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 11. 나 홀로 여행2(9)
* * *
‘너 혼자 산다’의 구성 방식은 단순히다.
제목 그대로 혼자 사는 연예인의 생활 방식을 보여주는 것을 메인으로 하며, 종종 스튜디오에서 MC들이 게스트와 영상을 보면서 잡담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꾸준히 보지 않는 사람도 한 번 보면 금세 이해할 수 있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 그다지 예능적으로 훌륭하지 않은 가수나 배우도 출연을 꺼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스튜디오에서 MC들이 노가리를 까면서 중간 중간 분위기를 띄워주는 역할을 해 주기 때문이다.
거기에 편집도 최신 인터넷 용어들을 적절하게 버무리면서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며, 젊은 세대도 폭넓게 아우르고 있다.
이로 인해 ‘너 혼자 산다’는 최근 한 물 갔다는 공중파 예능 중에서도 20퍼센트에 달하는 기록적인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재밌네.”
그리고 현재.
나는 그런 프로그램의 시청을 막 마친 와중이었다.
모든 방송이 끝이 나고 광고 프로그램이 흘러나오는 TV를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TV에 나온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몇 번 본 적 있는 프로그램이긴 해도 막상 자신이 나오는 걸 보게 되니 색다른 느낌이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이라는 노래가 왜 나왔는지 조금 이해가 된다고 해야 될까.
이래서 다들 연예인을 동경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보다 스캔들 부분은 무난하게 넘어갔네.’
사실 이번 방송에서 가장 걱정했던 것이 윤화정과의 스캔들 문제였다.
하지만 방송을 보아하니 별 탈 없이 넘어갈 듯 싶었다.
공원에서 나와 운동을 하면서 화정이 스캔들 부분을 시원하게 인정하고 넘어갔기 때문이다.
물론 무슨 특별한 관계는 아니고 친구 관계라는 걸 확실하게 하고 있었다.
스캔들이 터진 나와의 친분을 공중파에서 친구라고 딱 선을 그었으니 언론에서도 더 이상 이 부분을 걸고넘어질 일은 없으리라.
다만 언론에서 무난하게 넘어간다 치더라도…….
내 주변은 한동안 꽤 시끌벅적해질 거 같단 예감이 든단 말이지.
우우웅.
“하아…….”
또 다시 울리는 핸드폰을 보면서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걸로 몇 번째 통화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엔 진짜 안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여보세요…….”
“야, 이놈아!”
액정에 표시된 사람이 다름 아닌 아버지였으니까.
참고로 이 세계로 와서도 가족 간의 관계는 크게 변한 게 없었다.
뭐, 원래 우리 집안에서는 성적인 얘기를 서로 간에 거의 안 하다 보니 내가 못 느끼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만.
굳이 변한 걸로 따진다면 나를 좀 심하게 걱정한다는 거?
“방금 TV 나온 거 너 맞지? 어?”
“보셨어요?”
“그럼 봤지 이놈아! 너는 자식이란 놈이 집 나가서 연락도 변변찮고!”
그거야 괜히 내 생활 알게 되면 복잡해지니까 그러죠…….
호통을 치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그리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가족들 앞에서 지금의 내 생활을 떠벌리고 다닐 생각은 추호도 없다.
미치지 않고서야 지금 내 생활을 가족들한테 말할 수는 없지.
그래도 혹시나 해서 한동안은 최소한만 연락을 주고받는 선에서 끝냈는데, 그게 부메랑이 돼서 지금 돌아올 줄이야.
“우리가 너 tv에 나오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 지금 네 엄마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기나 해?”
“죄송해요. 최근에 너무 바쁘다 보니…….”
“너 어떻게 사는지 우리가 좀 봐야겠다. 도대체 뭔 일을 하고 다니는 거냐?”
“아니, 오는 건 좋은데 오실 때 미리 연락 주세요. 저 여행 간다고 했잖아요. 지금 집에 없어요.”
“여행? 갑자기 또 무슨 여행이야?”
“일 하다가 시간이 널널해져서 홧김에 놀러 왔어요. 지금 제주도거든요.”
“야, 이! 너는 우리한테 말도 안 하고……!”
다시 한 번 버럭 소리를 치던 아버지의 말문이 멈추었다.
