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 11. 나 홀로 여행2(5)
* * *
나를 깔아뭉갠 채 씩씩 콧김을 내뿜는 한솔.
하와이안 풍 셔츠가 그녀의 거친 손길에 휙 날아가는 게 보였다.
갑자기 성난 황소처럼 들이대는 한솔의 모습에 나는 가만히 누워있을 뿐이었다.
아니, 화가 난 건 이해하는데…….
그래도 사람이 이렇게 확 바뀔 수가 있나?
무슨 삼류 성인만화 스토리 전개도 아니고.
“가만히 있어요!”
“가만히 있잖아요.”
“…….”
“왜요?”
잔뜩 충혈된 눈빛으로 노려보는 한솔을 향해 싱긋 웃어 주었다.
“아니…….”
여유만만한 내 태도에 한솔이 순간 옷을 벗기던 손길을 멈추고 날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한솔 입장에서는 뭐 이런 남자가 다 있나 싶을 거다.
먼저 꼬셨다고는 해도 급작스럽게 덮쳐진 상황에서 나처럼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는 남자가 이상한 거겠지.
실제로 이 세계에서는 여성에 의한 남성 강간이 종종 일어나는 모양이고,
“……젠장.”
멍하니 날 바라보던 것도 잠시.
곧이어 정신을 차린 한솔이 내 바짓가랑이를 잡아 벗겼다,
그러자 얇은 팬티만으로는 숨길 수 없는 우람한 거근이 본색을 드러냈다.
“…….”
팬티 너머로도 보이는 위엄에 놀란 탓일까.
거칠게 바지를 벗긴 한솔이 순간적으로 멍하니 내 아랫도리를 바라보았다.
음, 아무리 나라도 그렇게 쳐다보면 부끄러운데.
“어, 엄청 굵어…….”
어째 내 것만 보면 여자들 반응이 다 하나같이 똑같단 말이지.
“이, 이런 건 처음 보는데…….”
황소 같았던 기색이 무색하게 다시 한솔이 다시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한솔을 보며 다시 장난기가 발동하는 걸 느꼈다.
“처음이라면 전에는 꽤 많이 봤나 봐요?”
“네? 아, 아니, 그게……. 실제로 본 게 아니라……!”
“아, 야동요?”
“힉!”
“하긴, 야동에서도 이런 건 못 봤겠네요. 제가 웬만한 배우들보단 클 테니까.”
“……딸꾹.”
태연히 말을 잇는 내 모습에 아예 딸꾹질까지 하기 시작하는 한솔.
말문을 잃은 채 멍하니 있는 그녀를 보며 얌전히 기다렸다.
한참을 날 보던 한솔이 겨우 입을 열었다.
“어, 어떻게……! 어떻게 그런 얘길 태연하게 하는 거예요!”
“왜요? 저도 야동 정도는 봐요. 남자는 야동도 안 보는 줄 알았어요?”
“그, 그렇다 해도……. 나, 남자가 그런 소릴 아무렇지 않게……!”
“제가 내숭 떠는 건 싫어해서요.”
“아, 아니…….”
황당하다는 듯 날 보던 것도 잠시.
“제, 제기랄!”
문득 얼굴색이 확 바뀐 한솔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거 참 감정기복이 확실한 친구일세.
“왜 자꾸 욕을 해요.”
“이, 이런……. 이런 게 아닌데……!”
“뭐가요?”
“…….”
내 물음에 한솔은 분한 표정만 지을 뿐 별달리 대꾸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대꾸하지 못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대충 무슨 심리인지는 나도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아마 처녀라도 나름대로 주도권을 잡고 싶었던 게 아닐까?
원래 세계에서의 남자라는 생물이 딱 그랬으니까.
여자 앞에서는 자존심에 죽고 사는 게 바로 남자라는 생물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여기서는 그게 반대로 적용이 되는 거고.
원래 세계 남자들의 자존심이 역으로 적용됐다는 걸 생각해본다면, 한솔의 반응도 아주 이해 못할 건 아니었다.
이곳에서 나는 성적으로는 수동적인 역할이고, 그녀는 능동적인 역할이니까.
아마 저 욕설도 지금의 내 여유작작한 모습과 자신의 초조한 기분으로 인한 반감이겠지.
그래.
이 오빠는 다 이해한단다.
“젠장, 젠장!”
내심 측은하게 여기는 사이 욕설을 내뱉은 한솔이 내 팬티를 거침없이 벗겨냈다.
팬티가 벗겨짐과 동시에 참을 수 없다는 듯 내 거근이 벌떡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한솔이 전투적으로 내 자지에 달려들었다.
“하읍!”
내가 뭐라 말할 틈도 주지 않은 채 내 것을 입 안에 쑤셔 넣는 한솔.
참고로 그냥 입에 넣은 게 아니다.
말 그대로 ‘쑤셔 넣은’ 거다.
