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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화 〉9. 비글, 골든 리트리버, 그리고……. 똥개?(5) (80/152)



〈 80화 〉9. 비글, 골든 리트리버, 그리고……. 똥개?(5)

한바탕 일을 치른 뒤 나는 화연과 함께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뭐, 가는 길에 풀이 죽은 화연이 말수가 부쩍 적은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일단은 하고 있는 일부터 집중하는 수밖에 없겠지.

그렇게 도착하게  장소는 어느 이름 모를 고층 빌딩 입구.
바로 화정의 집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뚱한 표정의 최다슬을 마주할 수 있었다.

“…….”
“…….”

얘는 집에 간다고 안 했나.
그보다 여긴 또 어떻게 알고 온 거지?

“왜 여깄냐.”

 눈길을 피하며 딴청을 피우는 다슬의 모습에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집에 간다면서?”
“간다고만 했지 집으로 간다고 한 적은 없거든요.”
“그럼 아까 전화한다고  필요 없었잖아.  솔직히 그냥 마음 바뀌어서 온 거지?”
“……시끄러워요.”
“그보다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다 수가 있어요.”

순간 머릿속으로 오싹한 생각이 떠올랐다.

얘 설마…….

“너 설마 평소에 나한테 사람 붙이고 그러는  아니지?”
“뭔 소리예요! 사람을 뭘로 보……!”

어이없다는 듯 소리치던 다슬의 말이 중간에 멈췄다.
의아해하는 사이 다슬이 턱을 괴며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흐음.생각해보니 그것도 나름 괜찮을지도?”
“……농담이길 빈다.”
“그런 거 흥신소에 의뢰하면 되죠? 얼마쯤 하려나?”
“야, 야!”

평소라면 드립이라 여길 텐데, 방금 전에 그 사단을 본지라 순전히 농담처럼 안 느껴지네.
지금기세를 보면 진지하게 고민하는 거 같아서 무섭다고…….

“에휴. 됐다.”

아무튼 나도 더 이상 두 사람 사이를 중재하면서 시간을 끌 수는 없다.
슬슬 촬영 시간이 임박했으니까.

“여기서 얌전히 기다려. 싸우지 말고. 진짜 부탁이다.”

시간을 확인한 나는  사람에게 엄포를 놓았다.
일부러 미간까지 좁히며 말하는  모습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안 싸워요. 대신 촬영 끝나면 셋이서 얘기  해요.”
“뒤풀이 있다고 하던데.”
“현수야…….”
“빠져요. 지금 그게 중요해요?”

어이없어 하는 화연과 찌릿 째려보는 다슬의 눈초리.
이럴 땐 죽이참 잘 맞네.

그렇게 내가 뻘쭘하게 시선을 돌리는 사이.

“……크흠.”
“…….”

결국 두 사람도 계속 외면할 수는 없다 여겼는지 얼굴을 마주보고 인사를하기 시작했다.

“저기요. 그 쪽은…….”
“그쪽이 아니라 주화연이에요.”
“아, 네. 화연 씨.”

뭐, 그렇다고 해서 둘 다 앙금이 풀린 건 아닌  같지만.

기 싸움이라도 하듯 가만히 서로를 응시하는 두 사람.
그런  사이에 낀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거 진짜 안 싸우는 거 맞나……?

“아까 일은 죄송했습니다.”

허나 다행히 그런 내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
가만히 화연을 보던 다슬이 먼저 고개를 숙였으니까.

“네?”

설마 먼저 사과를 할 줄은 몰랐던 것인지 화연의 눈이 동그래졌다.
고개를 든 다슬이 뒷통수를 벅벅 긁었다.

“하……. 저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괜히 예민하게 반응해서. 띠껍게 군  진심으로 사과드릴게요.”
“아, 그게. 저, 저도 잘한 거 없었잖아요.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저야말로 죄송했어요!”
“그러면 서로 쌤쌤인 걸로 할까요?”
“아, 네. 좋아요.”

고개를 든  사람 사이에는 이전까지의 날카로운 기색은 한층 사라져 있었다.

이걸로 일단락된 건가.
딱히 내가 한  없지만.

한층 옅어진 긴장감 속에서 다슬이 편해진 어투로 말을 이었다.

“그보다 아까 오빠얘기가 나오면서 태도가 확 달라지던데.”
“그건…….”
“뭐, 저도 그랬으니 피차일반이긴 한데요. 뭐라 하는 게 아니라 궁금해서요.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여자친구는 아니죠?”
“그거야 뭐…….”
“뭐, 반응 보니까 알겠네요.”

반응을 확인한 다슬이 한숨을 푹 쉬었다.

“하, 이걸 기뻐해야 되나 슬퍼해야 되나…….”
“네?”

이미  꿰뚫고 있다는 눈빛으로 나를 째려보는 다슬.