아버지가 화를 참듯 한 번 심호흡을 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후, 됐다. 어차피 오늘 바로 본다고 한 것도 아니고. 언제쯤 집에 오는 거냐?”
“아마 모레 쯤……?”
“비행기 표 빨리 잡아서 내일 오거라.”
“예? 하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서 무슨 여행을 더 할 생각을 해! 일단 네 동생부터 네 사는 꼴 보러 보낼 테니까 그리 알아라. 끊는다.”
“아, 아니, 아버지! 잠깐…….”
여느 때처럼 자기 할 말만 하고는 뚝 끊어버리는 아버지.
“하아…….”
끊어진 핸드폰을 보며 나는 다시 한 번 한숨을 푹 쉬었다.
벌써부터 한바탕 파란이 일으킬 조짐이 보이는 거 같다.
그것도 아주 큰 파란이.
***
‘너 혼자 산다’가 방영된 다음 날.
나는 서둘러 여행을 하루 앞당겨 마무리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청률이 31퍼센트라고요?”
“네! 지금 현수 씨 근황 묻는 방송 작가들이 한 둘이 아니라고요!”
방송이 끝나자마자 내게 연락을 준 ‘너 혼자 산다’의 예능PD와 작가의 닦달 때문이었다.
이번 방송이 얼마나 대박이 났는지, 아예 내 얼굴을 보고 다른 예능에 게스트로 나와 달라는 방송국 사람들이 나와의 연락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여행 중이신 건 알고 있습니다만……. 가능하다면 빨리 돌아오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굳이 지금 급하게 갈 필요가 있나요?”
“방송국에서 관심이 있을 때 빠르게 접점을 잡아야 하니까요. 물 들어올 때 저으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약속이야 전화통화로 하면 되잖아요.”
“인맥이 중요한 바닥이다 보니 직접 대면해서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비행기 표가…….”
“교통비는 본사에서 이후에 다 정산해줄 겁니다. 날짜만 된다면 바로 돌아오시죠.”
심지어 그 말수 적고 배려심 깊은 패션몰 대표 최수민마저 전화로 저런 말을 했을 정도니까.
그럼 말 다 했지.
귀찮긴 하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아버지 닦달 때문에 빨리 올라가야 되기도 하고.
사실 연예계 생활에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무시해도 될 일이긴 했다.
앞으로의 생활을 생각한다면 진짜 매몰차게 거절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 아니겠는가.
좀 우유부단한 건 맞지만 아무튼 성급하게 발을 담근 것도 바로 내가 자초한 일.
기왕 발을 들이민 이상 발을 뺄 때는 최대한 조심스러워야겠지.
거기다 이런 상황에서 느긋하게 남은 하루 동안 여행을 즐기기도 힘든 판국이다.
그러니 일단은 최대한 빨리 돌아가는 수밖에.
그렇게 결국 여행 일정을 하루 앞당겨 돌아가는 걸로 수순이 정해졌고, 자고 일어난 나는 곧바로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윤한솔에게는 나중에 서울에서 다시 보자는 간단한 톡만 보냈을 뿐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또 만날 수 있겠지.
그보다 도대체 얼마나 대박이 났길래 다들 그렇게 호들갑인지 모르겠네.
일단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어떻게 되가고 있는 건지부터 알아봐야겠다.
공항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인터넷을 켜고 연예계 기사를 눌렀다.
그러자 ‘너 혼자 산다’에 관련된 기사가 주르륵 나열되기 시작했다.
‘너 혼자 산다’ 최고 시청률인 30퍼센트 돌파
발라드 가수 윤화정 예능 첫 출연! ‘너 혼자 산다’에서 쾌활한 누님으로 매력 발산
‘너 혼자 산다’ 윤화정, 공원에서 육체미 뿜뿜
‘너 혼자 산다’ 윤화정, 의외로 소박한 삶? 2019년 최고 음반판매량을 보여준 그녀의 일상은 어떨까
윤화정, ‘너 혼자 산다’에서 그간의 논란을 종결시키다
‘너 혼자 산다’에 출연한 일반인은 누구?
‘너 혼자 산다’의 그 남자, 사실은 윤화정과 같은 소속사 모델? 아직 끝나지 않은 그녀의 화려한 스캔들
흠, 윤화정이야 그렇다 쳐도 설마 내 얘기가 기사에까지 나올 줄은 몰랐는데.