그것도 경험 한 번 없는 처녀가 말이다.
“으악!”
그녀의 급작스런 행동에 나로서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펠라치오라는 건 경험 없는 여자가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게 아니다.
이빨에라도 닿는 순간 남자로서는 서늘한 기분이 들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나름 기교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게 주의가 필요한 행동을 한솔은 지금 대담하게 내 동의도 없이 훅 들어온 것이다.
그것도 경험 한 번 없는 처녀가.
“자, 잠깐! 잠깐만요!”
“으읍?!”
이빨이 닿는 서늘한 느낌에 서둘러 한솔의 고개를 떼어냈다.
내 힘에 못 이겨 물러나는 한솔의 이빨이 음경에 스치면서 아찔함을 자아냈다.
“허윽!”
순간적으로 단두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와, 시발.
진짜 고자 되는 줄 알았네.
“저, 저기요…….”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 타일렀다.
“그, 의욕이 넘치는 건 좋은데……. 잘 모르면 억지로 하지 마요.”
“네?”
“입으로 하는 거 말이에요. 아무렇게나 하면 남자는 놀란단 말이에요. 급소라고요, 급소.”
“……?”
내 설명에도 불구하고 한솔은 이해하지 못한 듯 날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미치겠네 진짜.
이래서 망가나 야동으로 배운 아다들은 안 된다는 거다.
제발 좀 집 밖에도 나가고!
이성도 만나고 해라고!
……이게 개구리 올챙이 적 시절 기억 못 한다는 건가.
“제, 제가 뭐 잘못했나요……?”
내 비명에 풀 악셀을 밟던 한솔의 기가 다시 한 번 푹 죽었다.
불안한 표정으로 날 보는 한솔의 모습에 애써 웃음 지었다.
“아뇨. 잘 하고 있어요. 괜찮아요.”
“…….”
“괜찮아요, 정말로.”
불안한 표정의 한솔을 보던 내가 얼굴을 꼭 끌어안았다.
“크흑……!”
그 순간.
한솔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게 아닌가.
“흐으윽……!”
아니, 왜 또 갑자기 울고 지랄이야!
롤러코스터도 이거보단 덜 역동적이겠다!
“저, 저기요? 한솔 씨……?”
“으흑!”
가슴팍이 축축해지는 감각에 나는 다시 한 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또 뭔데…….
“자, 자. 뚝! 그만 울어요.”
“흐어어엉……!”
본격적으로 달래주기 시작하자 한솔이 아예 내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진짜 레전드네.
뭔 섹스 한 번 하기가 이렇게 힘드냐.
아마 아이를 가진 부모가 이런 심정이지 않을까 싶다.
“괜찮아요, 괜찮아…….”
“흐윽, 흐으으윽……!”
그렇게 나는 한솔을 꾹 안은 채 한동안 달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이후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히끅…….”
훌쩍이는 소리가 잦아들고 마침내 대화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판단한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한솔 씨…….”
“흐윽……. 네에…….”
와, 눈 퉁퉁 부은 거 봐.
진짜 제대로 울었네.
“그게……. 일단 물어보겠는데. 갑자기 울기는 왜 운거예요?”
“흑, 하, 한심해서…….”
“뭐가요?”
“저, 저도 여잔데, 히끅! 이런 것도 남자한테, 흐윽! 배워야 되는 제 자신이……. 흑, 한심해서……. 흐윽……!”
“아, 잠깐!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울어요!”
“히끅! 흐윽!”
간곡히 부탁하자 한솔이 필사적으로 다시 나오려는 울음을 참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아예 콧물까지 흐르려고 한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한솔의 코를 살짝 쥐며 말했다.
“자, 흥! 해요.”
샤워실이니까 조금 있다 씻으면 되겠지…….
“허허…….”
이젠 나도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색즉시공 공즉시색.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로다.
“훌쩍……. 킁!”
이제는 부끄러움도 없어진 것인지 한솔은 아예 대놓고 코를 흥 풀고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
당신들의 노고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저는 이제야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존경합니다.
진심으로.
“일단……. 좀 씻을까요?”
“…….”
가만히 날 올려다본 한솔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솔을 이끌고 샤워기가 있는 위치로 향했다.
쏴아아
위에서 물이 쏟아지면서 가슴팍에 묻었던 그녀의 이물질이 씻겨나가는 게 느껴졌다.
이제는 내 품에 떨어질 생각도 안은 채 푹 안긴 한솔을 내려다보며 나는 고민했다.
음…….
그래서 이제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사실 이렇게 둘이서 샤워실까지 온 이상 답은 하나지.
본래의 목적인 떡 각을 잡는 것.
애초에 그거 말고는 이대로 그녀를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다.
다만 방금 전 한솔이 보여준 추태로 내 꼬추는 반쯤 기가 죽은 상태라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이대로 한솔과 헤어지면 이미 반쯤 공치는 거나 다름없다.
