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 13. 남자가 인방을 잘함(3)
* * *
합방을 하기 위해 잠시 방송을 멈춘 뒤, 우리는 그녀가 방송을 하는 집으로 향하기로 했다.
“타세요.”
주차한 차 앞에서 차 키를 누르며 말하는 지민.
삐빅 소리를 내며 열리는 차 문을 보며 내가 감탄사를 터뜨렸다.
“오…….”
“왜 그러세요?”
“아니, 이거 엄청 비싼 차 같은데요.”
딱히 차에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나도 눈앞의 차가 보통 외제차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외관만 보면 영락없는 슈퍼카잖아 이거.
비까번쩍한 광택도 광택이고, 저 슬림한 자태까지.
직접 이렇게 비싼 차를 눈앞에서 보고 있자니 왜 그렇게 사람들이 차에 열광하는지 조금은 알 거 같은 기분이 든다.
인방 하는 사람들이 돈 많이 번다더니 진짜인가 보네.
“뭐, 그렇게 비싼 건 아니고…….”
내 감탄어린 모습에 으쓱해진 걸까.
입으로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지민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 있었다.
“일단 타세요. 가면서 얘기해요.”
“아, 네.”
능숙하게 운전석에 들어가는 지민의 모습이 참으로 멋있어 보였다.
와, 무슨 차 문이 위로 열리네.
“혹시나 해서 한 번 더 묻는데요.”
보조석에 앉아 세련된 차 내부를 정신없이 둘러보는 사이 지민이 물었다.
“진짜 괜찮으신 거 맞죠?”
“뭐가요?”
“제 방송 나가는 거요. 얼굴도 팔릴 테고.”
“에이, 어차피 이미 TV도 나온 몸인데요 뭘.”
“아니, 뭐. 그것도 그렇고…….”
거기까지 말한 지민이 슬쩍 시선을 돌렸다.
“여자 혼자 사는 집에 오면 현수 씨도 불편하실까 싶어서.”
“아.”
생각해보니 그러네.
여기 세계에서는 남자 혼자 여자 집에 가는 건 좀 그럴 테니까.
물론 나한테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지만.
“괜찮습니다.”
“정말요?”
“네. 이런 방송 처음 하는 거 아니실 거 아니에요. 알아서 잘 해 주시겠죠.”
“그렇게 말하시면야 뭐……. 알겠어요.”
내 대답에 석연찮은 표정으로 지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을 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혹시 모를 스캔들 같은 것에도 나름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뭐, 연예인이나 공중파도 아니고 인방인데 그렇게 신경 쓸 필요가 있나 싶긴 하다만……. 여기서 굳이 그런 얘기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
“그럼 출발할게요.”
곧바로 운전대를 잡고 시동을 켠 지민이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사람 운전도 잘하네.
다른 여자들은 몰라도 일단 지민의 운전 실력은 딱 봐도 엄청 능숙해 보였다.
여기 세계는 여자라고 비교적 운전 못한다거나 그러진 않은가?
“실례지만 현수 씨는 나이가……?”
잡생각을 하는 사이 지민이 시선을 앞에 고정한 채 말문을 열었다.
나는 운전대를 돌리는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
“스물여섯입니다.”
“아, 그럼 제가 동생이네요.”
“몇 살이신데요?”
“스물다섯이요.”
생각보다 나이가 좀 있네?
겉으로만 보면 이제 막 스무 살 정도로 보였는데.
거기다 의외로 성격도 어른스러운 편인 거 같고.
방송할 때는 그렇게 소란을 피우던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차분한 말투다.
예의도 잘 갖추고 있고 말씨도 차분한 편이고.
그리 생각하는 사이 지민이 말문을 이어갔다.
“괜찮다면 편하게 말씀하셔도 돼요.”
“그래도 되나요?”
“네. 그래야 방송 할 때도 자연스러우니까요. 그냥 동생 대하듯이 편하게 말하세요.”
“음……. 좀 편해지면 그럴게요.”
아무리 그래도 오늘 처음 본 사람한테 바로 말 놓고 동생 마냥 대하는 건 좀 그렇단 말이지.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좀 어색하거든.
인싸로 진화를 했다곤 해도 내면의 찐따스러움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네. 그렇게 하세요.”
은근히 선을 긋는 발언에도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는 지민.
역시 생긴 것과는 다르게 어른스러운 모습이다.
“다 왔네요.”
그렇게 지민과 잡담을 하는 사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지민과 함께 차에서 내린 내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은 내가 사는 자취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반 빌라들이 모인 주택가였다.
차가 엄청 좋길래 어디 엄청 좋은 주상복합 같은 데서 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평범한 데서 사는구나.
“들어오세요.”
“아, 네.”
나는 그녀를 따라 살고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거실과 방 하나가 더 있는, 혼자 살기에는 약간 넓은 투룸.
거실을 제외하고 있는 방에는 얼핏 컴퓨터와 침실 등이 비춰 보였다.
밖에서 본 것처럼 집 내부도 평범 그 자체.
