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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화 〉 13. 남자가 인방을 잘함(1) (108/152)

〈 108화 〉 13. 남자가 인방을 잘함(1)

* * *

한지민TV.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인터넷 방송을 운영하는 그녀는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인지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인터넷 방송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만류했던 것도 이제는 옛 말.

현재는 월 평균 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그렇지만 지민이 방송에서 바란 것은 수입 때문만은 아니었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결국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가장 행복한 것 아니겠는가.

원래부터 관심을 받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수민이었기에, 방송으로 돈을 벌게 된 것은 필연에 가까웠다.

그렇게 인기를 얻고 누리게 된,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삶.

자신의 일에 만족하면서, 수민은 그 날도 여느 때와 같이 방송을 켰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캠을 인사를 하는 사이 시청자가 하나 둘 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니루’로 도배되기 시작하는 채팅창을 보면서 지민이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이 맛에 인방을 못 끊는다니까.

‘고르곤졸라발냄새’ 님이 천 원을 후원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뭐함?]

도네이션(dination), 소위 ‘별풍을 쏜다’고 하는 음성 후원을 보낸 시청자의 말을 들으며 지민이 생각하는 시늉을 했다.

“그러게요. 님들 오늘 뭐할까요.”

사실 어떤 식으로 방송을 진행할지 이미 생각해둔 바.

하지만 어그로를 끌 목적으로 일부러 모르는 척 시청자들의 주의를 끄는 지민이었다다.

그런 지민의 의도대로 시청자들의 채팅창에 분노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걸 왜 우리한테 물어봐 미친놈아

­또 방송 날먹하려고 드네

­지 입으로 보라(보이는 라디오)방송 한다는 놈이 오늘 뭐 할까요 ㅇㅈㄹ

­진짜 딱콩 한 대 존나 세게 치고 싶다

“아니 사실 나도 일단 오늘 생각해둔 건 있다고.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임.”

­생각해둔 게 뭔데?

­일단 화장한 거 보니까 어디 나가긴 하려는 모양인데

­야방임? 간만에 야방각?

­야방ㅋㅋㅋㅋ 우리 지민이 또 얼굴 믿고 깝치죠?

­또 남자 꼬시러 가네ㅋㅋㅋ

­솔직히 말하자 지민아 몇 명이나 따먹었냐?

즐거운 마음으로 채팅을 읽던 지민이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방송의 시청자가 늘면 늘수록 이런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었다.

뭐, 가벼운 분위기로 진행하는 건 자신이 추구하는 스타일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건 선 넘었지.

“너는 영구차단이다.”

가차없이 마우스를 클릭하는 지민.

곧바로 차단이 된 시청자를 향해 채팅창이 ㅋㅋㅋ으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버러지 컷!!!

­선 씨게 넘네;;

­요즘 들어 미친놈들 좀 많네

­근데 원래 있던 애들도 정상은 아니라 ㅋㅋ;;

­코건 맞지 ㅇㅇ;;

채팅창에서 보여지는 묘한 분위기 속에서 지민도 무심코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애초에 저런 악질 시청자가 온 것도 자극을 추구하는 방송의 색깔 때문이었으니까.

‘자업자득인 건 맞지.’

고졸이라 그런지 딱히 아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게임을 유별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할 줄 아는 거라고는 현란한 말빨과 친화력 정도?

그래서 방송을 시작할 때 지민은 결정했다.

없는 것을 찾기보다는 있는 걸로 더 잘 해야겠다고.

그렇게 결정한 것이 바로 지금 자신의 방송.

얼굴과 말빨을 믿고 적당히 괜찮은 남성 게스트를 꼬셔서 하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가끔씩 게임이나 각종 다양한 콘텐츠를 하긴 하지만.

“아, 님들. 부탁인데 이번엔 진짜 밖에서 그렇게 하지 마요. 나 이러다 뉴스타면 방송 못해.”

저번 야방 때는 섹스 타령을 하는 음성 도네로 진짜 경찰서 잡혀갈 뻔했다.

그 날을 떠올린 지민이 손까지 싹싹 빌면서 부탁하자 시청자들도 공감의 기색을 보였다.

