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10. 나 홀로 여행(2)
여행을 하는 사람의 스타일은 대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는 것을 좋아하는 관광 스타일.
한 곳에 자리를 잡고 너무 멀리 돌아다니지 않고 자연 등을 즐기는 휴양 스타일.
참고로 나는 이 중에서 후자인 ‘휴양’ 스타일의 여행을 선호한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첫째로, 나는 북적거리는 걸 싫어한다.
둘째로, 나는 몸이 힘들어지는 여행을 싫어한다.
물론 역전세계로 오게 되면서 육체적인 부분은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된 상황이다.
허나 그렇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즉 천성이 아싸라는 거다.
뭐……. 이젠 아싸라고 하기에도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키 180이 넘는 존잘남에 거근, 모델 알바를 하고 섹파만 해도 다섯.
이런 상황에서 아싸니 뭐니 할 순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지금의 내가 아싸니 뭐니 하면 그건 단순히 기만에 불과할 뿐이다.
뭐, 잡생각은 여기까지 하고.
일단 여행지부터 정해볼까.
“흐음.”
컴퓨터 앞에서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여행 사이트를 들락거렸다.
일단 오늘부터 일주일 안에 갔다 올 수 있는 여행지여야 한다.
도심 지역은 당연히 1순위로 제외.
최근에 돈도 좀 벌었으니 예산은 이 정도면 충분할 테고.
물론 그렇다고 해외로 갈 정도는 아니니 적당히 국내 여행지로.
그렇게 여행지를 물색한 지 약 한 시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나는 마침내 목적지를 정할 수 있었다.
빠르게 갈 수 있고, 지금 시작해도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 않으며, 즉흥적으로 여행을 해도 큰 문제는 되지 않는 국내 여행에, 휴양 목적에도 알맞은 곳.
“좋아.”
즉.
제주도다.
모니터 너머 야자수 길 너머로 탁 트인 해변가 사진이 보였다.
그것을 보며 나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목적지가 정해졌다면 이제는 준비하는 일 뿐.
“그럼……. 어디 볼까?”
나는 가장 먼저 내일 있을 비행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여행 준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어제 하루 투자를 한 것만으로도 나는 곧바로 다음날 있을 여행 준비를 완전하게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지금 나는 바로 김포공항에 서 있었다.
“이게 얼마 만에 여행이냐아~!”
간만에 가는 여행이라 그럴까.
나 홀로 가는 여행인데도 기분이좋네.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느긋하게 근처 벤치에 앉아 다음 수속을 기다렸다.
“심심하네…….”
그래도 역시 혼자서 이러고 있으니 좀 심심한데.
“가기 전에 자랑이나 좀 해 볼까.”
핸드폰을 꺼내든 나는 적당히 주변 배경과 함께 나를 찍었다.
내 인생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보여주고자 찍는 셀카였다.
대충 사진을 찍은 나는 그 날 이후 만든 단톡에 내 사진을 올렸다.
내가 사진을 올리기 무섭게 대화창에서 뜨거운 반응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화연] 우와 공항
[화연] 부럽다…
[화연] (손수건을 물면서 울고있는 곰돌이 이모티콘)
가장 먼저 반응을 한 것은 주화연.
핸드폰 너머로 부러워하는 그녀의 표정이 상상하며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귀엽기는.
[다슬] 혼자만 쏙 놀러가니까 좋아요?
다음으로 반응이 온 건 최다슬.
뚱한 표정의 다슬을 떠올리니 입가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실실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현수] ㅇㅇ 완전 좋은데?
[현수] 개꿀ㅋㅋ
[다슬] 아
[다슬] 아
[다슬] 악!
[다슬] (불을 내뿜는 도롱뇽 이모티콘)
얘는 언제라도 참 놀리는 맛이 있다니까.
[화정] 이제 공항 도착한 거?
내가 낄낄거리며 웃는 사이 마지막 인물, 윤화정의 반응이 올라왔다.
참고로 그녀는 이 단톡이 만들어지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1등 공신이라 할 수 있었다.
[현수] ㅇㅇ 출발까지 20분 정도 남음
[화정] 좋겠네
[화정] 이번 기회에 잘 놀다 와
[현수] 땡큐
[화정] 그리고 기념품사는거 잊지말고ㅋ
[현수] ㅋㅋ알았다
바쁘게 손가락을 놀리고 있자니 문득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설마 이 세 사람이 한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기왕 이렇게 된 거 앞으로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대화는 계속 진행되었다.
[다슬] 오빠 도착하면 제대로 도착했다고 톡 해요. 알았죠?