하긴, 여기까지 와놓고 모르는 것도 이상하지.

다른 섹파들과 달리 쓰리썸을 하자는 제안까지 들은 적이 있던 다슬이다.
그런 만큼 내가 얼마나 문란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이미 짐작하고 있을 터.
당연히 다슬로서는 또 다른 경쟁상대임을 직감할 수밖에 없으리라.

“둘이 무슨 관계일지 대충 짐작이 가네요.”
“네? 자, 잠깐만요. 그럼 설마 다슬 씨도…….”
“그런 셈이죠.”

그리고 그런 다슬의 눈빛에서 화연도 무언가 깨달은 듯했다.
짜게 식은 다슬의 눈빛에 전염되듯 화연의 눈빛도 한층 식어갔다.

뭐.
그렇게 쳐다보면 어쩔 건데.

“하아.”“후우.”

동시에 한숨을 쉬며 날 보는 두 사람.

음, 사이가 좋아진 거 같기는 한데…….
어째 화살이 나한테 돌아온 모양새네?

뭐, 이것도 내 업보이긴 하지만.

“서로 고생길이 훤하네요.”
“그러게요.”

내가 있는 힘껏 딴청을 부리는 사이 두 사람이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아무튼 그 부분에 대해서서로 얘기 좀 나누시죠. 피차 궁금한  많을 텐데. 어차피 오빠 촬영 끝날 때까지 시간은 넉넉하잖아요?”
“좋아요! 현수 쟤, 도대체 뭐 하고 다니는지 궁금하던 참이었거든요.”
“아니, 내가 뭘 했다고…….”
“오빠는 촬영이나 가. 여자들끼리 할 얘기가 있으니까.”
“맞아. 아까도 빨리 가야 된다면서?”
“…….”

친해진 건 좋은데 어째 결말이 영 찜찜한데.

나는 어느새 의기투합한  사람을 뒤로 한 채 촬영지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

“수고하셨습니다!”

다행히 촬영이 끝날 때까지 내가 생각하던 불안함이 표면화되는 일은 없었다.
별다른 일 없이 촬영이 일단락돼서 다행이다.

허나 지금 산적한 문제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복잡해진 상황이라 할 수 있었으니까.

또 모르지…….
내가 없는 사이에 이미 둘이서 아수라장을 펼치고 있을지…….

“후우.”

이걸 어쩐다.
솔직히 이대로 다 내버려두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인데.

“……나도 양심이 있지.”

하지만 그럴 순 없는 노릇.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게 전적으로 내 잘못인 이상, 여기서 무책임하게 도망칠 수는 없었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든  사람을 최대한 타일러보는 것으로 마무리해야 하리라.

“수고했어, 오빠.”

내가 고민하는 사이 화정이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왔다.

“오빠 뒤풀이는 참석  한다고 했지?”
“어……. 좀 바빠서.”
“어째 기운이 없어 보이네.”
“그래 보여?”
“아까 그  사람 때문이지?”

갑작스런 화정의 물음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딱히 할 말이 없었으니까.

말이 없는 나를 가만히 보던 화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구나.”
“아니, 그게…….”
“나도 껴도 될까?”
“……뭐?”
“왜? 나는 끼면 안 되는 자리야?”
“그런 건 아닌데……. 하, 아무튼 그런 게 있어. 너까지 오면 복잡해지니까 그만둬.”
“내가 끼면 더 복잡해지는 문제라.”

가만히 날 관찰하던 화정이 씨익 웃었다.
재밌는 건수라도 잡은 아이마냥.

“두 사람 다 오빠 좋아하는구나?”
“그건…….”
“그거 때문에 싸울까봐 오빠만 지금 마음 졸이고 있는 거고. 맞지?”

와, 얘 눈치 뭔데.

참고로 화연과 다슬에 대한 이야기는 화정에게 한 적이 없었다.
이리 저리 여자를 만나고 다닌다는 걸 좋게 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허나 화정은 방금 전 화정과 다슬을   본 것만으로  사정을 꿰뚫은 듯했다.

“죄 많은 남자네.”
“시끄러.”

작게 웃는 화정을 보며 나는 작게 혀를 찼다.

그래, 뭐…….
이 정도로 눈치가 빠르다면 숨길 수도 없겠지.

결국 나는 그런 화정을 보며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걔네 둘이 나 때문에 싸운 건 맞아. 아까 내가 중재했으니 더 이상 싸울 거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불안하네.”
“그러면 내가 끼면  좋을 거 같은데.”
“어째서?”
“오빠랑 나랑 스캔들 있잖아.”

윤화정의 열애설은 현재진형행.
다만 이제 촬영도 끝났고,  방송이 나가게 된다면 해소될 스캔들에 불과했다.
애초에 화정이 대놓고 야외촬영 때 언급했으니까.

