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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화 〉9. 비글, 골든 리트리버, 그리고……. 똥개?(4) (79/152)



〈 79화 〉9. 비글, 골든 리트리버, 그리고……. 똥개?(4)

공원 한 구석에 있는 벤치.
슬슬 해가 지기 시작하는 그곳에서 나는 앉아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

한 명은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 없이 있는 주화연.

“아,진짜 짜증나게.”

그리고 또  명은 여전히 화가 나서 씩씩거리고 있는 최다슬.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설마 다른 애들도 아니고 이  사람이 내 골치를 썩힐 줄이야.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다음 촬영까지는 빠듯하게나마 시간이좀 빈 상황.

30분 정도는……. 괜찮으려나.
적어도 자초지종을 물을 여유 정도는 될  같네.

털썩.

멀찍이 떨어져 앉은 두 사람 사이로 예고도 없이 자리를 잡았다.
무작정 사이로 끼어들자 눈을 피하던 두 사람이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일단……. 왜 싸웠는지는  물을게.”

사실 왜 싸웠는지는 대충 감이 온다.

아마도  때문이겠지.

지금의 나는 한 손가락으로 거느릴 수준의 여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입장.
그러니 언젠가 이런 치정싸움의 한가운데에 놓이는 상황이 오리라 예상은 했다.

다만 지금과 같은 타이밍에, 그것도 이 두 사람이 가장 먼저 일으킬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을 뿐.

“주화연.”
“……으응.”

부름에 화연이 한껏 풀이 죽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헝클어진 정장 차림에 당장이라도 터질 듯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까지.
보고 있자니 사고를 친 강아지를 혼내고 있는 기분이다.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냥  용서하고 끌어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만……. 그렇다고 이대로 둘 순 없는 노릇.

풀어지려는 표정을 겨우 제어하며 억지로 딱딱한 어투로 물었다.

“일단……. 넌 여긴 어떻게 온 거야?”

연기를 눈치채지 못한화연이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힐끔힐끔 날 보던 화연이 눈이 마주친 순간 다시 고개를  숙였다.

“미, 미안…….”
“아니, 사과할 아니라. 진짜 여긴 왜 온 거야? 너 오늘 일하는 날 아냐?”
“바, 반차 썼어…….”
“왜?”
“너 방송촬영한다고 하니까…….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그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 학교에서? 한 시간은걸릴 텐데?”
“…….”

아무 말도 못하는 화연의 모습에 나도 일순 말문이 막혔다.

물론 나 때문이라고 짐작은 하긴 했다만…….
막상 진짜 나 하나 때문에 여기까지 일도 쉬고 왔다는 말을 들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그렇다고 일까지 소홀히 하는  좀 아니지 않나?

“화연아…….”

지끈거리는 미간을 문지르며 내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너랑 내가 확실히 보통 관계는 아니긴 해. 하지만 하던 일까지 내팽개치는 건 좀 아닌 거 같은데.”
“미안해…….”
“너 저번에 내가 말했던 거 기억하지?”
“응…….”
“그런데 왜 이러는 거야? 우리 이런 식으로 지내지 않기로 했잖아. 서로 필요 이상 간섭하지 않는 걸로.”

학교 뒤편에서했던 이야기.
그 날 대화를 나눈 뒤로 화연과는 대충 입장을 정리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서로 막역하게, 그리고 섹파 관계를 유지하긴 해도 친구 수준을 넘어서는 간섭은 금지하는, 딱 그런 애매한 관계 말이다.

물론 이는 나와 주화연 서로만이 알고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둘만의 관계.
옆에서 잠자코 있던 다슬이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도대체 무슨 얘기야……?”
“잠깐만.”

하지만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다.
내 제지에 다소 불만스러운 다슬의 모습을 애써 외면한 채 화연을 향해 재차 말했다.

“이러면 나도 곤란해.”
“그게……. 딱히 간섭하려고 이런 건 아니었어.”

쩔쩔매는 표정으로 화연이 어렵사리 말을 이어갔다.

“처음엔 그냥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고 돌아가려고 했는걸.”
“내가 촬영하는 걸?”
“응. 그런데 자꾸 너 주변에서 기웃거리는 애가 있더라고.”
“다슬이 말하는 거야?”

그 말에 다시 옆에 있는 다슬을 바라보았다.
뚱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던 다슬이 고개를  돌렸다.

이거 나중에 한 번 제대로 풀어줘야겠는데…….

“응. 그래서 네 친구인가 물어볼 생각이었어. 그런데 갑자기  짜증을 내길래…….”
“웃기시네!”

결국 참지 못한 다슬이 버럭 소리치며 화연을 손가락질했다.