억울해서라도 한 판 하지 않으면 성이 안 풀린다고.
사실 여기서 한솔의 자존심이고 뭐고 그냥 내가 잡아먹는다는 선택지도 있긴 하다.
하지만 첫 경험은 꽤나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라지 않는가.
기왕이라면 그녀도 여유를 가지고 즐길 수 있는 게 좋았다.
무엇보다 나도 그런 방식을 계속 선호하고 있었고.
그렇다면 일단은 이 여자의 자존심을 좀 높여줄 필요가 있겠지.
생각을 정리한 나는 입을 열었다.
“한솔 씨.”
“…….”
내 부름에도 꼭 안긴 채로 있는 한솔.
그런 그녀를 향해 나는 재차 입을 열었다.
“한솔 씨.”
“……네.”
“저기……. 괜찮아요?”
“괜찮아요…….”
얼굴도 못 든 채 대답하는 한솔의 모습에 쓴웃음이 나왔다.
하긴 스스로도 부끄러운 짓을 했다는 자각은 있을 테지.
“한솔 씨. 저 좀 봐요. 네?”
내가 몇 번이나 재촉을 한 뒤에야 한솔이 겨우 나와 눈을 맞추었다.
잔뜩 풀이 죽은 한솔을 향해 말했다.
“보니까 한솔 씨는 경험도 없고 스스로한테 자신감도 없는 거 같아요.”
“맞아요…….”
“뭐, 경험이야 차츰차츰 쌓이는 거니까 괜찮아요. 하지만 자신감은 가져야죠. 스스로도 그게 싫어서 방금 그렇게 울었던 거잖아요.”
“…….”
“또 눈 피한다.”
“으…….”
내 말에 한솔이 아예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내 품에서 벗어날 생각은 하지 않고 내 허리를 꼭 안은 채다.
내가 널 어떻게 하면 좋겠니.
"응?"
아니, 잠깐.
이거 생각보다 가능성 있어 보이는데?
“잠깐 있어 봐요.”
품에 안긴 한솔을 향해 나는 손을 움직였다.
일단 이 두꺼운 뿔테 안경도 좀 벗기고…….
샴푸로 짧은 머리도 대충 좀 넘겨보고…….
여기다 옷 좀 잘 입힌다고 상상한다면…….
“고개 좀 들어 봐요.”
대충 구색을 맞춘 후 억지로 한솔을 떼어냈다.
내 곁에서 떨어진 한솔이 수줍은 듯 고개를 들었다.
그런 내 눈 앞에는 색다른 느낌의 양아치 소녀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물론.
내 상상 속에서나 그렇단 거다.
키가 작은 게 좀 아쉽긴 하지만 비주얼만 꾸미면 앞의 3인방에게도 꿀리지 않을 거 같은 모습이다.
원래 원판은 나쁘지 않았으니까.
앞머리를 걷어보니 생각만큼 순둥이 같은 인상도 아니고.
잘만 꾸미면 나쁘지 않겠는데?
“한솔 씨.”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서 있는 한솔을 향해 내가 말했다.
“앞으로 안경 벗고 렌즈 껴요. 무조건.”
“네?”
“그리고 옷도 칙칙한 거 말고 밝고 얇은 재질로 입고요. 아, 머리는 지금처럼 꼭 넘겨요. 앞머리 그렇게 안 자른 채로 두지 말고요. 좀 어두워 보이니까.”
“저, 저기…….”
“뭐, 원래는 오늘 하루만 보고 헤어지는 걸로 정했었는데……. 어쩔 수 없지. 정 필요하면 톡 해요. 옷 정도는 같이 사러 가 줄게요. 아니다. XX대학교라고 헀죠? 거기라면 나도 그렇게 안 머니까 연락하면 내가 갈 수 있을 거예요. 이번에 MT 끝나면 따로 연락…….”
“현수 씨…….”
장광하게 늘어놓는 내 일장연설을 끊는 한솔.
허나 그런 그녀의 모습에 괘씸하기는커녕 오히려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아, 네. 궁금한 거 있어요?”
그런 그녀를 향해 활짝 웃으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퉁퉁 부은 눈으로 가만히 날 보던 한솔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요……. 저기, 그보다…….”
“네?”
“오, 오빠라고 불러도 될까요?”
음, 오빠라.
그래 오빠. 좋지.
그런데 왜 나는 아빠라는 말이 순간적으로 더 어울린다고 생각해버린 걸까?
“……응?”
그 순간.
갑작스레 느껴지는 인기척.
발걸음을 들은 순간 재빨리 한솔의 몸을 끌어안았다.
“꺅! 오, 오빠?! 읍!”
깜찍한 비명을 지르는 한솔의 입을 틀어막으며 구석진 곳으로 이동했다.
당황한 한솔의 입을 막은 채 소리 내지 않고 입모양만으로 뜻을 전달했다.
'숨어야 해!'
샤워실로 누군가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