뭐, 혼자 살기에 이 정도면 충분하긴 하겠지만…….
조금 의외긴 하다.
“앉으세요. 마실 것 좀 가져올게요.”
거실에 있는 소파로 안내한 지민이 냉장고에서 간단한 음료 두 개를 꺼내 왔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음료를 건네준 지민이 내가 앉은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겨우 2인용 소파인지라 그리 앉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뭔가 좀 부담스럽네.
설마 일부러 이러는 건 아니겠지?
“아, 불편하시면 의자 가져올까요?”
내 시선을 본 지민이 살짝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대놓고 의자 달라고 하면 나만 신경 쓰는 거 같단 말이지.
일부러 신경 쓰지 않는 척 고개를 저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네. 그럼 계속 방송을 비워둘 순 없는 노릇이니까 짧게 설명할게요.”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지민이 설명을 시작했다.
이거 진짜 나만 신경 쓰는 거 같아서 뻘쭘하네.
“사실 크게 설명 드릴 건 없어요. 여기 있다가 제가 부를 때 방에 들어오시면 돼요. 그 외에는 제가 얘기하는 거에 따라오시면 되고요.”
“대본 같은 건 없나 봐요?”
“에이, 인터넷 방송에서 무슨 대본이에요. 그냥 몇 가지 주의사항만 얘기할 거니까 그거만 지켜주시면 돼요. 그 외에는 현수 씨가 편하게 하면 되는 거고.”
“아, 네.”
“사실 주의사항이랄 것도 없어요. 그냥 제 개인 정보는 이름이랑 나이 외에 다른 거 말하지 않으면 되는 거라서. 아, 제 방송은 잘 모르시죠?”
“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일단 보이는 라디오, 줄여서 보라라는 컨셉으로 방송을 하거든요. 보통 저 말고 다른 방송하는 분들 초대해서 같이 방송 자주 하곤 해요. 게스트 불러서 먹고 마시고 노가리 까고 게임 하고 그런 건데…….”
이후로 지민이 하는 설명은 짐작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터넷 방송 정도야 나도 종종 봤으니까.
대충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는 간단한 설명을 듣는 걸로도 충분했다.
“대충 이해했습니다.”
내 대답에 지민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전 방송 준비하고 있을게요.”
“알겠습니다.”
“웬만하면 제가 다 진행할 테니까 그낭 저만 따라오시면 돼요, 아시겠죠?”
자신만 믿으라는 듯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지민.
그런 지민을 나는 잠시 가만히 바라보았다.
“왜 그러세요?”
“뭔가……. 지민 씨가 저보다 더 누나 같네요.”
“네?”
“누나라고 해야 되나? 뭔가 믿음직스럽다고 해야 되나, 그런 느낌이에요.”
“아…….”
내 말에 지민이 한 방 먹은 표정을 지었다.
음, 초면에 이런 말은 좀 그런가?
반응 보아하니 괜히 말한 거 같기도 하고.
“죄송합니다. 갑자기 괜한 소릴 해서.”
“아뇨, 아뇨!”
내 말에 지민이 화들짝 놀라 손사래를 쳤다.
“그냥…….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셔서 좀 놀란 것뿐이에요.”
“다행이네요. 혹시 기분 나빴나 해서.”
“……저로서는 오히려 좀 기쁘달까.”
“네?”
기쁘다고?
뭐가 기쁘다는 거지?
“아하하! 그, 그럼 진짜 준비하러 가 볼게요!”
내가 뭐라 묻기도 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지민이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뛰어갔다.
마치 도망이라도 가듯 후다닥 움직이는 지민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설마 진짜 기분 나빴나?
***
“후우…….”
방으로 들어와 컴퓨터를 키면서 지민이 심호흡을 했다.
머릿속에서는 방금 전 그가 했던 말이 계속 맴돌고 있었다.
“설마 누나 같다는 얘길 들을 줄은…….”
항상 재잘재잘 떠드는 성향 때문일까.
성인이 된 뒤로도 종종 초딩이냐는 소리를 오히려 더 자주 들어왔던 그녀다.
심지어 키도 작은 탓에 진짜 고등학생으로 여긴 사람들도 있었을 정도고.
누군가에게 표현한 적은 없지만, 지민은 자신의 그런 점에 대해 은근히 신경 쓰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함께 방송을 위해 온 사내는 전혀 달랐다.
다소 높은 텐션에 머리 하나는 차이가 날 정도의 신장임에도 그는 올곧이 자신을 성인으로 봐주고 있었다.
심지어 조각상 같이 잘생긴 남자가 말이다.
그것도 저런 얼굴로 덤덤하게 낯부끄러운 소릴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고.
물론 자신도 나름대로 애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자제를 하긴 했다만…….
“으, 안 되지. 집중하자.”
올라가는 입꼬리를 겨우 억누르며 지민이 방송 프로그램을 조작했다.
그와는 일단 일적으로 만남을 가지는 경우다.
거기다 자신처럼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경우에는 괜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일은 최대한 자제하는 게 옳았다.