“오빠, 저 미친년 말 듣지 마요. 처음부터 사람 째려보면서 띠껍게 말해놓고는 뭐가 어째? 예의라곤 밥 말아먹고 접근한 게 누군데!”
“내, 내가 언제 째려봤다고 그래! 그쪽이야말로 피해망상이 심한 거 아니야?”
“피해망상 같은 소리 하네. 처음부터 지금까지 어려 보인답시고 반말로 툭툭 내뱉는데 내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오겠냐고!”
“그, 그건……. 그, 그보다 째려본 건 그쪽이 먼저잖아……요!”
“그럼 처음 보는 인간이 다가오는데 경계도 안 해? 내가 누구처럼 병신인 줄 알아?”
“뭐가 어쩌고 어째요! 그리고 왜 그쪽이야말로 계속 반말하는 건데요!”
“응 너나 존댓말 열심히 해. 좆같아서 너한텐 반말할 거니까!”

오우…….
예상은 했다만 다슬이 얘 입 한 번 걸걸하네…….

“뭐라고?!”

아무리 성격 좋은 화연이라도 면전에서 욕을 먹고도 태연히 있을 순 없었나 보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는 화연을 나는 겨우 제지했다.

“진정해, 화연아.”
“하지만 쟤가 자꾸……!”
“그만.”

싸늘한  어조에 화연이 입을 꾹 다물었다.
곧이어 반대편으로 시선을 던지자 다슬이 움찔 몸을 떨었다.

“둘 다 거기까지 해. 다슬이 너도 말 조심하고.”

내 엄포에 이리저리 눈만 굴리는 화연과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 다슬.
둘  할 말은 많은데 내 눈치 때문에 말을 못 뱉는 분위기다.

“…….”
“…….”

그렇게 얼마간 침묵.

흠, 딱히 혼내려던 건 아니었는데 분위기가 이상해졌네.

“아, 진짜……!”

결국 먼저 칼을 꺼내든 것은 다슬이었다.
분을 참지 못한 다슬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갈 거예요!”
“갑자기?”
“싸우는  보기싫다면서요!”

그리 말한 다슬이 화정을 째릿 노려보았다.

“계속 여기 있으면 저  머리끄덩이라도뽑아버릴  같으니까!”

거 말 조심 좀 하라니까.
이렇게 살벌하게 구는 다슬을 보는  나도 처음이라 조금 당황스럽다.

“저, 저게 진짜!”
“나중에 전화할게요!”

벌떡 일어나는 화연을 무시한 채 다슬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아니 뭐, 차라리 그게 나으려나.
어차피 이 상태로 둘이 둬봤자 죽도 밥도  될 거 같고.

“알았어.”

잔뜩 열이 오른 다슬을 향해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 좀 식으면 그 때 얘기하자.”
“……곧 죽어도 따라온다고는  하네.”
“뭐라고? 작아서 안 들렸어.”
“됐거든요! 갑니다!”
“차 조심해서 가.”
“……흥.”

나는 코웃음 치며 떠나가는 다슬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설마 저렇게 화를 낼 줄이야.
그래도 내 앞에서는 항상 생글생글 웃는 애였는데.

물론 나도 다슬이 약간 거친 성격이 아닐까 하고 이미 예감은 하고 있었다.
싹싹한 첫 인상부터 시작해서, 클럽을 좋아하는 면모까지 은근히 노는 스타일의 여자라는 느낌을 받아왔으니까.
아마  앞에서 보여준 부분에도 어느 정도 내숭이 포함되어 있었겠지.
나도 그걸 알고 만나고 있었던 거고.

물론 막연히 생각한 것과 달리 눈앞에서 쌍욕을 하는 다슬의 모습은나로서도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저 녀석이 저렇게 욕을 잘 했었나…….  참.”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뒤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있는 화연의 모습이 있었다.

“그러면……. 주화연.”
“으, 응.”
“쟤가 말한 게 맞아? 보자마자 반말하고 예의 없이 굴었다는 거?”
“…….”

내 말에 화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슬의 성격이 드세다는 건 앞서 말했듯 예상하고 있던 일.
이 정도까진 아니어도, 그녀가 언젠가 한  내 또 다른 섹파와 부딪히게 될 거란 예상은 계속 하고 있었다.

설마 그 대상이 주화연이 될 줄은 몰랐지만.

내가 알기로 주화연은 내성적인 성격이 똘똘 뭉친 캐릭터다.
소설 속에서도 가장 먼저 나오는 히로인인 데다가, 내게는 첫 섹파인 여자이기에 나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라…….

어떻게 싸우기 시작한 건지 상상도 안 가네.

“…….”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화연의 모습.
그런 화연을 보며 불길한 예감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이야?”
“반말한 건……. 맞아.”

고개를 끄덕이는 화연의 말에 입을 떡 벌렸다.

와,  얌전하고 소심한 주화연이?
그것도 먼저?

“나보다 어려보여서 나도 모르게 그만……. 좀 흥분하기도 했고.”
“뭐, 실제로 어리긴 한데……. 아니, 그래도 보자마자 반말하는 건 좀.”
“하, 하지만!”

