드업 치는듯

­^^ㅣ발련 아주 막나가네

­밥먹고 있었는데 ^^ㅣ발

­울옵빠 지금 표정 보셈ㅋㅋㅋㅋ 죽을상ㅋㅋㅋ

­남자 게스트 불러서 그러고 싶냐 지민아

“뭐? 뭐? 현수 씨는 그렇게 속 좁은 사람 아닌데요? 집에서 편하게 입는 거 가지고 태클 거는 사람 아니거든? 이렇게 입어도 괜찮죠, 현수 씨?”

“땡큐죠.”

“네?”

“아, 편한 게 좋다는 얘깁니다. 편한 옷이 짱이죠.”

의아한 그녀를 보며 나는 따봉을 날렸다.

그래, 여기 세계에서 여자 알몸 따위는 별 가치도 없다는 거겠지.

아는데도 불구하고 의식할 때마다 당황하게 된다.

이 정도면 슬슬 익숙해질 때도 된 거 같은데 말이지.

“그렇죠?”

씨익 웃은 지민이 들고 온 과자와 술잔을 책상 앞에 내려놓고는 슬쩍 의자를 내 쪽으로 당겼다.

말 그대로 어깨가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

“자, 그럼!”

술잔을 건네면서 그녀가 내 눈을 마주보았다.

그런 그녀의 눈빛을 보며 열망이 이글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건 방송용 열정인 걸까.

아니면 진짜 날 유혹하려고 저러는 걸까.

“한 잔 하시죠!”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그거야 마시다 보면 알게 되겠지.

건네준 술잔을 받으며 나도 함께 씩 웃었다.

“잘 마실게요.”

기대감이 가득한 그녀의 눈빛을 잠시 본 나는 그대로 한 잔 쭉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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