[현수] 뭔 보고를 하래;;
[현수] 내가 애냐?;;
[다슬] 남자 혼자 놀러가니까 걱정돼서 그러죠
[현수] 아니 그래도 그건 좀
[다슬] 솔직히 나 말고도 다들 걱정할 듯. ㅇㅈ?
[화정] ㅇㅈ
[화연] 그게
[화연] 나도 좀 걱정되긴 해 솔직히
[화연] 아무래도 남자 혼자 여행하는 게 흔한 건 아니니까…….
[현수] 아니 해외도 아니고 국내 여행인데?
[화정]보통 국내라도 최소 둘이서 감
오래간만에 느껴지는 괴리감에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 정도인가?”
이 세계의 남자는 혼자 여행도 잘 안 가는 걸까.
그래도 원래 세계의 여자들은 종종 혼자서 여행 가고 그랬던 거 같은데.
“안내말씀 드리겠습니다. XX에어 012편이 곧 출발할 예정입니다. XX에어 012편을 이용하실 손님들께서는…….”
아, 내가 탈 항공기다.
마침 들리는 방송에 상념을 미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바로 앞에서 대기 중이었던지라 곧바로 대화를 끝내고 빠르게 터미널로 이동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각종 수속을 마친 나는 마침내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엇다.
크, 이게 얼마만에 타는 비행기냐.
“환영합니다~.”
비행기 위에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던 스튜어디스들이 미소를 지으며 손님들을 맞이했다.
“환영합…….”
인사를 하던 스튜어디스가 갑자기 내 앞에서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지? 내가 뭐 잘못한 거 있나?
“왜요?”
“아, 아뇨, 그, 화, 환영합니다!”
“아, 네.”
곧바로 표정을 가다듬는 스튜어디스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지만, 뭐 어떠랴.
아무튼 지금의 나는 그런 사소한 건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어느 때보다 가벼운 기분으로 나는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렇게 여유를 즐기려고 했지만…….
도저히 쉬려고 해도 쉴 수가 없었다.
“…….”
통로를 지나가는 사람들이하나같이나를 한 번씩 물끄러미 쳐다보고 지나갔으니까.
“크흠.”
“오오…….”
아니, 내가 무슨 전시물도 아니고.
특히 여자들의 경우에는 노소(老小)를 불문하고 감탄사를 내뱉으며 지나가는데, 이 정도면 아무리 익숙해진 나라도 낯간지러울 수밖에 없었다.
같은 남자들은 오히려 못 본 척 하고 지나가는데 말이지.
“엄마, 방금 오빠 엄청 머시써.”
“얘가 정말.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엄마 따라와.”
“시러, 오빠 있는 자리에 앉을래.”
“엄마 말 안 들을래?!”
“으아아앙!”
뭐,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다.
애가 뭘 모르니까 그냥 떼 좀 쓸 수도 있지.
“와, 씨발. 방금 봤냐?”
“어. 미쳤는데? 연예인 아냐?”
“와, 나 살면서 저렇게 잘생긴 사람 첨 봄.”
“리얼 나도. 조각상인 줄.”
“번호 달라고 해 볼까?”
“큭큭, 병신아. 차라리 오징어가 물어보는 게 더 가능성 있겠다.”
“씨발년, 말 존나 싸가지 없게 하네.”
근데 고등학생들이 대놓고 이러는 건…….
진짜 아니지 않나?
단체로 타는 걸 보아하니 어디 수학여행이라도 가는 거 같은데, 지나가는 애들마다 한 마디씩 하는 게 엄청나게 신경 쓰였다.
자기들 딴에는 속삭인다고 하는 모양인데 어차피 다 들린단 말이지.
하물며 그 여학생들이 ‘남자’같은 말투로 저러고 있으니…….
대체 나는 언제쯤 이런 상황에 익숙해지려나……?
“……아 몰라.”
일단 잠이나 자자.
나는 주변의 시선을 애써 무시한 채 눈을 감았다.
***
비행기가 이륙한 지 약 30분.
사건은 잠에서 깬 내가 화장실에 가고자 자리에서 일어났을 즈음에 일어났다.
“실례하겠습니다.”
이코노미석의 좁은 좌석 사이.
맞은편의 스튜어디스에게 양해를 구하며 나는 화장실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난기류가 불기 시작했다.
후우우웅─.
“으헉!”
생각 이상으로 강한 난기류에 놀라 가던 길을 멈추고 통로에 그대로 멈췄다.
다만 문제는 내가 아니었다.
바로 앞에 있던 스튜어디스가 카트를 든 채 흔들리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꺅!”
결국 균형을 잡지 못한 스튜어디스의 몸이 홱 고꾸라졌다.