­하긴 그 때는 좀 심하긴 했어

­ㄹㅇ 경찰이 안 잡아간 게 용함

­지민이 방송 못보면 인절손이지ㅇㅇ;; 이번엔 자제함

­아니 근데 저건 너무 선 넘은 거고 우리는 저렇게 안함

­응 아니야 난 할 거야~

“차단해달라고?”

눈을 번뜩이며 마우스에 손을 올리는 시늉을 보이는 지민.

그와 동시에 후원 알림음이 띠링 울렸다.

‘동탄클럽회대표회장한지민’님이 만 원을 후원하였습니다.

[농담입니다 킹갓제너럴마제스티지민님.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닉보소 씹ㅋㅋㅋ

­악질쉑 차단당할까봐 바로 뇌물 바치는 거 보소ㅋㅋㅋ

“아이고, 만 원 후원! 감사합니다! 뿌잉뿌잉~.”

후원 금액을 본 지민이 양볼에 대고 주먹을 쥔 채 귀여운 척을 했다.

주로 여성 시청자가 많은 방송에서 불쾌함을 느끼는 이 리액션이 도리어 밈이 되어 지민은 자타 모두가 역겹게 여기는 이 리액션을 종종 하곤 했다.

뭐, 이제는 익숙해져서 별 느낌도 없지만.

­그 와중에 돈 바치니까 바로 리액션 박는거 실화냐ㅋㅋㅋ

­자본주의에 굴복한 한지민……. 내 뷰지가 웅장해진다…….

­역 겹 다!

­근데 저거 리액션 ㅈ같은데 계속 보니까 중독성 있음;;

­나 한지민 리액션 1시간 반복영상 일부러 보는데 정상임?

­선생님 그거 정신병이에요……. 의사한테 상담 받으십쇼…….

­솔직히 그거 하면서 자괴감 들지 지민아?

‘응 이젠 아냐.’

그리 말하고픈 것을 참으며 수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오늘은 야방으로 진행할게요. 세팅 좀 해야 되니까 다들 5분 후에 봅시다. 괜찮죠 여러분?”

­ㅇㅋㅇㅋ

­뭐, 상관은 없는데……. 너무 예고도 없이 갑자기 야방을 하네

­안 하던 화장까지 한 이유가 있긴 있었네ㅇㅇ

­근데 아직 클럽 열 시간도 아닌데? 이 시간에 사람 얼마나 있다고

­강남 옵빠들 한지민주의보 발령문자 받을듯ㄷㄷㄷ

“아니, 누가 보면 나 클럽 엄청 자주 가는 줄 알겠네.”

­아닌척ㅋㅋㅋ 어이없누ㅋㅋㅋ

­그러면서 겜방송 할 때 맨날 클럽노래 틀죠?

­그럼 제목에 보라랑 여캠부터 지우고 말해 이자식아

“아, 그건 제목 어그로 끌려고 그냥 쓴 거고. 우리 저번에 연예기획사 무작정 쳐들어가는 콘텐츠 얘기했었잖아. 오늘 그거 해볼 겁니다. 가면 연습생이든 누구든 잘생긴 사람 한두 명 정도는 있을 거 아냐. 진짜 연예인 만나면 씹 대박인 거고. 물론 게스트는 거기서 만난 사람으로 할 거임.”

설명을 마치자 채팅창이 순식간에 찬반 토론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이 새끼 진짜 날로 먹네

­날로 먹는다기엔 야방 자주 했지 않나? 그리고 야방이 먼 날먹임?

­억빠쉑 쳐내!

­억까부터 쳐내!

­저 구독 3개월 했는데 환불 되나요?

­얘한테 구독 3개월한 니 잘못임 ㅅㄱ

­씹노잼일거 같은데

­난 재밌을 거 같은데?

­걍 방에서 겜이나 하면 안됨?

­얘 겜하는 거 볼 바에는 뱅드림 라이브 쇼 보러 간다

­그게 뭔데 씹덕아

­뱅드림은 인정이지ㅋㅋㅋ

채팅창 위로 지민 대충 예상했던 반응들이 올라왔다.

알아서 삼천포로 빠져주는 시청자들의 대화를 보면서 지민이 말했다.