기막혀하는  모습에 화연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반말 외에는 그냥 정말 평범하게 물어봤을 뿐이야! 보니까 계속 너 쳐다보고 있기에 처음에는 같이 촬영하는 사람인가 했고, 그래서 너랑 무슨 관계인지 물어본 건데.”
“그래도 처음부터 하대하면 기분 나쁠 만 하지.”
“으으, 나도 알아. 그래도 쟤도 처음부터 나 아니꼽다는 듯이 바라봤단 말이야. 그러면서 묻는 말에는 제대로 대답도 안 하고 자꾸 비꼬니까…….”
“흐음.”

모든 설명을 다 들은 나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뭐, 대충 왜 싸웠는지는 알겠네.”

최다슬이 누구인가.
이전에도 클럽에서 다른 여자와 있는 꼴은 못 보겠다고 떠나버린 여자가 아닌가.

그런 상황에서 나랑 무슨 관계인지 묻는, 얌전한 미녀가 물어본다면?

그리 생각하면 저리 짜증을 부리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물론확실한  직접 들어봐야 알겠지만.

“하지만 너도 거기서 빠지면 되잖아.  굳이 같이 싸우려고 해?”

다만 내가 이해가안 가는 건 굳이 화연이 그것에 말려들었다는 거다.

소심한데다가 싸우는  극도로피하는 화연이 굳이 그런 다슬의 태도에 울컥해서 뛰어들었다니, 지금껏 머릿속에 그려둔 화연의 이미지와는 너무도 다른 느낌이었다.

“그, 그건…….”

내 물음에 화연이 다시 우물쭈물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망설이던 화연이 속삭이듯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불안해서.”
“뭐가 불안한데?”
“같이 촬영하는 사람이 그 유명한 윤화정이잖아.”
“그게 왜?”
“예쁘잖아, 그 사람. 거기다 이번에 그런 스캔들까지 있었고.”

어,  말은 즉슨…….
예쁜 여자들이 옆에 있으니까 불안했다 이 말인가?

……어째 가슴 속이 근질거리네.

묘한 감정을 느끼는 사이 화연이 횡설수설 말을 이어갔다.

“그런 상황에서 또 연예인 마냥 예쁜 여자애가 있잖아. 그것도 대학생 정도로밖에 안 보이고. 그야 남자들은 보통 나이에 신경 안 쓰긴 하는……. 아, 물론 현수 너도 안 그럴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그러니까 본론이 뭔데?”
“아, 아무튼. 그런 어리고 예쁜 애가 너랑 무슨 관계인지 얘기도  하고, 현수  얘기에 경계하고 있으니까……. 괜히 불안해져서 나도 모르게 그만…….”
“말려들어서 어린애랑 같이 싸웠다 이거네? 그것도 학교 선생님이란 녀석이?”
“미, 미안…….”

내 지적에 화연이 고개를 푹 숙였다.

이걸 귀엽다고 해야 될지 한심하다고 해야 될지…….
무슨 애도 아니고.

“어휴, 진짜.”
“따, 딱히 연친 행세 하려고 한  아니야. 정말이야!”

내 한숨에 얼굴이 빨개진 화연이 서둘러 변명하기 시작했다.
하긴, 스스로도 방금 전 행동이 얼마나 철없는 행동이었는지  알 것이다.

“화난 거……. 아니지?”

우물쭈물  눈치를 살피는 화연의 모습에 다시 한 번 한숨이 나오는 것을 꾹 참았다.

뭐, 화가 안 났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지만…….
이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말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딱하긴 하단 말이지
사실 한 번 정도는 일어날 거라 예상한 거기도 하고.

“현수야……?”

거기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봐라.

저 사슴 같은 눈망울을 보고 내가 어떻게 화를 내겠는가.

예쁘니까 봐준다는 말도  그냥 있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막상 내가 겪으니 그렇지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속물인 거 아는데 뭐……. 어쩌겠어.
이렇게 예쁜 여자가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화가 확 풀려 버리는 것을.

“허 참, 됐어.”

용서를 구하는 화연의 눈빛에 결국 참지 못하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너 그러는  보고 있자니 화내기도 애매하다.”
“아하하…….”
“웃지 마. 앞으로 이런 일  있으면 그 땐 서로 얼굴 안 볼 거니까.”
“윽……. 아, 알았어.”

흠, 의외로 순순히수긍하네.
하긴 그래도 선생님 자리까지 있을 정도로 배운 녀석이니까.

아무튼 급한 불은 여기서 껐고, 다시 촬영장소로 가야겠지.

“읏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화연을 향해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떡할래?”
“응?”
“너 촬영 구경 온 거라면서.  이제 촬영  가야 되거든.”
“어? 촬영 다 끝난  아니었어?”
“후속촬영이 좀 남아서.”

뭐, 같이 가기로 한 다슬한테는 미안하지만……. 여기서는 화연을 우선적으로 챙기는 수밖에 없을 거 같다.
여기까지 온 사람한테 매정하게 구는 것도 좀 그렇지 않은가.

애초에 다슬이 걔가 마음대로 간 거기도 하고.

“구경하다 갈래? 어떡할래?”

내 물음에 화연의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해졌다.

“갈게!”

재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화연을 보며 나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알기 쉬운 녀석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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