하지만 여기서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이해가 안 갔다.

오히려 열애설이 터진 당사자와 같이 온다면 두 사람이 더 싫어할 거 같은데?

“그러면 네가 오면 더 안 되는 거 아닌가?”
“화제를 돌리는 거지. 두 사람 다 서로한테만 집중하고 있는데 오빠랑 스캔들이 터진 내가  등장해 봐. 그럼 둘이서 투닥거릴 틈이 있겠어? 그리고 어차피 사실도 아니고. 오해도 풀 겸 얘기하다 보면 은근슬쩍 분위기도 풀어질 걸.”
“글쎄다. 오히려 더 난리 나는 건 아닐까 걱정인데.”
“그런가?”
“그래. 가뜩이나 둘 다 사이 안 좋은데 괜히 스캔들 터진 네가 온다고 생각해 봐. 오히려 너까지 말려들  같은데?”
“그래봤자 다음 주에 방송 나가면 금방 풀릴 오해잖아?”
“그거야 그렇다만…….”
“그리고  말려들면 어때? 어차피 내가 자주  사람들도 아니고.”

으음, 확실히 대충 아귀는 맞아 떨어지네.

그래도 과연 그렇게 쉽게 풀릴까?
내가 보기엔 화정이 얘만 욕 먹을  같은 느낌인데 말이지.

긴가민가하는 사이 화정이 재차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아까 보니까 그 다슬이라는 여자애 말이야.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날 동경한다고 해야 되나? 그런 느낌이던데.”
“걔가 연예인이란 직업에 관심이 많긴 하지.”
“잘 됐네. 그럼 적어도 다슬이라는 애는 내가 어떻게 누그러뜨릴  있을 거 같은데? 다른 한 분은 오빠 말은 끔뻑 죽는 거 같고. 아니야?”
“그런  언제 본 거야…….”
“단순하게 생각해, 오빠. 나랑 오빠는 직장 동료일 뿐이잖아. 남녀 구분하기 이전에. 철저하게 그런 느낌으로 대하면 별 문제 없을 거라고.”

재차 설득하는 화정의 말에도 나로서는 불안함이 가시지 않았다.

최다슬과 주화연도 오늘 처음 만나서 그렇게 싸웠던 건데 말이지.

그런데 거기에 미모의 연예인 한 명이, 그것도 스캔들 당사자인 화정이 추가된다면?
진짜 주먹다짐이라도 나가는 건 아닐까 불안하다고…….

“나도  처음부터 눈치 없이 끼겠다는 얘기가 아니야.”

대답하지 않는 날 보며 화정이 계속해서 설득을 시도했다.

“어차피 뒤풀이도 가야 되고.”
“그러면 뭐 어떡한다는 건데?”
“뒤풀이 끝나고 나서도 세 사람이 얘기가 안 끝나면 그 때 날 부르라는 거야. 그러면 오빠도 좀 편해지지 않겠어? 이야기가 질질 끌어질   내가 등장하는 거지. 그러면 오빠도 대충 둘러대고 빠져나오기 쉬울 테고.”
“음…….”
“에이 참. 오빠 도와준다는 건데 너무 재는 거 아니야? 걱정하지 말래도.”

계속해서 날 설득하는 화정의 모습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화정의 입장에서는 기분만 상하고 돌아오는 자리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도와주려고 어떻게 될지 모를 상황에 끼어들려고 한다는 게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얘는 왜 별 이득도 없는 일에 끼어들려고 하는 걸까.
물론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긴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괜찮아.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걸.”

도대체 원하는 게 뭐기에 이렇게까지 나서려는 걸까?
단순히 곤란해 하는 지인을 돕고 싶은 마음에?

아니면 설마 얘도…….

……아니겠지?

하긴, 아무리 역전세계라고 해도  무작정 나한테 반하거나 하진 않을 테지.

아마 화정도 그저 단순히 친구로서 도와주고픈 마음에 나서고 싶은 걸 꺼다.

화정도 방금 자기 입으로 말하지 않았는가.
남녀구분 이전에 직장 동료로 대한다면 문제없을 거라고.

순수한 호의를 괜히 착각하면 그것만큼 추한것도 없지.

그럼 여기서는 일단 도움을 받는 걸로 할까.

“어떡할래?”

재차 묻는 화정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도와주면 나야 고맙긴 하지. 곤란해지면 연락해도 될까?”
“당연하지."


빙긋 웃은 화정이 몸을  돌리며 스텝들 사이로 떠나갔다.

그럼 가볼게.”

슬슬 스텝과 촬영의 뒤풀이에 참석해야 하는 화정은 물론이고, 나도 더 이상 두 사람을 내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
나는 떠나가는 화정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곤란해지면 연락한다고는 했지만…….

사실 그럴 일은 없었으면 하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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