그보다 기사 숫자는 뭐가 이렇게 많아.
대충 기사를 훑어본 나는 이번에는 평소 자주 가는 사이트에 접속했다.
‘남자들 모인 사이트는 영 못 하겠단 말이지.’
참고로 이 세계 기준으로는 ‘여초 사이트’로 유명한 곳.
이 세계의 남자들이 애용하는 사이트들은 내 기준으로는 도저히 발붙일 수가 없었다.
이모티콘 남발을 해대는 오글거리는 대화들은 물론이고 랜선 너머로도 느껴지는 눈치싸움까지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너 혼자 산다’로 제목을 검색한 나는 곧바로 나오는 글을 클릭했다.
[제목] 와 오늘 너혼자산다 대박ㅋㅋㅋㅋㅋㅋㅋ
[내용] 윤화정 그냥 얌전한 애인 줄 알았는데 입담 개 쩔더라ㅋㅋㅋㅋㅋ
└re: ㄹㅇㅋㅋㅋ 심지어 운동도 잘하고 씹인싸던데
└re: 노래 거의 다 애절한 곡들이라 좀 조용할 줄 알았는데 쾌활한 이미지라 좀 놀라긴 함
└re: 근데 음반 대박나지 않았냐? 집 존나 소박하던데
└re: 그래서 더 호감인 듯. 차도 뭔 경차던데
└re: 씹호감 ㅇㅈ
[제목] 오늘 너혼자산다 보고 윤화정 노래 처음 들어봤는데
[내용] 나 발라드 별로 안 좋아하는데 개 좋더라. 같은 여자한테 설레는 거 첨임
└re: 집에서 장난감 마이크로 노는데도 성량 진짜 미치긴 했더라
└re: 라이브에서도 저 정도로 부름?
└re: 라이브는 걍 비교도 안됨ㅋㅋㅋ 머라이어 캐리도 울고갈 실력임
└re: 머라이어 캐리가 네 친구냐?
└re: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팝 가수랑 국내에서나 인기 있는 가수를 비교를 하네ㅋㅋㅋ 억빠 쳐내!!!
└re: 근데 콘서트 표 지금 살수 있냐?
└re: 응 이미 매진
└re: 원래 팬이었는데 오늘 너혼자산다 때문에 콘서트 암표값 존나 오를 거 같아서 심란함……. 이번 콘서트는 걍 포기해야 할듯
└re: 내가 상회입찰한 표 상회입찰하지 마라 씨발년들아
└re: 나만의 작은 가수가 언제 이렇게……. 진짜 가슴이 웅장해진다
이렇게 커뮤니티의 글들은 윤화정에 대한 얘기가 대부분.
허나 그 와중에는 내 얘기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내 이름으로 검색하자 뜨는 글들을 클릭했다.
[제목] 근데 중간에 운동하면서 같이 뛰던 남자 누구임?
[내용] 이름이 김현수랬나? 진짜 존나 잘생겼더라. 그런 남자한테 박히면 소원이 없겠다.
└re: ㄹㅇ 미쳤음. 앵간한 아이돌 씹어먹는 비주얼ㄷㄷ 몸도 존나 꼴리던데?
└re: 운동할 때 팔뚝에 근육 울룩불룩한 거 씹꼴렸음ㅇㅇ 티비 핥을 뻔했자너
└re: 옵빠……. 나 뷰지가 축축해…….
└re: ㅁㅊ련들ㅋㅋㅋ
└re: 아니 근데 그 얼굴로 일반인이라는데 믿겨짐? 난 뭐 첨에 아이돌 준비하는 사람인줄;;;
└re: 윤화정 소속으로 있는 피버 에이전트 산하 쇼핑몰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함ㅇㅇ
└re: 쇼핑몰 어디?
└re: www.fevershop.com 여기 링크있음. 마침 대문에 딱 모델 일하는 거 있네
└re: 오우야 핏보소 ㄷㄷㄷ 이걸로 딸치는 거 씹건웅
└re: 수현 오빠 날 가져요……. 제 소음순은 오빠 거예요…….
└re: 여기 고소 먹을 새끼들 수두룩하네ㅋㅋ
“…….”
결국 더 보지 못하고 인터넷 창을 닫았다.