“아 님들 저 한 번만 믿어 봐요. 그리고 이거 님들이 말한 거잖아.”

­니가 믿음을 줬어야 우리가 믿지ㅋㅋㅋ

­또 유튜브 각 잡으려고 하는 거 우리가 모를줄 암?

­ㅋㅋ요즘 유튜브 조회수 달달하지? 생방 보는 시청자는 흑우냐?

­음머~

“됐고, 저 잡담 진짜 여기까지 할게요. 세팅 좀 해야 돼서.”

이 정도면 달구는 정도로는 적당하겠지.

대충 시청자 수가 올라왔다고 생각한 지민이 적당한 시점에서 방송을 끊었다.

커다란 셀카봉에 핸드폰을 끼우고 집을 나온 지민이 자신의 애마에 탑승했다.

“여기서 제일 가까운 기획사가……. 이건가?”

네비게이션을 만지작거리며 오늘 가게 될 연예기획사 하나를 입력하는 지민.

‘피버’까지 검색해 가장 위에 있는 검색어를 바로 클릭했다.

곧바로 위치가 나오는 것을 확인한 지민이 목적지로 운전하기 시작했다.

‘잘 되려나 모르겠네.’

사실 자신만만하게 방송을 진행하긴 했지만 지민도 조금 불안한 상태였다.

애초에 협조를 요청하고 가는 것도 아니고, 최근 들어 컨텐츠가 떨어진지라 시청자들 아이디어만 믿고 무작정 들이대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나마 야외 방송을 종종 하기에 자신만 야부리를 잘 털면 오늘은 적당하게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다음 방송은 뭘 해야 되나.’

사실 지민도 혼자 방송을 못할 정도로 자신의 방송 감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혼자서 방송을 진행하자니 지민도 아이디어가 고갈된 상태였다.

5년째 거의 쉬지도 않고 방송을 하다 보니 심적으로 꽤 지치기도 했고.

그렇다고 이렇게 언제까지고 게스트만 믿고 진행하는 컨텐츠만 할 수도 없는 노릇.

‘오늘 방송 각 좀 보고……. 아니다 싶으면 좀 쉬다 와야겠다.’

결심을 하는 사이 금방 목적지에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 주변 분위기를 살핀 지민이 방송을 키고 셀카봉을 들었다.

“여러분, 도착했습니다!”

무거운 생각과는 달리 방송을 키기 무섭게 가벼운 어조로 발랄하게 말하는 지민.

곧이어 방송에 들어온 시청자들이 하나같이 물음표를 띄우는 게 보였다.

­?

­여기 어디임?

­뭐야 연예기획사 간다며? 사람 너무 안 다니는데? 보통 빠돌이들 막 있지 않나?

­어디 듣보잡 기획사 가서 설레발 치는거 아니냐 이거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지금 제가 있는 곳은 바로……. 요즘 떠오르는 그 회사, 바로 피버 에이전트입니다!”

­?

­???

­?????

­그게 먼데 십덕아

“아니 여러분 피버 에이전트 몰라요? 그 유명한 발라드 가수 윤화정! 한국에서 모르면 간첩이라는 배우 손수희! 그리고 아이돌 ‘캔디즈’까지 만들어낸 기획사인데! 이 사람들을 몰라? 와, 니들 진짜 한국사람 맞냐?”

­아니 모르는 건 아닌데ㅋㅋㅋㅋㅋ시발ㅋㅋㅋㅋㅋ

­기획사 이름까지 우리가 어떻게 아냐고ㅋㅋㅋㅋ

­ㄹㅇㅋㅋㅋ 난 무슨 대형 기획사 가는줄 알았는데 뭔 듣보잡을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지금 말한 거 다 여자 연예인이잖아 야발련아;;

­아ㅋㅋㅋㅋ어이가 없네ㅋㅋㅋㅋㅋ

­미친련인가 진짜???

­우린 잘생긴 오빠들 보고 싶은 거라고!!!!

‘지민대장’님이 천 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지민아……. 아무리 나라도 이건 쉴드 못 쳐주겠다…….]

폭주하기 시작한 채팅창.

심지어 평소 애청자로 익숙한 이름의 시청자 한 명도 회의적인 음성 후원을 보내는 게 들렸다.