거기다 현수 그 사람도 괜히 불편해할지 모르는 일이고.
그래, 사적인 감정은 억누르자.
지금은 일이 우선이잖아.
“…….”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지민의 입가에는 어느새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좋아.”
카메라로 자신이 비추는 것을 확인한 지민이 씨익 웃었다.
방금 전과 달리 그야말로 영업용 미소라는 말이 어울리는 표정이었다.
마침내 모든 준비가 끝난 지민이 방송 프로그램을 켰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기다리셨죠?”
얼마 지나지 않아 채팅창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오는 게 보였다.
복잡한 기분을 숨기며 그녀는 사람들과 10여분 가량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분위기가 달구어졌을 즈음.
때가 됐다고 여긴 지민이 드디어 현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오케이. 그럼 다들 많이 기다리셨죠?”
진짜 언제쯤 얘기하나 했다
빨리 울오빠 얼굴 좀 보여줘ㅜㅜ
지민아……. 사실 너 집에 혼자 온 거 아니지?
ㄹㅇ 이렇게 달궈놓고 사실 혼자라고 하면 구독 끊을 거임
빨리 울오빠 보여달라고!!!! 지금 내 팬티 다 젖었다고!!!!!!
ㅁㅊ련들ㅋㅋㅋㅋ
마침 야외 방송에서 보여준 덕인지 채팅창 분위기도 뜨거웠다.
안달이 난 채팅창을 보며 지민이 미소를 지었다.
“알았어요. 지금 얘기할 테니까 조금 기다려 봐요. 지금 처음 본 사람도 있을 거 아냐. 자, 그러면 오늘의 게스트는! 국민 예능 ‘너 혼자 산다’에서 가수 윤화정의 일반인 친구 분으로 등장하신 분이죠. 그런데 일반인이라기엔 존재감이 범상치 않습니다. 출연 건으로 검색어 1위 등극은 물론이고! 시청률도 역대 1위!”
힐끗 등 뒤의 문을 본 지민이 그가 들을 만큼 크게 소리쳤다.
“자, 그럼 오늘의 게스트를 소개합니다! 김현수 씨. 나와 주세요!”
지민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이 벌컥 열리며 현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카메라 앵글 너머로 현수의 모습이 드러났다.
“안녕하세요.”
울 옵빠 왔다!!!!!!!
옵빠!!
끼요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옷
오빠 기다리다 죽을 뻔했어ㅜㅜ
와 시발……. 지민이 저년 10분 동안 야부리 턴 이유가 있었네
ㄹㅇ……. 외모 실화냐? 진짜 세계관 최강 미남이다…….
한지민 저년 전생에 나라구했음? 존나 부럽네 ㅅㅂ
와 진짜 존잘이네
옵빠 여기 좀 봐줘요!!!!
순식간에 물밀 듯이 올라가는 채팅창.
야외 방송 이후로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화력이 오히려 이전보다 더 늘어난 듯했다.
옆에 앉은 현수와 눈인사를 한 지민이 방송 멘트를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 님들. 말해두는데 너무 심한 말은 제제할 거니까 알아두시고요. 평소처럼 매운 채팅 쏟아내는 사람 있으면 영구차단입니다. 아셨죠? 아, 물론 잘생겼다는 건 나도 인정함. 인방 생활하면서 나도 진짜 이렇게 잘생긴 사람 처음 봤다니까. 구라 안치고 방송이 실물을 못 받춰줌. 근데 님들은 이 정도로 잘생긴 사람 못 봤죠? 불쌍한 녀석들 같으니.”
?
아니 또 약올리네 미친련
이래놓고 매운맛 채팅 자제해달래ㅋㅋ 진짜 미친거 아니냐???
지민아……. 어른 놀리는 거 아니다…….
어우 저 기고만장한 표정ㅋㅋㅋㅋ
진짜 딱콩 존나 쌔게 치고 싶누ㅋㅋㅋㅋㅋ
얘 방송 보면서 부러워하긴 처음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 집에 단둘이 있는 거네? ㅁㅊ
설마 방송 늦은 거 설마 그런 이유 때문 아님……?
그런 이유가 뭔데
뭐기는 ㅅㅂㅋㅋㅋ 차단 당하기 싫으니 여기까지함
ㅋㅋㅋㅋㅋㅋ
한지민 해명해
해
명
해
HAE
MYUNG
아니 진짜 선 좀 지키라니까 또 이러네.
뭐, 내가 먼저 놀리긴 했지만.
점차 ‘해명해’라는 말로 도배되는 채팅창을 보면서 지민이 한 마디 하려는 찰나.
“해명? 아, 제가 늦은 이유를 해명해달라는 거죠? 잠시만요.”
“네? 뭘 하시려는…….”
그리 말한 현수가 갑자기 윗도리를 벗기 시작하는 현수.
그러고는 갑자기 가슴 쪽으로 슥 손을 옮기는 게 아닌가.
“헉!”
갑작스런 현수의 행동에 지민이 말릴 생각도 못한 채 그런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