진짜 존나 천박하네.
원래 세계에서 여자 얘기를 하는 남자들이 이런 느낌이었구나.
아무튼……. 대충 분위기가 이렇다는 거지.
커뮤니티에서 흥분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있자니 방송국 사람들이 왜 그렇게 닦달인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택시!”
곧바로 택시를 잡아 집으로 향하는 와중에도 계속 커뮤니티와 기사를 확인하면서 동향을 파악했다.
상황이 벌어지고 뭐고 간에 일단 나부터 추스릴 필요가 있었으니까
일단은 씻고 좀 쉰 다음에……. 대표님한테는 오후에 연락해봐야겠다.
그런데 오늘 일요일인데 괜찮은가?
아니, 최대한 빨리 연락 달라고 했으니 역시 연락해야 되나?
그렇게 오늘 하루 일정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살고 있는 빌라에 도착한 찰나.
“엥?”
나는 생각지도 못한 이들을 보고 벙찐 표정을 지었다.
아니, 얘네가 왜 여기 있지?
“오빠!”
“화린아?”
내 모습을 확인하자 와락 품으로 뛰어드는 소녀.
바로 주화린이었다.
“왜 이렇게 늦어요!”
“아니…….”
느닷없이 내 품으로 와락 안기는 화린의 모습에 당황할 새도 없었다.
그런 주화린의 뒤에서 천천히 다가온 언니, 주화연이 애써 미소 짓는 모습이 보였으니까.
“갑자기 미안해.”
“화연이 너도 왔어……?”
“쟤가 너 얼굴 무조건 봐야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씁쓸한 미소를 짓던 화연이 내 품에 안긴 화린을 슬쩍 보고는 말했다.
“너 오늘 도착한다고 하니까 무조건 봐야겠다고 그러더라고.”
그 말에 내 시선도 자연스레 아래로 내려갔다.
여전히 내 품에 꼭 안긴 화린은 아예 얼굴까지 푹 파묻혀 나와는 시선을 마주하지도 않고 있었다.
진짜 애는 애네.
나는 말도 없이 품에 안긴 화린의 등을 토닥이며 화연에게 물었다.
“뭐, 단톡에 온다고는 했는데……. 정확히 몇 시에 온다고는 안 헀잖아. 대체 얼마나 기다린 거야?”
“얼마 안 기다렸어. 한 시간 정도?”
“아니…….”
한 시간이 뉘 집 애 이름도 아니고.
그냥 이렇게 무작정 기다렸다고?
“그럴 거면 전화로 물어보지.”
“연락이 안 되니까 그렇지. 톡도 안 보고.”
“아…….”
생각해보니 집으로 오는 와중에도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몇 번이나 전화를 했었지.
아마 그 때문에 나와 연락하지 못한 모양이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여기까지 와서 날 기다린 걸까.
하지만 일단 그걸 묻기 전에…….
지금 품에 꼭 안겨 떨어질 생각을 안 하는 이 꼬마부터 어떻게 해야겠다.
“화린아, 이제 나 좀 놔줄래?”
“…….”
“화린아?”
내 재촉에 화린이 그제서야 내 품에서 슬그머니 떨어졌다.
날 올려다보며 부루퉁한 표정을 짓는 화린의 표정이 보였다.
“저한테 할 말 없어요, 오빠?”
한참을 뚱한 표정으로 있던 화린이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나는 그런 화린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응. 오랜만이네. 그러고 보니 안 본지 꽤 됐구나.”
“……그게 다예요?”
“오히려 네가 할 말 있는 거 아니었어?”
“쳇.”
작게 혀를 찬 화린이 다시 고개를 홱 돌렸다.
“까먹었어요.”
“엥? 할 말 있어서 여기까지 온 거 아니야?”
“그냥 오빠 얼굴 보고 싶어서 왔어요.”
“갑자기?”
“아, 몰라요!”
아까까지만 해도 꼭 안겨있던 화린이 아예 내 품을 벗어나 몸을 홱 돌렸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더니 참 알다가도 모르겠네.
근데 이 말 여기서도 통하나?
“뭐, 일단은……. 들어가서 얘기하자.”
두 자매를 향해 나는 내 집으로 손짓했다.
그보다 오늘 동생 온다고 했는데.
이거 뭔가 느낌이 싸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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