“아니 여러분. 일단 좀 제 말 좀 들어봐요.”

지민이 그리 말해도 이미 한 번 폭주한 채팅창은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떠들고 있는 시청자들을 보면서 지민이 급하게 말을 이었다.

“아니 님들. 저희가 지금 연예인 보러 온 겁니까? 어차피 연예인은 못 볼 확률 99퍼센트에요. 그런데 제가 굳이 여기까지 온 이유가 뭐겠습니까? 딱 정보를 입수해서 그렇단 말이거든요. 요즘 여기서 연습생들 꽤 키우고 있대요. 그것도 여러분들이 원하는 남자 연습생들이 많다고.”

­남자? 잘생긴 옵빠들 볼 수 있는 거냐?

­니 연예계에 아는 사람 있었음??

­얘 전에도 연습생 몇 명 데려다가 방송한적 있잖음. 그걸로 대충 주워들었나 보네

­은근히 남자 인맥 있는 새끼……. 근데 아닌 척하는 새끼……. 그래서 더 역겨운 새끼…….

­옵빠들 찌찌파티 보여주면 씹인정한다

­그러면 구라 안치고 구독 1년권 바로 박는다ㅇㅇ

­그래서 옵빠들 언제 볼 수 있는데

‘남자’를 언급한 순간 순식간에 급 반전을 타기 시작하는 채팅창 분위기.

그 모습을 보면서 지민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한결 같은 녀석들 같으니.

“아무튼 저 믿고 좀 기다려 봐요.”

겨우 진정한 채팅창을 뒤로 한 채 지민이 건물 근처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목적은 당연히 괜찮은 남자를 잡아 얘기를 나누는 것.

물론 잘만 되면 게스트로 초대해서 아예 자리 잡고 집에서 방송을 하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연예기획사 근처면 괜찮은 남자도 좀 있겠지.’

하지만 상황은 지민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야방을 시작한 지 약 40분.

이 와중에도 다섯 명이 넘는 남자들을 붙잡고 인터뷰를 시도해 보았지만 생각보다 재밌는 상황으로 흘러가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예상과 달리 주변 남자들의 와꾸도 별 볼일 없었고.

덕분에 방송 민심도 민심대로 개판이 나고 있었다.

­노잼

­노잼

­개씹노잼

­오늘 물 개판이네

­ㄹㅇ

초조해진 지민이 필사적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아, 이대로는 안 되는데…….’

그러던 와중 지민의 시야로 저 멀리 한 남성의 모습이 보였다.

남성의 정체를 확인한 지민이 눈을 부릅떴다.

“어?”

­또 뭔데

­설레발 좀 그만 쳐 제발

­오늘 쫑친거 같은데 그냥 집에 가서 겜이나 하자

­게임? 어림도 없지 바로 뱅드림 라이브티켓 끊음ㅋㅋ

­도대체 그 놈의 뱅드림이 뭔데ㅋㅋㅋ

­씹덕쉑 제발 좀 쳐내!!!

“아니, 님들. 그게 아니라……. 아, 일단 잠깐 기다려 봐요.”

건물을 나서는 남자를 보며 지민이 머리를 재빠르게 굴렸다.

저 얼굴은 분명…….

예능 출연한 그 사람 아냐?

지민도 ‘너 혼자 산다’를 즐겨 보는 애청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런 만큼 지금 눈앞에 보이는 그, 김수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근데 방송 빨인 줄 알았더니……. 실물 진짜 미쳤네.’

지민이 멀리서 걸어가는 현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치 빛이라도 나는 것 같은 얼굴은 물론이고 기럭지도 우월하다 못해 비현실적이라 느껴질 정도로 완벽했다.

거기에 방송에서도 나름 말빨이 괜찮았고.

실제로 시청률도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고 인터넷 뉴스에서 본 기억이 났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방송에 나와 주기라도 한다면?

‘대박 각이다.’

그 순간 지민의 머릿속에서 망설임은 사라졌다.

“자!”

큰 소리로 말하는 자신의 등장에 얼떨떨해 하는 수현의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에 행여라도 놓칠 세라 지민이 종종걸음으로 튀어나갔다.

“드디어 건물에서 한 명 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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