그런 그녀를 향해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조심하세요!”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스튜어디스를 대신해 카트 손잡이를 잡고, 동시에 앞으로 고꾸라지는 그녀의 허리를 꽉 붙잡았다.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과자 몇 개가 촤르륵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허나 다행히 사람이 쓰러지거나 다치는 일은 없었다.
“손님 여러분, 현재 난기류가 발생 중이오니 자리에 앉아 좌석벨트를 매 주시길 바랍니다. Ladies And Gentlemen. we are encountering airturbulence…….”
곧이어 들리는 기내방송을 들으며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시발, 좆 될 뻔했네.
한바탕 일어난 사고에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괜찮으세요?”
“아이고, 어떡해. 안 다쳤나 몰라.”
“아, 괜찮습니다.”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대답하며 나는 품에 안긴 스튜어디스에게 시선을 던졌다.
곧바로 정신을 차린 승무원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내게서 떨어졌다.
이 사람 아까 인사하면서 말 더듬던 그 누나네.
“아, 죄, 죄송합니다! 다치진 않으셨나요, 손님?”
“전 괜찮습니다. 그보다, 그…….”
“네?”
“다 쏟아버렸는데…….”
내 말에 그녀도 그제서야 상황을 깨달은 듯했다.
참고로 나는 아까 서비스로 받은 음료수를 들고 있던 상황.
마시고 남은 음료수도 버릴 겸 화장실을 갈 생각이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그녀가 넘어지는 것을 막고자 손을 놓아버렸으니 어떻게 됐겠는가.
그나마 손님이 있는 쪽이 아닌 통로 쪽으로 던진 건데 하필이면 그게 스튜어디스한테, 그것도 가슴에 다 묻어버렸다.
덕분에새하얬던 스튜어디스의 제복 가슴팍이 내 오렌지 주스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흠, 그런데 가슴 윤곽이 다 보이는 게 꽤나…….
……아니,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아, 아니에요!“
내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사과하자 승무원이 손을 휙휙 저었다.
“괜찮습니다! 손님 잘못이 아니니까요. 오히려 도와주시다가 이렇게 된 거잖아요.”
“그래도 옷이 다젖어 버려서…….”
“신경 쓰지 마세요. 옷이야 갈아입으면 되니까요. 일단 위험하니 손님은 자리로 돌아가세요.”
하긴 그것도 그런가.
방금이야 내가 재빠르게 움직여서 망정이지, 카트를 붙잡지 않았으면 진짜 대형 사고라도 날 뻔한 상황이었다.
괜히 좁은 통로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또 같은 상황이 오면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자리에 돌아온 나는 저 사태를 수습하고 멀리 돌아가는 스튜어디스를 바라보았다.
좀 진정되면 사과라도 하고 싶은데.
내가 도와주다가 그렇게 된 거긴 하지만 아무튼 음료수를 쏟은 건 사실이니까.
뭐, 일단은 난기류가 진정될 때까지 있는 수밖에 없겠지.
나는 그렇게 사태가 진정되기까지 얌전히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사태 수습을 마친 스튜어디스가 나에게 다가오는 게 보였다.
다가오는 모습에서 나는 그녀가 옷을 갈아입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깨끗한 제복을 입은 그녀가 날 향해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 내게 태클을 걸 생각은 없는모양이다.
“손님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그냥 눈앞에 있어서 잡았을 뿐인데요. 정말 어디 다치신 거 아니죠?”
“후후. 친절하시네요. 전 정말 괜찮아요.”
“뭐, 그러시다면야…….”
아무튼 저 쪽에서도 문제 삼을 생각도 없는 것 같고, 어떻게든 무사히 지나간 모양이다.
“이거 받으세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이 그녀가 무언가를 건넸다.
그런 그녀가 건네준 것은 간단한 음료수였다.
“아까 도움 주신 것에 대한 서비스예요.”
“아, 감사합니다.”
아까는 종이컵에 따라서 생긴 참사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뚜껑도 있는 음료수다.
이거면 아까처럼 심하게 쏟을 염려는 없겠네.
“잘 마실게요.”
음료수를 든 채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
허나 내 인사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머뭇거리며 한동안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할 말이 남았나?
“왜 그러세요?”
“저, 저기.”
“네?”
“그, 실례가 안 된다면…….”
한참을 머뭇거리던 그녀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제가 나중에 따로 보답을 드리고 싶은데요.”
“네?”
“그래서 말인데, 괜찮으시다면 연락처 좀…….”
“……네?”
그 말에 나는 그제야 나는 처음으로 스튜어디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그녀가 재차 말했다.
“안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